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날 결투클럽의 뒤처리에 대해 슬러그혼과 맥고나걸에게 전해 듣고 해리는 의욕 없는 태도로 달력을 펼쳤다. 조만간 결투클럽도 다시 열어야 했고, 제임스와의 약속도 잡아서 알려줘야 했다. 물론 두 번째 일은 맥고나걸에게는 비밀이었다. 해리가 굳이 제임스에게 다시 결착을 짓자고 한 것은 본인이 하고 싶어서라기보다는 제임스 때문이었다.

  해리는 제임스가 왜 시범을 빙자해서 자신과의 결투를 원했는지 그 이유를 아직 알지 못했다. 만약 정식으로 결투장을 보냈다면 해리는 당연히 거절했을 터였지만, 제임스는 미처 거절할 틈도 주지 않았다. 새삼스럽게 제임스의 일을 벌이는 능력에 감탄하면서 해리는 애꿎은 달력만 뒤적였다. 다음 주에 결투클럽을 다시 연다면 그 전날쯤이 좋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하고 해리는 달력에 끄적거리고 표시를 하고는 제임스에게 어떻게 알려줄지 고민했다. 다른 학생들의 눈을 피하려면 직접 얘기해주는 것보다는 아무래도 편지가 좋을 것 같아서 양피지를 펼쳐놓고 맨 위에 ‘포터,’ 까지 썼을 때 맥고나걸이 부르는 바람에 해리는 양피지를 책상 구석으로 밀어 넣었다.



  그 날 밤 방으로 돌아와 다시 편지를 쓰다가 해리는 소포를 하나 받았다. 처음에는 올 게 없으니 부엉이가 톡톡 창문을 두드려도 잘못 들었을 거라고 생각했으나, 무심코 창문 쪽을 쳐다보았을 때 하얗게 서리가 낀 창문 밖에 정말로 부엉이가 노란 눈을 뜨고 부리로 창문을 톡톡 두드리고 있어서 해리는 깜짝 놀랐다. 추운 밖에서 오래 있었던 것이 화가 난 듯 부엉이는 푸득거리며 날아 들어와 길쭉한 소포를 해리 위로 탁 떨어뜨렸다. 해리가 얼떨결에 길쭉한 뭉치를 창문 옆 테이블에 올려놓고 부엉이를 쳐다보자 부엉이는 얼른 확인해달라는 듯 해리 손을 콕 쪼았다. 꽤 매서운 통증에 해리는 저도 모르게 쪼인 손가락을 입에 물고는 부엉이 발에 묶여있는 양피지를 풀어 보았다.

  발송인 란에는 정중하고 사무적인 필체로 ‘발송인이 익명을 희망하였습니다.’ 라고 적혀 있었고, 수취인 란에는 ‘Harry ■ E.’ 라고 되어 있었다. Harry 뒤에 잉크로 칠한 듯한 자국은 주문한 사람이 주문서에 적은 그대로 옮기느라 그런 것이겠지만, 대체 누가 뭘 보낸 걸까, 도무지 짚이는 것이 없어서 해리는 손에 양피지를 든 채로 길쭉한 꾸러미를 흘끔 쳐다보다가 문득 멈칫했다. 해리는 저 정도 길이에 저 정도 무게감을 가진 선물을 받아본 적이 있었다. 그것도 두 번이나. 해리는 사인하는 것도 잊은 채 믿을 수 없다는 듯이 포장 위로 꾸러미를 만져보았다. 딱딱하고 매끈하게 다듬어진 앞부분, 이것은 다른 무언가일 수가 없었다.

  “아얏.”

  기어코 부엉이가 한 번 더 손을 쪼았을 때에야 해리는 정신을 차리고 얼른 양피지에 사인을 해서 부엉이에게 묶어주고는 창문 밖으로 내보냈다. 창틀에서 한번 부르르 떤 부엉이가 멀리 날아가고, 해리는 그제야 포장지를 조심스럽게 풀어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그것은 반짝거리는 새 빗자루였다. 해리가 기억하고 있는 님부스 2000과는 디자인이 많이 달랐지만, 손잡이 쪽에 새겨진 Nimbus 1000S라는 글씨체만큼은 익숙했다. 해리가 빗자루를 선물 받았던 것은 한번은 맥고나걸이었고, 한번은 시리우스로부터였다. 그러나 맥고나걸이라면 굳이 발송인을 숨길 이유가 없었고, 그 전에 지금의 자신에게 빗자루를 선물할 이유가 없었다. 그렇다면, 어쩌면, 혹시, 시리우스일까? 해리의 심장이 크게 요동쳤다.

  해리는 빗자루를 샅샅이 뒤져보았다. 시리우스가 혹시 그 때처럼 뭔가 자신임을 알려줄 수 있는 메모나 물건을 끼워놓지 않았을까 해서였다. 그러나 단서는 아무것도 없었다. 해리는 빗자루 꽁지를 내려다보며 그 끄트머리를 만지작거렸다. 새 빗자루 특유의 송진 냄새가 강하게 났다.

  “정말 시리우스일까?”

  당연하게도 빗자루는 대답을 해주지 않았다. 생각해보면 시리우스가 자신이 대자라는 것을 알 리가 없으니 그 역시 자신에게 빗자루를 선물해줄 이유가 없기도 했다. 그러나 해리는 자꾸 시리우스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시리우스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리우스와 잃어버린 파이어볼트를 떠올리자 괜히 눈시울이 시큰해졌다. 가만히 빗자루를 내려다보며 생각하다가 해리는 빗자루를 들고 창문을 열었다.

