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간단하지. 

◼︎◼︎를 벌려줍니다. ◼︎◼︎의 ◼︎◼︎를 부드럽게, 약간의 강약을 주어가며 리듬을 타듯이 쓰다듬으면서, ◼︎◼︎가 ◼︎◼︎됐을 때 ◼︎◼︎◼︎를…

어? 이거 아냐? 일반 버전으로? 에이, 뭐야. 이게 더 재밌는데.


흐음. 일단 맨 처음부터 할까…

이름은 제브란 아라이나이. 보통 제브란이라고들 불러. 줄여서 제브, 라고 불러도 되고. 친한 사람들은 보통 제브라고 해. 아라이나이라고 불러도 뭐, 상관없지만… 대답은 안 할지도 몰라. 잘 못 알아듣거든. 날 부르는 건지 몰라서.

사용하기 전 확인해야 할 사항!
아, 그렇지. 중요한 부분이지. 이걸 제일 먼저 체크해야 하니까. 

기본적인 건데, 뒤에서 몰래 접근하지 말 것. 말을 걸면서 다가온다거나 알리스터처럼 무식하게 터덜거리는 소리 내면서 오는 건 괜찮아. 그 친구는 십 리 밖에서도 자기 여깄다고 동네방네 알리고 싶은 것처럼 티가 나거든. 뭐, 사실 웬만한 사람들은 다 티가 나. 내 전공이 그쪽이라 기척을 숨기는 데도, 숨은 기척을 알아차리는 데도 도가 터서, 아주 민감하게 반응할 수가 있거든. 다시 말하지만, 아주 민감하게 반응한다고. 응? 알아들었어? 나는 말이야, 기척을 숨기고 뒤에서 몰래 다가오는 것에 아주, 아아아아주 민감해. 그러니까 혹시라도 시도해 봤다가 눈 깜빡할 새 네 목에 금이 가 있어도, 고스란히 소비자 과실입니다? 참고로 AS는 안 돼. (방법도 없고. 목이 갈렸는데 뭐 어떻게 해?)

가장 중요한 건 그거야. 이외에는 뭐... 다짜고짜 손찌검하지 말기, 면전에서 내 욕하지 않기... 앞의 것보다는 덜 중요하긴 해. 그래서 크게 상관은 없는데, 아무래도 안 해주는 게 낫지. 

…응? 당연한 상식 아니냐고? (낮은 웃음) …역시 그렇지? 그런데 그 상식 밖의 놈들이 의외로 꽤 많았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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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브란이 딱히 무언가 의도를 했던 것이 아니다. 단지 그는 아주 오랜 시간 동안 안티바의 까마귀였고, 최고의 실력을 가진 암살자였다. 따라서 평소 그의 걸음걸이와 움직임이 거리의 어둠 속에 스며든 그림자처럼 조용하며 자연스러웠을 따름이다. 진정한 의미에서 사람들 사이에 섞이는 것이 능숙한 자라면 때와 장소에 따라 걸음걸이, 발소리조차 완전히 다른 모양으로 바꿀 수 있을 터이나, 제브란은 줄곧 까마귀단 소속으로 주변인이 모두 소리를 죽인 채 움직이는 자들뿐이었던 고로, 그와 같은 훈련은 받지 않았다. 무엇보다 그의 전문 분야는 암살이지, 잠입과 위장이 아니다. 

그러므로 워든의 등 뒤쪽으로 가까이 다가온 제브란의 움직임이 지나치게 조용했다고 해서, 딱히 그가 비난받을 만한 일은 아니었다.

워든은 매섭게 뒤쪽을 향해 손날을 휘두르며 거리를 세 걸음 정도 벌렸다. 나머지 한 손은 목을 감싼 채였다. 두 눈을 부릅뜨고 자신에게 접근한 기척의 정체를 알아차린 그는 두어 번 빠르게 호흡한 뒤 무기쪽으로 가져가려던 손을 거두었다. 

"제브란."

후, 안도인지 짜증인지 뜻 모를 한숨을 내뱉은 워든은 경계 태세를 누그러뜨리고 말했다.

"그렇게 소리 없이 뒤에서 다가오지 마."

놀란 것은 제브란도 마찬가지였다. 워든을 놀라게 할 의도는 없었을 뿐더러, 애초에 말을 걸려 한 것도 아니었다. 그는 단지 워든의 뒤쪽에서 걸어왔을 뿐이다. 하나 그렇다 해도, 앞서 설명했듯 제브란은 훈련받은 암살자로서 평소 움직임이 극도로 조용하고 기척이 없다. 그것을 근거리기는 하지만 금세 눈치채고 재빨리 간격을 벌렸다. 예사 반사신경이 아니었다.

다만 제브란이 놀란 이유는 그밖에 달리 있었다.

