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상


비가 끄느름하게 내렸다. 상연은 낡은 나무 창틀 안에 갇힌 궂은 하늘이 마음에 들었다. 그래서 제가 머물고 있는 곳이 담임 교사를 비롯한 학생 주임등이 함께 사용하는 교무실이란 사실도 잊고 창쪽으로 몸을 느긋하니 기울였다. 

탁, 타닥. 

삭은 나무와 갈라진 페인트칠 틈새로 빗물이 튀어들었다. 그 낭만적인 감상을 순식간에 지운 것은 담임 교사인 윤선미였다. 드르륵 창을 닫은 선미는 곧바로 보란 듯이 상연의 맞은편 의자에 착석했다. 그녀는 지켜보는 눈들을 의식했기 때문인지 평소엔 하지 않던 일장연설을 해댔다. 

“고상연. 그래서, 공부 안 할거니? 이제 내년이면 3학년이야. 운동 그만둔 각오로 무슨 대책이라도 좀 세워야지.” 

아쉬운 듯 창틀로부터 느리게 몸을 거두어온 상연은 의자 깊숙이 몸을 밀어넣고 빙긋 미소지었다. 

“공부보다 더 재미있는건 많으니까요. 축구보다는 아니지만.” 

“얼굴믿고 까불지 너? 모델이나 연예인 같은거 생각하고 있는 건 아닐거라 믿어.” 

“그런 분야에는 관심 없어요. 명함을 받아보긴 했어도.” 

공 대신 쥐어볼 것이 없어 허전한 손끝의 거스러미나 튕기고 있는 반반한 낯의 무신경한 제자에게 선미는 슬슬 약이 오르고 있었다. 상연의 2학년 1학기 중간고사와 기말고사 성적을 훑어보던 선미가 말했다. 

“개근만 해도 서울로 대학 보내주신다는 아버지 말만 너무 믿고있는 거 아냐? 널 시험하고 계신 것일지도 모르는데.” 

선미의 말 그대로였다. 학생은 단지 수능과 내신 성적으로만 대학을 갈 수 있는게 아니었다. 방법은 여러 가지였다. 상연은 아버지덕에 이를 아주 잘 깨우쳤으나 아버지의 사회적 지위나 부유함, 정재계와 예술계를 아우르는 인맥따위는 관심없었다. 

“집중 안해? 너 오늘 선생님 앞에서 각서 제대로 쓰고 가. 나도 윤 감독님 볼 낯은 있어야 하니까.” 

축구 감독 윤마준은 상연의 은사였다. 그는 상연이 아버지의 고집을 이기게 만든 유일한 사람이었다. 상연이 축구 유니폼을 입고 잔디 위를 누비게 된 것은 8할이 윤 감독의 덕분이었다. 고상연은 그사람 하나 보고 축구 명문 구단이 위치한 기름군으로 진학해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거쳐 선수가 되기를 꿈꾸었다. 안타깝게도 작년 이맘때쯤, 교통사고로 허벅지 근육이 파열돼 꿈을 접게 되었지만. 

윤마준은 상연의 부모보다 상연을 정성껏 돌보았고 상연은 평생 다리를 절어야 할지도 모른단 압박과 좌절에 시달렸다. 악몽과 불안이 몸과 마음을 파고들었다. 생명줄을 붙잡는 기분으로 재활에 매진해 기적처럼 걷게 된 것 만으로 감사하며 살아가기로 어렵게 마음 먹었다. 아버지는 내색 않으셨지만 내심 상연이 축구를 그만둔 게 마음에 드는 눈치였다. 

검지로 테이블만 여유로이 톡톡 두들기던 상연이 미소를 머금은채로 장난스레 말을 돌렸다. 

“다음 교시 수업이시죠? 선생님 신혼여행 다녀오신거, 애들이 엄청 궁금해해요.” 

10분은 까먹고 들어가야할 수업시간 때문에 선미는 결국 한숨을 폭 내쉬었다. 상연은 여전히 능청스레 빙글거렸다. 

석민과 한울을 본 아래 학년 학생들이 허리 깊숙하게 인사하고 지나쳐갔다. 공부를 꽤나 열심히 하는지 녀석들의 가방은 몸집보다 두툼했다. 녀석들은 하교길 먼곳에서부터 상연만을 목적으로 정해 다가온 것이었지만 정작 인사의 수신자가 되어야 할 사람은 휴대폰만 만지작거리고는 녀석들에게 관심조차 없었다. 

조금 뒤에는 유니폼을 입고 운동장을 돌던 건장한 선수들이 단체로 뛰어와 열을 맞춘채 상연를 향해 우렁차게 인사했다. 스탠드 아래에 숨어 모른척 하려던 상연이 손가락만 대충 까닥이자 석민과 한울은 덩달아 인사를 받으며 흡족해했다. 

“군기 바짝 들었네, 새끼들.” 

“상연이가 저 사이에서 목발 짚고 다니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엊그제 맞으니까 빙신아. 평생 휠체어 밀어줄 수도 있다고 충성을 맹세했던 나도 있었다. 넌 뭐를 처 기록한다고 맨날 카메라만 들고 팔랑팔랑 뛰어다녔지. 그딴건 단편 영화로도 못 만들어.” 

“야! 혹시 알아? 고상연 팬들이 다 보러와서 조회수 많아져서 다음편 계속 찍게될지.” 

상연은 한울과 석민의 대화따윈 듣는 척도 않았다. 

“아무튼 천만 다행이야. 차라리 잘됐어. 이 새끼 슬럼프 올 때마다 짜증 받아주기도 지쳤었는데 오히려 축구 그만두고 푹 쉬니까 사람이 좀 온순해지고 훨 낫네.” 

“그럼 뭐하냐? 허구한 날 얘 불러내는 놈들 투성인데. 연합인지 뭔지 그 새끼들이랑 언제까지 어울릴거냐?” 

한울이 공연히 상연의 눈치를 보며 투덜거리자 상연이 귀찮다는 듯이 대답했다. 

“어울린적 없어.” 

석민은 운동장위에서 뻥뻥 걷어차여 허공을 가르는 축구공을 보며 홀로 중얼거렸다. 

“에이스라고 맨날 경기 나가면 태클받이 하는 것도 보기 안쓰러웠지.” 

주장으로 보이는 놈만 고군분투하고 나머지 놈들은 초짜도 아닌 것들이 마치 축구 처음하는 것마냥 어리바리였다. 그제서야 상연이 석민과 한울의 대화를 끊었다. 

“시끄러워 너희.” 

상연의 휴대폰을 붙잡아 빼앗은 한울이 물었다. 

“야, 근데 오늘 피방 감? 사장이 손님 없다고 친구들 데려오면 서비스 많이 준댔는데.” 

“어디? 그 이번에 주인 바뀐 4단지 건너 꼭대기 피씨방?” 

“이응.” 

“난 약속있는데.” 

상연이 휴대폰을 바지 주머니에 집어넣는 사이에도 한울과 석민의 공방은 계속되었다. 

“근데 난 거기 이상하게 정이 안 가. 몇 번 안 가봤지만 갈 때마다 뭔가 좀 음침하고 마음에 안들어.” 

“너 같은 쫄보 새끼 마음에 들만한 곳이 이세상 어디엔들 있을 리가.” 

“뭐 이 새꺄? 너 말 다했냐?” 

두놈들 사이에 의견취합이란게 가능할리 없었다. 상연이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졸업도 멀었는데 언제까지 이런 꼴통들과 같이 학교생활을 해야할는지 몰라 앞날이 까마득해졌다. 석민이 막 목소리를 냈을 때였다. 

“야, 근데 거기 엘리베이터가 새벽 1시만 되면 막 지가 혼자…….” 

쿵, 하는 굉음이 들리고는 하교길 얼마 남지 않은 학생들의 이목이 어디론가 집중되었다. 물론, 석민과 한울의 시선도 마찬가지였다. 곧 녀석들의 입에서 탄식이 새어나왔다. 

“아이고, 아이고. 야단났다.” 

“앞은 보이나? 최소 뇌진탕각인데.” 

“안 보이니까 저 지랄을 하지, 보이면 저러겠냐.” 

멀리 주차장 쪽에서 어떤 놈이 어디에 정신을 팔았는지 벽에 부딪히고선 휘청이며 이마를 벅벅 문지른다. 재미있는 건 충격으로 뭔가를 떨어트린 모양인지 바닥을 더듬거리는 뒷모습이었다. 그 모습을 홀린 듯 바라보던 석민이 중얼거렸다. 

“저거 돌머리 아니냐. 무슨 박 터지는 소리가 나는게 보통 돌머리가 아닌가본데….” 

아버지 옷을 빌려 입은듯한 커다란 교복 사이즈는 차치하고 제 몸을 추스르기에 앞서 뒤집어 쓰기 바쁜 두꺼운 안경이 눈에 띄었다. 상연이 처음으로 휴대폰 액정이 아닌 다른 무언가에 관심을 보이자 한울이 상연을 바라보며 말했다. 

“쟤도 고생길이 훤하다 어째.” 

남색이어야 할 교복 바지는 자주색이었고, 회색이어야 할 춘추복 셔츠는 주황색이었다. 기름고등학교 교복이 아니었다. 

“뭐야? 남의 학교에서.” 

상연이 혼잣말처럼 중얼거리자 한울이 답했다. 

“전학생이시란다.” 

석민은 자신과 비슷한 처지의 놈을 어쩐지 측은한 눈으로 내려다 보며 말했다. 

“뭐래. 사고 쳤나? 이런 변두리까지 전학오고. 애지간히 공부하고 거리가 먼 놈인 것만은 확실하네.” 

상연은 복층 빌라에서 홀로 지내고 있었다. 4인 가족 기준으로 설계된 공간이라 혼자 지내기에는 불필요할 정도로 넓었지만 상연에겐 이것도 비좁게 느껴졌다. 그 때문인지 종종 이 공간을 노리고 상연에게 뇌물을 바쳐오는 놈들도 있었으나 언젠가 한번 데인 일 때문에 상연의 공간엔 누구도 침입할 수 없게 되었다. 

그나마 종종 데리고 오는 놈들이라고는 석민과 한울 정도였다. 가끔 담임인 선미가 상연이 학교에서 보이지 않을 때 찾아 오는 것을 빼고는 이곳에 들를만한 이는 없었다. 

비가 와서 그런지 여느때보다 두통이 더욱 심했다. 관자놀이 통증은 곧장 안구의 욱신거림으로 이어졌고 상연은 축축해진 교복을 벗어 던진 뒤 맨몸으로 침대에 널브러지고 말았다. 

“샤워해야 하는데….” 

기절하듯 얼만큼이나 잤을까, 쉼없이 조잘 거리는 소리에 방해받은 수면은 고작 삼십분을 넘기지 못했다. 

“야, 조용히 해.” 

잠에 잠긴 상연의 목소리가 냉랭했다. 피씨방에 간다던 한울과 석민은 언제부터였는지 상연의 집에 눌러앉아있었다. 비바람이 심해져 돌아다니기 귀찮았던 모양이다. 상연의 집에는 PC방 뺨치는 고성능 PC가 몇 대 들어차 있는 방이 있는데 그곳이 곧 놈들의 아지트였다. 하지만 한울과 석민은 상연이 늘 불면에 시달리는 점을 알아 이곳에선 꼭 방문을 닫아두고 조용히 게임을 하곤 했다. 

‘이렇게 시끄러울 리가 없는데.’ 

하지만 오늘은 달랐다. 도대체 몇명을 허락도 없이 데리고 고 온 것인지 웅성이고 떠드는 소리 때문에 도저히 잠을 이을 수가 없었다. 상연은 비틀거리며 방에서 나와 난간에 섰다. 비죽 열린 방문 틈으로 싯푸른 빛이 새어나오고 있었다. 상연은 아래층에 대고 쿠션을 거칠게 투척했다. 

“너희들 조용히 좀 하라고. 평소엔 쥐죽은 듯이 잘만 놀던 새끼들이 오늘따라 왜 이래?” 

그러자 우글거리는듯한 소음이 갑자기 훅 줄어 잠잠해졌다. 상연은 지끈대는 머리를 짚으며 도로 침대에 누웠다. 몸이 침대 깊이 빨려 들어갈 듯이 어지러웠다. 

“석민아. 나 약좀.” 

상연은 침대에 드러누워 바짝 마른 입술만 달싹였다. 

“야 윤석민.” 

맥없는 목소리는 넓은 집안의 정적과 뒤얽혔다. 

“정한울, 나 약좀 가져다 주라고. 머리 아파 뒈질 것 같아.” 

주먹으로 침대를 쾅쾅 두들기며 하소연처럼 소리를 내뱉은 상연은 귓가로 스미는 웅성임 때문에 예민한 신경을 곤두세웠다. 

‘아파?’ 

‘많이 아파?’ 

‘피를 좀 봐야하는데.’

‘이번엔 조금으로 안 될 걸.’ 

상연은 기분나쁜 짜증이 치밀어 머릿골이 더욱 크게 울리는 것을 느끼곤 머리카락을 손안에 쥐어 싸맸다. 그러자 마치 침대와 몸뚱이가 하나가 된듯 빙글뱅글 돌기 시작했다. 마치 술에 취한것처럼, 혹은 숙취에 시달리는 것처럼 상연은 고통에 뒤척거렸다. 자고 일어나면 저 뺀질거리는 두새끼와 남의 집을 함부로 드나드는 나머지 놈들을 절대로 가만히 두지 않을테다. 남의 집에서 취식할 거면 최소한의 노동이라도 하란 말이다. 

‘오래 버티네.’ 

이번엔 웃음 섞인 목소리가 상연을 놀리듯 귓가에 바람을 불어넣었다. 상연은 무언가에 찔린것처럼 몸을 움찔거리며 눈을 떴다. 엎어진 자세가 불편해 정신을 차려보니 등 위에 무언가가 꾹 눌러타 앉아있다. 육중한 무게만큼이나 허리가 욱신거렸다. 

한울과 석민, 둘중 어느 놈인지 알 수 없었다. 놈들은 상연보다 키도 작고 체형도 왜소한 편이었기 때문이다. 상연의 등뒤로 얹힌 무게는 물먹은 솜처럼 점점 더해져만 갔다. 상연은 이를 갈며 말했다. 

“너. 내가 여기서 내려가기만 하면 가만히 안 둘거…….” 

이대로 침대 깊숙이 파묻혀 버릴것만 같았다. 침대가 무너지지 않는 것이 용할정도였다. 등줄기와 목이 금세 식은땀으로 흠뻑 젖었다. 상연이 그제서야 사태의 심각성을 알고 손을 뻗었다. 휴대폰까지는 손이 닿질 않았다. 꿈인지 가위인지 분간이 가질 않았다. 젖먹던 힘을 쥐어짜듯 발버둥쳐 침대 아래로 신체의 일부가 탈출하게 되었다. 공교롭게도 고개가 아래로 쑥 꺼지는 바람에 침대 아래에 웅크리고 있던 누군가와 눈을 마주했다. 

“!” 

쿵, 바닥에 떨어져 머리를 박은 상연은 눈을 질끈 감았다. 시커멓고 둥그런 존재가 침대 아래에 모로누워 허연 눈만 빛내고 있었다. 동공이 없는 흰 눈알이 상연을 의식했는지 도록거리며 바삐 도는 것이 느껴졌다. 통증을 삭히려 머리를 벅벅 문댄 뒤 다시 눈을 떠보니 이번엔 눈 앞에 아무것도 없었다. 

