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씨도 진선조에 입대하시려고요?”

“…어엉?”

뜬금없는 화두였다. 큰 작전 하나를 끝내고 승전을 자축하는 진선조의 회식 자리, 시끌벅적한 말소리들이 이어지는 와중이었으니 별다르게 중요한 이야기는 아닐 터였지만. 엄밀히는 이곳 소속이 아님에도 자연스럽게 섞여들어 공짜 술을 얻어먹고 있던 긴토키에게 소년이 물었다. 늘 그렇듯 태연스런 표정이었으나 기민한 그가 던지는 말에는 자주 뼈가 있는 법이었다. 무슨 말인지 도통 모르겠단 듯 멍청하게 대꾸한 긴토키에 상관 않고 오키타는 멋대로 말을 이었다.

“뭐, 저는 좋아요. 원하신담 1번대에 꽂아드릴 수도 있고요. 마침 히지카타 놈이 떠맡기는 귀찮은 서류들 대신해줄 사람이 필요했거든요. 여차하면 대장직 수행도 전부 형씨가 하시다가, 가끔 재밌는 전투 나갈 때만 저한테 반납하시면…….”

이 때를 기다려왔단 듯 줄줄 청산유수로 흘러가는 문장들에 긴토키는 질렸다는 표정으로 들고 있던 술잔을 입에서 뗐다. 말리지 않으면 끝도 없이 이어질 것 같아서였다.

“저기, 오키타 군? 혼자 애먼 사람 부려먹는 상상의 나래 펴는 건 그만둬줄래? 이런 남정네들만 가득한 호모집단 입대할 생각 없거든. 너나 그 귀신 부장님한테 부려먹히는 것도 사양이고.”

“글쎄, 어떠시려나. 요즘은 우리 진선조에 들어오지 못해 안달인 것처럼 보이시는데요.”

호모인 것도 맞는 것 같고. 물론 저희는 아닙니다만. 나지막히 덧붙인 문장의 파괴력에 긴토키는 마저 잔을 비우다 말고 콜록거렸다. 오키타는 변함없이 눈 깜짝 않는 표정으로 제 잔의 술을 들이켰다.

긴토키의 진선조 출입이 눈에 띄게 잦아진 건 부대 내의 모두가 아는 사실이었다. 성실하게도 외부인이 왜 여기 있냐며 매번 태클을 잊지 않는 히지카타를 제외하면, 얼굴도 다 익힌 사이에 그의 능청스런 성격까지 더해져 트집 잡을 사람은 아무도 없었지만. 정작 그 이유인 히지카타 본인에게 자각이 없어서야 아무리 뻔질나게 둔영 문턱을 드나든들 가망이 보일지 모르겠단 것이 곁에서 지켜본 바로의 솔직한 감상이었다. 진작에 사귀기 시작해 할 짓 못할 짓 다 한 줄 알았더니 연애는커녕 서로 좋아한단 것조차 모르는 둔감한 인간들일 줄이야. 바보카타 녀석은 그렇다 치더라도 남들 일엔 눈치 빠르고 재간 좋게 끼어들던 요로즈야 형씨마저 이럴 거라곤 예상치 못했다. 하기야 무엇 하나 거리끼지 않고 순조롭게 붙어먹는 꼴을 보게 된다면 그건 그것대로 속이 뒤틀릴 것 같다고도 생각했으나. 오키타는 속으로 혀를 찼다. 이쯤 되면 지켜보는 쪽이 더 지겨워져서, 적당히 등을 걷어차줄까 싶어졌다.

한편 폭탄과도 같은 발언을 들은 긴토키는 답지 않게 드러나는 동요를 숨기려 연거푸 술을 들이키는 중이었다. 시치미를 떼려 애써도 틀린 말이 하나 없었다. 히지카타와 식구처럼 지내는 진선조의 대원들이 부러워서, 조금 더 그런 시간을 빌리고 싶어서 자꾸만 이런 자리에 끼어들고 별 일 없이도 괜히 둔영을 기웃거리곤 하는 것이다. 경비를 서는 대원들이 긴토키를 기억하지 못했다면 진작에 무단침입죄 같은 죄목으로 체포당해 있어도 이상하지 않았다.

사카타 긴토키는 자신이 부를 수 없는 이름이 있음을 알고 있었다. 설령 그의 목숨을 구했어도, 그가 속한 진선조를 구하고 에도를 구하고 지구를 구하려 함께 싸웠어도, 만에 하나 그의 눈길을 얻는다 해도 영영 탐낼 수 없는 이름. 그저 상상으로만 입 안에서 몇 번이고 굴려보는 이름. 토시로. 그렇게 부르는 사람은 과거에 이미 있었고 지금은 진하게 자국을 남긴 채 사라져 없었다. 있는 자리보다 없는 자리의 흔적이 더 짙은 사람. 아쉬움이 없다면 거짓말이겠으나 그녀를 사랑한 히지카타마저 사랑해 버렸으니 어쩔 수 없다고 긴토키는 쓰게 웃었다. 아주 소중하고 애틋하게 그가 심장 속 간직해둔 사람의 자리를 넘볼 수는 없지 않냐고. 그래도 바란 만큼 깔끔하게 버려지지 않는 것이 미련이라서, 괜히 그를 이런저런 이름들로 불러 보는 것이다. 귀신 부장님, 토시, 히지카타 군, 부장…….