"…소리 없이 다가오는 거, 싫어해?"
"그럼 좋아하겠어?"

제브란이 묻자 워든은 눈썹을 찌푸리며 대답했다. 그리고 문득 뭔가 떠오른듯 고개를 기울였다.

"…다들 그런 거 아냐?"

제브란은 아하하! 하고 소리 내어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그를 향해 기쁜 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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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다음은, 흠. 그래, 뭐가 알고 싶어?

친해지는 법? 하하! 간단해. 돈이야 돈. 반짝이는 (빛깔은 황금빛에 가까울수록 좋아.) 짤랑이들을 잔뜩 가져다 주면 이 제브란은 이미 당신의 둘도 없는 벗이요 형제로소이다. 내 전문은 암살과 도절이지만, 값만 제대로 쳐준다면 못할 것이 없지. 물론 그쪽이면 더 확실하고! 꼴보기 싫은 놈 없어? 밉고 미워서 이 세상에서 지워버리고 싶은 놈은? 목숨 한둘 훔치는 것쯤이야 일도 아니지. 난이도가 어려울수록 값은 더 비싸지지만... 나의 관대하고도 아량 넓은 벗은 당연히 이해해 주겠지?

호오? 뭘 시키고 싶은 게 아니야? 그러면? 아하, 더 친밀한 방법인가? 그쪽도 내 전문이지. 이 제브란의 손놀림은 어느 분야에서건 재빠르고 능란하답니다. 처음부터 그냥 그렇게 말하면 될걸. 애초에 그것부터 얘기하려고 했는데. 흐음, 천천히 차근차근 진행하는 게 취향이시다면야 뭐. 그것도 나쁘지 않아.

응? 내 진심이 뭐냐고? 진심, 진심이라. 참으로 복잡다단한 개념이지, 안 그래? 지금 당장 너와 즐거운 밤을 보내고 싶다고 생각하는 이 마음도 진심이고, 아무 생각 없이 어디론가 훌쩍 떠나서 고급 술이나 한 병 깠으면 하는 마음도 진심이야. 지금은 매혹적으로 보이는 네 얼굴도, 내일 아침이 되면 침을 뱉고 싶어질지도 모른다고? (낄낄) 예를 들면 그렇단 거야, 그냥! 그 모든 게 다 진심인 거야, 친구. 흘러가는 바람이자 흩어지는 모래 먼지 같은 거야. 굳이 철학적인 논쟁을 불러올 필요도 없이, 진심은 언제나 변하고 사라져. 하지만 그게 없었던 건 아니잖아? 내가 느꼈던 건 분명히 있었던 사실이잖아? 그렇지?

……아, 지루해졌어. 미안, 아까까진 괜찮았는데, 이제 재미 없다. 나 가도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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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브란, 잠깐만."

어느 날 밤의 야영지에서, 워든이 조용히 제브란을 향해 손짓하여 불렀다. 별다른 대꾸 없이 워든에게 다가가면서 제브란은 속으로 조금 잡다한 생각을 했다. 

평소에는 용무가 있으면 워든이 먼저 제브란에게 와서 이야기를 하고 끝나면 제자리로 돌아가는 패턴이었는데, 굳이 제 쪽으로 부르는 건 거의 없는 일이었다. 다른 사람에게 알리기 싫은 용무라는 걸까? 천막 안으로 불러들이는 거라면 좋겠지만(그게 제브란의 전문 분야 중 하나기도 하니까), 만약 나쁜 소식을 전하려는 거라면? '마음이 바뀌었어. 일행을 떠나줬음 좋겠어.' 그러면 곤란한데. 지금 상황에서 워든 일행에 붙어있지 않으면 제브란은 크게 난처한 처지가 된다. 까마귀단은 여전히 자신을 추적하고 있고 워든 일행을 떠나는 순간 목숨을 잃을 확률이 비약적으로 높아지는 것이다. 전 암살 대상과 암살자가 동행하며 함께 협력하는 이 비정상적인 관계는 그런 이유로 시작된 것이다.

그리고 제브란은 워든이 은밀히 자신을 부르는 이유가 전자보다는 후자에 가깝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었다. 짧은 시간 동안이지만 제브란이 봐 온 워든은 '좋은 고용주'인 축에 속했다. 폭력적이고 잔인한 성미도 아니고, 가학적이거나 변태적인 취미도 없으며, 불가능하거나 말도 안 되는 일을 의뢰하면서 돈을 떼먹을 생각만 하는 진상 고객도 아니었다. 까마귀단에게 의뢰하는 자들 중에 '나쁘지 않은' 타입의 고객이 얼마나 드문지 열거한다면 틀림없이 놀랄 게다. 감정 표현을 하지 않는 사람이라 속을 잘 알 수 없긴 하지만 그건 전혀 마이너스 요소가 아니었으니까. 그리고 그런 만큼 계산에 철저하고 냉정한 구석이 있는 편이었다.

