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위터를 통하여 존재했던 이의 이름을 받긴 하였으나 약간의 수정 후 사용하였음을 명시합니다. 그렇지만 픽션에도 현실이 담기기 마련이니 혹여 내용과 비슷한 어떠한 일이 생겼다 한들, 우연으로 인한 일이라 생각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사람이 죽었다. 그리고 구멍가게도 사라졌다. 수도 없이 반복된 일이다. 그러니 이상하다고. 이제 막 투블럭으로 멋지게 올려 친 짤따란 머리칼을 벅벅 문지른 혜경이 선글라스를 꺼내 썼다. 가을 해가 그렇게까지 눈이 부신 건 아니지만, 이게 멋이니까. 각 세워 다린 제복과 선글라스라니 멋있잖아.

물론 근무 시간에 이러고 있으면 당장 지나가던 경찰차 속 아무 선배에게 혼날 게 뻔했다. 그렇지만 지금은 아니니까. 폼 좀 잡아봐야지. 남들이 쳐다보든 말든 일단 멋진 자세를 취해보려는데 또 이번엔 바람이 거세게 방해한다. 게다가 낙엽까지 무더기로 양 뺨을 갈겨댄다.

알았다고. 선글라스 벗는다고요. 에이, 먼지. 퉤퉤.







챕터1. 미래수퍼엔 뭔가 있다

   

  



지난 10월 13일. 87세 박윤식이 집에서 사망한 채 발견됐다. 사인은 뚜렷한 이상증세가 없었던 탓에 노화라는 말이 붙었지만, 혜경은 영 개운하지 않았다. 노인의 죽음을 누구도 슬퍼하지 않았기 때문은 아니다. 사람이 몇 년을 살든 살면서 해온 짓이 있으면 그럴 수 있음을 그동안 많이 배웠기도 했지만, 그보다 두려운 기색이 읽혀서 그랬다. 동거인이자 부부인 임경자 씨의 반응에서. 

함께 살던 사람이 죽었으니 앞으로가 막막하고 혼자 살아가야 한다는 먹먹함에 두려울 수는 있겠다. 하지만 촉이나 감이 우기는 것에 비해 그렇게 좋지 않은 혜경이라도, 감정 읽는 눈 만큼은 누구보다 탄탄하다. 특히 중노년층을 상대로는 더욱 그랬다. 어릴 때부터 동네 마을회관이 집이자 놀이터였으니까.

“선생님, 발견하셨을 때 상황이 어땠어요?”

“다섯 시쯤인가, 미용실 다녀와서 보니깐 답이 없어. 그래서 자나보다, 하고 저녁 준비를 했거든. 그런데 아저씨가 말도 안 붙이고 조용한 거야. 부엌에서 뭘하면 소리 때문이라도 깨나는 양반인데.”

“그게 좀 이상하다, 싶으셨어요?”

“그랬지.”

“그래서 어쩌셨어요?”

“몰래 나가서 또 술이라도 잡쉈나 싶어서 이렇게, 보니까. 숨을 안 쉬어. 그래서 죽었구나 했지.”

그러니까 이것도 마음에 걸렸다. 남편이 죽었는데 바로 경찰부터 불렀다는 게 너무 이상하잖아. 왜 가족이나 119가 아니라, 경찰이냐고.

“나이 드신 양반이 그럴 수도 있지. 그게 뭐 이상하다고 자꾸 뒤집어 파. 그만 좀 해라. 어차피 이상한 점도 없고, 알리바이도 확실해.”

유니폼보다 사우나 티셔츠를 입은 폼이 더 익숙한 남서장에게 꾸지람까지 들었음에도 포기가 쉽지 않았다. 그 얼굴에서 읽어낸 두려움은 삶에 지친 모습이나 그런 게 아니었다. 뭔가를 숨기고 싶은 기색. 어떻게든 들키고 싶지 않은 일을 함구하는 그런 얼굴이었다.