그가 자신의 이름을 불러준다면 좋을 텐데.

요로즈야로서의 사카타 긴토키를 누구보다 꿋꿋하게 잊지 않고 호명해 주는 것은 고마웠으나 가끔은 그를 좋아하는 한낱 바보의 이름을, 떳떳하게 고백조차 하지 못하는 겁쟁이의 이름을 속삭여 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이 정도는 욕심내도 괜찮지 않은가 여겼다. 남들은 잘만 부르는 그 헤픈 이름이 어째서 그의 입에서는 한 번을 나오질 않는지 그저 야속할 따름이었다.

조금 울적해진 기분으로 스스로 술을 따라 연거푸 들이키고 있으려니 급하게 들어온 술에 취기가 확 돌았다. 어차피 제가 돈을 낼 몫도 아니니 술이라도 실컷 마셔주겠다고 삐뚤어진 마음을 먹었다. 그 탓일까. 한 박자 늦게 제 앞에 다가온 인영을 깨달았다. 히지카타였다. 커다란 술병을 자기 것이라는 양 품에 안고는 터벅터벅 걸어온 그도 만만찮게 취해 있는 듯했다.

“요로즈야,”

익숙한 호칭을 말하면서 혀가 조금 꼬이는 걸 보니 생각한 것 이상으로 마신 상태 같기도 했다.

“천연파마…….”

왜 다음에 나오는 게 그 별명이야. 괜히 발끈해서 뭐라고 받아치려는데 머리 위로 턱 그의 두 손이 얹힌다. 취기에 표정이 느슨해진 그가 긴토키를 정면으로 마주본 채 헤실 웃었다. 열심히 들고 온 술병은 옆에 아무렇게나 내팽개쳐 두더니 갑자기 긴토키의 머리를 만지작거리는 데 열중하는 모양이었다. 복실복실한 개를 쓰다듬듯 하는 손길이 머리칼이 엉망이 되도록 헤집는데도 떼어낼 생각은 들지 않았다. 얼굴에 홧홧하게 열이 올랐다. 이건 무슨 광경이지. 꿈결인가. 멍하니 바라보는 사이에 그가 머뭇머뭇 조금 더 말을 꺼냈다.

“요즘 고민 있냐? 바보 천파 주제에. 소고가 그러더라, 네 녀석 기운이 없다면서… 그걸 왜 나한테 말하는지, …….”

말하려던 것들이 가물거리는 양 히지카타는 문장을 잇다 말고 입을 다물었다. 무어라 언어로 옮기면 좋을지 알 수 없었다. 소고가 부추긴 탓에 답지도 않은 짓을 해버렸다고 그는 속으로 자책했다. 뭐가 가서 귀엽게 아양이라도 떨어봐요, 냐. 허튼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만 건 술김에 사심이 섞여든 탓이었다. 묻고 싶은 것은 있었으나 물을 수 없는 부류였다. 세상을 구하고 한 번 죽었던 스승을 구하고도 뭘 그렇게 마음고생하냐고, 그렇게 말하고 싶은 심정은 가만히 덮어두고 한 차례 심호흡을 했다. 과장되게 들이마신 숨이 크게 들렸는지 긴토키가 멀뚱히 그 광경을 바라봤다.

“그래도 힘 내라, 요로즈…”

언제나의 단어를 입에 담다가 멈칫했다. 이마저 그에게 짊어지기 부담스런 무게가 되고 있나 문득 생각이 미쳤다. 만물을 지키는 그들을 히지카타는 사랑해 마지않았지만 아마 그것만은 아니라고 말해주고 싶었다. 지금처럼 그가 먹구름마냥 낮게 가라앉아 있을 때는.

“기…… 긴토키.”

표정이 다 가려지도록 고개를 돌려버린 채로,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그러나 분명하게 그렇게 발음해주어서. 이름이 불린 긴토키는 자신이 들은 것을 곱씹곤 몇 초 만에 귀끝까지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볼썽사나운 얼굴이 되어 있을 스스로가 부끄러웠으나 그 이상으로 심장이 울컥 뛰었다. 기다려온 이름을 그가 불러준 탓에 더는 버틸 수 없었다.

할 말은 다 했다는 듯 급하게 일어나 도망가려는 그의 팔을 붙잡았다. 내내 목에 걸려있던 말들이 멋대로 튀어나왔다.

“…히지카타. 나, 너를…….”


twitter: @ecrireblan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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