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이 살기로 했지만 당장에 같이 사는 것은 현실적이지 못했다. 그리고 같이 살려면 의논해야 할 것도 있고 정리해야 할 것도 있다. zee는 하루라도 빨리 같이 살고 싶어 누뉴와 얘기할 틈이 있으면 의논했다. 우선 누구의 집에 같이 사느냐. 이것은 zee의 집으로 결정이 되었다. 그도 그럴 것이 누뉴가 구한 집은 혼자 살 공간이면 된다고 생각해서 원룸은 아니고 방이 두 개긴 했지만 크지 않았다. 반면 zee의 집은 침실 외에도 빈 방이 두 개 정도 있었다. 같이 살면 같은 공간에서 자고 하면 되는 것 아닌가 생각할 수 있겠지만 누뉴는 일반 직장인이 아니고 글을 쓰는 사람이었다. 카페에서 물론 글을 쓰기도 하지만 갑자기 생각나면 집에서도 쓰기도 한다. 혹시 몰라 여행 갈 때도 노트북을 항상 챙겨 다닐 정도였다. 그렇기에 작업할 수 있는 방이 따로 필요했다. 그래서 zee의 집에 누뉴가 들어가기로 결정이 된 것도 있고 또 결정적인 것이 하나 있었다. 


"하지만 집은 잠시 그대로 두고 싶어요"


누뉴의 집은 누뉴 명의로 되어 있는 집이 아니라 월세집이었다. 누뉴의 수입이 얼마인지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누나의 말에 의하면 인기작가니 꽤 많이 벌지 않을까 싶었는데. 집에 많이 투자를 안하고 싶어서 그런 것일 수도 있겠다. 아무튼 누뉴는 zee의 집에서 살 예정이지만 당장에 지금 사는 집을 뺄 생각은 없었다. 집돌이인 자신과 함께 했던 집을 떠나보내기 싫기도 했고 아직 계약 기간이 남아 있었다. 얼마 안 남았지만 말이다. 그런 그에게 zee는 계약이 얼마나 남았는지 물었더니 3개월이라고 대답했다. 3개월. 그 정도면 괜찮지 않을까 싶었다. 물론 집을 그냥 놀리는 것이나 마찬가지지만 카페와 가까우니 가끔 가다가 그의 집에 같이 머물러도 되기도 하고.


"그렇게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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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 이게 왜 필요해?"

"왜냐니요? 방에 놔야죠"


본격적으로 필요한 것들을 사기 위해 쇼핑몰로 데이트를 온 누뉴와 zee는 서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대부분 '응. 그래 그래'하고 들어주던 zee가 누뉴가 쏙 들어가서 여기 저기 둘러보는 그 매장에 대해 의문을 가졌다. 그 매장은 바로 가구매장 안 침대를 파는 곳이었다. zee는 누뉴가 왜 침대를 고르는 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아니 이해하고 싶지 않았다가 더 정답에 가까울 것이다. 이미 자신의 침실에 싱글도 아니고 큰 사이즈의 침대가 있는데 무엇하러 침대를 방에 다가 놓으려는 건지. 자신과 함께 침실에서 자면 되는데 왜 고르는 거냐고 직접적으로 말하자 주변에 있는 종업원의 눈치를 살피며 '쉿' 하면서 조용히 하란다. 


"p'zee는 일찍 나가야 하니 푹 자야 하고, 제가 늦게 까지 일하고 들어가면 자는데 방해되니까 그렇죠"

"아니야 전혀 그렇지 않을걸?"


누뉴의 말은 zee에게 있어서는 청천벽력 같은 소리다. 같은 공간에서 같이 자고 같이 눈 뜨는 것이 자신이 바라는 것인데 지금 따로 잘 수도 있다는 소리 아닌가. 어떻게든 설득하고 싶었다. 못 사도록! 오히려 따로 자는 게 더 잠이 안 오고 신경 쓰일 것이다. 아침에 눈을 떴는데 같이 사는 이가 없다면 놀랄 것이다. 문을 열어 놓고 자면 될 것이다. 바로 누울 수 있게 안쪽에서 자면 해결될 일이다. 하면서 별에 별 소리를 다 한다. 누뉴는 이 사람이 왜 이러나 싶었지만 그래도 사야된다고 단호히 말하자 zee가 뭐라고 웅얼거렸다. 무슨 소린지 들리지 않아서 누뉴가 '네?'하고 되묻자 조금 더 큰 목소리로 하지만 누뉴에게만 들리게 끔 이야기했다. 


