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은 이름이 너무 많아서 하나로 단정짓기가 가장 어렵다. 그럼에도 두 남자는 서로에 대한 생각을 사랑이라 잠시 이름 붙여 두기로 한다.

 김민규의 고백 이후로 전원우의 집은 늘 사람이 둘이었다. 가끔 필요한 걸 가지러 잠깐 다녀오는 게 아니면 늘 전원우의 집에서 식사를 같이 하고 서로 할 일을 했다. 책상은 1인용이라 먼저 앉는 사람이 쓰고, 한 명은 식탁을  썼다. 방이 두 개가 더 남았지만 그 방의 문이 열리는 날은 없었다. 두 남자는 늘 전원우의 방과 거실, 부엌에서만 머물렀다. 암묵적인 규칙이었다.

전원우는 김민규가 일을 계속 나가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늘 밤에 나가 새벽을 꼬박 새우고 돌아오다 보니 같이 있는 시간이 줄기도 했고, 학교에 계속 다니는 상황이다 보니 김민규의 피로는 계속 누적된 상태였다. 일을 다녀와서 아침에 잠들면 오후에 일어나기 힘들어했다. 

"너 일 그만 두면 안 돼?"

"음.... 이게, 스무 살 때부터 쭉 이렇게 해 오니까 안 하면 허전하더라고. 그래도 줄여는 볼게."

김민규는 일주일 중 육 일을 일했다. 그걸 오 일로 줄이는 데에도 한 달이 넘게 걸렸다. 그럼에도 더이상 말하지는 않았다. 어쨌든 그것도 김민규의 인생이었으니까. 두 인생이 만났다고 해서 모든 걸 바꿀 순 없었다.


김민규는 1학년을 마치고 군대를 다녀와서 스물다섯에도 3학년이었다. 기말고사 기간이 되면서 김민규는 거의 잠을 자지 않았다. 쓰러질 것같이 걸어다니면서도 한 번도 쓰러지지는 않았다. 최대한 적은 학점으로 시간표를 채웠음에도 공부할 양은 정말 많았다. 매일 전원우의 책상에는 김민규의 전공책과 교양 교재가 쌓여 있었다. 김민규가 경영학과라는 건 그때 처음 알았다.

 시험기간에도 일은 꾸준히 나갔다. 다만 열 시간에서 여덟 시간으로 줄었다. 새벽 여섯 시쯤 귀가한 김민규는 세 시간 정도 잠을 자고, 일어나서 공부를 했다. 그리고 학교에 가서 강의를 듣고, 동아리 활동을 조금 하고 일을 하러 갔다. 사실상 집에 있는 시간은 새벽부터 오후까지밖에 없었는데도 둘은 서로의 부재에 대해 아무말 하지 않았다. 딱 동거인이나 룸메 정도의 온도였음에도 둘의 감정에 붙여진 임시명은 사랑이었다. 


김민규는 기말고사가 일주일 남자 일을 쉬었다. 조장에게 전화해 전공 시험이 일주일 남아서 일주일만 쉬겠다 했더니 삼 년ㅡ군대에 있었던 시간을 제외하고ㅡ내내 명절에도 김민규가 꾸준히 일을 할 만큼 성실한 사람이라는 걸 아는 조장은 제발 좀 쉬라며 삼 주의 휴가를 줬다. 택배 물류 센터에서 삼 주의 휴가를 받고도 복귀할 수 있는 경우는 거의 없지만, 김민규는 물류센터 안에서도 빼먹지 않고 성실하게 나오는 사람 중 하나로 유명했기 때문에 조장은 김민규가 휴가를 내도 딱히 신경 쓰지 않았다. 오히려 어디 아픈 데는 없는지 걱정부터 했다.

김민규도 물론 휴가를 쓰는 날은 정해져 있었다. 본인의 생일, 홍등가 골목에 버려진 날(왕언니에게 꼬치꼬치 캐물어 결국은 알아냈다), 그리고 중요한 시험이 있을 때. 이제 김민규의 휴가 예정일 목록에는 7월 17일과 2월 9일이 추가된다. 전원우의 생일과 전원우 부모님의 기일이었다. 

