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설명 없이 화면에 어느 화요일 오후 라는 간단한 자막만 나온다. 까만 화면이 사라지고 민현의 모습이 어설프게 화면에 담긴다. 삐뚤어진것 같은데. 라는 혼잣말 후로 민현이 화면에 가까이 다가와 삼각대를 조정한다. 그 사이 눈은 보이지 않고 코와 입술, 간간히 고개를 더 들어서 턱 아래 목울대가 보이더니 초점이 사라진다. 다시 화면에 민현의 상반신이 나온다. 이번엔 너무 멀..어보이나? 하는 혼잣말.. 자막에 ㅋㅋㅋ가 기차를 타고 가로로 주욱 지나간다. 의자를 더 가까이 놓고 핸드폰 화면으로 머리를 조금 만진다. 2분이나 지난 후에야 첫인사를 한다.



안녕하세요. 여러분.. 황민현입니다. 잘 지내셨나요. 저는 잘 지내고 있었습니다. 

아무것도 없는 인스타 계정에 팔로워가 너무 늘어서 놀라기도 했고, 또 뭔가 보여줄수 있는게 없어서 미안하기도 했는데요.

방영중에는 개인의 sns 게시글 하나 조차도 스포일러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저 말고도 출연진 모두가 조심했을겁니다.



나름 대본을 마련해놓고 촬영하는데도 떨린다. 침 꼴딱 삼키는 장면 다음으로 물컵이 벌써 반이나 비었다. 중간 멘트를 조금 자른것 같은 영상.

환승연애 촬영은 한참 전에 끝났다. 사전제작이었기 때문에 즉시 방영되지는 않았고 시간이 조금 있었다. 그동안 고민이 많았다. 방송 나가기 전에 회사를 그만두는 편이 좋을까. 막상 회사를 그만둔다고 할 수 있는 일이 없어서 머뭇거리고 있던 찰나에 방영이 시작됐다. 여파는 급작스럽게 오지는 않았다. 1편부터 무조건 결제를 해야만 볼 수 있는 컨텐츠였고 사람들은 생각보다 그들이 모두 게이일거라고 믿지 않았다. 돈 받고 연기할 수도 있지. 러브캐쳐처럼. 훤칠하고 능력좋은 그 8명이 모두 게이면 너무 슬프지 않냐는 말까지 돌았다. 그렇게 긴가민가 할 때 쯤. 재환과 민현이 수영장에서 키스하는 장면이 나가고 그때부터 구내식당에서 밥먹는게 힘들어졌다. 게다가 사내에서 실제로 들어버렸다. 이미친새끼야. 로 시작하는 욕을, 상사에게.



저는 일단 퇴사를 했구요. 좋은 제안을 받아서 준비중에 있어요.



방영 전에 퇴사를 하는게 좋을까 라는 생각은 사치였다. 무조건 그만뒀어야 했다. 재환은 특별히 말을 꺼내지는 않았는데 언급횟수가 잦아지자 대표와 상의를 했다. 그리고 민현에게 늦어서 미안하다고 했다. 바빠서 형의 개인적인 고민을 신경써주지 못해서. 형이 싫다고 할 수도 있고 자존심에 상처날것 같아서 외면했는데 전적으로 민현에게 다음 행보를 위임한 것은 또 한 번 그를 방임했다고 볼 수 있어서 미안해서 울어버렸다.

정확히는 저 때문에 듣지 않아도 될 말들이 쏟아지고 있었는데 그걸 인터넷 상으로 사랑하는 그가 확인했을까봐. 속이 상해서.



좋은 제안을 받기는 했는데. 이게 생각보다 준비할 것도 많았고. 조율할 것도 있더라고요. 다시 신입사원이 된 기분이었어요. 당연한 얘기겠네요. 무슨 분야가 됐든 저는 처음 시작하는 거니까요.