심장이 쿵쾅대고 멋대로 뛰기 시작했다. 불에 덴 듯 몸을 일으켜 주변을 둘러보니 창을 때리는 빗소리 뿐이다. 상우는 당장 복도로 뛰쳐나가 계단을 밟았다. 녀석들에게 지금 컴퓨터 게임이나 할 때가 아니란 걸 알려야했다. 

“야, 너희들 나와봐. 지금 이럴때가 아니야.” 

헤드셋을 끼우고 노는 중인지 1층의 컴퓨터 방문 앞은 조용했다. 분명 시끄러운 소음과 빛이 새어나오고 있었다고 생각했는데 이상하게도 아무런 인기척도 느껴지지 않았다.

“장난 치지 마라.” 

상연은 마른침을 삼키며 천천히 문고리를 잡아 방문을 열어보았다. 미미한 소음을 내며 어둠으로 가득한 실내를 빼꼼히 보여줄 뿐이었다. 본체가 돌아가는 소리조차 나지 않았다. 애초부터 누군가가 머물렀던 흔적따위는 없었다. 상연이 마지막으로 정리해둔채 나왔던 모습 그대로였다.

“제길….”

상연은 마른세수를 하며 땀을 훔쳤다. 이젠 하교길에 함께 내려왔던 한울과 민석이 정말 실체였는지조차 판단되지 않았다. 

상연은 다시 기억을 더듬었다. 시야도 선명해져 방금 전 침대 위에서 겪은 일이 가위였다는 사실만이 더욱 더 또렷해질 뿐이었다. 숨을 고르며 침대 아래에 있던 것의 형태를 기억으로 더듬어 보았다. 허옇게 부릅 뜬 두 눈알밖엔 떠오르는 것이 없었다. 

날이 갈수록 이러한 불편한 상황이 찾아오는 일이 잦아지고 있었다. 오늘은 대체 언제, 어디서부터 감겼는지조차 가늠되질 않았다. 상연은 자신을 죽일듯이 눌렀던 2층의 방으로 다시 올라가기 찜찜해 그대로 거실 바닥에 쓰러져 내렸다. 오늘따라 비 현실적으로 넓어보이는 이 공간이 마치 낯선 세계인 것마냥 공허하게 느껴졌다. 

지잉- 

그대로 거실 바닥에 뻗어버린 상연의 휴대폰에 착신이 들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하교길, 학교 운동장에서 본 멍청한 전학생이 갑자기 떠올렸다. 우스꽝스러운 꼴을 보고는 아무생각 없이 비웃었는데 그에 비하자니, 

‘나도 다를 바 없잖아.’ 

상연은 스스로에게 빈정거리며 삽시간에 쏟아지는 잠을 맞이했다. 

징- 

지잉- 

어느 방에서 울리고 있는지 모를 진동소리가 자장가처럼 들려왔다. 꿈에서는 가지런히 정리된 논과 밭이 보였다. 황금빛으로 익어가는 벼, 길가로 우거진 푸른 나무들이 스스 거리며 한참을 울었다. 낮이었다가 밤이된 풍경이 보였다. 어느새 상연은 스산한 대나무 밭 아래 혼자 서있었다.

상연은 아버지가 지정한 병원으로만 원정을 다녀야 했다. 집에서 두시간이 넘는 거리를 건장한 보호자들에게 딸려서 오가는 일이란 하등의 보람도 없었다. 드라이브 이상도 그 이하의 것도 아니었다. 수족처럼 부릴 수 있는 사람들은 많았지만 그들의 삼엄한 보호 속에서 상연은 줄곧 외로웠다. 아무런 소득도 없이 그저 얼굴도장만 찍으러 병원 신세를 지는 것이 지겨웠다. 

‘그런게 보이기 시작했던 게 구체적으로 언제부터였는지 혹시 기억은 나나요?’ 

‘교통사고 이후부턴가요? 아니면, 그 이전부터?’ 

‘꿈에서만 보이는 거라고 생각합니까, 실존 한다고 믿습니까?’ 

‘최근, 학교에서 가장 재미있었던 일은요?’ 

영혼 없이 기나긴 상담을 마치고 돌아 나오는 길에는 신물이 넘어올 정도였다. 의사는 늘 아무것도 모르는 듯한 얼굴로 다 안다는 듯 고개를 주억이곤 했다. 그래, 어쩌면 그는 다 알고있을지도 모른다. 아버지가 바라마지 않는 정상적인 아들이 되기위해 위해 늘 거짓을 꾸며 답하는 인생을 살고있는 상연을. 

진료를 마치고 나온 상연은 기분 나쁠정도로 찬란한 햇빛에 눈살을 찌푸렸다. 주머니에서 담뱃갑을 찾다가 몇걸음 떨어진 곳에서 들리는 목소리에 귀기울였다. 

“식사는 어떻게 할까요.” 

그는 상연을 보필한 운전기사의 곁에 앉아있던 또다른 경호원이었다. 상연이 늘 조수석에 앉는 그의 곁에 다가가 휴대폰을 낚아챈 것은 순식간이었다. 

“내 식사를 왜 아버지한테 물어요?” 

상연을 내려다보는 그의 눈에 잠시 짜증이 들러붙었지만 금세 사라졌다. 

“죄송합니다.” 

하나도 미안하지 않은 얼굴로 그저 맡은 일을 감내하고 있는 그들의 행동이 역겨웠다. 상연은 아직 끊기지 않은 그의 휴대폰에 입술을 가져다 대고 말했다. 

“난 굶어요. 당신 같은 거구들이 줄줄이 소시지처럼 딸려와서 내곁에 얼쩡거리는 이상은.” 

남자의 눈썹이 조금 꾸물거린듯한 기분이 들었다. 상연은 휴대폰을 그에게 성의없이 던지고는 주머니에 손을 꽂은채 느긋하게 돌아 걸었다. 

“수업 중간에 들어와도 선생이 반겨주고, 그저 학교에 나와주는 것만으로도 좋아해주고. 조금 늦게 나와도 용건이 있으니까? 패스.” 

한울이 부럽고 아니꼬운 듯 상연을 바라보며 말했다. 상연은 일부러 다른쪽을 보며 딴청을 피웠다. 오전에 하지 못했던 끽연을 마저 이루고 싶었지만 교내에선 참기로 마음먹은지 오래라 그럴 순 없었다. 그대신 막대사탕을 하나 씹어 물었다. 입 안이 심심할 때마다 의미없이 하는 짓이었다. 그때, 휴대폰에 코를 박고있던 석민이 갑자기 초췌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야 너네 거기 피방 절대로 가지마라. 진짜 절대 절, 대로. 네버. 내가 가지 말라고 분명히 경고했다.” 

한울과 상연의 시선이 석민을 향했다. 석민은 누군가와 메시지를 나누는지 여전히 휴대폰에서 눈을 떼지 않고 말을 이었다. 

“니들 내말 안듣고 그런 데 쏘다녔다가 뭔일 나면 진짜 난 책임 안져.” 

한울은 그런 석민을 한심하단 듯이 바라보며 답했다. 

“그 이상한 피씨방에 어제 하루종일 가자고 조른 놈이 바로 너야.” 

“아 그건! 우종이랑 윤식이랑 내기를 했으니까 어쩔 수 없이….” 

“사람들이 안 다니는덴 이유가 있다니까? 너도 입만 놀리지말고 대세를 따라, 알았냐? 깝치지 말고.” 

머리를 벅벅 긁어대며 무슨 말을 하려다 입을 다무는 석민에게 한울이 연신 잔소리를 퍼부었다. 

“하여튼 그딴 이상한 괴담이나 신봉하고 이상한 놈들이랑 어울려 폐가 체험이나 다니니까 네 머리가 점점 더 이상해지는 거 아냐, 새꺄.” 

석민은 이상하게 설득당할뻔 했다가 황급하게 정신을 차렸다. 더 이상 가만있을 순 없었다. 어느새 머리채 싸움으로 번진 둘을 한심하게 바라보던 상연이 혀로 사탕을 굴리다 건성으로 물음을 던졌다. 

“너희 혹시 어제 집에 왔었어?” 

먼지가 흩날리도록 신경전을 벌이던 둘은 움직임을 멈추고 상연을 바라봤다. 상연에게 박아두었던 시선을 떼 서로 마주본 둘은 각자 선명하게 남아있는 전날의 기억을 더듬었다. 

“네가 혼자있고 싶다면서 우리 따시켜놓곤.” 

한울이 말하자 석민은 한울의 옷깃을 쥐었던 손을 빼 털고는 상연에게로 돌아섰다. 

“그래, 고상연. 너 바쁜척 좀 작작해. 그래봐야 너도 이제 스포츠 스타가 아니라 보충학원이나 다녀야할 신세라고. 현실을 빨리 받아들여, 모가지에 힘좀 빼.” 

제게 목을 졸라오는 석민을 본체만체한 상연은 몇분 남지 않은 쉬는 시간을 가로질러 교실 밖으로 향했다. 겉보기엔 보통의 학우들과 같은 모습이었지만 교복 안에 받쳐입은 셔츠나 가디건, 양말에 시계까지 명품인 상연의 양태가 석민은 그저 부럽기만 했다. 단지 한울만이 평소와 조금 달라진 상연의 기류를 의심하고 있었다. 

상연의 낌새가 이상하면 한울은 곧장 짐을 싸들고 그날밤 상연의 집으로 향한다. 묵시적인 룰이었다. 그러면 석민이 따라오는 것은 거의 덤이었다. 시끄러운 두놈은 밤새도록 상연의 집안을 휘젓고 다닌 뒤 지쳐서 아무곳에나 구겨져 잠들었고 상연은 그틈 어딘가에 대충 뻗었다. 그러고 난 다음 날이면 상연은 비교적 몸이 가벼웠다. 그래서 따분한 학교에 갇혀있어도 견딜만 했다. 

“야, 담임이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아. 첫부임에 첫제자들이라고 특별하대지? 자긴 열려있다고 하지? 개헛소리. 첫 교직에서 만난 애들한테 얼마나 깐깐하게 굴겠냐고. 지금이 아주 제일 의욕 넘칠 때 아냐.” 

한울과 석민은 오늘도 심심찮은 대화중이었다. 

“그래서 뭔 핑계를 댈건데? 학교가 아무리 꼴통이라도 수업시간에 무단 이탈한 새끼들 저번에 어떻게 되는지 봤지. 까짓게 네가 반에서 몇등이나 한다고 마음대로 수업을 째?” 

“내가 넌 줄 아냐? 난 너처럼 어설프게 안 하지. 미정이를 포기할 순 없으니까.” 

“미란이거든?” 

석민은 다른 학교에 다니는 상연의 친구들이 모였을 때 딱 한번 만났던 미란을 몇달째 잊지 못하고 있었다. 해서, 오늘은 그녀의 학교에 찾아가 보기로 마음먹었다. 

“근데 야, 어쩌지? 애들이 지난주부터 고상연 데려오라고 난리를 치길래 일단 알았다고 큰소리 쳐놓긴 했는데말야. 저새낄 어떻게 데려가냐, 것도 여고 축제에?” 

상연은 자신의 옆에서 남얘기하듯 직접적으로 속삭이는 석민에게 모기만도 못한 취급을 날렸다. 손바닥을 펴 벌레를 쫓듯 하더니 결국엔 새끼 손가락으로 귓구멍을 후볐다.

안 그렇게 생겨서 상연은 운동 이외의 것들에는 별로 관심이 없었다. 외형적으로 타고난 인상이나 건방져보이는 눈빛 때문에 성실함과는 거리가 먼 탈선아로 오해받기도 했으나 실상은 달랐다. 상연만큼 맡은 일에 미련할 정도로 착실한 녀석은 없었다. 

석민이 발끈하려던 순간, 복도 어딘가에서 유리창이 찢어져 와르르 쏟아지는 소리가 들렸다. 인파와 관심이 그쪽으로 쏠린 것은 순식간이었다. 

“어? 야, 들었냐고. 그러니까 잠깐만 벗어. 입고 돌려 준대잖아.” 

떡대와 멀대들이 바닥에 쓰러져있는 놈 하나를 에워싸고 있었다. 누군진 몰라도 오늘 아주 제대로 걸린 듯 싶었다. 

“아니 이런 쓰레기 같은 옷 가져다가 팔아서 내가 뭐 장사라도 하려고 이러는 거겠어? 누가 사 이런 그지 같은 옷을? 잠깐만 빌려달라는데 뭐가 이렇게 어려워? 응?” 

“후줄근 해서 냄새나는 그 셔츠 말고, 자켓만 좀 벗어보라고 엉?” 

“야, 야, 안 들려? 가는귀 먹었냐?” 

놈들은 널브러진 녀석에게 발을 가져다대고 있었다. 놈을 밟다가 뺨을 치는가 하면, 어깨를 강하게 밀어 넘어뜨리기까지 했다. 밀쳐져 바닥에 뒤통수를 박은 녀석은 눈을 홉뜨고 말했다. 

“안돼. 안된다고 몇 번을 말하게 하는거야.” 

제법 저돌적이고, 사나운 눈빛이었다. 그를 바라보던 상연의 눈이 가늘어졌다. 

‘지금 자길 밟고있는 놈들이 누군지도 모르는 건가.’ 

그렇다면 훨씬 더 흥미로운 상황이었다. 분위기를 압도하던 등치놈이 바닥에 쓰러진 놈의 어깨를 더욱 짓누르며 말을 이었다. 

“그러기에 전학을 올 거였으면 옷부터 제대로 갖춰입고 왔었어야지, 한심아. 사이즈도 번지수도 안맞는 이깟 그지 같은 옷, 내가 쏠쏠하게 처리해 주겠다는데 대체 뭐가 문제야? 고맙습니다 해야지.” 

“싫어.” 

비겁하게 일대 다수로 이어지는 대치상황이었다. 수세에 몰린 놈은 바닥에 비벼지는 중이었으나 기세만큼은 만만하지 않았다. 

“새꺄 너지금 나한테 개겨? 씨발, 소름끼치게 아까부터 얼굴색 하나 안변하고 계속 똑같은 표정으로 똑같은 말만하네 재미없게스리.” 

놈들은 이 근방의 학교들을 죄다 주름잡는 문제아들이었다. 선생과 부모들마저 포기했다는 유명인사들이었으나 상연의 눈엔 그저 비전없는 한심한 놈들로밖엔 안보였다. 건장한 다리들 틈새로 바닥에 널브러진 인사의 차림새가 식별됐을때 상연은 곧 주먹을 휘두르기 일보 직전인 놈의 어깨를 붙잡아 돌리고있었다. 

“김재식, 뭐가 그렇게 재미없어? 나도 좀 같이 재미없자.” 

웬놈이 끼어들었는지 당장에 해치워버릴 것 같은 표정으로 험악하게 돌아보던 재식이 상대를 확인하고는 멈칫거리며 태도를 바꾸었다. 

“꺼져, 이번엔 나한테 또 뭘 뜯어내려구? 잘 사는 새끼들이 더 지랄 맞다니까.” 

“…….” 

