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면서 죽음에 대해 막연히 상상해 본 적은 있었다. 그러나 한 번도 실제 죽음과 대면해보지 않았던 나는 그 형태를 체감해보지 못했었다. 감각도, 기본적인 욕구도 없는 절대적인 무(無)의 세계. 어둠의 시작과 끝이 어디인지 짐작할 수 없듯 그 세계가 끝도 없이 펼쳐졌다.

 

나는 이제 슬픔과 고통을 느끼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에 안도하면서도 더 이상 형을 추억할 수 없게 된다는 사실에 아쉬움을 느꼈다. 형의 얼굴, 따듯한 촉감, 그리운 목소리. 누가 나보다 이를 생생히 기억할까. 손에 잡힐 것 같은 감각들이 마지막으로 나를 스쳐 지나갔다.


그때였다.

 

민윤기, 윤기야.

 

내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가 아득히 먼 곳에서 들렸다. 그 소리는 처음에는 모깃소리만큼 작았지만, 점차 커져서 내 머리 위에서 울렸다. 윤기야, 일어나 봐. 윤기야. 나는 그 소리를 들으면서도 좀처럼 몸을 움직이거나 반응할 수 없었다. 몸이 굳어진 것처럼 꼼짝도 안 했다.

 

일어나라고 채근하는 목소리는 형을 닮았다. 나는 고요한 수면 아래에서 나를 둘러싼 자극을 나와 무관한 것처럼 관조했다. 하지만 목소리가 커짐에 따라 나를 떠났던 감각들이 돌아오기 시작했다. 살갗까지 깊이 젖어든 물의 흐름, 손목의 통각, 허기. 점점 봇물이 터지듯 감각들이 나의 육체로 밀려들었다. 그중 가장 날카로웠던 감각은 그리움이었다.

 

“윤기야, 제발!”

 

움직여, 민윤기. 병신 새끼마냥 손 놓고 두고 보면서 아무것도 안할 거야? 나는 안간힘을 써서 겨우 새끼손가락 하나를 움직였다.

 

“윤기야!”

 

순간 억센 손길이 나를 물 밖으로 끌어올렸다. 촤아악, 내 몸에서 다시 욕조 안으로 떨어지는 물소리가 마치 폭포 소리 같았다. 본능적으로 숨을 들이켜려 하자, 아직 콧속에 남아 있던 물이 기도로 넘어와 나를 콜록거리게 했다. 목구멍이 따갑다.

 

나는 가까스로 눈꺼풀을 들어 올렸다. 그러자 눈을 찌르는 불빛 아래 형이 나를 보고 있었다. 보면서도 믿을 수가 없어 나는 다시 눈을 깜박였다. 형이다. 형이 눈썹을 찡그렸다. 이미 얼굴은 내 몸처럼 흠뻑 젖어 있었다.

 

“혀엉...왜 울어.”

 

나는 말을 처음 하는 아이처럼 어눌하게 더듬거렸다. 형의 뺨을 만져 눈물을 닦아주고 싶었지만 손 끝에 납덩이라도 단 것처럼 손을 들 수가 없었다.

 

“죽으면 안 돼, 윤기야.”

 

형의 턱 끝에 매달려있던 눈물이 나에게 떨어졌다. 눈물이 떨어진 자리가 불에 덴 것처럼 뜨겁게 느껴졌다.

 

엄마 뱃속에서 나온 아이의 생애 첫 감각은 지나치게 선명하여 고통이었으리라. 몸을 덮치는 한기에 나는 덜덜 떨기 시작했다.

 

“추워. 나 너무 추워.”

 

나는 중얼거리며 웅크렸다. 형이 나를 급히 끌어안았다.

 

“윤기야, 왜 그래, 응?”

“형, 너무 추워.”

 

이제는 제어할 수 없을 정도로 몸 전체가 와들와들 떨렸다.

 

“정신 차려! 윤기야!”

 

형이 내 몸을 세게 움켜쥐었다. 형과 맞닿은 부분의 온기와 그렇지 못한 부분 간의 극명한 온도 차이 사이에서 싸우던 나는 깜박 넋을 놓았다.

