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힘겹게 도어록을 열고 현관에 들어섰다. 인기척 없는 거실에 조금 안심하며 문을 닫았다. 신발을 채 벗기도 전에 다리에 힘을 잃고 주저앉았다. 오늘 상대는 꽤 벅찼다. 까다로운 데다가 준비도 못 한 채 습격 받은 날은 처음이었다. 그는 오늘 있었던 일을 생각하며 앞으로 냅다 주먹으로 두들겨패는 싸움은 피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몸을 둥글게 말아 신발을 겨우 벗고 신발장을 지지대 삼아 천천히 일어났다. 거실을 향해 비척비척 걸었고, 소파에 쓰러지듯 누웠다.

이제야 좀 긴장이 풀리는지 눈을 끔벅이다가 주머니를 뒤져 핸드폰을 꺼냈다. 내일의 쇼핑 정보를 밑으로 내리고 부재중 전화가 몇 건 찍힌 항목을 살펴봤다. 아키가 걱정했나 보네. 다행히 골절이나 외상은 크게 없지만 체력이 거의 바닥났고 입 주변이 찢어진 듯 작고 긴 통증이 이어졌다. 맨주먹으로 싸웠으니 손등과 손바닥은 당연히 크고 작은 상처가 많이 났다. 왼쪽 눈덩이엔 멍이 들었고 옷을 벗어서 확인하지 않았지만 갈빗대 쪽에도 큰 멍이 들었을 것이다. 긴장이 풀린 탓인지 핸드폰을 쥔 손이 덜덜 떨렸다. 그는 곧 손을 내리고 핸드폰을 가볍게 바닥에 떨궜다. 

귓속이 간지러워 손을 펼쳐 머리를 퍽퍽 치니 손바닥에 말라붙은 핏가루가 묻어 나왔다. 본인도 모르는 부상이 많아 얼마 뒤에 방문할 자신의 연인이 펼칠 잔소리가 절로 떠올랐다. 그래도 바로 연인이 생각나서인지 그는 작게 미소 지었다. 이상하다. 피를 그렇게 많이 흘린 것도 아닌데. 어디에 찔린 것도 아닌데 왜 이렇게 잠이 오지. 앞으로 조심해야겠다는 생각과 미래에 닥칠 일들을 생각하며 계획 아닌 계획을 상상했다. 꼭 우승해야지. 그래서 행복한 세상을 만드는 거야.

도어록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현관은 가깝지만 그가 듣기로는 꽤 멀리서 나는 것 같았다. 일어나서 배웅하고 싶었지만 몸은 뜻처럼 움직이지 않았고 눈앞이 흐려졌다. 아키나. 우리 아키. 사랑하는 내 사람. 이름을 부르고 싶었지만 목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얼마나 다친 걸까? 정확히 어디가 어떻게 다쳤는지는 아키나만이 알 것이다. 신발을 벗고 빠른 걸음으로 다가오는 온기에 다시 웃어 보였다. 아키. 행복한 세상을 만들자. 우리만 있으면 되잖아. 그리고 네가 당장 내 목을 친다고 해도 나는 기쁘게 죽을 거야. 이 생각을 마지막으로 그는 의식을 잃었다.

글을 씁니다.

Y님의 창작활동을 응원하고 싶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