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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비행술 수업은 목요일에 있었다. 야속하게도 여타 강의들처럼 슬리데린과 부대낄 예정인 그 날은 마법처럼 빠르게 닥쳤다. 동아줄이 되어주길 바랐던 옛 친구들은 손바닥 뒤집듯 태도를 바꾸었다. 드레이코에게 슬리데린과의 합동 수업은 높은 확률로 그를 괴롭힐 지독한 악당 소굴이나 다름 없었다. 

적어도 수업 시간에 비행술 능력 때문에 비웃음 당하지 않을 자신은 있었다. 드레이코는 두 가지 근거를 곱씹었다. 첫째로, 걔네들이 빗자루에 처음 올라탔던 날 제대로 날지도 못하고 난리법석을 피웠던 걸 생생히 기억한다. 둘째로, 그에 비해 드레이코는 비행술에 꽤나 능숙했으며 그들 중 이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퀴디치 놀이를 할 때면 팬시는 곧잘 실수를 하곤 했다. 나아지지 않는 실력에 민망하게 달아오른 팬시의 억울하고 새침한 불평을 할 때면, 또 저런다며 깔깔대는 모두의 웃음소리가 잔디밭을 채웠다. 

반면 블레이즈는 만나본 또래 중 최고의 수색꾼이었는데, 다만 1대1로 붙으면 대부분 드레이코가 이겼기에 그 명예가 다소 퇴색된 감이 있었다. 

놀랍게도, 빈센트와 그레고리—크레이브와 고일이라는 어엿한 가문의 성씨에도 불구하고 아무도 그렇게 부르지 않았던— 또한 어찌저찌 꽤 괜찮은 몰이꾼이긴 했다. 

미래가 창창한 아이들의 작은 ‘모임’은 하늘이 높아지던 어느 여름날을 마지막으로 마무리되었다. 전원의 호그와트 입학 안내 편지가 배달된 것이다. 이제 모두 빛바랜 기억이었다. 

아, 테오는 퀴디치 게임 같은 거에 열의를 보인 적이 없었다. 열정이 앞서는 팬시와 달리 그 애는 언제나 설렁설렁이었다. 양피지와 잉크 냄새에 파묻혀 있는 모습이 먼저 떠오를 정도니 말 다 했다. 테오를 찾으려면 수상쩍은 책 더미부터 뒤지면 되었다. 허구한 날 멍 때리면서 따분해 죽겠다는 표정으로 동동 떠다녔음에도 어떻게든 수준 높은 파수꾼 행세를 해냈다는 점에서 인상적인 녀석이었다. 

그에 비해 드레이코는 추격꾼이나 수색꾼이 천직이었다. 뭘 하든지 빗자루에 올라타는 것보다 해방감을 맛보여주는 건 없었다. 바람을 가를 때야말로 드레이코는 비로소 집에 있는 듯한 안정감을 느끼곤 했다. 주변에서는 “드레이코가 기숙사 대표팀—기숙사 얘기를 할 때면 말포이의 가주는 언제나 ‘슬리데린’을 상정했기에 어린 드레이코는 호그와트 기숙사라곤 온통 슬리데린뿐인 줄 알았다—이 되지 못한다면 스카웃 담당자의 눈알이 모종의 저주를 맞은 건 아닌지 의심부터 해봐야 한다” 라며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떠들곤 했다. 여덟 살 무렵, 부모님과 옛 친구들의 대화 주제에 ‘퀴디치’라는 단어가 끼어든 순간부터 내리 들었던 말이다.

 

비행술 수업은 호그와트 성과 금지된 숲의 정확히 가운데 지점에 위치하는 아담한 평지에서 이뤄졌다. 그 잔디밭에 발을 디딘 순간부터, 함께 하늘을 날던 한 명, 두 명, 세 명, ...다섯, 그리고 여섯...... 생생한 기억이 흐릿한 안개처럼 머릿속을 가득 메웠다. 

드레이코는 상념을 털어버리려고 애썼다. 고작 기숙사 배정 하나로 등 돌린 녀석들을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마음 한구석에서는 ‘너도 네가 슬리데린이 되고 그 무리 중 한 명이 그리핀도르가 되었더라면 똑같이 피해다녔을 거잖아’라는 인정하고 싶지 않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노력은 소용 없었다. 오히려 까마득한 기억들이 물밀듯이 마음 속을 점령해버렸다. 신나게 날다가 빗자루에서 떨어져 손목이 부러졌던 순간, 티없던 시절 그를 향한 테오의 눈빛, 대결하자며 아무나 붙잡고 놀다가 누구 전략이 훌륭했느니 실력이 늘었느니 얼렁뚱땅 토론하며 순위를 매기던 블레이즈의 목소리, 의욕이 앞선 팬시가 결국 저택 안뜰의 나뭇가지에 머리칼이 걸려 데롱대는 신세가 되자 드레이코의 어머니가 섬세한 절단 주문으로 단발을 만들어 구해줬던 장면......