워든은 사람을 잘 믿지 않았다. 그레이 워든이라는 어마어마한 직함을 보고 누군가 도움을 요청해 와도, 이익이 되지 않거나 어딘가 수상쩍은 면이 있으면 바로 내쳐버리곤 했다. 알리스터와 렐리아나처럼 성직자일 때의 버릇을 버리지 못한 동료들은 그런 워든의 모습이 때로 너무 냉정하다며 떨떠름해 했지만, 워든은 단호했다. 어쩌다 한 번씩 임무 수행 중 워든을 속여넘기려 하거나 함정에 빠뜨리려 한 자가 있으면, 결코 용서하지 않고 끝까지 쫓아가 되갚아 줬다. "엘프도 보복할 줄 아는 생물이야." 언젠가 그렇게 말했었다.

이러한 사실들로 보건대, 만약 워든이 제브란을 더 이상 믿을 수 없다고 판단했다면 제브란의 설득 따위는 그다지 소용이 없을 것이다. 워든은 그런 데서 절대 고집을 꺾는 일이 없으니까. 따라서 제브란이 워든의 부름에 적잖이 긴장했던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이거, 받아.”

그러나 막상 워든이 취한 행동은 제브란의 예상을 모조리 벗어난 것이었다.

“…장갑?”

제브란이 워든에게서 두툼한 가죽 위로 군데군데 자수가 박힌 장갑을 받아들며 멍한 얼굴로 말했다.

“나한테 주는 거야? ……왜?”

워든은 잠시 뜸을 들였다. 할 말을 고르는 것 같았다. 

“…예전에 네 어머니 이야기 했던 게 생각 나서. 데일스 엘프식 장갑 말이야. 네가 받으면 좋아할 것 같았는데…”

다소 어색한 표정으로 뒷목을 긁적이며 워든이 말했다. 눈은 제브란의 얼굴을 살피고 있었다.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인지 궁금해 하는 것이리라.

“아… 맞아. 어머니 것이랑 아주… 비슷하네.” 제브란은 장갑을 슥슥 쓰다듬었다. “기억하고 있었구나.”

예전에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다. 유일한 유품이었던 어머니의 장갑을 까마귀단에 입단하면서 빼앗겼다는 이야기도.

“선물 같은 건 받아본 적이 없어서… 고마워.”

사실이었다. 뇌물은 좀 받아봤지만, 보통 그런 걸 선물이라 하지는 않으니까. 

하지만 선물이라고 한다면, 큼지막한 보석이 박힌 장신구나 금괴나 은괴 한 덩이면 좋겠다고 늘 생각했었다. 그 외에는 딱히 감흥도 없을 것 같았는데. 

워든이 조용히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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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기본적으로 고용주가 시키는 건 뭐든지 해. 내 신변에 치명적인 위협이 되지 않는 선에서, 값만 맞춰준다면 가릴 것이 없지.
우선 순위를 매긴다면 제일 위에 오는 것이 목숨이고, 그 다음이 돈이야. 그 다음은 까마귀단이겠네. 그러니 까마귀단으로 들어오는 값비싼 의뢰들을 해결해 나가는 건 내 적성에 딱 맞는, 아주 합리적인 일이라 할 수 있지.

그래도 절대 하지 않는 일이 하나 있어. 남한테 마음을 주는 거야.

날 좋아하는 건 상관 없어. 그거야 그쪽 자유고, 나 역시 누가 날 싫어하는 것보다야 좋아해주는 게 편하지. 나도 물론 다른 사람들한테 덜 길이 든 마바리처럼 이빨을 드러낸다거나 아예 정을 안 붙이지는 않아. 단체 생활을 하면 동료애나 단결력은 중요하고, 덕택에 몇 번이고 위기를 넘긴 경우도 있으니까.

하지만 정해진 선이 있어. 침범하지 말아야 할 분명한 경계선. 나는 무슨 일이 있어도 절대로 그 선을 넘지 않아. 왜냐하면... 일단 귀찮거든, 첫 번째로. 분란의 원인이 된단 말이지. 관계가 엉키고, 일이 꼬이고, 그러다 꽝! 다 터져서 망해버리는 거야. 복잡한 건 질색이야. 그게 사람 사이의 일이라면 더욱 더. 안 그래?

그리고 아주 위험하기도 하지. 사사로운 감정 같은 게 앞서버리면 일에서 발목을 잡는 경우가 부지기수고, 우리 같이 목숨이 시시때때로 왔다 갔다 하는 직종에선 잠깐의 망설임이나 실수가 치명적이야. 그리고 실수란 건 대부분, 그 사사로운 감정 따위에서 비롯되지.