 

*

 

눈을 뜰 때마다 장면이 바뀌었다. 한번은 좁은 복도 천장을 보며 어디로 실려 가고 있었고, 또 한번은 여러 개의 동그란 불빛들 아래 누워있었다. 나를 내려다보는 사람들의 무감한 눈이 마스크 너머에서 빛났다. 그중 한 명이 내게 말했다.

 

“숨 더 깊이 들이쉬세요. 한숨 자고 나면 다 끝나있을 거에요.”

 

호흡기에서는 이상한 냄새가 났지만, 그들이 자라고 말했기에 잤다. 그리고 다음에 눈을 떴을 때는 모든 곳이 하얀 방안에 누워있었다. 머리맡에 놓인 링겔을 보고 이곳이 병실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나는 힘없이 고개를 돌렸다.

 

형이 내가 누운 침대 옆에 앉아 있었다. 형의 얼굴은 무척이나 피로해 보였다. 내가 기억하던 모습보다 핼쑥한 얼굴이 한층 더 나이를 먹은 것처럼 보였다.

 

“형.”

 

형편없이 잠긴 내 목소리가 쇳소리를 냈다. 그러자 형이 내게 다가왔다. 서늘한 손이 나의 이마를 덮었다.

 

“좀 자.”

 

나는 나를 만져주는 손길이 좋아 눈을 감았다. 피부 위로 느껴지는, 틀림없는 형의 존재에 나는 생각보다 크게 안도했다.

 

*

 

“윤기 형, 정신이 좀 들어요?”

 

눈을 뜬 순간 코앞에서 마주한 남준의 얼굴에 놀라 펄쩍 솟아오를 뻔했다. 다행히도 그럴 기운이 없어서 나는 가만히 눈만 깜박거렸다. 내가 듣지 못했다고 생각했는지, 남준이 한층 목소리를 높였다.

 

“형, 나 누군지 알아보겠어요?”

 

낯익은 두 눈이 걱정 때문에 가늘어졌다. 나는 머리가 지끈거리는 것을 느끼며 미간을 찡그렸다.

 

“나 귀 안 먹었어. 작게 얘기해. 머리 울려.”

“형! 다행이다, 진짜 다행이야!”

 

남준은 내 말뜻을 이해하지 못했는지 더 크게 외칠 따름이었다. 내가 살아난 것이 감격스러웠는지 남준은 울먹거리기도 했다. 머리가 더 꽝꽝 울렸다. 나는 끄응, 못마땅한 소리를 내며 손으로 귀를 막으려 했다.

 

“엇! 안 돼요, 그렇게 함부로 움직이면. 봉합한 데 벌어져요.”

 

남준이 황급히 내 팔을 눌렀다. 나는 깜짝 놀라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남준이 누른 팔 아래로 손목에는 흰 붕대가 칭칭 감겨 있었다. 아, 맞다. 나 죽으려고 했었지.

 

“진짜 형 때문에 내가 수명이 십 년은 줄어들었을 거에요. 연락받고 얼마나 놀랐는지 알아요?”

 

나는 멍하니 붕대를 바라봤다. 죽으려던 나를 형이 구해주었고, 수술이 끝난 후에도 형은 내 병상 곁을 지켜주었다. 그래, 형! 석진이 형은 어딜 간 거지? 나는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그러나 병실에는 형은 온데간데없었다.

 

“남준아, 형은?”

“네?”

“석진이 형 말이야. 형 못 봤어? 아까 여기 있었거든. 어디 간 거야?”

 

남준이 이상한 표정을 지었다. 내가 사리분별 안 되는 소리라도 지껄인 듯한 얼굴이었다. 곧 당혹스러운 표정이 자리 잡았다.

 

“형 아무래도 더 쉬어야겠어요. 원래 마취 수술하고 나서 깨면, 정신이 좀 없대요. 꿈도 엄청 많이 꾸고.”

“무슨 뚱딴지 같은 소리야. 형, 어디 있냐니까?”

“의사 선생님 모셔올까요? 어디 몸 불편한 데 없어요?”