그 조율중에 하나가. 말을 던져놓고 민현이 잠시 고민하는 것 같더니 이내 입을 연다.



재환씨..랑 조율해야하는 거여서... 시간이 좀 더 걸렸던것 같아요.



종영되고도 다른 커플에 비해 라방을 켜지 않은 이유와 같을 것이다. 무엇인지 정확히는 말 못한다. 혹시라도 재환이에게 무엇이든 영향이 갈것 같아서 그랬다. 앞으로도 조심할게 점점 많아질 것이다. 민현이 입을 가리고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이제 그런 것들을 다 마치고 본격적으로 해보려고 합니다. 처음으로 준비한 건.... 조금 있으면 저희가 만난지 3주년이 됩니다. 물론 그 사이에 헤어졌었던 시간이 더 길긴 하지만 저는 재환이 처음 만난 날을 잊을 수가 없어가지고요. 제가 주고 싶은게 있는데 그날 준비해서 재환이에게 주려고 합니다. 오늘부터 그 준비과정을 담아볼까 해요. 식상할 수도 있는데 조금 어려운 부탁이겠지만, 재밌게 봐주시길 바랍니다.



민현이 핸드폰 화면을 카메라에 보여준다. 자막에 이 날이 D-DAY 서프라이즈 준비중 글씨가 나왔다가 사라진다. 특정 날짜에 은밀한 표시를 해둔 달력을 보여준다. 재환이가 혹시 볼 수도 있으니까 표시는 별 이모지로 해놨다고 말한다.



저희는 사실 최종선택일로 기념일을 정하긴 했는데 생각지도 못한 날에 받으면 재환이가 엄청 놀라지 않을까싶은.. 기대가 많이 됩니다. 그리고 평일이라 함께 시간 보내기에도 수월할 것 같아요. 음.. 또 혹시라도 궁금한거 있으면 댓글로 남겨주시면 풀어드릴수 있는 건 천천히 이야기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다음 영상에서 뵙겠습니다. 안녀엉!



부끄럽네요. 하며 웃는 얼굴을 마지막으로 화면이 끝난다.

유투브 브이로그 댓글에 이런 말 달린다.

minhyuns2jaehwan    1시간전
아진짜 목소리톤땜에 민현재환 이별발표인줄 알고 식겁했다가 5:27 보고 가슴 쓸어내림









일단은 다니던 회사에 사직서를 냈다. 퇴사하는 날 재환이 차로 회사 앞에 왔다. 오지말라고는 못했다. 짐이 생각보다 많아서. 괜찮냐는 카톡이 계속 와서. 형 끝나는 그 시간 안에 무조건 끝내고 갈게라는 그 말이 너무 짜릿해서.

1년은 채워서 퇴직금은 나오겠다. 복지도 나름 좋고 오래 다니면 자리잡기 좋았을 것 같은데 아쉽다. 분위기가 묘해서 여러말을 늘어 놓았다. 덤덤하게 말하는 민현에게 재환이 폭 안겼다. 그래서 다음 말은 삼켰다. 세상이 많이 변했다고 생각했는데 아직은 존재만으로도 혐오하는 사람이 있었네. 재환이 울어서 정확하게 설명하지는 못했지만 이미 저보다 더 많은 말을 들었을 것으로 추측했다.


"형 미안해 나때문에."


이상하게 재환의 말이 달콤했다.

원래 눈물이 이렇게 당도가 높았던가.


"응 너때문에 너때문에야."


그 말을 뱉으면서 제 자신이 오랜만에 쓰레기 같다는 생각을 하며 웃었다. 소파도 없는 민현의 원룸. 문이 열리자마자 안았는데 몇걸음이면 침대다. 침대에 눕혀지고 시야에 민현의 얼굴만 보이니 재환이 놀라서 잠시 울음을 뚝 그쳤다.


"재환아 나를 좀 책임져. 너때문에 이렇게 됐잖아."