위험한 걸 선호하지 않느냐고? 하하! 이 제브란을 너무 잘 아는걸? 내가 사용설명서 기본편을 그렇게 잘 써놓았나? 물론 그렇지만 말이야. 뭐든 간에 수지타산이라는 게 좀 맞아야 하지 않겠어? 맞아. 나는 위험한 걸 좋아해. 하지만 정확하게 말하면, 나는 위험하면서 매력적인 것을 좋아해. 그런데 이건? 위험하고 복잡하며 득도 없어. 다시 말해 전혀 매력적이지 않단 거지.

그러니까, 잠깐 서로 즐기는 정도는 괜찮아. 그치만 그 이상은? 절대. 넘지도 않고, 넘어오게 두지도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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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이 다 끝나면 너는 어떻게 할 거야?"

야영지에서 하루의 마무리를 준비하던 워든에게 제브란이 물었다. 내일 아침밥은 뭐 먹어? 같은 말처럼 태연하게 지나가는 듯한 말투였으나, 이 말을 건네기까지 상당히 오랜 고민이 필요했다는 것은 본인만이 알 터였다. 워든은 평소의 무표정한 얼굴로 제브란을 바라보았다.

"…그런 말을 하기엔 아직 좀 이르지 않나?"

제브란이 말한 '일'이란 물론 워든의 임무를 가리킨다. 즉 악마의 군주를 완전히 제거해 대재앙을 종식시키는 것. 말로 하면 간단해 보이지만 그리 단순한 일이었다면 대재앙이라 명명되지도 않았으리라. 그레이 워든은 대재앙이라 불리는 거대한 전쟁 앞에서 승리를 쟁취하기 위해 움직이며 싸운다. 지금 워든의 일은 그 승리의 초석을 다지기 위한 동맹 구축과 전쟁 준비를 하는 것이었다. 아직 초석을 다지는 단계이니만큼, 종장이 목전에 온 상황은 아닌 것이다.

"나는 매사 준비가 철저한 사람이라고? 미리 미리 준비하고 대비하는 습관이 뼈에 새겨져 있지. 평소 이몸의 성실한 태도를 봤으면 알 텐데?"

제브란이 살짝 과장된 제스처를 취하며 답했다. 워든은 뭔가 곰곰이 생각하는 얼굴로 그를 쳐다보았다.

제브란은 그런 시선을 싫어하지는 않았다. 보통 누군가 자신을 빤히 바라볼 때는 보통 무슨 할 말이 있거나, 아니어도 어떤 생각을 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그럴 때는 가만히 받아주는 게 좋다. 그리고 천천히 상대의 얼굴을 관찰한다. 그러면 보통 상대가 무슨 마음을 품고 있는지 드러나는 법이다. 자신을 향한 것이 호의인지, 적의인지. 악수를 청하려는 것인지, 아니면 칼날을 감추고 있는지. 모든 이가 다 그처럼 상대의 표정을 읽는 데 능숙한 것은 아니겠지만, 적어도 제브란은 그것을 읽을 줄 아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지금 바로 눈앞에 있는 사람은 조금 어려웠다. 그의 무표정은 정말로 무표정으로 보였다. 자신을 빤히 바라볼 때에는 무언가 생각하고 있음이 분명한데도 어떤 종류의 것인지 파악하기 힘들었다. 최소한 적의는 아닐 것이다. 아마도. 하지만 호의인가? 아마도? 그렇다면 어느 정도의 호의일까? 

"너 하고 싶은 대로 해."
"…응?"

질문과 어긋난 대답에 제브란은 눈썹을 치켜올리며 고개를 기울였다. 질문은 워든을 향한 것이었다. 지적하려는 입이 떼어지기도 전에 워든이 말을 가로챘다.

"일이 끝나고 나면 너는 어떻게 되느냐는 질문이잖아. 처음에 우리가 맺은 건 내가 떠나라고 하지 않는 이상 계속 날 위해 일하겠다는 계약이었으니까. '워든의 임무가 끝날 때까지'가 아니고. 기한이 애매하긴 했지. 도리어 왜 여태껏 그 점을 짚고 넘어가지 않나 했어. 우리가 만난 상황이 특수하긴 했어도, 넌 그런 데 계산이 빠를 줄 알았는데."

워든은 펼치다 만 텐트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가 다시 제브란을 보았다.

"원한다면, 너는 언제든 떠날 수 있어. 맹세를 지키라고 강요할 생각은 없어. 넌 자유야."

