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사람들이 내 행동 하나하나에 주목하고 있었고 나는 내 앞에 있는 남성을 향해 울먹거리며 말했다.

 

  “아빠, 정말 갈 거야? 나도 엄마도 버리고 가는 거야?"

 

 아빠라고 부른 남성은 나와 눈높이를 맞춘 후 내 얼굴의 눈물을 닦아주며 내게 말했다.

 

  “아빠는 유나도 엄마도 버리고 가지 않아. 잠시만 헤어져 있는 거야. 그러니까 기다려야 해.”

 

 그 남성은 말이 끝난 후 뒤돌아서 갔고 감독님이 외쳤다.

 

  “OK.”

 

 감독님의 말을 듣고 나는 얼굴의 눈물을 닦은 후 나를 기다리고 있던 엄마에게로 달려갔다. 엄마는 달려오는 나에게 다가와 말했다.

 

  “선이 오늘 연기 잘했어. 많이 피곤하지?”

 

 엄마의 손을 잡고 엄마의 말에 대답했다.

 

“아니, 피곤하지 않아.”

 

 피곤하지 않다는 내 말에 엄마는 나를 안고 촬영장에 계신 스텝들에게 인사를 했다. 엄마의 품에 안겨있으니 눈이 감겨왔다. 자지 않으려고 했지만 눈꺼풀이 무거웠고 눈이 감겼다.

 

  “선아, 집에 도착했어. 차에서 내려야지.”

 

 집에 도착했다는 엄마의 말을 듣고 나는 잠이 덜 깬 상태로 엄마를 따라 집으로 들어갔다. 집에 들어가서 씻고 옷을 갈아입을 새도 없이 침대에 누워 잠이 들었다.

 


 ☆


 생애의 첫 기억은 카메라의 앞에서 연기를 하는 것이었다. 카메라 앞에서 연기를 하는 것 말고 다른 기억이 있다고 묻는다면 나는 없다고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연기하는 것이 싫다는 것이 아니었다. 대본의 대사를 외우는 것은 힘들었지만 연기하는 것이 즐거웠다. 가끔 거리에 나갔을 때 사람들이 나를 알아봐주는 것도 좋았다. 그래서 나는 촬영장과 집을 오가는 생활이 계속 될 줄 알았다.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드라마 촬영이나 영화 촬영 때문에 학교의 출석일수는 항상 아슬아슬하게 채웠다. 촬영이 없어서 학교에 갈 때면 나는 수업 진도를 따라잡지 못했다. 학교 선생님들은 내 사정을 이해해주시고 내가 진도를 따라잡을 수 있게 도와주었지만 선생님들의 그런 모습이 같은 또래에게는 차별로 느껴졌는지 같은 반 친구들은 나를 따돌렸다. 친구들의 따돌림에 익숙해질 무렵 내 몸에서는 2차 성징이 시작되었고 2차 성징이 시작되자 스케줄이 점점 줄어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학교를 마치고 집에 왔을 때 엄마가 내게 물어보셨다.

 

  “선아, 한동안 배우 활동 쉴 생각 없니?”

 

 배우 활동을 쉰다는 생각은 이때까지도 한 적이 없기 때문에 나는 엄마를 바라보고 물었다.

 

  “왜 갑자기 그런 말씀을 하세요? 요즘에는 예전만큼 일이 안 들어오지만 저는 배우 활동을 하는 게 즐거워요.”

 

 내 말을 듣고 엄마는 갑자기 나를 안으셨다. 나를 안은 다음 내게 말씀하셨다.

 

  “이때까지 촬영을 하느라 학교 진도도 제대로 따라잡지 못하는 것도 학교에서 네가 따돌림을 당하고 있다는 거 알고 있어. 엄마는 지금이 기회라고 생각해. 아역배우 유세미가 아니라 엄마의 딸인 김선으로 살아갈 생각은 없니?”

 

 학교에서 따돌림을 당하는 것만은 엄마가 알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학교에 갔다 온 날은 일부러 밝은 척을 했다. 학교에 갔다 오면 엄마는 묻지 않았지만 나는 학교에서는 실제로 있지도 않은 일들을 지어내서 이야기했다. 엄마의 말을 듣고 나는 안긴 채로 눈물을 흘렸다. 눈물을 흘리면서도 울지 않으려고 노력을 하며 말했다.

 

  “언제나 아역배우인 유세미면서 엄마의 딸인 김선이었어. 학교는 옮기면 돼. 학교 공부는 내가 노력할게.”

 

 엄마는 내 말이 끝나고 등을 토닥이면서 말했다.

 

  “아니야. 엄마가 잘못했어. 배우 일은 네가 원할 때 다시 시작할 수 있지만 이미 지나간 유치원, 초등학교 시절은 되돌아오지 않아. 그러니 대학교는 강요하지 않을게. 중고등학교 시절만이라도 엄마의 딸인 김선으로 살아줄 수 있겠니?”

