썰처럼 가볍게 푼 내용입니다.

그 니지이엔의 누군가 아무나 튀어나올 수 있습니다.

후편 언제 나올지 안나올지도 모릅니다(?)


복스가 여주에 빙의를 해서 우선 기본적으로 복스 시점으로 진행됩니다.










복스 아쿠마는 눈 앞에 떠있는 상태창을 가만히 노려보았다. 그동안 고생이 많았다. 너무나도.


“이제 시작할 모양이군.”


MAIN QUEST

남주와의 첫만남

남주가 우연히 사고에 휘말린 당신을 구하면서 첫만남을 성사하도록 하자.

  • 성공 시: 시청자 호감도 100
  • 실패 시: 저녁식사 고구마 3개 음료 없이 먹기 & 재도전

확인


도대체 고구마를 먹으란 건 왜 이런 거야? 한국의 밈을 잘 모르는 복스가 속으로 투덜거리며 확인버튼을 눌렀다. 우연히 지나가는 남주가 사고에 휘말리는 여주를 구하는 장면인가. 케이드라마에서 종종 봤던 것 같긴 했다. 하지만 누가 남주인지도 모르는 상황인데? 하지만 뭐 하루를 보내다 보면 어떻게든 성사되지 않을까? 이곳은, 그런 곳이었다.

어느 날 눈을 떠보니 낯선 나라에 있었다. 언어는 다행히 영어를 써도 통했다. 분명 타국의 언어로 들리긴 하지만 그 내용도 이해가 갔다. 아니 자막 같은 게 머릿속에 지나간다고 해야할까? 글씨도 분명 이건 한글이라는 문자지만, 알아서 번역이 되어서 인식이 되었다. 그나마 다행인 부분이었다. 하지만 문제는 주위 사람들이 자신을 복스 아쿠마나 뭐 그런 성인 남성이 아닌, 이복순이라는 이름의 20대 한국 여성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처음에는 무슨 장난질인가 싶었지만 모두가 자신을 그렇게 부르고 있었다. 모습이라도 바뀌었나 싶었지만 자신의 본래의 모습은 변한 것이 없었다. 인식 자체가 그렇게 되는 모양이었다. 그렇게 혼란스러워할 때쯤 자신의 앞에 무언가 게임의 상태창 같은 것이 떠올랐다.


MAIN QUEST

[오늘도 복숭아] 촬영을 무사히 완료하기

당신은 [오늘도 복숭아]라는 드라마의 여자주인공이 되었습니다. 해당 퀘스트는 드라마가 무사히 방영을 마치면 완료가 됩니다. 여자주인공 이복순을 연기하여 총 30부작의 방영을 마치도록 합시다.

  • 성공 시: 집으로 복귀
  • 실패 시: 재촬영

확인


복스는 처음에 뜬 상태 창에 당황한 나머지 확인도 누르지 않고 무시하고 하루를 보냈다. 복순이는 뭐고 복숭아는 뭐고 영문을... 아니 내가 영문을 모르면 안 되지. 아무튼 모르는 일이요- 하고 깽판까지 부리며 하루를 보내자, 아주 자연스럽게 하루가 지나기는 개뿔 다시 같은 날로 돌아와 있었다. 확인을 하지 않으면 진행이 되지 않는 시스템 같은 모양이었다. 복스는 이것이 자신이 자주 하는 게임에 뜨는 시스템 창 같은 것이라 판단했다. 어떻게 타파할 길도 없었고 그냥 확인을 눌렀다. 그러자, 순식간에 주위에 노래가 흘러나왔다. 한번은 들어본 케이팝 아이돌의 목소리 같았다. 주위가 갑자기 빠르게 흘러갔다. 얼핏 같은 니지산지의 동료들도 보인 것 같았다. 설마 여기 나 말고 다른 사람도 있는 걸까? 무언가의 오프닝 같은 것이 끝나고 복스는 덩그러니 어느 백화점 화장품 매장에 서 있었다.

그렇다. 이복순은 백화점 명품 화장품 매장의 매니저였다. 그리고 그 이후로는 종종 서브퀘스트 같은 것이 떴다. 오늘 매출 얼마 달성하기. 회식자리에서 점장 띄워주기. 처음엔 에이 뭐 이정도야. 라고 생각했던 것이 생각보다 힘들어 혼을 쏙 뺐다. 해보지 못했던 종류의 일이어서 그랬을지 모른다. 그래도 복스는 오랜 세월을 살아온 짬밥이 있었으니, 결국 그것들을 해냈다. 그리고 오늘에서야 메인퀘스트가 뜬 것이었다.


