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3부(3)





*




10월 12일

 

 

지금이 몇 시인지도 모르겠다. 미시(오전 2시)는 지난 듯하다. 

오늘 낮에 관아를 다녀왔다.


“아이 한 명의 시신을 찾았다고?”


“네. 호신리 마을 북쪽 뒷산 아래에서 발견되었다 합니다. 영춘 댁의 아이이고, 오늘 아침 일찍 관리 몇 명이 그쪽으로 일손을 도울 일이 있어 찾아갔다가, 그 왜, 호신리 마을에 하나 있는 오래된 신당을 모시는 나이든 여인 한 명 있지 않습니까. 그 사람이 자꾸 산으로 가라, 가라 떠밀어 관리들이 왜 그러냐 물으니 거기 아이가 있다고. 이제는 나이도 먹어 오락가락하는 정신이라 무시하려 했더니 그 몸으로 힘이 어디서 솟았는지 싸리 빗자루까지 들고 엄포를 놓기에 어쩔 수 없이 가 보니,”


“그곳에 아이의 시신이 있었단 말이로군.”


그렇지요- 라며 수령은 대답했다. 나이든 여인이라. 호신리의 신당이라면 알고는 있었다. 너무 낡고 이제는 신당의 의미조차 없어졌지만 그래도 부수기는 꺼림칙해 그냥 놔두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것 같다. 아마도 이방이 해준 이야기였던 듯싶다.


“그런데 아직도 그 신당을 모시고 있는 게요? 5년이 넘었지만 처음 듣는군.”


“옛날에는 용한 무당이었다 합니다. 지금은 제정신이 아니지만, 이번에도 날씨 탓에 일손을 도와주러 가는 게 아니었다면 그저 죽었는지 살았는지 몰랐을 겁니다. 이방의 말로는 오늘 내일 한다고.”


“그런 노인이 어찌 아이의 시신이 있다고 알려 준 게요?"


"그런, 확실하진 않습니다. 예전 용한 기운이 잠시 돌아온 건지. 시신을 찾고 다시 가니 문을 꼭 닫고 나오질 않아 그냥 돌아왔다고 합니다"


세상에는 별별 일들이 다 있다지만 정말 의뭉스럽지 않은가. 그토록 찾았건만 정작 정신없는 무당의 한 마디로 시신을 발견하고.


"아이의 시신을 내가 좀 볼 수 있겠소?"


나는 이 상황에서도 궁금증이 일었다. 젊고 성성할 때도 성규는 이런 날 보며 형조에나 들어가지 무슨 장군을 하냐며 빈정거리곤 했었다.


수령은 다른 관리들을 물리고 조심스레 홀로 나를 이끌고 시신이 안치된 지하로 내려갔다. 지하라곤 해도 그리 깊지 않았다. 얕은 땅굴 수준이었으나 서늘한 기운이 살갗을 비비며 스며들었다.


"일단 조사도 좀 더 해야하고 영춘 댁도 지금 정신이 없어서. 일단 이곳에 안치해 두었습니다."


"어미 마음을 어찌 우리가 알 수 있겠소. 안타깝구만."


수령과 나는 절로 나오는 한숨에 작은 몸을 슬피 내려다보았다. 나는 침잠하게 가라앉으려는 속을 다스리며 시신을 덮은 천을 살짝 들춰 보았다.


"대감?"


수령의 목소리가 들렸으나 나는 천을 들춘 모습 그대로 멈춰설 수밖에 없었다. 이 냄새-. 그리고 아주 찰나 속에 보았던 아이의 목에 있던 자국.


"방금 혹시 보았소?"


"예? 무엇을 말입니까?"


"아이의-. 목에 말입니다, 하얀-."


그리고 다시 본 아이의 목은 깨끗했다. 하얀 피부보다 더 새하얗고 가느다란 실 모양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없었다. 미약했지만 분명 냄새도 났다. 하지만 수령의 반응을 보니 전혀 아무것도 느끼고 보지 못하는 듯했다.

냄새와 하얀 자국. 이미 수십 년이 흘러 흙이 되어 사라진 내 아이에게서 보고 맡았던 바로 그 ’기억‘이었다.

 

 

 

*

 

 

"나릿님들, 계십니까?"


부르는 소리에 나가보니 이방이 서 있었다. 하얀 입김 속에 그의 얼굴이 뿌옇게 흩어졌다 선명해졌다.


"대감의 장례 준비가 거의 다 된 듯한데, 어찌하시겠습니까?"


"벌써 준비가 끝났습니까?"


도영이 나오며 물었다.


"예. 곡비도 있사온데 혹 필요하신지요?"


도영은 잠시 생각을 한 뒤 이방에게 대답했다.


"아닙니다. 필요 없을 듯합니다. 아마 조용히 지내시길 바랄 것입니다. 그저 간단히 준비해 주십시오. 눈이 녹으면 한양으로 다시 옮겨 제를 올릴 테니까요."