 

 엄마의 말을 듣고 나서 나는 내 안의 어떠한 벽이 무너지는 것을 느꼈다. 그 벽이 무너지며 머릿속에는 이때까지 배우를 했던 때의 기억이 떠올랐다.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부터 들렀던 수많은 촬영장은 내 놀이터였지만 촬영장이 아닌 놀이터에서 제대로 놀아본 적이 없었다. 가족들끼리 한 번 제대로 여행을 간 기억도 없고 부모님의 손을 잡고 놀이공원에 가본 적도 없었다. 내가 우는 것이 멈췄을 때 엄마는 엉망이 된 내 얼굴을 닦아주었다.

 

**

 

 그 날 이후 촬영장을 가지 않고 학교를 마치면 학원으로 갔다. 처음에 학원을 다닐 때는 공부 진도를 따라잡기도 버거웠지만 진도를 따라잡기 위해서 노력했다. 그 노력이 성과를 보일 즈음 나는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에 입학했다. 중학교에 입학하고 나서 친구라고 부를 수 있는 존재들을 사귀었고 중학교를 다니는 동안 그 친구들과 수학여행도 다니고 놀러다녔다. 그러나 친구들과 놀러다닌다고 해서 학업을 놓지는 않았다. 중학교를 다니는 내 성적은 중상위권정도를 꾸준히 유지했다. 중학교 3학년이 되고 고등학교를 어디로 갈 것인지 고민하고 있었다. 고등학교 평준화 지역이라서 원하는 곳을 써도 결국은 운이었지만 조금이라도 좋은 학교를 가기 위해서 교실 내에서는 말없는 눈치싸움이 벌어지고 있었다. 운이라고는 하지만 내 마음 속에는 이미 결정한 학교가 있었다. 그 학교를 1지망으로 써놓은 다음 집에서 가까운 학교 순으로 써내려갔다. 고등학교가 발표되는 날, 내가 1지망으로 써 놓은 학교에 입학하게 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중학교를 다니는 동안 친했던 친구들 중 일부는 나와 같은 고등학교를 다니게 되었지만 일부는 다른 고등학교를 다니게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슬펐다. 다른 고등학교를 다니게 된 중학교 친구들과 학교에서 마지막으로 인사를 나눈 후 고등학교에 입학했다.

 

 

 2007년 3월 2일, 내가 고등학교에 입학하는 날이었다. 입학하는 고등학교는 집에서 걸어갈 거리가 아니었기 때문에 고등학교를 가기 위해서는 대중교통을 이용해야 했다. 처음에 내가 가려는 고등학교가 대중교통을 타고 가야한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부모님이 그곳에 입학하는 것을 반대하셨다. 지금은 활동하지 않아도 예전에 아역배우로 활동했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끈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부모님이 그 이야기를 꺼내셨을 때 대중교통을 이용한다고 해도 아역배우 시절과는 얼굴이 많이 달라져서 아무도 알아보지 않기에 괜찮다고 나는 부모님을 설득시켰다. 그러면서 친구들과 놀러다닐 때도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다는 것을 추가로 이야기 했다. 내 이야기를 듣고 부모님은 내가 원하는 고등학교에 들어가는 것을 허락하셨다. 아침에 일어나서 교복을 입고 학교로 가는 버스를 탔다. 버스를 타니 버스 안에는 수많은 교복을 입은 학생들로 가득 차있었다. 학교 앞 정거장을 지날 때면 같은 교복을 입을 학생들이 버스에서 내렸다. 그렇게 학생들이 내리기를 서너 번, 내가 다닐 고등학교 근처의 버스정류장에 도착하자 나와 똑같은 교복을 입은 학생들이 버스에서 내렸다. 버스에서 내린 후 가파른 오르막길을 올라가서야 학교 정문이 보였다. 학교 정문 위에는 학교 입학을 축하한다는 플랜카드가 걸려있었다. 그것을 보고 내가 정말 고등학교에 입학했음을 깨달았다.정문을 지나 두 번째 임시 소집일에 배정받은 교실로 들어왔다. 교실에 들어가니 익숙한 얼굴들이 몇 명 보였다. 같은 반이 된 사람들을 확인하고 있을 때 한 명이 내게 다가와 말을 걸었다.

 

  “좋은 아침이야.”

 

  목소리를 듣고 목소리가 들린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고개를 돌리니 그곳에는 중학교 때 나와 같이 다녔던 친구 중 한 명인 혜빈이가 서 있었다. 혜빈이임을 확인한 후 나도 혜빈이에게 인사했다.

 

    “좋은 아침이야. 네가 같은 학교인 줄은 알았지만 같은 반일 거라고는 상상 못했어.”

 

  혜빈이에게 인사하고 나서 나는 마음에 드는 자리에 앉았다. 혜빈이는 내 옆 자리가 비어있는 것을 확인하고 자신의 자리를 옮기며 대답했다.

 

  “나도 너랑 같은 반이 될 줄은 몰랐어. 같은 반이라서 기쁘다.”

