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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력 491년, 제 2 황자 이벨리온은 현 황제에 맞서 반란을 일으켰다. 폭정과 여색을 즐긴 그의 아버지의 통치 아래에 있던 제국은 다른 국가에게 위협을 받고 있었으며 더군다나 몰락의 길을 걷고 있었다. 무너져가던 제국을 다시 일으켜세운 황제는 반란을 일으킨 제 2 황자 이며, 후에 이 제국은 오랫동안 태평성대를 이루었다고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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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2대 황제 이벨리온


반란 이후 황제가 된 이벨리온은 전대 황제와는 확연하게 다른 모습을 보여줬다. 절대 감정적으로 국정을 다루는 경우는 없었으며 모든 일을 다 마치기 전까지는 절대 잠을 이루지 않았다. 사실 그가 이렇게 열심히 사는 이유를 꼽자면 아무래도 반란으로 재위한 황제라는 것과 촌에서 자랐던 사생아라는 꼬리표가 달려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현재 황궁에는 완벽한 그의 편이라고 정할, 그를 지킬 호위대는 정해지지 않았다. 즉, 그를 지켜줄 누군가가 아직 비어있기에 암살 가능성이 매우 높았다.



전 황제의 목을 치고 황위를 이어받음과 동시에 즉위식까지, 이 많은 행사를 짧은 시간내에 소화해야 했던 이벨리온은 호위를 뽑을 상황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편에 섰던 귀족과 신관은 매 회의 때마다 기사단을 뽑는 것이 제국과 황제의 안위를 지키는 유일한 방법이라며 재촉했다. 

"폐하, 언제쯤 호위대를 뽑으실 생각이십니까."

"그래서 회의를 하고있는 것이 아닙니까."

꽤 오랫동안, 여러번 회의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계속 황제의 호위를 뽑지 못했던 이유가 있었다. 이 제국의 법에서는, 황제의 호위대를 뽑을 때 자작가 이상의 20에서 30대의 차남까지의 남성만이 지원 할 수 있다는 법이었다. 황궁으로 들어오기 전까지 전 황제에게 사살 당한 그의 누나에게서 검술을 배웠던 이벨리온은 '왜 여성은 안되는가'에 의문을 가졌다.

"그래서, 왜 여성은 안되는거지? 그래, 암살을 우려하자면 그들의 배경과 가문을 무시하고 넘어갈 수 없다고 치고, 내가 검술을 잘하게 된건 내 누님 덕이었다. 누님도 여성이 아니었던가? 게다가 한 때는 평민이었을텐데."

"송구하오나 몇 백년 동안 이어진 법이었습니다."

"여성이든 남성이든, 모두 이 제국을 위해 존재하는 사람들이 아닌가. 우리가 이렇게 이들을 차별해도 된다고 생각하는가, 후작?"

"..."



황가의 사람이라고 보여주는 검은 눈에 검은 머리를 가진 이벨리온의 얼굴은 그 어느 때보다 어두워졌으며 그는 강제로 회의를 끝내버렸다. 더 이상 들을 가치가 없다는 듯 혀를 치며 나가버렸다. 근 몇 개월 동안 어느 때나 표정에 변화가 없던 그가 이토록 화를 낸 경우는 처음이었다. 후작이 했던 발언은 마치 그의 누나의 모습을 부정하는 듯한 발언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죽은 누나의 모습과 당당하던 모습이 이벨리온의 머릿속을 몇일 동안 헤집고 다녔다. 꾸준히 일을 하고 있음에도 그는 '차별'을 두는 법이 못마땅 했다. 오랜 고심 끝에, 그는 그가 촌에 살았던 적 그곳을 방문하기로 결정했고, 모든 것은 그와 반란까지 함께해 비서직을 받은 비서에게 맡기고 떠났다. 명마라고 불리는 하얀색 말 로이를 타고 이벨리온은 훌쩍 황궁을 떠났다. 



마물이 자주 출몰하는 광야의 숲을 지나 프란츠 산맥 근처에 다다르게 되면 그가 어릴적 누나와 그의 어머니와 살았던 작은 촌이 나타난다. 작은 촌이지만 아기자기하고 모두가 옹기종기 모여 농사를 짓는 포근한 모습을 보여주는 촌이었다. 로이 위에서 내려온 이벨리온은 잔디 위를 천천히 걸어 과거를 회상하기 시작했다. 비슷했으나 익숙하지 않은 느낌이 느껴졌지만 아무래도 그는 고향의 냄새를 맡은 듯 싶다. 천천히 마을을 둘러보던 도중, 그는 익숙치 않은 모습을 발견했다. 바로 남자가 아이를 돌보는 모습.

" 자네가 이 아이들을 돌보는건가? "

" 아, 예! "

" 자네 아내는? "

" 하하, 저희 집안은 아내가 훨씬 칼과 활을 훨씬 잘 다뤄서 직접 사냥을 갔다 옵니다. 아주 멋지죠!"

" 원래 남자가 그 역할을 하는 것이 아닌가?"