"너, 그거 사면 나랑 같이 안 잘 수도 있는 거잖아.."


각 방 쓰는 거랑 뭐가 달라. 그런 것 싫단 말이야. 하고 눈을 피하면서 투덜대는 그의 표정은 영락없이 토라진 어린 아이 같았다. 예상치 못한 말에 누뉴의 눈이 커졌고 '푸하하'하고 소리 내어 웃기 시작했다. 진짜 상상도 못한 이유였다. 나날이 갈수록 귀여워지는 자신의 연인이었다. 누뉴는 살포시 그의 손을 잡고 귓가에 말해주었다.


"늦게까지 일하는 것 아니면 반드시 p'zee와 함께 잘게요"


그 말에 아직도 눈을 피하고 있지만 솔깃했는지 정말이냐고 묻는다. 당연히 그렇게 할 거다. 그리고 늦게까지 작업하는 날이 그렇게 많지는 않을 것이라고 했다. 그랬더니 많지 않으면 그냥 그런 날도 자신과 자자고 하는 zee에 그것은 안된다고 하니 그가 마지 못해 알겠다고 한다. 그러면 그 방도 큰 침대로 놓자고 zee가 그랬고, 누뉴는 어차피 혼자 잘 것인데 큰 침대는 필요 없지 않겠냐고 했다. 하지만 그 방에 침대 넣는 것을 허락했으니 이것은 자신을 따라주었으면 좋겠다고 하여 누뉴는 알겠다고 했고, 결국은 더블 사이즈의 침대를 구매했다. 그리고는 바로 옆에 책상을 보았다. 구매한 침대와 비슷한 나무색의 책상을 골라 구매하고 배송지는 zee의 자택으로 했다. 

누뉴에게 필요한 것은 이게 다였다. 침대, 책상. 노트북 같은 것은 자신이 챙겨가고, 옷 같은 것만 챙기면 되었다. 나머지는 다 zee의 집에 구비되어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zee의 생각은 달랐다. 아무리 작업실이라고 해도 딸랑 침대와 책상만 있으면 너무 휑할 것 같았다. 이것 저것 채워주고 싶어 이것은 어떤지 저것은 어떤지 물었지만 누뉴는 다 사양했다. 과소비 하지 않으려고 그런 것만은 아니겠지만 그래도 그런 모습이 기특했다. 그렇기에 더 해주고 싶은 마음이 컸지다. 그렇지만 오늘은 누뉴의 말을 따라 주기로 했다. 지금이 아니더라도 나중에 필요하면 하나씩 채워 나가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온 김에 여기 좀 들려도 될까?"


가구매장에서 나오고 나서 아이쇼핑할 겸 같이 걷고 있었는데 zee가 들리고 싶은 곳이 있는 지 한 곳을 가리켰다. 그 곳은 커피원두를 전문적으로 파는 곳이었다. 누뉴는 흔쾌히 그러자고 했고, 작은 공간에 여러 원두들이 있어서 그런지 트인 공간임에도 불구하고 들어가기도 전에 커피향이 확 느껴졌다. 들어가보니 작은 매장이었지만 갖가지 여러 종류, 브랜드의 원두들이 즐비해있었다. 커피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하는 누뉴는 뭐가 뭔지 잘 몰라 다 똑같아 보였지만 zee는 바리스타고 커피에 대해 늘 진지한 사람이라 그런지 유심히 그리고 꼼꼼히 보았다. 하나 하나 꼼꼼히 보고 향을 맡아보는 모습을 누뉴가 바라보고 있으니 시선을 느꼈는지 zee 또한  누뉴를 바라보고 향을 맡을 수 있게 해준다. 


"이건 예가체프라는 원둔데 원두 중에서 유명하고 인기 있는 원두 중 하나야"


예가체프라 처음 들어본다. 처음 들어봤을 누뉴에게 에티오피아에서 나는 원두고, 산미 그러니까 신맛이 강하게 난다고 자세히 설명해준다. 그런 그의 설명을 경청하고 있다는 것을 증명하듯 누뉴는 고개를 계속해서 끄덕였다. 자신이 좋아하는 커피를 설명하는 그의 눈은 반짝반짝 빛났고, 신난듯 해 보였다. 자신의 일에 진지하고 열정적인 사람이다. 커피는 마시기만 했지 문외한인 자신의 연인에게 못 알아들을까 열심히, 천천히 설명하는 zee의 모습은 멀리서 누가 보면 매장 종업원과 손님처럼 보일 수도 있겠지만 가까이서 보면 누구나 알 수 있듯 굉장히 다정하고 사랑 넘치는 부부 혹은 연인처럼 보였다. 