 

  그 말이 끝난 후 나는 혜빈이와 계속 이야기를 나눴다. 이야기를 나누다가 정신을 차리고 보니 모두 자리에 앉아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1년 동안 같이 지낼 사람들의 얼굴을 쳐다보고 있을 때 학생들의 시선이 느껴졌다. 아역배우로 활동했을 무렵과 얼굴이 많이 달라졌어도 내가 아역배우인 유세미임을 알아보는 사람들이 나를 향해 쳐다보는 것이라고 짐작했다. 그들이 하는 이야기에 신경 쓰지 않으려고 앞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교실의 앞문이 열리고 담임선생님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담임선생님이 들어오자 교실 안이 조용해졌다. 담임선생님은 남성이었다. 30대 중반으로 보였는데 깐깐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선생님은 들어오고 나서 교실을 둘러본 후 아침 조회를 시작했다.

 

***

 

 고등학교에 입학한 지 한 달이 지났다. 이제는 아침 일찍 학교로 가는 것도 야자를 한 후 학원을 들렀다 집으로 돌아오는 것도 익숙해졌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당번이라서 평소보다 일찍 학교로 출발했다. 학교로 가는 버스에 탑승하자마자 빈자리가 있는지 버스 안을 둘러보았다. 눈에 띄는 빈자리에 앉았다. 눈에 띄는 빈자리를 앉아 옆을 보았다. 옆에도 빈자리인 줄 알았는데 남자가 앉아 있었다. 그는 나와 같은 학교 교복을 입고 있어서 명찰을 보았다. 이름이 적힌 명찰의 색깔은 흰색으로 검정색 글씨로 이혁이라고 적혀있었다. 명찰의 색깔을 보고 3학년 선배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단어장을 보고 있다가 내게 물었다.

 

   “그렇게 빤히 쳐다보면 공부하기 곤란한데 내 얼굴에 뭐가 묻었어?

 

  그는 교복에 붙어있는 내 명찰을 확인한 후 같은 고등학교 후배인 것을 알아 말을 놓은 거 같았다. 그의 말을 듣고 정신을 차리고 그의 말에 대답했다.

 

    “제가 너무 빤히 쳐다봤네요. 부담스러웠다면 죄송해요.”

 

  사과의 말을 듣고 그는 보고 있던 단어장을 다시 펼쳐들고 내 말에 대답했다.

 

    “부담스럽게 쳐다 본 것을 알면 됐어. 공부하는데 방해되니까 말 걸지 마.”

 

  그 말을 끝내고 그는 다시 보던 단어장에 집중했다. 더 이상 대화를 하려는 의지가 없어 보이는 그의 태도에 나는 조용히 창밖을 쳐다보았다. 그러나 그에게서 눈이 계속 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의 공부를 방해하고 싶지 않아 자리를 옮길까 고민하고 있을 때 내릴 정류장에 도착했다. 그 사람이 내린 후 같은 교복을 입은 학생들과 함께 버스에서 내렸다. 버스에서 내려 학교 정문으로 가는 동안 계속 그에게 눈길이 갔다. 정문을 지나 그는 3학년들이 사용하는 건물로 들어갔고 나는 1,2학년이 같이 쓰는 건물로 들어갔다. 건물로 들어가 교무실에 들러 교실 열쇠를 찾은 후 교실 문을 열었다. 교실 앞문을 열고 들어가서 내 자리에 가방을 놓았다. 가방을 놓은 다음 잠겨있는 뒷문도 열고 밤사이에 닫혀있던 창문을 연 후 당번 일을 시작했다.

 

 

 당번 일이 끝나고 자리에 앉자 아침에 보았던 이혁이라는 사람의 얼굴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선배였고 처음 보는 얼굴이었지만 얼굴에서는 빛이 나고 있었다. 그런 나를 향해 누군가가 나를 불렀다.

 

  “선, 김선!”

 

  내 이름을 듣고 깜짝 놀라 자리에 일어나서 앞을 바라보았다. 앞을 보니 국사 선생님이 교과서를 들고 나를 노려보고 계셨고 나는 재빨리 가방에서 국사 교과서를 꺼냈다. 빠르게 교과서를 꺼나는 나를 보고 교실에 있던 친구들이 모두 웃었다. 교과서를 꺼낸 나를 보고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공부 시작한 지 몇 분 되었다고 멍 때리고 있기에 불러보았다. 정신 차려.”

 

   선생님의 말을 듣고 나는 대답했다.

 

     “네, 죄송합니다.”

 

  내 말을 듣고 선생님은 나에게 앉으라고 말씀하셨고 나는 자리에 앉았다. 자리에 앉아 옆 사람의 교과서 페이지를 확인하고 교과서를 펼친 다음 수업을 들으며 열심히 필기를 했다. 열심히 필기를 하다가 수업이 끝났음을 알리는 종이 울렸다. 종이 울리자 선생님은 말씀하셨다.

 

 “더 수업하고 싶지만 진도를 더 나갔다가는 너희들이 쉴 시간이 부족할 테니 오늘은 여기까지 한다. 수업 끝.”

