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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난히 몸이 축 늘어지는 날이었다. 피로한 눈을 몇 번이나 문지른 용선이 가급적 바른 자세를 유지하며 핸들을 붙잡았다. 성격이 급한 이 집 식구들은 약속 시각 삼십 분 전부터 저를 독촉하기 시작했다. 거의 다 와 가요. 지친 목소리를 알아챈 건지 구구절절 덧붙이지 않고 전화를 끊어준 기사에게 고마운 마음마저 들었다.

꽤나 외곽에 자리한 식당은 고풍스러운 느낌의 고급 일식집이었다. 지난번 시아버지인 회장님의 생신 때도 방문한 적 있었던 곳이었다. 차에서 내리자마자 바쁜 걸음으로 뛰어온 직원이 손을 내밀었다. 익숙하게 키를 맡긴 용선이 어깨 위로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단정히 정리하며 발걸음을 옮겼다.


“일찍 왔네.”



입구에서 서성이던 그림자가 저를 알아챈 듯 그 자리에 우뚝 섰다. 웬일로 약속 시각에 늦지 않게 도착한 태원이었다. 지난번 저녁 식사 자리에서 한바탕 큰 소리가 났던 게 효과가 있는 모양이었다. 결혼이라는 성가신 이름으로 엮인 사이였지만 어디까지나 집안에서나 유효한 관계에 불과했다. 태원의 입장에서도 별다를 건 없었다. 어쩌면 첫 단추부터 잘못 끼워진 결과라고 생각했다. 비즈니스를 위한 약속으로 맺어진 관계가 아니었다면 제법 매력적으로 느껴졌을 만한 여자였다. 단정한 힐을 신은 용선을 힐끔거린 태원이 제 팔을 살짝 들어 보였다. 여전히 무표정한 얼굴의 용선은 의무적으로 제 팔을 가볍게 끼워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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