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지콰이 - Be my love

프롬님 :)

봉봉 오 쇼콜라

01





슈 페이스트리 반죽이 부풀었다. 여주가 부푼 반죽에 버터와 소금, 설탕을 넣고 끓이기 시작했다. 팔팔 끓기 시작하면 밀크 파우더를 넣고 또 한참을 기다렸다. 기다리는 동안 친구들이 올린 인스타 몇 개에 댓글을 달기도 했다. 보글거리는 소리에 여주가 핸드폰을 내려놓고 반죽을 믹서에 옮겨 밀가루를 넣어 한참을 돌려준 후 오븐에 넣고는 주방 의자에 몸을 기댔다.

오랜만에 뽐내는 실력 덕에 가슴이 벅차올랐다. 여주는 프랑스 르 꼬르동 블루(Le Cordon Bleu)를 좋은 성적으로 졸업하고, 호텔 파티쉐로 오 년을 일했다. 남부러울 것 없는 경력에 앞으로의 길은 창창했지만 여주는 별안간 모든 걸 버리고 한국에 들어왔다. 그게 한 달 전이었다.

커스터드 필링을 채운 뒤 겉에 초콜릿까지 입힌 에클레어가 완성되었다. 와, 내가 만들었지만 진짜 잘 만들었다. 여주가 행복한 얼굴로 에클레어를 한입 베어 물었다. 입안 가득 달콤한 향이 퍼지는 게 당장 팔아도 문제없을 맛이었다. 이 정도면 수아도 양 엄지를 치켜세울 거다. 본인이 만든 에클레어에 오백 퍼센트 만족한 여주가 상자에 에클레어를 담았다. 이제 수아의 허락만 떨어지면 될 일이었다. 사실 이미 허락이 떨어진 거나 다름없는 일이었지만.

여주의 오랜 친구 수아는 스몰 웨딩을 앞두고 있었다. 하루 보이고 말 결혼식에 큰돈을 들이지 않겠다고 이십 년이 넘도록 외쳐대더니, 결국 본인의 위시리스트 하나를 그어냈다. 드레스부터 웨딩사진, 장소까지 완벽했고 하나 남은 문제는 음식이었다. 수아는 당연히 단짝인 여주에게 부탁했지만, 여주는 쉽사리 승낙하지 못했다. 하나뿐인 소중한 친구의 결혼식을 망칠까 봐 걱정이 되어서였다. 수도 없이 평가받아 이미 완벽한 강여주의 디저트였지만, 여주는 면접 보는 기분으로 수아에게 자신의 음식을 소개하고 싶었다.

가장 소중한 친구에게 여주의 인생이나 다름없는 소중한 음식을 소개하는 것. 강여주의 자존심이 걸린 문제였다. 또한 프랑스의 모든 경력을 버리고 한국에 들어온 이유이자, 한 달째 백수인 이유이기도 했다.








수아는 여주가 만든 에클레어를 먹고 연신 난리를 쳤다. 이 정도면 미각을 잃은 사람도 합격일 거라는 말을 수도 없이 뱉었다. 그제야 당당하게 수아의 웨딩 음식을 책임질 명분이 생긴 여주의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진짜 솔직히 말하면, 내가 스몰 웨딩을 선택한 데에는 강여주 빽도 있다니까?"



수아가 어느새 에클레어를 다 먹어 치웠다. 결혼식을 일주일 앞두고 있어 다이어트를 해야 한다고 할 때는 언제고…. 개구진 표정을 지으며 뱉는 여주의 말에 수아가 민망한 표정으로 입가에 묻은 초콜릿을 닦아냈다.



"여주야~ 해주는 거지? 응? 솔직히 나 너 말고는 생각 안 해봤단 말이야~"



수아의 애교에 여주가 항복하는 제스처를 취했다. 그제야 높은 자존심의 문턱을 넘어서는 것 같았다. 본인이 단짝의 결혼식을 망치지는 않겠다는 자신감이 차올랐다. 여주는 음식을 해주는 대가에 대해 마구 얘기하는 수아의 입을 틀어막았다.



