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지는 아주 천천히 밥을 먹었다. 따뜻하고 환한 곳에 앉아 서로를 사랑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맛있는 식사를 하는 일이 참 좋다고, 강지는 내내 생각했다. 그들을 위해 차려진 음식은 ‘평범’하다고 할 수 있는 가정식이었지만 입에 넣어 우물거리고 목구멍으로 삼키는 과정의 모든 순간이 특별하기만 했다.

 

왜 그렇게 특별할까.

 

강지는 자신이 내내 생각한 문장에서 하나씩 낱말을 지워갔다. 따뜻해서? 아니. 환해서? 아니. 맛있어서? 아니. 강지는 희주가 건네주는 미지근한 물이 담긴 컵을 받아들며 정답을 알았다. 그것은 사랑이었다. 이들의 몸을 타고 흐르는 그 감정이 평범하다고 할 수 있을 식사를 평범하지 않게 만드는 것이었다.

 

밥은 이런 속도로 먹는 거구나. 여러 사람과 함께 식사를 할 때에는 대화를 나누고 웃고 음식을 서로의 입에 먹여도 주고 눈을 맞추고 다시 웃고, 그래서 밥을 먹는 시간이 느리게 흘러갈 수 있는 거구나. 혼자 허기를 채우기 위해 무언가를 입에 쑤셔 넣는 것이 익숙했던 강지는 문득 몹시 서러워졌다. 자신이 느끼는 이 낯섦은 티브이 속 광고처럼 화려했고 그만큼 현실과 너무도 동떨어져 있었기에.

 

강지는 물을 오래 머금었다. 오래 머금으며 희주가 건넨 컵의 물을 모두 마셨다. 이들은 알지 못하겠지. 누군가가 전해준 물을 마시는 것이 누군가에게는 생의 처음이라 할 수 있는 일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그들은 모를 것이다. 강지는 컵을 테이블에 내려놓고 컵 가장자리에 묻은 물기를 손으로 닦아냈다. 그리고 손가락을 적신 물기를 아무도 모르게 혀로 살짝 핥아먹었다.

 

“강지야.”

 

식사가 마무리되어 가자, 미희가 강지를 불렀다.

 

“시간이 조금 늦었는데 집 연락처 알려줄래요?”

“…… 연락처가 없어요.”

 

테이블에 둘러앉은 사람들은 강지의 말을 퍼뜩 이해하지 못했다. 그렇다고 강지의 말이 실없는 농담이라 여기는 이도 없었다. 함부로 동정을 표하지 않기 위해, 강지의 곁에 있는 이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입을 열지 않았다.

 

“강지가 늦게 가서 걱정하실 분은 계실까? 아줌마가 강지랑 있다가 집에 잘 데려다 주겠다고 말씀드리고 싶은데?”

 

먼저 입을 연 사람은 희주였다. 희주는 강지에게 몸을 기울여 눈을 맞췄다. 제게 다정히 반짝이는 그 눈, 강지는 그 눈을 오래도록 알아온 것만 같았다. 유담의 눈이 여기서 왔구나. 닮는다는 건 누군가를 편안하게 만들 수 있는 거였다. 설사 그 누군가를 자신이 전혀 알지 못한다 할지라도.

 

“저는 혼자 살아요. 지금은, 혼자예요.”

“아줌마가 잘 알아듣지 못하겠는데 조금만 더 말해줄래?”

 

강지는 대답대신 어깨를 옹송그렸다. 앞으로 말려 웅크려진 그 어깨는 몹시도 작아보였다. 가뜩이나 피죽도 못 얻어 먹어본 것처럼 앙상한 아이였다. 강지는 한껏 움츠린 채 고집스럽게도 입을 다물었다.

 

“수현이가 유담이 먼저 데려가서 씻겨야겠다. 자기도 같이 가요.”

