* 이 글은 '강도민 선생님' 주인공들의 번외 입니다. 은우의 꿈에서 일어난 이야기 입니다.   

* 취향 타는 글이니 거부감이 있으신 분들은 꼭 피해주세요. 제 글을 처음 접하신 분들은 공지 확인 부탁드립니다. 전개 상 강압적 장면 (체벌, 기합 등)이 있을 수도, 없을 수도 있습니다. 

* 소설은 소설일 뿐, 현실과는 전혀 다른 가상의 세계관, 허구적 내용입니다. 
* 이 글에 작가의 가치관은 반영되지 않습니다.




  

은우의 꿈 (부제 : 어려운 후배)







" 선생님, 오늘 언제 오세요? " 

- 왜 



금요일 공강을 만든다며 시간표 짜는데 열중해있던 은우가 금요일 공강에 성공했다며 전화를 했던 게 엊그제 같았는데 벌써, 은우가 대학에 입학해 집을 떠난 지 꽤 시간이 흘러있었다. 벚꽃을 보며, 중간고사에 치여있던 은우는 중간고사가 끝나자마자 도민의 집으로 내려왔다. 늘 야간자율학습 감독을 하느라 늦게 오는 도민이라 집에 왔다는 소식을 알리기 위해 전화를 걸었다. 통화 연결음이 얼마 들리지 않았는데 전화를 받는 것을 보니, 수업이 없구나 싶었던 은우는 도민에게 집에 도착했다는 것을 알리고는 오랜만에 제 방에 들어갔다. 


은우가 대학에 입학하고, 누가 쓰는 사람도 없었는데도 항상 깨끗했다. 좋은 향기가 나는 이불을 보니 갑자기 눕고 싶은 마음이 강렬해졌다. 중간고사가 끝나자마자 도민의 집으로 내려오는 강행군을 택했으니, 피곤할 만도 했다. 결국 은우는 푹신한 제 침대에 몸을 눕혔다. 어차피 도민이 일을 끝내려면 시간은 아직 남았으니, 차라리 자고 일어나서 최상의 컨디션으로 도민과 이야기를 나누는 게 나을 것 같다는 판단을 내리고 눈을 감았다. 



" 야, 윤은우! 윤은우!  " 



눈을 감고 있는데 들려오는 익숙한 목소리에 은우는 천천히 눈을 떴다. 갑자기 빛을 느낀 눈이 앞에 있는 사람의 형체를 알아보기까지 생각보다 오래 걸렸다. 



" 야, 넌 눈 뜨는데 왜 이렇게 오래 걸리는데! " 

" 뭐야... 김성재 너 왜 여깄어? "



은우는 눈을 비비며 잠에서 깨어나기 위해 애썼다. 여긴 분명 우리 과 과방이다. 김성재는 국어교육과 아닌데, 심지어 같은 대학교도 아니었다. 은우가 혼란스럽다는 듯 눈을 깜빡이며 성재를 바라보자, 얘는 자다가 무슨 봉창 두드리는 소리냐며 소리를 질렀다. 



" 아니. 너 왜 여기 있냐고. " 

" 너 머리가 어떻게 된 거 아냐? 대학교 왔으니까 같이 있겠지. "

" 너.. 우리 학교.. 아니, 어. 이게 뭐지. "

" 잠이 덜 깼네. 아니, 그게 문제가 아니지. 너 왜 여기서 자고 있어! 



과대 없다고 다들 발칵 뒤집어졌다고, 과대가 누군데?, 너, 나? 성재가 답답하다는 듯 은우를 붙잡고 이럴 시간이 없다며 우선 뛰라고 은우의 손을 잡고 달렸다. 자신은 과대를 할 생각도 없었으며, 게다가 무엇보다. 분명 올해 입학한 1학년 새내기였는데, 갑자기 2학년이라고? 내가 혹시 사고가 나서 기억을 잃어버린 건가? 성재에게 붙잡혀 어디로 가는 지도 모르게 끌려가고 있는 와중에 한 번 더 내가 진짜 과대냐고 물었다가 바빠 죽겠는데 그런 걸 따진다는 목소리로 소리를 질렀다. 그래 새끼야. 윤은우 너잖아! 



" 야, 너 들어가면 그냥 머리부터 조아려. "

" 하... 잠깐, 숨, 숨 좀 쉬자. " 

" 지금 숨 쉴 시간이 어딨어! 이러다 영원히 숨 못 쉬고 싶어? "



집합 장소에 도착했는지 성재가 들어가지 전에 은우에게 사뭇 진지한 얼굴로 머리부터 조아리라며 조언을 하는데, 평소의 제가 알던 김성재가 아니었다. 성재의 조언을 들으면서도 갑작스러운 뜀박질에 폐에 공기가 부족했던 은우는 숨을 몰아쉬다가 이제 들어가야 된다며 은우를 끌고 안으로 들어갔다. 생각보다 안 좋은 분위기에 은우는 숨을 참았다. 아니, 이게 대체 무슨 상황이야. 각 맞춰 줄을 서 다 같이 머리를 박고 있는 모습에 은우는 성재가 말했던 사태의 심각성에 대해 깨닫게 되었다. 그래, 생각보다, 아주 많이 심각한 상황이네. 문을 열자마자 은우와 성재에게 시선이 집중되었던 탓에 익숙하지 않은 상황에 은우는 문 앞에서 당황하고 있었고, 성재는 빠르게 머리를 박고 있는 무리에 합류했다 