김민규가 일을 하는 이유는 순전히 언니들 때문이었다. 다른 레일의 조장이나 직원들은 대학생이 매일 일을 나온다는 말을들으면 무슨 급전이 필요해서 하는 거냐고 묻기도 했다. 김민규의 대답은 늘 한결같았다. 그냥, 몸 쓰는 게 좋아서요. 물론 거짓말이다.


김민규가 밤을 새우기 시작했을 때 전원우는 같이 밤을 새우겠다고 침대에 앉아서 책을 붙잡고 꾸벅꾸벅 졸았다. 그러면 김민규는 펜을 내려놓고 전원우에게 짧게 두어 번 뽀뽀해 준 다음 이불을 덮어 주었다. 그냥 친한 동생이라기엔 하는 행동이 낯간지러워 보였지만 누구도 둘의 관계에 대해 재정의하려고 하지는 않았다. 아무것도 아닌 애매한 사이가 좋았다. 


김민규의 기말고사는 빠르게 끝났다. 운좋게도 날짜가 다 붙어 있었다. 다른 동기들보다 일찍 시험이 끝난 김민규는 집에서 나오지 않았다. 아직 휴가도 일주일 남짓하게 남아있었고, 전원우와 보내지 못한 시간을 채우기 위해서였다.

다 큰 남자 둘이 침대 위에 두꺼운 이불을 덮고 뒤엉켜 누워 있다. 대낮이었지만 암막 커튼을 치고 스탠드를 켠 방은 밤과 다를 게 없었다. 시간이 가는 줄 모르게 끌어안고 몇 시간을 이야기했다. 요즘 전원우가 하는 공부에 대한 것, 김민규가 동아리에서 새로 만난 복학생 선배의 고리타분함, 기말고사의 난이도, 날이 풀리면 하고 싶은 일. 질문은 끊이지 않았고, 그에 대한 대답도 그랬다. 사 평 남짓한 방이 세상의 전부인 것처럼 살았다. 

"형, 나 내년에 휴학할까 봐."

"갑자기?"

"그냥, 학교 다니면서 일하니까 오래 못 보기도 하고. 우린 얼굴 보는 게 전분데...."

"네가 편한 대로 해. 나야 너 일 안 하면 좋지."

"아니, 일은 나갈 거긴 한데...."

"그래? 그래도 덜 피곤하겠네."

"여행도 가고 싶다. 그치."

"응."

"형은 여행 가 본 적 있어?"

"없어. 갈 만하면 일이 터져서."

"일?"

이것저것. 원래 초등학교 입학하고 한 번 가려고 했는데, 나 상담소 다니면서 시간이 없었어. 중학생 땐 부모님이 바쁘셔서 고등학생 때 가자고 얘기했었어. 전원우의 말이 끊긴다. 아무도 말하지 않았다. 이 정적이 밉지는 않다. 전원우는 규칙적으로 호흡했다. 김민규는 전원우의 가슴팍이 오르락내리락하는 걸 바라보다 이마에 입술을 한 번 꾹 눌렀다. 내가 다 해 줄게. 무언의 약속이었다.

"내년에 여행도 가자."

"그래."





평소와 다를 것 없는 밤이었다. 겨울 바람이 몰고 오는 한기가 더 거세질 때쯤 김민규의 핸드폰이 울렸다. 모르는 번호였다. 전원우를 잠깐 품에서 떼어 놓고 몸을 일으켜 전화를 받는다.

"여보세요."

"오빠! 오빠, 어떡해...."

"누구야? 막내?"

"응, 나, 난데.... 어떡해, 아... 어떡, 흐으...."

"왜 그러는데, 무슨 일 있어?"

왕언니가, 언니가... 잡혀갔어. 검사가 데려갔어.... 막내는 커튼 새로 밖을 내다보다 양팔을 수행원에게 붙잡힌 채 차에 올라타는 왕언니를 보고 눈을 감았다. 흐느끼는 목소리 사이로 김민규의 뒤통수가 뎅 하고 울린다. 성매매 특별 단속 들어왔구나. 김민규는 자신이 그 자리에 없어서, 전원우와 같이 시간을 보내느라 골목에 무관심해서 이렇게 된 거라는 자책을 시작한다. 막내는 열일곱에 집을 나와 일 년을 방황하다 업소에 들어온 것이었다. 울음을 그치지 못하고 숨이 넘어갈 듯 운다.