반가운 소리였다. 당장 떠나라는 것도 아니고 원한다면 떠날 수 있다는 선택 자유의 보장. 정말 좋은 고용주를 만났네, 하고 만세를 불러야 할 지경이었다. 억지를 부리지도 않고 속박이나 강요도 없는 좋은 고용주가 허락한 바이니까. 멍청이가 아닌 이상 이런 기회를 놓치지 않겠지. 마음이 바뀌기 전에 얼른 알겠다고 대답해야 한다. 물론 드러내놓고 좋아하지는 말고. 적당히 감사를 표하면서, 다만 거절은 하지 않는, 그 정도의 대답이 적당할 터였다. 

"…만약에 내가 떠나고 싶지 않다면?"

—아, 멍청이가 여기 있었네.


──────────────


………

뭐? 아, 지금?

………생각 중이야. 이 설명서, 처음부터 다시 써야 하지 않을까? 하는.

너무 웃지 마. 나도 당황하는 중이라고.

………알아. 넌 이런 걸로 웃지 않지. 

잠깐, 혼자 생각할 시간 좀 줄래? 별로 오래 안 걸릴 테니까.


………

……


…저기, 혹시… 귀걸이 같은 거, 싫어해?


──────────────


제브란은 워든이 장신구 같은 걸 끼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었다. 반지든 목걸이든 귀걸이든, 신체를 보호하는 장비가 아닌 것은 한 번도 몸에 걸치지 않았다. 도시엘프 출신이라서 그렇다는 건 아닐 것이다. 장신구라 해서 값비싼 보석이 반드시 달릴 필요는 없지 않은가. 실로 엮어 만든 팔찌나 비싸지 않은 돌로 장식한 반지 같은 건 얼마든지 구할 수 있다. 워든이 장신구를 차지 않는 건 아마도 단순히 그의 성향 때문일 것이다. 

그렇기에 제브란은 워든이 살짝 빛 바랜 반지 하나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조금 놀랐다. 착용하는 것도 팔기 위한 것도 아닌, 그저 간직할 뿐인 장신구. 제브란이 봐 왔던 워든은 목적도 소용도 없는 물건을 갖고만 있을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에, 이는 무척 의외였다. 제브란이 그 반지의 출처가 어디인지 알게 된 건 머지 않아서였다.

"결혼한 사람이 있었어?"
"약혼이었어. 상대는 죽었고."

데너림 보호 구역에서 재회한 사촌의 입을 통해 정혼자가 있었다는 사실이 알려지고 일행이 몰랐던 얘기라며 놀라자, 워든은 한 마디로 일축했다. 그 단호함과 담담함에 동료들은 더 이상 뒷이야기를 물어보지 못했다.

그리고 제브란은 이때 조용히 깨닫게 되었다. ─그 반지, 죽은 정혼자가 준 것이구나. 흠. 그런 거군.

제브란은 저도 모르게 주머니 속을 만지작거렸다. 


"아니야, 그런 거."
"응?"

워든이 모닥불을 뒤적이며 말하자, 제브란이 땅바닥을 보고 있던 머리를 들었다. 장작이 뒤집어지자 불티가 한 번 세게 휘날렸다. 워든은 손짓하여 불티를 피하고는 제브란을 향해 시선을 주었다. 제브란이 어깨를 으쓱했다.

"딱히 변명 같은 거 안 해도 돼. 그럴 이유도 필요도 없잖아. 이상한 일도 아니고."

진심이었다. 워든이 이에 대해 무언가 말을 덧붙일 필요는 없었다. 자기 물건을 가지고 있는 것뿐인데 무슨 이유가 필요한가? 워든의 개인적인 일이다. 제브란이 신경 쓸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제브란과 워든이 조금 친밀해진 관계가 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는 그것과는 전혀 상관없는 일이었다. 제브란이 반지에 대해 워든에게 언급한 것은 그저, 자신도 알고 있다고 말해주기 위해서였다. 단지 그뿐이었다.

"그런 게 아니야."

하지만 워든은 평소답지 않게 끈질겼다. 그는 자신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듯 잠시 망설였다. 제브란은 기다렸다.

"나는, 기억하려고 했었어." 워든이 입을 열었다.

워든, 아니 칼리안 타브리스는 도시 엘프의 생활이 결코 행복하다고는 할 수 없었지만, 자신이 그럭저럭 괜찮은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지내고 있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아버지에게 사랑받았고, 돌아가신 어머니를 자랑스러워 했으며, 사촌과도 사이가 좋았고, 이웃들도 친절했다. 괴롭고 힘든 일도 있었지만 그만큼 좋은 일도 많았다. 정혼자 역시, 말 몇 마디만 나눴을 따름이지만 분명 좋은 사람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칼리안 타브리스는 만족하며 살 수 없었다. 가족을, 친구들을 좋아하고 동족을 신경 썼지만, 그들을 사랑하지는 않았다.