" 당장 안 튀어와? "

" 네네.. 그.. 죄송합니다. "



저 사람이 집합을 걸었나? 근데, 누구지. 은우가 빠른 걸음으로 앞에 서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은우의 정강이를 세게 찼다. 으악. 갑작스럽게 느껴진 통증을 참지 못하고 은우는 비명을 질렀다가 자신을 노려보는 선배들의 시선에 죄송하다며, 자세를 바로 잡았다. 



" 윤은우. " 

" 예, 예. 선배님. "

" 우리가 지금 이 자리에 모인 이유가 뭘까? "

" 예.. ? "



내가 그 이유를 알았으면, 여기 이러고 안 서 있지. 자다가 일어나서 집합이라는 소리에 달려온 게 다인데, 이유를 알겠는가. 



" 죄송합니다.. 잘.. 모르겠습니다. " 



 은우의 말에 머리를 박고 있던 모두가 몸을 흠칫 떨었다. 저희 과대가 드디어 미쳤다고 생각하는 이들도 대다수였고, 그건 선배들도 마찬가지였던 것 같다. 각목을 들고 휘두르던 선배들은 물론 앞에 서 있던 선배들까지 하나같이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은우를 바라보고 있었다. 



" 너 머리에 총 맞았냐? "

" 아니요.. "

" 이 미친 새끼 보소. 네 후배 때문에 지금 우리가 이 짓을 하고 있는데. 모른다고? "



너 미쳤냐?, 학교생활 존나 재밌고 싶지? 선배들의 분노 어린 말에도 은우는 답을 할 수가 없었다. 제 후배가 무엇을 했는데요, 아니 제 후배가 누구인데요. 은우는 이제 울고 싶을 지경이다. 이 상황이 기억에 없는데, 어떻게 알아! 지금, 이 순간 제일 답답한 사람은 그 누구도 아닌 바로 자신이었다. 은우가 제 앞에 서 있는 학회장으로 보이는 인물을 바라보며 눈물을 글썽거리며 죄송하다고, 한 번만 알려 달려고 말했다. 그 말에 여린 초식동물을 물어 뜯는 맹수처럼, 선배들은 은우에게 한 번 더 달려들었다. 각목을 휘두르던 선배들까지 죄다 은우의 앞으로 몰려들었으니, 마음이 여린 은우가 이 상황을 못 견디는 것은 당연지사다. 



" 야. 그만해. "

   


결국, 학회장이 한숨을 쉬며 모두를 말렸다. 분하다는 듯 얼굴을 구긴 선배들은 하나둘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야, 이 새끼들아. 엉덩이 더 안 들어?, 자세가 점점 불량해진다. 각목을 든 선배들은 몸을 부들부들 떨며 자세를 유지하고 있는 후배들을 더 몰아붙였다. 마치 은우에게 못 한 분풀이라도 하려는 듯.



" 윤은우. 진짜 몰라? "

 


평소 은우를 예뻐하던 학회장이었기에. 지금 은우의 사정을 많이 봐주고 있는 것이다. 은우는 자신에게 꽤 호감이 있어 보이는 학회장의 질문에 눈가가 촉촉한 상태로 고개를 끄덕였다. 하, 학회장이 한숨을 깊게 쉬더니 입을 열었다. 윤은우, 엎드려. 


결국 바닥에 두 손을 짚은 은우는 잔뜩 긴장했다. 원래도 못 맞지만, 최근에는 매를 맞을 일이 없었다. 3월 초 기강을 잡는다고 선배들이 걸었던 집합 말고는 다들 중간고사에 바빠 집합을 걸 생각도 못 했으니까. 실로 오랜만에 맞는 것이다. 학회장이 각목을 건네받고는 은우의 엉덩이 위에 올려놓았다. 



" 빨리 끝내자. 20대 잘 맞으면, 알려줄게. "

" 예.. 감사.. 합니다. "



은우의 말이 끝나자마자 그대로 각목이 엉덩이에 떨어졌다. 한 대 만에 쓰러질만한 강도였지만 이를 악물고, 참았다.  



" 하읍. 열 여, 덟.. "



넘어지고, 버티고, 다시 넘어지고, 엉덩이를 들어 올리고. 은우는 어느덧 고지를 눈앞에 두고 있었다. 울먹이는 목소리로 열아홉, 스물을 세자. 학회장은 각목을 한쪽 구석으로 던졌다. 일어나. 휘청거리며 일어난 은우가 혹시 넘어질까 봐 다리에 힘을 주었다. 물론, 힘을 주면 방금까지 혹사 당한 부위가 잔뜩 존재감을 뿜어내며 아프다고 신호를 보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지금 여기서 제가 비틀거리면, 또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몰랐다. 은우는 더는 혼나고 싶지도 않았고, 빨리 이 집합을 끝내고 싶었다. 



