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발터 베른하르트를 좋아하시는 아버님의 생일 축하 겸 구상했던 글입니다. ※

※ 늦었지만 생일 축하드립니다. ※



발뭉은 수 세기동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사계절 초록잎이 반짝반짝한 키 작은 나무들과, 위를 올려다 보아도 그 끝이 짐작되지 않을만큼 높이, 마치 하늘에 닿을 것마냥 쭉쭉 뻗어 있는 고목들 사이에 나 있는 오솔길 근처의 땅에 박혀 있었다. 그곳의 사람들은 지나가면서 한 번씩 그 괴상한 전설의 무기에 눈길을 보냈지만 그 물건에 얽힌 수많은 괴담을 이미 어릴 때부터 전해들으며 자라 왔기에 감히 손댈 생각을 하는 이는 없었다.

정말 이상했다. 아티팩트라 불리는, 가공할만큼 거대한 힘을 지니고 있으며 심지어 자신의 주인을 직접 선택한다고 하는 무기는 온 세상 땅 전체에 드문드문 그 존재를 드러냈고 매번 제대로 된 주인을 찾는 듯 보였으나 괴이하게도 아직까지 발뭉은 제 주인을 찾지 못했는지 고철덩어리마냥 그 땅에 박혀 있었다.

발뭉은 검인가? 그렇다고 하기엔 흔히 볼 수 있는 기사와 검사들의 무기와는 그 모양새가 너무나도 달랐다. 그러면 발뭉은 창인가? 다섯 살 날 어린 아이도 땅 위로 솟아 있는 발뭉이 창이 아니라는 걸 안다. 이 괴상망측한 무기는 검도, 창도, 활도, 총도 아니었고 그저 차갑고 딱딱한 막대기에 불과했다. 우습게도, 언젠가 근처에서 공놀이를 하던 소녀가 그 물건의 정체를 몰랐는지 다리가 불편한 자신의 할머니에게 가져다 주겠다며 얼굴이 새빨개질만큼 힘을 줘 뽑으려다 주변 어른들의 만류로 씩씩거리며 집으로 돌아간 일도 있다.

발뭉은 자신의 존재를 숨기지 않았으며,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그곳에서 한 발짝도 움직일 생각 없는 고집 센 노인처럼 꼿꼿하게 서 있었다. 물론 아티팩트의 위력을 실제로 본 사람들도 존재했기에 그건 모두가 탐내는 무기였고, 아티팩트가 무엇인지 잘 모르는 사람들조차도 혹시나 하는 기대에 그 유명한 물건을 한 번 구경이라도 해보겠답시고 먼 발걸음을 하는 게 당연지사였다. 그럴 때마다 이 꼬장꼬장하고 차가운 막대는 냉정하게 그들을 쳐내곤 했다.

공놀이를 하던 소녀처럼 있는 힘껏 뽑아도 미동도 하지 않아 짜증나게만 만들면 다행이었을텐데, 때로는 자신을 만지는 사람을 해치기도 했다. 먼 나라의 한 왕은 직접 발뭉을 뽑아 보겠다고 행차했다가 손잡이로 추정되는 부분에 검지 끝이 닿자마자 알 수 없는 거대한 에너지에 자신의 육체가 점령당한 것 같은 기분을 느끼곤 부들부들 떨며 쓰러지기도 했다. 당대에 이름깨나 날린다고 거들먹거리던 검사는 발뭉의 근처에 가려고 했더니 누가 붙들어 매는 것마냥 몸을 움직일 수 없다고 했고, 손잡이를 꽉 붙잡으니 손바닥이 익을 정도로 큰 화상을 입었다는 사람도 있었다.

전설의 무기가 아니라 악령 들린 막대기야!

분노에 찬 누군가의 목소리가 숲에 울려퍼진 이후로 사람들에게 발뭉은 점점 더 경외의 대상이 되었고 불운의 상징이 되기도 했다. 가공할만한 힘을 지닌 무기면 무얼하랴. 그 무기를 제대로 다룰 주인이 없다면 그 힘은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이다. 자신을 돌보는 사람이 없는데도 발뭉은 마치 누가 매일 닦아주기라도 하는 것처럼 새 물건처럼 반짝거렸고 종종 휘파람새가 그 위에 앉아 분주하게 깃털을 고르다가 날아가곤 했다. 몇날 며칠 폭우를 맞아도 녹스는 법이 없었으며 발뭉이 번개를 맞는 걸 본 적이 있다고 한 사람도 있었으나 그 전과 전혀 달라진 점이 없었기에 아무도 그의 말을 믿지 않았다.

“아, 내가 두 눈으로 똑똑히 봤다 해도 그러네.”

“말이 되는 소리를 하게. 그렇게 강한 번개를 맞았는데 아무리 발뭉이어도 멀쩡할 리가 없잖은가. 하늘이 찢어지는 것 같은 소리를 나도 간밤에 들었네만.”

동네 주민들의 옥신각신하는 소리를 듣고 있는지 아닌지 그들 앞의 발뭉은 무덤처럼 침묵하고 있었다. 그렇게 서서히 전설의 무기는 사람들의 머릿속에서 잊혀져 간다. 본색을 드러내면 세상의 흐름을 바꿀수도 있다는 그 대단한 힘도, 실제로 본 사람들이 나이를 먹어 죽어가며 입에서 입으로 전해 내려오고, 또 그렇게 전해 내려오며 점점 허황된 이야기가 되어 갔다. 저건 무기도 뭣도 아니며, 그저 볼썽사나운 지팡이일 뿐이라고 욕설을 뱉는 사람도 있었고 여전히 자신의 할아버지가 들려줬던 이야기를 가슴 속에 소중히 지니며 언젠가 나타날 발뭉의 주인은 과연 누구일까 평생 궁금해하다가 생을 마감한 사람도 있었다.

그 후로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얼굴이 빨개질 정도로 발뭉을 뽑으려 애를 썼던 소녀가 할머니가 되고, 또 그의 손자가 자신의 할머니를 꼭 닮은 손녀를 보았을 때쯤이었나. 아주 가끔 아이들의 잠자리를 돌봐주는 사람들이 주름진 손으로 이마를 쓸며 중얼거리는 자장가에서나 등장하는 발뭉에 대한 이야기를 사람들이 흐릿하게 기억하던 시대에, 키가 크고 조금 핼쓱한 청년이 수심에 가득찬 얼굴로 그 근처를 지나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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