 

미희가 말했다. 눈은 수현을 응시했고 손은 수진을 어루만졌다. 유담이 가기 싫다고 머리를 흔들었다. 수현이 자신의 손을 이끌자 유담이 희주의 팔을 꽉 쥐며 울상을 지었다. 하지만 미희의 명을 따르는 자매는 단호했다. 결국 유담이 아무 소리도 못하고 양 손을 수현과 수진에게 붙들려 식당을 빠져나갔다. 유담이 자꾸만 강지를 돌아보았지만 강지는 얼어붙은 것처럼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유담의 발소리가 완전히 멀어지자, 강지가 기다렸다는 듯 입을 열었다.

 

“두 달이나 석 달에 한 번씩 언니가 돌아와요. 그리고 생활비를 주고 며칠 있다가 다시 떠나고요.”

“그럼 언니 외에는 강지를 보살펴주는 사람이 없는 거니?”

“네, 처음부터 언니뿐이었어요.”


언니는 항상 돌아와요, 강지는 서둘러 말을 잇대었다. 그리고 입을 꾹 다물었다. 테이블에 남아있는 미희와 희주는 강지가 다시 입을 열지 않으리라는 걸 알았다. 의문이 생겨도, 그 의문을 해소하고 싶어도, 무엇도 묻지 말아야 할 때가 있음을 아는 어른들이었다.

 

“일정도 틀어졌는데 우리 센터에서 하룻밤 자고 가는 게 어때요?”


강지의 다물린 입술을 바라보던 희주가 미희에게로 고개를 돌리며 살갑게 물었다. 미희가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좋은 생각이라고 덧붙이는 미희의 얼굴이 서늘하게 내려앉았다. 입을 다물 줄 알기에는 너무 어린 나이야, 미희는 점점 구겨지는 미간을 숨기려 고개를 모로 틀었다.

 

저렇듯 참는 것이 당연했던 때가 미희에게도 있었다. 강지가 단단한 표정으로 제 이름을 밝히던 첫 만남이 굳게 다물린 강지의 입술 위로 덧그려졌다.

 

“강지도 오늘 자고 가렴.”

 

미희가 말했다. 강지는 다물린 입술을 달싹이면서도 묵묵부답으로 앉아있었다.

 

“발가락도 다쳤으니까 …….”

“이 정도 상처는 아무렇지도 않아요.”

 

강지가 미희의 말을 자르며 대답했다.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나 먹은 식기를 가지런히 정리하기 시작했다. 미희와 희주가 조용히 시선을 나누었다. 아이를 그대로 돌려보내지 않겠다는 결의가 시선의 끝에서 불꽃처럼 튀었다.

 

“오늘 설거지는 회장님이 해주시겠어요?”

“물론이지. 자기는 강지 데리고 가서 씻겨줘야겠다.”


밥그릇과 국그릇을 정리하고 테이블 위에 놓인 수저와 젓가락을 한 짝씩 모으던 강지가 깜짝 놀라 고개를 치켜들었다. 그와 동시에 미희가 강지의 손에 잡힌 것들을 잡아 뺐다. 희주가 주춤거리는 강지의 어깨를 완전히 한 팔로 끌어안아 밖으로 이끌었다. 손발이 척척 맞는 듀오의 움직임은 일사불란했다.

 

강지는 어딘가 멍청해진 표정으로 희주에게 붙들려 그저 걷기 시작했다. 2층으로 올라가 파란색 화살표 방향으로 꺾자 공용욕실이라고 적힌 유리문이 저절로 열렸다. 벌써 어른들에게 씻김을 당한 유담이 센터의 유니폼으로 보이는 연두색의 운동복을 입고 대형 거울 앞에 앉아있었다. 그리고 그런 유담의 젖은 머리를 수진이 정성스럽게 말리고 있었다.

 

“엄마!”

