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핍

W. Hathor


♬ Love Again – 백현 (BAEKHYUN)



※ 가스라이팅, 폭행 등 트리거 주의.





  “예쁘다.”



  저를 보고 웃는 내 얼굴을 보며 동혁도 따라 웃었다. 언젠가 내게 보여줄 게 있다며 데려온 곳은, 긴 돌담을 따라 작은 집들이 늘어서 있는 고즈넉한 주택가였다. 예쁜 벽돌담이 꼭 우리가 자란 보육원의 담을 연상시켜 그런지 어딘가 안정감을 줬다.



  “이런 데를 어떻게 찾았어?”


  “우리 스무 살 되는 날, 너 데리고 나와서 여기서 살 거야.”


  “우리가 돈이 어딨어.”


  “나 요즘 투잡 뛰잖아. 여주야 오빠 믿지?”


  “오빠 같은 소리 하네. 야 여기 이래 보여도 서울이야, 이 동네에서 제일 작은 집도 몇 억은 할걸?”


  “뭔 아파트도 아니고... 저렇게 작은 집이 몇 억씩이나 한다고?”



  골목에서 가장 작아 보이는 집을 손으로 가리키며 동혁은 당황한 얼굴로 물었고 난 그런 그 애를 보며 푸스스 웃었다.



  “너 요즘 집값 얼만지 모르지.”



  동혁이 잡아온 오른손이 따뜻했다. 비록 계속 이렇게 살아간 들, 지금보다 티끌 하나 나아질 바 없는 삶이래도 계속 내일을 살게 하는 사람. 같이 있으면, 하루를 살아도 인간 김여주로 살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하는 사람. 동혁은 그런 사람이었다.



  우리가 처음 만난 날도 그랬다. 여기서 백까지 세면 오겠다는 엄마의 말에, 추위와 배고픔을 참으며 보육원 앞을 서성이던 날. 어둑한 밤이 밝은 새벽으로 물드는 동안 추운 발을 동동 구르며 나는 한참이고 엄마를 기다렸다. 그런 나를 처음 발견한 건 가장 일찍 잠에서 깬 동혁이었다.



  “배 안 고파?”



  조금 낡은 갈색 스웨터 소매로 눈을 비비며 보육원 계단을 내려오던 동혁이 날 발견하고 그렇게 말했다. 그 말이 어찌나 슬펐는지 나는 처음 보는 그 애의 옷자락을 붙잡은 채 엉엉 울었다. 엄마가 없는 낯선 곳, 캄캄한 밤, 지긋지긋한 배고픔, 몇 시간 동안의 추위 속에서 하얘지도록 입술을 깨물며 참았던 울음이 그 한마디에 준비도 없이 터져 나왔다. 동혁의 얼굴을 보고 알아차렸다. 엄마는 오지 않는다.



  서럽게 우는 내게 그 애는 아무것도 묻지 않고 그저 가만히 머리를 쓰다듬어줬다. 머리에 닿는 그 손의 따스한 체온이 이미 마음의 소리를 다 알아들은 듯 가만가만 내 속을 토닥였다. 아마 엄마는 알고 있었을 거다. 내가 일부터 백은커녕 오십까지도 셀 수 없어 한다는 걸.



  동혁은 내 손을 잡고 들어가 보육원 찬장에서 딱딱하게 식은 밥을 꺼내왔다. 그리곤 조그만 손으로 계란 부침을 만들어 밥 위에 얹어줬다. 제대로 된 밥상은 아니었지만 얼마 만에 보는 음식인지 나는 밥풀이 입가에 붙는 줄도 모르고 허겁지겁 한술을 입안에 떠 넣었다. 아직 다 마르지 못한 눈물이 얼굴에 덕지덕지 묻은 채였다.



  “천천히 먹어. 여기 물.”



  그 애는 방금 뜬 물컵을 밥그릇 옆으로 밀어주고선 턱을 괴며 내 눈을 들여다봤다.



  “근데 너 눈 진짜 예쁘다. 꼭 밤색 같아.”