 

자리에서 일어서는 남준의 행동은 이 자리를 모면하려는 것처럼 부자연스러웠다.


“김남준! 형 어디 있냐니까?”

 

내가 목소리를 높이자, 그제야 남준이 멈춰 섰다. 남준은 포기한 듯 자리에 털썩 앉았다. 꽉 다물린 입을 보며, 나는 사정하다시피 물었다.

 

“나 꿈 같은 거 꾼 것도 아니고, 정신도 말짱해. 형 어디 있냐고 물었는데, 대체 못 들을 얘기라도 들은 것처럼 너 왜 이래?”

“없어요.”

“뭐?”

“석진이 형은 여기 없다고. 내가 왔을 때부터 여기 없었어요. 형이 꿈을 꾼거에요.”

“무슨 소리야?”

“형이 큰일을 겪고 나서 혼란스러운 상태에서 석진이 형 꿈을 꾼 거라구요. 석진이 형이 여기 있을 턱이 없잖아요.”

 

나는 남준의 말을 믿을 수 없었다. 죽을 뻔한 나를 구했던 팔의 온기, 다급했던 형의 목소리, 내 이마를 쓸어내리던 손길을 나는 생생히 기억하고 있었다. 그럴 리 없어. 남준아. 나는 정말 형을 봤다고. 형이 내 이름을 불렀었다고. 나는 꿈결처럼 중얼거렸다.

 

“형, 정신 좀 차려요, 제발.”

 

남준은 내가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상황에서 헛것을 보았다고 믿는 것이 틀림없었다. 남준이 신경질적으로 앞머리를 넘기고는 말을 이었다. 아까와는 확연히 다르게 격앙된 어조였다.

 

“아니, 이제 와서 이럴 거면 왜 그때 석진이 형이 헤어지자고 했을 때 순순히 헤어진 거에요? 어떻게든 그때 붙들고 놓지 말았어야지. 그깟 사랑이 뭐길래 목숨까지 버릴 생각을 해요? 이러다 덜컥 죽어버렸으면, 앞으로 내가 무슨 낯으로 석진이 형 얼굴을 봐요?”

 

뭐? 나는 고개를 들었다. 얼핏 들으면 실연 때문에 목숨을 내던지려 했던 나를 책망하는 말들이었지만, 남준의 말에는 묘하게 마음에 걸리는 부분이 있었다. 마치 형과 인연이 아직 닿아 있는 느낌.

 

“너 알고 있구나. 형이 어디 있는지.”

“...”

“형이랑 계속 연락하고 있었어?”

 

남준은 무거운 얼굴로 침묵했다. 늘 많은 생각을 담던 두 눈 위로 죄책감과 망설임이 떠올랐다. 남준은 나에게 진실을 말해 주어도 좋을지 오랫동안 생각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남준이 침묵할수록 남준이 형의 행방을 알고 있다는 나의 확신은 굳어졌다. 한참 후에야 남준이 입을 열었다.

 

“석진이 형이랑 약속했어요. 형한테 자기가 어디에 있는지, 어떻게 사는지 말하지 않기로. 나랑 연락하는 것도 말하지 말아 달라고 했었어요.”

“왜?”

“그렇게 하지 않으면 형이 석진이 형을 포기하지 않을 테니까요.”

 

아, 정말이지 당신은 나를 진심으로 버리려고 했었구나. 나는 망연자실했다.

 

“그런데 소용없는 짓이었어요. 형이 이럴 줄 알았으면 그딴 약속하지도 않았을 거에요. 정말 미안해요.”

 

남준이 주먹을 꽉 쥐었다. 나는 거짓말을 해온 남준을 꾸짖거나 화내지 않았다.

 

‘윤기야, 우리 받아들이자. 그것밖에는 없어.’

 

형은 운명을 받아들이려고 했고, 내가 그리하지 못했을 뿐이다. 이건 내 미련이 자초한 어리석은 결과다.

 

그때 남준의 휴대폰이 울렸다. 화면 위에 뜬 수신자를 확인한 남준이 작게 탄식했다. 하지만 남준은 쉽사리 전화를 받지도, 수신거부를 누르지도 않았다. 남준이 내게 말했다.

