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하필 그 타이밍에. 하필 그 순간에. 하필 그 때에. 모든 것은 하필 그 하필에 일어난다. 분명 사람이 더 적어 섰던 줄에서는 하필 무슨 일이 벌어지고, 내내 잘 가지고 다니던 우산을 괜한 변덕에 가방정리를 해서 놓고 나온 날 예고에 없던 소나기가 쏟아졌다. 그 하필의 법칙은 일상이라는 가장 평범한 순간을 관통하고 있어 별 수 없이 그 순간이 찾아오면 나약한 인간이 할 수 있는 것은 뒤늦은 후회와 미련을 곱씹는 일 뿐이었다. 그때 그러지 않았다면, 그때 그것만 아니었어도. 불필요한 가정을 손가락 하나하나에 눅진하게 묻혀 놓은 채 아쉬운 듯 한참을 만지작거리다보면 그 하필의 순간이 바꿔놓은 평범한 일상이 눈앞에 있었다.


“아니, 거기서 하필 어? 그 타이밍에 어?”


어차피 발등에 불이 떨어지기 전까진 제대로 써질리 없는 글은 애초에 네모난 상자 속에 묻어 두고 내내 침대에 몸을 칭칭 감고 있던 동호는 곧 해가 뉘엿뉘엿 넘어갈 때 즈음 벌어진 소란에 원치 않는 걸음을 옮겨야만 했다. 부러 동호를 쫓아내면서까지 손을 보려했던 보일러는 하필 당장 필요한 부품이 없었고, 하필 그때가 주말이라 결국 어디 한 군데 즈음은 고장이 난 채로 다시 봉인될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어쨌든 당장은 돌아가긴 하니, 부품이 들어오면 그때 손을 보자고 추후로 미룬 날이 오늘이었는지 전혀 조심할 생각 없이 계단을 올라 방문을 벌컥 열어젖히는 손길에 동호는 그저 입만 비죽거렸다.


“...둘 중 하나만 하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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