  


아주 예전에, 놀이터처럼 놀고기던 마을회관에서 반지가 없어진 일이 있었다. 당장 공과금 낼 돈이 절실했던 정임 야채의 사장님이 충동적으로 훔쳤단 걸 고작 여섯 살 즈음이었던 혜경은 단박에 눈치챘다. 임경자의 얼굴이, 오래전 그 눈빛과 너무 비슷했다.

그게 마음에 걸렸다. 완전히 잊고 있던 과거를 며칠째 곱씹다 못 해서 엄마에게 전화 걸어 예전 반지 도둑 일 생각나냐 물어볼 정도로.

-세상에나, 그걸 기억하니?

“그래서 그때, 정임 야채 그 사장님이 훔쳐 간 거 맞지?”

-응. 그랬지. 너도 참. 별걸 다 기억한다. 어휴. 정숙이 이모가 너 경찰 괜히 하는 거 아니라더니. 그 말이 딱 맞네.

“그때 아무도 안 잡아갔었잖아, 그치.”

-아, 그래. 네가 속사정까진 모르겠구나. 하긴 애가 뭘 알겠어. 정임 야채 그 집 아저씨가 워낙 기운이 펄펄 넘쳐서 밖으로 돌았어. 돈도 안 벌어다 주고, 여자나 만나고. 살림을 밖에서 몇이나 차렸더라……. 동네 여자들이 다 아니까 좀, 그랬지. 일부러 거기 가서 물건 사주고. 어휴. 왜, 그렇잖니. 사람이 궁지에 몰리면 뻔히 들통날 거짓말을 하고, 나쁜 짓을 하고. 너도 알듯이. 그때도 사실 누구든 알 법한 상황이었거든. 그래서 그냥, 그러고 말았지. 그날은 여자들만 있기도 했고. 쉬쉬하고 넘어간 거야. 반지는 나중에 조용히 돌려받았대고.

“…그런 건 하나도 몰랐네.”

-어린 애가 뭘 다 알겠니. 참, 그러고 보니 그 아저씨 그해 가을에 술 먹고 어디 도랑인가 처박혀서 죽었지, 아마. 그때 우리끼리는 아주 잘 죽었다고 막걸리 한 잔씩 했었고. 어휴, 참 오래도 됐다.

 

 

어색하고 두려운 표정과 모두가 아쉬워하지 않는 죽음. 연결고리가 되기엔 미약하다. 아무리 혜경의 촉과 감이 어설프다 해도, 고작 그걸로만 이상하다 생각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여기에 아주 큰 방점이 하나 찍혀버린 거다. 혜경이 여태 머리를 굴리고 또 굴리게 된 결정적 이유는 사실, 미래수퍼다.

임경자 박윤식 부부의 집에서 도보로 약 3분 거리. 사람들이 잘 오가지 않는 길목 모퉁이에 있던 슈퍼 하나가 얼마 전 감쪽같이 사라졌다. 원래 담배나 식료품 따위를 취급했는데 동네 할머니들 사이에선 인기 있는 장소였단 소식을 얻어들었다. 미용실 사장님이 그런 말을 흘린 거다. 미래수퍼가 없으니까 불편하다고.

“슈퍼가 문을 닫았어요?”

“거기가 그냥 슈퍼가 아니고, 동네 할머니 아지트였어. 원래는 우리 미용실이 그랬는데, 그래도 내가 여기 젊은 손님 받아보려고 딸래미 데려다 사진도 걸면서 부지런 떨어봤잖아. 그 슈퍼 생긴 이후로 이매-지 변신 할 수 있을까, 했더니. 어느 날 홀랑 사라졌네. 말도 없이. 덕분에 또 할머니 소굴이야.”

“그렇게 갑자기요? 장사가 안된 건 아니고요?”