 

“정말로 소용없는 짓이었네요. 형한테 무슨 일이 생겼는지 나 다 말했거든요.”

 

남준이 쉴새 없이 울리고 있는 휴대폰 화면을 내게 보여주었다. 착신을 알리는 불빛이 나의 눈앞에서 반짝거렸다. 그리고 나는 화면 한가운데 떠오른, 그리운 이름을 읽었다.

 

김석진.

 

형이었다.

 

*

 

“놀라지 마요, 형. 석진이 형 지금 여기 온대요.”

 

전화를 끊은 남준이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나는 이미 형이 이곳에 다녀갔었다고 말했지만, 남준은 그건 나의 꿈일 뿐이라고 재차 말했다. 자신이 말해주기 전에는 형이 내가 죽으려고 했던 것도 몰랐기 때문에 형이 어디 있는지도 모를 나를 찾아왔을 리가 없다는 것이었다. 형이 나를 찾아왔었다는 증거는 어렴풋한 나의 기억뿐이었기에, 나는 반박하려던 것을 그만두었다.

 

“남준아, 창문 좀 열어줄래?”

 

남준은 내 말에 기꺼이 창문을 열어주었다. 햇빛이 비쳐들며 남준의 그림자가 병실 바닥에 길쭉하게 드리워졌다. 마치 키다리 아저씨처럼. 찬 바람이 환자복 사이로 여며 들어 제법 쌀쌀한 기운이 느껴졌다. 남준은 환자에게 좋지 않을 거라며, 창문을 도로 닫으려고 했지만 나는 괜찮다고 말했다. 찬바람이라도 맞아 깨어있는 상태로 형을 만나고 싶었기 때문이다. 형이 온 것도 모르는 채로 있는 것은 싫었다.

 

형을 기다리며, 나는 오랫동안 망설였던 질문을 꺼냈다.

 

“남준아, 형은 날 미워했어?”

 

남준은 나의 말에 어깨를 으쓱 올렸다.

 

“미워했으면 여기 오겠어요?”

“있지, 남준아, 나는 형이 날 미워했으면 좋겠어.”

“왜요?”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미움이라는 건 이별 후 우리 사이를 채웠던 애증의 반쪽짜리 감정에 불과했다. 어쩌면 나는 남준에게 형이 날 사랑하느냐고 묻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형이 날 사랑하지 않는다면, 차라리 미워해 주길 바랐다. 포기하는 것보다 미워하는 것이 그래도 날 버리지 않았다는 반증이기 때문이었다.

 

형이 오기 전에 가족들이 다녀갔다. 엄마는 너무 많이 울어서 윤지가 진정시키고자 병실 밖으로 데리고 나가야 했다. 병실 안엔 나와 아버지만이 남았다. 아버지는 자리에 앉지도, 내게 다가오지도 않았다. 선 채로 나를 가만히 보기만 했다. 감정을 참기 위해 부릅뜬 두 눈이 한참이나 내 손목을 감싼 붕대를 보았다. 나는 어색하여 어쩔 줄 몰랐지만, 누워있는 수밖에 없었다.

 

나는 아버지의 희끗희끗한 머리칼과 이마 위로 깊게 패인 주름을 보며, 그도 나이가 들었음을 깨달았다. 어쩌면 윤지 말이 맞을지도 모른다. 그는 내가 알던 아버지가 아닐지도 모른다.

 

“괜찮니?”

 

한참 후 잔뜩 잠긴 목소리가 물었다. 오랜만에 듣는 아버지의 목소리는 내가 기억하던 목소리와 같아서 나는 안심했던 것 같다.

 

“네...”

 

아버지와 똑같이 잠긴 목소리가 간신히 대답했다.