도영은 일이 얼추 마무리되면 도성에서 대감께 다시 예를 올리고 그분의 가족들 곁에 안장할 생각이었다. 이방은 알겠다며 대답한 후 몇 사람들을 불러 장례를 시작했다. 조촐히 차려진 자리에는 특별할 게 없었다. 간결한 제사상과 흰 삼베가 대문과 처마에 매달렸다. 도영과 도윤도 상복으로 갈아입고 제를 올렸다. 호신리 마을 사람들이 찾아와 어렵게 마련한 음식과 술로 사람들을 대접했다. 대접이라 해 봤자 정말 쓸 게 별로 없었으나 그들은 군말 없이 조용히 죽은 자의 넋을 위로했다.


"대감께서 오셨을까요? 제 눈에는 아직 보이지 않습니다만."


대문간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누님에게 도윤의 착잡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도영은 품에 넣은 일기장을 만지작거렸다.


"오시지 않을 것이다. 아니, 못 오시는 거겠지."


의아한 눈으로 도영을 쳐다봤지만 더이상 대답은 이어지지 않았다.


"수령나리께서 일이 생겨 해시쯤(21시~23시) 도착하신다 합니다."


관리 중 한 명이 일러주며 꾸벅 인사하고 돌아갔다. 그 너머로 사람들을 상대하고 있는 이방 박철한이 보였다. 대부분 같은 마을 사람들이라 이방과 매우 친근하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특히 마을 이장이라는 사람과는 더 친분이 두터워 보였는데, 짐짓 심각한 이야기를 나누는 듯 서로의 미간이 좁혀졌다 눈가가 일그러졌다 했다.

그 모습을 유심히 바라보던 도영과 이방이 얼핏 눈이 마주치자 그가 진중한 표정으로 인사하며 자리를 무른다.


"호신리 사람들이 모이니 냄새가 짙어지는구나."


“저는 맡지 못하지만 도대체 그게 무슨 냄새입니까?”


“돌다리까지는 미약했지만, 대감의 집으로 들어오니 조금 짙어졌는데, 사람들이 모이니 꽉 차는 거 같다. 냄새를 설명하자면 뭐랄까, 썩은 이끼?”


“썩은 이끼요? 눅눅하고 축축한?”


“뭐, 그런 거와 느낌이 비슷하달까. 예전에 내가 맡아봤던 냄새와 비슷하기도 하고.”


“예전이라면?”


“그때. 그 궁에서 말이다.”


도영이 얘기하는 ‘그 궁’이라는 단어에 도윤이 살짝 침음했다. 본인은 8살 때고 그 당시 너무 무서워 제대로 기억나는 건 없었다. 단지 그날 이후, 저의 누님과 같은 신기를 발현한 사실만 또렷했다.


“허나, 아직은 정확하지 않구나. 백구야, 너는 어떠하냐?”


도영의 왼쪽 손목에 매어진 하얀 실이 살짝 움직였다.


[냄새는 납니다만, 근원은 찾지 못하겠습니다. 게다가 본디 저들은 범인이온데 냄새가 체취처럼 흘러나오는 걸 보면 꽤 오랜 세월 방치된 것으로 보입니다, 주인.]


“그래, 그게 이상하단 말이지. 일단 수령이 올 때까지 기다려 보자.”


작은 사랑채로 다시 걸음을 옮긴 두 사람은 간단한 요깃거리가 채워진 상을 받고 대감의 일기장을 다시 펼쳤다.

 

 

 

*

 

 

10월 20일


 

영춘댁 아이의 시신이 발견된 이후, 또 한 번의 실종을 찾아냈다. 이 역시 부모의 신고가 아닌 나흘 전에 실종된 아이를 찾던 중 발견된 것이었다. 발견은 제일 늦었지만, 시간상으로는 두 번째에 해당하는 아이는 여섯 살 난 남자아이로 농사꾼 박귀네 아이였고 역시 호신리 출신이었다.


그 이후로는 이상하리만치 조용히 흘러갔다. 더는 사라진 아이들에 대한 소식도 어떤 신고도 없었다. 이 상태라면 흐지부지 사건도 마무리될 것이다. 내가 몇 번 더 서찰을 포함 한 장계를 보냈지만, 그사이 쏟아진 폭설과 한파로 소식은 더뎌졌고, 혼란한 시국에 아이가 사라진 정도의 사건에 신경 쓸 여력이 없을 것이다. 게다가 부호는 이제 즉위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고, 거의 갑작스럽게 왕위를 이어받은 상황이라 정신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본 것들은 절대 헛것이 아니었다. 그 냄새와 하얀 흔적을 어떻게 잊겠는가.

내 아무리 범인에 가깝고 신수를 부릴 줄은 모르나 살아온 세월과 경험으로 느낄 수 있었다. 그건 결코 착각이 아니었다. 답답한 마음에 호신리 마을을 한 번 둘러보기로 했다. 수령 역시 이 사건에 관심이 멀어지고 있는 상태였다.