“거기 할머니 아지트였다니깐. 한밤중만 아니면 항시 문전성시였어. 이상하게 술을 안 팔아서 아저씨들은 안 갔고, 앞에 할머니가 주루룩 앉아있으니까 괜히 젊은 사람들도 안 갔지. 이상하게 그랬어. 할머니한테만 인기 좋은. 꼭 할머니 쉼터처럼.”

“그럼 임경자 씨도 자주 가셨겠네요.”

“당연하지. 우리 경자 씨가 단짝이 있거든. 세련 씨라고, 개명한 건데 원랜 윤복자였어. 이건 비밀이야. 아무튼 세련 씨 혼자 된 이후론 자주 붙어 다니면서 거기 하고많은 날 가선 다방 커피 마시고 그랬지, 뭐.”

손님이 없는 걸 확인하곤 슬쩍 말동무나 해달라며 내놓은 삼천 원짜리 브랜드 커피가 이렇게 거대한 쾌거를 불러올 줄이야. 신이 나 속이 타오르면서도 가볍게 웃어 보였다.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이 그냥 수다나 떨고 싶은 사람처럼.


그렇게 자연스레 나와선 서로 곧장 돌아가 임경자 관련 파일과 그의 친구인 윤복자, 그러니까 세련의 파일까지 뒤지기 시작했다. 혼자서 무슨 일을 저지르려 그러냔 핀잔은 귓등으로 흘려넘기고. 들어오는 정보만 입력해본다.

임경자. 78세. 슬하엔 아들이 셋. 8년 전에 이사 와선 같은 집에서 계속 살았고………. 박윤식에겐 11년 전, 20년 전, 그리고 32년 전에 가정폭력으로 신고된 이력이 있다. 전부 훈방조치.

임경자의 친구라는 76세 윤복자는 이름을 바꾼 지 딱 2년이 됐다. 남편인 정영수가 수술 중 합볍증으로 죽은 년도와 같다. 그리고 이들에게도 가정폭력 관련 사건 기록이 빼곡하게 있다.

 


캄캄해진 기분으로 덩그러니 앉아있던 혜경의 몸은 출동이란 말에 헐레벌떡 움직였다. 그게 또 중요한 일이긴 했다. 서에서 15분 정도 거리에 있는 백옥희 씨네 집 담벼락에 있던 화분이 거센 바람으로 죄다 떨어져 쏟아지고 말았다.

지레 놀란 백옥희 씨가 어떻게 하냐며 신고를 해, 지구대 사람들이 치우는 걸 돕는데 옆집서 비명이 터졌단다. 주인집 할아버지가 죽었다는 거다. 계단에서 미끄러져 머리를 처박은 채로.

“누가 죽었다고?”

목장갑을 끼고 어디서 챙겨온 삽으로 흙을 치우던 노년의 여성. 거기다 대고 혜경은 어떤 대답도 해줄 수 없었다. 늙은 남자가 자꾸만 죽어난다. 묘하디 묘한 우연의 연속으로. 서로 돌아가 진분홍색 털조끼를 입은 백옥희의 기록에도 앞서 보았던 이들과 다를 바 없는 내용이 나올 것만 같다.

그렇지만 혜경은 물어야 했다. 그러지 않는 건 경찰이 아니다. 묻기 위해 이 자리에, 제복을 입고 섰다.

“선생님, 혹시 요 근처에 있던 미래수퍼 아세요?”

또 그 표정이다.

 

 




 



 

“말이 되는 소리를 해라.”

예상한 바와 전혀 다르지 않은 반응이라 혜경은 전혀 충격받지 않았다.

“또 욕먹을 거 알고 있었단 표정이네. 너는 알면서도 꼬박꼬박 이상한 말이나 하더라. 취미가 그렇게 없냐?”

“제가 재밌어 보이십니까?”

“어.”

“하나도 재미없어요, 진짜. 아무도 안 믿어주는데 뭐가 재밌습니까.”