 

 선생님의 말이 끝나자 기다렸다는 것처럼 몇몇은 책상에 누웠고 나는 칠판을 지운 후 자리로 돌아왔다. 내가 자리로 돌아오자 수지가 걱정스럽게 나에게 다가와 물었다.

 

 “무슨 일 있어?”

 

 수지의 물음에 나는 말을 흐렸다.

 

 “무슨 일이 있다면 있는 걸까?”

 

 수지는 내 말을 듣고 나를 향해 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는 표정을 지었다. 그 때 수지가 학교 내에서 발이 넓다는 것을 기억해내고 수지에게 물었다.

 

 “혹시 이혁이라고 알아?”

 

 내 물음을 듣고 수지는 놀란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이혁이면 그 이혁?”

 

 수지의 물음을 듣고 나는 다시 되물었다.

 

“그 이혁이라니?”

 

 수지는 내 말을 듣고 나서 나의 표정을 살피며 말했다.

 

  “너는 이쪽에 관심이 없었지. 이혁이라고 교내에 유명한 선배야. 1학년 때 학교 부회장에 당선되어서 전설이 되었지. 공부도 잘하고 운동도 잘해서 여학생들한테 인기가 많은데 남학생들 사이에서도 인기가 높아. 보통 여학생들한테 인기가 높으면 남자들이 질투할 법도 한데 신기한 사람이지. 여학생들한테 인기가 높은데 여태까지 여자와 말을 나누는 것을 한 번도 본 사람이 없어서 혹시 여자에겐 관심이 없지 않나 그런 소문도 돌고 그래.”

 

 수지의 말을 듣고 나는 새삼 대단한 사람이구나라고 생각하며 내가 본 그의 모습을 떠올렸다. 수지의 이야기 속에서 그 선배는 주위에 사람들이 많아 즐거워야하는데 내가 본 그런 얼굴로는 보이지 않았다. 모두에게 진정한 자신을 숨기고 있는 것처럼 보였고 한편으로는 쓸쓸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러나 그 날 이후로 나는 한 번도 그 선배를 볼 수 없었다. 당번이 된 날에 버스를 타면서 그 선배가 있을지 기대를 했지만 그런 적은 한 번도 없었다.

 

**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교를 들어가는 대신에 극단에 들어갔다. 엄마는 극단에 들어가려는 나에게 예전 경력이 있으니 대형 소속사에 들어가서 활동하는 것이 더 낫지 않겠냐고 말씀하셨지만 나는 새로 시작하는 마음으로 처음부터 시작하고 싶다고 엄마를 설득했다. 엄마는 그런 내 말을 듣고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말씀하시고 그에 대해서 더 이상 이야기를 하지 않으셨다. 그 대신 내게 더 이상 지원은 하지 않겠다고 말씀하셨고 나도 대학교를 다니지 않으니 부모님의 손을 빌리고 싶지 않아 그에 동의했다. 내가 동의한 후 엄마는 방에 들어가셔서 아역배우 때 번 돈이 들어있는 통장을 주시며 이제는 돌려줄 때가 되었다고 말씀하셨다. 그 통장을 보고 내가 아역배우 때 활동한 돈은 이미 남아있지 않을 줄 알았기 때문에 기대하지 않은 선물을 받은 느낌이 들었다. 그 돈을 받은 후 나는 집에서 독립했다. 집에서 독립해 극단에서 제일 가까운 곳에 자취를 시작했다. 자취를 시작하고 처음 극단 사람들과 얼굴을 대면하던 날 나를 아니꼽게 보는 사람들이 많았다. 예전에 아역배우로 활동해서 경력도 있는 사람이 극단에 들어와서 처음부터 배우겠다고 하니 극단에서 활동하는 이름 없는 배우들 입장에서는 배부른 소리인 것도 당연했다. 그래서 나는 다른 사람보다 더더욱 열심히 노력했다. 하루, 이틀, 일 년, 이 년..... 세월이 흐르면서 극단 사람들도 나를 인정하기 시작했다. 처음에 나를 아니꼽게 봤던 사람들도 노력하는 내 모습을 보면서 나에게 조언도 해주는 입장이 되었다.

 

 

 극단에 들어온 지 5년이 되던 해에 독립영화에 캐스팅되었다. 독립 영화의 감독은 영화에 등장하는 대부분의 인물을 내가 속해 있던 극단에서 캐스팅했다. 캐스팅된 독립영화의 감독은 무명이었고 감독이 무명이었기 때문에 배급사도 작았다. 거기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영화가 개봉할 당시에는 여름방학이 시작될 시기라서 대형 배급사에서 유명한 감독과 유명 배우를 앞세워 수많은 영화가 개봉되었다. 하지만 그러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내가 출연한 독립영화는 흥행에 성공했고 배우 유세미로서 다시 대중들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독립영화가 흥행하고 난 뒤 나를 데리고 오려는 소속사 관계자들의 차량과 인터뷰를 하려고 모인 기자들이 때문에 극단은 연습을 제대로 할 수 없었다. 나에게 시선이 집중되는 것은 상관없었지만 극단 사람들에게 폐를 끼치기 싫어서 극단을 떠나 소속사로 들어갔다. 소속사로 들어간 뒤에는 어떤 일이라도 열심히 했다. 그렇게 5년을 그 일이 터지기 전까지 정신없이 살았다