칼리안은 그런 자신의 모습에 죄책감을 느꼈다. 동족을 사랑하지 않는 자신이 이상하고 잘못된 것이라 생각하면서도, 데너림을 벗어나 자유로워진 지금을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그레이 워든이라는 것은 더욱 의무와 규율에 얽매인 존재라지만, 보호 구역에서의 삶에 비하면 그따위 건 아무것도 아니었다. 워든인 자신은 훨씬 더 자유로웠다. 지금의 삶을 동족보다, 사촌보다, 아버지보다 더 사랑했다. 

이 반지는 낮은 울타리 같은 것이다. 주체 못하고 전속력으로 바깥에 달려나가려 할 때, 발치에 걸리게 해 뒤돌아볼 여지를 잠시 주는, 기억을 상기시키는 매개체. 나를 위해 죽은 이가 있었다는 사실을, 동족을 잊지 않게끔 스스로를 다그치기 위한 물건. 그러나.

"잘 되진 않더라."

반지를 꺼내 볼 때마다 칼리안은 기억하고 싶었다. 자신을 아껴 주었던, 자신이 뒤에 두고 온 사람들을. 몸서리칠 만큼 지긋지긋했던, 좁아터진 보호 구역에서, 지금도 아등바등 치열하게 살아가고 있을 동족들을.

하지만 칼리안은 여전히 그들을 사랑하지 않았으며, 집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이제 와서는 정혼자였던 이의 얼굴마저 희미했다.

"넌 가끔 보면 엉뚱한 데서 쓸데없는 고민을 하더라?"
"뭐?"

제브란이 가벼운 투로 양손을 들어올렸다 내렸다.

"집이 너무 그립다거나 두고 온 가족이 자꾸 생각나 미치겠다거나 하면 모르겠는데, 그런 게 아니라며. 마음이 없는데 왜 신경을 쓰지? 그 반지도 그래. 그냥 반지잖아. 아, 이런 것도 있었지, 하고 잠깐 생각했다 넣어두면 되는 거라고. 없는 감정을 만들어야 되는 게 아니란 말이야. 거슬리면 그냥 저기 풀숲에다 던져버려도 돼. 아님 팔아버리거나. 그게 뭐 이상한데?"

"……하지만……"

"나도 어머니를 사랑하지 않아."

제브란이 무표정한 얼굴로 말하자, 워든은 입을 다물었다.

"당연하지 않나? 난 어머니 얼굴도 모른다고. 전혀 모르는 사람을 어떻게 사랑하겠어? 가족이라서? 적어도 내 어린 시절엔, 남보다 못한 가족은 하수구 생쥐들 숫자만큼 봤었어.

어머니 장갑, 그거? 내가 어머니를 사랑해서 간직한 게 아니야. '내 것'이니까 간직했던 거지. 단 하나라도 좋으니 내 것을 갖고 있다는 건… 의미가 컸어. 안티바 매춘굴에서도, 까마귀단에서도 갖고 있는 건 모조리 돌려 쓰고 이 몸뚱이조차 내 것이 아니었는데, 그 장갑만은 내 소유였으니까.
안티바도 마찬가지야. 그립다느니 하는 소린 자주 했지만, 딱히 돌아가고 싶은 건 아니야. 그냥 향수지.
그리고 난 내가 고향과 어머니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에 이상하다고 생각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어. 그보다 중요한 게 얼마나 많은데. 나 자신이라거나."

제브란이 그렇지? 하고 동의를 구하듯이 워든을 쳐다보았다. 워든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제브란을 응시하다가, 손바닥 위의 반지를 내려다보곤 그대로 침묵했다. 조금 웃고 있는 것 같다고 제브란은 생각했다. 착각일 수도 있지만.

제브란은 주머니 속에 손을 넣었다. 자그맣고 단단한 것이 손가락에 닿았다. 지금이 타이밍일까?

"저기, 잠깐만."

제브란이 손을 내밀며 말했다. 워든은 고개를 들어 제브란이 내민 것을 보았다.

"…귀걸이?"
"내가 아끼던 건데… 네가 받아줬음 해서."

제브란이 살짝 숨을 들이켰다.

"말했듯이, 크게 의미는 두지 않아도 돼. 이건 그냥 내 감사의 표시니까… 지금까지 네가 해줬던 일들에 대한. 일단 받으면 네 것이니까, 팔든지 버리든지 아님 그냥 잊어버려도 괜찮아."

제브란이 재촉하듯 손목을 까닥거렸다. 그리고 워든의 얼굴을 보았다.