  그 말을 듣고서 나는 입안의 밥알을 채 씹지도 못하고 아랫입술을 꼭 깨물어야 했다. 다시 또 눈물이 나올 것 같아서. 우리 딸 눈 참 예쁘다. 밤색 같네. 매일 밤 술에 절어 들어오던 엄마는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그렇게 말했다. 다정한 말로 나를 울리는 동혁에게선 엄마가 겹쳐 보였다.



  동혁은 항상 상대의 예쁜 면을 찾아 들여다볼 줄 아는 애였다. 볼품없이 창백한 피부색을 보고 설탕 같다고 말해주는 사람. 틱틱대는 말투가 꼭 생텍쥐페리의 소설 속에 나오는 도도한 장미 같다고 말해주는 사람. 그래서 뭐든지 뾰족한 나와는 확연히 정반대인 사람.



  보육원의 선생님들이나 애들 모두 우리 둘을 보며 참 안 어울리는 한 쌍이라며 신기해했다. 천진하고 다정한 성격 덕에 금세 누구에게나 사랑받는 이동혁과 모두가 다가오기 꺼려 하는 까칠한 김여주. 참 많이 다른 둘인대도 불구하고, 지금처럼 서로가 서로 밖에 없는 사이가 될 수 있었던 건 온전히 동혁의 노력 덕이었다.



  보육원에 오기 전까지 동네 친구 하나 없던 내게, 누군가를 사귀고 마음을 털어놓는다는 건 그다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어린아이의 사회성은 안정된 가정과 자존감이 바탕이 되어야 길러진다는 말이 있다. 형광등이 깜빡 거리는 좁은 방 안에서 홀로 엄마를 기다리는 걸 하루 중 대부분의 일과로 여기고 살아왔던 내게 그런 것들은 언감생심 가지고 싶어도 가질 수 있는 것들이 아니었다.



  그래서 보육원 생활 초반의 나는 늘 지나친 경계심을 갖고 사람을 대했었다. 처음엔 반반하고 얌전할 것 같은 얼굴에 경계 없이 다가오던 이들도 내 공격적인 행동과 말투를 겪은 후엔 너 나 할 것 없이 제풀에 지쳐 나가떨어졌다. 무관심과 방치가 익숙했던 꼬맹이는 늘 주변 사람들을 곤란하게 만들었고, 다가오는 친절엔 고약한 말로 상처를 내며 밀어냈다.



  그런데 유독 동혁은 좀 달랐다. 그 애 특유의 낙관이 다가와 곧 습관처럼 스며들었다. 힘주어 밀면 한 발자국 물러나 나를 기다려줬고, 다가온 손을 할퀴면 저를 할퀴느라 입었을 내 상처를 핥아주는 그런 애였다.



  똑같이 버려졌을지언정 엄마의 얼굴은 기억하고 있는 나와 달리, 동혁에게 있어 엄마에 대한 기억 같은 건 조금도 남아있지 않았다. 목도 가누지 못하는 핏덩이일 때부터, 그리고 머리가 조금 자라 옹알댈 수 있는 아가였을 때에도, 보육원이 동혁에겐 집이고 울타리였다. 선생님들이 동혁의 부모님이었고, 함께 자란 동기들이 그 애의 형제였다.



  젖먹이 시절 동혁이 처음 맡겨진 보육원은 더 이상 늘어나는 원생 수를 감당하기 어려워 다른 보육원으로 동혁을 떠밀 듯 보냈다고 한다. 그 애는 여러 곳을 돌고 돌다 우리가 함께 자란 보육원으로 오게 된 거였다. 어두운 그림자 하나쯤은 있을 법한데도 처음 만난 동혁은 전혀 그런 티를 내지 않았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 꼭 제대로 된 집에서 사랑받고 자란 애 같았다. 타인에게 사랑을 준다는 게 어떤 건지 아는 애처럼 늘 다정한 눈으로 사람들을 보곤 했다.



  나는 그 애를 통해 태어나 처음 사회성이란 걸 길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동혁은 내 인생의 한줄기 행운이었다. 한때는 그런 동혁이 어쩌면 나를 존재하게 하는 천사인 걸까 하는 바보 같은 상상도 했었다.