 

드레이코는 필사적으로 고개를 털어 기억의 소용돌이를 날려보냈다. 그와 해리, 론을 비롯한 그리핀도르 1학년생들이 교습 장소에 들어서기 직전에야 아슬아슬하게 평정심을 가장할 수 있었다. 

잔디밭에는 슬리데린들이 이미 스무 자루 정도의 빗자루들—어림잡아 적어도 15년은 혹사당한 꼴이지만 꽤나 깔끔하게 줄지어 늘어진— 옆에 자리잡고 서 있었다. 팬시와 블레이즈를 비롯한 슬리데린 무리가 웃겨 죽겠다는 건지 화를 내는 건지 알 수 없는 표정으로, 금실과 붉은실의 로브를 팔락이며 걸어오는 열한 살 열두 살 언저리의 그리핀도르들을 아니꼽게 훑어봤다. 

2주 전만 해도 기숙사 동료가 되어 어깨동무하고 다닐 줄 알았던 친구들의 시선과 마주치지 않으려고, 드레이코는 부러 해리와 론에게 고개를 돌려 아무 말이나 해보려 했으나 다행히 그럴 필요가 없어졌다. 타이밍 좋게 비행술 강사, 후치 부인이 뒤쪽에서 성큼성큼 걸어나와 학생들 앞에 선 것이다.

짧은 은발에 매의 그것처럼 노란 황금빛이 감도는 마녀의 엄격한 시선에, 떠들어대던 학생들이 전부 일시에 입을 다물었다. 눈이 조금 커진 것으로 보아 팬시마저도 약간 겁을 먹은 것 같았다.

 

“뭣들 하고 있니? 다들 빗자루 옆에 서렴. 어서!”


후치 부인의 빠릿빠릿한 호령에 학생들은 옆의 빗자루를 선점하기 위해 금세 다시 우왕좌왕해졌다. 드레이코가 잡을 수 있는 빗자루는 지푸라기가 나가고 손잡이가 헤진 채 저쪽에 널브러진 것들보다도 심각한 모양새였는데, 주인 없는 그나마 괜찮은 빗자루가 팬시 근처에만 있던 게 아니라면, 설사 해리나 론의 옆자리를 떨어지는 한이 있어도 달려나갔을 테지만 드레이코의 눈에 그런 건 보이지 않았다.

 

“빗자루 쪽으로 오른손을 뻗고 ‘위로!’를 외치렴!” 


다시 떠들썩해질 조짐이 보이자 후치 부인이 들뜬 학생들 앞에 서서 외쳤다.

 

“위로!” 


전원이 ‘위로!’를 외침과 동시에 드레이코의 활짝 편 손바닥으로 빗자루가 즉시 날아와 찰싹 붙었다. 해리도, 블레이즈도, 이름보다 돛단배 머리라는 별칭으로 통하는 그리핀도르 여자애도 어느 정도 해낸 것 같았다. 작은 승리의 미소가 입가에 번졌다. 우쭐해져서 옆의 검정머리 소년쪽을 바라봤을 때, 그 애는 자기 손에 날아든 빗자루를 꼭 쥐고 몹시 충격적인 것을 본 듯한 표정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드레이코는 웃음을 터뜨릴 수밖에 없었다. 다 읽히는 생경한 반응에 방금까지 말하려던 잘난체 비슷한 문장도 다 까먹어버렸다.

 

피식 하는 소리에 얼이 빠져 있던 소년이 정신을 차리고 금발을 바라보았다. 찌푸려진 까만 눈썹 아래로 혼란스러워 보이는 초록 눈동자가 반짝였다. 


“왜 그래?” 


정작 그가 묻자 드레이코는 오히려 머리가 하얘져서 별 말 없이 고개만 저었다.

 

“아무 것도 아냐, 포터. 네 표정이 웃겼을 뿐이야.” 


해리는 눈꺼풀을 깜빡대다 뭔가를 말하려 입을 열었는데, 바로 그 순간 후치 부인이 자기 말에 집중하라며 고함친 바람에 맥이 끊겨버렸다. 그녀는 빗자루를 다 들어올려놓고 마지막에 미끄러져 놓치는 흔한 실수에 관해 설명하는 중이었다.

