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게 어떤 '척'이든 '척'이라면 일가견이 있다. 아마 타고난 거짓말쟁이가 아닐까? 수도 없이 많은 거짓말로 철통같이 지켜내는 중이다. 무엇을 지켜내는 걸까? 진심을 보이면 상처를 받기가 쉽다. 무언가가 정말로 마음에 들어서 너무나 갖고 싶어도 그런 티를 내어선 안 된다. 갖지 못할 테니까, 갖고 싶어 한 적조차 없어야 한다. 그럼 미련이란 게 남지 않고 무엇이든 마음에서 떠나보내기가 매우 수월해진다. 누군가 내게 손 내밀 때, 그 손을 잡고 싶은 강한 욕구가 솟구친다. 아아, 절대 잡아보려는 일말의 움직임도 보여선 안 된다. 그 손은 곧 거두어지고 말 테니까, 잡아보려는 시도는 아주 큰 절망감만을 남기고 패배감에 사로잡히게 할 것이 틀림없다. 나는 사람들이 두렵다. 욕심이 많고 허영심이 흘러넘치는 사람들이 무섭다. 사람들은 거리낌없이 자기의 욕망과 질투와 욕심을 드러낸다. 서슴없이, 주저없이 자기 감정을 자기 안쪽에서 통제하지 못하고 사람과 사람 사이의 경계를 넘나든다. '저건 내 것이야. 내가 갖고 말겠어. 아무도 눈독 들이지 마.'하고 선전포고하는 사람들 사이를 유유히 벗어나고만 싶어진다. '그래, 다 가져. 마음에 드는 모든 걸 다 가져 봐.' 마음은 갈대처럼 휘어지기만 한다. 쉽게 구부러지고, 쉽게 꺾이고, 쉽게 짓밟힌다. 아무것도 원치 않는 것처럼 가장하고 산다는 건 사실 쉽게 버틸 수 있는 인생길은 아니었다. 때론 매번 힘 없이, 소유욕을 버리고 매일 불만족한 상태로 잠자리에 들 때면 굴욕적이기도 했다. 자존심 굽히고 유치해지기와 꼿꼿하게 초연해지기 사이에서 택일을 해야 하는 순간마다 뻔하게도 나는 어른스러움을 선택하고 당당하게 굴었다. 유치한 애들 싸움에 끼지 않아서 안도의 숨을 내쉬며 이번에도 명예만큼은 지켜냈다는 게 내 자랑이었다. 여자애들은 어려서부터 사랑과 관심을 독차지하는 데 급급했고, 여자들의 약육강식의 세계에서는 가장 강한 여자가 가장 많은 관심과 사랑을 누린다는 공식이 있었다. 가장 강한 여자는 가장 예쁜 여자일 수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기가 세고 눈치가 빠르고 조숙해야 했다. 그런 여자들은 심리를 이용해서 사람을 조종하는 능력이 탁월했다. 그리고 누가 약자이고, 누가 자기의 사심을 채우는 데 방해가 될 자인지 알아보는 통찰력은 기가 막힌 수준이었다. 여자들이 치밀하게 노는 동안, 남자들의 세계도 별반 다르지 않게 꾸려지고 있었다. 여기도 마찬가지의 힘의 논리가 작용했다. 가장 강한 남자는 힘이 센 건 물론이고 대단한 포식자였다. 가장 강한 남자와 가장 강한 여자가 서로 끌릴 때도 있지만 보통은 그렇지 않았다. 힘과 매력은 별개의 종류였다. 힘은 나완 거리가 멀었다. 그럼 매력이라면 어떨까? 내게는 늘 집착증을 보이는 사람들이 줄곧 있어왔다. 항상 조용히 수동적으로 움직이는 나이지만 자기의 모든 시간을 전부 공유하려드는 애처로운 사람들이 가끔은 날 짜증나게, 아니면 도가 지나쳐 매우 괴롭게 하기도 했다. 그리고 끊임없이 질투에 시달려왔다. 소유욕에 대해서라면 거의 무감각한 수준이라서 그게 질투였다는 걸 깨달은 건 나이를 상당히 먹고 나서였다. 무언가를 갖기 위해 시뻘겋게 달려드는 사람들을 보면 공포 그 자체이다. 나라면 아무것도 원치 않는 '척'을 하고 고고하게 다리를 꼬고 앉아서 '너나 많이 가지세요.' 그러고 말 셈이다. 개싸움 나기 일보 직전의 전쟁터에 들어가 서로를 물고 뜯는 그 경악할만한 추잡하고 원색적인 싸움에 휘말리느니 그동안 살아온 이름을 포기해버리는 게 낫다. 