민현은 우는 재환이 너무 귀여워서 더 놀리고 싶었다.

사실 많이 괜찮다. 마음의 준비는 출연을 결심했을 때 이미 끝났다.

어깨에 입술을 맞추고 허리를 꼬집으며 재환의 상의를 올려 벗겼다. 흐트러진 앞머리. 김재환 이발해야겠네. 혀를 섞는데 살짝 닿은 입술이 까칠까칠. 김재환 립밤 발라야겠네. 민현의 손이 침대 옆 난쟁이 협탁으로 간다. 재환이 양 손으로 민현의 어깨에 매달린다. 제 허리에 감기는 김재환의 다리. 음, 콘돔 먼저 꺼내야겠네.


"미안해서 어떻게 해야할지를 모르겠어."


민현이 재환에게서 잠시 떨어져 서랍을 열었다. 숨을 고르던 재환이 그를 부른다. 민현이형. 오늘따라 이름을 많이 부르네. 재환의 손이 민현의 옷을 쥐고 있었다.


"환승연애 안나갔으면 이럴일도 없었을텐데."


얼굴은 한껏 풀이 죽어있고 숨쉬며 오르고 내려가는 가슴 아래로 배가 홀쭉하다. 이제 그만 놀려야되는데. 민현이 콘돔을 보여주며 이럴일? 하고 농담했는데 어째 표정이 더 안 좋다. 민현은 콘돔을 도로 내려놓고 립밤을 꺼내 재환의 입술에 바른다. 일부러 많이 발랐더니 재환이 앞니로 살짝 먹는다. 배고픈가? 저녁부터 먹어야겠네. 그때 재환이 다시 민현의 이름을 부르며 벌떡 일어났다.

비장한 표정으로.

"형 내가 책임질게"

"...응?"

"웃지마. 진짜 나 심각하... 아 웃지 말라고!"

우리의 두번째 연애, 이렇게 달콤할 수가








방송이후 둘이 처음 싸운 건 라방 때문이었다. 단톡방에서 갑자기 당일 약속을 잡았는데 그 자리에 민현이 참석했다. 종영도 됐는데 라방 못할게 뭐있냐며 도현의 인스타 계정으로 라이브를 켰고 진영이 같이 얼굴을 비췄다. 사람들이 댓글로 셋이 만나고 있는데 왜 얼굴은 둘 밖에 없냐며 여자랑 같이 있는 거냐고 몰아갔다. 도현이 카메라를 잠깐만 돌려서 민현의 얼굴을 비췄고 술을 좀 더 마셔서 그랬을까. 결국 세사람의 얼굴이 라이브를 타고 최소 1만명은 봤다.

특별히 말을 많이 한 건 아니고 그냥 시청자들과 소통의 시간이 다였다. 진영이 민현오빠 잘생겼어요. 민현이형 진짜 존잘이에요. 이런 댓글을 몇개 읽어주자 재환에게서 전화가 왔다. 물론 라방하고 있는 핸드폰의 주인에게로.

엄청 시끄러운 술집이었는데 세사람의 테이블만 찬물 끼얹은 것처럼 조용해졌다. 밤샘 작업 있을거라던 김재환이 직접 와서. 그리고 다시 라방을 킨 진영의 폰에 웃으며 인사했는데 그 모습이 흡사 수련회 교관같아서.

재환은 바쁜데 어떻게 왔냐는 도현의 말을 다 씹고 핸드폰 빼앗아 라이브가 저장됐는지 확인했다. 그래도 누군가는 화면녹화 해놨겠지 하는 생각에 한숨을 쉰다. 진영이 왜 그래 몇명 안봤어. 하는 말에는 그래 몇명 안 봤더라 만 오천 칠백명. 아, 아니지?

"...그중 하나는 나니까 만 오천 육백 구십 구명."

내가 좀 보수적이어서 말이야. 하는 김재환의 말이 그 어떤 악플보다 더 무서웠다. 더 살얼음판이 되기 전에 민현이 재환을 데리고 나왔다.