  반대로 이동혁의 인생에서 날 만난 건 그에게는 큰 불행이다. 나는 늘 나쁜 시선을 달고 다니는 편이었다. 오해와 경멸. 시기와 적대. 내가 있는 자리엔 늘 크고 작은 사건들이 터졌고, 굳이 오해를 풀기 위해 노력하지 않는 나와 달리 동혁은 유들유들하게 웃으며 꼬인 매듭을 손쉽게 풀어나가는 쪽이었다. 그래서 난 이동혁이 이제노라는 불행을 만난 게, 어쩌면 이런 내 모난 성격 탓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수도 없이 했다.



  동혁은 나를 만나던 그 순간에 그렇게 다정하게 굴지 말았어야 했다. 늘 남을 향해 대가 없이 저지르고 보는 그 선의를, 넌 그날만큼은 내밀지 말았어야 했다. 그렇게 다가온 네 손을 뿌리칠 의지도 용기도 내 쪽에선 결코 없었으니까.



  “너 그때 진짜 작았는데.”


  “뭐래. 내가 너보다 훨씬 컸거든?”


  “야야야 그게 뭔 소리냐아-.”



  동혁이 서울에 있을 때 자주 함께 오던 이 돌담길을 걸으며 그 애의 천진한 목소리를 떠올렸다. 그리고는 동혁의 얼굴을 마음속에 그렸다. 우리가 떨어져 지낸 시간 동안 그리운 감정이 깊어질수록, 나는 동혁의 얼굴이 자꾸만 낯설어져 갔다. 매일 같이 보내오는 사진 속 동혁의 얼굴은 내가 알던 그대로인데, 어딘가 조금씩 어른의 티를 내며 자라고 있는 그 애의 변화는 참 멀게 느껴졌다. 우리가 다시 서로가 서로밖에 없던 그 세상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언젠가 그날이 오긴 올까.



  좋은 일자리가 났다며 동혁이 지방으로 내려간 지 넉 달이 조금 넘었다. 가장 견디기 힘든 건 동혁과 먼 거리에 있다는 상황에서 오는 불안함이었다. 몇 개월이면 다시 돌아온다는 그 말이, 내겐 오히려 우리가 점점 멀어질 거라는 말처럼 들려서 그 불안함을 떨쳐내느라 처음 한 달은 베개에 울음을 묻으며 지내곤 했다.



  그 애가 너무 보고 싶은 마음에 나는 걸음을 조금 늦춰 동혁에게 전화를 걸었다. 신호음이 두 번도 채 울리기 전에 경쾌한 목소리가 귀를 타고 울렸다. 저절로 입꼬리가 올라갔다. 밤샘 작업이 많아 제대로 못 자고 피곤할 텐데도 동혁은 늘 짜증을 내는 법이 없었다. 항상 밝은 목소리로 제 근황을 전해왔다. 그 목소리를 듣고 그제서야 나는 숨통이 트이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요즘 밥은 제대로 챙겨 먹고 있지? 너 얼굴이 너무 말랐다.”



  정말 그랬다. 어제 보내온 사진 속 동혁의 얼굴은 조금 더 갸름해져 있었다.



  -다이어트하느라 그래. 요즘 살이 너무 올라서 옆으로만 커진다 야.


  “너 이제는 약간 해골 같아 보여. 다이어트 같은 소리 말고 끼니 제대로 챙겨.”


  -걱정 말어. 여기 아저씨들 엄청 좋아. 나이도 어린애가 궂은일 한다고 기특해하시고 간식도 챙겨 주셔. 일도 하나도 안 힘들어.



  동혁의 목소리가 스피커를 타고 꼭 노래처럼 흘려들어왔다. 나는 그게 좋았다. 가볍게 흩어지는 청아한 웃음소리도 참 좋았다. 동혁의 목소리를 듣고 있으면, 우울했던 기분도 언제 그랬냐는 듯 밝아지곤 했다. 나는 가만히 눈을 감고 수화기 너머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그리곤 생각했다. 이대로 시간이 멈췄으면 좋겠다. 너, 나, 돌담, 이 셋뿐인 공간에서.



  -네 얘기해 줘.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해. 나 안 보고 싶어?


  “애냐? 두 달만 더 있으면 볼 건데...”


  -아, 김여주 진짜... 또 나만 진심이지?