“하... 정말 길었다.”

“뭐가?”

“응?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어느새 말투도 바뀌어버린 복스는 웃으며 대답을 한 후에 몸을 돌려 짧게 한숨을 내뱉었다. 그나저나 남주는 누구려나. 복스는 그동안 지내며 모은 정보를 머릿속에 정리했다. 우선 이 드라마 안에 몇몇 니지이엔 라이버들이 들어온 모양이었다. 누구는 짧게 나올 엑스트라기도 했고 누구는 복스와 바로 이튿날 마주치기도 했다. 슈 야미노였다.


“복.....■...?”


똑같은 하루를 두 번 보내고 난 다음 날이었다. 저녁을 먹으러 오라는 카톡을 받고 복스는 이복순의 본가로 향했다. 백화점 근처의 임대아파트에 사는 이복순은 연신내 근처에 있는 부모님 집에 종종 가는 모양이었다. 그래서 조용히 카톡을 보고 그 흐름을 따라 본가에 도착하자마자 현관문 앞에서 누군가와 마주쳤다. 그게 슈 야미노였다.


“■...?”


서로를 보자마자 그들은 서로가 어떤 역할인지 바로 알아버렸다. 슈는 이복순의 남자사람 소꿉친구인 신민호라는 사람이었다.


“...너 있었구나?”

“너야말로... 복■.. 아 이 네모 뭐야?”


슈가 고개를 저으며 복스를 보았다. 물론 이것이 무엇인지 복스도 알지 못했다. 하지만 아까 슈가 자신의 이름을 불렀을 때, 그리고 자신이 슈의 이름을 불렀을 때도 생긴 것이니... 드라마에 맞지 않는 내용이 필터링 되는 건지도 몰랐다.


“잠깐.”


복스가 슈를 데리고 우선 으슥한 골목으로 향했다. 그리고 복스가 입을 열었다.


“슈.”

“...음? 이젠 안 뜨네?”

“역시... 드라마에 맞지 않는 부분은 가리는 모양이야. 이런 내용의 소설을 본 적이 있거든.”

“아하. 역할을 벗어난 부분은 필터링이 된다는 거네? 지금은 동선을 벗어났으니 예외인건가?”

“설마하고 온 건데 그런 모양이야.”

“그런데 복스... 여주인거야??”

“.......shit.”

“푸하하하하... 아니... 어떻게 하필... 푸하하.”

“그만 웃어. 그런 너는...? 반응을 보니 네가 남주는 아닌 거 같고?”

“아... 응. 나 아마도 섭남? 같은 포지션인가봐.”

“흐음. 슈 야미노가 서브남주면... 꽤 역할 선정이 잘 된 걸지도 모르겠군. 내가 여주인 건 순전히 이름 때문이 아닐까.”

“그건...? 모르는 일이지.”


그렇게 이야기를 나누며 몇 가지 정보를 나누었다. 둘 다 알아낸 것에 차이는 없었다. 하지만 슈는 이미 두 사람을 만났다고 했다. 펄거와 우키였다. 하지만 그 둘 다 메인캐릭터는 아니었다. 슈가 보기로는 아마 서브 커플인 것 같다고 이야기했다. 어떻게 그렇게 또 매치가 되었담? 그러면 복스가 여주인 즉슨, 엮이는 빈도로 생각하면 남주는 아이크일 가능성이 높지 않은가?


“백화점 매장...? 그러면, 여기 한드 안이라고 했잖아. 남주가 그러면 백화점 사장이나 뭐 사장 아들이거나 그렇겠네.”

“슈, 소싯적에 좀 봤나 봐?”

“요즘 한드 밈도 얼마나 유명한데.”


그 이후로 두 사람은 전개대로 행동했다. 신민호는 이복순네 부모님 집에서 하숙을 하는 중이었다. 자연스레 두 사람은 같이 식사를 했다. 해산물이 취약인 복스로서는, 하필 꽃게탕이 나와 조금 식사에 애를 먹었지만 말이다.