내가 이미 가지고 있는 것에 대한 소유욕은 대단히 심한 편이다. 죽어도 내 이름 같은 걸 포기할 리가 없으니까 탐욕적인 싸움에는 죽을 때까지 발도 들이지 않을 것이다. 또 이 무섭고도 강한 사람들은 사실 안타까울 정도로 딱하기도 하다. 갖고 싶은 걸 갖겠다는 일념 하나만 너무 크게 살아있어서 주변도 못 보고, 또 자기가 가지려 하는 것의 정체나 본질이 무엇인지 제대로 확인도 하기 전에 욕심부터 내고 본다. 욕심껏 살면 열의 다섯은 원하는 걸 일단 손에 넣을 수 있지만 그 다섯이 얼마나 자신에게 유익할지, 아니면 정말 자기가 원하던 바와 일치하는지, 그게 정말 본인이 원하던 게 맞는지 뒤늦게 따져보면 엉뚱한 목표를 위해 시간과 정력을 허비했다는 결과를 가져오는 경우도 흔하게 벌어진다. 그래서 나는 항상 '척'을 한다. 무엇을 원하는지 누구에게도 정보를 흘리지 않고, 나 자신도 원하는 그것 자체에 굴하지 않으려 한다. 그게 완전히 내 것이 된 이후에 애정을 쏟아도 늦지 않고, 오히려 그게 맞다고 본다.

  그러함에도 최대한의 배려와 매너로 무장한 나를 어떻게든 해제시키려는 사람이 종종 나타난다. '척'을 하는 이 마음은 느슨하기도 하면서 실은 아주 팽팽한 긴장 상태인데, 그건 어찌됐든 동일한 출발선상에서 서로 같은 먹잇감을 노리는 다른 상대에게 모든 기회의 우선권을 준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모두 빨간색 가방이 갖고 싶을 때, 모두가 빨간색 가방이 예쁘다고 노래를 하는 동안 나는 조용히 빨간색 가방을 본 체 만 체하는 것이다. 출발을 알리는 신호탄 소리에 달음박질치며 빨간색 가방을 움켜쥐는 우승자에게 박수도 쳐주고 홀가분하게 쉬는 자리로 돌아간다. 잠시였지만 어느 하나의 목표를 향해 숨이 차게 뛰었던 그 순간을 회상하며 그 기억을 추억하는 것만으로도 뿌듯하고 가슴이 벅차서 기분이 좋아진다. 우승자는 빨간색 가방을 높이 들어올려도 보고 옆으로 메어도 보고 뽐내도 보며 한동안 쟁취해낸 승리감과 성취감에 도취되어 하늘을 나는듯 즐거운 나날을 보낼 것이다. 그리고 곧 싫증낸다. 왜냐하면 이번에는 분홍색 가방이 우리의 마음을 들뜨게 만들었다. 느슨하고도 팽팽한 마음가짐, 아무렇지 않은 척, 아무것도 원하지 않는 척, '이너피스'를 갖고 달관이라도 한 척하고 있는 내게 조그마한 양보의 미덕도 발휘하지 않고, 우승자는 또 다른 목표를 향해 전투적으로 달린다. 이제 나는 고고한 척을 그만 두고 있는 힘껏 달려야 할까? 아니, 그렇지 않다. 죽어도 내 이름을 버리는 짓은 하지 못하겠다. 공수래공수거, 그런 게 인생이고 나는 무언가를 소유하기 위한 삶에서는 완전히 이탈할 것이다. 무엇을 얻고자, 무엇을 이루고자 하는 그 삶에는 자유가 한 터럭도 없다. 나의 '척'은 모든 무방비함을 사랑해서이고, 절제와 검소와 겸양을 존경해서이다. 나는 내게 오는 것을 사랑할 것이고, 오지 않는 것을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내게 귀중한 건 내 이름 같은 것이고, 내게 정말 귀중한 건 마음이 우거진 수풀에 떨어져 샅샅이 찾아도 찾을 수 없는 어딘가에 방치되지 않도록 지켜내는 일이다. 태평하게, 그러나 단단하게 여민 그런 마음으로 인생을 마주하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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