 

강지와 함께 희주가 그 안으로 들어서자, 유담이 쪼르르 뛰어와 희주에게 안겼다. 갈색의 풍성한 머리가 여전히 축축했다. ‘너 그러다 감기 걸려. 머리 다 말려야지.’ 유담은 수진의 잔소리에도 아랑곳없이 제 엄마의 허리를 끌어안고 수진과 수현이 얼마나 험하게 자신을 목욕시켰는지 종알대기에 바빴다.

 

“야, 재미나게 같이 씻어놓고 또 그렇게 이르지!”


수진의 볼멘소리에 유담이 뒤돌아 놀리듯 혀를 길게 내었다. 서로를 빼닮은 우성알파들은 다 함께 목욕하는 걸 즐겼는데 문제는 애를 가끔 방치하고 저들끼리 신나서 물놀이를 하는 일이 왕왕 있다는 것. 주로 수진이 약을 바짝 올리는 거에 수현이 못 참고 덤비면서 놀이가 시작되었다. 거구들의 물놀이에 유담이 물세례를 맞는 일도 허다했다. 유담은 지금 그런 일에 대해 희주에게 미주알고주알 일러대는 것이었다.

 

제일 늦게 욕실 안에서 나온 수현이 저를 응시하는 희주를 보고 깜짝 놀라 손에 잡은 유담의 재킷을 떨어뜨렸다.

 

“여보, 그게 …….”

“아, 됐고. 이 자리에 있는 우성알파들은 모두 나가주세요.”

 

희주가 선언하듯 말했다. 그것은 명령이었다. 희주의 허리를 껴안고 있던 유담이 눈을 도록도록 굴렸다. 설마 나도 포함되나? 의문이 어린 눈이었다. 강지가 유담과 눈이 마주치자 나가라는 듯 고갯짓을 했다.

 

“엄마, 나도 나가요? 나는 아니죠?”

“너도 우성알파잖아. 아니니?”

 

강지가 대신 답했다. 그리고 또 나가는 문을 향해 고갯짓을 했다. 엄마 ……. 유담이 처량하게 떨리는 목소리로 속삭였다. 큰 눈을 끔벅거리며 저렇게 불쌍하게 속삭이면 반드시 먹혀들 것이라는 걸 알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희주는 제게 들러붙는 유담을 부드럽게 저지했다. 그리고 칼바람이 몰아치는 눈빛으로 온 가(家)의 자매들을 훑었다.

 

“당신들 내일 유담이 감기라도 걸리면 알아서 하세요. 특히 온수현 씨, 아시겠어요?”

“네 …….”

 

수현이 떨어진 유담의 재킷을 얼른 주워들어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희주가 드라이기를 들고 있는 수진에게 몸을 돌렸다.

 

“온수진 씨도 대답을 해주면 내가 마음이 편할 것 같은데, 회장님이랑 나 단둘이서만 여행 또 가볼까요? 온수진 씨 연락 다 끊고 날라버릴까요?”

“…… 명심할게. 수현아, 가자.”

 

우성알파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유담 역시 끽소리도 못 내고 얌전히 휩쓸려 사라졌다. 강지는 그 공간에 휘몰아치듯 감기는 우성알파들의 페로몬 향을 들이켰다. 너른 공간에 깊이 고인 그 향은 무척이나 희귀했다. 강지는 어쩌면 살면서 다시는 맡아볼 수 없을 향이라 생각하며 크게 숨을 들이마시고 내뱉었다.

 

“자, 이제 방해꾼들도 사라졌으니까 아줌마랑 천천히 씻어볼까?”

 

귀한 향에 취한 강지의 눈에 다정하게 웃음 짓는 희주의 해사한 얼굴이 그저 아름답게만 보였다. 강지는 수줍음에 조금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희주를 따라 옷을 벗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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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량조절로 금일 편은 조금 짧아요.

다음 편부터는 유료로 올려보려 합니다.

온자매가 쩔쩔매는 모습이 그렇게 귀엽더라고요. 

좋은 밤 되세요! 

다양한 이야기를 새롭게 쓰고자 하는 GL 소설 글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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