도현
민현이형 괜찮아? 미안해ㅠ_ㅠ

진영
나도 미안.. 근데 말실수 한 것도 아니고.. 진짜 조금 나왔다는걸 강조해봐일단ㅠ 우리 이미 방송도 탔자나..

도현
아니 암튼 일단 살아돌아와.....

두사람이 탄 재환의 차가 고요했는데, 3명방에서 도현과 진영이 미안하다고 사과한다는게 오히려 카톡 알람만 계속 띡똑띡똑 울려서 더 상황만 최악으로 만들었다. 민현이 황급히 카톡방 알람을 껐지만 늦었다.


"왜. 이미 방송도 나갔는데, 라방 못하게 하는거, 어이없대?"

"아... 아니?"


재환의 긴 한숨.

그래도 길게 싸울것 같은 느낌은 아니었다. 재환의 차가 민현의 집이 아닌 재환의 집으로 향하고 있어서 민현은 이게 짧은 다툼이라 믿었다. 그래도 그 과정이 너무 살벌했다. 재환이 화나면 이렇게 무섭구나. 계속 느끼면서 옆에 계속 쭈뼛쭈뼛 통나무처럼 서있었다. 그런데 집에 도착하자마자 향한 곳이 욕실이나 침실이 아닌 테이블이라면 예상했던 전개가 아니다.

재환이 먼저 찬물을 마시고 민현에게도 물을 한잔 내줬다. 무슨 말을 할지 너무 떨려서 시선을 어떻게 해야할지를 몰랐다. 초저녁부터 마셨던 술이 다 깨는 기분.


"나 진짜 보수적이고 속도 좁아. 누가 형 보는 거 너무 싫어. 진짜 짜증나서 미쳐버릴것 같아."


웃음기 하나 없는 말투가 너무 무서웠다. 민현이 손을 테이블에 올려놓지 못하고 내렸다. 한숨만 쉬고 별 말이 없어서 미안하다고 한마디 해봤다. 남들이 보면 뭐가 미안하지? 라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일단 재환의 기분을 상하게 한 죄목으로 민현은 미안하다 했다.


"시간이 지나면 좀 나아질까? 이렇게 짜증나는데."


민현의 눈이 커졌다. 재환아. 아니.. 오늘은 진짜.. 실수고.. 다시는...


"재환아.. 미안해 진짜 다시는 안 할게.. 한번만.."

"형이 나 때문에 퇴사한것 같아서 내가 대표님이랑 얘기를 좀 해봤어."

"...어?"


민현은 애인이 저에게 나쁜말 하는줄 알고 눈가가 촉촉해졌다. 순식간에 코끝까지 빨개진다. 지금부터 정신차리고 잘 들어야했다. 아직 조금 어지러웠지만. 집중해야 김재환의 화를 풀 수 있을 것이다.

재환은 당연히 민현을 사무실에 넣을 생각이었다. 저와 방송 출연한 것 때문에 일반인이 겪지 않아도 되는 일들을 겪고 있으니 대표 성격에 충분히 고려해줄 거라고 생각했다. 곧바로 기획팀과 회의를 잡아줘서 계획대로 되겠구나 했더니 그 자리에서 대표가 갑자기 다른 말을 했다.


"나는.. 형이 우리 회사에서 원래 형 하던 업무를 봐줬으면 좋겠다고 추천을 했어."


푹푹 한숨 쉬며 말 하던 재환이 냉장고에서 소주를 꺼내 있는 힘껏 흔들었다. 방금 마신 물 컵에 본인 몫의 술을 따르고 민현의 잔에도 기울였다. 말하는게 지금 살얼음판이라 민현은 저도 모르게 두손으로 받았다. 컵도 옆으로 돌려 마셨다.


"아니.. 재환아. 너무 많이 마시는데.."

"놔."


