홋카이도는 일본의 최북단에 있는 섬이다. 북위 41~45도에 있는 특성상 여름에도 일본의 다른 지역보다 덥지 않은 편이다. 나는 여름이 끝날 무렵 친구와 함께 홋카이도에 여행을 간 적이 있다. 8월 말, 한국은 여전히 더운 여름이었지만 홋카이도에서는 저녁에 긴 팔 외투를 걸치고 다녀도 될 정도였다.

우리가 묵던 온천 호텔은 맨 꼭대기 층에 노천탕이 있었는데, 밤에 간 노천탕은 여름이라는 게 믿기지 않을 만큼 바깥 공기가 서늘했다. 뜨거운 물에 천천히 몸을 담그니 온종일 걸어서 피곤했던 몸이 금세 살살 녹기 시작했다. 물에 담근 몸 아래로는 뜨끈한 기운이 몸을 눅진눅진 녹이고, 바깥공기에 노출된 몸 위로는 서늘하지만 차갑지는 않은 바람이 산들산들 불어와 상쾌했다. 분명 내 몸은 하나인데 몸 위와 아래가 전혀 다른 경험을 하고 있었다. 마침 다른 사람도 없고, 이곳에 있는 건 나와 친구뿐. 늦여름과 초가을 사이의 바람을 맞으며 우리는 별말을 하지 않아도 영혼이 따뜻해지는 기분을 느꼈다. 따끈한 물에 몸을 담그고 나서 마시는 시원하고 진한 커피 병 우유 또한 나의 지친 몸을 위로했다.

여행지에서 잊을 수 없는 강렬한 경험은 비슷한 환경에서 그 기억을 다시 불러일으킨다. 나는 그 이후로 목욕을 좋아하게 되었다. 비록 그 여름 내가 몸을 담갔던 물과 같지 않고, 집에서 하는 목욕은 시원한 바람을 느낄 수 없다 하더라도, 욕조에 뜨거운 물을 담아 몸을 푹 담그면 홋카이도에서의 밤을 떠올릴 수 있었다.

목욕은 샤워와는 또 다른 매력이 있다. 내가 홋카이도에서 왜 그렇게 노천탕에 푹 빠질 수밖에 없었는지, 목욕하며 새삼스럽게 깨닫고 있다. 뜨뜻한 물에 몸을 담그면 하루 내 긴장했던 몸이 스르륵 풀린다. 유독 힘든 날이면 턱 끝까지 몸을 물에 담가본다. 그러면 차가운 바람을 맞으며 열심히 일했던 몸을 따뜻한 물이 차분히 감싸는 느낌이 든다.

이때는 아무런 말을 할 필요가 없다. 시끄러운 소리도 들을 필요 없다. 원한다면 좋아하는 노래를 작게 틀어놓고 나만의 플레이리스트를 즐겨도 좋다. 하지만 제일 중요한 건 목욕을 하는 15분에서 20분 정도 되는 짧은 시간 만큼은 외부의 자극을 하나도 받아들이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나도 모르게 강박적으로 확인하는 SNS의 피드는 멀리한다. 툭 하면 울려 퍼져 나의 집중력을 흐트러트리는 핸드폰 알림에서도 잠시 안녕이다. 그 어느 것도 나를 붙잡는 게 없다. 나를 붙잡는 게 있다면 날 따뜻한 세계로 이끄는 물뿐이다. 참방거리며 울리는 물소리만 들으면 된다. 그건 이상하게도 내게 안정감을 준다.

목욕이 끝나면 몸이 따끈하게 익어있다. 후끈한 열기가 나에게서 피어오르는 것만 같다. 조금은 땀을 흘려서인지 무척 개운하기도 하다. 이럴 때 차가운 음료를 마시면 그 시원함이 평소에 마시는 것과는 사뭇 다르다. 평소보다 훨씬 시원하게 느껴질 뿐만 아니라, 추운 겨울에도 차가운 물을 마셔도 몸속부터 차갑게 느껴지거나 체온을 빼앗기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추분이 지나서인지 아침저녁으로는 제법 쌀쌀하다. 해가 가장 높게 떠 있을 때도 햇볕은 뜨겁지만 바람은 시원하다. 홋카이도의 밤을 떠올리며 나는 욕조에 물을 담는다. 노천탕을 제외하고 추운 겨울일수록 목욕은 빛을 발한다. 칼바람에 시달리던 몸을 따끈하게 안아주는 물속에 들어가 있노라면 이 계절이 싫지 않다. 어김없이 찾아오는 겨울에도 마음 한구석은 설렐 수 있다는 건 제법 위안이 되는 일이다.


이번 과제는 내가 쓴 글을 세상에 공개하기였습니다. 가능하다면 피드백을 받아 오는 것까지가 과제인데요... 피드백을 주실 수 있는 분이 계시려나 모르겠어요. 그래도 미션을 완수하기 위해 포스타입에 올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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