" 1학년 과대. 나와. " 



학회장도 더는 시간을 끌 생각은 없었는지, 집합의 원인인 1학년 과대를 앞으로 불렀다. 고개를 푹 숙이고 있던 은우는 이 사건의 원인이라는 1학년 과대가 누군지 궁금했다. 김성재가 우리 학교에 있는 걸 보면, 분명 아는 사람일 것 같았다. 누굴까. 앞으로 걸어오는 단정한 발걸음 소리, 그리고 곧 제 옆에서 느껴지는 인기척에 은우가 슬쩍 고개를 들었다. 



" 헙... "


고개를 들자마자 보이는 도민의 얼굴에 은우는 너무 놀라 눈을 깜빡였다. 강도민, 분명.. 분명, 강도민이다. 선생님이, 내 후배라고? 이건 정말 말도 안 되는 일이다. 은우가 제 허벅지를 꼬집으며 꿈이면 빨리 일어나라고 생각했지만, 아픔도 그대로 느껴졌다. 이건, 진짜. 꿈이 아닌 가? 내가 알고 있던 세계가 혹시 꿈이었던 걸까. 은우가 혼란에 빠져있는 와중에 학회장은 도민에게 오늘 일에 대한 마지막 경고를 남겼다. 



" 일 학년. 넌 잘 모르나 본 데. 선배가 하라면 하는 거다. 알겠냐. "

" .... " 

" 어디 선배가 시키는 일에 토를 달아. 갓 들어온 애새끼 주제에. "



학회장에 말 한마디, 한마디에 은우는 제가 다 긴장했다. 혹시 제 옆에 있는 도민이 학회장을 죽인다고 분노 할 까봐, 무서웠다. 제가 알고 있는 도민이라면, 그럴 가능성이 다분했다. 다행히 도민은 제 옆에서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 같잖다는 듯. 그런 도민의 태도에 점점 열을 받고 있는 학회장의 모습이 보였기에 은우는 다급하게 나섰다. 



" 선배님! 제가, 제가.. 교육 시키겠습니다. "

" 네가 무슨 수로. " 

" 예..? "

" 네가 무슨 수로 교육 시킬 건데. 학회장 말도 무시하는 새끼를. "

" 그래도.. 제 후배니까... "



아, 네 후배? 학회장의 비꼼에도 은우는 눈을 질끈 감았다. 여기서 학회장의 앞을 막았다고 혼이 나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이었다. 은우의 말에, 학회장은 크게 웃었다. 



" 앞으로 이 새끼 잘못은 모두 윤은우가 책임지면 되겠네. 다들 그렇게 알고 해산. "

 


얼떨결에 마무리를 짓기는 했지만, 학회장 선배가 은우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작게 속삭인 말에 은우는 그 자리에 굳어버렸다. 은우 엉덩이 남아 나질 않겠네. 잘 해봐, 네가 덜 혼나려면 저 새끼 단도리 알아서 잘해라. 

선배들이 나가자, 선배가 된 아이들이 온갖 짜증을 내며 후배들에게 상황 파악 잘 하라는 경고를 했다. 은우가 자리에 굳어있는 것을 본 성재는 급하게 달려왔다. 



" 왜 그래, 괜찮냐? "

" 어... " 

" 야, 강도민. 너 이 새끼! 진짜 선배들 죽이려고 작정했냐! " 



은우의 옆에 아무렇지 않게 서 있는 도민의 뒤통수를 한 대 때리고 훈계를 하던 성재는 은우의 뒤로 숨었다. 뭐야, 왜 그.. 은우가 말을 다 잇지도 않았는데 성재가 왜 자신의 뒤에 숨었는지 알 것 같았다. 성재를 바라보는 도민의 눈이 형형했다. 그 눈빛에 익숙한 공포감을 느낀 은우도 침을 삼키며, 도민을 제대로 쳐다보지도 못했다. 



" 그, 그러니까. 네가 그렇게 노려보면 어, 어쩔 건데! " 

" 하.. "

" 흠. 은우야. 뒷 일은 부탁한다. 너네 해산 해. 우리도 가자! "



성재가 급하게 후배들을 해산시키고, 제 동기들을 데리고 나갔다. 도민은 이미 학과 내 유명 인물이었다. 무뚝뚝하다, 감정이 없다, 선배 알기를 개 같이 안다. 성재가 나가는 와중에도 은우의 귀에 속삭여주고 간 것들이었다. 하, 어떻게 하지. 내가 어쩌다 선생님의 선배가 되서는... 은우가 잔뜩 난감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도민을 슬쩍 바라보자. 언제부터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던 건지. 몸을 돌려서 바라보고 있는 모습에 당황한 은우가 뒤로 주춤했다. 



" 그.. 저기. " 

" 네. " 

" 아니. 그.. 너도 그만 가 봐. " 


은우의 부름에 처음으로 대답한 도민을 바라보던 은우는 말을 더듬었다. 지금의 은우는 도민에게 딱히 할 말이 없었다. 자신조차 이 상황을 파악하기도 어려운데, 무슨 조언을 하고, 훈계를 하겠는가. 무엇보다 강도민이다. 은우가 아는 강도민은 제가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은 죽어도 하지 않는 위인이었다. 학회장 선배의 경고가 있었지만, 오늘은 빨리 이 곳을 벗어나고 싶었다. 그냥 집에 가서 쉬고 싶다. 



