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시작은 동정이란 감정에서 비롯된다.

카이는 어둠의 군주에 휘둘려서 사악한 길로 들어선 그녀를 그냥 두고 보지 못했으며, 결국 그녀의 함정에 빠져들었다. 어두운 동굴 들쭉 날쭉하게 자란 보랏빛의 크리스탈, 그리고 그 크리스탈에 몸이 박힌 카이와 그걸 지켜보는 그녀까지. 로이드가 봤으면, 어리석은 선택이라고 했을테지만 이런 꼴이 된 이상 뭐라 더 한소리 듣는다고 무엇이 달라질까.

어둠의 제왕으로부터 비롯된 이 크리스탈 동굴은 사악한 기운으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영롱하게 빛나는 크리스탈에 이런 끔찍한 힘이 들어 있다니. 힘에 미치지 않는 이상 제 정신으로는 오지 못할 장소였다. 그녀는 마치 화분에 심어둔 씨앗이 자라는 것을 보는 것처럼 날마다 이 동굴에 찾아왔다. 아마 그녀의 주인이자 어둠의 제왕인 군주로부터 그가 착실하게 어둠으로 물들었는지 보라고 명을 받은 것일까? 크리스탈에 꼬챙이 처럼 꾀여서 옴싹달싹하지 못하는 와중에도 그녀가 이곳에 자신을 보러 와준다는 것이 기뻤다.

그녀는 황실에서 정한 그린닌자의 약혼자였다. 사랑 따위 존재하지 않는 정략 결혼은 자유롭지 않은 황궁에서 그녀를 옭아매게 만들었으며, 그녀는 이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서 방법을 찾아다녔다. 어둠에 속하는 고대의 존재를 깨우는 건 그녀가 택한 마지막 방법이였다. 그녀는 데이트 했던 첫날부터 로이드의 마음 속에다가 고대의 존재가 깃드는 씨앗이 될 재료를 집어넣었다. 그것은 무럭 무럭 자라서 그의 몸을 장악했었고, 결혼식 당일 로이드의 몸을 장악하는데 성공했으며, 결혼식이 끝나기도 전에 로이드의 몸을 장악한 군주는 황실을 무너뜨리고 공주인 그녀를 납치했다.

닌자들에게 맡겨진 임무는 공주를 구하는 것이였다. 문제가 있다면, 그 고대를 막을 수 있는 유일한 존재는 그린닌자뿐이라는 것이였고, 그 그린닌자가 타락하여 모든 것을 저지르게 되었다는게 머리를 짚게 만드는 부분이였다. 닌자들은 갈라섰으며, 그중에서도 카이는 로이드와 공주 둘다 구해야한다는 입장이였다. 카이는 군주의 성에 도달해서 진실을 마주했으며, 그것은 너무나도 참혹했다. 공주는 돌아가기를 원치 않았고, 그린닌자는 차가운 눈으로 그를 내려다 보았으며, 로이드의 목소리로 건낸 제안은 끔찍했다. 

누구보다 더욱 강한 힘을 원하지 않아, 카이 형? 내가 줄 수 있어. 

그 말은 너무나 유혹적이고 강력해서, 카이는 저항할 수 없었다. 결국 그는 손을 내밀었고, 어둠이 그에게로 들어왔다. 군주의 부하로서의 삶은 썩 유쾌하지 않았다. 인간이 아니게 된 몸은 칼에 베이거나 다쳐도 금방 나았고, 인간으로서 가졌던 마음들은 빛이 바랬으며, 결과적으로 군주의 계획에 동참하는 형국이 되어버렸다. 처음엔 괴롭다고 생각했던 부분도 괴롭게 느껴지지 않았다. 그린닌자가 없는 닌자고는 균형이 무너졌으며, 그 무너짐 속에서 카이는 사악한 쪽을 택했을 뿐이였고, 그건 지배당하는 쪽이 아닌 지배하는 쪽에 가까웠다.