“할아버지가 하나둘 죽어가는데, 동네 구멍가게가 대체 무슨 상관이야. 그냥 옮기고 싶었겠지.”

“거기 주인에 대한 정보가 하나도 없다니까요.”

“어르신들 정보 없는 게 하루 이틀이야? 출생신고도 제때제때 못해서 나이도 안 맞는 거, 너도 알잖아. 신분증에 등록된 이름도 안 맞고, 나이도 안 맞고. 등록된 이름 없는 분들도 부지기수야. 아무리 역추적을 한대도 행정 쪽에서 말이 안 맞고, 영장도 없는데. 네가 무슨 재주로 정보를 찾아.”

하는 말마다 전부 팩트여서 이따금 권팩트라고 불리기도 하는 직속 상사이자 파트너인 정은이 우다다 무섭게 내뱉은 말과는 달리 아주 심드렁하게 쌍화차를 들이킨다. 그거 내 건데. 절로 내밀어진 입술을 슬그머니 넣고 손에 쥔 미에로화이바나 비워냈다. 이건 선배 거니까 대충 퉁치기로 하면서.

“넌 그게 그렇게 거슬리냐.”

“이상해서요. 장사도 잘되고, 주변에서 좋아했는데 없어질 이유가 뭐 있어요. 만나는 할머니마다 물어봤는데 왜 없어진 건지 모른대요. 그렇게 자주 다니면서 연락처 하나 아는 사람 없고, 사는 집이 어딘지도 몰라요. 가게가 작아서 할머니 혼자라도 먹고 살수 없는 공간이었을 텐데. 없어진 이유나 언제 없어졌는지도 모른다잖아요. 어느 날 갑자기 그랬대요. 할머니 혼자서 운영한 가게가 그렇게 갑자기 간판부터 물건까지 아무것도 없었던 것처럼 사라진다는 게 말이 돼요?”

“흐음.”

“거봐. 이상하다니까요. 게다가 이 슈퍼가 몇 달 밖에 안 있었대요.”

“얼마나?”

“5개월이요. 진짜 이상하죠. 생긴 것도 갑자기 생겨서, 갑자기 사라진 거예요. 그런데 우리는 몰랐잖아요. 서에서 이 슈퍼 아는 사람 있었어요? 할머니들이나 할머니랑 가깝게 교류한 사람만 알던 가게예요. 전 이것도 신경 쓰이고요.”

“그건 좀, 이상하긴 하네.”

“그렇죠? 맞죠? 제가 괜히 맨땅 파는 건 아니라니까요.”

“그래서, 이제 그걸 어떻게 할 건데.”

“예?”

“구구절절 네가 이상하게만 보니까, 그런 것도 같다. 그래서 이제 어쩔 건지 묻는 거잖아. 네가 갈 수 있는 방향이 있어? 하고 싶은 건 있고? 할 수 있는 일을 찾긴 했냐?”

“……제가 그걸 알았으면 지금 경찰청장이지 말입니다.”

피식 웃은 정은이 눅눅해진 종이컵을 빠르고 정확히 쓰레기통에 던져넣는다.

“우리 구 말고, 다른 구에도 미래수퍼가 있었는지 찾아봐. 잠깐 있었다고 해도, 할머니 아지트였으면 알음알음 기억하는 사람이 있겠지. 할머니들 거기서 다방 커피 마셨다고 했지? 인근 다방도 슬쩍 찔러보고.”

“와, 선배….”

“딱 이만큼이야. 대신 조용하게 해라. 들키지 말고, 나랑도 상관없는 거야.”

“그럼요. 저 그런 거 완전 잘해요.”

“제-발 대답만 잘하지 말고. 요즘 큰 건 없어서 서장님 심기 불편한데 괜히 거슬리게 하고 긁히다가 교통순경이랑 같이 벌금 딱지 떼는 일 하기만 해라.”

