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손으로 턱을 괸 미틸은 가만히 루틸을 바라보았다. 여느 때처럼 콧노래를 흥얼거리는 제 형은 제법 즐거워보였다. 테이블 가득 말린 허브와 약재들을 늘어놓은 루틸은 정성스럽게 잎들을 손질하고 있었다. 미틸은 작게 한숨을 쉬며 물었다.


“또 미스라 씨한테 갖다 줄 향주머니인가요?”

“응. 저번에 선물했던 건 향이 다 날아가서 새로 만들고 있어.”


미틸은 도통 이해가 가지 않았다. 아무리 사랑하는 형이지만 그가 북쪽의 불면증 마법사에게 이토록 정성을 다하는 게 이상했다. 미스라가 모친인 치렛타와 친한 사이였다는 건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때때로 자신과 루틸에게 부적 같은 걸 쥐어주며 나름대로 신경써주는 것도 안다. 본인 역시 솔직하게 전하지는 않지만 그런 미스라에게 감사의 마음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루틸은 지나치게 미스라를 챙겼다. 마주칠 때마다 반갑게 인사를 건네는 건 친화력 좋은 형이니 당연하게 생각했다. 기묘한 상처 탓에 잠들지 못하는 그를 생각해 이것저것 숙면 굿즈를 선물하는 정도는 친절한 형이니 그럴 수 있지 싶었다. 발렌타인데이인지 뭔지 이세계의 감사를 전하는 날에는 그와 함께 초콜릿을 만들기도 했다. 초콜릿은 미스라 뿐만이 아니라 피가로에게도 선물했으니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그러나 루틸은 거기에서 멈추지 않았다. 거의 매일 밤마다 미스라의 방에 찾아가 그와 허브티를 나눠 마시기도 하고, 어떤 때는 그대로 그의 방에서 밤을 새는 날도 있었다. 덕분에 혼자 잠들지 못하는 밤마다 루틸의 방에 찾아가던 미틸은 헛걸음만 했다. 그림을 그리는 게 취미인 루틸의 스케치북에 붉은 색이 늘어날 때마다, 그게 미스라인지 솔직히 분간은 가지 않았지만 분했다. 미스라에게 선물 받은 이상한 물건을 방에 장식하면서 따스한 시선으로 그것들을 바라볼 때마다, 어린 시절 루틸의 생일에 처음으로 선물했던 제 그림이 그 옆에 나란히 걸려있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며칠 전 자신에게는 아무 말도 해주지 않고, 미스라와 단 둘이 외출했다는 걸 지나가는 말로 들었을 때도. 딱히 미스라에게 형을 뺏긴 것만 같은 기분에 이러는 건 아니었다. 아마, 절대로.


“미틸, 왜 그러니?”


내내 입을 비죽 내밀고 있던 미틸을 향해 루틸은 부드러운 미소로 물었다.


“……형님은 왜 그 사람한테 잘해줘요?”

“미스라 씨?”


듣고 싶지 않은 이름이 루틸의 입에서 나오자 미틸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일부러 말하지 않았는데.


“방식은 어떻든 그 사람이 저희를 지켜주는 건 고맙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형님은 지나치게 상냥한 것 같아요. 물론 그게 형님의 멋진 점이지만….”


다른 사람에 비해 미스라에게 유독 상냥한 것만 같았다. 적어도 미틸에게는 그렇게 보였다. 루틸이 뭐라 대답하기도 전에 미틸은 말을 덧붙였다.


“그 사람이 칠칠맞지 못한 건 맞지만 그래도 지금껏 혼자 잘 살아왔는데, 형님이 그렇게까지 챙겨주지 않아도 괜찮지 않을까요?”

“미틸, 그건….”

“그야 형님 성격 상 그런 점을 보고도 그냥 넘어가는 건 어려울 것 같지만…. 하지만, 정말… 미스라 씨를 대하는 형님을 보면 마치…….”


미틸은 마른 침을 꾹 삼켰다.


“마치 형님이 미스라 씨를 사랑하는 것처럼 보여요….”


놀란 건 말을 꺼낸 미틸 본인이었다. 자기가 말하고도 순간 이해가 가지 않았는지 핫, 하고 짧은 숨을 내뱉고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형님, 미스라 씨를 사랑하나요…!?”