“어디 나가십니까요?”


마당의 눈을 쓸던 행랑아범이 퀭한 눈으로 물어본다.

저 사람 몰골이 언제 저렇게 된 거지. 무슨 일이라도 있는 건가.


“잠깐 속이 답답하여 마을이나 한 바퀴 돌다 오겠네. 그런데,”


힘없이 빗자루질을 하는 그의 안색이 좋지 못하다. 마치 며칠 새에 죽을병에 걸린 사람 같지 않은가.


“자네, 무슨 일이라도 있는가? 안색이 말이 아니구먼.”


그는 손아귀에 쥔 빗자루만 만지작거릴 뿐 선뜻 입을 열지 못했다. 그러다 간신히 대답한다.


“아닙니다. 요새 날씨 탓에 고뿔이 온 건지 싶습니다.”


여상히 대답하는 그를 찬찬히 보았지만, 더 입을 열 것 같지 않아, 묘한 아쉬움을 뒤로하고 대문을 나섰다.

나는 신당을 모시고 있다는 노파를 찾아갈 생각이었다. 수령의 말로는 횡설수설하여 더는 얻을 정보가 없다고 하였지만 알 수 없는 찜찜함에 그냥 내버려 둘 수 없었다. 이장댁에 가서 먼저 물어볼까 했으나 관두었다. 쇠뿔도 단김에 빼랬다고 직접 가는 게 천 마디 말보다 빠르지 않겠는가.

아, 그러고 보니 신당이 어디에 있는지 모르는데. 요즘엔 더 부쩍 이렇게 멍해졌다. 나도 이제 오락가락하나 보다. 나는 마침 눈길을 치우다 지나가는 주민에게 신당의 위치를 물어보기로 했다.


“아이고, 박 대감님 아니십니까? 궂은 날씨에 어쩐 일이신지요?”


살갑게 인사하며 다가온 남자는 잡화점 김씨였다. 그도 고생이 많았는지, 못 본 새 얼굴이 많이 상해있었다.


“아, 김씨였구먼. 그간 잘 지냈는가. 고생이 많아. 다름이 아니라 여기 오래된 신당이 어딘지 아는가? 내 듣기는 했으나 어디 있는지 모르겠구료. 거기가면 신당을 모시는 노파도 있다 하던데.”


이 마을에 오고 김씨와도 알음알음 알고 지내던 사이였다. 그는 답지 않게 나를 유심히 바라보다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가까이 보니 그의 눈밑도 어둡고 푹 파인 것이 근심이 가득한 표정이다.


“낡고 오래된 신당이 하나 있긴 하나, 지금은 쓰임새가 다한 곳이라 가보셔봤자 이젠 아무것도 들어줄 신(神)이 없는 곳입니다....”


“뭐, 내가 기도를 하러 가려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이 마을에 하나뿐이 없는 신당이라 해서 조금 궁금해서 그러하오. 신당을 지키는 이가 무당이라 하던데, 뭐 한 해 운세나 좀 보고 싶기도 하고.”


“대감께서도 그런데 관심 있으십니까? 몰랐습니다.”


김씨가 의아하다는 듯 되물었다. 나는 모르쇠로 대답했다.


“관심보단 내 관직에 있을 때 주변에 신수를 부리고 기를 가지고 있는 자들이 많아서 그런가, 호기심이 좀 많다네.”


이곳에 내 존재를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신수를 갖고 있으며 새 나라를 세운 태상왕 이경과의 친분은 말할 것도 없었다. 대충 진실과 섞어 둘러댄 거짓말이 어느 정도는 통할 터였다.


“아, 맞다. 그러시겠군요. 그런데 가보셔도 정말 볼 게 없을 것입니다. 요 마을 끝자락에 있는데, 조오기 끝에 김영감님 댁 집 아시지요? 그 집 바로 뒤편으로 열 걸음 정도 떨어져 있는데 마을 뒷산 끝자락인 셈이죠.”


“아, 그렇군. 생각보다 멀지 않아서 다행일세. 아무튼, 고맙네. 조심히 살펴 가시게.”


“예, 대감. 살펴가십시오.”


그를 지나쳐 가는 동안 등 뒤로 따가운 시선들이 느껴졌다. 참으로 기분이 묘했다. 내가 잘 먹고 잘사는 양반 출신인 걸 모르는 것도 아니고, 그동안 살면서 이렇게 따끔거리는 눈초리를 받아본 건 처음이었다. 아니면 단순히 시국이 이래서 저보다 잘사는 양반가에 대한 보편적인 혐오일지도 모르겠다. 곳간을 열어 나눠준다 해도 궁핍한 삶이 나아지는 건 아닐 테니 말이다. 나는 그저 그렇게 여기기로 하며 걸음을 재촉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신당이란 곳에 도착할 수 있었다.


 

사나래=사도화 쓰고 싶은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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