민망스럽고 창피한 과거를 들먹이는 말로 가슴팍을 얻어맞은 혜경은 진짜 알겠다고 야무지게 답했다.



혼자만의 비밀수사. 똑똑하고 현명한 선배의 조언. 정말 대단한 사건이라도 하는 듯한 기분에 조금씩 두근거리는 심장을 부여잡고 퇴근 직후부터 바쁘게 돌아다녔다. 평소에도 워낙 쏘다니면서 후벼파고, 지나간 사건도 다시 읽어대던 터라 딱히 이상하게 생각하는 사람은 없었다.

오히려 내도록 옆에 달라붙어서 해대던 질문 폭격이 사라지니 홀가분한 듯 보였다. 경위 직함으로 형사팀 막내가 된 골칫덩이 송혜경이 사실은 신이 나서 고장 나기 일보 직전인 것도 모르고.

 







그 뒤로 수사에 진척이 있었느냐면, 진짜 놀랍게도 있었다. 혜경이 근무하는 구가 시의 중앙에서 아래쪽에 위치한 터라 위쪽으로 야금야금 올라가며 인근 동네를 뒤졌는데 정말 있었던 거다. 파란색 간판에 하얀색 글씨로 또렷하게 쓰여있던 미래수퍼가. 한 군데도 아니고, 아주 여러 곳에.

“언제 없어졌어요?”

“그건 저도 몰라요. 갑자기 사라졌대. 장사도 잘됐는데, 할머니도 정정하셨고.”

“미래수퍼 사장님에 대해서 혹시 아시는 건 있으세요? 뭐, 가족이라든지.”

“글쎄. 그러고 보니 딱히 아는 게 없네. 어머나, 내가 우리 동네 상가 꽉 쥐고 있는데 어르신은 아는 게 없어. 여태 몰랐네…….”

“그럼 어떤 분이었는지는 기억하세요? 얼굴도 아시면 제가 참 좋을 텐데.”

“눈이 정말, 정말 맑은 분이셨어. 요즘 젊은이들보다 더 그랬지. 형사님보다도 더 눈이 맑았을걸. 멀리서 보여도 눈이 아주 반짝반짝했다니까. 내가 그래서 농담으로 우리 어르신은 눈에 별이 있어서 하늘 안 보고 살아도 되겠다고, 그랬잖아. 그럼 또 껄껄 웃으시고. 어, 웃음소리도 좋으셨다. 풍채가 나름대로 탄탄하니, 키도 작은 편은 아니셨거든.”

미용실에서 통장을 알아내고, 통장에게서 상가 실세를 알아내고. 푸짐한 인심만큼이나 남 이야기하는 걸 어려워하지 않는 사람과 함께 하하 호호 웃으며 원하는 걸 삭삭 긁어내는 동안에도 전혀 이상함을 느끼지 못하게 하는 건 혜경이 가진 특기이자 장기다.

젊은 형사님이 열심이라며 이래저래 얻은 귤이며 감 따위가 주머니를 볼록하게 채우고, 잘 웃고 잘 말하는 입도 쏙쏙 채워줬다.



유달리 노령 인구가 많은 동네에 생겨나, 최소 1개월에서 최대 7개월까지 머무르고 사라진 미래수퍼는 짧고 강렬한 인상을 남기기에 충분했다. 그야 할머니의 아지트가 되어줬으니까. 작은 구멍가게 앞에 동네 할머니들이 조르륵 앉아 커피 마시고 수다 떠는 모습은 그들과 가까운 교류를 한다면, 기억에 남을 법했다.

그래서 그 커피 말인데. 그건 이상하게 출처가 불분명했다.

“다방 커피라고 하시던데.”

“우리 다방에선 동네 수퍼 같은 데 안 간다. 경찰이랑도 말 안 하고.”