그렇게 며칠이 지났더랬다. 슈랑은 종종 마주치면서... 복스.. 아니 복순을 짝사랑하는 민호의 마음을 몰라주는 연기를 하고, 그런 연기를 어떻게 하냐!고 해놓고 은근슬쩍 자연스럽게 행동하는 슈와 함께 서브퀘스트를 몇 개 끝내고 난 후였다. 드디어, 남주가 누구인지 확인할 수 있었다. 아직 럭시엠 중에서는 루카와 아이크를 보지 못했으니, 둘 중 하나겠지. 복스는 그렇게 생각하며 소란스러움에 고개를 돌렸다.


“무슨 일이야?”

“지금 회장님이 오신대!”

“회장님?”


귀가 솔깃해져서 직원들 쪽으로 다가갔다.


“회장님 방문하신다고 지금 비상걸렸대요.”

“회장...”


역시 무언가 스토리가 진행될 모양이었다. 회장이라면... 남주라기보단 남주네 부모일 가능성이 높지 않을까?


“갑자기 왜 오셨대?”


복스가 동료직원에게 물었다.


“높으신 분들 마음을 어떻게 알겠어요. 하지만 듣기로는 찍히면 바로 좌천이라고 하더라구요. 조심해야겠어요.”

“...흐음.”


복스는 가만히 생각에 잠겼다. 퀘스트는 우연히 사고에 휘말린다고 했다. 사고가 어떤 사고인지 구체적으로 나와 있지 않으니, 이건 연기를 하는 자신이 연출해야 하는 종류의 것이리라. 그리고 오늘 회장이 온다면, 회장하고 우선 마주쳐야 했다. 그래서 복스는 일하는 내내 언제 회장이 도착하는지 신경을 써야했다. 그리고 기회는 금방 찾아왔다. 마침 회장이 복스가 일하는 매장 앞으로 지나갈 예정이라 직원들이 미리미리 동선을 체크하고 있었다. 어떻게 마주치면 좋을까? 지나갈 때 인사를 하라 미리 언질을 받았지만 허리를 숙이면 마주치기 힘들지 않을까. 그냥 케이드라마 제일 클리셰적인 부분으로 간다면 삐끗해서 넘어져서 눈에 띄는 것이 제일 무난할까? 하지만 그냥 넘어져서는 임팩트가 부족하다. 고민을 하는 사이 소란스러워졌다. 회장이 도착한 것이다.

또각또각. 높은 하이힐의 소리가 들려왔다. 오셨습니까, 회장님. 다들 인사를 하는 소리도 들렸다. 복스도 급히 자리로 향해서 고개를 숙였다. 어쩌지? 넘어져? 말아? 그런 고민을 하는 사이 또각거리는 하이힐 소리가 점점 다가왔다. 그리고 그 하이힐이 복스의 시야에 들어왔다. 발걸음이 멎었다. 왜 내 앞에서? 그렇게 생각하며 복스가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얼굴이 일그러진 아이크와 마주하고 말았다. 웃음을 참느라 잔뜩 긴장한 아이크를 보고 복스는 이상한 소리를 내고 말았다.


“흐어억.”

“매니저님...!”


옆에서 놀라 말을 거는 소리도 잘 들리지 않았다. 눈을 껌벅이고 있으니 아이크가 먼저 입을 열었다.


“복■... 아니... 그... 이...매니저?”

“...네...?”

“잠깐 나 좀 보지. 사무실로 따라와.”


아이크가 눈을 살짝 찡긋하고는 사무실로 향했다. 복스도 그 뒤를 황급히 따라갔다. 사무실로 들어온 두 사람은 가만히 주위를 둘러보고 입을 열었다.


“복스... 아 이제는 필터링 안 걸리네.”

“...아이크?”


여성용 세미 정장에 하이힐까지 신고, 곱게 화장까지한 아이크가 생긋 웃으며 복스를 바라보았다.


“설마 이런 곳에서 마주할 줄은 몰랐네. 심지어 여주라니.”


아이크가 복스의 가슴에 달린 명찰을 보고 키득거렸다.


“네가 회장이라고?”

“응. 남주인 이무영의 엄마야. 배 회장이라고 부르면 돼.”

“...맙소사 그럼 네가 시어머니라고?”

“그렇게 되나?”

“그럼... 남주는...? 네 아들은 누군데?”

“음... 미리 말해주면 재미없을 것 같은데......”

“왜?”

“레이무야.”


복스는 입을 떡 벌린 채로 그대로 굳어버렸다.


“왜?”

“그야 모르지. 왜 그럼 복스는 여주인거냐고.”


