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보니깐 반갑네요, 모블릿 씨.”

싱글싱글 웃으며 말하는 얼굴에 말문이 막혔다. 설마 내가 아는 사람이 범인일 줄이야. 그것도 바로 옆집 사람이. 전혀 예상 못한 전개였다.

“출근 못하게 돼서 아쉽겠네요.”

“……날 납치한 이유가 뭐죠?”

출근보다 중요한 건 왜 내가 이 사람에게 납치되었냐는 거였다. 전혀 이해되지 않았다. 난 이 사람에게 원한을 살 만한 행동을 한 적이 없었다. 한지 씨와 난 사이가 원만한 이웃이었다. 요즘 같이 옆집에 누가 사는지도 모르는 경우가 태반인 걸 감안했을 때 우린 꽤 왕래가 잦았다. 그도 그럴 게 한지 씨 말고 다른 이웃과는 어쩌다 인사를 나눌 뿐 이야기한 적이 없었다. 그와 반대로 한지 씨와는 제법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서로의 직업, 나이, 취미, 좋아하는 음식을 알 정도로. 한지 씨에 대해 내가 가진 이미지는 남들보다 더 활발하고 밝은 사람. 호감에 가까웠다. 그런데 그런 사람이 어째서 날 납치한 걸까. 한지 씨에겐 내가 불호에 가까웠던 걸까.

“이번 아파트에선 당신이 가장 눈에 들어왔거든요.”

퍼뜩 고개를 들어 한지 씨를 바라봤다. 한지 씨의 입에선 뜻밖의 말이 나왔다. 허공을 응시하는 눈빛에선 묘한 살기가 느껴졌다. 한지 씨의 말에선 이질감이 느껴졌다. 왜 날 납치했냐는 말에 대한 대답이 뭔가 이상했다. 나에 대한 이야기가 나올 줄 알았는데 갑자기 웬 아파트……? 얼마 안 있어 이질감의 이유를 깨달은 순간,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그럼 저번 아파트도 있는 겁니까?”

“하하. 역시 모블릿 씨는 영리하다니깐.”

그렇게 말하며 한지 씨가 싱긋 웃으며 엄지를 척 들었다. 도무지 이 상황과 어울리지 않는 표정과 행동. 대체 뭘까, 이 사람의 정체는. 마른 침이 목구멍을 타고 흘러 내렸다. 

사이코패스? 한지 씨는 사이코패스인 걸까? 흔히 범죄 수사 프로그램에 자주 나오는 범인의 특징이 자연스레 떠올랐다. 공감 능력이 떨어지는 반사회적 인격. 누가 봐도 지금 한지 씨가 하는 말과 행동에 적합해 보였다. 머릿속이 순식간에 고요해졌다. 멍하니 한지 씨의 얼굴을 바라봤다. 그녀는 여전히 여유롭게 날 보며 웃고 있었다.

불과 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기분 좋게 느껴지던 미소가 이젠 낯설게 느껴졌다. 그걸 바라보고 있자니 목구멍에 무언가 울컥 차올랐다. 형용할 수 없는 감정이었다. 그동안 봐온 한지 씨는 절대 이런 사람이 아니었다. 마주치면 항상 먼저 인사를 건네며 살갑게 대해줬고, 때때로 과일 같은 음식을 나눠주던 인정 많은 사람이었다. 절대로 이렇게…… 미친 사람이 아니었단 말이다.

한지 씨에게 향했던 시선이 힘없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왜 그래요?”

당신이 첫 번째가 아니라 실망했어요? 한지 씨의 입에선 계속해서 상황에 어울리지 않는 말이 튀어나왔다. 대답이 없자 한지 씨가 무릎을 굽혀 나와 시선을 마주했다. 아이러니하게도 날 향한 시선은 걱정 어린 눈빛이었다. 그걸 보자 피식 맥없는 웃음이 흘러나왔다. 뭘까, 대체.