"어디야?"

"숙, 숙소.... 왕언니, 어떡해. 어떡해, 오빠...."

"숙소 문 잠가. 포주 아저씨 어디 갔어?"

"검사 오니까... 도망, 도망갔어.... 그, 동부지검, 검사랬는데...."

하여튼, 개새끼가. 아무한테도 문 열어 주지 마. 김민규는 신신당부를 하고서 전화를 끊는다. 당장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잠시 넋을 놓는다. 전원우가 김민규의 어깨를 부여잡고 왜 그러냐고 묻는데도 공허한 눈은 초점을 이미 잃었다. 김민규! 고함 소리에 그제서야 김민규가 정신을 차린다. 

"형, 나 어디 좀, 다녀올게."

"어디 가는데. 무슨 일이야."

"단속 들어왔대. 왕언니가 잡혀갔는데, 아.... 원래 이러지 않는데, 벌금만 때리고 가지, 잡아간 적은 없는데...."

"누군데, 검사야? 여기면 동부지검인데."

"응, 동부지검, 근데.... 아...."

"정신 차려. 일어나."

"어...?"

"일어나라고. 가게."

전원우가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김민규에게 패딩을 챙겨 던져 준다. 두꺼운 외투를 걸친 전원우가 책상 서랍 맨 아래칸을 열어 차키를 꺼낸다. 아버지의 유품이었다. 운전 안 한 지 꽤 됐는데.... 괜찮으려나. 정신이 빠진 채 어버버대는 김민규에게 패딩을 손수 입히고서 손목을 잡고 집을 빠져나온다. 지하 주차장의 차가 위치한 곳으로 발걸음을 돌린다. 김민규는 조용히 그 뒤를 따랐다. 

김민규를 조수석에 태우고서 차를 출발시킨다. 원래는 엔진을 예열한 다음 출발해야 하지만, 그럴 시간이 없었다. 검사들은 성매매 업소 종사자들을 개보듯 보는 경향이 있어서 위험했다. 특히 포주가 아닌 업소 여성이라면 더 그렇다. 오랜만에 듣는 차 엔진음에 전원우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김민규는 멍하니 앞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적잖이 충격받은 것 같았다. 서둘러 엑셀을 밟는다. 



왕언니는 취재실에 앉아 묵비권을 행사했다. 앞의 검사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조서만 조용히 내밀었다. 

"써."

"뭘요."

"아는 거 다 써."

아는 게 없는데 뭘 쓰라는 거야. 왕언니가 비릿한 웃음을 짓는다. 웃어? 검사도 조소를 띄운다. 

왕언니는 골목에 있던 동생들이 빠짐없이 숙소에 다 들어갔었는지 머릿속으로 복기한다. 단속을 한 번도 겪은 적 없던 막내는 허둥지둥대다 골목 구석에서 울고 있었고, 왕언니는 그런 막내를 찾아 숙소로 집어넣었다. 

건물 일 층에서 검사의 목소리가 들린다. 저쪽 뒤져! 검사는 건물 입구 앞에 서 있었다. 이러다가는 검사가 숙소까지 들이닥칠지도 모른다. 눈물을 가득 머금고 덜덜 떠는 막내에게 문 잘 잠가, 한 마디를 남기고서 다시 아래로 내려왔다. 검사는 왕언니를 보자마자 수행원을 불러 연행시켰다. 왕언니는 끝까지 수행원 중 하나가 숙소 건물로 빠지지 않는지 확인한다. 

검사는 입을 꾹 다물고 앉은 왕언니를 윽박질렀다. 아는 거 없어? 너희 포주는 어디 갔어? 몰라요! 내가 어떻게 알아요. 알지? 어딘지 말하면 보내줄게. 모른다고요, 도망간 걸 내가 어떻게 알아요! 검사는 헛웃음을 한 번 터뜨리고는 자세를 고쳐잡는다.

"다 알고 잡아온 거야. 빨리 말해. 집단 인신매매 계획했지."

"뭐요?"

"청량리, 영등포, 미아동, 그리고 여기 천호동. 포주들끼리 짜고 지금 여자들 중국 브로커한테 넘기려고 하는 거 다 까발려졌다고. 포주 어디 있어? 너도 가담했지? 다른 데서 제일 큰언니라고 불리는 애들은 이미 다 불었어."

