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를 만나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머릿속으로 수없이 상상했었다. 가령을 다치게 하고, 한때 내 동료였던 자들을 앗아간 그를. 어떻게 단죄해야 할지.

머리가 어지러웠다. 일단 상처 때문일 수도 있어서 자켓을 벗고 비상용으로 챙겨 온 붕대를 팔과 어깨에 감았다. 다행히 깊게 박힌 건 아닌 모양이다. 내가 붕대를 감을 동안 가림은 바닥에 엎드린 정혜솔의 손을 전선으로 묶었다.


“어떻게 할 건데.”


나 자신에게 하는 질문이기도 했다. 잡긴 잡았는데 이제 어떻게 할 거냐고. 가림은 대답하지 못했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멀리 던져 놓았던 주머니칼을 챙겨 손에 쥐었다. 그새 정혜솔도 상체를 일으켜 앉았다. 어느 정도 정신을 차렸는지 정혜솔은 금세 웃으며 시비를 걸었다. 지금 내 눈앞에 앉아 있는 저 피투성이의 여자는, 목이 잘려도 입만 살아서 떠들 인물이라는 걸 증명하듯이.


“그래. 이제 어떻게 할 건데 이래? 살아서 죗값 물으라는, 뭐... 그런 말이라도 하려고? 대단하네. 내가 너였으면 진작 내 머리통이라도 깼을 텐데. 아니, 그렇잖아. 운 조금 나빴어 봐. 한가령은 죽었을걸?”


겁 없이 입을 놀리지만 어깨가 조금 떨리고 있다. 거기서 깨닫고 만 거다. 그는 두려움을 무릎 쓰고 시간을 벌고 있다. 자신은 맹정우를 버리지 않을 테지만 맹정우는 자신을 버리고 도망칠 위인이라는 걸 아는 거지. 가림도 그 속내를 눈치챘는지 고개를 뒤로 젖히고 떨리는 숨을 토해냈다.


“어떻게 할 거냐고?”


가림이 눈동자만 굴려 나를 바라봤다. 그의 얼굴을 타고 흐르는 게 피인지 눈물인지 잘 구별되지 않았다.


“알면, 안 말릴 자신 있고?”


그의 손에 들린 주머니칼이 펼쳐졌다가 접히길 반복했다. 약속을 지켜야 하는 건 나인데. 설마 하는 생각 때문에 불안해하는 나와 달리 가림은 근처에 놓인 나무 상자 위에 살짝 걸터앉았다. 피곤함이 쌓여 영 제정신이 아닌 듯했다.


“일단 숨 좀 돌리자. 그다음에...”


그다음에 저 여자를 어떻게 하든 하자고. 그가 중얼거렸다. 영 껄끄럽긴 했지만 여차하면 살려서 감옥에 넣는 방법도 있었기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정혜솔도 힘이 많이 빠졌을 테니 이쯤 할 거라 여겼다. 끝이 보이니까 제발 쉽게 가자고. 정혜솔에게 말하려는데 그 쪽으로 고개를 돌렸을 땐 이미 그가 한쪽 엄지손가락을 부러뜨려 제 손에 묶인 전선을 풀어낸 뒤였다.


“저 미친 새끼...”


도망칠거라 생각했는데 그는 마지막 발악이라도 하려는 듯 내게 달려들었다. 그는 비겁하게도 멀쩡한 쪽 손을 뻗어 내 어깨 상처를 움켜쥐었다. 급기야 붕대 안쪽으로 손가락을 밀어 넣기까지 한다. 비명이 목 끝까지 차올라서 이를 악물어야 했다. 체격 차이가 꽤 있으니 넘어지지 않으려고 버티는데 기어코 그의 손가락이 내 상처를 헤집었고 나는 비명과 함께 뒤로 넘어갔다.


“신미희!”


뒤늦게 달려온 가림이 정혜솔을 떼어내려 했다. 하지만 그는 양손으로 내 목을 조른 채 쉽게 놓아주질 않았다. 내 목을 전부 감싸지도 못하는 가느다란 손가락에서 저런 힘이 나올 줄은 나도 몰랐다. 마치 거미줄처럼 옭아맨 탓에 숨쉬기가 점점 버거워졌다. 결국 가림은 주머니칼을 펼쳐 정혜솔의 등에 꽂아 넣었다. 날개뼈 쪽이 찔린 정혜솔은 그제야 헉하는 소리를 내며 손에 힘을 풀었다. 가림은 정혜솔의 등을 몇 차례 더 찌르고 그를 발로 걷어차 내게서 떨어뜨려 놓았다.