한지 씨의 시선을 피해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그곳에서 그토록 찾던 것을 발견했다. 스위치였다. 열린 문 틈 사이로 새어 들어오는 빛 덕분에 한지 씨의 모습은 식별할 수 있었지만 내부를 살펴보기엔 역부족이었다. 

“너무 실망하지 말아요. 안 죽이고 살려둔 건 당신이 처음이니까.”

“뭐?”

스위치에 정신이 팔린 사이 한지 씨가 의미심장한 말을 아무렇지 않게 내뱉었다. 반사적으로 고개가 다시 한지 씨를 향했다.

“이제야 반응하네.”

한지 씨가 소리 내어 웃었다. 꽤 한참을. 지나가던 사람이 보면 아주 재밌는 개그 프로라도 본 줄 알 정도로. 뭐가 그리 재밌을까.

“당신은 바로 죽이고 싶지 않더라고.”

시종일관 웃는 얼굴을 유지한 채 한지 씨가 말했다. 한껏 올라간 입꼬리가 내 온몸을 옥죄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등을 타고 소름이 쭈뼛쭈뼛 돋았다. 더 이상 어떠한 생각도 들지 않았다. 눈을 깜빡이는 것조차 잊은 채 한지 씨의 얼굴만 바라봤다. 열린 문틈 사이로 바람이 새어 들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여기서 문제~!”

갑자기 한층 밝아진 목소리로 한지 씨가 떠들었다.

“지금은 과연 몇 시일까요~?”

10까지 카운트다운 셉니다. 하나. 둘. 혼자 문제 내고 혼자 카운트다운을 세는 모습에 헛웃음이 나왔다.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도무지 종잡을 수가 없었다. 나랑 뭘 하고 싶은 걸까.

“다섯. 여섯.”

어떠한 반응도 없는 나를 아랑곳하지 않고 한지 씨는 계속해서 카운트다운을 셌다.

“여덟. 아홉.”

열. 열까지 센 후 잠깐의 정적이 흘렀다. 거친 내 숨소리만이 귀에 들어왔다. 한껏 올라갔던 한지 씨의 입꼬리가 한순간에 내려왔다. 날 바라보는 시선은 무미건조하게 변했다.

뚜벅 뚜벅.

그러던 중, 한지 씨가 걷기 시작했다. 조금씩 멀어졌던 걸음은 빛이 사라지자 다시 가까워졌다. 계속 열어두고 있던 문을 닫은 것이다. 시야가 다시 캄캄해졌다. 암흑 가운데 눈이 서서히 어둠에 익숙해져 한지 씨의 실루엣이 보일 때쯤이었다.

“읏!”

따끔한 감각이 왼쪽 볼에 퍼졌다. 그와 동시에 무언가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워낙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라 무슨 상황인지 파악하기까지 시간이 걸렸다. 정신을 차리고 수갑이 채워진 손으로 조심스레 볼을 만지자 쓰라린 감각과 함께 축축한 게 묻었다.

“재밌는 퀴즈를 냈으면 대답을 해야지.”

안 그래? 한지 씨가 그대로 거칠게 내 손을 잡아 올렸다. 아무렇게나 들어 올려진 탓에 수갑이 쓸렸다. 손목이 쓰라렸다. 뭘까, 대체. 이게 무슨 상황이지. 고통과 함께 점차 숨이 거칠어졌다. 한지 씨의 목소리는 지금까지와 전혀 상반된 낮고 서늘한 음성이었다.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목소리. 그와 함께 굳어졌을 한지 씨의 얼굴이 떠올랐다. 울컥울컥 턱 끝까지 감정이 차올랐다.

“나한테 왜 그래요, 대체.”

결국 물기 어린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정말 오랜만에 듣는, 나조차도 생소한 목소리였다. 낯선 목소리. 그동안 참고 참아왔던 감정이 지금 이렇게 터져 버리다니. 엉켜있던 온갖 묵은 감정이 눈에서 뚝뚝 흘러내렸다. 입에서 흐느끼는 소리가 점차 새어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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