“눈웃음 실실 치지마, 이 개새야. 맨날 쪼개면서 아주 껍데기 하나까지 다 벗겨먹으려들어. 너 꼭 대머리 돼라? 공짜 좋아하는 새끼들은 스무살 되기전에 머리가 다 벗겨져야해.” 

마침 가까운 곳에 있는 화장실 벽거울을 바라보며 앞머리부터 옆머리를 대충 쓸어넘긴 상연이 자신의 양빰을 차례로 쓸어내리며 말했다. 

“그깟 머리털 정도는 뭐, 없어도 괜찮을 것 같지 않아?” 

“씨발.” 

“근데, 애는 왜 패고그래?” 

“니네 반 애라고 편드는 거냐? 안하던짓 하지마라 인마.” 

상연은 곁눈질로 눈앞에 아직 일어날 기미조차 보이지 않는 놈을 흘긋 바라봤다. 곁으로 쏟아진 유리파편은 마치 놈을 처량하게 보이려는 소품 장치 같아 보이기까지했다. 전학 온 지 얼마 되지 않아 다른 학교의 교복을 입고있는 놈. 앞이 식별되는지 매우 궁금할 정도로 기괴한 안경을 쓴 애. 덕분에 멀쩡하게 걷지도 못하고 벽에다 맥없이 이마를 박아대던 그 멍충한 놈이었다. 

미안하게 됐지만 놈과 같은 반이고 언제나 함께 수업을 듣고있었단 사실을 상연은 이제야 인식했다. 존재감이 없던 것도 그랬거니와 놈은 전학생 주제에 수업시간에 착실히 수업을 듣는 편도 아니었으니까. 도수가 가늠 되지 않을 정도로 두꺼운 안경알이 박힌 뿔테는 누가보아도 모범생의 그것인 걸로 미루어보았을때 역시 사람은 다면적이란 데까지 생각이 미쳤다. 그 사이 재식이 상연의 어깨를 붙잡아 제게로 시선을 돌렸다. 

“야, 니가 봐도 답없지? 이런 새낀.” 

상연은 재식이 험담하고 있는 괴짜 같은 녀석과 잠시 눈을 맞추었다. 안경알에 가리워진 눈동자는 단추만해서 무슨 생각을 하고있는지도 알 수가 없었다. 재식이 한술 더 뜨기 시작했다. 

“근데, 넌 윤선미한테 공로패 받아야겠다? 걍 운동 때려치운 백수새끼가 왜 갑자기 교내 일에 관심이야? 조용히 수업일수나 때우겠다면서.” 

상연은 알랑거리는 놈을 더는 봐줄 수가 없었다. 

“네가 먼저 이상한 기강을 잡으려고 하잖아. 어울리지도 않게 헛발질이나 하면서.” 

“어울리지도 않게? 너 이새끼…… 포지션잃은 퇴장선수 주제에. 옛정이 있어서 좋게 좋게 넘어가주려니까.” 

갑자기 어깨를 풀며 목뼈를 움직여 두둑거린 재식이 몸을 비틀자 정적과 함께 분위기가 싸해졌다. 주변에 서서 낄낄거리던 놈들은 잠시 웃음을 지우고 상연의 눈치를 살폈다. 그러나 상연은 안색하나 변하지 않고 지루하단 듯이 턱을 처들며 말했다. 

“자꾸 말귀를 못알아 듣는 것 같은데, 한번만 다시 말할테니까 잘들어. 학교는 옷장사 하는 곳이 아니니까 남의 옷을 가지고 네 마음대로 벗어라 마라….” 

재식과 상연의 사이가 코끝이 맞닿기 직전까지 가까워졌을 때였다. 

“야 이 새끼들아 뭣들 해 종 쳤잖아!” 

카랑카랑한 목소리 덕에 득음했다는 루머가 있는 1반의 담임 명창남이 복도를 지나가다 이쪽 상황에 관심을 보였다. 일촉즉발의 상황을 정리해준 은인이라 해야할지, 방해꾼이라 해야할지. 구경꾼들이 아쉬운 표정을 하고는 빼꼼거리던 현장에서 고개와 몸을 돌려 우르르 사라졌다. 

재식은 이번뿐이란 얼굴로 상연의 어깨를 툭툭 두들긴 뒤 사라졌다. 석민이 가슴을 쓸어내리며 쪼르르 달려가 상연의 교복 셔츠를 잡아당겨 펴주었다. 

“시발, 나 또 뭔일 나는 줄 알고.” 

아무리 도발해도 걸려 넘어지는 부분이 없는 고상연의 성격이 존경스럽기도 했지만, 한울은 불면과 신경과민으로 물든 상연의 숱한 밤들을 알고있었기에 제 성격을 죽이고 사는 상연이 그저 대견스러울 뿐이었다. 양친의 각기 새로운 가정을 깨고싶지 않아 많은 것을 포기한 채 살고 있는 상연이 불쌍하기도, 불안하기도 했다. 한울은 상연을 챙기는 대신 바닥에서 비척비척 몸을 일으키다 안경부터 고쳐쓰고 있는 전학생에게 손을 내밀었다. 

“야. 괜찮냐? 사실 아까부터 보고있었는데 너 응댕이 몇 대 걷어 차이드만?” 

석민 또한 한울을 따라 전학생에게 한소릴 했다. 

“얘니깐 너 구해준 줄 알어. 그러게 왜 이런 학교로 전학을 와선…. 저렇게 생 난리를 치고다니는 것들하고 엮이면 피곤하니까 성깔좀 줄이든가.” 

상연이 성큼 다가가 전학생의 팔을 붙잡아 일으켰다. 그런 뒤엔 옷을 털어주고 이름표를 확인했다. 

[박우수] 

‘특이한 이름이네.’ 

일으켜진 녀석은 상연의 시선을 따라가다 상연의 팔을 세차게 뿌리쳤다. 하지만 상연은 아랑곳 않고 학대 당한 동물 대하듯 전학생에게 물었다. 

“근데 그 안경, 앞이 보이긴 해?” 

상연의 다정한 말을 무시하곤 돌아서서 혼자 쌩하니 가버리는 우수를 보며 석민이 발끈했다. 

“저, 저, 싸가지 없는 새끼 봐라 저거. 내가 뭐랬어? 저새끼 학교생활 꼬일거라 했지.” 

상연은 우수가 또다시 수업에 들어오지 않을 것임을 알았다. 도대체 뭐 때문에 저렇게 꼬였는지 이해하고 싶지도 않은 부류였다. 우수가 사라진 복도 끝을 바라보던 상연은 벽을 붙잡고 한참이나 비위상한 얼굴로 헛구역질 하던 녀석의 모습을 유심히 곱씹었다.

“뭐야, 윤석민 결석?” 

상연이 따분한 발끝으로 앞자리 의자를 때리며 묻자 한울은 귀찮단 듯 돌아보지도 않고 대답했다. 

“그렇댄다.” 

“또 피씨방 가서 날샜나.” 

손바닥에 턱을 괸 상연은 중얼거리며 교실 안을 훑었다. 구르던 눈동자는 수확 없이 한울의 등짝으로 다시 돌아온다. 휴대폰을 열어 석민에게 전화를 걸어보았지만 신호만 가고 받는 이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결국 금 같은 쉬는 시간을 쪼개어 상연은 교무실로 향했다. 

“석민이 아파요?” 

담임 윤선미는 면담하러 온 다른 학생을 돌려보낸 뒤 상연을 향해 의자를 뱅글 돌렸다. 

“너 몰랐니?” 

상연은 으쓱하며 선미를 내려다보았다. 

“연락이 안돼서요.” 

“응급실에 실려 갔다가 이제야 눈떴대.” 

상연이 조금 놀란 듯 손바닥으로 입술을 천천히 쓸어내리자 선미가 먼저 선수쳤다. 

“조퇴 못 시켜줘. 괜찮다고 하니까 걱정 말고 내일 학교에 오면 물어봐.” 

“근데 선생님.” 

“네. 또 선생님 옷이 예쁘고 머리가 예쁘고 그런 얘긴 안통해요.” 

“박우수 있잖아요.” 

“우수?” 

바쁜 손으로 책꽂이와 서랍에 손을 뻗어대던 선미가 의자를 뱅글 돌려 다시 상연을 올려다보았다. 

“우수한테 무슨 일 있었니?” 

그 눈빛이 석민의 안부를 이야기할 때와 확연히 다른 온도를 갖고 있음을 상연은 알 수 있었다. ‘너, 그런 애한테 관심도 줄줄 아니?’ 선미의 눈이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그게 아니라….” 

꼭 뒷담화를 하는 것만 같아서 잘 모르는 녀석의 이야기는 꺼내지 않으려했으나 결국 상연은 호기심에 지고 말았다. 

“그 녀석은 왜 수업시간에 제 멋대로 드나들어요? 선생님들은 신경도 안쓰고.” 

선미는 바쁘게 뒤적이던 파일철을 잠시 내려두고 상연을 마주봤다. 정적은 오래가지 않았다. 

“왜. 걱정 돼?” 

상연이 머뭇거리는 사이 선미는 조금 어두운 낯으로 말을 이었다. 

“우수가 좀 아파. 응급실에 있는 석민이하곤 조금 다른 케이스긴 한데.” 

걱정스레 말하는 선미를 보고도 상연은 검지 손가락을 자신의 관자놀이에 가져다 대며 무심히 말했다. 

“아. 여기가?” 

선미가 그런 상연을 지그시 노려보았다. 머쓱하게 묵례한 상연은 돌아서서 곧바로 교무실을 빠져나왔다. 박우수란 놈은 머리가 아프든, 몸이 아프든간에 하자가 있는 놈인것만은 확실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잘난 어른들이 이상행동을 두고 봐줄 리가 없으니까. 그렇게 힘들면 특수 학급이 있는 학교로 갈것이지, 왜 이런데로 와선. 답 나올리 없는 궁금증을 떨치고 교실로 돌아가던 길에 상연은 쏜살같이 달려온 누군가와 어깨를 부딪혔다. 

몸이 휘청일 정도로 누군가가 어깨를 박아온 것이 축구 할 때 받던 태클급이라 상연의 신경이 날카로워졌다. 곁눈으로 보고서야 장본인이 박우수란 사실을 알았다. 이놈도 양반은 못되었다. 

“…….” 

상연은 주머니에 손을 꽂은 채 불쾌함을 숨기지 않고 우수를 내려다보았다. 박우수는 사람을 쳐놓고선 일언반구의 사과는 커녕 미안한 눈빛조차 없었다. 그저 상연을 빤히 바라보다가 비뚤어진 안경을 고쳐쓰곤 무언가에 쫓기듯 후다닥 반대편의 계단을 향해 사라졌다. 어찌나 다급한지 제가 신고있던 실내화 한짝이 벗겨지는 줄도 모르고 줄행랑을 친다. 상연은 제 뒤에 누군가가 있는가 싶어 돌아봤지만 아무도 없었다. 황당함에 상연의 입에서 헛웃음이 튀어 나왔다. 

박우수의 기행은 급식실에서도 이어졌다. 숟갈을 뜨던 한울이 결국 한소리 했다. 

“쟤 왜 저래. 진짜 이건가?” 

한울도 상연처럼 검지 손가락을 관자놀이에 갖다 대곤 빙 돌리고 있었다. 상연의 시선이 고요히 우수쪽을 향했다. 박우수는 배식 차례를 기다리다가 홀로 벽에 머리를 찧었다. 그러자 곁에 줄을 서서 기다리던 녀석들이 욕을 하며 사이를 벌렸다. 연이어 박우수가 물컵에 물을 받아선 벌컥 벌컥 마셔댄다. 한잔, 두잔, 그리고 세잔째를 마시다가 배가 찼는지 그것을 냅다 자신의 정수리에 들이 부었다. 그러고는 화들짝 놀라 스스로의 머리를 털었다. 

거기까지 지켜본 한울의 입에서 탄성이 터져나왔다. 박우수는 찬물을 맞고서야 정신을 차린 듯 주변을 둘러보고는 황급히 걸음을 옮겨 급식실 바깥으로 사라졌다. 사위에 흩어진 축축한 물 때문에 동급생들이 휘청이다가 미끄러지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한울이 말했다. 

“저놈의 앞이 뵈지도 않는 안경이 문제야. 쟤, 저거 도수 안 맞는 게 분명해.” 

상연은 밥알을 씹으며 우수가 사라진 급식실의 뒷문을 바라보았다. 입안에서 우물거리던 것을 목구멍으로 넘긴 상연의 입술이 움직였다. 

“넌 안경도 안 쓰면서 그걸 어떻게 알아?” 

“내 동생 십년 넘게 안경쓰고 있거든. 처음 봤을 때부터 알았어. 걔 전학온 첫날부터 벽에다 머리 갖다 박은거 기억하지? 자기 시력에 맞지도 않는 걸 쓰고 다니니깐 그런거야.” 

상연은 밥숟갈 두어번에 배식 받은 양을 다 쓸어먹고는 아쉬운 듯 한울의 식판을 넘보고 있었다. 

“저러다 또 한번 일 내지 싶다. 그땐 너 쟤 도와주지 마라. 특히 급식실, 여기 난장으로 만들지 말…. 야, 너 부족하면 가서 이모님한테 가서 더달라고 해 새꺄. 왜 자꾸 뺏어먹어 이 돼지 새끼가. 운동 그만뒀으면은 이제 작작 좀 퍼먹어야지.” 

“왜?” 

“왜애? 왜긴 뭐가 왜야. 돼지 새끼 불렀더니 지금 대답한 거냐?” 

상연이 피실 웃음을 흘리며 한울의 소시지를 마저 훔쳐 먹었다. 분을 이기지 못한 한울은 콧구멍을 벌름거리다가 벌떡 일어나선 결국 반찬을 다시 채우러 배식대로 향했다. 

이후로도 박우수는 한결 같았다. 멀쩡하게 혼자 걷다가 넘어진다든지 코앞에 벽이 있다는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한 사람처럼 갑자기 돌진해 거세게 갖다가 박는다든지, 홀연히 없어졌다가 몇시간만에 나타나기를 반복했다. 

화장실에서 볼일 보는 놈들 틈을 비집고 들어가 갑자기 소리를 지르기도 하고 사람도 없는 허공에 휘적 휘적 손을 뻗어댔다. 선생들마저 방관하는 저놈이, 어쩌면 이 학교에서 가장 자유로운 놈일지도 몰랐다. 

한번은 수업 도중 사라졌다가 나타났는데 뭘 뒤집어쓰고 온건지 머리부터 발끝까지 축축하게 젖어있는데다 오물 냄새가 진동을 해 교실 바깥으로 쫓겨난 적이 있었다. 금방 또 어디론가 사라질 줄 알았는데, 그날은 또 신발장 앞에 고개를 푹 숙이고 서서 수업시간 내내 벌을 섰다. 

첫날에 교복 시비가 붙었던 놈들도 박우수의 실체를 알고선 재수가 없다며 엮이려들지 않았다. 상연도 며칠간은 유심히 관찰했지만 우수를 그냥 특이한 놈이라 인식하게 되자 관심이 시들해졌다. 녀석이 뭘 하든, 뭘 입든 무슨 생각을 하든 이제 아무도 전학생에겐 관심이 없었다. 고작 보름도 안 되어 전학생이 있었는지조차 학우들의 일상에선 가물해져갔다. 

“야, 뭐해 안 가? 그렇게 미련 남으면 너도 자습하고 가든지.” 