" 야야, 윤은우! " 



어, 김성재. 엉덩이의 통증 때문에 제대로 걷지 못하는 은우의 곁으로 다가온 성재는 어떻게 되었냐고, 호들갑은 떨어댔다.



" 그냥 보냈어. " 

" 뭐? 아니 왜 그냥 보내? 너 그러다 맞아 죽어. " 

" 그럼 어떻게, 내가 개를.. 팰.. 수도 없고. " 

  


성재가 잔뜩 흥분해있자, 한숨을 쉰 은우는 정색을 하며 말을 이었다. 그럼 네가 혼내던가. 싫어! 네 후배인데 내가 왜 혼내. 성재도 도민을 혼내는 건 영 내키지 않았던 건지, 말을 돌린다. 



" 아니 애가 좀 무섭잖아. 옆에 다가가면, 죽일 것 같다고. 개 눈빛 봤어? 나 아까 저승길 갔다 온 줄 알았어. "



그건, 좀 그렇지. 하. 나도 모르겠다 이제. 그냥 선배들이 부르면, 맞는 수 밖에 없었다. 은우는 그렇게 생각하고는 성재에게 자신이 어디서 지내고 있는 지 물었다. 



" 뭘, 물어. 너 학교 기숙사에 살잖아. 아까 맞더니 뇌도 이상해졌어? "

" 아... 하나만 더. 몇 호? "

" 아, 이 미친 새끼! 405호! 새끼야! 정신 차려라! "



자신은 기숙사에서 살고 있었던 것 같다. 성재와 함께 기숙사로 이동해서, 헤어지고 나서는 자신의 방으로 들어갔다. 열쇠가 어디 있지. 다행히 열쇠는 제 주머니에 있었다. 하, 진짜 적응 안 돼. 문을 열고 들어온 기숙사는 깔끔했다. 침대가 2개인 걸 보니, 다른 이와 함께 사용하는 것 같은데. 제 룸메이트가 누구인지 모르니, 그냥 들어오길 기다리는 수 밖에. 은우가 피곤한 몸을 침대에 눕혔다. 자고 일어나면, 다시 원래의 세계로 돌아가면 좋겠다. 이건 악몽이야. 악몽. 


 으음, 잠이 들었나 보네. 갑자기 느껴지는 빛에 은우는 눈을 떴다. 잠들기 전 천장이 그대로 보이는 것이 아직, 그곳인가 보다. 제 룸메이트가 들어온 건가 싶어 몸을 일으켜 세우자, 뜻 밖에 인물이 눈앞에 서 있었다.


" 뭐야.. 너.. 왜 여기 있어? " 

" 제 방입니다만. "

" 아.. 내 룸메가.. 너였구나. "


은우는 당황했다. 도민이 왜 이런 기숙사에서 사는 거지. 여기서 도민은 부자가 아닌 건가? 그래, 그럴 수 있지. 질문하고, 답하고, 혼자서 상황 파악을 끝낸 은우가 어설프게 웃으며. 쉬라고 말하고 벽 쪽으로 몸을 돌려 누웠다. 그래, 이럴 땐 그냥 자고 보는 거야. 잠이나 자자. 






***    






은우의 수난은 다음날부터 이어졌다. 윤은우. 이리 와, 야, 강도민 선배 나와, 2학년 과대 어딨어! 학교를 돌아다닐 수가 없을 정도로 선배들은 은우를 호출해서 때렸다. 오늘 온종일 맞은 대수를 세라고 하면,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이 맞았다. 이제 더 이상 맞을 곳도 없는 것 같은데도. 선배들은 돌아가면서 때렸다. 후배 관리를 어떻게 하냐는 죄목으로, 도민을 패서라도 가르치라는 말에. 은우는 아무런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 도민은 저도 감당하기 어려운 후배인데. 그렇게 불만이면, 직접 혼내주시라고... 말하고 싶었다. 물론, 마음 여린 은우는 죄송하다는 말만 반복해서 했지만.



" 우리 은우, 고생하네. " 

" 아.. 안녕하십니까, 선배님.. " 



이번 주 내내 선배들에게 맞고, 엉덩이, 허벅지에서 느껴지는 통증에 제대로 앉지도 못했다. 설상가상 방에서도 제 몸을 이렇게 만든 장본인을 마주해야 해서 불편함이 이만저만 아니었다. 과방에 앉아 한숨을 잔뜩 쉬고 있던 은우에게 다가온 학회장이 눈으로 봐도 은우의 상태가 말이 아니라는 걸 파악하고는 인상을 찡그렸다. 



" 그러니까. 말 안 듣는 후배는 매로 다스려야지. "

" ...... " 

" 예쁜 은우 몸만 상하고, 이게 뭐냐. 속상하게. "

" 아... " 



이 명령을 내린 사람이 할 소리인가. 은우는 이 상황이 불편해서 괜찮다고 말하며 자리를 옮기려고 했다. 