 

가족들이 떠난 후 나는 혼자 형을 기다렸다. 문이 열릴 때마다 심장이 부서질 것 같은 기대감으로 돌아보았지만, 링겔을 갈아주러 온 간호사나 회진을 도는 의사였다. 나는 실망스러운 표정을 감출 생각도 못했다.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는데도 형은 오지 않았다. 창밖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낮보다 한결 차가워졌다. 나는 창문을 닫기 위해 링겔 거치대를 끌고 창가로 다가갔다. 벌겋게 물든 노을이 아름다워 나는 뭘 하려던 지도 잊고 하염없이 밖을 바라봤다. 삼키면 뜨거울 듯이 새빨간 태양이 하루의 마지막 빛을 태워내고 있었다. 죽음을 맛본 사람은 쓸데없이 감상적이 되는지도 몰랐다.

 

빠른 속도로 가라앉는 태양을 보며, 나는 형을 생각했다. 형은 살아났을 때 무슨 생각을 했어? 내가 옆에 있어서 안심했을까, 그도 아니면 꼴도 보기 싫었을까. 그래서 보자마자 헤어지자고 했는지도 몰라. 나는 씁쓸하게 웃었다. 형이 남준에게는 내게 온다고 했지만, 역시나 안 되겠다고 생각했던 것 아닐까. 그런 줄도 모르고 순진하게 기대나 하고 나도 퍽 한심하지.

 

등 뒤로 병실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러나 나는 돌아보지 않았다. 끽해봐야 간호사나 병원 청소부일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문이 닫히고 나서도 어떤 움직임이 느껴지지 않았다. 나는 여전히 밖을 바라본 채로 물었다.

 

“남준이니?”

“...”

“역시 형은 안 오려나 봐.”

 

바깥은 이제 어둑어둑하게 땅거미가 깔렸다. 나는 창문을 닫았다. 그러자 눈앞의 유리창에 사람 그림자가 비쳐들었다.

 

“윤기야.”

 

이름이 불리기도 전에 나는 번개처럼 돌아보았다. 형이 홀로 그림처럼 서 있었다.

 

“드디어 같은 시간대에서 만났다.”

 

형의 눈이 나처럼 눈물로 반짝거렸다. 형, 정말 형 맞아? 왜 이제 왔어? 어떻게 지냈어? 수많은 말들이 내 안에서 맴돌았지만, 바깥으로 나가지 못한 채 목이 메여 왔다.

 

“형...”

 

가까스로 형을 부르며, 한 걸음을 내디뎠다. 하지만 형이 더 빨랐다. 언제나 형은 늘 나보다 앞서 있었다. 형이 달려와 나를 품에 안았다. 익숙한 냄새, 눈앞에 걸리는 어깨높이. 틀림없는 형이었다.

 

*

 

서른세 살의 형이 눈앞에 있었다. 시간 여행이 일어나기 전에 늘 보았던 형인데, 오랜만에 보는 형은 낯설고도 새로웠다. 아마도 예전의 형에게 깊숙이 자리 잡혀있던 애수와 슬픔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대신 그 나이대에 맞는 성숙함과 안정적인 분위기가 형을 감쌌다.

 

“미안. 오래 걸렸지. 지방에서 올라오느라고.”

“지방에 살아?”

“응. 청주에서 작은 카페하고 있어.”

“카페...어울린다.”

 

나는 형이 카페를 열었다는 사실이 놀랍지 않았다. 일어날 일은 반드시 일어난다는 걸 몇 번에 거듭된 시간 여행을 통해 이미 알고 있었다. 형은 형에게 어울리는 새하얀 니트의 소맷단을 만지작거리다 머뭇거리듯 입을 열었다.

 

“남준이한테 들었어.”

“응.”

 

내가 죽으려고 했던 일이겠지. 나는 머쓱한 기분에 형의 눈을 제대로 쳐다보지 못했다. 손목을 감싼 붕대마저 부끄러워졌다.

 

“수술...했다며.”

“응.”

 

나는 형도 내 손목을 보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흉지면 어떡해.”

“괜찮아.”

 

형의 손목 위에 있었던 엷은 흰줄. 나는 그 흉터가 내게 옮겨와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당신이 가지고 있을 상처는 적을수록 좋았다. 그건 형이 두 번째 시간 여행으로 나를 찾아와 요리를 하다 손을 다쳤을 때 빌었던 소원이었다.