청천벽력이었다. 왕언니의 손이 덜덜 떨린다. 집단 인신매매라니, 가당치도 않았다. 갈 곳 없는 여자들끼리 절벽까지 내몰리다가 모인 곳이었다. 자신도 그렇고. 가족같은 애들을 팔아넘긴다는 건 말이 안 됐다. 포주가 돈에 미쳐도 제대로 미쳤구나. 뭘 해? 숙소에 아이들을 밀어넣고 온 것을 떠올리자마자 심장이 단전까지 내려앉는다. 주머니를 더듬지만 취재실에 들어오면서 반납했던 것을 떠올리고 손을 모아 검사에게 빈다.

"핸드폰, 핸드폰 한 번만 빌려주세요."

"포주 전화번호 알지?"

"네, 네. 알아요, 아니까, 제발...."

검사가 다이얼을 켜 핸드폰을 내민다. 손에 땀이 가득 차는 바람에 계속 버튼을 잘못 누른다. 간신히 포주의 번호를 쳐서 통화 버튼을 누른다. 전원이 꺼져있어.... 왕언니가 종료 버튼을 급하게 누른다. 김민규, 민규.... 애들 챙겨달라고 전화해야 돼. 김민규의 전화번호를 누르려던 때에 노크 소리와 함께 수행원이 들어온다.

"저, 검사님. 이 여자를 찾는 남자 둘이 왔는데...."

"누군데."

"모르겠습니다. 친하다는데, 포주인 것 같지는 않고요. 가족이래요. 정말 급하답니다."

"데려와."

삼 분쯤 지나 김민규와 전원우가 취재실로 들어온다. 검사는 신분증을 확인하고 고개를 까딱였다. 왕언니는 마스카라가 다 번진 눈으로 김민규를 보고 벌떡 일어나 안겨들었다. 민규야, 애들, 애들... 어떡해, 포주 그 새끼가.... 왕언니는 울음을 그칠 줄 몰랐다. 김민규는 왕언니를 토닥이다가 다시 자리에 앉히고, 일의 전말을 물었다. 뭔데, 이거 어떻게 된 건데.


그러니까.... 영등포랑, 청량리 업소 포주들이 서울권 업소들 포주 모아서 애들 중국 브로커한테 넘기려고 했나 봐. 인신매매로. 근데, 난 진짜 몰랐어. 거기 큰언니들은 애들 넘기는 거 도와주고 돈 받으려고, 그랬나 봐. 난 진짜 아니야, 민규야. 나 몰랐어. 알잖아, 나 애들 가족처럼 생각하는 거 네가 제일 잘... 알잖아.... 포주 새끼 아까 단속 들어왔을 때 도망갔단 말이야.... 애들 지금 숙소에 있는데....

김민규의 표정이 점점 굳어진다. 인신매매? 막내의 눈물 섞인 목소리가 뇌리를 스쳤다. 거리는 텅 비어있었고, 언니들이 갈 곳이 없다는 걸 아는 포주는 검사가 가고 나면 언제든 언니들을 빼돌릴 수 있었다. 씨발. 김민규는 저도 모르게 욕설을 뱉는다. 검사가 줄 수 있는 면담의 재량은 그렇게 길지 않아서 그걸 가만히 지켜보던 검사는 문을 한 번 친다. 수행원들이 들어와 두 남자를 밖으로 내보냈다. 

왕언니는 언제 나올 수 있냐는 물음에 수행원들은 조서만 작성하면 나갈 수 있다고 대답했다. 김민규는 지금 당장 데리고 갈 수 없다면 여기서 기다리는 것은 무리였다. 언니들을 다른 곳으로 숨겨야 했다. 그런데 어디로? 목적없는 물음은 복도에 버려졌다.

전원우는 말없이 김민규의 손을 끌고 다시 주차장으로 나갔다. 성매매 특별 단속반 사무실을 찾느라 온 지검을 뒤졌다. 다 퇴근한 이후라서 데스크에도 사람이 없었다. 줄줄 흐르는 땀은 건물 밖으로 나오자 금방 증발했다. 전원우는 어디로 가야 할지 알았다. 다시 벨트를 매고 천호동으로 핸들을 돌렸다. 