“이 미친새끼가...”


정혜솔은 등에 자상을 입고도 힘이 남아있는지 이번엔 가림에게 달려들었다. 그는 온힘을 다해 가림의 목을 조르며 함께 뒤로 넘어갔다. 목이 졸려 컥컥대던 가림은 칼날을 정혜솔 쪽으로 치켜세웠다.


“잠깐...”


가림을 말릴 새도 없었다. 그는 외마디 비명을 지르더니 정혜솔의 복부에 칼을 꽂아 넣었다. 일순간, 시간이 멈춘 듯 주변이 조용해졌다. 이윽고 정혜솔이 칼을 쥔 가림의 손을 붙잡은 채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왜... 왜...”


정혜솔을 올려다보는 가림의 목소리가 조금 떨렸다.


“왜 그런 거야, 왜... 이 미련한...”


그 물음에 정혜솔은 바닥에 등을 대고 누웠다. 가림도 숨을 고르며 몸을 일으켜 앉았다. 정혜솔은 숨을 몇 번 몰아쉬더니 그대로 복부에 박힌 칼을 뽑아냈다. 희미한 조명에 비친 그의 두 눈은 마치 죽음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었다는 듯. 또렷하기까지 했다. 가림은 잔뜩 갈라진 목소리로 정혜솔에게 물었다.


“...그래서. 어때? 네가 믿었던 사람 손에 죽는 기분은.”

“내가... 믿었던 사람? 아...”


한때는 그래도 동료였기 때문일까. 정혜솔은 무언가 회상하는 듯 허공을 바라보다가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아예 싹을 잘랐어야지. 겁대가리 상실한 건 내가 아니라 너였어.”


가림이 두 팔로 제 무릎을 감싸 안으며 말했다. 나는 거의 기다시피 하며 가림의 옆으로 다가갔다.


“하... 하하... 그러네... 정말... 등에 칼 맞은 것도... 정말 그렇게 됐어...”


피를 많이 흘려서인지 횡설수설한다. 그는 나와 가림쪽에는 한 번도 시선을 주지 않고 허공만 바라봤다.


“아홉수라서... 뭐가 꼈나보다... 올해... 좀... 재수가 없긴 했지.”


숨소리가 점점 옅어진다. 그를 정말 이렇게 내버려 두어도 되나 싶던 그때, 바지 주머니에 넣어두었던 핸드폰에 진동이 울렸다. 안 그래도 지하라서 신호가 터질까 말까인데 아까 그렇게 뒹구느라 액정도 깨져 있어 전화가 오는 줄도 몰랐다. 누구에게 온 전화인지 잘 안 보였지만 이 타이밍에 전화라면 벼리밖에 없어서 가까스로 통화 버튼을 눌렀다.


“벼리씨?”

“왜... 왜 이렇게 전화를 안 받아요...”


잔뜩 끊어지는 목소리다. 전화가 끊기기 전에 용건부터 확인해야 했다.


“지하라서 잘 안 터지기도 하고... 미안합니다. 무슨 일이에요?”

“언니가 다쳤어요.”


목소리에 울음이 묻어나온다. 나는 한쪽 귀를 막고 그의 목소리에 집중하기 위해 애썼다.


“일단 다른 사람들도 내려오고 그래서... 직원들도 오고... 구급차 부르긴 했어요. 금방 온대요.”


뚝뚝 끊기는 목소리지만 중요한 내용은 충분히 알아들을 수 있었다. 통화내용을 엿들었는지, 바닥에 누워있던 정혜솔이 고개를 내 쪽으로 돌리고 물었다.


“...아가씨는?”


초점을 잃어가는 그 눈동자가 유독 애타보여서 나는 결국 이를 악물고 벼리에게 물었다.


“...맹정우 아가씨는 어떻게 됐습니까?”

“어, 도망친 것 같아요. 나가는 걸 봤다는 사람도 있고. 경찰이...”


뒷말은 전부 끊겨서 무슨 소리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여보세요? 벼리씨. 잘 안 들립니다. 벼리씨.”


다급히 벼리를 불렀지만 이미 전화는 끊긴 뒤였다. 이 통화를 마지막으로 핸드폰도 아예 망가져 전원이 꺼지고 말았다. 제대로 눌리지도 않는 전원버튼을 길게 누르며 애쓰는데 정혜솔은 단념한 듯 다시 허공을 바라봤다.