" 내가 우리 은우 혼낼 기회 만들어줄게. 딱 기다리고 있어. " 

" 예... ? " 

" 너도, 맞은 만큼 복수는 해야지. 기다리고 있으면 이 선배가 딱 해결해줄게. " 

" 아... 네.. 안그러셔.. 알겠습니다. "



안 그래도 된다는 말을 하려고 하자, 돌연 눈빛이 변해서는 정색을 하는 모습에 은우는 울며 겨자 먹기로 알겠다고 말하고 인사를 하고 나왔다. 그래, 설마 별일이야 있겠어? 은우는 아무 일 없을 거라고 마음을 먹자고 자신을 안심 시키며 과 방을 나섰다. 은우는 얼마 지나지 않아 자신의 그 안일함을 탓했다. 학회장의 문자에 열심히 달려 간 그곳에서 도민과 각목을 마주하는 순간, 그때 그 상황이 스쳐 지나갔다. 복수는 해야지. 기다리고 있으면 이 선배가 딱 해결해줄게. 그냥 하는 소리인 줄 알았다. 자신은 도민을 혼낼 자격도 없으며, 혼내고 싶지도 않았다. 도민에게 맞으면 맞았지. 한 번도 때려본 적이 없는데. 이게 꿈이라면 빨리 깨주라고, 빌고 또 빌었다. 



" 넌 엎드리고, 우리 은우는 각목 들고. " 



의외로 도민은 반항하지 않고, 자리에 엎드렸다. 평소와 같은 무심한 얼굴을 하고. 지금 이 자리에서 안절부절못하는 건 은우 밖에 없었다. 아무리 도민이 후배라고 해도, 이게 꿈이라고 해도, 은우는 도민을 때릴 수가 없었다. 



" 빨리 와. 팔 떨어진다. " 

" 선배님... 저, 진짜.. 못하겠습니다. "

" 지금 못하면, 시간만 늘어 나는 거야. " 

" 선배님... " 


 

은우가 신발에 본드라도 붙인 듯 가까이 오지 못하자. 답답했던 건지 학회장이 힘으로 은우를 끌어 도민의 앞에 세우더니 각목까지 친절히 손에 쥐여주었다. 각목 떨어트리면, 오늘 여기서 아무도 못 나가. 잘 생각해, 윤은우.



" 차라리, 제가, 제가 맞을게요. " 

" 아니. "

" 선배님.. " 



은우가 울먹이며 손에 있는 각목을 차마 바닥에 내리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세게 잡고 있지도 못하며 학회장에게 애걸복걸하고 있을 때, 엎드려 있는 도민의 한숨이 소리가 정확히 은우의 귀에 들렸다. 은우가 제 소리를 들었다고 생각한 도민은 은우만 들릴 정도로 조용히 속삭였다. 그냥, 때리세요. 시간 끌어봤자. 똑같은데. 도민의 말에 은우는 잠시 당황했다. 그냥 때리라니, 맞는 걸 좋아하지 않았던 은우는 이해가 안 되는 말이었다. 맞는 걸 잘 참는 편인가.. 그래. 이건 꿈이니까.. 꿈이니까.. 



" 윤은우. 3초 준다. 하나, 둘. " 

" 할, 할게요.. "



결국 각목을 들어 도민의 엉덩이에 내리치면서도 은우는 눈을 질끈 감았다. 당연히 말 할 필요도 없이 약한 강도였고, 학회장은 비웃음을 흘렸다. 




" 은우야. 지금 나랑 장난 하냐? 정신 차려. "

" 죄송, 합니다. "  

" 그래, 잘 해라. 잘. "



학회장이 마지막 경고라며 협박 어린 말을 남기자, 은우는 한숨을 길게 쉬었다. 이젠 더 이상 피할 구멍도 없었다. 이렇게 된 이상, 빨리 끝내는 수 밖에. 은우가 떨리는 손으로 각목을 고쳐 잡았다. 각목을 높게 올렸다가 심호흡을 하고, 다시 팔을 올리고, 한숨을 쉬고. 반복하는 동안 도민은 미동도 없었다. 진짜 안 아픈 건가. 



" 네가 때리는 게 하나도 안 아픈가 보다. 저 새끼 표정 변화도 없고. "

" ..... "

" 조금 더 올려 봐. " 



은우는 이제 그만 하고 싶었다. 아니, 조금 더. 더 높게 들어. 다시 처음부터 갈까? 학회장이 소리를 버럭 지르는 탓에 결국 은우는 각목을 높게 들었다. 그리고, 흐트러짐 없는 도민의 엉덩이의 떨어졌고, 은우는 너무 놀라 각목을 바닥에 떨어트렸다.



" 아.. 아.. "

- 은, 우.. 윤...우 



이게 무슨 소리지. 각목을 떨어트리고, 초점 없이 도민의 등을 바라보던 중 익숙한 소리가 들려왔다. 아주, 작고, 희미한 소리. 그 소리의 근원지를 찾기 위해 은우는 고개를 돌렸다. 어디야, 누구야. 갑자기 공간이 바뀌기 시작하더니 눈앞이 어둠으로 변했다. 그리고 무언가 쳐다볼 수도 없이 밝게 빛나기 시작했고, 천천히, 아주 천천히 눈꺼풀을 들어 올렸다.