 

‘당신이 낫기를. 데인 상처뿐만 아니라 내가 안겨 준 눈물, 아픔까지 내가 다 거두어 갈 수 있기를. 심지어 아직 당신이 겪지 않은, 스물넷의 아픔도, 서른 살의 고됨도 내가 다 가져가기를.’

 

나의 소원이 하나는 이루어진 셈이었기에 나는 괜찮았다.

 

“네가 이러길 원했던 게 아니야. 난 그저 네가 잊고 행복하게 살길 바랐어.”

 

형의 말끝이 떨려왔다. 소맷단을 쥔 손에 힘을 잔뜩 주었는지 손톱이 하얗게 질려 있다.

 

형은 언제나 내가 슬퍼 보였다고 말했다. 형이 아는 나는 상실의 그늘에 반쯤 몸을 담그고 있는 사람이었다. 그건 내가 기억하는 예전의 형의 모습과 똑같아 나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하지만 당신은 알았을까? 형이 없는 삶은 행복과는 거리가 멀다는 것을.

 

“내가...내가 어떻게 잊어.”

“...”

“형은 잊었어?”

 

몇 번이나 시간을 뛰어넘어 나를 보러오면서 우리가 뭘 되돌리려고 했는지 잊었어? 뒷걸음질로 나를 떠나던 형은 모든 걸 다 잊었어?

 

우리의 시선이 오래 허공에서 부딪혔다. 다른 곳에 눈 돌리는 일없이 직선적인 시선은 부드럽고 따듯했다. 형이 입술을 달싹였다.

 

“아니.”

 

침묵은 깨졌다.

 

“한 번도 잊은 적 없었어.”

 

그 한마디를 내뱉은 후 형은 참았던 숨을 길게 몰아쉬었다. 나는 그것이 나와 헤어진 후 줄곧 형이 참아왔던 말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다음 순간 나도 모르게 말이 튀어 나갔다.

 

“형, 나랑 다시 만나.”

 

생각할 겨를도 없이, 어떤 미사여구도 없이 투박하게 나간 나의 솔직한 마음의 결정. 죽음에서 돌아온 당신은 내게 이별을 요구했지만, 나는 달랐다. 나는 형과의 재회를 바랐다.

 

그러나 형은 곧장 내 말에 대답하지 않고 형의 말을 이어나갔다.

 

“윤기야, 너 그거 알아? 넌 날 사랑한다고 말했지만, 언제나 네 눈은 내가 아닌 먼 곳을 보는 것 같았거든. 처음엔 이유를 몰랐는데, 그건 네가 상처를 주었던, 서른세 살의 김석진을 그리워했기 때문이었어. 지금의 나는 어때? 난 네가 알던 김석진과 다를지도 몰라.”

“서른세 살의 형이건, 마흔 살의 형이건 상관없어. 어떤 형이건 형을 사랑해.”

“만약에 다시 만나서 우리가 다시 힘들어지면? 일어날 일은 반드시 일어난다고...”

 

나는 형의 말을 끊었다.

 

“아직도 모르겠어? 일어날 일은 반드시 일어난다. 우린 이미 한번 이별했고, 다시 만나게 되어 있었어.”

 

삶의 전체적인 무게를 유지하기 위한 시간 스스로의 자정작용. 우리의 이별과 재회, 나의 회생이 그 증거였다.

 

“그러니까 김석진, 나랑 사귀자.”

 

나는 형의 손을 잡았다. 형의 보드라운 손이 움찔거렸지만, 나를 뿌리치지 않았다. 그리고 이내 손가락이 내 손을 감싸 쥐었다.

 

“그래, 우리 같이 있자. 윤기야.”

 

*

 

내가 퇴원하던 날 형이 병원에 나를 데리러 왔다. 형이 나의 옷가지를 챙기는 동안 나는 데스크에 가서 퇴원 수속을 밟았다.

 

“보호자 분이랑 같이 가시나요?”

“보호자요? 아, 네.”