“미틸 잠깐 진정하고….”

“저를 불렀나요?”


갑작스럽게 들려온 목소리에 내내 허브를 손질하던 루틸의 손이 멈췄다. 문 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미스라가 나른한 얼굴로 두 사람을 지켜보고 있었다.


“미, 미스라 씨…!?”


제일 놀란 건 이번에도 역시 미틸이었다. 테이블을 박차고 일어나던 기세는 어디 갔는지 그는 꽤 당황한 얼굴로 미스라를 바라봤다.


“그건 그렇고 루틸, 저를 사랑하나요?”


미스라의 저음이 묵직하게 방안을 울렸다. 미틸은 놀란 표정으로 그와 루틸을 번갈아보았다. 루틸의 얼굴에 희미한 당혹감이 보였다. 본인이 먼저 꺼낸 질문이었지만 그 대답은 어쩐지 듣고 싶지 않았다. 으윽……. 작게 앓는 소리를 내더니 결국 미틸은 그대로 도망쳐버렸다. 붙잡을 새도 없이 그 자리에서 사라진 미틸의 모습에 루틸은 물론 미스라 역시 텅 빈 그의 자리를 내려다보았다.


“가버렸네요.”

“미스라 씨가 그런 소리를 해서 그래요….”

“미틸이 먼저 꺼낸 이야기잖아요.”


나는 아무 잘못 없습니다. 그의 표정은 그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미스라는 느릿한 걸음을 이끌고 루틸이 있는 쪽으로 다가갔다. 거리가 가까워지자 테이블에 펼쳐져 있는 허브의 향기가 물씬 풍겼다.


“저번이랑 조금 다른 향이네요.”

“아! 알아봐주셨네요. 사실 이번에는 수면에 도움이 되는 다른 약재도 같이 배합해봤어요.”


헤헤 웃는 루틸의 머리 위로 손을 얹은 미스라가 가볍게 그의 머리카락을 헤집었다.


“솔직하게 말하면 될 텐데.”

“네?”

“당신 나 사랑하잖아요.”


덤덤한 미스라의 말투에 루틸의 뺨이 옅은 붉은 색으로 물들어졌다. 그는 주먹을 들어 미스라의 옆구리를 퍽 쳤다.


“아야.”

“미틸한테 그런 소리하지마세요.”

“맞는 말이잖아요. 매일 밤마다 사랑한다고 울면서 매달리면서.”


루틸은 대답 대신 한 번 더 미스라의 옆구리에 주먹을 날렸다. 허나 미스라는 가볍게 그의 일격을 피했다.


“미틸에게는 좀 더 진정되면 말하고 싶어요. 아직 어리니까….”

“흐응. 제 눈에는 다 큰 것처럼 보이는데요. 과보호 아닙니까?”


이번에는 제대로 대답할 수 없었다. 확실히 과보호일지도 모른다. 현자의 마법사가 되고 나서 그렇게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았다. 갑작스럽게 바뀐 주변 환경에 대해서 미틸은 좀 더 적응이 필요할 것 같았다. 하지만 조금 전에 있었던 일처럼, 미틸은 자신이 생각하는 것만큼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 아이가 아닐지도 모른다. 생각을 거듭할수록 어떻게 대해야 좋을지 알 수 없었다. 루틸은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럴지도 몰라요….”


근심 어린 그의 표정이 마음에 들지 않는지 미스라는 손을 올려 루틸의 볼을 쭉 잡아당겼다.


“하이아헤여….”

“하, 뭐라고 하는지 모르겠지만 웃기네요, 그 얼굴.”


손바닥으로 제 손등을 찰싹찰싹 때리는 루틸의 행동에도 불구하고 미스라의 입꼬리는 부드럽게 곡선을 그렸다. 그에 루틸의 입에서도 곧 푸흐흐, 하고 바람 빠진 웃음이 새어나왔다.


“하긴, 이 표정이면 미틸이 아니더라도 다 알아차리겠네요.”

“헤?”

“웃겨요, 그 말투.”


끝내 미스라는 루틸의 볼이 빨갛게 달아오를 때까지 잡아당기며 놀았다. 



2020.04.30 마호야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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