바깥에서 한울이 상연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상연은 컴컴한 복도 끝에서 무언가를 본 것 같은 기분에 잠시 멈춰섰다. 1층 맨 끝의 복도는 체육창고의 쪽문과 연결된 공간이었고 열쇠가 없이는 드나들 수 없었다. 언제부터였는지 위태로이 달려있던 전구마저 박살나 제대로 청소조차 되지 않고 있었다. 먼지 낀 공간은 음습하다며 아무도 가까이 가려하지 않았다. 

눈을 깜빡이자 잔상 같은 움직임이 또다시 깜빡하고 없어진다. 마치 갓 개업한 식당앞에 놓인 방정맞은 풍선간판처럼, 시꺼먼 그림자는 멀찍이 떨어진 곳에서 기괴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마치 여기에 있는 자신을 꼭 봐달라는 것처럼. 눈을 비비고 서있는 상연을 향해 한울이 성큼 다가왔다. 

“오늘따라 드럽게 굼뜨네.” 

녀석이 하품하며 어깨를 치자 상연은 말을 돌렸다. 

“네가 앞으로 내 식판까지 받아 오면 생각 좀 해볼게.” 

“뭔 개소리야. 석식 먹으려고 자습을 한다는 놈은 또 처음보네? 이런 미친 새끼.” 

상연은 걸음을 옮기며 한울 몰래 한번 더 뒤를 돌아보았다. 담당 구역을 청소 하던 녀석을 잘못 본 것임이 분명했다. 한울이 물었다. 

“근데 윤석민 아직도 연락 안돼?” 

상연은 무심하게 대답했다. 

“전화를 안받아.” 

“쌤은 뭐래?” 

“네가 물어보든지.” 

“이 싸가지.” 

담임은 상연이 찾아갈 때마다 자리에 없었다. 얼마나 바쁜지 오늘은 종례 시간에도 나타나지 않아 물을 타이밍을 놓쳤다. 석민은 일주일 째 결석중이었다. 

“일요일엔 병원 가보자.” 

상연이 한울의 어깨를 끌어당기며 말하자 한울은 넌더리를 떨며 상연의 품에서 빠져나갔다. 그리곤 별안간 상연을 노려보며 말했다. 

“짜증나. 넌 예체능도 아니면서 왜 자습 빠지는건데. 재수없어.” 

“하루이틀도 아닌데 왜 갑자기.” 

“빨리 주말이나 와서 윤석민 병문안 갔다가 바로 니네집 조져 놓고 싶다.” 

상연에게 이런 말을 서슴없이 할 수 있는건 거의 한울이 유일했다. 상연이 불쌍한 놈 위로하듯 한울의 머리통을 설설 쓰다듬어 주고 있을 때였다. 갑자기 눈앞에 시커먼 그림자가 난데없이 나타나 빽하고 날카로운 목소리를 던져왔다. 

“어떡할거야?” 

상연은 눈을 깜빡였다. 방금 본 수상한 그림자의 연장선인지 헛것을 보고 있는 것인지 잠시 헷갈렸기 때문이다. 놈은 예의 그 두터운 안경이 콧잔등으로 미끄러지자 검지 손등으로 부지런히 추켜올리며 말했다. 

“어떡할거냐고 묻잖아.” 

황당함이 얼굴에 퍼진 것은 한울도 마찬가지였다. 한울이 뭐라고 말 하기도 전에 박우수는 상연의 코앞으로 한발짝 더 다가서며 말했다. 

“꽉 붙들렸어. 이번엔 그냥 죽어버릴지도 몰라.” 

“넌 또 뭐냐?” 

한울이 상연에게 붙으려는 우수를 밀어내고는 날카롭게 상대했지만 우수는 마치 한울 따위 눈에 보이지도 않는 것처럼 행동했다. 

“그러니까 내가 가지 말라고 말 했는데. 너희가 말렸어야 했는데.” 

갑자기 남의 앞길을 막고서선 혼자서 뭘 중얼거리는지도 몰랐다. 안경알 속에 박힌 작은 눈알은 깜빡임도 없었다. 곧 상연의 멱살을 쥔 우수가 겁도 없이 그걸 쥐고 흔들었다. 

“정신 차려. 가서 정신 차리라고 말 해.” 

우수의 목소리에 정신을 차린 것은 오히려 상연이었다. 결국 한울이 나서서 우수를 밀쳐냈다. 

“이 새끼가 근데 보자보자 하니까. 너 뭐야 갑자기? 멍청한 게, 절 구해줬던 게 누군줄 모르고!” 

상연이 한울의 손을 붙잡아 내리게 했으나 우수는 한울이 무슨 말을 하건말건 상연만을 유심히 노려보는 듯 하더니 또 별안간 이유를 모르게 미간을 좁혔다. 그러곤 저혼자 휙 돌아서서 어딘가로 사라져버렸다. 한울은 가로등이 없는 어둠 속으로 우수가 사라지는 것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뭐냐? 기분나쁘게. 재수 옴붙을 것 같아.” 

온몸을 양 손바닥으로 털어대는 한울에게 상연이 물었다. 

“쟤도 늦게까지 남아서 공부해?” 

한울은 자율학습을 마치고 하교할 때까지 교실에서 박우수를 본 적은 단 한번도 없다고 말했다. 상연은 고요한 낯으로 우수가 사라진 길목의 가로등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체력이라면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던 상연은 근래, 해가 떨어지면 급격히 몸 상태가 피로해졌다. 언제 잠이 들었는지도 모르게 곯아 떨어지는 일이 부지기수였고 심할 때는 샤워기를 붙들고 욕조 안에서 눈을 뜰 때도 있었다. 선수 생활 할때만큼은 아니지만 꾸준히 재활 센터에 다니며 몸을 만들고 있는데도 어딘가가 끊임없이 불편하고 뻐근했다. 

한울에게서 쉬는 시간마다 문자가 들어오고 있었다. 

[야 비온다] 

[기분 개더럽] 

[밖에 겁나 음침] 

[나좀 데리러와ㅋㅋㅋ 공부 ㅈㄴ하기쉬름] 

피실 거리며 쪼개던 상연은 갑자기 박우수를 떠올렸다. 앞뒤 흐름도 없이 다짜고짜 찾아와선 갑자기 세상에 둘도 없는 원수를 본 것처럼 굴다니. 누가 보면 한 30년쯤 묵은 원한이 있는 줄 알았을테다. 

“진짜 이상한 자식이네.” 

하늘이 먼 곳에서부터 쿠릉거리며 무겁게 울어댔다. 상연은 샤워를 마친 무거운 몸으로 2층의 침대로 올라가 머리를 기댔다. 이후로는 암전이었다. 

정신을 차린 것은 잠든 지 수 시간이 지났다고 추측되는 시점이었다. 오래 잔 것 같진 않았다. 무척 쌀쌀한 집안의 온도 때문에 몸에 한기가 돌았다. 낯선 냄새도 나는 것 같고 자꾸만 평소 듣지 못하던 소리도 들렸다. 

눈을 비빈 상연의 시야에 들어온 것은 새까만 하늘이었다. 별을 헤아릴 수도 있을 만큼 낯설고도 맑은 하늘. 집에서 흔히 보던 풍광이 아니었다. 상연은 눈을 몇번 깜빡이다 토독, 눈 속으로 들어오는 수분기에 정신을 차려 황급히 몸을 일으켰다. 이불 속이 아니었다. 물방울은 이제 이마와, 손등, 머리카락 안까지 파고들었다. 몸이 찬바람을 맞아 으슬으슬 추위를 느끼기 시작했다. 

“…뭐야.” 

상연은 손등으로 습기를 훔치며 상체를 일으켰다. 발뒤꿈치가 까슬거렸다. 외딴 곳의 모래사장에 상연은 홀로 누워있었다. 사지를 파고드는 이질감들이 믿겨지지 않았다. 그제야 밤에 익숙해진 눈동자가 주변의 시야를 서서히 담았다. 보이는 곳은 바닷가였다. 

제정신이 아닌 와중에 무면허로 오토바이나 차를 몰고 왔으면 어쩌나 싶어 주위를 둘러봤지만 아무것도 없었다. 주머니를 뒤져보아도 아무것도 없었다. 몸에선 술 냄새도 나지 않았다. 주먹 안에 쥐어본 모래는 손 안에서 곱게 뭉쳐졌다가 금방 흩어져 손 밖으로 흘려내렸다. 연이은 차가운 물방울이 상연의 눈썹 근처에 톡 닿았다 굴러 떨어진다. 불쾌한 액체를 걷어낸 상연은 다시 하늘을 올려다 봤다. 

시커먼 비구름이 우글우글 몰려와 있었다. 상연은 낮게 욕지기를 씹으며 주머니를 뒤져 핸드폰을 찾았다. 그러나, 핸드폰은커녕 늘 착용하던 손목시계조차 없었다. 모래를 털고 일어서자 외진 곳에 놓인 낡은 텐트 하나가 보였다. 하지만 안에 무엇이 있을지 예상되지 않아 섣불리 다가갈 수 없었다. 찬 기운을 막으려 몸을 감싸고 무작정 걸었다. 실내용 슬리퍼 사이로 축축한 모래알이 스며들었다.

파자마 차림으로 한참을 걸었지만 숙박업소는커녕 그 흔한 편의점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주머니에 땡전 한 푼 없는 상연은 히치하이킹을 시도하려했으나 수십 분을 서성거려도 차한대 지나가질 않았다. 설상가상으로 굵어진 빗줄기 때문에 상연의 몸은 흠씬 젖어 들고 있었다. 

“…미치겠네.” 

그때, 멀리서 무언가가 움직이는 것이 시야에 들어왔다. 끼익, 끼익 거리는 익숙한 소음을 달고서. 상연이 눈을 가늘게 떴다. 그것은 사람으로 식별됐다. 정확히는 자전거를 탄, 사람. 그는 조금씩 가까워 지고 있었다. 우비를 뒤집어쓴 차림새의 인영이 낡은 자전거를 끌고 천천히 페달질을 하고 있었다. 

규칙 적인 소음은 고요한 세상의 유일한 기척이었다. 그가 자전거를 운행하는 몸짓은 매우 버겁고 구부정해보였다. 상연은 제가 대신 올라타 그를 뒤에 태우고 목적지까지 바래다주고픈 심정이었다. 살을 에는 추위를 느끼며 그가 다가오는 쪽으로 발걸음한 상연이 말했다. 

“저, 실례합니다만.” 

쏟아져 나온 입김이 정처 없이 흩어졌고 상대는 아무것도 못본것처럼 상연을 무시하고 지나쳤다. 멀리서 볼 때에는 오르막길을 오르는 것처럼 느리고 버거워 보였던 그의 움직임이 상연의 앞에서만 쏜살같아졌다. 시속을 두고 고속도로를 질주하는 자동차처럼 그 자전거는 상연을 무시하고 빗물을 가르며 무지막지하게 달려 물안개 속으로 사라졌다. 

“…….” 

상연은 자신의 양손으로 뺨을 갈기며 눈을 꾹 감았다 떴다. 제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던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자전거의 페달은 미친 듯 돌아가고 있었지만 그것을 밟아대고 있어야 할 발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상연은 우비의 모자 아래로 보이던 그의 시푸른 얼굴이 떠올라 또다시 자신의 뺨을 쳤다. 

“정신 차려. 정신 차리라고.” 

때맞춰 소름이 돋아 올랐다. 스쳐지나간 그의 입가에 머물고 있던 소름끼치는 미소가 눈을 깜빡일 때마다 잔상으로 남았다. 어지러움과 두통에 신음하던 상연은 자전거가 지나간 길과는 다른 곳으로 루트를 바꾸어 걷기로 마음먹었다. 

가로등이 있는 것에 감사하며 얼마나 걸었을까, 길바닥에 쓰러지기 일보직전 상연은 멀리 후미진 곳에 서있는 낡은 슈퍼 하나를 발견했다. 상연의 낯은 창백했고 입술은 퍼렇게 질려 덜덜 떨리고 있었다. 마지막 힘을 짜내어 다가선 건물은 그냥 보아도 연식이 아주 오래돼 보였다. 건물이라기 보단 조금 큰 버스 정류장에 문짝만 달려있는 모습 같았다.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발견한 기분으로 다가가려던 그때였다. 

끼익, 끽- 

어쩐지 귀에 익은 소음이 이번엔 등 뒤에서 들려오고 있었다. 상연은 수십분전 만났던 소음을 떠올리며 천천히 뒤를 돌았다. 멀리, 식별조차 힘든 소실점 즈음에서 검은 인영이 좌우로 흔들리고 있었다. 눈꺼풀을 좁혀 시야를 확보해보니, 자전거 바퀴가 보였다. 그걸 확인하자마자 머리카락이 쭈뼛 서올랐다. 도무지 들리지 않을 것 같은 거리임에도 녹슨 자전거의 소음이 들려오고 있었다. 보이지 않을 것 같은 먼 거리에 있을 퍼런 얼굴이 눈에 선명히 식별됐다. 

“…….” 

상연의 등 뒤로 식은 땀이 흘렀다. 방금전 빗길에서 상연을 스쳐 지나쳤던 그 남자였다. 분명 반대편을 향해 달려갔던 그가 이쪽을 향해 미친듯 페달을 밟아오고 있었다. 상연은 재빨리 움직였다. 

슈퍼에 딸린 낡은 파라솔과 플라스틱 의자를 비집고 미닫이 문 앞에 선 상연은 늦은 시간임을 감안해 작게 노크했다. 예상처럼 안에서는 반응조차 없었다. 그러나 희망은 있었다. 안에서 미미하게 새어 나오는 빛줄기에 매달리는 심정은 간절했다. 

“계세요?” 

물음과 동시, 식어버린 손끝으로 밀어본 가게의 문은 의외로 스르륵 열렸다. 

끼익, 끽. 

녹슨 자전거가 바퀴소리. 그가 지척에 와있는 모양이었다. 상연은 엄습하는 소음과 추위를 피해 일단 슈퍼 안으로 허락없이 들어섰다. 

“실례합니다. 사장님 계십니까?” 

몇번을 더 불러 보았지만 인기척이라곤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미닫이 문 하나 닫은 것 만으로 실내가 푸근하게 느껴졌다. 혹시 몰라 안에서 잠금장치를 걸어 잠그고 문옆에 기대어 선 상연은 한참을 기다렸다. 정체모를 불청객이 자전거를 멈춰 세운뒤 저를 쫓아 이쪽으로 들어올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러나 더이상 삐걱이는 소음은 들려오지 않았다. 잠갔던 문을 천천히 밀어 열고 바깥을 내다 본 상연이 입김을 뱉으며 좌우를 두리번 거렸다. 

‘언제 지나가버린거지?’ 

다행인지 불행인지, 자전거를 탄 남자는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안도하며 다시 문을 닫고 돌아서자마자 상연은 욕지거리를 씹으며 주먹을 꾹 쥐어야만했다. 

우비쓴 남자가 상연의 코앞에 서 있었다. 투둑, 툭. 발목까지 내려덮인 검은 우비 아래로는 물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그는 상연보다 머리 하나는 작았다. 그가 한발짝 내디딜 때마다 상연은 마른침을 삼키며 뒷걸음질 쳤다. 어느새 미닫이 문에 바짝 붙어섰을 때였다. 남자가 무언가를 중얼거리며 고개를 처들었다. 눈과 코가 있어야 할 자리가 텅 비어버린 남자는 히죽, 웃으며 입을 벌렸다. 