***


 새벽까지 영화촬영을 한 뒤라서 잠에 취해 잠을 자고 있는데 휴대전화가 울렸다. 매니저로부터 오늘은 오후부터 촬영이 있다는 것을 들었기 때문에 전화를 받기 위해서 휴대전화를 들었지만 휴대전화는 울리지 않았다. 누구로부터 온 전화인지 확인하려고 휴대전화의 액정을 보니 고등학교 때 발이 넓기로 유명한 수지로부터 부재중전화가 몇 십 통이나 와있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수지로부터 전화가 몇 십 통이 와있는 것을 보고 잠이 깼다. 고등학교 때부터 발이 넓었던 수지는 그 정보력을 가지고 사회부 관련 기자로서 활동하고 있어서 나에게 직접 연락을 하는 경우는 드물었다. 연락을 할 때는 동창들끼리 모임을 연다거나 누군가가 결혼을 한다고 알려주는 것뿐이었다. 그나마도 간단하게 전체 문자로 보내는 경우였지 전화를 하진 않았다. 그런 수지가 전화를 몇 십 통을 했다는 것은 무슨 일이 생겼다는 것을 의미했다. 전화를 하려고 고민을 할 때 휴대전화가 울리면서 휴대전화 액정에 수지의 이름과 번호가 떴다. 끊기기 전에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잠에서는 깼다고는 하나 목이 풀리지 않아 잠에 취한 목소리가 나왔다. 내 목소리를 듣고 수지가 이야기했다.

 

   “목소리를 들으니 자고 있는데 내가 잠을 깨웠나봐. 일단 미안하다고 사과부터 해야겠네.”

 

  이른 시간은 아니었지만 내 잠을 깨운 것에 대해 미안함을 가지고 있다는 것에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오랜만에 전화를 하는 거라서 안부를 물을 만도 했지만 그렇게 하는 것은 서로에게 시간 낭비라고 여겨 안부를 묻지도 않고 바로 본론에 들어갔다.

 

  “미안하다고 알고 있다면 됐어. 네가 이렇게 전화를 몇 십 통 했다는 것은 무슨 일이 있다는 거겠지. 너도 바쁘니까 용건만 간단하게 말해줘.”

 

 내 말을 듣고 수지는 전화기 저편에서 들릴 만큼 한숨을 크게 쉰 후 내게 말했다.

 

  “이걸 알릴까 말까 고민해봤는데 이건 너에게 알리는 것이 옳다고 생각해서 알려주는 거야. 아직까지는 증권가 찌라시에 불과하지만 곧 크게 터질 거 같아.”

 

 본론을 말하지 않고 뜸을 들이는 것을 보고 답답해서 소리칠까 고민을 할 때 전화기 저편에서 수지가 말을 이어갔다.

 

 “너를 닮은 사람의 동영상들이 떠돌고 있어. 동영상들의 내용은 남자와 너를 닮은 사람이 성관계를 하는 거야. 그 영상들에 나오는 사람들의 얼굴은 보이지 않아. 그런데 그 영상에 나오는 남자들의 피부색이며 체형이 다 달라서 크게 터지면 네 이미지에도 손상이 갈 거 같아 미리 알려주는 거야.”

 

 전화기 저편에서 들려오는 말 한 마디 한 마디를 들으면서도 그 문장이 무엇을 의미하고 있는지 머리로 이해하려고 했다. 그러니까 수지의 말은 곧 나를 닮은 사람이 남자와 성관계를 하는 영상이 증권가 내에서 떠돈다는 건데 그 영상에 나오는 남자가 한두 명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머릿속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이해를 하고 나니 어떻게 말을 이어가야할지 말문이 막혔다. 아무 말도 하지 않는 나를 향해 수지는 전화를 끊지 않았고 천천히 물었다.

 

“혹시 그 영상이 어디에서 나온 것인지 알 수 있어? 출처를 모른다면 동영상이 몇 개 있는지 알려줘도 괜찮아.

 

 증권가의 찌라시가 어디서 나왔는지 출처를 알기란 쉽지 않다는 것을 알기에 동영상이 몇 개 있는지 알 고 싶어서 물었지만 수지도 그에 대해서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지 않은지 만족할만한 대답을 하지 못했다. 그 말이 끝나고 수지 쪽에서 전화를 끊었다. 전화가 끊긴 후 이에 대해 매니저나 소속사 사장님과 이야기를 하는 것이 맞는 것인지 고민하다 일단 나만 알고 있는 편이 나을 거 같았다. 지금 속해 있는 소속사에 들어와 5년 동안 휴식 시간도 없이 활동을 해왔다. 그러한 소속사가 나를 위해 어떻게 나올지 궁금하기도 했다. 만약 이런 일로 나를 버린다면 소속사에서 내 가치는 그만큼밖에 안 된다는 것을 의미하고 만약 소속사에서 이 일을 덮기 위해 최선을 다하면 나는 이 소속사에게 특별한 존재인 것을 의미했기 때문에 그에 대한 것은 모르는 것처럼 행동하기로 했다.