“아... 뭐... 얼추 알겠어...”

“...일단 도망쳤다는데 잡히는 건 시간문제야.”


가림이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죽지나 않으면 좋을 텐데. 그래야 살아서 죗값 받지.”


시비나 마찬가지인 가림의 말에 화를 낼 줄 알았다. 하지만 정혜솔은 오히려 더 크게 소리 내 웃었다.


“아하하... 절대 안 죽을걸... 어떤 분인데...”


그가 웃고, 입술을 달싹일 때마다 상처에서 더 많은 피가 흘렀다. 일순간 그는 웃음을 멈추더니 새빨갛게 충혈된 눈을 한곳에 고정했다.


“근데... 우리 아가씨...”


마치 이 말은 꼭 해야 한다는 듯이. 상처를 움켜쥔 그의 손에 잠시 힘이 들어갔다.


“...출소하면... 마중 갈 사람 나밖에 없는데...”


그 말을 마지막으로 그는 숨을 멈췄다. 미동조차 없는 그 모습에 나는 온몸에 힘이 빠지는 기분을 느꼈다. 더 큰 덩어리 하나가 가슴팍에 남아버린 것 같다. 동시에 조금은 후련함을 느끼는 내가 혐오스러웠다.


“...미련한 새끼.”


가림은 손을 뻗어 정혜솔의 두 눈을 감겨주었다. 벌겋게 뜬 그 눈을 감겨주고 나자 비로소 깊은 잠에 빠진 사람 같다. 가림은 한참이고 정혜솔을 바라보았다. 기분이 복잡한 것 같았다. 나 역시 마찬가지라서 멍하니 땅바닥만 응시했다.


“가봐. 빨리.”


침묵 끝에 그가 말했다. 어서 가라며 팔꿈치로 밀기까지 한다. 하지만 차마 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이 꼴을 두고... 어디를 가.”

“그 사람 다쳤다며.”


나 역시 그이가 걱정됐다. 하지만 그이는 지금 혼자가 아니다. 나까지 가면 가림은 정말 혼자 이 어두운 곳에 남아있어야 하니까. 나는 한숨을 내쉬고 대답했다.


“...벼리씨 있으니까 괜찮아.”

“네가 그렇다면 뭐...”


가림은 가만히 숨을 내쉬더니 마치 기다렸다는 듯, 내 멀쩡한 쪽 어깨에 머리를 기댔다. 나 역시 몸에 힘을 풀고 그 쪽으로 몸을 기울였다. 다친 팔의 통증이 저절로 가라앉는 것 같다.


“네가 죽이는 건 상상도 안 했어. 처음부터 이럴 작정이었거든.”


서로의 체온을 느끼던 중 가림이 말했다.


“오늘 정혜솔을 죽인 건 나야. 제대로 자수할 거니까 방해할 생각 하지 마.”


그 완고한 태도에 나는 감히 말을 얹을 수가 없었다. 그게 가림의 뜻이고 선택이라면 따라야 하는 게 맞겠지. 하지만 그를 혼자 내버려 둘 생각도 없었다. 나는 가만히 가림의 손을 움켜쥐었다. 이런 내 행동에 가림은 잠깐 울컥한 듯 숨을 고르더니 말했다.


“대신에...”

“응.”

“넌 나 출소하면 마중 나와야 한다?”


울음 섞인 그 말이 애처롭기만 하다. 나는 대답 대신 그의 손을 더 세게 잡아주었다.


아까 벼리가 말한대로, 아주 저 멀리에서부터 사이렌 소리가 울렸다.

그 아득한 소리를 들으며 두 눈을 감았다.



**



그이가 잠들어 있던 나흘은 내가 그동안 살아온 모든 삶을 통틀어 가장 길게 느껴졌었다.

지안은 과로 때문에 그런 거고, 상처 자체는 깊지 않아 괜찮다고 말 해 주었지만 도저히 안심할 수가 없었다. 미희까지 다쳐서 입원한 마당에 그이를 돌볼 수 있는 사람은 나밖에 없어서 더 괴로웠다.


“도벼리씨. 맹소연씨는 아직입니까?”


가장 큰 문제는 이 망할 경찰들이다. ‘맹소연이 이번 사건의 중요한 열쇠다.’라는 가설 때문인지 하루종일 2인 1조로 돌아가며 병실 앞을 지키고 서 있었다. 가까스로 1인 병실 잡았더니 경찰들 때문에 마음 놓고 쉬지도 못했다.