작은 매대와 냉장고하나 냉동고 하나가 전부인 실내에는 사람 하나 겨우 들어가 앉을 것 같은 가겟방이 있었다. 문이 반정도 열려있는 가겟방 안에서는 구식 TV가 반짝이고 있었다. 작은 사이즈의 브라운관 티비는 20년도 더 된것처럼 보였다. 

구들장에서 올라오는 열기로 방안이 따뜻했다. 상연이 눈을 뜬 것은 뜨끈한 가겟방 안이었다. 

정신을 차려보니 할머니 한 분이 눈앞에 앉아 찻잔을 내려두고 있었다. 상연은 자신을 빤히 내려다 보고 있는 백발 노인네와 잠시 눈을 맞추더니 불에 덴 것처럼 일어나 앉았다. 잠든 사이 이불이 목까지 덮여있었다. 

“죄송합니다. 제가, 어떻게 된 일인지 도무지. 정신을 차려보니까 이렇게…….” 

자신의 머리카락을 쓸어내리며 혼란을 겪고있는 상연을 향해 인자한 손길이 다가왔다.

“그래, 그래. 누워 있어, 아가.” 

“지갑도 휴대폰도 잃어버려서요. 전화 한통만 빌려주신다면, 가까운 경찰서에 연락해서, 제가 꼭 사례드리겠습니다.” 

“됐다, 아가. 다 안다. 나는 다 알아. 일단 이거 마시고 마저 눈 좀 붙이라. 어여.” 

“할머니.” 

“밖에 춥다이.” 

그는 횡설수설하는 상연의 어깨를 다독였다. 마음씨 좋은 노파는 생명의 은인이었다. 건네받은 차에서 김이 피어오르는 것을 홀린 듯 내려다보며 상연은 이유 모를 안도감을 느꼈다. 잠시 주변을 둘러보니 빛바랜 벽지 가운데에 동그란 시계 하나가 보였다. 시각은 새벽 네 시를 향해가고 있었고, 창밖으로 보이는 사위는 여전히 컴컴했다. 

침침한 전등불은 어두웠지만 상연은 사람의 온기와 푸근한 기운 아래 긴장을 놓고 도로 잠에 빠졌다. 이불에선 미미한 곰팡내와 시원한 파스 냄새가 뒤얽혀 났다. 오래 앓다가 돌아가신 할머니가 문득 보고싶어졌다. 

방학을 맞이할 때마다 시골에 가면 할머니의 비닐 하우스와 시골집 천막아래서 실컷 먹고 뛰어노느라 바빴다. 저녁에는 슬레이트 지붕아래 놓인 평상위에서 수박화채를 먹다가 그대로 이불을 깔고 잠들었다. 그러면 할머니가 잠든 상연을 확인하고는 모기장을 쳐주시곤 했었다. 곁에 함께 누운 어머니의 자장가 소리와, 배를 다독이던 손길. 은은한 모기향 냄새. 추억이 빛바랜 영상처럼 상연의 머릿속으로 흘러들었다. 

이미 헤아릴 수도 없이 재생된 영상은 이제 색을 많이 잃은채였다. 지쳐 잠든 상연의 곁에 와 앉은 할머니가 머리카락을 쓰다듬으며 무언가를 중얼거렸다. 희미한 목소리가 상연의 귓가로 멀리 흩어져 나갔다. 어쩌면 노랫소리와도 같은 그 소리는 자장가처럼 상연의 의식을 흩어놓았다. 냇가에 고기와 다슬기를 잡으러 신나게 뛰어갔다 돌아와 대청바닥에서 낮잠을 청할 때, 무릎베개를 해주었던 할머니의 소리와 몹시도 흡사했다. 

온몸을 때리는 감각에 상연은 정신을 차렸다. 자신을 둘러싼 사람들의 걱정스런 눈빛이 쏟아지고 있었다. 그들이 길바닥에 쓰러진 상연을 두들겨 깨울 때마다 상연의 몸이 흔들렸다. 

“정신 잃으면 안돼, 여기서 기절하면 큰일 나!” 

짝짝 후려쳐대는 남자의 손길이 거북해 상연은 먼저 그것부터 잡아챘다. 그들은 그걸 상연이 살았단 표식으로 받아들이고는 안도의 목소리를 내질렀다. 

“어? 이것 봐 눈 뜨네. 학생, 학생!” 

“학생, 괜찮아? 정신이 들어?” 

“병원으로 옮겨야 하는 거 아니에요?” 

“애 덮을 것 좀 가져와봐요. 담요 같은 거.” 

곧 무전기를 든 경찰이 천천히 달려와 합세한 뒤 상연을 살폈다. 상연은 모래 범벅이 되어있는 상태였다. 

“입술이 시퍼렇네. 발발 떨잖아 이것봐. 병원부터 데려가야 헌대두?” 

“아 글쎄 구급차가 오고있다고요. 어, 저기 오네!” 

좀 더 맑아진 시야로 황급히 주위를 둘러본 상연은 자신이 새벽에 정신을 차렸던 그 바닷가에 와있단 사실을 깨달았다. 분명 슈퍼에서 할머니가 건네준 뜨끈한 차를 마신 뒤 무아지경으로 잠에 빠졌다. 분명히, 그랬었는데. 상연은 주변을 더듬거리며 중얼거렸다. 

“분명, 한밤중에 여기서 눈을 떴었는데. 그리고 일어나서, 곧장 길거리를 헤맸고…. 어떻게 다시 여기로 돌아왔지?” 

“뭐라는 거야. 이 친구 아직 정신 못차렸네.” 

상연은 다시 제 뺨을 갈기기 시작한 낯선 손길을 피해 몸을 일으켰다. 밀려오는 두통으로 머리가 깨질 것만 같았다. 괴로울 정도로 몇 번이나 기억을 더듬어 보았지만 곧 머리 위로 쓰여지는 담요자락에 생각이 멈추었다. 혼란스러운 상연에게 수염 덥수룩한 남자가 뜨거운 종이컵을 들이 밀었다. 

“마셔, 얼른.” 

상연은 뺨에 닿았다 손 안에 담긴 누런빛의 차를 보고 머뭇거렸다. 보리차라고 말하는 남자의 손은 조금 거칠었다. 인자하게 웃는 그의 얼굴이 마치 지난밤 자신을 아랫목에 재워준 할머니와 닮은 것처럼 보였다. 그의 등 뒤로 보이는 낡은 텐트. 상연은 새벽에 이곳에서 눈을 떴을 때 보았던 바로 그 텐트를 떠올렸다. 거리를 헤매지 말고 처음부터 이 아저씨에게 물었더라면 이런 꼴이 되지는 않았을텐데. 후회가 밀려왔다. 

상연이 슈퍼와 할머니 얘기를 하자 경찰은 표정이 이상해지더니 곧 자신의 동료와 눈빛을 교환했다. 

“그런 곳이 없다뇨.” 

난처한 표정으로 상연이 되묻자 운전대를 잡은 경찰이 룸미러로 상연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다 물었다. 

“그러니까, 지금은 없지. 오래전에 있긴 있었어. 학생 여기 살았던 적 있어?” 

“아니요.” 

“너 같은 얘기 하는 사람이 종종 있긴 한데. 설마 거기에서 잠을 잤다는 건 아니지?” 

“갑자기 새벽에 비가 내려서 몸이 흠뻑 젖었어요. 모래사장에서 깨어났는데, 길 거리를 헤매다가 그 슈퍼까지 가게됐고…. 주인 할머니가 추위에 떨고 있는 절 재워주셨다니까요. 따뜻한 차도 주시고.” 

“허허.” 

경찰은 말을 아꼈다. 곧 조수석에 앉아있던 다른 경찰이 시끄러운 소음이 흘러나오는 무전기를 잠시 죽인 채 말했다. 

“저기다.” 

상연은 남자가 가리키는 곳으로 시선을 옮겼다. 다 쓰러져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건물 하나와 낡은 공중전화 박스가 보였다. 

‘저게 대체 뭔데.’ 

상연이 묻는 것보다 경찰이 조금 더 빨랐다. 

“네가 어젯밤에 자고 나왔다던 효은슈퍼말야. 그게 저기라고.” 

상연은 폭삭 무너져 내린 시멘트 쪼가리와 부서진 평상, 간신히 형태만 알아볼 수 있는 슬레이트 지붕을 보고선 잠시 넋을 놓았다. 주변으로는 공사가 예정된 모양인지 시멘트와 돌조각, 흙으로 뒤얽힌 터에는 이것 빼고 아무것도 없었다. 진입을 저지하는 낡은 노끈만이 바람에 흩날리고 있었을 뿐. 

“지금…… 농담 하시는 거죠?” 

상연은 경찰을 이상한 사람 취급하며 물었으나 상연을 대하는 경찰의 입장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 주변에 아무것도 없었다 그랬지? 이 봐라. 원래 이 슈퍼 한 개만 읍내에서 요만치 동떨어져 있다.” 

“거짓말 하지 마세요. 절 못 믿고 그냥 놀리시는 거잖아요. 분명히 가로등도 있었고 버스 정류장도….” 

상연은 멀지 않은 곳에 세운 경찰차에서 내려 이곳 정류장의 명칭이 ‘효은슈퍼’라는 것을 확인한 뒤 온전히 말을 잃었다. 넋나간 상연을 바라보던 경찰이 운전대를 놓고 따라 내리며 덧붙였다.

“여기는 마을 버스 한 대가 하루에 겨우 두 번 오가. 저기 비좁은 샛길 보이지? 저길 타고 쭉 들어가면 나있는 산길에 10가구 정도 민가가 기거하고 있는 게 전부야, 아무것도 없어.”

“도대체 언제… 문을 닫은 겁니까?”

“학생은 태어나기도 전이었겠네. 이 슈퍼 주인 할머니를 본게 아니라, 여길 지나가던 다른 사람을 본 건 아닌지 잘 생각해봐. 그렇게 아무데서나 자고다니니까 꿈을 꿨는지 현실인지도 헷갈리고 그러는 거 아냐. 혹시 술 먹었어?” 

“…….” 

“뭐야. 너 정말 술 먹은 거야?” 

“학생이 술은 무슨. 전 그냥 집에서 자고 있었다니까요.” 

그는 전혀 믿기지 않은 말들을 들은 것처럼 눈초리에 의심이 가득했으나 상연을 측은하게 여기기로 마음 먹은 모양인지 자식 훈계하듯 엄하게 꾸짖으며 일을 마무리 짓고자 했다. 

“지금은 젊어서 모르겠지만 너 그러다 큰일 한번 치른다. 조심하고 다녀.” 

“분명히…. 과자도 팔고, 라면도 있고 냉장고에 술도 있었는데.” 

상연은 제 진심을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 답답했다. 그러나 정말로 제가 추운 날씨에 길을 헤매다 쓰러져 혼절했고, 그 때문에 희한한 꿈을 꿨다고 생각한다면 충분히 납득할 수 있는 상황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믿지 않는다면 정말로 미쳐버릴 것만 같아서였다. 

“할머니가 돌아가신지 얼마나 됐나.” 

“20년도 더 됐지.” 

상연은 경찰들의 대화에 불쑥 끼어들어 물었다. 

“아저씬 어떻게 아세요?” 

“내가 저 10가구도 안되는 민가촌에 살았었거든. 효은슈퍼 할머니랑 친했다. 자식들 먼저 떠나보내고 말년에 낙이라고는 동네 꼬마들 고사리 같은 손에 사탕 쥐어주는게 전부였던 분이었어. 그 말인 즉슨, 내가 그 할머니 상주 노릇을 했었다는 거야.” 

경찰서에 도착해서도 상연은 한동안 혼돈에 시달렸다. 마른 세수를 한 뒤 머리칼을 쥐어 뜯으며 깊게 숨을 내쉬는 상연을 맞은편의 취객이 측은하게 바라보며 딸꾹, 소리를 냈다. 서류를 작성하던 중인 경찰이 쥐고 있던 볼펜으로 머리를 벅벅 문지르다 경찰서 입구에 우뚝 선 남자를 바라봤다. 상연이 심란한 마음으로 비어버린 종이컵을 손안에 구기는 사이 발치로 검은 구둣발이 다가왔다. 

“가실까요.” 

아버지 쪽의 사람이었다. 가능하면 보지 않고 지내고 싶었기에 상연은 정말로 혀를 깨물고 죽고싶어졌다. 경찰서의 전화를 빌려 한울에게 전화도 해보았으나 한울은 받지 않았다. 석민도 마찬가지였다.

상연은 2주가 넘도록 병원을 드나들며 잠들어야했다. 새어머니는 양아들을 병원에 꼬박꼬박 데려다 나르는 정성을 보였다. 

“기면병일까요?” 

그녀의 물음에 의사가 시원찮은 표정을 하고 말했다. 

“졸림증도 없고 발작이나 기절 증상도 없고…. 글쎄요, 일단 검사된 수치상으론 별 이상이 없네요. 이정도면 가능한 검사는 다 해봤다고 해도 무방합니다.” 

대학 병원을 거쳐 수면클리닉으로 유명한 명의를 찾아왔음에도 그는 다른 의사들과 다를 바 없는 말을 했다. 

“지금으로 봤을땐, 아주 잘 자요. 상연이는 또래 친구들 사이에서도 지극히 평균적이고요. 수면보행증으로 보이긴 하지만 처음이니 좀 더 지켜보는게 좋겠습니다. 간혹 아드님이 새벽에 일어나 이상행동을 한다고 해도 억지로 깨우거나 저지하려 하진 마세요. 공격적인 행동을 보일 수도 있으니까.” 

상연은 제게 몽유병 따위는 없으며 앞으로도 그런 것 따위 겪을 일은 없다고 말해주려다 꾹 참았다.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고생을 많이 했다고?” 

의사의 넋두리 같은 물음에 상연은 그저 침묵했다. 긍정의 표현이었다. 그는 상연을 잠시 바라보는 듯 하더니 모니터로 시선을 옮기며 말을 이었다. 

“그것 때문에 일시적으로 생긴 현상일지도 모르니 몸이 피곤해 컨디션이 좋지 않다거나, 시험 기간이라 과로했을 때 다시 한번 검사를 해보죠. 수면의 질이라는 게 기운에 따라 장소가 따라, 환경이 미세하게 바뀌기만 해도 달라지는 거니까.” 

상연은 따분한 얼굴로 진료실을 나와 앞서나가는 여인을 따라 걷다 말했다. 

“애쓰지 마세요. 설마 진짜로 잠자는 절 지켜보실 생각인 건 아니죠?” 

고고하게 걸어가던 여자가 돌아서서 상연을 한참이나 노려보다 되묻는다. 

“넌 항상 왜 이러니?” 

“제가 뭘요?” 

“사람을 병신 취급 하는 것 같아. 대놓고 업신여기는 것 같다구.” 

“…….” 

“애가 애 같은 맛이 없어 너는. 아주 징그러워. 어릴 땐 안 그랬었는데.” 

“어린날의 저를 얼마나 보셨다고.” 

제가 조금 심했나 싶다가도 상연은 금방 다시 무슨 일을 겪었냔 듯 태연한 얼굴을 가장했다. 