"그냥 해주는 거야, 돈 받고 할 생각 없어."

"야아, 이건 내 성의라고…."

"만들어주는 것도 내 성의야. 하나뿐인 친구 결혼식에 이것도 못 해줄까 봐?"

"야, 강여주우……."



여주의 걸크러쉬에 반한 수아가 더욱 애교를 떨어댔다. 어우, 야, 떨어져! 여주가 몸서리쳤다. 수아는 행복한 얼굴로 여주가 만들어줬으면 하는 디저트 목록을 쭉 뽑아냈다. 이 정도야 식은 죽 먹기지, 목록을 확인한 여주가 고개를 끄덕였다. 파리 번화가의 호텔에서 일할 때에 비하면 반의반도 안 되는 쉬운 일들이었다. 거기다 참석하는 인원도 그다지 많지 않을 테니.



"김영훈이 축하해 주러 오겠다길래 카톡 차단해버렸어."

"..."

"그러니까 그런 걱정은 하지 마."



수아의 말에 여주가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김영훈. 이수아와 강여주의 오랜 단짝이자, 강여주의 전 남자친구였다. 둘의 우정은 파리에서 일하는 여주를 만나러 왔던 그날 밤 이후로 사랑으로 변해 삼 년이 이어졌다. 초등학교 단짝이었던 셋의 우정은 변함이 없었으나, 여주가 프랑스의 모든 걸 버리고 한국으로 들어온 날 와장창 깨져버렸다. 김영훈은 바람이 났다.



"양심도 적당히 없어야지, 아무렇지 않게 연락하는 거 있지? 콱 발로 까버렸어야 하는 건데…."

"아냐, 괜찮아. 신경 쓰지 마."

"..."



수아가 입을 꾹 다물었다. 여주의 상처를 너무 잘 알고 있었다. 소중한 음식까지 버리고 올만큼 김영훈을 사랑했다. 바람난 여대생 현 여친과의 삼자대면 후 없던 정도 탈탈 털려버렸지만, 아직까지 백수로 지내며 흐트러진 마음을 다잡을 정도로. 강여주에게는 많이 소중한 사람이었다.

자존심까지 버리고 한국에 들어왔지만 변한 건 없었고, 여주는 어느 정도 스스로 치유를 했다. 슬슬 일자리를 구해봐야 했지만 이렇다 할 자리가 나지 않았다. 어쩌다 난 자리는 여주의 눈에 차지 않았다. 파티쉐로서의 자존심이 강한 강여주에게 웬만한 자리는 콧방귀를 뀔 정도였다. 금액보다는 저를 대우해 줄 수 있는 곳으로 가고 싶었다. 강여주가 없어서는 안 될만한 곳, 강여주를 애타게 원하는 곳.



"이건 펜션 주소고, 필요한 재료는 이 카드로 사면 돼."



수아가 여주에게 카드를 내밀었다. 카드를 받아든 여주가 잠시 멍때리다가 이내 웃어 보였다. 코찔찔이 초딩이었던 이수아가 어느새 제 결혼식의 뷔페 음식을 책임질 정도로 자랐다. 갑작스러운 세월의 풍파에 코끝이 찡해졌다.



"파리보다 더 좋은 곳으로 알아봐, 알았지? 진짜 이기적인 거 아는데, 너 한국 들어오니까 너무 좋단 말이야. 물론 너를 위해서라면 파리로 가겠지만, 그냥 네가 한국에 있으니까 부르면 바로 만날 수 있고 좋아가지구,"



수아가 횡설수설했다. 함께이고 싶은 마음과 여주가 승승장구했으면 하는 마음이 공존했던 탓이었다. 말을 뱉으면서도 미안한 마음이 들어 말을 끝맺지 못했다. 여주가 웃으며 답했다.