아니 라방에 얼굴 10분 나간게 이렇게 화날 일인가. 민현이 아무래도 말려야할것 같아서 잔을 붙잡았는데 쉽게 뿌리친 재환이 머그컵에 담긴 술 반병을 다 마신다.


"대표님은 형이 아티스트로 회사에 들어왔으면 좋겠다고 그러는데."

"...."

"짜증이 나 안나! 내가..!"


민현이 놀라서 입이 떡 벌어졌다. 뭐라고? 잘못 들었나. 급히 재환의 잔을 뺏는다.


"완전 내 무덤 내가 팠잖아."

"..."

"라방 반응 좋아보인다고 계속 팀장한테 카톡오고 진짜."


나한테 걱정하지말라고 자꾸.. 그래도 걱정되는데 어떡하라는거야.. 재환이 말하는 사이 민현이 자리에서 일어나 재환의 의자에 비집고 들어간다. 기어이 재환의 한쪽 다리가 의자에서 밀려난다. 재환이 형 의자 가서 앉아아 하고 투정부렸다.


"저리가 나 떨어지잖아아"

"내가 잡았잖아아아"


재환의 몸이 의자에서 밀려나면서 민현이 제 다리 위에 재환을 들어 올렸다. 몸통을 꽉 끌어안아 숨이 조금 막혔다. 잠깐 놓아주길래 편하게 쉬나 했더니 이제는 볼이고 입술이고 마구마구 뽀뽀해댄다. 재환이 얼굴을 뒤로 빼서 피하는데도 입술이 따라온다. 그러던 찰나에 잠시 의자에서 끽 하는 이상한 소리가 났다. 의자 1인용이거든? 절루가라는 소리를 한 스무번은 더 한것같은데 말을 듣지를 않는다. 뽀뽀 안해주니까 가슴팍에 얼굴 부비적거리기나 하고.


"부서지면 청구할거야 이 황백수야."

"황백수 취업 한 것 같은데...?"

"아직 보류야."

"그래 보류해."


민현이 재환을 가만 본다. 가까이서 뚫어져라 쳐다본다. 그리고 오른쪽 볼에 입술 꾹. 손은 허리에 또 한 손은 제 다리 위에서 떨어지지 말라고 골반에. 너무 가깝다. 형이 만지는 곳이 좀 부끄러워서 심장이 잠깐 덜컹했다. 호흡하기가 어려워서 재환은 시선을 내리고 숨을 길게 내쉰다.


"내가 다른데 알아볼게."

"..."

"괜찮아."


형에게 없어도 될 일을 만든게 장본인 같아서. 우리가 다시 연인으로 묶이는 대신 형의 손과 발을 정말로 묶어버린 것만 같은 기분이 재환을 자주 덮쳤다. 생각을 더 할걸. 이렇게 그가 노출되는게 짜증나는 일인줄 알았다면. 회사의 반응과 악플까지는 생각을 못했다. 생각없는 말이니까 신경쓰지 말라고 해서 저도 당연히 안 보려고 하지만 안 좋은 말을 발견할 때마다 제 감정을 탓했다.




"오늘은 멋진 날이네. 즐거운 친구들이랑 재밌는 시간도 보내고 간만에 술도 마시고 재환이가 잡으러 온거지만 데리러 오고 그대로 재환이 침대에 누워있네."


아까 재환이 민현의 품에 안겨있을 때 마시려던 머그컵 소주를 나눠먹었더니 다시 알딸딸하다. 민현이 길게 나긋나긋 말하니까 재환의 눈이 꿈뻑꿈뻑 감긴다. 민혀니혀엉. 하면 응, 재아나. 마주보고 있으니까 진짜 좋다. 카메라 없이. 그 말에 재환이 풉 웃는다.

더워서 재환이 이불을 허리 아래까지 내려서 발로 찬다. 민현이 다시 이불을 끌고 올라와 재환의 어깨까지 덮는다. 덥다고 재환이 노려본다. 저형 일부러 이런다.