 

드레이코는 이걸 수없이 해봤기 때문에 거의 본능 수준으로 빗자루를 들어올려 확 휘어잡을 수 있었다. 지도한 대로 순식간에 이행한 데 비해 후치 부인은 한 사람씩 자세를 고쳐주며 천천히 걸어오고 있었고, 그는 자기 순서가 오기 훨씬 전부터 훌륭하게 빗자루 대를 잡고 있었다. 

줄의 중간쯤에 있었던 탓으로 드레이코는 2분은 족히 흐른 뒤에야 후치 부인의 시야에 들어왔다. 그리고 그녀가 드레이코를 본 순간, 그는 방금 슬리데린들에게 해준 것만큼 그에게도 칭찬을 해주길 간절히 바랐다. 그래서 아직도 저를 빤히 쳐다보며 마치 자기들이 열 배는 우수하단 듯이 이죽거리는 저 애들—심지어 그 팬시마저도—의 입을 다물게 하고 싶었다.

 

“말포이 군.” 


하지만, 후치 부인의 목소리가 들린 순간 드레이코는 자신의 소원이 이루어지지 않을 운명임을 직감했다.


“손가락의 모양이 잘못됐구나. 빗자루 대는 이렇게 잡아야 옳단다.” 


앞으로는 꼭 이렇게 잡아야 한다며 바른 운지법을 보여주는 후치 부인의 시범에, 그와 다른 자신의 손가락으로부터 민망함이 타고 올라와 두 볼이 창피함으로 뜨겁게 타올랐다. 고친 손 모양에 고개를 끄덕여주는 후치 부인의 뒤쪽으로 슬리데린 진영에서, 그리고 론을 포함한 그리핀도르 몇명으로부터 킬킬대는 소리가 들려왔다. 부인이 옆자리 해리에게 말없이 끄덕이고 다음 학생에게 넘어갈 때가 되어서야 잦아들었다. 손의 위치가 살짝 어긋난 것과 같은 사소한 실수에도 지독한 수치심을 느낀 데에 자기혐오를 느끼며 드레이코는 최선을 다해 남들의 눈을 피했다.

 

“생각만큼 잘 되지는 않나봐, 일족의 배신자 도련님?” 


악의 가득한 얼굴로 헤죽대는 팬시를 드레이코는 곁눈질로만 노려보고 굳이 대꾸하진 않았다. 후치 부인이 그녀 바로 뒤에서 눈을 부라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파킨슨 양! 슬리데린에서 2점 감점하겠다. 앞으로 내 수업에서 그런 말을 입에 담는 학생은 용인하지 않을 줄 알렴.” 


첫날부터 신랄한 잔소리를 들은 소녀는 눈이 땡그레져서 엄숙한 시선과 마주쳤다가 고개를 푹 숙이고 사과 비슷한 말을 어물거렸다. 은발의 마녀, 후치 부인은 분위기를 휘어잡은 데 만족했는지, 이쪽으로—론 옆에서 갈피를 못 잡고 있는 부스스한 머리의 여자애한테로— 돌아왔다.

 

“2점밖에 안 깎는 게 말이 돼?” 


후치 부인의 시야각을 절묘히 피해 론이 해리와 드레이코에게 숙덕댔다. 열 받았는지 입꼬리가 한껏 가라앉은 채였다. 


“스네이프가 해리가 질문 답 하나 못 했다 네빌 안 도와줬다 꿍시렁대면서 가져간 게 2점인데? 심지어 그건 첫 수업이었고 둘은 같은 조도 아니었다고! 퍼시의 잘나신 이론에 따르면말야, 이 정도면 5점은 감점하거나 징계라도 받았어야 한다니까? 저런 말을 했는데!” 


드레이코는 이 빨간머리의 말에 진심으로 놀랐다. 얘는 팬시가 벌을 더 받아야 한다며 분개하고 있었다. 그 말이 향한 건 다른 금발머리였지 그가 아니었음에도. 

처음 만난 순간부터 서로 싸워대기만 했는데도, 지금 이 순간만큼은 드레이코에게 아무런 적대감이 없는 애처럼 보였다. 말포이 가문의 자식을 싫어하도록 교육받으며 자란 저 소년은 마치 자기 형제들 중 하나가 모욕당한 것처럼 목청을 높이고 있는 것이었다.