  망토와 목도리 정도만 챙기고 해리는 차가운 밤하늘로 날아올랐다. 하늘은 그의 세계였다. 찬바람에 목도리가 풀어져 볼과 귀가 얼어붙는 것 같았지만 그 정도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첨탑 끝의 깃발이 마치 퀴디치 골처럼 보여서 그 주변을 빠르게 휭 감듯이 날아오르며, 해리는 자신이 나는 것을 얼마나 좋아하는 지를 새삼 실감했다. 눈물이 날 만큼 기분이 좋았다.



  다음날 저녁 해리는 2층 모우닝 머틀의 화장실 앞에서 시리우스와 마주쳤다. 우연히 만났다기보다는 해리가 마음먹고 시리우스를 찾아다녔다는 쪽에 가까웠지만 시리우스는 해리와 마주친 것이 의외였는지 꽤 즐거운 얼굴로 인사했다.

  “제임스랑 다시 한판 한다며?”
  “아.”

  그러고 보니 제임스에게 다시 날짜를 알려주는 것을 깜빡했다. 해리가 다음 주 목요일, 결투클럽이 다시 열리기 전날에 보자고 전해주겠냐고 묻자 시리우스는 흔쾌히 승낙했다. 기분 탓인지 시리우스가 전보다 자기에게 스스럼없이 대하는 것 같았다. 해리는 기분이 좋아 보이는 시리우스를 가만히 보며 물었다.

  “제임스는 오늘까지 징계지?”
  “어, 그렇다던데.”
  “맥고나걸 교수님이 두 사람 요즘 조용한 거 보면 뭐 하나 저지를 때 됐다고 주의하라고 그러시던데.”

  그 말에 시리우스가 새삼스럽게 해리를 돌아보면서 도전적으로 씩 웃었다.

  “그래서 감시하겠다?”

  모우닝 머틀이 또 변기로 뛰어들었는지, 여자 화장실 안에서 첨벙 하는 물소리가 났다. 해리는 무심코 그쪽을 한번 쳐다보고는 말했다.

  “글쎄, 그러려고 해도 그렇게 쉬울 것 같지는 않네.”

  제임스에게는 투명망토도 있었고, 확실하지는 않지만 호그와트 비밀지도도 있을 것이었다. 만약 이들이 작정하고 자신을 피하려고 한다면 해리로서는 딱히 도리가 없었다. 해리는 약간 작은 소리로 덧붙였다.

  “예를 들어 비밀통로 같은 데로 가버리면 내가 뭐.”
  “비밀통로?”

  시리우스는 모르는 척 말끝을 올렸지만 해리는 그 모습을 보고 오히려 빙긋 웃었다.

  “설마 하나도 모른다는 건 아니겠지.”
  “뭐라고?”

  그 말이 시리우스에게는 꽤 도발적으로 들린 모양이었다. 시리우스는 ‘이것 봐라.’ 라는 듯이 눈을 가늘게 뜨고 해리를 보더니, 거만하게 턱을 치켜들고 말했다.

  “그쪽도 꽤 알고 있는 모양이지?”
  “뭐 그럭저럭. 사실 내가 직접 찾은 건 하나뿐이지만.”
  “에게. 시시하네.”

  시리우스가 혀를 찼지만 해리는 그저 웃었다. 해리가 발견한 비밀의 방으로 들어가는 통로는 몇 십 년간이나 감춰져 있었던 것이기 때문에 아무리 시리우스라도 모를 것이 틀림없었다. 그렇지만 그밖에 해리가 자주 쓰던 비밀통로는 주로 이들이 만든 비밀지도에서 알게 된 것이었다. 그러고 보면 자신은 이들로부터 물려받은 것이 참 많았다. 가만히 시리우스를 쳐다보다가 해리는 불쑥 입을 열었다.

  “선물 고마워.”

  갑작스러운 말에도 시리우스는 태연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잘못 짚은 걸까? 해리는 약간 초조한 기분을 숨기며 말했다.

  “어젯밤에 잘 받았어. 시리우스가 보낸 것 맞지?”
  “뭐? 무슨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네.”
  “그럴 리가, 발송인 란에 분명히…….”

  말끝을 흐리며 해리는 시리우스의 눈치를 살폈다. 해리의 반응에 시리우스는 콧잔등을 우아하게 찡그리더니 나지막하게 투덜거렸다.

  “뭐야, 익명으로 보내달라고 했더니.”
  “역시.”
  “‘역시’ 라고? …… 추측이었어?”
  “확신에 가까웠지만.”
  “…….”

  시리우스는 그런 간단한 유도심문에 넘어간 것이 꽤 분한 것 같았다. 그렇지만 해리가 ‘고마워.’ 하고 재차 감사하자 흘깃 보더니,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대답했다.

  “별거 아니야.”
  “항상 고마워하고 있어. 전에도, 그 전에도. 항상 내가 가장 필요할 때 있어주고 생각나게 해주는 것도.”

  ‘전’이라는 말을 시리우스는 제임스의 집 앞에서 위로해준 것 정도로 해석한 것 같았다. 시리우스는 머쓱한 듯 해리에게서 시선을 돌렸다.

  “내가 대부에게 처음으로 받은 선물도 빗자루였어. 어제 받았을 때 그 생각이 나서 아주 기뻤어. 고마워.”
  “그렇게 거창한 거 아니니까, 그냥 가져.”

  아무래도 직설적인 감사인사는 영 간지러운 듯 시리우스는 어색해했지만, 해리는 솔직히 그 모습마저도 못내 기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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