“많이 나무라세요. 못 배워먹은 건 아무리 노력해도 고쳐지질 않으니까.” 

미련도 원망도 없는 홀가분한 상연의 낯을 바라보던 여인이 신경질 적인 발소리를 내며 사라졌다. 

상연은 소파에서 리모컨을 쥐고 뒹굴뒹굴하는 한울을 내려다 보았다. 본인 입으로는 상연이 걱정되어서 왔다고 뻔뻔하게 말하고 있으나 아무리 봐도 음식이며 편안한 잠자리를 대접 받는 쪽이었다. 상연의 시선이 느껴졌는지 한울이 입을 놀렸다. 

“미안한데, 나도 이 집에 있고 싶어서 있는 거 아니그든? 오해 마라. 어머님 부탁이니까.” 

마음에도 없는 새어머니 핑계 따윈 대지 말라고 이야기 하려던 상연의 입술이 미미하게 열렸다가 도로 닫혀버렸다. 한울은 예의 그 방정맞은 입술을 놀린다. 

“그러게, 그냥 이 집에서 널 데리고 나가시면 편할 거 아냐. 곁에 두고 보살피는 게 아무래도 제일 좋을텐데, 아들놈 똥고집에 져주시는구나.” 

상연이 자신을 노려보고있단 사실을 알아챈 한울은 급격히 말수를 줄였다. 그러면서도 작게 시불대는 소리는 멈추지 않았다. 

“아니면 정신 병원으로 뫼시든가. 너한텐 사실 그게 최선 아냐?” 

“병원은 싫어.” 

“암요, 알지요.” 

“그냥 단순한 악몽이었다고. 꿈인지 현실인지 잘 분간이 안 가는.” 

“네네. 단순한 악몽을 꾸러 여기서 십 킬로미터는 더 떨어진 곳으로 대중교통도 없는 밤에 뛰쳐나가셨단 얘기 믿기지 않지만 잘 들었구요? 차라리 널 싣고 가셨을지도 모를 택시 기사를 찾는 게 더 빠를 것 같지 않냐?” 

상연도 생각해보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분명히 택시 같은 걸 탄 기억은 없었다. 하루라도 빨리 이 이상한 일 따위 잊어버리고만 싶었다. 그러나 새카맣던 바닷가의 하늘이 머릿속을 가득 채우곤 잊히질 않았다. 

“근데 너, 평소엔 잘만 받던 전화를 왜 그렇게 안 받아?” 

상연의 물음에 한울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의문스러운 얼굴을 했다. 

“전화는 무슨 전화.” 

“내가 정신 차린 뒤로 너한테 계속해서 걸었잖아. 아주 애타게.” 

“뭔 소리야, 전화 안 왔는데?” 

오징어를 질겅 씹으며 만화책을 뒤적이던 한울은 주머니를 뒤적여 자신의 휴대폰을 꺼내어 보았다. 상연이 짐짓 심각한 표정으로 곁에 가 서자 한울은 확인이라도 해보이겠단 듯 발신자가 나열되어있는 액정을 상연 쪽으로 내밀었다. 상연은 통화 목록의 나열을 바라보며 미간을 좁혔다. 정말로 한울의 휴대폰에는 착신 기록이 없었다. 

“이새끼. 너 여기 오기전에 지웠지?” 

목이 막힌단듯 상연을 향해 손바닥을 내밀어 강력히 저은 한울이 억울한 목소리로 말했다. 

“잘못 걸려온 전화 한통도 없이 핸드폰 아주 고요했다? 맨날 전화 오던 윤석민이 없어서 그런가.” 

통화권 밖이었던걸까? 아님 경찰서의 전화기가 고장 났던 것일까. 

“그럴 리가.” 

관공서의 전화가 먹통일 경우의 수는 상연이 귀신에 홀렸을 확률보다 낮았다. 게다가 상연이 수화기를 붙잡기 전에도 경관은 걸려오던 전화를 받고 있었다. 

“야, 고상연. 정신 나감? 야, 야.” 

한울이 눈앞에서 손바닥을 흔들자 상연은 흩어지던 정신을 그러모았다. 이젠 자신이 정말로 슈퍼에서 누굴 만났고 무엇을 했었는지도 가물해져갔다. 경찰관이야말로 정말로 경찰이 맞았던가? 무너져 가는 슈퍼앞에 선 그들은 오히려 상연을 귀신보듯 바라보고 있었다. 

정말로, 모든 게 꿈이었을까? 갑자기 석민을 만나봐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그녀석의 휴대폰에는 부재중 전화가 찍혀있을테다. 상연의 얼굴이 잠시 어두워진 것을 보곤 눈치 빠른 한울이 석민의 이야기를 지껄였다. 

“걘 요즘 게임에 미쳐가지고. 정신을 차리고 보면 거길 가있대 지가 가려고 한 게 아니라.”

“어딜?”

“그 피씨방. 미친 새끼, 완전 게임 중독이야. 차라리 여자애들을 만나면 만났지, 피씨방에서 날새던 놈은 아니었는데 역시 수험 스트레스 무시 못한다. 우리는 그런 폐인까지는 되지 말자고.” 

말을 마치곤 뒹굴, 대수롭잖게 돌아 눕는 한울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상연은 천천히 눈을 깜빡였다.

한울은 병상에 누워 눈만 껌뻑이고 누워있는 석민을 보며 망연자실했다. 

“야, 윤석민….” 

친구는 몸은 멀쩡하나 의식을 찾지 못하고 있었다. 그렇다고 코마상태에 빠져있는가 하면 그런 것은 아니었다. 석민은 눈앞에 오가는 것들을 식별하고 있었다. 물체를 따라 움직이는 눈동자가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하지만 둘도 없는 친구들과의 만남에 반가움을 표현한다거나 평소처럼 손짓을 하거나 이렇다할 반응을 내보이지는 못했다. 일주일이 넘도록 회복되지 못하는 이 희한한 증상 때문에 석민은 등교도 하지 못하는 중이었다. 

“도대체 애가 왜 이러는지. 어딜 가서 뭘 했기에.” 

석민의 모친은 울컥 올라오는 감정을 삼키며 눈물을 훔쳤다. 의사들이 돌아가며 검진해보았으나 특별한 연유를 찾지 못해 결국엔 심리적 문제로 진단했다고. 그들은 건강엔 딱히 특별한 이상이 없으니 염려 말고 기다려 보자는 말 뿐이었다고 했다. 상연과 한울이 들고 온 과일 바구니를 만지작대던 그녀는 결국 병실 밖으로 사라졌다. 

한숨을 내쉰 상연은 손바닥을 들어 천장과 허공 사이의 어딘가를 보고 있는 석민의 눈앞에 흔들었다. 석민은 넋이 나간 것처럼 그저 상연의 움직임을 따라 눈을 끔벅거리기만 했다. 

“방법을 찾아야겠는데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을 때는 말야.” 

상연이 중얼거리자 한울이 흠칫 놀라 한발짝 물러나며 말했다. 

“무섭게 왜 이래. 너까지 정신 나갔어?” 

상연은 눈길을 옮겨 겁에 질린듯한 한울을 바라봤다. 한울은 잠시 상연이 어떤 놈인지 망각했음을 깨닫고 다시 새로운 언어를 정제했다. 

“야, 네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알겠는데….” 

미련 없이 돌아 나서는 상연의 뒤꼭지를 바라보며 당황하던 한울이 석민에게 어정쩡한 작별 인사를 남기고는 급하게 돌아섰다. 

*

상연은 며칠 동안 석민이 새벽에 자주 드나들었다던 피씨방 근처를 서성였다. 무언가 작은 단서라도 잡아내기 위해서였지만 성과는 없었다. 종종 마주치고싶지 않은 녀석들을 만나 원치 않은 회동을 해야만 했지만 석민의 회복에 도움이 되기 위해서라면 그런 껄끄러움쯤 얼마든 견딜 수 있었다. 

도무지 학생으로는 보이지 않는 껄렁한 무리들이 상연에게 작별 인사를 남기고는 침침한 빗속으로 사라졌다. 담배 연기가 너구리굴 처럼 뿌옇게 부유하던 자리를 보던 한울이 말했다. 

“가끔은 니가 내 친구라는 게 신기해.” 

잠복 4일째에 접어들자 한울은 무척 지쳐보였다. 이 5층짜리 낡은 상가는 비를 피하기엔 나쁘지 않았지만 꼭대기 층의 피씨방을 제외하면 전부 폐업 했거나 임대를 알리는 벽보가 찢겨있는 음산한 공간이라 대체적으로 흉흉했다. 오늘은 날씨탓에 더욱 그랬다. 사정없이 쏟아져내리는 빗줄기 때문인지 창밖 풍경은 훨씬 더 높은 고지대에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한울은 야간자율학습까지 끝낸 몸으로 이곳에까지 출석도장을 찍는 일이 슬슬 버거워졌다. 그걸 알아채지 못할리 없는 상연이 상연은 한울의 양 뺨을 쥐고 이리저리 흔들며 물었다. 

“괜찮아? 너 상태 안좋은데.” 

“…….” 

“안색이 왜 이래.” 

자신이 걸치고 있던 비옷을 벗어 한울에게 뒤집어 씌운 상연이 말을 이었다. 

“앞으론 내가 있을 테니까 너는 안 와도 돼. 어차피 특별한 일도 안 일어나. 자습 마치면 다른 생각하지 말고 곧장 집으로 가서 따뜻하게 샤워해.” 

한울은 다소 억울한 감정이 서린 목소리로 말했다. 

“야. 너나 뒤집어 써. 난 우산 있….” 

한울의 입을 손바닥으로 틀어막은 상연이 넌지시 말했다. 쉿, 소리와 함께 상연의 입이 느리게 벌어졌다. 

“누가 있어.” 

‘뭐?’ 

손바닥에 입이 막힌 한울이 놀라 되묻자 상연은 그보다 더 작게 대답했다. 

“여기에, 우리 말고 또 누가 있다고. 아까부터.” 

소곤거림에 갑자기 온몸에 소름이 돋아남을 느낀 한울이 경기를 일으키며 외쳤다. 

“네 친구들은 이미 다 돌아갔잖아.” 

“그녀석들 말고.” 

“내가 방금 꼭대기 층에 올라갔다 왔는데 피씨방엔 아무도 없었어. 어젠 알바하는 형이라도 있었는데 오늘은 어딜갔는지, 손님 없다고 농땡일 치는건가. 어젠 그래도 두 세명 정도는 있었는데.” 

주위를 살피느라 신경을 곤두세운 상연에게서 대꾸가 없자 한울이 낮은 목소리로 덧붙였다. 

“난 여기만 오면 좀 이상해지는 것 같아. 머리도 아프고 기분도 별로고. 이상한 생각이 너무 많이들어.” 

쏴아ㅡ 

줄어들 줄 모르고 퍼붓는 빗줄기가 창문과 계단을 무지막지하게 때려댔다. 멀리서 가로등 하나가 빛나고 있을 뿐인 으슥한 이 공간은 떨어지는 비를 경계로 외부와 단절된 것처럼 느껴졌다. 

“무슨 이상한 생각? 네가 밤마다 몰래 방안에서 혼자 보는 그런….” 

담배에 불을 붙인 상연이 자신을 놀리고 있음을 알아챈 한울은 버럭했다. 

“닥쳐, 고상연. 이 상황에서도 농담 따먹기냐? 귀신 얘기 하고 있잖아.” 

“계속 해봐 그럼.” 

“오는 길에 지름길로 온다고 골목길 타고 왔어. 주군 아파트 지나면 나오는 놀이터에 애들이 놀고있더라고. 우산도 없이, 춥지도 않나.” 

“그럴 나이지. 근데 그게 뭐?” 

“넌 안에만 있어서 모르겠지만, 아까는 우산이 뚫어질 정도로 비가 왔었단 말야. 난 우박이 떨어지는 줄 알았다니까.” 

“그래서 네가 그렇게 새파랗게 질려서 뛰어온 거구나.” 

“…보아하니 네다섯 명 정도가 숨바꼭질을 하고 있었던 것 같은데 보통은 날씨가 천둥 번개를 치고 그러면 무서워서라도 집에 들어가지 않냐? 조그만 아이들인데.” 

연기를 바깥쪽으로 짧게 뱉어낸 상연이 턱을 괴고는 묵묵히 한울의 이야기를 들었다. 

“조금 지켜보다가 그냥 왔어. 다시 돌아가서 아이들을 집에 돌려보냈어야 했나 계속 후회하면서. 근데, 놀이터를 지나왔는데도 자꾸 노래 소리가 들리잖아.” 

“노래 소리?” 

“응. 숨바꼭질.” 

꼭꼭 숨어라, 머리카락 보일라. 

단순한 음계의 곡조가 홀로 걸어오는 내내 한울의 귓가에서 떠나질 않았다고 했다. 혹시 아이들이 함께 놀자고 따라붙은 건 아닌지 확인하려 몇 번을 뒤돌아보았지만 하굣길의 학생들은커녕 거리엔 자신 혼자 뿐이라 한울은 점차 무서워졌다. 

“더 이상한 게 있어.” 

반쯤 타들어가는 장초를 내려다보던 상연의 시선이 중얼거리는 한울을 향했다. 

“이제와서 생각해보니 분명 철봉 아래에 서 있던 애는 한 명 뿐이었는데, 나는 왜 여러 명이 함께 놀고 있다고 생각했던걸까.” 

상연은 별 감흥 없이 대답해주었다. 

“술래가 숫자를 셀 동안 다른 애들은 이미 숨어버리고 없었겠지. 아니면 그대로 집으로 가버렸든지. 그게 아니면….” 

“아니면?” 

“처음부터 그녀석, 친구가 없어서 혼자 숨바꼭질을 하고있었다거나.” 

그리곤 자신의 말을 듣자마자 안색이 퍼렇게 질려가는 한울을 재미있다는 듯이 내려다보았다. 덤으로 상연이 휴대폰 액정을 열어 자신의 턱밑에 가져다 대보이자 한울은 경악하며 소리까지 질렀다. 한울에게 닿지 않는 쪽으로 마지막 연기를 뿌린 상연이 히죽 웃으며 한울의 볼을 쿡쿡 찔렀다. 

“우리 한울이는 나이를 헛먹었어요. 놀이터에서 혼자 씩씩하게 숨바꼭질하는 초등학생만도 못하그든요.” 

한울은 상연의 손가락을 쥐어 잡고 부러트리려다 애써 침착하게 대응했다. 

“네가 귀신 무서운 걸 몰라서 그래.” 

그러나 한술 더 떠올리는 건 상연이었다. 

“우리집에도 있는데 모르긴 뭘 몰라?” 

“너, 너네 집에 있긴 뭐가 있어!” 

“네가 좋다고 맨날 뒹굴거리는 우리 집 소파 있잖아. 귀신도 거기를 제일 좋아하거든.” 

“이 새끼가 진짜 보자보자하니까….” 

농락 당하는 것이 하루 이틀은 아니었지만 한울은 오늘 따라 대꾸해 줄 기운이 없었다. 

“하여튼 이상해. 몸도 이상하고, 되게 춥고, 여기 되게 기분나빠.” 

상가의 계단 한켠에 놓인 녹슨 통조림 안에 꽁초를 던져 넣은 상연이 한울의 등허리를 무심하게 두들기며 말했다. 