  늘 표현하고 싶은데, 그게 잘 안됐다. 애교도 없고 무뚝뚝한 나와 달리, 동혁은 늘 천연덕스럽게 굴며 딱딱한 우리 사이의 벽을 계속 허물어갔다. 언젠가 나도, ‘보고 싶다’, ‘같이 있고 싶다’, ‘고맙다’, ‘좋아한다’라며 하나씩 다 표현할 수 있는 날이 올 거라고 말했다.



  -이제노가 시비는 안 걸지?



  듣고 싶지 않은 이름 세 글자에 걷던 걸음을 멈춰 섰다. 그리곤 감은 눈을 떴다. 섣불리 대답하지 못한 채 땅에 진 그림자를 내려다보며 나는 숨을 멈췄다. 손과 발이 제자리에 얼어붙는 느낌이 들어 미동도 할 수 없었다. 낮에 맞은 볼이 다시 저릿하며 아파왔다.



  동혁아, 우리 도망갈까.



  일상적인 동혁의 질문에, 나는 밀려오는 울음을 참으며 하고 싶은 그 말을 삼켰다. 도망갈까. 낮 동안 꼭꼭 숨겨온 서러움이 이 때다 싶어 고개를 들고 갑작스레 찾아왔다. 물음에 쉽사리 대답을 하지 못한 채, 울음이 터져 나올까 숨도 못 쉬고 멈춰 있는 나를 눈치챈 듯한 동혁이 가라앉은 목소리로 다시 물었다.



  -무슨 일 있구나.


  “...그런 거 아니야. 걔 요즘 바빠서 나한테 관심도 없어.”


  -여주야.



  하염없이 따뜻한 목소리로 뭉친 마음을 녹여오는데, 약해진 마음을 들킬까 겁이 났다. 그토록 좋아하는 목소리인데 오늘은 그냥 전화를 걸지 말 걸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 다시 서울 올라갈까?


“...아니이.”



  간신히 대답하곤 울음이 나올 것 같은 입을 나약한 말과 함께 손으로 틀어막았다. 응 동혁아, 다시 서울 와.



  -너는 무슨 애가 맨날 생각도 안 해보고 바로 대답하냐? 사람 섭섭하게...


  “...돈 벌어와서 집 사줘. 남에 집 얹혀사는 거 눈치 보여.”



  나 그 집에서 더는 못 살겠어.



  -이제 슬슬 결혼하자는 간접적 동의인가?


  “웃겨, 야 내가 왜... 너랑 결혼하냐?”



  우리 도망가자 동혁아.



  -끝까지 보고 싶다는 얘기 한 번을 안 해주네... 서운하게.



  동혁아 보고 싶어.







결핍







  “여주 이제 오니?”



  현관문을 들어서자마자 보이는 익숙한 흰색 운동화에 명치가 저려왔다. 며칠 전 들른 병원에서는 과민성 위장염이라고 했다. 과민이라면 과민이지, 이 집에 들어오는 순간부터 자연스레 온 신경이 곤두서게 되니까.



  “여사님 퇴근 안 하셨어요?”


  “마침 가려고 했지. 저녁은 먹었니? 잠깐 있어봐, 아줌마가 국 데워 줄게.”


  “아니에요 제가 할게요. 늦었는데 얼른 퇴근하셔야죠.”


  “그럼 그럴래? 거르지 말고 꼭 챙겨 먹구. 참, 회장님 내외분은 오늘 안 들어오셔.”


  “들었어요, 제노는요?”


  “일곱시쯤 왔는데 그 뒤로는 통 안 내려오네? 일찍 잠들었나 보더라. 너도 얼른 저녁 먹고 들어가 좀 쉬어. 공부하느라 얼굴이 많이 상했네.”


  “그럴게요. 조심히 들어가세요.”


  “그래, 내일 보자.”



  문이 닫힌 집안은 조용하고 어두웠다. 볼에 물든 푸른 멍 자국을 가려주기 충분했다. 괜히 들켜서 좋을 게 없었다. 늘 그 뒷감당은 내 몫이었으니까. 김여주, 너도 참 노련해졌다 생각하며 욱신거리는 볼을 매만지는데 주머니 속에서 휴대폰이 울렸다. 치마를 뚫고 나온 불빛이 어두캄캄한 거실 안을 반짝하고 비춘다.