 

보호자라는 말이 낯설었지만, 의례적인 질문이라는 생각에 얼떨결에 그렇다고 대답했다. 하지만 수납을 마치고 돌아서려던 차에 묘한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혹시 저 처음에 입원할 때 보호자가 있었나요?”

“잠시만요.”

 

원무과 직원이 키보드를 두들겼다.

 

“네, 김석진이라고 기재되어 있는데요.”

“그게 언제 기재된 거죠?”

“환자분 입원할 때 같이 오셔서 등록하신 것 같은데요.”

 

이상하다. 남준은 분명 형이 자신이 연락하기 전까지 이곳에 내가 있는 줄도 모른다고 했는데 어떻게 형의 이름이 보호자에 남아 있는 것일까.

 

“윤기야, 다 끝났어?”

 

형이 어느새 내 옆에 다가와 있었다.

 

“형, 혹시 나 처음에 입원할 때 병원 다녀갔었어?”

“아니?”

 

형은 완전히 모른다는 얼굴이었기에 나는 형이 나를 구해준 게 아니었냐고 묻지 못했다.

 

형은 나를 차에 태우고 청주에 있는 자신의 집으로 차를 몰았다.

 

“우리가 살던 데에 비하면 많이 작아. 실망할지도 몰라.”

 

형은 수줍게 웃었다. 나는 형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상관없었다. 내가 없었던 3년 동안 형이 어디서 어떻게 살았는지 나는 알고 싶었다.

 

“형 카페는?”

“알바한테 맡겼지.”

“잠깐 들러도 돼?”

“되긴 하는데, 왜?”

“그냥 궁금해서.”

 

나는 정말로 궁금했다. 그곳도 형의 손길이 닿아 형처럼 따듯한 느낌이 날지.

 

가는 길에 남준에게서 전화가 왔다. 남준은 퇴원일에 찾아오지 못한 것을 못내 미안해했다.

 

“미안해요. 퇴원하는데 못 가봐서.”

“괜찮아. 평일인데 오면 내가 오히려 미안하지. 그리고 석진이 형이 와줬고.”

“그래요. 다행이네.”

“근데 남준아, 너 나 병원에 있는 건 처음에 어떻게 알고 왔어?”

“병원에서 연락이 왔었어요. 형 입원해 있다고.”

“병원에서? 네 연락처를 어떻게 알고?”

“글쎄, 형 휴대폰 열어봤던 것 아닐까? 형 번호로 전화가 왔었거든.”

“락이 걸려있는 걸?”

 

남준의 말은 앞뒤가 맞지 않았다. 내 휴대폰 번호를 아는 건 형뿐이다. 병원에서 잠금을 풀 수 있었을 리 없고, 풀었다고 한들 가족이 아닌 남준에게 전화를 했을 리가 없다. 그렇다면 누가 어떻게 알고 남준에게 내가 입원한 것을 알렸단 말인가.

 

“윤기야, 왜 그래?”

 

나는 형에게 찜찜한 사실을 털어놓았다. 그러자 형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고 보니까 나도 좀 이상한 일이 있었어. 남준이한테서 너 죽을 뻔했다고 연락받기 하루 전에 문자를 하나 받았었거든. 앞뒤로 가타부타 아무 얘기도 없이 네가 입원한 병원 주소랑 병실 번호만 딱 적혀있는 거야. 그런데 보낸 연락처가 어디였는지 알아? 내 번호였어. 정말 이상하지?”

 

형은 빙긋 웃고는 다시 운전대 너머를 주시했다.

 

나는 아직 완전히 아물지 않은 손목에 붙여진 거즈를 보며, 생각에 잠겼다. 나를 구했던 형, 병실에서 나를 간호했던 형은 정말로 환상이었을까? 그렇다면 입원 당시에 보호자 성명에 기록되어 있던 형의 이름, 남준과 형이 받았던 연락들은 무엇일까? 그리고 무엇보다 생생했던 형의 온기.

 

갑자기 떠오른 생각에 심장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1. 과거에서 온 형은 나를 찾아와 두 번의 밤과 세 날을 머물다 간다.