──────────────


아, 그래. 분명 그렇게 말하긴 했지. 물건은 그냥 물건이라고. 의미 같은 거 둘 필요 없다고 말이야. 마음도 감정도 물건에 담아두려 하는 거 정말 쓸데없는 짓이라고,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하는데…… 

아니 설마, 여기서 이렇게 거절해 버릴 줄은 몰랐다니까?

잠깐, 잠깐 잠깐 잠깐만! 안 받아? 진짜로? 진짜 안 받아주는 거야?

아니 얼굴도 기억 안 난다는 죽은 약혼자 반지는 지금까지 갖고 있으면서 내가 주는 귀걸이는 받지도 않겠다고? 진심이야??

……아, 뭐, 그래. 받든 안 받든 전적으로 네 자유고말고. 별 의미도 없는 물건인걸. 상관 없지, 아무렴.


………

……


진짜 안 받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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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해, 제브란?"

워든이 텐트 입구에서 안쪽을 들여다보며 물었다. 제브란은 텐트 안에서 엎드린 자세로 종이를 만지작거리고 있었는데, 인기척이 들리자 그 자세 그대로 고개만 돌렸다.

"워후. 이제 말도 없이 텐트 안으로 막 들어온다? 우리 워든이 언제 이렇게 대담무쌍해졌지?"
"놀라게 하려던 건 아니었는데… 그리고 아직 안으로 안 들어갔어."
"농담이야."

제브란이 키득거리며 바로 앉았다. 손에 든 종이는 둘둘 말아 옆으로 치웠다.

“이건 그냥… 일지 같은 거야.”
“네가? 일지를 써?”
“네 흉내 좀 내봤지. 세상을 구하는 영웅의 일행이니까, 뭐라도 적어 남기는 게 좋으려나 싶어서? 근데 확실히 나랑은 안 맞더라. 내용도 점점 이상해지고.”

워든은 궁금한 듯 곁눈질로 종이를 흘긋 보았지만 더 이상 묻지는 않았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제브란은 이상한 오기가 생겼다.

“안 궁금해?”
“음… 네 물건이잖아?”

내가 물어볼 게 뭐 있느냐는 듯한 워든의 말투에 제브란은 이죽거리며 웃었다.

“네 얘기도 써 있는데?”

워든이 눈을 깜빡였다. 조금 놀랐을까? 아니면 그럴 줄 알았다고 생각했을까? 어느 쪽이든… 워든은 이제 신경이 쓰일까?

“………그렇구나.”

……끝이야?
제브란은 저도 모르게 헛웃음을 뱉었다. 그리고 자신이 소리를 냈다는 것을 깨닫고는 헛기침을 했다. 그래, 내 일지니까. 너랑 상관없는 물건이니까.

워든의 시선을 느낀 제브란은 화제를 돌리려고 했다. 빨리 그의 관심을 다른 데로 비껴 나게 하고 싶었다.

“그 반지는 어떻게 했어?”

─진짜 미쳤나 보다. 

제브란은 자신이 꺼낸 말에 스스로 소스라치게 놀랐다. 물론 겉으로 티내지는 않았지만. 왜 하필 지금 그 이야기를 꺼내냔 말이야? 제브란은 속으로 자신을 다그쳤지만 이미 말은 소리 내어 나온 뒤였다.

“반지? 아, 그거.” 워든이 말했다. “아직 갖고 있는데.”

“흠.” 제브란이 고개를 기울였다. “흐으으으으음.”

제브란의 입가는 웃고 있었지만 속은 어떤 감정으로 부글부글 끓고 있었다. 이유를 알 수 없는 짜증이 치밀어 올랐다. 

“…지금 화내는 거야?”

“아니? 내가 왜? 이게 화내는 걸로 보여?” 제브란은 일부러 이를 드러내며 씩 웃어 보였다.

“…엄청 짜증나 보이는데…” 워든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한 번 더 부정하려던 제브란은 입술을 떼려다 멈추고 그대로 입을 다물었다. 그랬다. 자신은 지금 화가 났다. 속이 뒤집힐 만큼 짜증스러웠고 기분이 나빴다. 하지만 그건 워든을 향한 감정이 아니었다. 제브란 자신을 향한 것이었다.

"유치하게, 진짜…"

제브란은 탄식 섞인 숨을 내쉬면서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쥐었다.

언제까지 그렇게 도망칠래. 눈 가리고 아웅하기도 유분수지, 자명한 것을 아니라고 부정하면서, 있어도 없는 척, 아무렇지 않은 척. 그게 영리하고 현명한 방식이라고 자부하면서, 살아남기 위한 똑똑한 대처라고 믿으면서.

리나 때에도 그랬었다. 감정을 비웃고, 마음을 죽이고, 감추고 속이고 숨겼더니, 결국엔 어떻게 됐지? 단단해지고 강해졌나? 더 지혜롭고 능란해졌나?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 선택한 방식이었을 텐데, 전보다 나아지기는커녕……

“제브란?”