"걱정 마, 나도 프랑스 돌아갈 생각 없어."

"진짜?"

"이왕 한국 들어온 거, 한국에 정착해봐야지."



여주가 제 손가락을 쓰다듬었다.








카메라가 프라이팬을 클로즈업했다. 해바라기씨유가 둘러진 프라이팬이 달궈졌고, 물이 담긴 로스팅 트레이에 삼겹살이 올라갔다. 삼겹살이 다른 부위의 고기에 비해 저렴하지만 훨씬 값진 요리가 될 수 있어요. 카메라 렌즈에 담긴 셰프가 말했다. 카메라 감독을 포함한 스태프들은 절로 고개를 끄덕였다. 스타 셰프 김태형이 하는 말이라면 팥으로 메주를 쑨다 해도 믿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가니쉬를 만들 건데요. 양파는 껍질을 안 벗기고 이렇게 반만 잘라서 넣을 거예요."

*가니쉬: 플레이팅을 마무리하는 단계에서 음식 위에 얹는 데코레이션



양파 껍질에는 영양소도 많고, 이래야 형태가 흐트러지지 않거든요. 태형의 말에 오오, 감탄사가 패널들 사이에서 터져 나온다. 태형은 스타들의 냉장고를 가져와 안에 있는 재료로 음식을 만드는 인기 프로그램에 고정 출연 중이었다. 잘생긴 외모와 흠잡을 것 없는 요리 실력, 게다가 갖춰진 매너까지. 프로그램의 인기를 떡상하게 만드는 일등 공신이었다.



"껍데기가 이렇게 황금빛이 돌면 돼요. 바삭한 소리 들리세요?"



MC가 필요 없는 진행 능력에 패널들은 태형의 말에 블랙홀처럼 빠져든다. 삼겹살 껍데기를 바삭하게 부수는 소리에 다들 침을 꿀꺽 삼켰다. 냉장고의 주인인 연예인은 당장 그 요리를 맛보고 싶어 난리였다. 태형이 젠틀한 웃음을 지으며 완성된 요리가 담긴 접시를 내민다. 사용된 재료는 삼겹살, 해바라기씨유, 양파, 버터, 소금, 그리고 풍미를 높이기 위해 발린 꿀 정도.

해당 연예인은 당연히 태형의 손을 들어주었다. 다섯 개의 별이 박힌 태형의 앞치마에 또 하나의 새로운 별이 붙었다. 박수 소리가 터져 나왔고, 태형이 수줍게 웃었다. 컷, 오케이! 감독의 기쁜 목소리와 함께 촬영이 종료됐다. MC와 패널들이 저마다 인사를 건넸다. 수고하셨습니다, 오늘 너무 맛있었어요, 등등. 그 인사는 태형에게도 돌아갔다.



"태형씨, 오늘 요리 너무 맛있었어요. 나중에 라뒤레 가면 또 요리 맛볼 수 있는 거예요? 거기 웨이팅 엄청나다고 하던데."



La Duree(라뒤레). 태형이 총괄 셰프로 있는 레스토랑이었다. 예약 한번 하려면 최소 한 달 전에는 해야 할 정도로 인기 많고, 미슐랭 3스타도 받았다. 하버드 MBA를 졸업한 사장이 운영하고 있어 모자랄 것 하나 없었다. 거기다 스타 셰프 김태형이 있는 곳이니 두말하면 입만 아픈 곳.

*하버드 MBA: 경영 대학원 과정.


막 앞치마를 벗던 태형은 제게 치근덕대는 연예인에 얼굴을 구겼다. 라뒤레의 총괄 셰프이자 소중한 보물인 김태형에게 딱 한 가지 단점이 있었는데, 그건 바로,



"제가 왜요?"

"..."

"비켜요, 저 디너 준비하러 가야 해서."



싸가지가 없어도 존나 없었다.








>라뒤레ㅣ김석진

: 큰일 났어요...

: 파티쉐 연락이 안 됩니다...