김민규는 숙소의 문 앞에 서서 두 번 노크했다. 아무도 없는 것처럼 하기로 했는지 안은 쥐죽은 듯 조용했다. 나야. 민규. 열어 봐. 그러자 잠금쇠가 걸려 오 센치 남짓한 거리만 열린다. 둘째 언니였다. 진짜 너 혼자야? 어. 아, 나 아는 형도. 그러자 김민규의 등뒤로 전원우가 빼꼼 얼굴을 내밀고서는 고개를 꾸벅 숙였다. 그때 김민규를 찾으러 거리에 왔을 때 자신을 알아봤던 여자였다. 

그제서야 문이 열리고, 두 남자가 방 안으로 들어섰다. 여자들은 제각기 붙어 방의 구석에 모여 앉아 울고 있었다. 거의 서른 명이 다 되는 인원을 어디로 데리고 가야 할지 감도 서지 않았다. 쪽방촌에 있는 김민규의 집은 포주가 찾아오기 가장 쉬운 곳이었고, 모텔은 잠금쇠가 있어도 허술한 곳이 많아 위험했다. 잠시 안을 둘러보던 전원우가 입을 열었다.

"집으로 데려가자."

"어?"

"집에 방 남잖아, 나."

"부모님... 쓰시던 방 아니야?"

"그거 말고도 방 하나 더 있고, 정 그러면 우리가 그 방 쓰면 되지."

"아니, 굳이 그렇게까지.... 괜찮아, 형."

"네 가족들이잖아."

김민규가 전원우를 돌아본다. 자신을 바라보는 눈에 확신이 있었다. 자신의 가족이라는 이유만으로 많은 것을 포기하려는 전원우를 가만히 내려다만 본다. 김민규의 강한 멘탈은 왕언니가 검찰에 송치됐다는 전화를 받자마자 무너져 버려서, 전원우는 지금 자신이 결단 내려야 한다는 걸 알았다. 망설임 없는 결정이었다. 김민규는 전원우가 자신을 생각하는 감정을 확신한다. 일생을 함께할 수 있다고 생각했을 때나 나올 수 있는 행동인 것을 김민규는 너무 잘 알았다. 

"그, 다들 일어나세요. 일단 여기는 위험하니까... 오늘은 제 집에 가서 주무세요. 괜찮아요, 민규 가족 분들이니까...."

여자들은 미동이 없었다. 불신 가득한 눈으로 전원우를 바라보고 있었다. 김민규가 뭐 해. 일어나, 가자. 하고 운을 띄우고 나서야 하나둘씩 일어나 짐을 챙겼다. 다시 돌아올 수 있을까. 넓은 방이었지만 삼십 명이 들어가 살기에는 턱없이 작은 방이었다. 전원우는 먼저 숙소 밖으로 나섰다. 

개미가 집을 이사하는 것처럼 새벽의 거리에 줄줄이 사람들이 걷는다. 엘리베이터에도 다 탈 수 없어서 반으로 나누어 탔다. 염치가 없다고 느꼈음에도 갈 곳이 없는 여자들은 말없이 그 뒤를 따랐다.

안방은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나서 침대를 버려서 공간이 넓었다. 죽은 가족의 잠자리를 내 주는 것이 마음에 걸렸지만 전원우의 부모님이었다면 사랑하는 사람의 가족을 돕는 건 당연하다고 생각하셨을 테니까. 넓은 방에는 장롱밖에 없었다. 창고방은 먼지가 쌓여 있어 청소기로 짧게 한 번 밀고 그 위로 이불을 깔았다. 거실 구석에 낑겨앉아 암울한 표정이던 여자들 중 한 명이 울음을 터뜨린다. 한 명이 울자 신생아실의 아기들처럼 모두들 참아왔던 눈물을 터뜨린다. 

"왜, 왜 그래요?"

"이렇게... 저희... 흑, 챙겨 주셔서... 감사해요, 너무 감사해서...."

전원우가 안쓰러운 눈으로 여자들을 내려다 보다 이내 들어가 장롱에서 있는 이불을 다 꺼낸다. 깔 것과 덮을 것의 구분 없이 적당히 나눠 양쪽 방에 넣는다. 이 정도면 스물다섯 명이 잘 공간은 충분했다. 전원우가 다시 거실로 나온다. 