나지막한 목소리에 눈을 들었더니 살짝 찌푸린 미간과 어두운 눈빛이 보였다. 예전이었다면 그 표정을 ‘심기가 거슬린’ 모습이라고 해석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제브란은 그가 자신을 걱정하고 있음을 알았다. 어떻게 모르겠는가. 매사에 냉정하고 무관심한 이 사람이, 자신에게만은 그렇게나 한없이 관대하고 친절했는데. 모르는 척했을 뿐이다. 무시했을 뿐이다. 그리고 자신에게 쏟아지는 그 특별한 다정을 기뻐하는 이 마음을.

“…내가 전에 했던 말 기억해?”

제브란은 겨우 입을 열었다.

“나는 물건에 의미 따위 담아두지 않는다고 했던 거. 어머니 장갑을 간직하고 있던 건 그냥 ‘내 것’이기 때문이어서지, 장갑 자체가 특별한 건 아니었다고. 그거 말이야, 조금… 다른 것 같아. 난 어머니를 사랑한 건 아닐 거야. 그야, 얼굴도 모르는 사람이니까. 하지만 상상은 했어. 어머니가 살아있었다면, 그래서 나와 함께 했다면, 나는 어머니께 사랑받고 또 사랑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상상. 그 장갑은 어머니를 떠올리게 했고, 그런 상상을 하게 만들었고, 그 더럽고 끔찍한 곳에서 견딜 수 있게 했어. 이해돼? 나는 누군가 나를 ‘아꼈을지도 모른다’는 상상만으로 어린 시절을 버텼어. 어떻게 보면, 엄청난 의미 부여를 했던 거지.”

제브란이 워든의 눈을 쳐다보았다.

“네가 데일리시 장갑을 나한테 선물로 줬을 때, 정말 기뻤어. 어머니 장갑과 똑같이 생긴 물건이라서가 아니라, 네가 내 이야기를 기억하고 있었다는 걸 알아서. 내 말을 신경 쓰고, 잊어버리지 않았고, 기억하고 있다가 나를 위해 무언가 준비해 줬다는 게 좋아서. 몸서리칠 만큼 좋았는데, 그때 나는 그게 어떤 감정인지 몰랐어.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일이기도 했고, 곧바로 인정할 만큼 똑똑하지 못했거든.”

제브란이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내더니 워든의 눈앞에서 손을 펼쳐보였다. 그때의 귀걸이였다.

“……아직 이거 갖고 있었는데… 한 번 더 주고 싶어. 이번엔…… 잔뜩 의미 부여를 해서 말이야.”

제브란은 워든의 얼굴을 보고는 약간 겁난 듯이 덧붙였다. “물론 네가 싫지만 않다면……”

제브란의 말을 듣고 워든은 화들짝 놀란 얼굴로 황급히 그의 손을 잡았다. “제브란, 나는…” 워든은 몇 번 숨을 들이키고 내쉬기를 반복한 뒤, 물기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그때 네 귀걸이를 안 받은 건, 싫어서가 아니야. 거절하고 싶었던 게 아니었어. 그때는…” 워든이 말을 이었다. “타이밍이 안 좋았어. 반지 얘기랑, 내 가족 얘기를 한 다음이었잖아. 그들을 그리워하지 않는다고, 사랑하지 않는다고 말한 직후였으니까. 네가 선물을 주다니, 두 번은 없을 일이라는 건 알고 있었는데, 그때 그 귀걸이를 받아버리면…”

워든의 귀 끝이 붉어져 있다는 건 자세히 관찰하지 않아도 금방 알 수 있었다.

“내가 그 반지를 갖고 있는 것과 똑같은 이유라고 네가 생각해버릴까봐……”

아, 세상에.
제브란은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한 손으로 워든의 어깨를 끌어안고 다른 손으로 그의 얼굴을 당겼다. 더운 숨이 목을 타고 넘어가는 것이 느껴졌다. 뜨겁고 저릿한 황홀감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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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보통 사용 설명서 끝에는 뭐가 들어가더라? 사용상 유의사항인가? 안전 주의사항? 뭐 어느 쪽이든 상관 없지. 제일 중요한 걸 말하는 부분이라면 꼭 신신당부해야 할 사항이 있으니까.


─앞으로 무슨 일이 있어도 제브란을 떠나지 않을 것. 설령 잠시 떨어져 있게 되더라도, 결국에는 반드시 서로에게 돌아올 것.


그거면 됐어. 그러면 충분해.


마지막으로,
제브란 아라이나이의 소유권은 칼리안 타브리스에게 있습니다. 

(나는 네 거잖아. 그렇지?)


끝.


그때 그때 좋아하는 것을 막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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