아이크가 다시 빵터지며 웃었다. 아이크의 말대로 여기서 이유를 따지기엔 모든 게 이해가 되지 않는 상황이었다. 그저 누군가의 장난일지도 모른다.


“그럼... 이젠 어쩌면 좋지?”


아이크가 물었다. 복스는 잠시 생각하다 입을 열었다.


“슈가 서브남주야.”

“오. 그거 흥미로운데?”

“아직 루카를 못 만났는데...”

“루카라면... 곧 만날 수 있을 거야.”

“...루카는 누군데?”

“음. 이건 비밀로 해야지... 진짜 금방 만날 거야.”


아이크가 다시 웃음을 꾹 참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덕분에 더 생각이 복잡해진 복스가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둘은 간단히 이것저것 합을 맞춘 후에 사무실을 나섰다. 나서자마자 아이크는 복스의 뺨을 확 때렸다. 찰싹 소리는 요란했지만 아이크의 손은 복스의 빰에 거의 닿지도 않았다. 하지만 멀리서 보기에는 꽤나 아파보이는 스윙이었을 것이다.


“실적도 그 모양이면서 제대로 서 있지도 못해?”


솔직히 왜 이런 대사를 해야하는지 아이크는 이해할 수 없었지만 복스의 조언대로 아무렇게나 말을 내뱉었다. 복스는 제 뺨을 감싼 채 부들부들 몸을 떨고 있었다. 그 연기가 리얼한 나머지 아이크는 잠시 주춤했지만 이쪽을 바라보고 있는 시선들을 의식하고는 도도한 배 회장을 연기하며 몸을 훽 돌렸다. 아이크가 떠난 후에 복스는 축 처진 채로 다시 매장에 복귀했다. 주위에서 괜찮냐고 물어왔지만 괜찮다 일답하고는 씩씩하게 근무를 했다. 그리고 퇴근시간이 다가올 무렵이었다.


“어우 이렇게까지 할 필요 없는데.”


어딘가 익숙한 목소리 톤이 들려왔다.


“아 닥■. 후... 내가 참■■...”

“무영씨도 참. 오늘 중요한 날이라고 했잖아.”


조금 과한 톤의 목소리와 무영이라는 이름. 필터링이 되는 대사. 복스가 급히 대화가 들려오는 곳으로 향했다. 그리고 딱 금발머리의 그 녀석과 눈이 마주쳤다.


“...POG!”

“이건 왜 ■■■ 안되는건데?!”

“나도 몰라? 어머 무영씨 여기 화장품 좋아보이네.”


레이무의 옆에 찰싹 붙은 루카 카네시로는 복스의 말을 받아치며 물 흐르듯 화제를 바꾸며 복스가 일하는 매장 안쪽으로 향했다. 그리고 살짝 눈을 찡긋하고는 루시톤으로 계속 말하기 시작했다.


“요즘 건조해서 피부가 당기잖아. 좋은 걸로 사줘요. 무영씨.”

“.........”


하지만 레이무의 시선은 복스의 가슴팍에 달려있는 명찰에 가 있었다. 그 떨리는 시선을 보며 복스가 먼저 말했다.


“i know...”

“hol■ ■■■■.”


레이무의 말이 마구 필터링이 되고 있는 걸 깨달은 복스가 먼저 미소를 띄며 한발 물러났다.


“오늘 이사님이... 쏘시.... 아니 이사님께서 이분께 선물하시려나봐요.”


복스의 말에 루카가 먼저 어머! 하며 레이무의 옆에 섰다. 그러자 레이무가 복잡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 ■... 아니 백...팀장의 생일이라...”

“아하. 그러시구나.”


복스가 고개를 들어 생긋 웃고 있는 루카를 보았다. 그리고 복스는 깨달았다. 루카 카네시로가 바로 남주인 레이무를 사이에 두고 경쟁해야하는 경쟁자 포지션의 악역이라는 것을 말이다.


“..백...팀장님?....”

“아. 이복순씨? 반가워요. 전 백금빛이라고 해요.”


이름 한번 발음하기 힘드네. 복스는 그렇게 생각하고 루카가 악수를 위해 뻗은 손을 무의식적으로 잡을 뻔했다. 하지만 이내 역할을 위해서 지금 좋은 관계로 보여선 안된다 깨닫고는 손을 거두었다. 그러자 백금빛의 표정이 싸늘하게 변했다. 순간 그 온도차가 너무 커 복스는 놀란 표정이 되었다. 루카가 매섭게 그를 쏘아보며 말했다.


