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루카 선생님은 이상해. 모두가 싫어하는 나를 안아주고 예뻐해준다. 물론, 다른 녀석들에게도 똑같이 해주시지만, 나에게 그런 애정을 보여주는건 이루카 선생님 뿐. 다른 아이들은 엄마, 아빠가 그렇게 안아주니까 선생님이 안아주면 귀찮아 한다. 하지만 난 안아주는 사람이 선생님밖에 없으니까. 선생님은 내가 싫지 않아요? 

이루카 선생님은 신기해. 뭐든지 다 아시는 척척박사다. 교과서에 나와 있는 모든 내용들을 다 아시고, 체술도 훌륭하시다. 우리가 던지는 수리검도 다 받아치고 내가 무슨 장난을 쳐도 다 수습하신다. 저기, 선생님의 출석부로 맞아 본 적 있어? 제법 아프지만 의외로 꽁, 하는 귀여운 소리가 난다. 선생님이 웃으며 출석부를 펼치시고 내 이름을 불러준다. '우즈마키 나루토.' 그러면 나는 '네!'. 누가 날 불러준다는건 정말 좋은 일이야.  

이루카 선생님은 씩씩해. 아무리 무섭고 힘이 센 사람들이 날 무시하고 경멸해도 그 사람들에게 맞선다. 사람들은 선생님을 '일개 중급닌자', 혹은 '아카데미 샌님' 이라며 무시한다. 하지만 맨날 '아하하하!' 하고 웃어. 나는 선생님처럼 강한 사람을 본 적 없어. 든든한 내 선생님이야.

이루카 선생님은 가난해. 일락라면이라고 알아? 난 평생 컵라면만 먹어봐서 그렇게 맛있는 라면은 처음 먹어봤다. 맛있는 만큼 컵라면보다 배는 비싸지. 아마, 그 날은 호카게 얼굴바위에 낙서를 해서 혼난 날. 무서운 닌자들에게 잡혀 눈물콧물 다 빼고 나오는 나를 데리고 커다란 손으로 눈물을 닦아주셨다. 그리고 데려간 곳이 일락. 두 그릇이나 먹었다. 맨날 맨날 사달라고 하니까, 선생님은 슬픈 눈으로 돈이 없다면서 미안하다고 하셨어.

이루카 선생님은 가끔 버럭해. 시카마루는 선생님이 여자친구가 없어서 히스테리를 부리는거랬다. 하지만 그건 네가 숙제를 안 해왔기 때문이잖아, 시카마루. 선생님은 시험 점수가 낮다고 버럭하시진 않는다. 하지만, 맡은 일을 제대로 하지 않았을 때에는 제대로 혼을 내신다. 그럴 때는 아주 무섭지, 정말. 가끔 접수소로 놀러가면 상급닌자들에게도 버럭하실 때가 있다. 물론. 나한테도 많이 버럭 하셨고. 어디까지나 애정 어린 버럭이야.

이루카 선생님은 따분해. 선생님의 수업은 정말 졸립다. 떠지지 않는 눈을 억지로, 억지로 열어서 듣는다. 역시나, 자장가,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저런거 알아봤자, 호카게가 되는데에 도움이 되는걸까? 전부 자고 있다. 똑쟁이 사쿠라마저도 졸 때가 있다. 그럴때 선생님은 가끔 아이스크림을 쏘신다. 아이스크림이 두개 붙어있어서 딱- 끊어 나눠먹는 그런 게 있는데, 아무도 나랑은 나눠먹지 않았다. 내가 두 개 다 먹을수도 있었는데, 선생님은 굳이 나랑 나눠 드셨지. 

이루카 선생님은 너무해. 선생님은 날 예뻐해주시는데, 절대 아카데미 졸업은 안 시켜주신다. 그렇게 예뻐해주면, 나도 졸업시켜줄 수 있는거잖아요? 내가 얼마나 호카게가 되고 싶어하는지, 제일 잘 아는 사람이. 얼른 뛰어난 닌자가 되어 마을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으려면 써클렛을 받아야 한다고요.

이루카 선생님은 멍청해. 내가 금지된 두루마리를 가지고 도망쳤을 때, 목숨을 걸고 날 쫓아와 주셨다. 후에, 호카게님이 말씀하시길, 잘못했다간 나를 도와준 공범으로 몰려 선생님까지 반역죄를 쓰고 위령비에도 쓰이지 못했을 거라고 하셨다. 그리고, 거대한 수리검까지 대신 맞아주셨다. 얼마나 아프셨을까. 선생님, 눈물도 흘릴 줄 알았어요? 선생님은 자기가 다칠 줄 알면서도 나를 감싸셨다. 바보에요? 나같은건 어떻게 되어도 상관 없었잖아요. 