" 윤은우. 괜찮아? "

" 어! "



익숙한 천장, 침대. 무엇보다 제 앞에서 저를 바라보고 있는 사람은 다름 아닌 도민이었다. 이번에는 제가 알고 있는 강도민이 분명했다. 반가움에 은우가 눈시울을 적시자, 도민은 살짝 당황했다. 얘가, 시험 준비를 너무해서 기가 빨렸나. 이런 생각을 하며.


" 꿈을 꿨다고? "

" 네.. 꿈, 꿈에서 일주일 넘게 살았어요. "

" 개꿈이네. "


밥을 먹으면서 은우는 자신이 꿨던 꿈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너무 실감 났고, 도민이 후배로 나왔다며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 야, 그럴 때라도 때려봐야지. "

" 어떻게... 그래요. "



도민이 아무렇지 않게 말하자, 어떻게 그러냐며. 음식을 오물거리며 말하는 은우의 이마를 숟가락으로 한 대 때려준 도민은 밥 다 먹고 이야기 하라고 가볍게 경고를 남겼다. 표정을 구긴 은우가 밥에 집중하자, 도민은 은우의 꿈 내용을 되새겨 보았다. 재미있는 꿈이네. 은우라면 상상도 못 할 감상평이었다.









못 다한 이야기 : 동창회 




 " 그래서 어디서 모인다고? "

" 읍내에 새로 생긴 맥주집이요. 선생님 오실 거예요? "

" 내가 거길 왜 가. "



졸업하고 처음으로 하는 동창회, 주말에 동창회 참여한다며 내려온 은우가 도민에게 장소를 알려주자, 도민은 별 관심 없다는 듯 시큰둥한 모습이었다. 도민이 오면 좋아할 학생은 별로 없을 것 같긴 했지만. 은우는 도민이 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3년을 함께 한 담임이니 그만큼 의미도 있고. 



" 시간되면.. 선생님도 오세요. "

" 생각해볼게. 술이나 적당히 마셔라, 개처럼 퍼붓지 말고. "

" 제가 언제.. 개처럼 퍼부었다고... "

" 말해줘? "



다녀오겠습니다. 은우가 빠른 걸음으로 집을 나섰다. 대학교에 입학하고, 도민에게 술주정을 부린 게 한두 번이 아니었으니. 찔려서 급하게 나왔다. 개처럼 마시지는 않았다. 한 잔, 두 잔에 취해서 그런 거지..


오랜만에 친구들을 만날 생각에 은우는 평소보다 기분이 좋은 상태였다. 예전에 친구라고 하면 소스라치게 놀랐었는데, 친구라는 단어가 이렇게 좋은 말인지 깨닫게 돼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딸랑, 딸랑. 은우가 열심히 걸어서 도착한 가게 문을 열고 두리번거리자 종업원이 다가왔다. 일행이 있으신가요?



" 네..오늘 동창회. "

" 아, 이쪽으로 안내해드리겠습니다. "



종업원에 안내를 받아 들어간 룸에 이미 많이 와 있었는지, 은우를 보자마자 다들 격하게 반겼다. 여, 윤은우! 반장, 너무 오랜만 아니냐! 그들에겐 아직 은우는 반장이었다. 한 번 반장은 영원한 반장 그런 거라며 은우에게 말하던 이들도 있었다. 은우가 얼굴을 붉히며 인사하고 익숙한 성재에 옆자리에 앉았다. 



" 왜 이렇게 늦었어! "

" 걸어오느라.. "

" 이 형님이 목이 빠져라 기다리지 않았니. "

" .. 술이나 마셔. "



은우의 옆에 앉은 성재는 가끔 서울에서 만나기도 했다. 학교가 같지는 않지만, 성재도 나름. 서울에 있는 학교에 들어갔다. 


" 야, 근데 진짜 난 저 새끼 대학 간 게 제일 신기해. "

" 내 말이. "


성재에 말을 가만히 듣고 있던 아이들이 한 두마디씩 하자, 성재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왜, 왜 내가 어째서. 



" 솔직히 말은 바로 하자. 너 강도민 아니었으면 대학 못 갔지. "

" 맞아. 누가 공부 못하는 김성재를 PD 만드는 과에 보낼 줄 알았겠나. 그것도 공모전으로. "

" 야야, 그것도 내가 재능이 있어서 간 거지! "

" 그래. 어련하시겠어. "



성재에 말에 다들 웃음이 터졌고, 은우도 설핏 웃으며 그 말에 동조했다. 



" 내가 3년 동안 공부를 안 한 거지. 너네 대신 내 소중한 궁둥이를 희생한 거 아니겠냐! "



성재가 아예 자리에서 일어나 제 엉덩이를 손으로 때리자, 여기저기 미친놈이라며 크게 웃기 시작했다. 그렇게 분위기는 점점 더 무르익었다. 