라뒤레 지배인 석진의 연락을 받은 윤기가 얼굴을 감쌌다. 하, 진짜 미치겠네…. 욕도 중얼거렸다. 막 라뒤레에 도착한 윤기가 연락처를 뒤져 라뒤레 파티쉐에게 전화를 걸었다. 한참이나 신호음이 울린 후에야 전화가 연결됐다.



"민윤기입니다."

- 저 라뒤레 안 가요, 사장님.

"김지배인한테 연락은 받았어요. 다시 생각해보시는 게 어때요? 당장 디너 디저트도 문제고…."

- 안 가요!



핸드폰 너머로 빽 울리는 목소리에 윤기가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일단은 오늘 디너부터 문제였으니 어떻게든 파티쉐를 잡아야만 했다. 그렇지 않다면, 난장판이 될 라뒤레의 디너 모습이 상상된 윤기가 화를 참고는 천천히 말을 뱉었다.




"한 번만 다시 생각해봐요, 아마 김태형 셰프도 진심으로 한 말은 아니었을 거예요. 당장 디너는 어떡합니까. 이렇게 책임감 없는 사람은 아니잖아요."

- 사장님께는 진짜 죄송한데, 저 그런 미친놈이랑 이제 일 못하겠어요. 파티쉐 무시도 적당히 해야지.

"..."

- 사장님도 라뒤레 생각하시면 이렇게 오냐오냐만 하시면 안 돼요. 김태형 그거 진짜 미친놈이라니까요? 저는 사장님 같은 분이 왜! 김태형 같은 미친 셰프 새끼랑 친한지 도저히! 이해가 안 된다니까요!



저기, 진정하시고. 윤기가 애써 달래듯 말을 뱉지만 핸드폰 건너편의 사람은 들을 생각조차 하지 않고 있었다. 저는 김태형 잘리는 거 아니면 안 돌아가요, 청천벽력 같은 말을 뱉고는 전화가 일방적으로 끊겼다. 씨발. 욕을 뱉어낸 윤기가 라뒤레 정문을 벌컥 열었다.



"어, 사장님, 얘기 들으셨죠? 파티쉐가,"

"어, 들었어. 김태형 왔어?"

"방금 왔어요."



라뒤레에 들어서자마자 홀 매니저 남준이 윤기를 반겼다. 윤기의 썩은 얼굴을 보고 이미 상황을 알고 있겠거니, 남준은 몸을 사렸다. 윤기가 발걸음 하나에 분노를 꾹꾹 눌러 담으며 태형이 있을 키친으로 향했다. 디너에 쓰일 재료들을 손질하던 정국이 벌떡 일어나 윤기에게 허리 숙여 인사했다.



"김태형은."

"셰프님 저기 안쪽 냉동고에…,"



정국이 떨리는 손으로 냉동고를 가리켰다. 윤기가 냉동고 문을 벌컥 열면, 태형이 여유로운 얼굴로 윤기를 돌아본다.





"아이쿠, 엄청 화났네."

"지금 웃음이 나와?"

"나오지, 그럼. 마음에 안 드는 파티쉐가 나갔는데 그럼 내가 울까?"

"당장 디너는 어떡할 건데. 너는 생각이 없어?"

"지민이가 하면 되지."

"지민이는…!"



…아직 배우는 입장이잖아. 윤기가 뒷말의 소리를 죽였다. 박지민. 지랄맞은 김태형 성격에도 꿋꿋이 디저트 파트에 남아주는, 윤기에게는 아주 고마운 인력이었다. 지금 파티쉐만큼 완벽한 맛은 아니더라도, 오늘은 어떻게든 넘기게 해줄 비상 인력 같은 거였다. 지민이 있어서 지금 태형이 저렇게 안하무인으로 있는 건가 싶기도 하고. 윤기가 지끈거리는 머리를 붙잡았다.