“절... 무시하는 건가요?”

“아니... 그게 아니구요.”

“하. 지금 장난쳐?”


순식간에 분위기를 바꿔 연기하는 루카를 보며 복스는 속으로 내심 놀라워했지만 그 장단에 맞춰야 했다. 여주의 위기 상황을 지금 조성해주고 있는 거였으니까. 복스는 위축된 연기를 하며 고개를 저었다.


“저는 그저... 아직 일을 하는 중이라...”

“내가 이 백화점 인사과 팀장이야. 그런 날 무시...!”

“백 팀장!”


그리고 복스에게 손찌검을 하려는 루카의 폭주를 레이무가 막아섰다. 루카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레이무를 보았다.


“무영씨! 지금 나보다 이 여자가 중요한 거야?”

“백 팀장. 내가 누구지?”

“그야 무영... 아...”


루카가 손을 내리며 우물쭈물하며 복스를 바라보았다.


“...내가... 누구지?”


재차 물어오는 레이무의 물음에 루카는 여전히 대답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 루카와 복스가 눈이 마주쳤다. 루카가 입모양으로 복스에게 무언가 물어왔다.


‘...누구...더라?’


레이무의 드라마상 역할을 까먹었는지 필사적으로 복스를 보며 SOS를 치는 루카의 입모양을 읽어낸 복스가 웃음이 터지려는 걸 꾹 참고 자연스레 앞으로 나섰다.


“이사님... 제가 주제넘었습니다. 그러니 팀장님께 그러실 필요는 없으실 것 같아요. 오늘 생일이시잖아요.”


아 찢었다. 자연스럽게 개입한 복스가 만족스러운듯 찡긋 루카에게 신호를 보냈다. 루카가 조심스레 따봉을 날렸다. 레이무는 한숨을 쉬고 루카를 데리고 그 자리에서 떠났다. 그리고 레이무가 떠나며 복스를 잠시 응시했다. 눈빛은 복잡했지만 첫 만남의 연출이리라. 이렇게 무사히 첫 만남이 성사된 것이다. 드라마는 이제 시작이었다.

 

퇴근길이었다. 복스는 붙잡혔다. 남주랍시고 여주의 손목을 붙잡고 끌고 가는 나름 클리셰적인 상황을 연출하곤 있었지만 레이무의 왜소한 체구가 복스를 끌고 가는 모양새는 조금 신선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하며 인적이 드문 곳으로 향했다.


“복스 아쿠마. 오 드디어 말할 수 있게 되었군.”

“레이무... 네가 내 상대역일 줄이야.”

“내가 할 말이야. 왜 하필 너야?! 루카도 찰싹 붙어서 계속 저러고 귀찮아죽겠네. 아니 여주는 내가 해야 하는 거 아니야?!”


레이무가 한숨을 푹 쉬며 복스를 올려다보았다.


“퀘스트 끝났어?”

“...퀘스트... 그러고보니 아직... 성공창이 안 떴네...”

“역시... 루카랑도 이야기했는데 루카가 사고를 제대로 쳐야 하나 봐.”

“아까 그 정도 해프닝으로는 부족했었나...”

“그래서 우키한테 물어봤거든? 그러니까 차 사고 정도는 내라고...”

“......허?”

“어차피 시늉만 하면 되는거 잖아. 루카한테 연락할테니까 루카 차가 올 때 맞춰서 도로로 뛰어들어. 그러면 내가 붙잡을테니까.”


그렇게 위험한 작전을 짜고 헤어진 이후... 복스는 천천히 제 상태창을 응시했다. 사고가 정말 사고였다니... 한국 여자들은 어떠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 이 정도 사건이 아니면 남자를 만날 수 없는 건가? 그런 뻘 한 사고의 흐름을 쫓아가다 약속한 장소에 섰다. 급한 문자가 와서 빨간 불인데 모르고 횡단보도를 건너는 것을 레이무가 구해주는 상황극이었다. 타이밍에 맞춰서 슈에게 문자가 도착했다. 복스는 그것을 보고 들고 있던 가방을 뚝 떨어뜨렸다. 안 돼. 그리고 급하게 도로로 뛰어들었다. 레이무에게도 슈가 문자를 넣었을 것이다. 곧 레이무가 제 손목을 잡고 끌어당겨야했는데... 주위에 사람은 없었다. 복스는 관성에 의해 몸이 앞으로 나아갔다. 빵빵 차 소리가 요란했다. 루카가 타고 있는 차였다. 레이무!! 루카!! 하는 수 없었다. 루카가 제대로 브레이크를 밟아주길 바랄 수밖에. 그리고 그러면서 눈을 질끈 감는 순간. 누군가의 손이 복스의 팔목을 붙잡았다. 그리고 그대로 복스를 껴안고 밀어 같이 도로에 몸을 던졌다. 두 사람이 함께 바닥에 쓰러졌다. 다행히 루카의 브레이크는 제대로 먹혔고 복스가 그대로 넘어졌더라도 사고가 나진 않았을 위치에 멈춰섰다. 복스가 몸을 일으켜 먼저 멈춘 차를 보고 자신을 구한 사람을 내려다보았다.