로이드 몽고메리 가마돈이 군주의 성에서 그의 심장에 자신의 에너지로 만들어낸 검을 꽃아넣었을때, 카이 안에 있던 어둠의 기운은 순식간에 사라져버렸다. 그러나 몇년간 어둠의 힘이 회복을 도와주었던 효과는 철저하게 그의 몸을 망가뜨렸으며, 그 당시 로이드의 에너지가 없었다면 카이는 아마 산송장이 되었을터였다. 군주를 처리한 후 로이드는 공주를 향해서 칼을 향했으며, 카이는 아픈 몸으로 그의 앞을 막아섰다. 

공주는 이용당한 것 뿐이야, 로이드. 그녀를 크립타리움에 가두는 것만으로도 충분해.

왜 그런 거짓말을 했을까. 카이는 공주가 로이드를 철저하게 이용했으며, 그것으로 인해서 로이드가 고통받았단 사실도 알고 있었지만 그걸 실제로 본 건 극히 소수였으며, 공주를 제외한다면 카이 외에 그것을 증언해줄 존재가 없었다. 순진하게도 로이드는 카이가 내민 말에 칼을 거두었으며, 그녀를 크립타리움에 가두는 것으로 약속했다. 그렇게 모든 게 바로잡히고 선이 승리한 세상은 평화로웠다. 

이번에 그 평화를 깨뜨린 건 그녀가 아닌 그였다. 카이는 최근 들어 이상한 꿈을 자주 꾸기 시작했고, 그것은 모두 그녀를 구하려다가 실패하는 내용이였다. 감옥에서 누군가에게 죽임을 당하는 그녀, 목이 옭죄여서 쓰러진 그녀, 약을 탄 음식에 독살당하는 그녀 등 꿈의 결과는 그녀의 죽음이였다. 그는 크립타리움에 향했고, 그녀가 그 안에서 무사한 걸 확인하고자했다. 그녀의 눈을 본 순간 카이는 깨달았다. 그녀를 이곳에서 구할 수 있는 사람은 자신밖에 없다고, 암시인지 아님 세뇌인지 모를 생각은 카이의 손에 불을 일으켰고, 달구어진 철창은 쉽게 구부러졌다. 그녀를 안고 달리면서, 모든 추적을 떨쳐내고 동굴까지 도달했다.

그녀의 말에 따르면, 고대의 존재는 그녀에게 선물을 주었다고 한다. 영웅이 잠에서 깨어나 그를 다시 봉인했을 때, 그녀가 다시 해제할 수 있는 보험용으로 어둠의 힘이 깃든 자수정 목걸이를 그녀에게 선물했고, 그것에는 그녀가 원하는 사람을 골라서 세뇌할 수 있는 기능이 있었다. 고대의 존재와 달리 그녀는 인간에 불과했기에 목걸이의 영향은 사람 한 명 분량이였다. 그녀는 고집스런 로이드 대신 카이를 선택했고, 모든게 끝났다고 생각할 때쯤 그 목걸이를 꺼내들어서 그를 소환했다. 그녀에게 동정을 느끼는 카이는 손쉬운 사냥감이나 다름없었고, 카이는 그녀의 거미줄에 찰싹 붙은 샘이었다.

새로운 옷은 맘에 들어? 레드닌자씨? 내가 특별히 고른거야. 정말 예쁘지 않아?  

그녀의 말처럼 카이가 새로이 입게 된 옷은 이전의 것과 달랐다. 크리스탈로 몸에 구멍이 뚫렸던 부분에는 장식마냥 피처럼 붉은 루비가 달려 있었고, 옷의 대부분은 보라와 회색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게다가 몸의 반을 덮은 망토에는 용이 새겨져 있었다. 황금빛 비늘을 가진 빨간 눈의 용, 그것의 의미는 분명했다. 고대의 존재는 자신을 담을 새로운 그릇을 원했고, 이제 그것은 로이드를 떠나 카이에게로 왔으며, 이제 카이에겐 거부할 권리가 없었다. 지금의 상태에서 인간으로 돌아가려 했다간 죽음을 맞을게 뻔했으니까. 그녀는 카이의 붉은 눈에 담긴 두려움을 보며 미소지으며 입을 맞추고는 말했다.

돌아온 걸 환영해, 나의 제왕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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