"세상에 너한테 맞는 사람이 있기는 해? 너 다른 데서 일했으면 평판 나가리 되고 백수 되는 거 순식간이야. 나니까 받아준 거지."

"그래, 맞는 사람 형 있잖아."



…말을 말자. 윤기가 손을 휘휘 저었다. 여유로운 태형의 모습에 더욱 속이 터졌다. 야, 정국아! 태형의 부름에 정국이 한달음에 달려왔다. 이거 손질해, 태형이 양파 묶음을 던졌다. 양파 묶음이 윤기의 어깨너머로 날아갔다. 정국이 윤기에게 꾸벅 인사하고는 냉동고를 빠져나갔다.



"형, 파티쉐 면접 볼 때 나도 꼭 데리고 가줘. 또라인지 아닌지 내가 판단해봐야 할 거 아냐."

"..."



하버드 MBA를 졸업하고 미슐랭 3스타 레스토랑을 운영하는 민윤기에게 유일한 걱정은, 가장 아끼는 동생 김태형이었다. 연을 끊어버릴 수도 없고.








수아의 스몰 웨딩은 시작부터 완벽했다. 하객들도 만족한 얼굴이었고, 신부대기실에 앉은 수아의 얼굴에도 꽃이 피었다. 수아와 여주의 사이가 워낙 각별하다 보니, 수아의 지인들은 웬만하면 여주를 알았다. 어, 인스타에서 많이 뵀어요. 여주에게 건네는 첫인사는 대부분 이런 거였다.

여주는 최소한의 재료로 최대한의 디저트를 만들었다. 프랑스의 내로라하는 유명인들이 호텔에 방문했을 때보다 더욱 심혈을 기울였다. 수아가 오백 퍼센트 만족한 에클레어부터, 케이크와 타르트, 밀푀유와 크림 브륄레가 예식장 한편에 마련됐다. 사람들이 오가며 디저트를 칭찬하자 수아의 어깨는 하늘 위로 올라가기 직전이었다. 그거 제 친구가 만들어준 거예요~! 자랑하기 바빴다.



"결혼 축하해요, 선배."

"어, 바쁜데 와줬네. 고맙다, 수아는 봤어?"

"멀리서 슬쩍 봤어요."



그 결혼식에는 윤기도 있었다. 윤기의 고등학교 선배이자 간간이 연락을 주고받는 사람이 수아의 신랑이었다. 수아의 신랑은 바쁜데 와줘서 고맙다는 인사를 연신 건네며 윤기의 어깨를 두드렸다.



"아, 맞다. 그 디저트 한번 먹어봐."

"디저트요?"

"수아 친구가 만들었는데, 프랑스에 있다가 온 애라 그런지 맛이 기깔나더라."

"..."

"너 레스토랑 사장이니까 그런 거 좋아할 거 아냐, 먹어봐. 후회 안 해."



평소 같았으면 아, 예예. 이러고 넘겼을 윤기의 귀가 솔깃했다. 프랑스에 있다가 온 사람이 만든 디저트라면 파티쉐일 확률이 높았다. 고마워요, 선배. 윤기가 한 번 더 축하 인사를 건네고는 홀로 빠져나왔다. 간단히 마련된 음식이 올려진 테이블로 향하니 한편에 마련된 디저트가 눈에 들어왔다. 한눈에 보아도 고급스러운 데코레이션이었다. 윤기가 에클레어를 집어 한입 베어 물었다.





"..."



별 기대 않고 먹은 에클레어는 완벽했다. 윤기는 홀린 듯 옆에 놓인 크림 브륄레도 떠먹었다. 역시나 그 맛은 극찬할 정도였다. 윤기는 또 한 번 망설임 없이 옆에 놓인 타르트를 먹었다. 디저트를 가지러 온 하객 하나가 윤기를 이상하게 쳐다봤다. 여기서 배를 채우는 거야...? 제 지인과 수군댔다.