 

“맞아. 머글 학교였으면 저 애는 저런 말을 당당하게 외친 걸로 감점은 물론이고 항의서를 수두룩하게 받았을걸.” 


잔뜩 벌어진 드레이코의 눈이 해리에게로 옮겨졌다. 그리고 멍하니 쳐다봤다. 대답을 하려고 입을 연 순간, 또 후치 부인의 목소리에 대화가 끊겨버렸다.

 

“자 이제 집중하렴. 내가 호루라기를 불면 모두 온 힘을 다해 바닥에서 떠오르는 거야. 각자 빗자루 단단히 잡고, 몇 미터 올라갔다가, 상체를 앞으로 숙여서 제자리로 돌아오면 된단다. 호루라기 신호에 맞춰서— 준비, 셋– 둘– ”

 

후치 부인의 구호는 한 그리핀도르에 의해 중단되었다. 네빌 롱보텀—입학 전 부모님께 들은 바 있던 또래—이 호루라기 소리가 들리기도 전에, 정말 온 힘을 다해 박차오른 것이다. 

드레이코는 기억을 뒤져보았다. 롱보텀은 순혈이었다. 그의 집안은 신성한 28가문의 일원이었지만 드레이코의 이모와 있었던 모종의 사건으로 인해 롱보텀은 부모가 아닌 할머니 손에 컸다— 이 정도가 부모님이 말씀해주신 내용에서 어린 드레이코가 유추해낸 사실이었다.

 

“돌아와라, 얘야!” 


후치 부인이 소리쳤다. 입술에 닿기 직전이던 호루라기는 목에 걸려 늘어진 채 잊혀졌고, 대신 공중으로 박차고 솟아오른 갈색 머리 소년에게로 다급한 눈총이 향했다. 

위로, 위로, 더 위로. 롱보텀의 빗자루는 지면으로부터 적어도 15피트*를 치솟아오른 뒤에야 가까스로 속도를 줄였다. 

이렇게 멀리서도 시체같이 창백한 낯빛과 넘치기 직전의 찻잔처럼 부릅떠져 일렁이는 눈동자가 똑똑히 보일 정도였고— 직후 그 그렁그렁한 눈꺼풀이 질끈 감긴 순간, 롱보텀의 몸이 한쪽으로 기울기 시작했다.

 

얼굴부터 추락하는 광경을 마지막으로, 귀가 울리는 굉음과 함께 롱보텀이 떨어진 지점에 끔찍한 균열이 일었다. 그의 검은 로브가 잔디밭 한가운데에 기이한 형태로 천 더미처럼 뭉쳐 있었고, 그 안으로 둘둘 말린 롱보텀의 형상이 언뜻 보였다. 

기숙사 동료가 땅바닥에 축 늘어져 있는 모습을 눈앞에서 목격한 드레이코의 눈이 커졌다. 황급히 시선을 돌려 하늘을 본 순간 네빌의 빗자루가 금지된 숲 방향으로 점이 되어 날아가 완전히 소멸하는 장면이 눈에 들어왔다. 


“손목이 부러졌구나...” 


하늘 저편을 망연히 바라보던 와중 후치 부인이 중얼대는 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왔다. 정면을 다시 봤을 땐 그녀가 네빌의 곁에 앉아 만만찮게 창백해진 낯으로 걱정스레 여기저기 살피고 있었다. 


“이런, 괜찮다 얘야. 일어날 수 있겠니?”


“―병동에 다녀올 때까지 모두들 자리를 지키고 있으렴. 빗자루 가지고 멋대로 돌아다니다간 ‘퀴디치’ 소리의 ‘퀴’ 자를 내뱉기도 전에 퇴학당할 줄 알아라! 얘야, 가자.” 


네빌은 퐁퐁 샘솟는 눈물에 폭삭 젖은 얼굴로 훌쩍이며 후치 부인에게 이끌려 멀어져갔다. 어느 새 잔디밭에는 후치 부인의 경고를 따를 생각이 별로 없어 보이는 1학년들만이 남아 멀뚱히 서서 눈을 굴리고 있었다. 

좋아... 아주 좋아. 누구 하나 나서서 일을 벌이기까지 30초도 걸리지 않으리란 데 걸지. 드레이코가 속으로 탄식했고, 아니나 다를까 정확히 15초 뒤에 블레이즈 자비니의 목소리가 낄낄대는 슬리데린 무리로부터 터져나왔다.