 

[  올라와.  ]  오후 11:02



  제노였다. 오후 나절 내내 찬 바람을 쏘이며 억지로 가라앉혔던 구역감이 다시금 목을 타고 올라왔다. 심장이 빠르게 쿵쾅거렸다.



  여주야, 세상엔 열심히 노력해서 안되는 건 없어. 보육원 동기와 말다툼을 하고 혼자 시무룩해 있던 날, 동혁이 그렇게 말했다. 열심히 노력해서 안되는 일이란 없다고. 네가 노력하면 모난 마음도 언젠가는 부드럽게 다듬어질 날이 올 거라고. 지금 너를 미워하는 마음을 가진 상대의 마음도 노력하면 돌릴 수 있다고. 그러다 너무 지치면, 차라리 무시해버리고 너를 더 사랑해주는 사람들에게 더 애정을 쏟으라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 주변의 사소한 것들에 그다지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다고.



  근데 동혁아, 세상엔 그럴 수 없는 일들도 있더라고. 이 집에 온 뒤로는, 너를 떠나 외딴곳으로 온 후로는, 아무리 노력해도 안 되는 것들 투성이야. 난 매일 점점 더 작아져. 다시 그때 그 좁은 방안에 홀로 있던 여섯 살로 돌아가. 하염없이 엄마를 기다렸던 것처럼 이제는 너를 기다려. 그리고 늘 반 정도는 정신이 나간 채로 시간을 보내.



  단 하나 다른 게 있다면, 이제 그 방안엔 내 몸과 마음을 갉아먹는 괴물이 함께 살아. 도망칠 수도 없이 시퍼런 눈으로 항상 나를 쫓는데, 난 그 눈에 매일 상처를 입고 조금씩 나를 잃어가. 하루 종일 찢어질 때로 찢어진 마음을 안고 밤마다 내방 침대에 누워 똑같은 상상을 매일 해. 우리가 성인이 되는 날, 네가 내 손을 잡고 함께 이 집을 떠나는 그런 상상 말야.



  끼익하며 울리는 계단 소리가 자꾸만 발을 제자리에 묶어 댔다. 저 위로 올라가는 건 위험해. 도망쳐. 어서 도망쳐. 마치 귓가에 그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조금만 더 참으면 누려볼 수 있는 동혁과의 미래가 지금보다 아주 약간은 밝을 수 있기를 바라면서 나는 한 걸음을 더 내디뎠다.



  “참 이상해.”



  낮은 목소리가 허공 사이를 가르고 울려왔다. 제노였다. 계단 난간 끝에 두 팔을 얹은 그의 형체가 어둠 속에서 어렴풋이 보였다.



  “이동혁은 지금 서울에 없고, 네 주위에 다가올 만한 개미 새끼 하나 없도록 깨끗이 치웠는데 너는,”



  올라오는 나를 보는 시선이 느껴져 나는 침을 한번 삼켰다.



  “여전히 집에 발을 못 붙이고 어딜 그렇게 돌아다니는지.”



  동혁과 통화했던 일을 문제 삼으며 성질을 부렸던 낮과 달리 조금 가라앉은 분위기를 풍기는 제노였다. 하지만 그게 내가 그의 눈에서 온전히 벗어났다는 뜻은 아니었다. 계단을 오르면 오를수록 그의 시선이 온몸에 느껴졌다. 제노와의 거리는 이제 열 걸음 남짓이었다.



  “그리곤 꼭 이렇게 숨어 들어오잖아, 쥐새끼처럼.”



  다섯 걸음.



  세 걸음.



  “다리라도 부러트려놔야 내 시야 안에 있으려나.”



  두 계단 정도의 거리를 두고 더 다가가지 못한 채 난 제노의 얼굴을 올려다봤다.



  “울어봐, 여주야.”



  그는 조금의 감정도 담겨있지 않은 무표정으로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선함과 악함이 공존하는 얼굴. 좀처럼 웃지 않은 채, 늘 제 집 거실처럼 싸늘한 기운을 띠는 얼굴로 제노는 꼭 어디서든지 나를 보고 있었다.



