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폴몬트 학원 AU


1.

5교시는 이동 수업이었다. 교과서와 노트, 필통을 챙긴 파우스트는 홀로 교실을 나섰다. 점심시간이 아직 많이 남아있는 시간이라 그런지 교실이며 복도는 어디든 떠들썩했다. 얼른 조용한 곳으로 피하고 싶다. 머릿속에 가득한 그 생각에 파우스트는 걸음을 재촉했다.


“피가로 선생님! 다음 주에 생일이라고 들었어요!”


익숙한 이름에 파우스트는 저도 모르게 걸음을 멈췄다. 멀지 않은 곳에서 학생 몇 명에게 둘러싸여있는 피가로가 보였다. 그의 이름을 듣고 그대로 멈춰선 제 자신이 민망해 그는 다시 천천히 앞으로 나아갔다. 피가로는 아직 파우스트를 발견하지 못한 것 같았다.


“역시 요즘 애들은 정보가 빠르네~”

“받고 싶은 선물 없나요!”

“음, 역시 제자의 사랑이 듬뿍 담긴 편지려나?”


그렇게 대답하는 피가로의 시선이 복도 한편의 파우스트에게로 향했다. 언제부터 그의 존재를 깨달은 것일까. 웃음기 섞인 눈빛은 잠시 동안 파우스트를 담고 있었다. 문득 마주친 눈동자에 파우스트는 애써 그의 눈을 피하며 다시 빠르게 걸음을 나아갔다. 괜히 여길 지나갔다. 그렇게 생각해도 어쩔 수 없었다. 아니, 생각해보니 3학년 교실 복도 앞에서 떠들고 있는 저 교사의 잘못이다. 품안의 교과서를 꼭 끌어안으며 그는 피가로의 시선을 짐짓 모른 척 했다. 사랑이 듬뿍 담긴 편지라니. 요즘 누가 그런 허울 좋은 말을 믿을까.



2.

“――엔 입니다!”

“선물 포장 부탁드립니다.”

“메시지 카드도 필요하신가요?”


메시지 카드라는 단어에 파우스트는 얼마 전 들었던 그의 목소리가 머릿속에 울렸다.


‘역시 제자의 사랑이 듬뿍 담긴 편지려나?’


쓸데없는 짓이다.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결국 이렇게 선물을 준비하고 있었다. 잠시 고민하던 그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네. 메시지 카드도 부탁드립니다.”


전부 바보 같았다.

생일 선물이니 편지니, 즐거운 듯이 웃고 떠드는 그가.

자각하고 있으면서도 멈추지 않는 자기 자신이.



3.

파우스트는 별다른 부활동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방과 후 곧바로 집에 가는 건 당연했다. 그리고 하교를 위해 신발장 문을 연 그는 꽤 오랜 시간을 그 앞에 서있었다.


남색 포장지에 흰색 리본. 분명 오늘 아침 일찍, 그가 양호실에 오기도 전에 책상 위에 살며시 올려놓고 온 선물. 너무나도 낯익은 물건에 파우스트는 주먹을 꾹 쥐었다. 자신이 선물했다는 걸 들키고 싶지 않아서 일부러 이름조차 남기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가로는 보낸 이가 파우스트라는 걸 눈치 챘던 것이다. 그렇게 선물은 이렇게 되돌아왔다. 자신이 품고 있는 같잖은 마음의 대답은 이미 알고 있었지만, 하루가 채 지나지 않아 이렇게 돌아온 걸 보니 확인사살을 당한 기분이었다.


그 자리에 가만히 서있던 그는 곧 선물 상자를 꺼내들어 그대로 쓰레기통에 던지듯이 버렸다.


“……비겁한 사람.”



4.

생일에 잔업이라니 내 팔자도 참. 그렇게 한탄하며 피가로는 테이블 한편에 있던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한 모금 마셨다. 그는 핸드폰 화면을 들어 시간을 확인했다. 다섯 시 반이 조금 지난 시간. 그러고 보니 지금쯤이면 봤으려나. 머릿속에 떠오른 얼굴에 피가로는 책상 두 번째 서랍을 열었다. 짙은 청색의 편지 봉투. 내용물은 몇 번이고 읽어 내린 짧은 한 마디가 적혀있었다.


“여전히 달필이라니까.”


《 생일 축하드립니다. 》


간단명료한 그 한 문장은 어째서인지 딱딱하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아마 이 메시지 카드를 쓴 사람이 어떤 얼굴로 이 말을 적었을지 훤히 비쳐 보여서일까. 그렇기 때문에 피가로는 보낸 사람의 이름조차 적혀있지 않은 그 선물을 다시 돌려줄 수밖에 없었다. 신발장 속 선물을 본 파우스트의 모습을 상상하자, 문득 제 얼굴에 비친 감정은 본인도 뭐라 정의내릴 수 없는 것이었다.


“선생님 계시나요! 부활동 중에 다쳐서 그러는데….”


갑작스럽게 문을 박차고 들어오는 학생의 목소리에 피가로는 표정을 바로하고 편지를 다시 서랍에 정리해 넣었다.


“그래, 어디가 아프니?”


본인조차 제대로 정의내릴 수 없기 때문에, 피가로는 파우스트의 선물을 받을 수 없었다.

웃는 얼굴 뒤로 커피의 쓴 맛이 목구멍을 타고 올라오는 것만 같았다. 



2020.06.05 마호야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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