그이가 쓰러진 지 나흘째 되던 날 아침도 득달같이 찾아온 형사 2명이 내게 물었다.


“보다시피요.”


그이의 팔과 얼굴, 목덜미를 물수건을 닦아주며 대꾸했다. 내 냉담한 반응에 그들은 머리를 긁더니 예의상 사 온 것으로 보이는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을 내게 건넸다. 일회용 컵에 담긴 그 커피를 받을까 말까 하다가 결국 받아들고 입도 대지 않은 채 선반 위에 올려두었다.


“수고하세요.”


그들은 완전히 떠날 것처럼 해 놓고 이번엔 발걸음을 돌려 어디론가 향했다. 아무래도 같은 병원에 입원한 미희를 만나러 가는 거겠지. 희미한 숨소리만 내며 잠든 그이와, 축축이 젖어가는 종이 컵홀더. 은근한 커피 냄새. 이젠 맡아지지도 않는 그이의 머스크향. 다 진절머리가 나서 그만 커피 컵을 들어 쓰레기통에 던져넣었다.

쾅 하는 소리와 함께 커피가 쏟아졌다. 아랫입술이 파르르 떨리며 또 울음이 나려 한다. 안 돼. 울면 몸이 힘들어 지고, 그러면 그이를 제대로 돌보지 못할 거야. 나는 숨을 깊게 들이마시고 몸을 돌리려 했다.

그때. 침대에 누워있던 그이가 눈을 살며시 뜨는 게 보였다. 처음에는 내 눈이 잘못된 건가 싶어서 눈가를 몇 번이고 손으로 비볐다. 하지만 입술까지 움직이는 모습에 나는 황급히 그이에게 달려갔다.


“언니!”


분명 그이가 깨어났다. 눈물이 날 정도로 기뻐서. 나는 바닥에 주저앉은 채 그이의 손을 붙잡았다.


“언니! 정신이 들어요?”

“너... 어떻게 된...”


그이가 상황 설명을 요청하다가 상처에 통증을 느끼고 미간을 찌푸렸다. 이제 정신 차린 사람에게 그날 있었던 일을 다 말해 주기엔 너무 가혹했다. 나는 일단 그이를 내버려 두고 병실을 뛰쳐나갔다.


“선생님 불러올게요. 잠깐 있어요. 여기요!”


마침 병실 앞을 지나던 간호사를 불러 그이가 깨어난 소식을 알렸다. 불과 몇 분만에 그이를 담당한 의료진들이 병실로 와 그이의 상태를 살폈다. 그이의 상태를 살피고 나자 의료진들은 자리를 비켜주었다. 나는 그제야 안심하고 그이의 오른손을 내 얼굴에 가져다 댔다. 살짝 떨리는 그 감촉이 이렇게나 그리웠다.


“다행이에요. 다행이에요... 살아있어서...”


이번에도 살아서 다행이라고. 나도 모르게 터져 나온 눈물을 감추지 못한 채 계속해서 속삭였다. 그이 역시 살짝 웃더니 내 눈물을 닦아주었다.


“별... 나 이 정도로 안 죽어.”

“맹정우 짓이죠? 언니 이렇게 만든거. 그날 대체 무슨 일이...”

“쉿.”


누가 당신을 이렇게 만든 거냐고 물으려는데 그이는 다급히 내 입을 틀어막았다. 왜 그러나 싶어서 뒤를 돌아보니 그새 다시 찾아온 형사들이 쭈뼛대며 병실 안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맹소연씨? 정신이 이제 좀 드십니까?”

“네, 뭐...”

“OO지방경찰청 소속 강재욱이라고 합니다. 몇 가지 여쭤볼 게 있어서요.”


형사들이 신분증을 들이밀었다. 그이는 일단 내게 몸을 일으켜 달라고 부탁했다. 나는 능숙한 솜씨로 침대 머리를 세우고 그이를 반쯤 기대 앉혀 주었다.


“네. 무슨 일이시길래.”

“그날 있었던 일을 어디까지 기억하십니까?”


강재욱이 물었다. 그 물음에 그이는 부드러운 한숨을 내쉬었다. 마지막 순간을 되짚는 게 괴로울 법도 한데 그이는 침착하게 대답했다.


“맹정우가 어머니를 죽이고, 저까지 찌른 뒤 도망친 게 마지막 기억이긴 한데...”