" 솔직히. 윤은우는 위인 이지. "

" 맞아, 반장 너 아니었으면. 그 지옥 불에서 못 살아남았을 거야. "

" 이제 와서 말하는 거지만! 고마웠다 윤은우!! "



술이 들어가자 여기저기, 취한 아이들이 등장하더니 한바탕 은우를 찬양하기 시작했다. 강도민 밑에서 어떻게 버텼냐며. 은우는 부끄러워 괜히 앞에 있는 맥주를 벌컥, 벌컥 마셨다.



" 그나저나, 수찬이랑 정현이 소식 들었어? " 



오늘 동창회에 참여하지 않은 수찬이랑 정현이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자 은우는 컵을 기울이다 손을 멈췄다. 수찬이랑 정현이는 각자 회사 경영 수업을 하느라 바빴다. 대학에 들어와서 몇 번 만나기는 했는데, 만날 때마다 정장을 빼 입은 모습에 영 적응을 하지 못했다. 은우가 어색하게 웃으며 너네 달라 보인다고 말하자. 신경 쓰지 말라며 은우를 달래주었다. 너네 말고, 주위 사람들이 신경 쓰이는 거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차마 입을 열지 못했다. 



" 나 아라! 안다아구! 아라! 우리 수차니랴 저년이는 마리야! "

" 오, 김성재 너 뭐 아는 거 있어? "


 

술이 몇 차례 들어가서 혀가 꼬인 성재가 주정을 부리듯 수찬과 정현에 대해 이야기를 하자, 다른 아이들도 흥미 있게 듣고 있었다. 



" 역시, 귀티가 흐르더니. "

" 대박, 개네 부자였어? " 



성재가 떠드는 소리를 들으며 훌쩍훌쩍 맥주를 마시던 은우는 한숨을 쉬었다. 쫑알쫑알 말이 많다고 생각하며 오징어를 씹어 먹으며 술을 마시다보니 점점 정신이 몽롱해짐을 느낀다. 



" 김성재.. 시끄러워.  "



분위기가 후끈 달아올랐다. 이제 갓 스무살이 된 아이들이 주량이 강해봤자 얼마나 강하겠는가. 하나, 둘 술에 취해 널브러졌다. 은우도 앉아있긴 했지만, 온 몸에 힘이 들어가질 않았다. 아, 선생님이... 술 많이 먹으면 안 된다고 했는데. 술에 취한 상황에서도 도민의 당부는 기억이 났다. 



" 가관이네. 아주.  "



처음에는 은우가 도민의 생각을 해서 환상을 보는 건가 싶었다. 그런데 도민의 이목구비가 생각보다 눈에 잘 띄었다. 아, 진짜 선생님 인가. 은우가 도민을 보며 방긋 웃자, 도민은 한숨을 쉬었다. 그렇게 술을 많이 마시지 말라고 말했는데, 또 술에 취해서는. 도민이 성큼성큼 은우의 옆으로 다가갔다. 아직 술에 취하지 않은 아이들은 도민을 알아보고, 의자에서 일어나 각 잡고 인사했다. 아직 그들에게 도민은 무서운 선생님일 뿐이었다. 



" 얘, 언제부터 이랬어. " 

" 어.. 한 30분 된 것 같은데요. "

" 그, 선, 선생님. 오랜만에 뵙습니다. " 



도민의 등장으로 분위기가 한순간에 낮아졌다. 도민이 은우의 옆에서 뻗어있는 성재를 노려보다, 성재의 뒤통수를 한 대 때렸다. 뒤통수에서 느껴지는 강한 통증에 누가 내 머리 때렸냐며 소리를 지르며 일어난 성재가 제 눈앞에 있는 도민을 보고, 화들짝 놀랬다. 



" 아니.. 아뉘. 선생님이.. 어째서.. 여기에. " 



술에 취했어도 도민은 정확히 알아보는 것을 보니, 3년 동안 도민의 밑에서 구른 효과인 것 같기도 했다. 도민이 성재의 자리를 빼앗아 은우의 옆자리에 앉았다. 



" 살 만하네, 다들? "



도민의 말에 아이들은 숨 쉬는 법을 잃어버렸다. 마치, 고등학교 시절로 돌아간 기분이었다. 이제 와 졸업한 애새끼들에게 관여할 생각이 전혀 없었던 도민은 은우의 상태를 확인하고는 한숨을 길게 쉬었다. 



" 언제까지 여기 있으려고? " 

" 아. 이제.. 해산하려고 했습니다. " 

" 그렇지? 시간이 늦었네. 이제 가자. " 



도민의 말에 아이들이 빠르게 짐을 챙겼다. 인사불성이 된 아이들을 옆에서 부축하고, 도민에게 빠르게 인사를 하고 가게를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아이들이 도민의 옆에 있는 은우를 걱정하며 옆으로 다가오려고 했지만. 얘는 내가 알아서 한다며 그만 가보라는 도민의 말에 재킷을 챙겨 급하게 밖으로 나갔다. 그렇게 도민의 옆에 있던 은우와 아무도 챙기지 않은 성재만 가게에 남게 되었다. 