 

왜 시간 여행이 과거에서 지금으로만 일어난다고 생각했지? 형이 스물여덟 살일 때의 시간 여행이 마지막이 아니었다면?

 

2. 형이 처음 이곳에 왔다 사라진 후로 하루가 지난 후 5년 후의 형이 찾아 왔다.

 

내가 자살 시도를 한 것은 스물여덟의 형이 돌아가고 하루가 지난 후였다. 그리고 형이 날 구하러 왔다. 아, 설마...

 

‘죽으면 안 돼, 윤기야.’

 

내 얼굴 위로 떨어지던 눈물. 순간 나는 입을 틀어막았다. 놀라운 사실을 깨닫자, 전율이 척추를 타고 흘렀다.

 

아, 나는 한번 죽었었구나.

 

현재에서 죽은 나를 되살리기 위해 미래의 형이 다시 한번 시간을 거슬러 내게 왔었던 것이다. 현재의 자신은 구할 수 없었지만, 미래의 자신은 구할 수 있었던 나. 오로지 못난 나 하나를 위하여...세월이 지나도 잊을 수 없었던 어리석은 연인을 위하여.

 

‘형은 언제나 내가 기억하는 것보다 더 나은 현재를 만들어왔어.’

 

나는 관람차 안에서 형에게 그렇게 말했었다. 이번에도 형은 나를 살리는 것으로 한 번 더 현재를 바꾸고, 나아가 미래를 바꾸었다. 나의 목숨, 우리의 만남. 나는 결코 갚을 수 없는 큰 빚을 미래의 형에게 졌다는 사실, 시간을 초월한 형의 마음에 가슴이 벅차올랐다.

 

“윤기야, 왜 그래?”

“형, 그거 알아? 형이 날 살린 거야.”

“뭐?”

 

자세한 얘기는 이다음에 5년 후의 당신을 만났을 때 말해 주기로 했다. 지금의 당신이 내가 죽었다는 얘기를 듣는다면 가슴 아파할 테니까.

 

“윤기야, 여기야.”

 

형은 동화처럼 아기자기한 카페 앞에서 차를 세웠다. 나는 형을 따라 들어갔다.

 

카페 안에 발을 들인 순간, 커다란 모네의 수련 그림이 눈에 들어왔다. 벽 한쪽을 꽉 채우고 있는 연못 위 수련 그림에 나는 눈을 뗄 줄 몰랐다.

 

“아, 저거 내가 산 거야. 어때? 잘 어울리는 것 같아?”

 

형이 그림 앞에 선 내 뒤로 다가왔다. 묘한 감정이 가슴 안에서 용솟음쳤다. 수면 아래 단단히 뿌리내린 수련. 나는 돌고 돌아 형에게 돌아온 것이었다. 형 곁에서 뿌리내리고 살기 위해. 깨달은 순간 참고 참았던 뜨거운 눈물이 눈에서 흘러넘쳤다. 이번엔 결코 헤어지는 일은 없을 것이다.

 

“윤기야, 울어? 왜 그래?”

 

말없이 우는 나를 형이 걱정스레 들여다보았다. 나는 눈물을 닦을 생각도 하지 못하고 웃었다.

 

“좋아서...좋아서 그래.”

 

형은 울면서도 웃는 내게 영문도 모르며 마주 웃어 주었다. 형의 미소를 본 순간 나는 길고 길었던 형의 시간 여행이 다 지금을 위한 것이었음을 깨달았다.

 

무해한 당신의 미소. 내가 보고 싶었던 것은 그거 하나뿐이었다.

 

나는 형의 손에 내 손을 얽었다.

 

“형, 다시 만나면, 같이 늙어가자고 형이 약속했던 거 기억해? 그거 이번엔 내가 약속할게.”

 

형의 시간 여행은 이제 일어나지 않을까? 모르겠다. 분명한 것은 내일의 당신도, 1년 후의 당신도, 그리고 먼 미래의 당신까지 이제부터 나는 천천히 만나러 갈 계획이라는 것. 우리의 두 번째 연애는 좀 더 길고, 마침표가 없을 것이므로.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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