 

“비극이 따로 없네! 저런 머저리가 어떻게 여기 입학했지? 빗자루도 못 다루는 주제에! 걔 얼굴 봤어? 저런 겁쟁이는 다른 멍청이들처럼 후플푸프에나 들어갔어야 했어!” 


개처럼 웃어제끼는 비아냥에 드레이코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네빌과 이렇다 할 친분이 없었음에도, 옛 친구의 거칠 것 없는 언행에 속에서 화가 치솟아오르는 게 느껴졌다. 지금 저 애는 드레이코의 기숙사 동료를 모욕하고 있었다. 이 기숙사에서 그는 같은 기숙사 친구들을 저따위 황당한 이유로 창피 주는 일을 본 적이 없었다. 그리고 이제 이들은 모두—어찌 보면— 드레이코에게 가족 되는 사람들이었다. 사실 차차 깨닫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에게, 그 외에는 정말 아무 것도 남지 않았다.

아버지는 더 이상 가족의 일원이 아니라며 못 박았고, 드레이코 주변에는 부모님과 옛 친구들을 제외하면 아무도 없게 되었다. 

이 기숙사 사람들은 어떤 면에서 이미 드레이코의 새로운 가족으로 인식되고 있었다.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맥고나걸이 말한 대로였다. 모두에게 호감을 가진 게 아님에도 불구하고, 아-주 조금씩은, 드레이코는 이곳에 소속감을 느끼게 되었다.

 

블레이즈한테 네빌 욕 그만 하고 이제 닥치라고 한 마디 하려던 순간, 파틸 쌍둥이 중 그리핀도르로 배정된 파르바티 파틸이 선수를 쳤다. 


“닥쳐, 자비니!” 


받아치는 목소리가 어찌나 사납고 날카롭던지, 드레이코는 저 살벌한 주먹을 가진 여자애와 맞서는 게 자신이 아님에 무의식적으로 안도했다.

 

“와아, 저런 백치한테도 흑장미가 있었네?” 


갑자기 끼어든 팬시의 밉살스런 깔깔 소리에 드레이코는 자신의 두 주먹에도 힘이 들어가는 걸 느꼈다.


“솔직하게 말해 봐, 파틸. 혹시 저런 덜떨어진 울보 돼지가 취향인지는 미처 몰랐지 뭐야?”


 드레이코가 더는 참지 못하고 한 발짝 나선 순간, 블레이즈가 네빌이 떨어진 지점 언저리에서 무릎을 굽혀 동그란 뭔가를 집어들었다. 여름날 쨍한 햇빛 아래 호수처럼 빛나는 그것은— 네빌의 리멤브럴*이었다.

 

“이런, 빗자루에서 떨어지는 진귀한 구경거리를 보여주신 롱보텀 가문의 멍청이께서 통통한 팔을 부러뜨리면서 흘리고 가신 걸 보라고.” 


블레이즈가 거의 웃겨 죽겠다는 듯이 끅끅대며 손 안의 작은 유리알을 눈앞에 가져다 대고는 빛이 영롱하게 투과하는 양을 흥미롭게 뜯어봤다.

 

“그거 내놔, 블레이즈.”

“이리 줘, 자비니.” 


드레이코와 해리의 목소리가 동시에 공기를 갈랐다. 

드레이코의 목소리는 기이하리만치 가라앉아 있었다. 자신이 본능적으로 화난 아버지의 모습을 투영했음을 인식한 금발 소년의 뒷목으로 소름이 퍼졌다. 아니야, 아버지처럼 되지 않을 거야. 그는 내 아버지가 아니야. 

그와 해리가 동시에—사실상 같은 말을—외침으로써 잔디밭 위의 모든 1학년들이 싸한 침묵에 휩싸였음을 깨닫기까지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아니, 그러긴 힘들겠는데. 모름지기 그리핀도르라면 그에 걸맞는 긍지를 보여줘야 하지 않겠어? 부디 그 멍청이가 이걸 찾으면서 즐거워해줬으면 좋겠는데말야. 아, 혹시 저 새 둥지는 어때?” 

블레이즈의 입꼬리가 짖궂게 말려 올라가는 걸 보며, 드레이코는 저런 녀석과 어떻게 친구로 지내왔는지 진지하게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호그와트 입학 전에는 저렇지 않았어. 드레이코는 스스로 되뇌면서도, 어쩌면 아닐지도 모른다는 의구심을 무시할 수 없었다. 당시에 괴롭힐 만한 애가 없었을 뿐, 서로 놀리는 게 무의미하게 느껴졌을 뿐, 사실은 원래 다 이런 녀석들이었을지도 모른다.