  어쩌다 몇 번 제노가 웃는 얼굴을 하고 있는 걸 본 적이 있다. 제 나이처럼 웃을 때는 복슬한 강아지 마냥 선해 보이지만, 그 웃음이 사실은 그의 무표정보다도 더 위험한 상태란 걸 아는 데는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양의 탈을 쓰고 속에 칼을 품은 이리처럼, 제노가 천사 같은 얼굴로 웃고 나면 꼭 얼마 지나지 않아 속에 품은 그 날카로운 흉기에 누군가가 깊게 찔리곤 했다. 처음은 동혁이었고, 그다음은 나, 그리고 내게 다가왔던 모든 관심과 선의들.



  “그 예쁜 얼굴로 다시 한번 울며 빌어봐.”



  계단을 걸어내려온 제노가 한 손으로 내 턱을 그러쥐며 눈을 맞춰왔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그의 감정 변화가 두려워 뭐라 대꾸하기가 어려웠다. 마주한 얼굴을 제대로 바라보지 못하고 눈을 또르르 내리깔며 나는 입을 다물었다.



  “네가 아니라 이동혁을 꺾어 놔야 좀 고분고분 해지려나.”



  그런데 오히려 그게 일종의 기폭제였던 것 같다. 동혁을 건드리겠다는 말에 다급히 올려다본 제노의 표정은 말로 설명하기 어려울 정도로 일그러져 있었다.



  “잘...못했어...!”



  말없이 노려보는 그 눈빛이 꼭 피할 데 없는 어둠 속으로 내 전부를 몰아넣는 느낌이었다. 섣부른 대답이 도리어 해가 될까 망설이던 내 침묵이 그의 하나 남은 폭발점이라도 건드린 모양이었다.



  “너 진짜 사람 돌아버리게 만드는 데 재능 있다 여주야. 이동혁이 아니면 내가 너랑 대화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잖아, 그치?”



  내 침묵이 그에게 그러하듯, 이동혁이란 존재 자체가 내게 있어 기폭제였다. 내 생각과 행동을 움직일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자 목적. 제노는 그걸 잘 알았고, 끝끝내 제가 원하는 모습이 되어주지 않으면 결국 이동혁이라는 최후의 패를 꺼내 들었다.



  “동혁이 오른쪽 무릎은 좀 괜찮대?”


  “...”


  “왼쪽도 병신 되면 참 볼만하겠다.”


  “...제발.”



  턱을 쥔 제노의 손이 차츰 내 목으로 옮겨갔다. 그리곤 서서히 목을 조였다. 숨이 점점 가빠짐과 동시에 머릿속이 조금 몽롱해졌다. 늦게라도 저녁을 안 먹고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스륵 웃는 얼굴을 하고선 끔찍한 기억을 상기시키는 말을 잘도 하는 게 퍽 이제노 다웠다. 지금도 고질병처럼 달고 사는 동혁의 무릎 통증은 그 애에게뿐만 아니라 내게도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흉터였다.



  머릿속에 흉터처럼 남은 그날의 기억이 떠올랐다. 굳게 닫힌 대강당 문과 웅성대던 주변, 피 칠갑을 하고선 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이동혁. 모든 걸 지켜보며 가만히 서있던 이제노. 동혁을 향해 울부짖는 나. 주위의 그 누구 하나 말리지 못하는 잔인한 광경까지. 나는 눈을 질끈 감았다.



  내가 제노의 집에 입주하게 되면서 동혁은 나와 함께 제노가 다니던 사립중으로 전학을 가게 됐다. 보육원 시절부터 죽 함께 지내던 동혁과 떨어지는 걸 무척 힘들어한 나를 위해 제노 집안에서 베푼 일종의 호의였다. 동혁의 전학이 결정된 날, 제노는 제 분이 풀릴 때까지 밤새 내 뺨을 호되게 내리쳤는데 그런 건 역시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어쨌거나 졸업전까지는 동혁과 함께 할 수 있게 된 거니까. 넓은 잔디밭 운동장과 새 건물의 페인트 냄새가 좋다며 나를 끌고 학교 이곳저곳을 다니던 동혁의 들뜬 얼굴이 눈에 선했다.