 

 

 수지에게 연락이 온 지 일주일이 지났을 무렵 수지가 이야기한 동영상과 관련된 기사가 연예 면에 하나 둘씩 올라오기 시작했다. 연예 면에 올라온 뉴스는 곧 포털 사이트의 인기 검색어를 나와 닮은 사람이 나오는 동영상과 관련된 키워드로 가득 덮는 결과를 만들었다. 인기 검색어에 동영상과 관련된 기사가 올라오자마자 CF 모델을 하고 있던 업체에서 상품에 대한 신뢰도가 떨어진다며 나를 더 이상 쓰지 않겠다고 연락이 왔다. 그리고 내게 출연을 하지 않겠냐고 제의를 해오던 많은 드라마와 영화 대본들이 끊겼다. 소속사와 내가 사는 집 앞에는 그 영상과 관련된 기사를 쓰기 위해 많은 기자들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상황을 지켜보고 계시던 그것을 본 소속사의 사장님은 나를 부르셨다. 사장님이 부르신 것을 알고 긴장하며 사장실로 들어갔다. 사장실로 들어가 사장님께 인사를 하니 사장님께서 내게 말씀하셨다.

 

  “세미야, 네 일에 대한 것은 소속사 입장에서 최대한 할 수 있는 데까지 할 테니 그에 대해서 기자들이 묻거든 대답하지 말아야 한다.”

 

 사장님의 말을 들으며 내가 잘못한 것이 아닌데 굳이 그것에 대해 숨기거나 언급을 하지 않을 이유가 있을지 의문이 들었다. 연예 기자들이 하지도 않은 말을 꾸며서 하거나 있었던 일을 과장한다는 것은 몇 년 동안의 연예계 생활로 알고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렇게 내가 입을 닫아버리면 그것이 더욱 더 기자들과 대중에게 의심을 사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어 내 의견을 전달하기 위해 입을 열었다.

 

  “소속사에서 할 수 있는 만큼 하는 것은 좋지만 이 사건에 대해서 제가 입을 닫고 있다면 오히려 대중들과 기자들이 이 상황에 대해서 추측을 하도록 유도를 한다고 생각해요. 그러니 차라리 소속사가 아닌 제 입장을 명확히 밝히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요?”

 

 내 말을 듣고 소속사 사장님은 나에게 물었다.

 

  “지금 네가 무슨 이야기를 하는 건지 알고는 있는 거겠지? 오히려 그 말 한마디가 상황을 더 악화시킬 수 있어. 그래도 네 입장을 밝히겠다면 난 말리지 않아. 하지만 네 입장을 밝히는 순간 회사의 법무팀은 움직이지 않을 거니 잘 명심하고 결정을 했으면 좋겠군.”

 

 사장님의 말에는 내가 내 입장을 내놓는 순간 소속사에서 나갈 준비를 하라는 암묵적인 의미를 담고 있었다. 그러면서 소속사에 속한 법무팀이 처리하는 대로 조용히 있을지 또는 내 입장을 밝히고 소속사를 나가서 그 일을 내 스스로 처리할 지 선택하라고 압박을 하고 있는 것과 같았다. 그러나 소속사의 사장이 나를 불렀을 때 이런 제안을 해올 것이라는 것 정도는 예상하고 있었기 때문에 나는 내 입장을 명확히 밝혔다.

 

  “알겠습니다. 그럼 저는 오늘 이후로 여기를 나가고 제 입장을 밝히겠습니다. 곧 재계약을 할 시기니 위약금이 있다면 제가 물겠습니다. 그럼 이때까지 저를 돌봐주셔서 감사했습니다.”

 

 그 말을 한 후에 소속사 사장에게 인사를 하고 사장실을 나왔다. 사장실을 나오니 매니저가 사장실에서 나오는 나를 향해 말을 걸었다.

 

  “사장님이 뭐라고 하셨어요?”

 

 매니저의 말을 듣고 나는 매니저를 안아주며 말했다.

 

  “내 입장 밝히고 오늘부로 소속사를 나오기로 했어. 소속사에 들어와서 처음 맡은 사람이 나였는데 고생 많았어. 그럼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또 보자.”

 

 매니저는 내 말을 듣고 몸을 들썩거렸고 매니저의 눈물이 내 옷에 떨어졌다. 울고 있는 매니저의 등을 토닥인 후 나는 소속사 건물을 나왔다. 소속사 건물을 나오자 소속사 건물 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기자들이 나를 향해 몰려들었고 그 기자들을 향해 말했다.

 

 “현재 돌고 있는 동영상에 대한 제 입장은 곧 발표할 예정입니다. 그러니 더 이상 소속사 앞에 있지 말아주세요.”

