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네, 형. 그러니까 거기서 **번 버스를 타시고 쭉 오시다가 @@ 사거리 정류장에서 내리시면 되요. 내리셔서 쭉 5분 정도만 걸어오시면 바로 보일 거예요."


 대학교 후배의 요청으로 그 친구가 일하는 곳에 강연을 하러 간 적이 있었다. 서울 은평구 쪽이었는데, 그 동네는 귀에는 익숙했지만, 눈으로는 한 번도 보지 못한 동네였다. 때문에 날짜를 잡을 때부터 나는 주소를 물어보고 어떻게 가야 하는지를 검색했다. 또 혹시 헤맬 것 같아 후배에게 일부러 연락하고, 당일엔 일부러 2시간 일찍 출발했다. 덕분에 아주 여유 있게 근처에 도착할 수 있었다.


 누가 보면 이런 내 모습이 ‘겁쟁이’ ‘쫄보’로 보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한다. 물론, 조금 과하긴 하다. '늦으면 안되니까' 생각했기 때문도 맞지만, 한편으로는 불안했다. 처음 가보는 길에서 헤매진 않을까. 그래서 혹시 시간을 더 지체하진 않을까 염려되었기 때문이다. 혼자 가는 길, 거기다 처음 가보는 길이라면 더 그렇다. 불안하다. 잘 모르기 때문이다. 



 "아니 잠깐만..."


 "어? 이게 뭐야?"



 어디 길만 그럴까? 무엇인가를 처음 볼 때 우리는 낯선 감정을 넘어 충격에 빠진다. 보수적이기 때문이 아니라 익숙함에서 편안함을 느끼기 때문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우리를 더욱 충격에 빠뜨리는 일은 다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그것이 내가 알고 있던 사실과 다를 때 심화된다.


 "내가 진짜 이렇게 생겼어?"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이건 좀 너무했다. 졸업 사진도, 주민등록증 사진도 이렇게까지 나오진 않았던 것 같은데. ‘여권 갱신해야 하니까 사진도 다시 찍어야지’ 생각하고 여권용 사진을 찍은 뒤 결과물을 보고 나는 절망했다. 물론 뭐, 생긴 대로 나왔겠지만, 내가 생각한 것과 보이는 내 모습이 너무 달랐기 때문이었다. 


 "와, 진짜 키워도 되요?"


 시골에 사시는 할머니는 놀러 갈 때마다 별것을 다 주셨다. 그중에는 할머니 댁 고양이가 낳은 새끼 고양이도 있었다. ‘치즈 태비’라고 하던가? 노랗다기 보다는 황금빛이 도는 윤기 나는 털이 인상적인 그 고영님 말이다. 아빠의 눈치가 보이긴 했지만, 어린 나와 동생은 그대로 녀석을 집으로 데리고 왔다.


 "아휴 시끄러워!"


 지금 생각해보면 당연했다. 어린 녀석을 나 좋으라고 데려왔으니... 그건 너무 가혹한 처사였다. 지금도 혼자 있으면 그때 그 녀석보다 갑절은 나이가 더 먹은 나도 엄마 생각이 나는데, 그때의 너는 얼마나 서럽고 엄마가 보고 싶었을까? 할머니 댁에서 데려온 아기 고양이는 밤새 울었다.


 "오리!"


 "꽥꽥!"


 "강아지!"


 "멍멍!"


 고양이를 데려왔던 그때보다 더 어렸을 때, 유치원에서 나간 소풍에서는 분명 ‘고양이!’ 하면 '야옹야옹!' 했었는데, 데려온 그 녀석은 고양이가 아니라 어디 다른 곳에서 나온 고양이인 척 하는 무언가였을까? 분명 얼굴은 그림책에서 본 고양이가 맞았는데, 그 녀석은 ‘야옹’ 하고 울지 않더라. 


 고양이를 한 번이라도 키워 본 사람이라면 고양이가 ‘야옹’이라는 소리 빼곤 온갖 소리를 다 내며 운다는 사실에 이미 익숙하다. 어디 고양이 뿐이겠나. 현실은 상상이나, 우리가 생각하는 통념은 물론 생각하던 의도 혹은 계획과 달라지고 틀어질 때가 얼마나 많은지. 


 ‘벨이 고장 나 울리지 않으니 번거로우시겠지’


 무슨 생각이 드는가? ‘아, 요즘 갑질이 유행이라더니 배달하면서 누가 갑질을 했구나?’ 생각한다면 오해다. 인터넷에서 소위 ‘웃음짤’로 많이 돌아다니는 이 문구는 배달 음식 영수증에 적혀 있는 요구사항인데, 원래 '벨이 고장 나 울리지 않으니 번거로우시겠지만~' 으로 이어지는 친절한 문구였다. 하지만 영수증에 나오는 문구는 글자 제한이 있었고, 하필 ‘번거로우시겠지‘까지만 나온 게 문제였다.


 "어휴, 오늘은 허탕이야..."