  그중에서도 동혁이 가장 좋아하던 곳은 특기생들이 발레 수업을 듣던 널찍한 대강당이었다. 우리는 수업이 끝나면 곧장 그곳으로 달려갔다. 잔잔한 클래식 음악에 맞춰 대열을 이루고 군무를 추고 있는 학생들을 보며 동혁이 눈을 반짝였고, 난 그런 그 애의 설레하는 얼굴을 보는 게 좋았다.



  “너 진심 천재 아냐?”



  동혁은 시험 삼아 팔다리를 몇 번 휘적이더니 이내 특기생들이 추는 동작들을 완벽하게 모방해냈다. 한 번 보고도 어쩜 그렇게 복사한 듯이 곧잘 따라 추는지 신기할 따름이었다. 나비. 그래 나비. 몸 쓰는 일에는 영 젬병인 나와 달리, 눈앞의 동작을 보곤 단숨에 따라 하며 유려하게 움직이던 동혁의 춤선은 꼭 사뿐 거리는 나비를 닮아 있었다. 만약 보통의 가정에서 자랐다면 동혁은 무대 위를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무용수를 꿈꿨을지도 모른다.



  “사회통합 전형인 거 감안하면 너도 특기생 지원할 수 있어.”


  “그 정도까진 아니야. 흉내 조금 내는 건데 뭐.”


  “바보냐. 몇 달 연습한 쟤들 보다 너가 훨씬 잘 추는데...”


  “그럼 너도 같이 지원해.”


  “나 무용 창작 수행 4점 받은 거 모름?”


  “너도 제대로 안 배워봐서 그렇지 조금만 익히면 저거보다 훨씬 예쁠걸. 어머니가 댄서신데 우리 여주, 그 피가 어디 가겠어?”



  얼굴도 모르는 남자들의 짧은 쾌락을 위해 매일 춤을 추며 몸을 팔던 여자. 내 기억 속에선 거의 매춘부나 다름없었던 엄마의 싸구려 같은 삶을, 동혁은 멋진 무용수쯤으로 포장해 주곤 했다.



  “...대체 어떤 뇌구조를 가져야 술집 작부를 댄서로 둔갑시킬 수 있는 거야?”


  “말 또 못되게 하지.”


  “그 여자 얼굴 이제 까마득해. 그러니까 너도 그만해 좀.”



  말도 안 되는 그 발상에 단단히 질린 나는 동혁이 엄마 얘기만 꺼내면 불쾌하단 표시로 날카롭게 대꾸하며 눈을 피했다. 그럼 그럴 때마다 그 애는 뾰로통한 내 볼을 살살 매만지며 눈을 마주치고 용서를 구해왔다. 거절도 못 하게 축 처진 강아지 눈을 하고선. 끝내는 내가 화를 누그러뜨릴 것을 잘 아는 게 분명했다. 어느 누가 이 얼굴을 보고 넘어가지 않을 수 있을까. 동혁이 좋았다. 늘 곁에서 반짝일 것 같은 그 애의 존재 자체가. 결국 널 보며 난 어쩔 수 없다는 듯 웃고, 넌 그런 날 따라 웃고.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우리의 좋은 날에 대한 기억은 그게 마지막이다.



  “네까짓 게 무슨 무용이야.”



  유난히 그날은 종례가 길었다. 먼저 도착해 기다리고 있을 동혁을 떠올리며 평소처럼 대강당을 향해 뛰어갔다. 그 기억은 희미하게 묻어두려 하면 할수록 반대로 더 선명하게 되살아났다. 해사하게 웃으며 반겨줄 동혁을 기대하며 가던 그 시간과 복도 창으로 들어오던 빛의 색깔, 삐걱이며 열리던 문의 소리, 새 원목의 냄새, 비릿한 흙냄새, 그리고 평소와는 다른 상태로 나를 맞이한 동혁의 얼굴까지.



  문을 열자마자 눈에 보인 건, 먼지를 뒤집어쓰고 간신히 숨을 내쉬던 동혁의 모습이었다. 이미 한참을 맞은 건지 새하얀 하복 셔츠는 거뭇거뭇한 신발자국으로 뒤덮여 있었다. 얼굴과 몸 곳곳에 생채기를 달고 힘겹게 바닥을 기는 동혁을 발견하고 나는 놀라 달려갔다.