케이크까지 한입에 밀어 넣은 윤기는 더 이상 지체할 시간이 없다고 판단해 신랑에게 직행했다. 하객에게 인사를 건네느라 얼굴에 경련이 날 지경이었던 신랑은, 윤기를 보고 안도하는 표정을 지었다.



"어휴, 야, 너구나."

"선배, 이거 디저트 만든 사람, 이수아씨 친구라고 했죠? 프랑스에서 공부하고 온?"

"어어, 맞아."

"프랑스에서 무슨 공부했대요?"

"어…, 뭐라더라. 빵 뭐 그런 건데."

"혹시 파티쉐?"

"어, 맞아! 그거야. 역시 레스토랑 사장이니까 그런 단어도 딱 아는구나."



저 그 사람 좀 소개해 주세요. 윤기가 말했다. 신랑이 당황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여주씨 애인 있는지 없는지는 잘 모르는데…. 신랑의 말에 윤기가 웃음을 터트렸다.



"저도 얼굴 모르는 사람 소개받을 생각 없어요."

"그럼...?"

"디저트가 너무 맛있어서 한번 만나보고 싶어서요. 누구예요?"



음…. 하객을 둘러보던 신랑이 신부대기실 쪽에서 서성이던 여주를 발견하고 가리켰다. 저기, 분홍색 옷 입은 사람! 윤기가 바로 여주에게 향했다.

여주는 창이 탁 트인 곳에 서서 식이 시작되기만을 기다렸다. 혹시나 철판을 쓴 김영훈이 나타날지도 몰라 주변을 경계하기도 했다. 그러다 문득 저를 빤히 쳐다보며 다가오는 남자가 눈에 들어왔다. 뭐, 뭐야. 나한테 볼일이라도 있는 건가...? 여주가 당황한 얼굴로 뒷걸음질 쳤다.



"오늘 디저트 만드신 파티쉐님이시죠?"



여주를 정확하게 알고 있는 질문이었다. 금방 경계가 풀린 여주가 고개를 끄덕였다. 남자는 수트 안주머니에서 명함을 꺼내 여주에게 건넸다.



"라뒤레 민윤기입니다."

"아, 저는 강여주요."



라뒤레라면 여주도 아는 곳이었다. 미슐랭 3스타여서 텔레비전에도 많이 나온 곳이었다. 사장이 생각보다 젊네, 여주가 그런 생각을 하며 윤기의 명함을 받아들었다. 흰 배경의 명함에는 깔끔하게 글자만이 박혀있었다. 라뒤레, 민윤기.



"프랑스에서 공부하다 오셨다고 들었습니다. 확실히 에클레어는 명품 중의 명품이던데요."

"아…."

"혹시 어디서 일하고 계신지 여쭤봐도 될까요?"



백수, 여주가 입술을 달싹였다. 프랑스 5성급 호텔 파티쉐로 일하다가, 바람난 전남친을 잡으러 한국으로 들어오는 바람에 백수가 됐다는 말을 차마 처음 보는 남자에게 털어놓을 수 없었다. 여주가 망설이니 윤기는 더욱 안달이 났다.



"지금 계시는 곳보다 훨씬 더 좋은 대우해드릴 수 있습니다. 저희가 당장 파티쉐가 급한데, 맛이 너무 완벽해서요."

"..."

"오시면 만족하실 겁니다. 꼭 마음에 드셨으면 좋겠네요."



윤기가 여주에게 한 번 더 어필했다. 아, 여주가 고민에 휩싸여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강여주씨 디저트라면 그 누구라도 좋아할 거예요."





인물 소개



민윤기 (35세, La Duree 사장)

하버드 MBA를 졸업하고 한국에 들어와 부모님 도움을 받아 라뒤레 창업. 미국에 있을 때 우연히 알게 된 태형과 마음이 맞아 십 년을 넘게 함께 했다. 매사에 신중하고 계산에 철저하지만 태형에게만큼은 너그러운 편. 또한 라뒤레에서 일하는 직원들에게도 친절하다. 손님에게는 말할 것도 없음. 우연히 강여주의 디저트를 먹고 라뒤레의 파티쉐로 점찍었고, 강여주에게 그 이상의 감정을 느끼게 된다.