미래수퍼가 있었단 자리는 이미 죄다 다른 가게가 들어섰고, 도보로 갈 수 있는 거리부터 스쿠터를 타야만 올 수 있을 모든 위치의 다방을 가봐도 비슷한 반응이었다. 그게 어느 동네건 그랬다. 자기네들은 형사랑 대화를 안 한단다. 말도 안 되는 소리다.

 



“형사인 거 티 내지도 않았는데 말 하나 붙였다고 대뜸 형사라 하더라니까요.”

“너는 거울을 안 보니?"

유자차 두 잔과 함께, 보고를 전부 들은 정은이 이번에도 심드렁한 얼굴로 폭력을 휘두른다.

“저 진짜, 상부에 신고할 거예요.”

“뭘.”

“선배님 팩트 폭격이 너무 아프다고요.”

“하든지.”

“씨이.”

“거슬리긴 하네. 형사랑 뭔 대화를 안 해. 세상에 남형사만큼 다방이랑 친하게 지내는 것들이 얼마나 있다고.”

“그러니까요. 내가 여자라서 그러나, 생각도 했다니까요.”

진척이 있던 수사가 또 멈췄다. 열흘 만의 일이었다.

“이제 어쩌고 싶은데.”

“선배님 말씀대로 파봤더니 뭐가 계속 나오긴 하니까, 조사 범위를 좀 더 늘려볼까 싶어요.”

“얘가 또 정신 안 차리네.”

“예?”

“지금 미래수퍼가 중요하니, 죽은 사람이 중요하니.”

“아…….”

혀를 끌끌 차는 소리가 매섭게 꽂혀 든다. 아파요, 진짜.

“꼭 이렇게 뭐가 부족하지, 너는. 미래수퍼가 있었던 곳은 대충 윤곽 나왔다 치고, 그래서 그 미래수퍼가 있었던 동안 사람이 얼마나 죽었는지. 누가 죽었고, 어떻게 죽었는지를 알아야 할 거 아니야. 그걸 네 손으로 얼마나 잘 알 수 있을진 모르겠지만.”

“에이. 그건 식은 죽 먹기죠.”

 



식은 죽 먹기는 맞았다. 그런데 생각보다 뭐가 좀 많았다.

어디에선 사망자가 7명이 나왔고, 여태 찾아낸 동네에서 적어도 2명 이상의 사망자가 꼭 있었다. 1년도 안 되는 짧은 시간 사이 혹은 직후, 그 사이에. 사인은 그리 다양하지 않았다. 대체로 노화 거나 알콜중독 혹은 급성 심근경색이었는데 모두가 노령인 데다, 평소 병환도 있었다 보니 경찰에 넘겨지지 않고 처리되었다. 그중 고독사가 한 명도 없었다.

모두 배우자가 있었다. 그 모든 노인에겐, 지긋하게 함께 늙어간 배우자가 존재했다. 그 삶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살피는 것 역시 어렵지 않았다. 그들은 동네에서 유명한 술주정뱅이거나, 가정폭력범이었다. 그게 아니라면 도박꾼이거나 좋게 말해 한량이지, 평생 백수였던 치들이라 어떻게 살아갔을지 안 봐도 뻔했다.


사건을 파헤치면 파헤칠수록 미래수퍼의 사장을 만나야만 하겠단 사명감이 단단해졌다. 이 사람이 죽인 건지, 아닌지는 이제 중요하지 않다. 대체 어떻게 저 늙은 남자들이 죽었는지도 이제 별로 중요한 일이 아니게 됐다. 혜경은 단지 묻고 싶었다.

무슨 일이 있었고, 어쩌다 이런 일이 생겼는지. 그래서 무섭진 않았냐고. 당신은 어디에서 왔기에 이 많은 죽음을 대면해서, 어디서 다음의 죽음을 대면하고 있나요. 사적 복수의 영역을 넘어섰을 무수한 죽음 앞, 옳고 그름을 판단할 칼자루를 우리 중 누가 쥐고 있을지. 그게 몹시도 궁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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