“조심히 들어가라. 네 뒤에 뭔가가 있는 것 같아도 절대로 말 걸지 말고. 누가 따라오는 것 같아도 그게 나는 아니니까.” 

“이게 끝까지.” 

“아, 엘리베이터 고장 났으니까 플래시 켠 채로 계단 조심히 내려가고.” 

손바닥을 까딱 내보인 상연은 도로 피씨방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일하는 형이 돌아올 때까지 기다려보겠다는 심산이었다. 어두운 계단 아래가 까마득해 보였지만 한울은 그까짓 5층정도 금방이란 생각이었다. 

스슥. 

마치 슬리퍼를 끄는 듯한 소리가 들려 3층쯤에서 멈춰선 한울이 위층을 올려다보았다. 컴컴한 상가 내부에는 인기척이라곤 없었다. 반층 정도 더 내려온 한울이 멈춰서 플래시를 이리저리 비추었다. 상연이 안그런척 배웅을 나와 장난을 치고있는게 분명했다. 코너를 돌아 긴 복도 쪽으로 숨은 한울은 상연을 놀래키려 기다렸다. 그러나 몇분이 지나도 인기척은 없었다. 순간 등골이 오싹해진 한울이 흠칫 놀라 플래시를 켜 사방을 비추었다. 공실 뿐이라 온통 컴컴한 실내가 존재할 뿐이었다. 

한울이 다시 발걸음을 재촉했다. 한층을 더 내려오자 ‘서석’거리는 발 걸음 소리가 또다시 뒤에서 이어졌다. 허나 이번엔 뒤 돌아볼 용기가 나질 않았다. 바짝 따라붙은 발소리에 머리카락이 곤두설 것 같은 순간이었다. 정신없이 달려 1층에 도달한 한울은 현관문 앞에서 거칠게 뒤돌아섰다. 땀인지, 아직 마르지 못한 빗물인지 모를 것으로 온 몸이 흥건해져있었다. 이번에야말로 상연에게 된통 놀림을 당해도 할말이 없을 상황이었다. 최소 3개월감이었다. 

“…….” 

그러나 한울의 등 뒤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조명이 붙어있어야 할 곳에 대신 튀어나온 전선 줄과 끝이 보이지 않는 어두운 건물 안이 한울을 비웃듯 아가리를 벌리고 서있을 뿐이었다. 바깥으로 나와 상연이 있을 꼭대기층을 올려다본 한울은 빗물에 젖어가는 얼굴을 훔치며 천천히 걸음을 뗐다. 휴대폰의 시계는 막 자정을 넘어가고 있었다.

“정한울, 안 왔어?” 

상연은 욱신거리는 관자놀이를 짓누르며 한울의 짝을 향해 물었다. 상연을 제대로 바라보지도 못하는 녀석은 건성으로 고개만 끄덕이며 책에 고개를 파묻었다. 

“결석이라고? 걔가?” 

상연은 납득 안된다는 표정으로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댄 채 생각했다. 윤석민은 그렇다 쳐도 정한울은 지각이나 결석을 할 놈이 아니었다. 매일 같이 뛰놀고 축구하고 게임하고 녹초가 되어서 집에 들어가더라도 홀로 악착같이 밤을 새워서 공부하다가 잠드는 놈이었다. 놈의 지긋지긋한 학구열 때문에 혀를 내두른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는데. 

“…….” 

새벽에 한울을 피시방에서 돌려보낸 이후 잘 들어갔는지 확인 전화를 해야 했는지에 관해 고민하던 상연은 곧 헛구역질을 했다. 한울과 그따위 간지러운 짓을 할 수 있을 리 없었다. 괜히 더부룩한 명치께를 문질러 내리자마자 우당탕! 뒷문 쪽에서 둔탁한 소리가 들렸다. 

“이 새끼 말하는 것 좀 보게? 너 다시 말해봐.” 

주머니에 손을 꽂은 놈이 교실 안쪽으로 굴러떨어진 놈을 발로 밀며 등장했다. 저런 무리는 늘 한결 같았다. 언제나 여럿이서 한놈을 둘러싸고 저들끼리 비웃으며 조롱하는 더러운 습성. 

“새꺄, 갑자기 벙어리 됐어? 얘길 더 해보라고.” 

그게 아니라면, 외로운 쪽의 녀석이 전교생을 배척하기로 마음 먹었든가. 

“…….” 

우수는 새로운 무리와 대립 중이었다. 다행히도 전학 첫날에 맞붙은 것처럼 위험한 부류의 놈들은 아니라 상연은 지난번과는 다르게 시선을 던졌다 거두는 것만으로 소임을 다했다. 하지만 시선은 거두었어도 귀는 열려있었다. 우수의 낮은 미성이 조용한 교실 안을 가로질렀다. 

“그러니까 네 것도 아닌 걸 왜 가져갔어? 남의 걸 탐하면 반드시 벌을 받게 돼.” 

장내가 진공상태만큼 조용해졌다. 그러다 픽, 쪼개기 시작한 녀석을 시작으로 무리의 녀석들이 박장대소를 하며 깍깍대기 시작했다. 

“야 이 새끼 지금 뭐라는 거냐? 너 혼자 드라마 찍냐 지금?” 

상황을 주도하던 놈은 몸을 일으키려는 우수의 이마를 짓눌렀다. 우수는 뒤통수가 바닥에 붙박여 움직이질 못했다. 

“귀신 들린 불쌍한 또라이 새끼한테서 뭐라도 옮아 붙을까 봐 닿기 싫어했던 거지, 네가 무서워서 그랬는 줄 알아?” 

“아, 걍 밟어. 난 이 새끼 눈깔이 음침한 게 존나게 마음에 안 들거든.” 

놈들은 또다시 무자비하게 우수의 몸 곳곳을 짓밟아댔다. 손도 대기 싫은 것처럼 오로지 발을 이용해서 교실 바닥에 콱콱 처박아댔다. 관심을 끄려던 상연이 생각을 바꾸려 할 때였다. 다시 한번 쿠당탕, 누군가가 넘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거리긴 하는 모양인지 우수가 자신의 얼굴을 집중적으로 조준하던 놈의 발목을 붙잡아 당겨 바닥에 구르게 한 것이었다. 우수의 목소리는 흔들리지 않았다. 

“내놔.” 

고작 지렁이의 반격에 당한 것이 분해 죽겠는지 놈은 바닥에 미친 듯 발을 구르며 얼굴을 붉게 물들였다. 

“그러니까 아까부터 자꾸 뭘 내놓으라고 하는 거냐고!” 

하지만 우수는 표정 하나 바꾸지 않고 대답했다. 

“네가 지금 뱃속에 숨기고 있는 거.” 

애매한 단어 선택에 무리의 시선이 모두 놈의 배를 향했다. 평소 과식하는 경향이 있긴 한 모양인지 배가 또래들에 비해 불룩하긴 했다. 

“새꺄, 너 또 뭐 훔쳐먹었냐?” 

녀석의 친구 중 하나가 장난처럼 묻다가 뺨을 후려 맞고는 얼굴을 구겼다. 복부비만이 만천하에 까발려진 놈이 별안간 자신의 주머니를 뒤지기 시작했다. 그리곤 곧 무언가를 손에 쥐는 시늉을 하고선 우수를 향해 꿇어앉았다. 

“그래, 자. 자, 여깄다. 여기 있다고.” 

우수는 제 눈앞에 놓인 주먹을 빤히 올려다보았다. 놈이 과연 우수에게 무엇을 건네줄지가 초미의 관심사가 된 상황이었다. 상연의 눈가가 조금 가늘어지자마자 파악, 맑고 둔탁한 소리와 함께 우수의 고개가 사정없이 옆으로 꺾였다. 그 앞엔 주먹질을 날린 놈의 조소만 남아있었다. 

“이 정신 나간 새끼. 뭘 맡겨놓은 것처럼 자꾸 달래? 어?” 

그러고는 자신의 두터운 배를 붙잡고 꺽꺽 허덕이며 다시 크게 웃어댔다. 우수는 입가에 피딱지를 단채로 바닥을 더듬거렸다. 저만큼 날아가 버린 안경을 찾으려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간신히 벽을 붙잡아 앉은 우수는 제 얼굴 곳곳에 피멍을 선사한 녀석을 향해 버겁게 입을 열었다. 

“남의 제사 음식을 훔쳐먹는 건 좋지 않은 일이야. 그게 네 뱃속에 들어가면 화를 일으킬 거야. 특히나 머릿고기는 너하곤 상극인 음식이니까….” 

“닥쳐, 내가 제일 좋아하는 것만 먹고 살 건데! 왜! 왜! 네가 뭔데 이 지랄이야 왜!” 

“넋을 건지는 데 애를 먹었던 사람이야. 한이 서려있어서 토해내야 돼. 안 그러면 위험,” 

“이 새끼가 진짜 보자 보자 하니까!”

콧김을 뿜으면서 우수에게 다가간 놈이 머리카락을 죄 뜯어 발길 듯 움켜쥐어 당겼다. 치부를 들켰다 생각했기 때문인지 발로 바닥을 구르며 발광하기 시작하는 것은 덤이었다. 우악스런 힘에 몸이 딸려 올라가던 우수는 놈이 손아귀에서 힘을 잠깐 빼자마자 바닥에 엎어져 굴렀다. 이번엔 충격이 컸는지 바르작거리며 쉽게 일어나질 못했다. 

“죽긴 누가 죽어? 내가? 네가?” 

“…….” 

“누가 먼저 죽을 것 같은지, 아직도 모르겠냐?” 

놈은 이죽대며 우수의 머리칼을 다시 움켜쥐었다. 그러나 다음 순간 손이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상연에게 팔을 붙들려 저지당했기 때문이다. 

상연은 오늘 기분이 좋지 못했다. 그게 연이은 친구들의 일신상 사유로 인한 것인지, 눈앞에서 고통스러운 얼굴로 질질 끌려다니기만 하고있는 답답한 녀석 때문인지는 알 수가 없었다. 

상황에 균열이 생기자마자 재빠르게 바닥을 더듬어 기어간 우수는 허겁지겁 자신의 안경부터 쥐어 썼다. 부서진 렌즈 너머로 상연과 눈을 맞춘 것 같았지만 찰나였다. 저 따위 렌즈라면 세상 무엇을 비추더라도 온통 거미줄 낀 세상 같지 않을까. 생각하던 상연은 가슴에 뭔가가 얹힌 것처럼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우수만 붙잡아 족칠 생각인지 성질 더러운 녀석은 상연에게 붙들린 상태로도 눈이 돌아 연신 씩씩 거렸다. 

“새꺄 어딜까, 대답하라고! 계속 기어오를지, 아님 오늘처럼 바닥이나 기어 다닐지. 야, 대답 안 해?” 

이놈도 낌새가 이상하기는 했다. 평소에도 그다지 정상적인 놈은 아니었지만 오늘따라 상태가 더 불안정해 보였다. 발발 떨리고 있는 몸은 땀으로 흥건하여 상연의 손아귀에까지 축축함이 전해졌다. 붙잡은 어깨를 비틀어 빼줄까 생각하던 상연의 귓가에 상황이 종결되는 소리가 들렸다. 

“다들 앉아.” 

시종을 알리는 것조차 듣지 못할 정도로 혼란했던 교실은 담당 수업 교사의 등장으로 금세 분위기가 가라앉았다. 상연은 갑자기 통증이 일기 시작한 눈두덩을 손바닥으로 짚어 눌렀다. 아무래도 밤새 지속된 두통이 안구에도 영향을 미치기 시작한 것 같았다. 교사는 남의 밥상 위에 올라간 반찬보다도 관심 없는 표정으로 교실 뒤편의 소란을 향해 말했다. 

“앉으라고 두번 말했다.” 

그것이 듣는 이 없어도 수업은 해야만 하는 이사장의 아들 겸 국어 선생인 그가 해내야만 하는 역할이었다. 그는 유독 꼴이 엉망인 우수를 내려다보며 한숨을 쉬었다. 모두가 제 자리를 찾아간 곳에 우수만 홀로 엎드려 바르작대고 있었다. 

“전학생. 넌 대체 언제까지 이렇게 겉돌래? 친구들 하고 사이좋게 지내랬잖아.” 

결국 모든 책임을 뒤집어쓴 우수가 복도에 홀로 무릎꿇림으로서 상황은 정돈 되었다. 박우수는 그 어떠한 변명의 의지도 없이 자신에게로 들이닥칠 미움을 기다리는 모습이었다. 상연은 우수를 더 걷어차지 못해 미쳐 날뛰던 놈이 마지못해 제 자리로 향하는 것을 지켜본 후 가장 마지막으로 착석했다. 그 상태로 흘끔, 창 너머 복도의 우수를 바라봤다. 고개를 바닥에 처박은 채로 무용지물이 되어버린 안경이나 만지작 대고 있는 꼴이 한심했다. 

‘그러게 우길 걸 우겼어야지. 못 먹는 것 빼곤 다 먹는 놈한테 배 속에 있는 걸 게워내라고 하다니, 짐작하긴 했지만 보기보다 더 골때리는 놈이네.’ 

아예 턱을 괴고서 우수의 행동거지를 관찰하기 시작한 상연은 초연하게 교실 바깥으로 쫓겨나던 녀석의 입에서 나지막이 흘러나오던 목소리를 몇 번이고 되새겼다. 

‘…바닥에 기어 다니게 될 사람은 너야.’ 

상연은 매우 예민한 상태였다. 학교에서 틈틈이 눈을 붙여보려 했지만 엎드려 누웠던 짧은 순간에도 가위에 눌리고 말아 뒷자리에 앉은 녀석에게 깨워져야 했다. 기분이 종일 바닥을 치고 있었다. 너구리굴 같은 피시방 뒤켠 골목에서 끽연을 즐기던 상연의 선배 하나가 물었다. 

“자리 옮길 건데, 같이 안 가냐?” 

그는 대학을 휴학하고 입대를 생각 중이라 내일이 없는 상태였다. 휴대폰만 들여다보던 상연에게서 말이 없자 그가 덧붙였다. 

“애인이야 뭐야? 평소엔 연락도 안되던 새끼가 폰을 끼고 사네.” 

친구가 아픈 것 같다고 말하려던 상연의 피로한 목소리는 곧 선배의 뒷말에 파묻혔다. 

“야. 건물 꼬락서니를 봐라, 아무도 안 와 여기. 네 친구 그냥 얻다가 머리 잠깐 박아서 이상해진 거야, 미끄러졌거나. 그래놓고 쪽팔리니까 말 못하는 거고.” 

“들어가요, 형. 나중에 전화할게.” 

딱한 처지의 이웃을 바라보는 표정으로 상연의 어깨를 다독인 선배는 마지막 연기를 뿜고는 사라졌다. 머리카락을 헝클어뜨린 상연이 한숨을 내쉬며 건물을 올려다보았다. 3층쯤에 홀로 흐릿하게 들어와 있는 누런 전구가 느리게 껌뻑이고 있었다. 

“원래 전기가 들어왔던가?” 

