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는 뉴스레터를 구독하시는 분들로부터 질문을 받아 답변한 Bulletproof Delivery 뉴스레터의 Q&A 회차입니다. 이 블로그로 Bulletproof Delivery를 처음 알게 되셨나요? 뉴스레터를 구독해서 참여해보세요. 구독링크


🌿Q&A🌿


Q. 방탄소년단의 가사는 데뷔 초보다 지금이 훨씬 정돈된 느낌이 듭니다. 음악적 세련미의 추구가 방탄소년단 디스코그라피의 어느 순간에 확실히 드러나기 시작했나요?


A. 이 질문은 주신지 꽤 오래 됐는데 이제야 답을 보내네요. 제 생각을 결론부터 말하자면, 지금의 가사가 더 세련되이 들리는 이유는 가사를 쓰는 장본인들이 성숙했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데뷔 이후 산업과 팬들, 그리고 사회와 호응하며 작사가로 성장했고, 그러면서 세련미도 자연스럽게 갖추어졌다고 봅니다. 다양한 조력자가 생긴 것도 큰 몫을 했겠지요. 외부 작사가 참여가 본격화된 것은 <LOVE YOURSELF> 시리즈였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왜 데뷔 초가 지금보다 덜 정리된 느낌이 들었는지를 먼저 생각해볼게요. 방탄소년단은 힙합돌이라는 정체성을 내세운 팀이었습니다. 힙합의 '리얼함'이란 과제를 '10대와 20대의 솔직한 마음을 대변하겠다'는 목표를 두고 풀어나갔지요. 그 때고 지금이고 총괄 프로듀서가 따로 있기는 하지만, 방탄소년단은 가사의 다수를 차지하는 랩을 모두 퍼포먼스 하는 '랩라인' 당사자들이 썼습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이런 것은 대개 아이돌에게 기대되는 영역이 아니었죠. 직접 쓰는 랩이란 본인들이 힙합팀이란 걸 강조하는 방탄소년단 입장에서는 이 팀의 정체성과 자부심의 중요한 이유였을 것입니다.


새내기 아이돌 본인들이 가사를 직접 쓰는 데에는 좋은 점도 있고 불리한 점도 있었습니다. 기성 곡자들에게서는 나오기 힘든 기발한 표현이나 구성이 탄생하기도 했지만, 동시에 경력과 노하우로 만들 수 있는 매끈함은 부족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 매끈함을 더 상위 가치로 두기 때문에 경험이 부족한 아이돌 멤버들이 음반에 굳이 아마추어적인 참여를 하는 것을 선호하지 않기도 하죠. 돌아보면, 랩라인 중에도 슈가나 알엠의 경우 아마추어 시절에 우수함을 인정 받은 케이스들이어서, 기획자 입장에서는 좀 더 자신있게 투입을 했던 것은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이들에게도 데뷔 이후 '초짜 프로 작사가' 시절이 존재했던 거죠. 데뷔 초 작품들의 러프함이 그 산물이고요.


(오해가 있을까 싶어 적는데, '리얼함'을 추구한다 해서 방탄소년단 랩라인이 무조건 자기 인생에서 비롯된 진솔한 에세이성 작품만 낸 것은 아니었습니다. <Skool Luv Affair>의 타이틀곡이었던 '상남자' 같은 곡의 제작기를 들어보면, 이들도 히트곡을 만들기 위해 화자에 픽션적인 캐릭터를 도입하거나 10대 청자들에게 어필하기 위해 유행어를 적극적으로 차용하는 등, 여타의 기성 작사가들처럼 전략적인 창작 역시 시도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방탄소년단은 데뷔 이래 쭉 가사를 직접 쓰고 책임지는 방식을 고수했습니다. 다시 말해, 이들은 대중 앞에 좌충우돌 성장하는 창작자로서의 모습을 다 공개하며 살아왔습니다. 일반적으로 아이돌은 얼굴 없이 음악만 만드는 작곡가보다 훨씬 그 자신의 얼굴과 인격으로 인식 되는 존재입니다. 그래서 관심을 많이 받지만, 비판도 혹독하게 받습니다. 그러나 방탄소년단은 지금까지 그런 환경에 비교적 상식적인 방식으로 잘 적응해온 것 같아요. 현재로 올수록 이들이 작품에서 추구하는 창작 윤리의 수준이 높아졌음을 알 수 있어요. 세련미도 그와 동시에 올라갔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윤리 수준이 높아진다는 것이 곧 세련미의 보증은 아닙니다만, 저는 시점으로 볼 때에 거의 동시에 일어난 일이라고 봐요. 기존에 당연하게 생각했던 사고방식을 답습해서는 안 되겠다는 문제 의식이 기존의 가요 혹은 국힙의 문법을 되돌아보게 만들었겠지요. 그러면서 더 성숙한 창작자가 되었다는 생각입니다.