" 제가 사실 그, 오른팔을 잘 활용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아내가 직접 나서게 되었는데, 저보다도 능숙하더라고요. 덕분에 문제도 해결되고, 서로의 역할에 불만 없고, 자신의 역할을 잘 수행하고 있으니.."



이벨리온은 그의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이며 동감한다는 표현을 한 뒤에 계속 마을을 돌아다녔다. 그가 지냈던 이 촌이 유일하게 바뀐 모습은 바로 남녀노소 불문하고 모두 농사와 육아, 그리고 사냥에 도움을 주고 있는 모습이었다. 이런 모습의 목적과 이유가 궁금해진 그는 촌장을 찾아갔다. 

"촌장, 여기는 성별에 따라 나뉜 역할이 없는가?"

"허허, 이 곳을 지나가는 모든 분은 이것이 궁금하신 것 같습니다. 이 곳도 한때는 의미 없는 그 역할이 존재 했습니다. 그 때 이후로 모든 것이 바뀌었지만요."

"그 때라?"

"이 곳이 프란츠 산맥을 오를려면 지나야 하는 유일한 지름길인 걸 아십니까? 한 때, 이 제국을 찾아온 타국 놈들이 먹을 것, 입을 것, 지낼 곳, 모든 것을 약탈하고 불태워 쑥대밭으로 만든 적이 있었습니다."

" 당시 인명피해는 심했고 당장 살아가기가 막막 했을 정도로 모두가 불행했습니다."

" 그렇게 저희는 문제를 맞닥뜨렸고, 모두 한 마음 한 뜻으로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 주어진 문제를 해결하려면, 성별도 나이도 상관 없이 자신의 위치에서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완벽한 시기'나 '필요하고 넉넉한 자원'을 기다려야 하는 때도 있을거지만, 매꿀 종이가 부족하다면 맨손으로라도 매꾸는 방법이 있을거라는 것을."



촌장의 말을 들은 이벨리온은 급하게 황궁으로 들어 긴급 회의를 시작했다. 그의 얼굴은 그 어느때보다 밝았으며 웃음을 지어냈다. 그런 그의 모습을 처음 본 귀족들은 서로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 그대들, 한 국가가 '국가로' 버틸 수 있는 이유가 무엇이라 생각하는가?"

회의가 시작되자 황제는 웃음끼를 싹 가라앉히고 귀족들에게 질문을 건냈다. 갑작스러운 질문과 엉뚱한 질문에 귀족들은 그 어느때보다 더 멍청한 표정을 지어냈다. 그들의 답 또한 멍청했다.

" 국가 재산이 많은 것이 이유가 되지 않을까요? "

" 남자들을 위한 뛰어난 교육 방침 덕분 아닙니까? "

" 여자들이 남자들을 위해 봉사하는 것도 되지 않습니까? "

" 후계자를 많이 낳기 때문이죠."

" 아마 대신들과 황제의 뛰어난 외교 견식 덕분일 것 같습니다."

귀족들의 답을 듣는 내내 황제의 표정은 점점 어두워 졌다. 이들은 평등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가 궁금했으며 한편으로는 정말 역겹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한숨을 내쉬는 황제를 보고 말을 줄인 귀족들은 황제가 답을 꺼내기만을 기다렸다. 이벨리온은 이를 꽉 문 채 답을 꺼냈다.

"이토록 한심할 수가"

그리고 눈을 부릅 뜬 채 이렇게 말했다.

" 성별도 나이도 상관 없이 자신의 위치에서 할 수 있는 일을 해내고, 문제라는 구멍이 생길시 이를 매꿀 방법이나 종이가 부족하다면 맨몸이나 맨손이라도 그것을 매꾸었기 때문이다. "

" 즉, 성별이나 나이에 따라 역할을 정해두지 않고 자신의 위치에서 할 수 있는 일을 해냈기 때문이라는 거다! 우리 누님은 역할에 얽매이지 않고 재능을 자신의 위치에서 마음껏 펼치셨다. 내가 갔다온 나의 고향도 마찬가지지. 황성과 법은 찌들었다. 황제든, 귀족이든, 평민이든 이곳의 모든 사람들을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들 수 있는 '평등'이라는 것을 몇 백년 동안 실천하지 않았다. 황제로써 제국을 다스리지만 평등을 권고하는 사회를 가진 나의 고향이 몇 배는 더 제국보다 더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우린 제국에 있고, 황성에 있으며 그 어느 곳보다 보수적이다. 정말 부끄러운 현실이지. 회의는 여기까지 한다. "



얼굴이 새하얘진 귀족들을 뒤로하고 그는 곧 바로 집무실로 돌아가서 '자작가 이상의 20에서 30대의 차남까지의 남성만이 지원 할 수 있다는 법' 을 아예 없어버렸다. 그리고 그는 나이도, 성별도, 가문도 상관없이 호위대에 참여할 자를 뽑는다는 공고문을 붙였다. 그의 호위대는 그 어느 황제의 호위대보다 정의감이 넘치고, 다양하고, 충성적이며, 황제만이 아닌 모두를 위한 호위대로 후대까지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그리고 이벨리온의 말한 '평등'은 제국이 태평성대를 이룰 수 있게된 가장 큰 이유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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