그 이후에도 누뉴에게 몇 가지 유명 원두를 설명해 준 zee는 전혀 접해보지 못했던 원두를 하나 사 들고 밖으로 나왔고, 천천히 둘러보며 아이쇼핑을 했다. 그러다가 zee는 시간을 보았고, 누뉴에게 물었다.


"누, 배고프지는 않아?"

"어.."


그러고 보니 어느덧 저녁시간이었다. 딱히 배고프다는 생각을 안하고 있었는데 배고파졌다. 그래서 그렇다고 끄덕이니 그럼 밥을 먹고 들어가자고 하였고, 누뉴도 그러는 게 좋겠다고 했다. 쇼핑몰에 있는 푸드코트에 무심코 들어간 누뉴는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원래도 사람 붐비는 곳을 좋아하지 않아 쇼핑몰을 잘 안 오는데 zee를 따라서 들어온 식당이 있는 층은 유독 사람이 많았다. 그래서 그런지 어디에 뭐가 있는지도 잘 모르겠고 약간 어지럽기까지 했다. 이런 상황에서 행여 놓칠까 zee의 손을 꼭 잡았고, 자신의 손을 꼭 잡아오는 게 느껴진 zee는 누뉴를 바라보았다. 불안한 듯 자신을 쳐다보고 있는 누뉴의 모습에 일단 옆에 벤치에 앉혔다. 갑자기 어디가 아픈 것일까 싶어 누뉴를 살펴보았다. 걱정하듯 쳐다보는 zee의 모습에 안심을 시켜야겠다고 하지만 사실대로 말해야겠다고 생각한 누뉴가 말을 꺼냈다. 


"그냥 사람이 좀 많아서 그랬던 것 뿐이에요. 괜찮아요"


그러고 보니 평일임에도 불구하고 사람이 많았다. 사람 많은 곳을 싫어해서 쇼핑몰을 잘 안 다녔을텐데. 아까까지 쇼핑하는 것도 쉽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하물며 푸드코트는 사람이 제일 많이 붐비는 곳이 아닌가. 실수했다 싶은 zee가 미안하다고 했고, 누뉴는 zee가 미안해 해야 할 일이 아니고 자신이 미안해 해야 할 일이라고 했다. 그러자 누뉴가 미안해 해야 할 일은 더더욱 아니란다. 자신 때문에 당황해 어쩔 줄 몰라하는 그의 모습에 미안했다. 여기 있는 사람들처럼 그냥 아무렇지 않게 돌아다니고 먹을 곳에 들어가면 좋겠는데 언젠가 그렇게 될 날이 올까. 싫어하니 안 다니면 된다는 생각을 갖고 이런 붐비는 곳은 아예 찾지 않았었다. 그게 화근인걸까. 요새는 왜 이리 후회하는 게 많은지 모르겠다. 운전면허도 그렇고, 이런 것도 그렇고. 더 많은 것을 경험해 볼걸.  

좀 괜찮아졌냐는 zee의 말에 생각을 멈추고 괜찮아졌다고 이야기 했다. zee는 그럼 여기 말고 나가서 먹자고 제안했고, 그의 말에 누뉴도 그렇게 하자고 하고 우선 쇼핑몰 밖으로 나와 차에 탔다.

차를 타고 이동하는데 누뉴의 표정이 약간 어두웠다. 아마도 아까의 일 때문인 것 같았다. 결코 누뉴의 잘못이 아닌데 누뉴가 자신을 탓하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까웠다. 사람은 누구나 잘하는 일이 있고, 못하고 어려워하는 것이 있다. 신이 인간을 만들었다고 해서 인간은 신이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누구나 불완전하고, 그것은 자신도 그랬다. 누뉴도 알고 있을 것이다. 이전에 누뉴에게 비슷한 이야기를 해준 적이 있기 때문이다. 이것을 한 번 더 말해주는 것도 좋겠지만 zee는 이번에는 다른 방법을 사용했다. 


"아, 여기 근처에 내가 정말 좋아하는 가게 있는데 한 번 가볼까?"