"민규 키워주신 분들이잖아요."

눈물 젖은 시선들이 이불을 펴 놓고 창고방에서 나오던 김민규에게로 향한다.

"민규, 어디 안 보내고 잘 키워 주셔서 감사해요. 예뻐해 주신 것도 감사하고."

전원우는 숨을 한 번 훅 들이키고, 방을 가리켰다.

"주무세요, 이불 깔아 놨어요. 베개는 모자라서 다는 없는데...."

"아니에요, 괜찮아요. 이것만으로도 감사해요."

다들 우는 통에 울음을 꾹 참고 버티던 둘째 언니가 여자들을 일으켜 방으로 들어갔다. 전원우의 옆을 지나면서 다들 고개를 꾸벅였다. 여자들은 인생을 혼자서 살아온 지 몇 년씩은 되어서, 남의 호의에 고마움을 잘 표현하지 못했다. 전원우도 그걸 알았다. 김민규는 방 안에 여자들이 자리잡는 걸 보고서야 전원우를 데리고 침실로 들어간다.


하루가 지나고 아침이 되었는데도 여자들은 방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김민규보다 일찍 깬 전원우가 문 앞에서 귀를 대 보니 작은 말소리가 흘러나왔다.

여기서 더 있을 수는 없어. 저 분께도 실례고. 그럼 우리는 어디로 가요? 아까 연락을 받았는데, 이번 일이 다른 업소에도 다 퍼졌나 봐. 청량리랑 영등포 언니들은 이미 모였대. 우리도 거기로 가야 돼. 거기서 잘 수가 있어요? 폐교 체육관을 치우고 거기다가 임시 숙소를 한다나 봐. 성명서도 쓰고. 우리는 좀 늦게 안 거고, 청량리 쪽은 일주일 다 됐다더라. 우리도 가서 포주 새끼들 대가리 딸 방법 찾아야 돼. 거긴 어딘데요? 이촌. 머네요.... 멀다고 안 갈 거야? 다시 숙소로 갔다가 포주가 처들어오면 끝이야. 우리끼리 모여야 돼. 일어나, 이불 개자. 영등포 언니들한테 이미 연락했어. 나가자.

일어나는 소리가 들리자 전원우가 얼른 방으로 돌아간다. 민규야, 저 분들 나가신대. 그 말에 곤히 자던 김민규가 벌떡 일어난다. 이내 건너편 방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김민규가 방 밖으로 뛰쳐나갔다.

"어디 가?"

"서울권 업소 언니들끼리 연합 짰어. 거기 숙소도 있고, 체육관이라 화장실하고 샤워실도 있대. 우리도 오래. 거기 가서 좀 지내고, 포주 새끼 잡아 올 거야."

"...괜찮겠어?"

"안 괜찮아도 가야지. 여기 더 있을 순 없잖아."

둘째 언니의 현실적인 말에 김민규가 한숨을 푹 쉬고는 그래, 알았어. 조심히 가. 하고서는 둘째 언니를 한 번 안아 준다. 몸 조심해. 전화할게. 전원우도 그제서야 방을 나와 여자들이 밖으로 줄줄이 나가는 것을 바라본다. 감사했어요, 안녕히 계세요. 전원우가 그걸 따라 허리를 숙인다. 여자들의 표정에는 독기가 서려 있었다. 김민규는 1층까지 배웅하겠다며 따라나갔다가 금방 돌아왔다.





다음 소식입니다. 최근 성매매 업소 여성들을 중국 브로커에게 돈을 받고 넘기려던 포주 네 명이 인천항 부근에서 경찰에게 붙잡혔습니다. 그 중 두 명은 불법 도박까지 감행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경찰청장은 이 사건을 대검찰청 소속 성매매 특별반으로 송치할 것을 표명하며, 검경의 협력을 위해 더 힘쓰겠다고 발표했습니다. 또한......



이 일이 세상에 알려진 지 이 주만에 포주들이 구속 기소되면서 상황은 일단락됐다. 검찰은 중국의 인신매매 브로커까지 잡아들여 불법 체류로 기소했고, 모두 중국으로 송환시켰다. 천호동과 청량리 포주는 불법 도박 및 인신매매 미수, 성매매 특별법 위반으로 1심에서 도합 징역 9년을 구형받았지만 최종 판결에서 5년 9개월로 그쳤다. 여론의 반발이 거셌지만 그게 전부였다. 