“...■■■?”


분명 레이무여야 했을 것이다. 하지만 왜 아이크가? 심지어 바닥에 부딪힌 충격에 아이크는 정신을 잃은 모양이었다.


“■■■!!”

“■■! ■■■!!”


그리고 레이무가 급하게 뛰어왔다.


“젠장 ■■■ ■■■■! 괜찮다고 했는데!!”


레이무가 달려와서 아이크를 살폈다.


“■■■, 어떻게 된 일이야?”

“■■■가 우리 계획을 알고 나서 내가 하면 위험하다고... 자기가 먼저 달려왔어... ■■■! ■■■!!”


루카도 차에서 내려 급하게 다가왔다. 주위에 사람들이 웅성거리며 모여들었다. 복스가 아이크를 흔들어보았지만 아이크는 눈을 뜨지 않았다.


“젠장!!”


누군가 급하게 신고를 한 모양인지 구급차가 금방 도착했다. 그들은 함께 구급차를 타고 병원으로 향했다. 그리고 아이크는 병원에서 눈을 떴다. 그 단골소재로 우려먹고 우려먹는 기억상실이라는 클리셰를 가지고 말이다.


“누구세요...?”

“지금... 연기야? 진심이야?”


복스의 물음에 아이크는 두통이 있는 듯 얼굴을 찌푸렸다.


“...연기라니... 좀 무례한 것 아닌가요?”

“아이크. 진짜 기억이 안나?”


루카의 물음에도 아이크는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여긴 어디죠?”

“맙소사.”


그렇게 드라마 장르는 갑자기 스릴러로 바뀌...지 않았다. 우선 안정이 중요하다고 해서 다들 각자 집으로 돌아가 퀘스트가 망한 김에 고구마 3개를 꾸역꾸역 먹고 하루를 끝낸 후. 다시 하루가 리셋이 됨을 확인하고 단톡방에서 같이 욕을 한 후에. 아이크의 상태는 변하지 않음을 깨닫고 다들 침묵에 빠졌다. 같은 집에 있는 레이무가 아이크와 대화를 나눈 후에 단톡방에 다시 나타났다.





슈의 결론에 맞춰서 그들은 다시 오늘 하루를 보내기로 했다. 그리고 완벽했다. 완벽하게 퀘스트조차 완료했다. 이제 같이 합을 맞춰서 진행해나가면 금방 끝나고 돌아갈 것이라 그렇게 생각했다.





다시 똑같은 날을 맞았다. 이유야 간단했다. 아이크 이브랜드가 배역인 배 회장을 연기하지 못하고 퀘스트를 해내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우선은 기억을 잃었더래도 퀘스트창은 보일 가능성이 높았으니 가서 퀘스트를 완료하도록 우선 유도를 할 필요가 있었다. 오늘 별다른 일이 없을 우키와 펄거가 아이크... 그러니까 배 회장과 이무영의 집으로 가서 퀘스트 완료를 유도할 계획이었다.


‘GUYS.‘


차근차근 그렇게 다시 하루를 보내는 찰나였다.


‘아이크 퀘스트창이 안 뜬대.‘


우키의 카톡 하나에 다들 손을 놓아버렸다.

 

그렇게 공포스러운 영원한 하루가 반복되기 시작했다.

 

 





 




저도 아이크가 기억상실 포지션 가져갈 줄 몰랐는데요...........

그리고 이름 로컬라이징하기 너무 힘드네요. 마음에 안드셔도 그냥 넘어가주십사...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ㅋㅋ!!



타스카님의 창작활동을 응원하고 싶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