그 말에 고개가 살짝 숙여진 누뉴의 얼굴이 제 자리로 올라왔다. 목소리는 내지 않았지만 '응?'하고 반응하는 느낌이었다. 쇼핑몰 근처에 zee가 좋아하는 태국요리점이 있었다. 사실 zee도 쇼핑몰은 그닥 갈 일이 많지 않기에 쇼핑몰 근처에 있는 이 가게에 갈 일이 좀처럼 거의 없었다. 하지만 누뉴에게 말한대로 정말 좋아하는 가게인 것은 맞다. 타이요리를 정말 끝내주게 하는 곳이었다. zee가 침을 튀겨가며 조금은 오버스럽게 그 곳의 요리가 참 맛있고, 좋아한다고 이야기하자 누뉴가 그렇게 맛있냐고 묻는다. 정말 맛있어서 언젠가 누뉴랑 오려고 생각해 둔 곳 중 하나라고 이야기 하니 그가 그제야 그렇냐고 하며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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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까지 먹고 집으로 돌아온 zee는 아직 가구가 오지 않았지만 누뉴가 자신의 집에 머무르기를 바랐다. 하지만 누뉴는 가구가 오면 본격적으로 짐을 옮기고 그 때부터 이 곳 zee의 집에서 지내겠다고 말했다. zee는 더 이상 고집을 피울 수 없었다. 누뉴도 누뉴만의 사정과 생각이 있을 것이고, 혼자 살고 있는 집을 당장에 버리고 여기서 지내라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렇다고 안 온다는 것도 아니고 곧 침대나 책상이 들어올테니 기껏해야 일주일 안이었다. 하지만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는지 같이 살겠냐는 말에 동의를 해준 것만으로도 감사했는데 지금은 하루라도 더 빨리 들어왔으면 하고 바라고 있다. 자신이 얼마나 누뉴에게 빠져있는지 보여주고 있는 것 같다.


"빨리 왔으면.."


배달이 빨리 되었으면 좋겠다. 누뉴가 빨리 올 수 있게. 요새 부쩍 자신이 어리광도 고집도 많아진 것 같다는 것을 느낀다. 이것도 다 누뉴를 만나고 나서 변화된 자신의 모습이었다. 남들이 보면 놀랄 것이다. 놀리기도 할 것이다. 천하의 zee가 이런 모습이 있었냐며. zee는 커피를 제외하고는 좀처럼 욕심 내는 것이 없었다. 여자관계도 그렇고, 그 외에 취미 생활이라거나 수집욕이나 돈을 밝힌다거나 하는 것도 없었다. 누뉴를 만나고 나서 낯선 자신의 모습을 볼 때가 있다. 아마 친구들이 보면 놀랄 수도 있을 것이다. 적지 않은 나이다 보니 대부분 친구들이 결혼해서 자신을 찾아오거나 보자고 하는 친구들은 거의 없어서 이런 자신의 변화를 모를 것이다. 그렇다고 일부러 모르게 하고 싶지는 않다. 이런 것이 창피하거나 싫은 것이 아니다. 이 또한 솔직한 자신의 감정이고 숨겨져 있던 나의 다른 모습 중 하나이다.  

zee는 그러면서 누뉴가 이 집에 오기 전 해야 할 것이 무엇이 있는지 생각해보았다. 우선 청소를 해야겠지. 누뉴가 작업실로 쓰기로 한 방은 아무도 쓰지 않았고, 어떠한 가구도 없는 정말 아무 것도 없는 방이어서 치울 것이 없어 보이지만 아무도 사용하지 않았기에 바닥이나 창문 청소가 필요했다. 청소하는 김에 누뉴를 맞이 하기 위해 아예 집안 대청소를 하는 게 나을지도 모르겠다. 깔끔한 성격의 zee는 청소하는 것을 싫어하는 편은 아닌지라 가급적 매일 같이 청소기를 돌리기는 하지만 대청소하듯 구석구석 청소하는 것은 카페를 시작하면서 쉽지 않았다. 이참에 해야겠다고 생각한 zee는 몸을 일으켰다. 


"좀 서둘러야겠는데"


대청소는 하기 나름이긴 하지만 한 번 하면 몇 시간이 걸릴지 모를 일이었다. 쇼파 옆에 있는 청소기를 들고 우선은 침실로 향하는 그의 발걸음은 어쩌면 대청소가 되어 성기실 법도 한데 전혀 그런 기색 없이 경쾌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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