고민하던 그이가 갑자기 고개를 갸웃하며 형사들에게 되물었다.


“저야말로 알고 싶네요.”

“예?”

“그날. 정확히 어떻게 된 거예요?”


역으로 들어온 질문에 당황한 형사들은 나를 바라봤다. 나는 졸지에 ‘답답하게 지금까지 뭘 한거냐’는 눈초리를 받아야 했다.


“상황 설명 안 해주셨습니까?”


강재욱이 내게 성을 냈다. 그 모습이 다소 기가 막혀서 나 역시 뒤로 물러나지 않고 세게 나갔다.


“아니... 이제 막 깬 환자한테 그런 얘기를 어떻게 해요?”

“허, 참. 이거...”


아니꼬우면 자기가 상황설명 해 주던가. 나는 혹시라도 그들이 그이에게 이상한 질문을 할까 봐 잔뜩 경계하며 그이의 손을 붙잡고 놓아주지 않았다. 그이는 그런 내가 웃긴다는 듯 연신 입가를 가리고 헛기침했다.


“그래요. 뭐. 간단히 설명드리면... 그날 최성혜와 맹정길, 그리고 정혜솔이 사망했습니다.”


깜빡이 좀 켜고 들어오지. 나는 혹시 그이가 놀랐을까 싶어 그이의 표정을 살폈다. 맹정길이 죽었다는 건 이미 알고 있어서인지 별다른 반응이 없었지만 정혜솔이 죽었다는 소식이 좀 의외라는 눈치였다.


“정혜솔이요? 누가...”

“네. 혹시 이 사람을 아십니까?”


강재욱은 자켓 주머니를 뒤져 사진 한 장을 꺼냈다. 손바닥만 한 크기의 작은 증명사진 속에는 한가림이 있었다. 그이 역시 한가림을 알아보고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한가림...”

“네. 맞습니다. 정혜솔이 최성혜를 살해한 뒤 도주하였고, 한가림이 이를 쫓는 과정에서 몸싸움이 났죠. 이때 한가림이 정혜솔을 죽였습니다.”


갑자기 몰아닥친 정보에 그이는 혼란스러워 보였다. 반면에 나는 가만히 옆에서 듣고만 있으니 그이는 신기하다는 듯 내 손바닥 안쪽을 간지럽히며 물었다.


“넌... 다 알고 있었니?”

“네. 저도 거기 있었어서...”


물론 정혜솔이 죽었다는 건 뒤늦게 알았지만. 미희 대신 한가림이 정혜솔을 죽였다는 자백은 내가 봐도 진실이었다. 뭣보다 그 자백을 들은 미희의 표정이 지나치게 쓰고, 아파 보였으므로.


“그럼... 미희는 괜찮아?”

“신미희씨 말씀하시는 겁니까?”


팔을 다쳐서 이 병원에 입원해 있다고 내가 알려주려는데 강재욱이 끼어들었다. 내가 있는 힘껏 노려봤지만 그는 눈치채지 못하고 떠들기에 바빴다.


“한가림과 함께 정혜솔을 제압하는 과정에서 부상을 입었다고는 하는데... 골치 아픈 게, 한가림은 신미희가 정혜솔 살해에 있어 그 어떤 관련도 없다고 주장하고 있어요.”


형사는 형사가 맞나보다. 촉이 좋은 걸 보아하니. 미희 역시 정혜솔의 살해를 방관한 것에 충분히 동기가 있다는 게 밝혀지면 더 복잡해지기만 할 것 같아서 나는 일단 입을 꾹 다물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세 사람 사이에 뭐가 있는 것 같은데. 맹소연씨. 혹시 아는 거 있으면 솔직하게...”

“맹정우는요?”


가만히 듣고 있던 그이가 뜬금없이 물었다. 예상 외의 질문에 놀란 강재욱은 표정을 있는 대로 구겼다.


네?”

“저 이렇게 만들고, 어머니를 죽인 맹정우는 어디에 있냐고요.”


그 말에 형사들은 서로 눈치를 봤다. 나 역시 괜히 그이의 눈치를 보며 선뜻 말 해 주지 못했다.

하지만 진실을 요구하는 그이의 두 눈빛이 그 어느 때보다 더 불타고 있어서.

이제는 사건의 전황을 더 자세히 알려주어야겠다고 다짐하게 된 거다.







*다음주, '그 손에 담긴' 마지막화가 업로드됩니다. 마지막까지 잘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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