  스무 명 남짓 동혁을 둘러싸고 있던 무리를 비집고 들어가자 그 중심엔 동혁을 벌레 보듯 내려다보던 이제노가 서있었다.



  “시궁창에서 자란 새끼가 꿈도 야무져.”


  “미쳤어? 멈춰! 저러다 죽겠다고...! 이동혁! 너 일어나!”



  여기저기 밟히고 있던 동혁에게 달려가려는 내 팔을 제노가 붙잡았다. 시선은 동혁에게 고정한 채로 날카로운 말을 쏟아냈다.



  “같은 학교에서 같은 물 좀 먹으니까 이제 네가 뭐라도 된 것 같아?”


  “이동혁! 일어나라고...!”



  제노의 손엔 특기생 지원서가 들려 있었다. 분명 아침에 교무실에서 내 손으로 제출하고 온 지원서였다. 동혁이 그대로 꿈을 접는 게 아쉬워 내 나름에 부려봤던 오기였다. 하나 남은 지원서에 동혁의 이름을 적어 신청함에 넣었다. 어찌 된 이유인지 재수 없게도 그 지원서가 제노의 손에 들어가게 된 거고. 분명 동혁은 영문도 모른 채 끌려와 맞았을 터였다.



  “그만 꿈 깨.”



  동혁은, 그러니까 김여주 옆에 있는 이동혁은 언제나 이제노에게 있어 벌레만도 못한 존재였다. 내 옆에 있는 한 이동혁은 절대 행복할 수 없구나, 웃을 수 없는 거구나, 뼈저리게 느낀 그날 그 애는 그렇게 내 앞에서 힘없이 으스러졌다.



  제노의 눈짓 한 번에 동혁을 둘러싸고 있던 무리 중 하나가 간이의자를 들어 그 애의 무릎을 세게 내리쳤다. 그 찰나의 순간, 바닥을 짚고 일어나려던 동혁이 쿵 하고 쓰러졌다. 금방이라도 부서질 듯 위태롭던 의자의 이음새가 두 조각이 났다. 맞은 동혁의 무릎이 부르르 떨렸다. 순간 주위가 조용해지고, 떨어진 나사 한 조각만이 도르르 소리를 내며 굴렀다.



  그런데 어딘가 조금 이상했다. 그대로 일어나지도 움직이지도 못한 채 동혁은 꼭 죽은 사람처럼 누워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주변은 온통 비명소리로 뒤덮였다. 분명 사고는 사고였다. 의자를 내려친 장본인도, 그걸 지켜보던 주변인도 모두 놀라 어쩔 줄 몰라 했다. 그런데 유독 이제노만, 그 상황을 예상이나 한 듯이 태연하게 동혁의 무릎을 쳐다보고 있었다. 눈이 저절로 그 시선을 따라갔다. 동혁의 무릎 옆쪽으로 작은 못이 튀어나와 있었다.



  사람이 그렇게 많은 피를 흘리는 걸 태어나 처음 봤다. 조금이나마 가늘게 움직이던 동혁의 떨림이 턱하고 멈췄다. 반대로 내 몸이 벌벌 떨려왔다. 간신히 발을 떼며 눈앞에서 피를 흘리는 동혁 쪽으로 손을 뻗자, 제노가 시야를 막았다. 달려나가려는 몸이 우악스레 잡혀 나는 그대로 강당 밖으로 끌려 나왔다.



  그다음은 정확히 기억이 나질 않는다. 나는 조용히 울고 있었을까. 소리를 지르며 악을 썼을까. 눈앞이 캄캄해졌다. 온몸에서 수분이 다 흘러 나가듯이 힘이 빠져왔다. 귓가에 시끄럽던 비명소리와 어렴풋이 들리던 사이렌 소리가 서서히 작아져 갔다. 꿈? 그래 꿈이었으면 좋겠다. 이대로 눈을 뜨게 되면 다시 둘만 있는 강당으로, 아니다, 우리에게 서로밖에 없던 훨씬 그 이전의 시간으로 돌아갔으면.







바빠 죽겠는데 입덕 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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