이루카 선생님은 다정해. 하급닌자가 되고, 카카시 선생님의 시험을 통과했다고 말했을 때 선생님은 펑펑 우셨다. 나를 숨도 못쉴 정도로 꼭 안아주시며, '잘 됐다, 나루토, 정말 잘 됐어.'라고 말씀하시며 그렇게 우셨다. 이번에는 내가 손으로 선생님의 눈물을 닦아주었다. 선생님의 눈물은 뜨겁고, 뺨은 말랑하시다. 그 말랑하고 따뜻한 감촉이 손에 자꾸 감겨와 눈물젖은 선생님의 뺨을 만지작 대었다. 선생님이 그제서야 웃으시며 커다란 손으로 내 머리를 쓰다듬어 주셨다. 너무나 좋다. 날아갈 것 같다. 

이루카 선생님은 유쾌해. 7반의 임무를 끝내고 먼지투성이로 접수소로 들어가면 함박 웃음을 지어 우리 셋을 맞이해주신다. 그리곤 카카시 선생님에게 '나루토는, 아이들은, 어떻게, 잘 해내고 있습니까?'라고 맨날 물어보신다. 저기, 그런건 나한테 물어보라구요. 내가 더 잘 말해줄 수 있으니까. 별것 아니지만 '아이들'보다 앞에 불러주는 '나루토', 내 이름에 웃음이 절로 나온다. 선생님은 항상 나를 웃게 만든다.   

이루카 선생님은 답답해. 나의 꿈은 호카게가 되는 것. 선생님의 꿈은 내가 호카게가 되는 것을 보는 것. 당신과 나의 꿈은 같은데. 우린 같은 곳을 향해 나아가는 동지인데. 나의 키는 이제 선생님의 반절을 넘어선 지 오래이다. 머리를 쓰다듬어 주는 따뜻한 손길이건만 조금씩 마음을 조여오는 듯한 느낌은 무엇일까. 아무리 물을 마셔도 목이 마른 느낌. 이 타는듯한 갈증은 무엇일까. 중급닌자 시험 신청서에 사인해주는 것은 선생님이었으면 좋겠다. 내가 더 강해지면 기뻐해주셔야 하는거 아니야? 이루카 선생님은 왜 화를 내는 거야? 

이루카 선생님은 의외로 허술해. 3대 호카게님이 떠나고 나서야 알았다. 선생님도 무너질 때가 있다는걸. 달빛이 총총히 내려앉던 그 밤, 이루카 선생님의 따뜻한 품으로 기어들어갔다. 선생님은 '어리광이야, 나루토?'라고 웃으시다가 이내 나를 꼭 붙잡고 흐느끼셨다. 미세하게 떨리는 선생님의 어깨를 손가락으로 훑어내려보았다. 나, 조금은 선생님에게 듬직하게 보였을까? 선생님의 그런 표정은 아무도 못봤겠지. 나만 봤던 거죠? 

이루카 선생님은 여전해. 나는 벌써 선생님의 턱앞까지 자랐는데 선생님은 바뀐 것이 하나도 없다. 귀엽게 올려묶은 포니테일과 환한 미소. 여전히 나를 쓰다듬어 주며 아이스크림을 반 잘라 주신다. 이제 나를 쓰다듬어 주는 당신의 손은 그렇게 커다랗지 않다. 조심스레 선생님의 손과 내 손을 겹쳐보는데 선생님이 나를 보며 여전한 미소로 씨익 웃어주셨다. 왜 하나도 바뀌지 않는거에요? 나도 모르게 겹친 손에 힘을 주어 힘껏 손깍지를 끼었다. 열기 탓일까, 여전한 싸구려 오렌지 맛의 아이스크림이 녹아 바닥에 방울져 떨어져내리고 있었다. 

이루카 선생님은 달콤해. 내 생일 저녁이 되면 선생님은 항상 케이크를 준비해주신다. 매년 똑같이, 아무런 방해 없이 단 둘이 맞는 내 생일이다. 이제는 어린아이도 아니고 친구들도 많으니까 잊어버리지 않으실까, 라고 딱딱하게 굳어갔던 마음이 그가 하얀 케이크를 들고 나를 맞이하는 것을 보자마자 녹아내렸다. 함께 케이크를 나눠 먹으며 당신의 입가에 묻은 생크림을 장난스레 손가락으로 쓸었다. 하지만 장난이 아니에요. 검지에 묻은 생크림을 입에 넣어 혀로 굴렸다. 무슨 맛이었냐고? 달콤했을게 뻔하지 않냐니깐.   

이루카 선생님은 씁쓸해. 선생님이 내게 준 건 전부 내 안에 기억하고 있다. 그건 아마도, '사랑'. 사랑에는 여러 종류가 있다고 한다. 선생님도 나를 사랑한다. 하지만 선생님의 사랑과, 내 사랑은 다르다. 응? 언제 깨달았냐고? 당신이 나를 '소중한 제자'라고 했을 때. 그리고 '동생처럼 여기고 있어'라고 말했을 때. 한치의 거짓 없는 당신의 눈동자를 보고, 나는 전혀 기쁘지 않았다. '반드시 살아서 돌아와야 한다.', 한 글자씩 염원을 담아 꾹꾹 눌러썼을 당신의 편지를 입에 넣어 씹었다. 종이와 잉크의 쓴 맛이 입 안을 감돈다.    