 "이런 날도 있지. 돌아감세."


 ‘세월을 낚는 것’이라는 말은 취미로 물고기를 낚는 누군가에게 해당하는 말일지 모른다. 어떤 사람들에게 그 일은 삶이 걸려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여기 쓸쓸하게 항구로 돌아가는 어부들이 있다. 몇 시간을 날렸는지 모른다. ‘집에 가면 뭐라고 말해야 하나’ 갑갑한 마음으로 머리를 싸매고 항구를 향해 가는데 갑자기 뭔가가 수면에서 튀어 올라 배로 들어왔다.


 "으악! 이게 뭐야!"


 너무 놀라 다시 그걸 던져버릴 순 없었다. 너무 무거웠거든. 다랑어 한 마리가 마침 상어 떼에 쫓겨 달아나다가 자기도 모르게 너무 급해서 어부들의 그 배 위로 뛰어든 것이었다. 어부들의 놀란 가슴은 이제 흥분으로 차올랐다. ‘집에 뭐라도 할 말이 생겼다’ 생각하며 환하게 웃었을 것이다. ‘망했다’ 생각하며 올라왔던 짜증은 언제 그랬냐는 듯 조용히 내려갔음이 분명하다.


 글쎄, 뭘 주문했는지는 모르지만 주문 요구사항을 적을 때 ‘엿 먹어봐라’ 생각하고 딱 거기까지만 적어놓고 킬킬 댔을 리는 없다. '아휴, 뭘 그렇게 열심히 해? 어차피 이따 이만한 다랑어가 우리 배에 들어오면 ‘어서 옵쇼!’ 하면 될 일인데!' 생각하며 어부들이 게으름을 피웠을 리 없다. 한 사람은 '죄송하지만 어쩔 수 없지...' 생각하며 미안한 마음으로 글자를 적어나갔을 것이고, 또 다른 사람들은 '제발 좀 잡혀라. 우리 애들 학교 보내야 하는데...' 간절한 마음으로 그물을 던졌으리라. 


 하지만, 이와는 전혀 다른 상황이 벌어졌다. 한 사람은 ‘따뜻한’ 의도와는 다르게 못된 심보로 약 올리는 문구를 보내고 말았고, 배에 타고 돌아가던 그 남자들은 생각하지도 못한 대어를 가지고 의기양양 항구로 향했다. '나는 배달 음식 안 좋아해요' ‘저는 어부가 아닙니다’ 이야기 할 당신이라도 충분히 공감할 만 하다고 생각한다. 다소 익숙하지 않은 이야기들로 예를 들었을지 모르지만, 예상하지 못한 일들은 그게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우리 주변에서 늘 일어나기 마련이니까.


 '안녕하세요? 김창완입니다. 뼈가 드러나게 살이 빠지셨다니 제가 다 안쓰러운 기분이 듭니다.'


 직접 듣지는 않았지만, 인터넷에서 보았던 김창완님의 이야기 한 토막이다. SBS 라디오 ‘아름다운 이 아침 김창완입니다’ 를 진행하는 그에게 '직장 생활로 스트레스를 받아 살이 쭉쭉 빠져요' 라는 내용의 사연이 도착했다. 그는 손편지에 동그라미를 잔뜩 그려 넣었다고 한다. 그렇게 하고 나서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적었다.


 '동그라미를 마흔 일곱개 그렸군요. 이 가운데 v 표시한 두 개의 동그라미만 그럴듯합니다. 회사생활이란 것도 47일 근무 중에 이틀이 동그라면 동그란 것입니다. 너무 매일매일에 집착하지 마십시오. 그렇다고 위에 그린 동그라미를 네모라고 하겠습니까. 세모라고 하겠습니까? 그저 다 찌그러진 동그라미들입니다. 우리의 일상도~'


 개인적으로 인생을 ‘라이브’라고 표현하는 것을 좋아한다. 인생에는 끊었다가 다시 촬영하는 일도, 다시 보기도 없으니까. 오직 한 번뿐이니까. 그런데, 참 얄궂은 것은 김창완님의 글에서처럼 우리의 동그라미가 늘 동그랗지 않다는 점이다. 그래, 인생은 그런 거다. 그러니까, 너무 힘주지 않아도 된다. 


 ‘야옹’하고 울지 않는 고양이처럼, 황당한 요구사항이 되어버린 배달 음식 영수증 같이, 갑자기 바다에서 튀어 오른 다랑어처럼. 별일이 다 일어난다. 인생이 생각했던 대로, 계획한 것처럼 풀리지 않는다고 해서 조바심 가질 필요 없다. 누가 노래한 것처럼 우리는 한 치 앞도 모두 모른다. 다 안다면 오히려 재미없을지도 모른다. 바람이 부는 날에 바람도 맞고, 가끔 생각하지도 못한 날에 비가 내리면 우산 없이 비도 좀 맞고, 그런 사람이 더 건강한 삶을 누릴 수 있지 않을까? 


 고양이는 ‘야옹’하고 울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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