 

“내놓으라고!” 

또다시 해리와 드레이코가 동시에 외쳤다. 살얼음같은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금발 소년은 옆자리 소년의 눈치를 힐끔 살피지 않을 수 없었다. 흑발 소년의 얼굴은 이 상황을 이상하게 여기는 눈빛 따위 없이 오롯이 블레이즈만을 향해 무섭게 이글거리는 분노를 드러내고 있었다.

 

“아-니.” 


그 슬리데린은 빗자루에 훌쩍 올라 타, 마치 한 달 전 드레이코와의 마지막 퀴디치 놀이에서처럼 유려하게 공중을 갈랐다. 눈 깜짝할 새에 근방에서 가장 큰 떡갈나무 위로 빙글 날아든 그가 외쳤다.


“그렇게나 갖고 싶거든 이리 와서 가져가 보시지, 둘 다!” 


민첩하게 리멤브럴을 던져올렸다 잡길 반복하며 도발적으로 내려다보는 그 모습에 드레이코가 작게 으르렁대며 빗자루에 손을 뻗었다. 막 올라타려던 순간, 블레이즈를 쭉 바라보던 해리가 드레이코의 팔을 잡았다. 에메랄드빛 홍채가 불꽃처럼 타오르고 있었다. 


“내가 할게. 넌 여기 있어.”

분노가 뚝뚝 떨어지는 단호한 목소리를 남기고 곧바로 빗자루에 올라탄 해리는 삽시간에 지면을 박차고 날아올라, 도저히 처음이라곤 볼 수 없는 경이로운 기술로 바람을 헤치고 나갔다.

 

“그만 둬!” 


부스스한 머리의 그리핀도르, 헤르미온느의 난데없는 외침에 드레이코가 고개를 돌렸다. 


“후치 부인이 함부로 이동하지 말랬어. 너희 때문에 단체로 벌 받게 될지도 모른단 말이야!”

 

그러나 불행인지 다행인지 해리는 그녀의 고함이 들리지 않을 정도로 멀고 높은 지점에 다다라 있었고, 정말 못 들은 것인지 신경 쓰지 않는 것인지 몰라도 그는 블레이즈의 바로 옆까지 도달했다.

해리를 좇던 시야에 블레이즈가 담기자 드레이코의 입꼬리가 더욱 가라앉았다. 어릴 적 친구를 힘껏 노려보며 드레이코는 생각했다. 누구라도 어디 하나 다치거나 사고가 난다면 그건 무조건 블레이즈 잘못이다. 그러나 해리가 정말 다칠까봐 동동 구르는 사람은 헤르미온느와 드레이코 둘 뿐인 것 같았다. 

헛숨 삼키는 소리와 열띤 함성이 드레이코의 사방에서 터져나왔다. 마침 옆을 지나가는 사람이 있다면 뭔가 일이 터졌다는 걸 알았을 테지만 애석하게도 아무도 없었기 때문에, 성 안의 모든 교직원은 올해 신입생들이 참 목청이 크구나 하고 넘어가려는 게 분명했다.

 

저 위에서 해리와 블레이즈가 서로 뭐라 떠들고 있었지만 둘 다 아득한 공중에 있는 데다 오늘따라 날카로운 바람에 드레이코는 단 한 단어도 알아들을 수 없었다. 확실히 알 수 있는 거라곤 블레이즈가 아주 즐거워 보이는 얼굴로 해리를 평가하는 것 같았는데, 해리가 정면으로 훅 닥쳤을 때 빙글거리던 표정이 순간 무너져 휘둥그레졌다는 사실뿐이었다. 

그는 손쉽게 뒤로 물러났지만, 여유롭게 웃던 입꼬리는 더 이상 없었다. 해리를 노려보는 눈빛에 적개심이 담겼다. 

그리핀도르가 슬리데린의 빗자루 주위를 포위하듯 빠르게 빙글 선회했다. 빗자루만 몇 년 탄 사람 같은 노련하고도 세련된 솜씨에 몇몇이 저도 모르게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드레이코는 짜증 반 불신 반으로 눈을 굴렸다. 

해리가 블레이즈에게 뭐라 외치자 블레이즈가 조소하며 눈을 한 바퀴 굴리더니 입술을 달싹이고는— 갑자기 작은 유리알을 들어올려 높이 던져버렸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고, 누가 봐도 이유 없는 심술이었다. 

그 슬리데린은 빠른 속도로 내려와 —이제 드레이코가 인정하기 싫어하게 된— 우아한 자태로 슬리데린 무리의 한가운데에 착지했다.