이루카 선생님은 자꾸만 착각해. 이제 모두가 안다. 내가 4대 호카게였던 '나미카제 미나토'와 '우즈마키 쿠시나'의 자랑스런 아들이란 것을. 그들의 가족이라는 것을. 하지만 이루카 선생님은 나와 가족이 아니라는 걸 아직도 모르시는 것 같다. 그는 이제 나의 아버지나 형이 아닌데도 그걸 망각하는 것 같다. 선생님, 우리 아빠 봤잖아요? 당신은 이제 내 가족이 아니에요. 가족이 아니면 뭘까나? 착각은 자유라는 말이 있지만, 자유도 지나치면 못 쓴다고요? 

이루카 선생님은 무던해. 나는 마을의 영웅이 되었다. 옛날 만화들을 보면 다 그렇고 그런 뻔한 스토리가 있다. 골칫덩이 소년이 세계를 구한 영웅이 되는 것. 그리고 후일담엔 항상 그 골칫덩이를 믿고 지지해준 소녀가 소년과 이어지고 마는 것인데. 선생님은 그런것도 몰라요? 나는 이어질 준비가 되어있어. 나는 항상 선생님에게 아낌없는 애정을 퍼부어준다. 이마와 뺨에 키스하고, 머리를 쓰다듬고, 꼭 안아주고. 다 당신이 나한테 먼저 해주었던 건데, 왜 몰라요? 둔하다, 정말. 아니, 둔한 척이야? 

이루카 선생님은 성실해. 동성에, 게다가 어린 제자와는 그렇게 될 수 없다나, 뭐라나. 그에게선 고루하고 따분한 설교뿐이다. 아, 당신 과거의 별명이 '아카데미 샌님'이었죠. 이제야 그 별명이 실감이 난다. 짜증이 날 정도로 세상이 만들어 놓은 규칙과 도덕성에 성실한 그. 하지만, 그도 이젠 인정해야 해. 난 그처럼 성실하지 않고, 내 과거의 별명은 '의외성 No.1 닌자'였다. 

이루카 선생님은 야해. 포니테일을 흔들면서 헐떡거리는 걸 위에서 내려보고 있노라면, 몇 번을 뿜어낸 내 것도 다시 고개를 빳빳이 쳐든다. 그는 항상 나와 몸을 섞을 때 나를 똑바로 바라보지 못 한다. 그것이 마음에 들지 않아 몇 번이고 그의 고개를 강제로 돌려 나를 쳐다보게 만든다. 그러면 선생님의 물기 어린 까만 눈동자에 내 푸른 눈동자가 담기고, 수줍은 표정을 지어주시는데. 그게 또 음외의 광경이다. 

이루카 선생님은 치사해. 이젠 거의 크기가 비슷한, 어쩌면 내 쪽이 더 클 지도 모르겠는, 손을 마주잡아 손깍지를 끼면 그는 유혹하는 듯 살풋 웃다가도 예전의 눈으로 나를 바라본다. 그러면 나는 겁이 나 재차 확인한다. 나의 '사랑'과 그의 '사랑'이 같은 종류의 것인지. 그는 나를 헷갈리게 만들어. 이루카 선생님은 걱정하지 말라며 내가 너무 자신에게 집착하는 것이 아닌지 농을 건다. 그러면 나는 웃으며 선생님이 싫어하는 짓은 하지 않을 거라 대꾸한다. 싫어하겠지? 당신을 꽁꽁 묶어 나만 아는 곳, 저 깊은 어두운 곳에 가둬놓고, 나만을 기다리고, 나만을 바라보고, 나만을 생각하게, 오직 나만이 당신의 유일한 빛이라고 여기게 만들어버린다면. 그러니 나를 헷갈리게 만들지 말아주세요.

이루카 선생님은 나를 세상에서 제일 사랑해. 선생님, 이제 인정하지요? 그저 불행한 구미 인주력의 아이 우즈마키 나루토를 세상의 영웅으로. 그리고 그 우즈마키 나루토가 우미노 이루카에게 미쳐버리도록. 그렇게 몇 년 동안, 당신이 나를 이렇게 만든거라니깐? 

The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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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그렇게 몇 년

처음으로 발행을 누르는 나루이루네요. 집착광공애샛기의 매력이 좋습니다. 사실 접점과 관계성으로만 따지면 정통 원조 맛집인 셈이죠. 아주, 미슐랭 쓰리스타 맛집입니다요. 이루카 선생님은 야해요(^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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