체육관에 모였던 언니들은 각자의 숙소로 돌아갔다. 가게는 열지 않고, 그 안에서만 지냈다. 이따금 김민규가 찾아가 밥을 차려 주곤 했다. 왕언니는 전원우가 했던 행동을 듣고 김민규를 통해 전원우와 통화했다. 아이들을 챙겨 주셔서 감사하다고 하면서 울었다. 그때도 전원우는 왕언니에게 김민규를 버리지 않아 주셔서 감사하다고 말했다. 덕분에 제 인생이 조금 행복해졌네요. 뒷말은 속으로 삼킨다.



김민규는 종강을 했지만 일은 그만두지 않았다. 종강하기 전날 다음 학기 휴학 신청서를 냈다. 일하는 시간도 오전으로 옮겼다. 아침 열 시부터 저녁 다섯 시까지. 그나마 열 시간이었던 시간을 일곱 시간으로 줄인 게 다행이었다. 주 6일이던 것도 주 5일로 줄었다. 그만큼 수입도 줄었지만, 지난 오 년의 시간에 대한 자기 자신의 보상이었다.

전원우는 출근하는 시간에 맞춰 일어나 김민규와 아침을 먹고, 김민규가 출근하면 공부를 시작했다. 글을 쓸 때도 집중력이 좋아서 한 번 앉으면 몇 시간을 쓰곤 했는데, 공부할 때도 그 집중력은 여전했다. 한 번 앉으면 여섯 시간은 거뜬히 공부했다. 그러다 보면 김민규가 퇴근할 시간이 돼 같이 먹을 저녁을 준비했다. 가끔 식재료가 없으면 김민규에게 전화했고, 마트에서 만나 같이 장을 보고 귀가했다. 

실로 평화로운 나날들만 이어졌다. 전원우는 토플 교재가 삼십 장 남짓 남았을 때 돌아오는 가장 빠른 토플 시험을 신청했다. 근데 형은 갑자기 왜 토플 공부해? 단어책을 들여다 보던 전원우를 침대에 누워 바라보던 김민규가 묻는다. 그냥, 글을 안 쓰니까 허전해서. 그러고는 다시 단어책에 시선을 둔다.



물류 센터의 겨울은 유난히 추웠다. 낮인데도 패딩을 벗을 수가 없었다. 김민규는 일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평소에 그냥 지나치던 대형 서점으로 들어갔다. 예상치 못하게 끌린 발걸음이었다. 베스트 셀러 코너를 돌아보는데 에세이 코너에 익숙한 제목이 눈에 들어온다. 전원우가 쓴 책이 나란히 꽂혀있었다. 이건 나온 지 이 년이 됐는데도 아직도 여기 있네. 김민규는 그 중 자신이 읽어 본 적 없는 두 권을 집어들고 계산대로 향한다.



"그걸 왜 사 왔어?"

손에 들린 두 권의 책을 보자마자 전원우가 인상을 찌푸렸다. 나도 안 읽는 내 책을 네가 사 오냐. 그러면서 웃었다. 김민규는 책을 한 번 손으로 훑어 촤라락 소리가 나게 훑고는 표정 변화도 없이 대답했다.

"형이 궁금해서. 이건 형 인생 가지고 쓴 책이잖아."

전원우의 심장이 쿵쿵댄다. 줏대없는 심장에 당황하며 얼굴을 붉힌다. 자신에 대해 궁금해서 이제는 내 인생을 담은 책까지도 사서 읽는다. 이미 다 해 준 얘기들로부터 나온 글이라고 작게 타박하니 그래도 나는 더 알고 싶어. 하고서 짧게 입맞춘다.

그때쯤 전원우는 둘의 관계에 대해 정의하고 싶어진다. 그래, 암묵적으로 사랑이었지 사실상 결정된 것은 하나도 없었다. 둘 다 관계에 대해 따박따박 정의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아서 관계의 이름에 대해서는 말해 본 적이 없었다. 그럼에도 둘 다 서로를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쯤은 알았다. 일어나서 서로 얼굴 보자마자 입술부터 부비는데 이게 사랑이 아니면, 좀. 전원우가 음, 하면서 고개를 끄덕인다. 