 

몇 초 동안 드레이코는 해리가 블레이즈처럼 되돌아오리라 예상했지만, 눈앞에는 정반대의 광경이 펼쳐졌다. 

착지하는 대신, 상체를 바짝 숙여 빗자루와 한 몸이 된 것처럼 자세를 잡자 거의 수직이 된 빗자루가 일직선으로 발사되더니 점점 속도를 올리며 지면을 향해 번개처럼 내리꽃혔다. 경외를 담은 숨소리와 박수갈채는 삽시간에 비명으로 바뀌었다. 가파른 추락이 더욱 가속되었고, 심지어 그 와중에 한 손을 쭉 뻗은 모습은 마치... 뭔가를 잡으려는 듯했다. 저 소년이 뭘 하려는 건지 어떠한 가설이 세워지는 순간, 드레이코는 완전한 불신과 긴장감에 사로잡혀 경악하면서도 한편으로 섬광 같이 닥쳐오는 저 빗자루가, 정말로 뭔가를 잡아낼지도 모른다는 알 수 없는 확신이 발끝에서부터 차오르는 걸 느꼈다.

 

그 다음부터는 슬로우 모션 같았다. 해리의 손이 잔디로부터 몇 피트 떨어진 지점에서 리멤브럴을 낚아채고는 빗자루 대를 가파르게 당겨 잡더니 충돌 직전에 수평으로 전환한 것이다. 

말도 안 되지만, 절대로 불가능해야만 하는 장면이지만, 빗자루의 경로는 정말로 소년의 동작에 따라 비현실적으로 휘었고 소년은 부드러운 잔디밭에 의연히 착지했다. 그리핀도르 진영을 향해 성큼성큼 걸어오는 모습은 차라리 노련한 선수처럼 보였다. 

아무도, 블레이즈마저도, 저렇게 하지는 못한다. 아무나 할 수 없기는 커녕 아무도 할 수 없는 거여야만 했다. 어떻게 해리가 저렇게 잘 날 수 있는 거야?

 

“해리 포터!” 


갑자기 울려 퍼진 미네르바 맥고나걸의 음성에 드레이코의 고개가 돌아갔다. 기숙사 사감이 이쪽을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엄격한 발걸음으로 곧장 해리 앞까지 다가온 맥고나걸의 표정을 보아하니 좋게 끝날 가망 따위 요원해 보였다. 끔찍한 미래가 기다리고 있었다.






“잠깐, 다시 말해봐. 농담 하는 거지? 맥고나걸이 널 연구실까지 끌고 간 이유가 그리핀도르 퀴디치 팀 수색꾼으로 스카웃하기 위해서였다고? 그게 끝이야? 말도 안 돼!” 


저녁시간이 되어서야 나타난 해리가 미묘하게 얼빠져 있자 일단 자리에 앉히고 자초지종을 건네듣기 시작한 지 정확히 한 시간 반 뒤, 드레이코는 충격에 소리치고야 말았다. 해리가 놀라 손가락을 입에 대며 —드레이코가 그랬듯이—다른 기숙사 테이블을 조심스레 힐끔댔다.

 

“우드가 비밀이랬어. 슬리데린과의 첫 경기 때 깜짝 발표할 거래.” 


해리가 설명하자 론이 조용히 휘파람을 흘렸다.

 

“네가 비장의 무기가 된 거야, 친구. 어마어마하게 끝내주는 일이라고! 맥고나걸이 아까 네 묘기를 통째로 본 게 분명해. 그걸 눈으로 봤는데 누가 망설이겠어. 단단히 빠진 거야. 심지어 원래 1학년은 팀에 들어갈 수조차 없다고. 넌 역사상 최연소 선수가 된 거야...” 


빨간머리의 찬사 가득한 문장은 해리가 이어받아 마무리지어졌다.

 

“그래, 백 년 만의 최연소랬어. 우드가 말해주더라. 다음 주부터 훈련 시작이래. 방과 후까지 어떻게 숨기겠다는 건진 모르겠지만... 누군가가 항상 나를 지켜보고 있다는 느낌이 기분탓이 아니리란 걸 별로 알고 싶진 않았어. 솔직히 좀... 소름끼치잖아 사실.”

 

때마침 해리가 어딘가를 보고는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어깨 너머로 시선을 따라가보니 복도 저편에 숨어서 이쪽을 대놓고 바라보는 후플푸프 남자애가 포착되었다. 