Q. 방탄소년단 'Dynamite'의 빌보드 핫100 1위가 서구 음악시장에 주는 패러다임 전환의 사인은 무엇일까요?


A. 제가 '다이너마이트' 핫100 1위 소식 이후 어느 기자님께 이것과 비슷한 질문을 받은 적이 있어요. 그 때 보내드린 답변을 복사-붙여넣기 해볼게요.


"빌보드는 글로벌이라고는 말하지만 기본적으로는 미국 시장을 커버하는 로컬 차트입니다. 방탄소년단의 이번 성과는 인터넷을 중심으로 연결 되고 조직된 팬덤이 산업에 의미있는 결과를 남길만큼 큰 영향력을 가졌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케이팝 팬덤은 2000년대부터 인터넷을 활발하게 쓰는, 웹2.0을 네이티브로서 받아들인 10대들 사이에 서브컬처로서 유행했습니다. 여기에 방탄소년단이 등장했어요. 케이팝은 본래도 재미있고 몰입감 넘치는 장르였는데, 이들은 팬들과의 인간적인 유대감까지 형성하며 더 큰 파급력을 갖게 되었습니다."


여기에 한 가지를 덧붙이자면, 방탄소년단이 아시안의 얼굴을 한 이방인으로서 백인중심사회에 던지는 긴장감이 분명히 존재합니다. 이에 미국의 대중문화 속에서 특히 미미했던 아시안 가시성이 높아지는 효과가 있습니다. 패러다임 전환이라고까지는 말하기 힘들겠지만, 역사상 손에 꼽힐만큼 큰 파급력인 것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Q. 기획사가 아이돌 없이 쓸 수 있는 아이돌 콘텐츠엔 또 뭐가 있을까요?


A. '세계관' 레터에 보내주신 질문입니다. 이 질문의 답은 사실 아이돌과 기획사 간의 계약서 내용을 보지 않는 이상 확실하게 알 수 없을 것 같아요. 그렇지만 아마도 아이돌 당사자들이 자연인으로서 갖는 권리들을 제외하면은, 회사가 콘텐츠를 개발하기 나름이겠지요.

일반적으로는 아이돌의 초상권을 활용한 굿즈가 가장 흔하겠지만, 점차 당사자들이 촬영을 하지 않아도 되는 캐릭터 개발이 늘고 있는 추세예요. 방탄소년단의 경우도 그렇죠. 빅히트는 이 분야에 옛날부터 상당한 관심이 있었던 회사 같아요. 위의 사진 속, 데뷔 초에 판매 되었던 '힙합몬스터' 캐릭터를 비롯해 여러 차례 멤버들을 캐릭터화 하는 작업을 했죠. 라인과 합작한 'BT21'의 경우 방탄소년단이 디자인과 스토리 제작에 참여해 팬들에게는 아바타와 같은 이미지를 주고 있고요, 방탄소년단의 각종 공식 영상에서 볼 수 있는 '타이니탄', 그리고 최근 발매된 샌드박스형 게임 'BTS Universe' 게임 속 3D 캐릭터 등요.


세계관의 경우, 음반에 곁들인 서사였지요. 저는 팬들의 대다수가 이를 '방탄소년단이 연기 했기 때문에' 좋아했다고 생각해서, 방탄소년단이 없이 이 스토리만 뽑아다 드라마를 내놓은 것이 상당히 의외였어요. 회사의 입장으로는 이렇게도 확장을 할 수 있을 거라 계획한 것 같은데, 요즘 여론을 보면 팬덤 측에서는 그렇게 반기는 입장은 아닌 것 같더라고요. 인간 방탄소년단에 대한 애정이 클수록 이런 식의 확장 시도에 거부감을 느낄 수 있을 것 같아요. 콘텐츠 아닌 제3의 사업으로 확장하는 것보다는 이쪽이 나을 수도 있겠지만요. 다른 아이돌 회사의 경우 식품이나 임대업 등으로 흐르기도 했잖아요. 그런 것이 아이돌 산업과 일관성이 있어보이지는 않았거든요.


아마 이정도는 질문 주신 분도 거의 다 떠올려보셨을 만한 것들일 것 같아요. 참신한 예시를 드리면 좋을텐데 답변을 적으면서도 아쉬움이 있네요. 사실 저는 산업으로서의 아이돌보다는 음악과 음악인으로서의 아이돌에 훨씬 관심이 많은 편이에요. 그래서 이런 주제, 경제나 산업 지형 파악에는 좀 깊이가 떨어진다고 자평하고 있습니다...^^; 도움 되는 다른 좋은 글들을 발견하면 추후 소개해드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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