말없는 공상으로 두어 시간을 보내는 동안 읽는 속도가 빠른 김민규는 두 권을 금세 읽는다. 침대에서 기지개를 켜는 김민규를 전원우가 내려다 본다. 두 시선이 부딪히고, 얽히고, 김민규가 일어나 다가온다. 짧게 다시 입맞춘다. 

김민규는 이미 전원우를 사랑하고 있었다. 애초에 홍등가 언니들을 도와준 이유가 김민규의 가족이라서, 라는 말을 듣고서부터 김민규는 알았다. 이 남자라면 평생을 맡겨도 괜찮을 것 같다고. 김민규의 친족이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전원우는 서슴없이 결정했다. 더 지체했다가는 포주가 들이닥칠지도 모르는 상황이었기 때문도 있었지만, 전원우는 정말로 인도주의적인 사람이어서 사람이 팔려 나간다는 소리에 거침없었던 것도 있었다. 


"형, 진짜 사십 다 돼서 책 다시 낼 거야?"

"어.... 음, 글쎄."

"것보다 더 일찍 내면 안 되나."

"왜?"

"형 글은 참 좋은 것 같아. 계속 읽고 싶은데 세 권밖에 없잖아."

그렇게 말하면서 시선을 똑바로 맞춘다. 책상에 기대 서 있는 김민규를 올려다 보다 그 곧은 시선에 다시 얼굴을 붉힌다. 내일 모레 삼십인데, 나도 진짜 주책맞다. 이런 말에 설레고 있니. 그 감정이 설레임이라는 걸 깨닫는 순간 전원우는 자신이 김민규를 정말로 사랑해 왔다는 걸 자각한다. 이 남자랑 있으면 심장 박동이 느려질 틈이 없었다. 

"이미 쓰고 있는 건 있는데, 내가 문단에서 발 뗀다고 해 버려서. 좀 속물처럼 보이지 않을까?"

"그럼 필명 쓰면 되지."

"어?"

"필명. 형 이름 말고, 필명 써. 그럼 아무도 모를 텐데."

"아... 그러면 되겠구나."

김민규가 뾰족한 송곳니를 시원하게 드러내며 웃는다. 내가 결정하지 못할 때마다 얘는 가장 멋진 해답을 내곤 했다. 이것도 능력이야. 전원우는 그렇게 생각한다.


시간이 어느새 열한 시를 넘어서고 있었다. 첫 관계를 가진 이후로 같이 자는 날에는 서로를 끌어안고 자는 것이 습관이 됐다. 전원우는 답답해서 그닥 좋아하지는 않았지만, 막상 없으면 허전해서 새벽에 일어나 품을 찾았다. 김민규는 그럴 때마다 머리통까지 꽉 감싸안고서 잠이 덜 깬 눈을 한 채 이마에 입술을 부비고서 다시 잠들었다. 서로의 심장박동이 안식처였다.

전원우는 이따금 품에 안긴 채 눈을 감고 몽상을 했다. 김민규가 형, 자? 하고 물으면 아니, 하고서 다시 말이 없었다. 김민규는 그런 전원우의 앞머리를 넘겨 주다 나즈막한 목소리로 말한다.

"형, 우리 이제 이쯤이면 사귈 때 되지 않았나?"

"응.... 어?"

전원우의 눈이 번쩍 뜨인다. 다정한 눈이 자신을 내려다 보고 있었다. 아무렇지 않다는 듯 김민규는 다시 전원우의 앞머리를 정리해 준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어서. 이쯤이면 사귈 때 됐다, 싶네."

"...."

"형은 어때? 나 아직도 별로야?"

"...."

별로인가. 갑자기 잘생긴 얼굴이 울상을 짓는다. 김민규는 짧게 전원우에게 입맞춘다. 일종의 뇌물이었다. 

"응? 나 어떻냐니까."

"좋지, 너."

"그럼 사귈까?"

"생각 좀 해 보고."

장난기 담긴 대답에 아, 왜! 하고서 징징댄다. 그 모습이 귀여워 전원우는 김민규에게 짧게 다시 입맞추며 고개를 끄덕인다. 그래, 사귀자. 


불가항력의 두 주체가 완벽하게 맞붙는 순간이었다.



클 太 바다 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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