 

 내 말이 끝나고 기자들은 나를 향해서 질문을 했지만 나는 그 질문들을 무시하고 집으로 가기 위해 주차장으로 내려갔다. 주차장으로 내려가서 기자들이 오기 전에 내 차를 찾아서 차를 몰고 집으로 향했다. 집에 도착하니 기자들 사이에서 내가 입장을 발표한다는 소식이 돌았는지 집 앞에는 기자들이 한 명도 없었다. 집 안에 들어가니 집 안이 깜깜했다. 창문 밖은 어느 사이에 해가 져서 어두워져 있어 집 안의 불을 켰다. 집 안의 불을 켜고 나니 다리에 힘이 풀려서 거실에 주저앉았다. 거실에 얼마동안 앉아 있다가 정신을 차리고 방으로 들어가서 컴퓨터를 켰다. 컴퓨터를 켜서 공식 팬카페로 들어가 내 입장에 대한 글을 천천히 쓰기 시작했다. 한 글자 한 글자, 한 단어 한 단어를 그 어느 때보다도 신중하게 글을 쓰다 지우기를 반복하다 컴퓨터에 앉은 지 5시간 만에 글을 완성하고 올렸다. 그 후 컴퓨터를 끄고 시간을 보니 시계는 오후 11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다른 날보다 더욱 힘들었던 탓일까, 중학교 때 이후로 연락이 끊긴 적이 없는 혜빈이의 얼굴이 떠올랐다. 오후 11시면 혜빈이가 아기를 재우고 잘 시간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답장을 받을 것이라고는 기대하지 않고 혜빈이에게 카톡을 보냈다. 내가 카톡을 보내고 얼마 지나지 않아 혜빈이에게서 전화가 왔다. 혜빈이의 목소리를 듣자 눈물이 나왔고 한참동안 울었다.

 

***

 

 내가 팬카페에 나의 입장을 밝힌 글을 올린 지 2주가 지났을 때 해당 경찰서에서 그 동영상들을 처음 유포한 사람을 찾았다고 연락이 왔다. 연락을 받고 경찰서로 가니 언제 알았는지 기자들이 경찰서 앞에 있었다. 기자들은 나를 보고 몰려올 때 어떤 사람이 그런 기자로부터 나를 보호해주었다. 경찰서 안으로 들어가서 그 사람이 내 사건을 담당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았고 그 사람은 나를 만나자마자 자신을 소개했다.

 

 “이번 사건을 맡게 된 사이버 범죄수사팀의 이혁이라고 합니다.”

 

 이혁이라고 자신을 소개하는 사람은 그렇게 말한 후 자리에 앉았다. 그는 자리에 앉은 후 내게 자리에 앉아라고 말했다. 자리를 앉은 후에서야 그의 얼굴을 제대로 보았다. 제대로 보니 그 사람의 얼굴에 계속 눈이 갔고 그는 설명하다가 내 시선을 느꼈는지 내게 물었다.

 

  “왜 그렇게 빤히 쳐다보십니까? 혹시 제 얼굴에 뭐 묻었습니까?”

 

 그의 물음을 듣고 나는 그를 쳐다보지 않으려고 노력하며 그의 말에 대답했다.

 

  “얼굴에 뭐 묻지 않았어요. 근데 계속 눈이 가게 되네요. 신경 쓰이게 했다면 죄송합니다.”

 

 내 말을 듣고 나서 그는 다시 사건에 대해서 설명을 이어갔다. 설명이 끝난 후 나는 그와 함께 경찰서 밖으로 나왔다. 경찰서 밖으로 나오자 내가 들어갈 때만 해도 경찰서 앞에 있었던 기자들은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경찰서 밖으로 나오면서 기자들에게 질문을 받을 생각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긴장을 하고 있었는데 그 긴장이 풀렸다. 긴장이 풀리고 집으로 가려는 내게 그가 말했다.

 

  “이제는 10년 전의 이야기가 되겠군요. 고등학교 때 버스를 타고 등교를 하는데 유세미씨처럼 저를 빤히 쳐다보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같은 학교 교복을 입은 여학생이었는데 명찰을 보니 1학년 후배더군요.”

 

 그 말을 듣고 나는 고등학교 시절에 단 한 번 만났던 이혁이라는 이름을 가진 3학년 선배의 모습을 떠올렸다. 이름을 처음 들었을 때 특이해서 동명이인이라고 여겨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굳어있는데 그가 말을 이어갔다.

 

  “김선, 그게 그 여학생의 이름이었습니다. 그리고.....”

 

 과거를 말하는 그의 어투는 무뚝뚝하게 말하던 경찰서와는 다르게 부드럽게 변해 있었다. 말을 이으려는 그의 말을 막았다. 그가 하려던 말이 무엇이든 그 말이 지금의 나에게는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의 말을 막고 내가 말했다.

 

  “그 때도 오늘도 계속 쳐다봐서 미안했어요. 더 알려주실 내용이 있다면 연락처로 알려주세요. 저는 바빠서 이만 가보겠습니다.”