"재환아, 더우면 벗고 자."

"말하는거 진짜 변태같다."


속으로 생각한다는 게 입 밖으로 튀어나온다. 얼굴은 청순하게 웃으면서 벌써 허리 아래에 손 넣어서 티셔츠 벗겨주려고 준비중이다. 민현의 손바닥이 너무 뜨겁다. 갑자기 재환이 민현의 손등을 찰싹 때렸다.


"나부터 벗을까?"


노려봤다가 화냈다가 웃었다가 오늘 애인이 황민현을 지옥과 천국에 수차례 왔다갔다하게 만든다. 농담해서라도 하루에 한번 꼭 웃겨주고 싶다. 민현이 재환을 빤히 본다. 정확히는 웃는 그 얼굴을. 아랫입술이 조금 나오더니 재환이 제게 조금 더 가까이 오나 싶더니 갑자기 민현의 멱살을 잡았다. 입맞추는 찰나에 헉소리가 나서 재환이 흐흥 웃었다. 아니 왜 그렇게 놀래? 멱살잡길래 나 맞는 줄 알았어. 그럼 당겨야는데 어디 잡고 당겨 다른데 잡고 당길까? 그래, 어딘지 들어보고. 키스는 짧고 대화는 길다. 입 조금 맞추고 떼면 재환이 말하고 다시 섞었다 놔주면 이번엔 민현이 말하고 반복한다.

민현이 재환의 몸통을 들어 제 위에 올렸다. 아래에 커진 민현의 신체어느부위가 적나라하게 닿아서 웃었다.


"왜 웃어?"

"아니 나 갑자기 형 여기 잡고 당기면 진짜 웃길것 같아서."

"안아프게 당겨줘.."

"어후.."


올라탄 재환이 잠시 숨 고르고 위에서 민현을 내려다본다. 키스하느라 삐뚤어진 베개를 바르게 머리에 괴어준다. 그러는 동안 민현의 손이 재환을 당겨 안았다. 숨 막히지 않게 자세를 다시 잘 잡는다. 그러면서 발기한 두 기둥이 자꾸 닿는다.


"형은 재환이가 형한테 미안해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다 나 때문이라며."

"그건 재환이가 귀여워서 장난친거지. 네가 미안해서 어쩔줄 몰라하니까."


민현의 손이 재환의 날개뼈를 만지다 등을 일정한 간격으로 토닥이기 시작한다. 민현의 살냄새. 다른 사람이 맡을 수 없는 거리에서 풍기는 민현의 체향은 재환에게 안정을 준다. 형이 이렇게 하면 불안하고 화나는 감정이 형의 손이 한 번 등에 톡 닿을 때마다 모래가 되어 털어지는 기분이다. 단점은 이렇게 두들기면 잠들 수도 있다는 거다. 지금.. 자기 싫은데..


"사실 재환이가 그날 나 책임진다고 해서 좋았어."

"..."

"나 그냥 재환이 집에서 청소하고 빨래할까."


재환이 숨죽여 끅끅 웃었다. 민현도 웃느라 배가 좀 들썩였다. 뭔가 진지해보여서 웃은거 숨기려고 했는데 실패했다. 민현이 재환의 양 볼을 두 손으로 잡아 제 얼굴을 보게했다. 볼이 눌려서 입술이 앞으로 뾱 튀어나온다. 얼굴을 끌어다가 입맞춘다. 폭신한 김재환의 입술. 잠깐 닿았다 떨어져서 민현이 눈을 떴다. 민현이형. 응? 눈 크게 뜨고 제게 집중한 얼굴이 예뻐서 하려던 말 못할 뻔했다. 청소, 빨래 하고..


"밥도 해조."

"..."

"..."

"...자신 없는데. 노력해볼게."


대답한 입술은 빠르게 삼켜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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