김태형 (32세, La Duree 총괄 셰프)

뉴욕 CIA 요리학교 졸업했고 전공은 양식. 휴식차 뉴욕에 놀러 왔던 윤기와 우연히 인연을 맺게 되고, 지금까지 친형제와도 같은 우정을 유지 중이다. 윤기가 라뒤레를 오픈하며 태형을 스카우트했다. 뛰어난 외모와 요리 실력으로 스타 셰프로 명성을 날리지만, 요리계에서는 성격 더러운 김태형을 버티는 게 일류라는 소문이 자자하다. 파티쉐 강여주와 사사건건 부딪치지만 점차 마음이 열려 사랑을 깨닫게 된다.


강여주 (33세, La Duree 파티쉐(가 될 예정))

프랑스 르 꼬르동 블루(Le Cordon Bleu)를 졸업했고 파리 5성급 호텔 파티쉐로 근무하다가 최근에 한국으로 들어왔다. 바람난 전남친에게 받은 상처로 스스로를 위로하다가 막 직장을 구하려던 찰나, 민윤기가 명함을 건넸다. 라뒤레의 식구들과 친해지고 매너 좋은 사장에게 호감을 느끼기 시작한다. 까칠한 셰프와도 매사에 부딪히지만 또 그게 나쁘지만은 않다.


김석진 (36세, La Duree 총 지배인)

호텔경영학과 졸업. 영어, 프랑스어, 스페인어, 중국어, 한국어 총 5개 국어에 능통하다. 상황 대처 능력이 빠르고 유연하고 융통성 있다. 라뒤레 초창기 멤버로 윤기와도 죽이 잘 맞는다. 또한 라뒤레 식구들과 스스럼없이 잘 지내며 특히 태형을 다루는 능력이 윤기 다음으로 뛰어남.


김남준 (33세, La Duree 홀 매니저)

호텔경영학과 졸업. 어릴 적 미국에서 살다 와서 영어를 원어민 수준으로 사용함. 석진과 마찬가지로 상황 대처 능력이 뛰어나고 라뒤레 초창기 멤버이다. 동갑인 강여주와 죽이 잘 맞아 영혼의 단짝이 된다. 태형이 유일하게 무시하지 않는 홀 담당.


정호석 (28세, La Duree 바리스타)

바리스타 자격증을 따고 카페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다 라뒤레에서 정직원으로 몸담게 됨. 아라비카와 리베리카 원두도 구분 못하는 주제에 커피를 내려달라 틱틱대는 태형이 어이없지만, 착해서 커피는 또 내려준다. 가끔 주문이 잘못 나간 스테이크를 가져다줄 때마다 두 손 벌려 환영함.


박지민 (27세, La Duree 디저트 담당)

호텔조리학과를 졸업하고 디저트가 배우고 싶어 라뒤레에 들어옴. 지민을 처음 가르쳐준 파티쉐가 태형과 싸우고 나가는 바람에 현재 멘붕 상태. 여주가 오기 전까지 라뒤레의 디저트를 담당했다. 맛이 변했다고 컴플레인이 몇 번 들어왔지만, 석진과 남준의 대처로 지민은 영원히 모른다. 여주의 디저트를 맛보고 스승님으로 모시게 됨.


전정국 (21세, La Duree 주방 보조)

조리 고등학교 졸업 후 라뒤레 주방에 입성. 개싸가지 태형의 성격을 받아내는 사람이 별로 없지만 꾸역꾸역 버티는 중이다. 최소 삼 년은 주방보조를 해야 한다는 말에 울기도 많이 울었지만, 그래도 배울 건 많아서 참는 중. 눈치가 빨라 윤기와 태형의 마음을 빼앗아버린 여주를 실세라 여기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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