톡톡 거리며 창문을 두드리기 시작한 빗방울은 마치 자신의 방문을 알리는 노크 소리 같았다. 잔잔하게 카페 안을 흐르는 노래에 불쑥 끼어들은 한 줄기의 빗소리는 본래의 선율을 흩트리는 법 없이 그저 묵묵히 자신의 연주를 이어갔다. 그 탓인지 대본을 체크하던 츠무기가 그 소리를 깨달았을 때, 빗줄기는 이미 처음 내리기 시작했을 때보다 제법 굵어져있었다. 분명 기숙사를 나섰을 때…… 아니, 카페에 들어왔을 때만 해도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하늘이었는데. 겉모습에 비해 그리 꼼꼼한 성격이 아닌 츠무기는 오늘도 평소와 같이 일기예보를 챙겨보지 않았다. 날씨도 결국 운이랑 비슷한 거라서, 게다가 언제나 일기예보가 맞는 예고만 하는 건 아니니깐. 그럼 오늘의 운수는 그렇게 좋지 않았던 거라고 치면 되지 않을까! 그런 식으로 스스로를 위로하며, 츠무기는 내내 창밖을 향하던 시선을 다시 대본으로 옮겼다.


그렇게 다시 본문 한 줄을 채 읽어 내리기 전, 문득 그의 머릿속을 스쳐지나가는 건 정원의 식물이었다. 분명 아무도 정원을 살펴보지 않았다면, 아침부터 기분 좋게 내리쬐는 햇볕에 츠무기가 바깥쪽으로 옮겼던 화분 몇 개가 아직 그대로 있을 터였다. 흠뻑 비를 맞아도 괜찮은 아이도 있지만 너무 많은 수분을 보충하면 안 되는 연약한 아이들도 섞여있을 텐데…. 불연 듯 떠오르는 불안감에 그는 급하게 짐을 챙겨 카페 밖으로 뛰쳐나갔다. 우산 같은 건 제 짐 속에 처음부터 없는 물건이었다. 비를 피할 생각이라곤 하나도 없이 서둘러 발걸음을 옮기는 츠무기의 머릿속에는 온통 화분들 생각뿐이었다. 금방 갈 테니까 조금만 기다려, 애들아! 그나마 다행스럽게도 이전보다 꽤 얇아진 빗줄기는 가볍게 그의 머리를 적시는 정도였다.


큰 길로 나와 바로 보이는 횡단보도는 다급한 그의 마음을 모르는지 때마침 빨간 불로 바뀌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아침에 화분을 밭으로 빼놓지 말았을 텐데…. 아니야, 그래도 낮까지 내리쬐던 햇빛은 분명 애들한테 좋은 양분을 공급해줬을 테니까…. 그러고 보니 비는 언제부터 내리기 시작했더라? 빗줄기를 신경 쓸 겨를도 없이 이어지던 생각이 멈춘 건 어느 샌가 그의 머리 위로 톡톡 내리던 빗방울의 감촉이 사라졌을 때였다. 어라, 여우비였나?


“이제 어린애도 아니고, 우산 정도는 알아서 챙겨라.”


요란한 자동차의 엔진 소리와 사람들의 소란스러운 대화, 아스팔트 바닥 위를 차갑게 적시는 빗소리. 제 주변을 가득 메꾸던 소음들 사이를 비집고 들려온 저음의 목소리는 제가 아는 사람의 목소리였다. 뒤를 돌아보지 않아도 눈앞에 보이는 그의 모습은 분명 퉁명스러운 얼굴로 자신을 쳐다보고 있겠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츠무기는 굳이 고개를 돌려 제 시야에 상대를 담았다.


“타스쿠….”

“정말이지, 항상 그런 식으로 비에 홀딱 젖어선 앓아 눕고. 넌 조금만 방심해도 금방 감기 걸리니깐 조심하라고.”


일기예보 챙겨보라는 말을 이 나이가 돼서도 해야 한다니. 츠무기 넌 옛날부터 변한 게 하나도 없군. 질린다는 기색을 띠며 툭툭 던지는 말투에 배인 걱정 역시 타스쿠의 변하지 않는 점이었다. 조금 전까지 다급함이 역력했던 츠무기의 안색도 타스쿠의 등장과 동시에 부드럽게 풀렸다. 분명 기숙사 주변이라고는 해도 이렇게 딱 중요한 순간에 나타나는 그의 모습이 츠무기는 내심 신기했다.


“타스쿠도 지금 돌아가는 길이야? 분명 객연 연습이었지, 오늘.”

“좀 전에 끝나서 기숙사로 가려던 참이었지. 근데 비에 젖은 얼빠진 뒤통수가 보여서.”

“하하….”


사정없이 자신을 까 내리는 타스쿠의 말투에 츠무기는 멋쩍은 미소를 지었다. 그래도 마침 타스쿠랑 만나서 다행이야. 온통 머릿속을 차지하던 식물들의 생각에 뒷전으로 미뤄두었던 가방 속 대본이, 조금씩 빗물에 젖어가는 걸 지금에야 깨달은 츠무기는 힘없이 어깨에서 흘러내리는 가방끈을 꾹 붙잡았다. 그와 동시에 좁은 1인용 우산 속에서 살짝 부딪친 타스쿠의 어깨에, 츠무기는 미안한 기색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촉촉하게 젖은 츠무기의 머리만을 간신히 가려주던 우산은 어느새 자신 쪽으로 완전히 주객전도되어, 그 뒤로 보이는 타스쿠의 어깨가 조금씩 젖어가고 있었다. 그럼에도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자신을 향해 이어지는 그의 잔소리에 츠무기는 살풋 웃음이 터져 나왔다.


“뭐가 웃기지?”

“으응, 아무것도 아니야.”


젖어드는 타스쿠의 어깨를 슬쩍 곁눈질하면서도, 그는 괜히 모른 척 고개를 돌려버렸다. 어차피 신호등은 여전히 빨간불이고, 기숙사도 저 모퉁이를 돌면 금방 보일 터였다. 연신 우산 위로 떨어지는 빗방울도 점점 그 소리가 느려지고 있었다. 그럼 조금만 더 이대로 느긋하게 걸어도 괜찮지 않을까, 츠무기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2018.06.11 에이쓰리

전력 6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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