 

 그 말을 끝낸 후 나는 뒤돌아서 집으로 향했다. 집으로 가는데 내 입꼬리가 내려오지 않았다. 고등학교 때 만나려고 애썼던 선배를 이런 방식으로라도 만나서 좋았다. 고등학교 때 그 사람을 본 이후로 10년 동안 그 사람의 얼굴은 머릿속에서 인화된 사진처럼 잊혀 지지 않았다. 그래서 고등학교의 이야기를 꺼냈을 때 내 심장은 격한 운동을 하는 사람처럼 빠르게 뛰었다. 집에 도착해서 다른 것에 집중하기 위해 한동안 하지 않았던 운동을 다시 시작했다.

 

 

 동영상을 유포한 사람을 찾았다고 이야기를 들은 이후 나는 기소를 하려고 마음을 먹었다. 그래서 그것과 관련해서 알아본 후 내 사건과 관련된 일은 변호사에게 모두 맡겼다. 진실은 어떻든 간에 남성과 성관계를 하는 동영상이 있다는 것 자체가 여배우로서는 큰 단점이었는지 그 어떤 소속사에서도 들어오라고 손을 내밀지 않았다. 또한 그전까지는 많았던 CF제의도 드라마 출연도 영화 출연도 하나도 없었다. 나와 관련된 뉴스도 더 이상 연예 면에 오르내리지 않았고 포털사이트의 인기 검색어에서도 그와 관련된 것은 찾아볼 수 없었다. 그러나 내 이름을 검색하면 관련 검색어로 그 영상과 관련된 검색어가 떴다. 다시 소극장에서 활동을 해볼까라는 생각도 해봤지만 이미 제 2의 전성기를 누리고 있는 입장에서 소극장에서 연기하는 것 자체가 많은 무명 배우의 일을 뺏는다고 여겨져 포기했다. 그래서 이 일이 해결되기 전까지 나는 5년 동안 못했던 휴식을 즐기기로 마음먹었다. 재판을 한다고 해서 그 결과가 빠르게 나오는 것도 아니니 여유를 가지고 5년 동안 쉬지 못한 만큼 푹 쉬었다. 중고등학교 시절에는 공부하느라고 극단에 들어가서는 연기를 하느라고 못 간 해외여행을 다니고 국내의 여행지를 돌아다녔다.

 

**

 

 6개월이 지나고 1심의 결과가 나오던 날이었다. 판사는 인터넷에 유포되었던 동영상의 여성은 피부색깔, 몸의 점 등 여러 가지를 고려해서 내가 아니라고 판단했고 최초 유포자는 징역 3년을 살게 되었다. 최초 유포자는 징역 선고를 받고 난 후에 동영상의 영상에 나온 여성이 누구인지 밝혔다. 최초 유포자의 말에 따르면 동영상의 여성은 나와 비슷한 몸매를 가진 포르노 전문배우라고 했다. 동영상에 나온 여성이 누구인지 밝혀지고 1심의 결과가 나온 날, 기자들은 취재를 위해 몰려들었다. 그 때 사건을 담당했던 그가 몰려든 기자들 사이로 내가 갈 길을 만들어줬다. 저번에 처음 경찰서를 방문했을 때도 느꼈지만 이렇게 나를 에스코트해주는 그가 좋았다. 그러나 겉으로는 표시하지 않았다. 그의 인도를 받아 주차장에 도착했다. 주차장에 도착하자 그가 내게 말했다.

 

 “그 동안 많이 힘드셨죠? 수고하셨습니다.”

 

 나는 그 말을 듣고 그에게 고마움을 담아서 말했다.

 

 “아닙니다. 저는 그동안 쉬고 좋았는걸요.”

 

 내 말이 끝나고 나서 그는 내게 말했다.

 

 “갑작스럽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TV에서 아역배우로 활동하는 당신을 처음 봤을 때 얼굴을 보고 눈을 뗄 수가 없었습니다. 고등학교 등교 때 버스에서 내 옆에 앉아서 저를 쳐다보고 있을 때 기뻤습니다. 그러나 그때는 보는 눈이 있어서 무뚝뚝하게 대할 수밖에 없었어요. 당신의 모든 것이 좋습니다. 저랑 사귀시겠어요?”

 

 갑작스러운 그의 고백에 나는 어떻게 반응해야 할 지 몰랐다. 거절을 하려고 해도 내 마음은 그를 처음 볼 때부터 기울어져있었다. 이미 기울여진 마음을 다시 똑바로 두기 힘들다는 것을 알기에 나는 대답대신 그에게 입술을 맞췄다. 내가 입술을 맞추자 그는 내 입맞춤에 대답하듯 나를 껴안고 입술을 댔다. 한참 서로의 입술을 탐한 후 하늘을 보니 우리 두 사람을 축복하는 것처럼 2017년의 첫 눈이 내렸다.


 

빙글빙글 돌아가는 연성라이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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