" 이 새끼는, 왜 아무도 안 챙겨갔어. " 



정신 못 차리는 성재를 버리고 가려다가 하는 수 없이 은우를 먼저 차에 태운 후 성재를 함께 차 뒤에 실었다. 어쩔 수 없지. 도민이 잔뜩 짜증이 난 상태로, 둘을 데리고 자신의 집으로 향했고. 은우는 그 와중에도 세상 모르게 곤히 자고 있었다. 은우를 안아 침대에 눕힌 도민은 아직 차에 남아있는 짐을 옮기기 위해 거칠게 문을 열고 나섰다. 저런 짐을 집에 들여놓아야 하다니. 도민이 성재를 들쳐메고 은우의 방바닥에 던져 놓았다. 귀찮은 새끼들.



" 하음.. 머리아파. 여기 어디지.. " 



잠에서 깬 성재가 허리가 쑤신 건지 허리를 두드리다가 깨질 것 같은 통증에 머리를 부여잡았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처음 보는 방에 의아함을 느낀 성재는 침대에서 곤히 자는 은우를 흔들어 깨웠다. 야, 은우야, 윤은우! 



" 어음...어.. 뭐야.. 김성재.. ? "

" 야야, 일어나봐. 여기 어디야? "

" 어..읏.. 여기 내 방인데.. "



그런데, 우리가 여기 어떻게 왔어? 아직 술이 덜 깬 은우에게 정신 차리라고 어깨를 잡고 흔들던 성재가 갑자기 벌컥 열리는 문에 그대로 굳어버렸다. 



" 헉.. 선생님. " 

" 아.... "



정신 차렸으면 그만 시끄럽게 하고 튀어나와. 도민이 은우와 성재를 노려보며 말하고는 방을 나섰다. 성재가 왜 강도민이 여기 있냐며, 은우에게 물었고. 은우는 난감하다는 표정을 짓더니 이내 한숨을 길게 쉬었다. 



" 여기 네 방이라며. 근데 왜, 왜, 왜 강도민이 여기 있어? " 

" 나.. 선생님이랑 같이 살아. " 



은우의 충격적인 발언에 성재는 망치로 머리를 한 대 맞은 느낌이었다. 하긴, 은우는 할머니가 돌아가셨었지. 근데 그 보호자가 도민이라니. 성재는 충격에 휩싸였다.  



" 윤은우.. 너 진짜.. 대단하다. " 

" 어떻게, 강도민이랑 같이 살 생각을 해? " 

" 아.. 선생님한테 도움 많이 받아서... " 

" 대박, 대박. 너 완전 강심장, 혹시 네 심장 강철? " 



성재가 잔뜩 흥분한 상태로 호들갑을 떨어 대는 모습에 머리를 긁적인 은우는 밖에서 빨리 안 나오고 뭐하냐는 도민의 호통에 급하게 침대에서 일어나 거실로 나갔다. 밖으로 나가자 음식 냄새가 가득했고, 식탁에 앉아 있는 도민의 곁으로 다가간 은우가 자연스럽게 의자에 앉았다. 은우의 뒤를 졸졸 따라다니던 성재도 조심스럽게 자리에 앉아 해장국을 먹었다.



" 그. 감사합니다. 선생님. " 

" 알았으면, 빨리 먹고 꺼져. "

" 예엡, 알겠습니다. "



성재의 감사 인사를 가볍게 넘긴 도민의 기분이 안 좋아 보였다. 성재는 도민의 눈치를 보며 밥을 거의 흡입하듯 먹었고, 먼저 가보겠다는 말을 하며 은우에게 나중에 전화하자는 표시를 남기고는 급하게 집을 나섰다. 성재가 가고 나자 집안은 다시 고요해졌고, 은우는 다시 자리에 앉아 해장국을 천천히 먹었다. 



" 선생님, 근데 어제. 동창회 오셨어요? "

" 응. 그래서 네가 지금 여기 있는 거 아니야. "




아. 그랬구나..  도민이 동창회에 직접 왔다는 말도 신기했고, 성재도 함께 데리고 올 줄을 정말 상상도 못했다. 은우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지 눈치 챈 도민은 그 새끼 버리고 올 수는 없었다며 짜증을 내긴 했지만. 도민의 반응에 작게 웃은 은우는 다시 숟가락을 들었다. 




" 윤은우. " 

" 네? " 

" 넌 앞으로 술 금지야. 가관도 그런 가관이 없어."

" 저, 그렇게 가관이었어요..? "

" 어. 그러니까 그냥 아예 입에 대지 마. " 

 


 도민의 말에 은우는 알겠다고 작게 대답하면서 안도했다. 사실, 혼이 날 줄 알았는데 경고로 끝이 나서 얼마나 다행인가. 제 술주정이 뭔지 모르겠지만. 도민이 가관이라고 했으니 당분간은 술을 마시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도민이 끓여준 해장국을 맛있게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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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0 기념 첫번째 글입니다. 

가볍게, 즐겁게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은우가 선배가 되면 어떨까. 했는데. 

우리 은우는.. 역시 저런 선배가 되지 않았을까요? ㅎㅎ 




소소하게, 취향 타는 글을 씁니다. 소설은 소설일 뿐 현실과는 완연히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소설 분위기를 현실로 끌어오지 말아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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