해리가 다시 맞은편의 론과 드레이코를 보며 한숨 짓던 순간, 프레드와 조지가 연회장 입구로 행군하며 들어와 셋 앞으로 직진해 오더니 씨익 웃었다.

 

“대단한데, 해리.” 


주변 소음에 섞여 바로 옆의 드레이코마저 쫑긋 해야 할 만큼 작은 목소리로 조지가 해리에게 속삭였다.

 

“우드한테 듣고 오는 길이야. 올해야말로 우리가 우승컵을 탈 거라고!” 


프레드가 비어 있는 해리의 옆자리에 미끄러지듯 앉아 다섯 머리의 한가운데로 상체를 숙여 조용히 말했다.

 

“우드한테 다 들었지? 모든 그리핀도르 퀴디치 선수는 소소한 신고식을 거친다는 거.” 


프레드는 그렇게 말하며 조지와 함께 해리에게 웃어보였다. 해리는 놀라고 당황해서 두 눈이 커져 있었다.

 

“아니? 대체 그게 무슨 말이야?” 


순진무구하게 되묻는 목소리에 눈으로 몰래 신호를 주고 받은 쌍둥이의 미소가 더욱 짙어졌다.

 

“공식적으로 팀원으로서 인정받으려면 트로피실에 잠입해서 뭔갈 슬쩍해야 해.” 


프레드의 설명이 이어질수록 해리의 눈이 점점 더 벌어져갔다.

 

“― 밤에.” 


조지가 덧붙인 말에 검은 머리 신입생은 헛숨을 들이키며 혼란스러운 얼굴로 애처롭게 동공을 떨었다.

 

“진짜로? 왜?” 


해리가 정확히 그 말을 하려고 입을 열려던 순간 드레이코가 같은 말을 물었다.

 

“우린 그리핀도르야, 말포이. 이렇게 너희들의 용기와 투지 같은 걸 시험하는 거지.” 


쌍둥이 중 프레드가 먼저 답해주고는 여전히 놀라 있는 해리와 헛웃음 짓는 드레이코를 차례로 바라보며 싱글댔다.

 

“그 많은 기숙사 중에 내가 왜 하필 여기로 온 거지?” 


격분한 채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며 중얼대는 드레이코를 뒤로 하고 조지가 태연히 말을 이었다.

 

“자정 전후 시간대를 추천해. 호그와트 성의 자정은 유난히 고요하거든. 행운을 빌어.” 


동시에 벌떡 일어나 해리의 어깨를 두드려주고는 원래 자기들 자리인 리 조던 옆—무려 테이블의 반대쪽이었다—으로 걸어가는 쌍둥이의 광대뼈 아래에는 여전히 미소가 만연해 있었다.

 

“젠장할...” 


론이 형제의 얄미운 등짝에 대고 웅얼대고는 다시 검정 머리 소년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나도 같이 갈게.”

그러고는 단단히 결심한 얼굴로 해리에게 선언했다. 고개를 든 해리의 얼굴에는 약간의 혼란 위로 새로운 충격이 퍼지고 있었다.

 

“나도 갈게. 어쩔 수 없어. 너네 같은 바보들을 혼자 보냈다간 사고가 날 게 뻔하다고.”


 드레이코가 살아남은 소년이 반응하기도 전에 재빨리 덧붙이자 그 충격 받은 얼굴은 더욱 얼빠진 꼴이 되었다.

 

“그런데, 잡히기라도 하면 어쩌지?” 해리가 조용히 묻자 드레이코가 어깨를 으쓱해보였다.

 

“탑 밖에 갇혀서 교수님께 도움을 구하려 가다가 길을 잃었다고 하지 뭐. 그래도 애초에 조심만 하면 안 잡힐 수도 있어. 아니 꼭 그럴 거야.” 


금발의 소년은 일말의 생각도 거치지 않고 장담해버렸다.

 

“난... 그래 알겠어. 오늘 밤 자정이야. 한번에 끝내버리는 거야.” 


해리가 조금 자신 없는 투로 한숨을 푹 내쉬며 말했다. 

......세 소년 중 어느 누구도 —심지어 방금까지도 기둥 뒤 시선을 곧장 잡아낸 해리마저— 근처에서 엿듣고 있는 헤르미온느 그레인저를 발견하지 못했다. 프레드와 조지가 등장하면서부터 오갔던 모든 대화를 경청한 그녀는 저 말썽쟁이들이 세운 계획 같지도 않은 계획을 모조리 가로막을 작정이었다.




아침에 일어나지 못해 슬픈 머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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