한숨을 내쉬며 움직이던 상연이 멈칫, 걸음을 멈추었다. 불안정한 전등 아래로 흐리게 머물렀다 사라지는 실루엣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쏴아아- 

전날만큼이나 거센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어두침침한 복도와 계단은 언제 마지막 청소를 했는지 모를정도로 새카맣게 오염되어 있었다. 윤석민 같은 미친놈이 아닌 이상 누구도 게임 좀 하겠다고 이곳을 제 발로 걸어 올라갈 것 같지 않았다. 

따닥, 딱. 

문제의 3층에 도달하기 직전 2층의 계단에 서서 상연은 제 귀에 들리는 작은 소음이 창을 때리는 빗소리인지 다른 소리인지를 구별하려 애썼다. 장우산을 짚고 선 손아귀에 힘이 들어갔다. 

타닥, 따닥. 

정체를 알 수 없는 소리는 출처가 불분명했다. 계단보다 더 어두운 복도 안쪽으로 시선을 옮긴 상연은 전부 폐점된 상가뿐이란걸 확인하곤 느리게 돌아섰다. 

딱……. 

마치 상연의 움직임을 지켜보는 것처럼 박자 맞추어 나는 소리가 거슬렸다. 

“누구야?” 

날카롭게 소리 지른 상연은 손에 쥔 우산을 몽둥이로 쓸 요량이었지만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했다. 음산한 조명이 껌뻑이고 있는 3층에서도 그림자의 주인은 만날 수 없었다. 징, 소리를 내던 전구는 결국 수명을 다해 꺼졌다. 5층에 도달해 참았던 숨을 몰아쉰 상연이 피씨방으로 들어섰다. 

“형, 어제는 바쁘셨나 봐요. 안 계시던데.” 

석민의 사건으로 안면을 트게 된 카운터 심야 아르바이트생은 살가운 상연의 물음에도 묵묵부답이었다. 

“형.” 

돌아선 채 무언가를 보고 있는 그의 등이 미동조차 없었다. 

“괜찮아요?” 

상연은 직원의 동태를 곁눈으로 살폈으나 그는 마치 마네킹처럼 움직임이 전혀 없었다. 일이 많아 바쁜 거라고 믿기엔 오늘도 장내에는 손님이 한명도 없었다. 시큰한 냉기에 에어컨의 온도가 지나치게 높다는 생각이 들어 온도를 높이려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에어컨처럼 보이는 기기는 없었다. 

‘원래 없었나?’ 

이상한 일이었다. 기계가 아니고서야 이 열대야에 소름이 돋을 정도로 비정상적인 냉기를 설명할 수 없었다. 미간을 좁힌 상연이 카운터를 돌아 들어가 직원의 얼굴을 확인하려 할 때였다. 

깡! 따그라라라락…. 

바깥에서 날카로운 소음이 들렸다. 피시방 문을 닫고 나오자마자 후텁지근한 기운이 피부를 흠뻑 감쌌다. 복도를 달리다 화장실 문을 지나친 상연이 미끄러지듯 멈춰서서 돌아섰다. 신경질적으로 벌컥, 밀고 들어간 화장실마저 조명이 없단 사실을 알아챈 상연이 한숨처럼 말했다. 

“건물 관리를 대체 어떻게 하는 거야.” 

어둑한 시야에 적응이 되자마자 화장실 내부가 시야에 어스름하게 들어왔다. 분명 막대기가 떨어져 구르는 소리였다. 그런 소리를 낼 만한 공간은 타일 바닥이 있는 이곳 화장실 뿐이었다. 

“분명, 여기서 들렸는데.” 

상연이 발소리를 죽여 걸음을 옮기자마자 구석 어딘가에서 소름이 끼치는 소음이 들렸다. 

까드득, 토독. 

심장을 찔린 것처럼 놀란 상연은 애써 침착하게 소리가 들린 쪽으로 몸을 비틀었다. 

까득, 까가각…. 

빛 한점 새어들지 못할 정도로 가장 어두운 구석의 모서리에 누군가 웅크려 앉아있었다. 둥그런 등 때문에 동물인가 생각도 해봤지만 눈을 감았다 뜬 상연의 시야에 들어온 것은 허여멀건 얼굴이었다. 헉, 숨을 몰아쉰 상연이 굳어 섰다. 눈을 여러번 깜빡이며 눈앞에 있는 얼굴을 몇 번이나 확인했으나 아는 얼굴이었다. 

“박… 우수?” 

식별된 녀석은 마치 누군가가 자신의 뒤를 쫓아 여기까지 올 것을 예상했다는 표정이었다. 황급히 도로 고개를 돌려 구석에 처박고는 연신 까각거리는 소리를 냈다. 가까이 다가가서 본 박우수의 행색은 가관이었다. 흡사 며칠 굶은 사람처럼 부서진 사탕 조각을 허겁지겁 입안으로 밀어 넣고 있었다. 딱딱한 덩어리가 치아에 닿아 부서지는 소리가 이질적으로 느껴졌다. 대체 네가 왜 여기에 와 있냐고 물으려던 상연은 다시 한번 마주친 시선에 몸을 굳혔다. 

우수가 갑자기 배시시 웃었기 때문이다. 깨져 박살 난 안경이 없는 얼굴은 생소했다. 웃고 있는 입매 때문인지 처음보는 사람처럼 낯설게 느껴졌다. 

‘낯설다고?’ 

낯설 만큼 친밀해진 적도 없었으나 그동안 봐온 녀석이 아니란 것만은 본능이 확실하게 알려주고 있었다. 

상연은 뒤통수를 한 대 맞은 듯한 느낌에 헛웃음을 삼켰다. 제가 아는 반경의 사람들 중 이렇게 웃을 줄 아는 사람은 없었다. 기이한 웃음을 눈과 입꼬리에 매달고 있는 이 녀석은 급식실에서 모자란 짓을 하던 녀석도, 교실에서 돌변하던 녀석도, 린치를 당하면서도 날카롭게 굴던 평소의 녀석도 아니었다. 빙그레 웃던 우수는 이제 사탕을 먹는 행위에서 온전히 관심을 상연에게로 옮긴 듯한 모습이었다. 

“안녕?” 

놈은 이상행동을 보였다. 상연의 머릿속이 급박히 혼란해졌다.

‘먼저 인사를 한다고? 나한테?’

초점이 없는 눈이 분명 상연을 향하고 있었다. 뇌 속에서 울리는 경광등은 상연에게 당장 이 불쾌하고 음산한 곳에서 뛰쳐나가기를 주문하고 있었다. 하지만 발이 바닥에 붙어버린 것처럼 움직이질 않았다. 생긋 눈을 접어 웃는 박우수라니 제정신이 아닌 게 확실했다. 내뱉은 말은 더더욱 가관이었다.

“오빠도, 여기 살아?” 

어떤 말을 해야 할지 몰라 마른침을 삼키는 상연의 목울대가 울렸다. 단내를 풍기며 코앞까지 다가온 녀석은 박우수가 아닌 전혀 다른 누군가였다. 움직이지 않으려는 손을 애써 들어 올린 상연이 머뭇거리며 우수를 향해 손가락을 뻗었다. 붙잡아 다시 패주더라도 제정신이 돌아오도록 만들어야만 했다. 

“너….” 

우수의 뺨에 손가락이 닿는 순간 덥석, 상연은 녀석에게 손을 붙잡혔다. 이후로는 믿을 수 없는 행위가 계속되었다. 마치 자신을 주워가주길 바라는 길고양이처럼 박우수는 자신의 뺨을 상연의 손바닥에 밀착하여 비벼댔다. 그러다 코와 입이 닿는 순간 상연은 손가락을 말아쥐며 재빨리 손을 물리려 했다. 그러나 상연의 손목을 움켜쥔 우수가 조금 더 빨랐다. 우수는 눈을 감은 채 상연의 손을 다시금 끌어다 얼굴을 파묻었다. 상연의 손바닥을 입술로 짓누르다가 곧 혀를 내밀어 핥기 시작했다. 

“진짜 죽고 싶….” 

냐고 물어보려던 상연의 표정이 표정이 미미하게 무너지기 시작한 것은 자신을 집요하게 올려다보고 있는 우수의 눈동자와 눈이 마주친 순간부터였다.

보기좋게 휘어진 눈매, 적당히 벌어진 입가. 박우수는 즐겁다는 듯이 싱글거리고 있었다. 반대로 상연의 미간이 좁아졌다. 간지러운 느낌과 이상한 상황의 괴리감이 뒤얽혀 마음이 복잡해졌다. 당황한 상연의 얼굴을 즐기는 것처럼 우수는 대담하게도 상연의 쪽으로 조금 더 밀착해왔다. 

“괜찮아. 무서워 하지 마.” 

빙글빙글 웃으며 말하고 있는 상대는 녀석이지만 녀석이 아닌 무언가였다. 속절없이 뒷걸음만 치던 상연은 가까스로 정신 줄을 붙들었다. 

‘혹시 윤석민 그 자식도 여기에서….’ 

지척까지 다가온 우수의 한쪽 손이 상연의 뺨을 붙들었다. 딸기 맛이 나는 사탕의 단내가 훅 끼쳐왔다. 

“응? 겁먹지 말라니까?” 

우수와 눈을 맞춘 상연이 천천히 자신의 손을 올려 우수의 다른 쪽 손아귀를 비틀어 내렸다. 그러자 주먹 안에 쥐고 있던 사탕 조각들이 떨어져 흩어졌다. 순식간에 낯빛이 변한 박우수가 바닥을 기듯 몸을 굽혔다. 처음 화장실에 들어왔을 때와 같이 옹송그린 놈은 바스러진 사탕 조각을 찾기 위해 재빨리 움직였다. 그 더러운 걸 손에 쥐어 허겁지겁 입으로 가져가려는 걸 목격한 상연이 재빠르게 움직였다. 

“싫어! 만지지 마!” 

우수의 손을 붙잡아 녀석의 손아귀에 남아있던 나머지 부스러기마저 전부다 바닥에 털어내자 녀석은 몸을 비틀며 발악하기 시작했다. 

“싫어어. 싫다구! 이러지 마 오빠아, 이거 놔!” 

누군가가 잘못 본다면 오해를 살 것 같은 상황이었다. 상연을 기가 차게 한 것은 가련하게 쥐어 짜내는 목소리와 달리 여전히 비싯거리며 웃고 있는 음흉한 눈빛이었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지금 이곳엔 난처한 소녀를 구해주러 달려올 사람이 없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모를 상황을 자신에게 유리하게 끌어 쓰기로 한 상연은 더러운 바닥에 구르는 사탕 조각을 주워다 아예 창밖으로 흩뿌렸다. 그러자 순식간에 녀석의 안색이 파리하게 변했다. 

“안돼. 안돼.” 

연이어 박우수는 사탕이 사라진 창가 쪽으로 향하기 위해 갑자기 화장실 벽면을 타고 올랐다. 심지어는 사람 머리밖에 들어가지 못할 것처럼 보이는 조그만 창틀을 붙잡고 기어이 몸을 욱여넣으려 했다. 그대로 두면 정말로 창밖을 비집고 나가 건물 바깥으로 떨어져 버릴 것 같아 상연이 급한 대로 우수의 뒷덜미를 붙잡아 당겼다. 녀석을 끌어내리자마자 거세게 벽에 밀어 붙이자 어린애 같은 비명이 터져 나왔다. 

“으아아!” 

끝까지 온 힘을 다해 저항하는 우수를 붙잡아 다소 거칠게 제압한 상연은 그대로 세면대에 녀석의 머리를 들이밀고 허리를 찍어 누르며 위협했다. 조금만 더 숙였더라면 수도꼭지에 안구가 짓눌렸을 상황이었다. 

“정신 안 차려? 네가 그깟 사탕 쪼가리에 눈 돌아갈 놈이야?” 

“…….” 

“아까 학교에서처럼 실컷 얻어 터지고 정신 차릴래? 아님, 냉수마찰?” 

고개를 처박히고도 버둥거리던 우수의 움직임이 급작스레 뚝 멈추었다. 버겁게 허덕이던 호흡이 점차 규칙을 찾을 때까지 상연은 긴장을 늦추지 않았다. 비틀어 쥔 우수의 손목이 서서히 반항을 덜고 얌전해졌다. 거울에 비친 제 얼굴을 확인한 우수가 이젠 숨까지 멈추었다. 바깥의 가로등 빛이 느슨히 흘러들어 거울에 반사되었다. 상연과 우수의 기묘한 자세가 횡으로 붙은 세면대 위의 거울에 적나라히 비치고 있었다. 

“똥 씹은 표정을 하는 걸 보니 정신이 돌아왔나 보네.” 

호흡을 고르던 상연이 낮게 말하자 우수는 혼란이 얽힌 눈동자를 쉼 없이 움직였다. 그러고는 곧 상황을 인지한 모양인지 눈을 질끈 감고 한숨 같은 목소리를 냈다. 

“…놔줘.” 

한번 데인 상연이 우수를 쉽게 믿지 않자 우수는 다시 한번 기어들어 가는 소리로 말했다. 

“정신이… 돌아온 것 같으니까 놓아달라고.” 

상연의 손아귀에서 몸을 비틀어 빠져나온 우수가 급박하게 몸을 바닥으로 굽혔다. 방금 전과 같은 행위를 하려는 줄 알고 상연이 잠시 긴장했으나 우수의 목표는 다른 곳에 있었다. 컴컴한 화장실 어딘가에 떨어져 있을 자신의 소지품을 더듬더듬 찾고 있었다. 축구하던 본능으로 부서진 안경을 먼저 찾아낸 상연이 그것을 패스하듯 뒤로 밀어내 발치로 주워 들고는 우수에게 물었다. 

“이거 찾아?” 

안타까운 형체로 박살 난 안경알과 덜렁이는 한쪽 안경다리를 보고 제 것임을 확신한 우수가 상연의 눈치를 흘끔 보았다. 난처한 얼굴이었다. 본의 아니게 이 녀석의 다채로운 얼굴을 구경하게 되어 상연은 기분이 묘했다. 손을 뻗어오는 우수에게서 약 올리듯 안경을 거둬간 상연이 입을 열었다. 

“방금 내 욕했지.” 

“내가 한 거 아냐.” 

“핑계 좋네. 무조건 귀신이 했다고 우기면 되는 건가?” 

“아까 그 녀석은 질이 나쁘니까 안 좋은 일에 엮이기 싫으면 너도 빨리 여기서 나가는게 좋을 거야.”

“협박인지 부탁인지 확실히 해.”

“…….” 

“무당이야?” 

불쾌한 벌레를 본 것 같은 상연의 표정을 마주 보지 못한 우수가 서서히 고개를 떨구고는 죄인처럼 숙인 고개를 저었다. 

“질이 괜찮은 악귀도 존재해?” 

내친김에 궁금한 것을 덤으로 물어보았지만 우수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조금 머뭇거리더니 예의 음침하고 차가운 얼굴로 돌아와 중얼거렸다. 

“너는 별로 놀라지 않네.” 

상연은 잠시 속내를 들킨 것 같은 기분이 들었지만 너스레를 떨었다. 

“고맙단 말까진 바라지도 않는다.” 

“나 혼자 해결할 수도 있었어.” 

“퍽이나.” 

처음 겪어보는 상황 때문에 아직 심장이 두근거렸지만 상연은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침착을 가장했다. 

“너, 어제도 왔었지? 여기에.” 

우수는 상연이 물었음에도 대꾸가 없었다. 상연은 이마에 흥건한 땀을 닦아 내리기만 하는 우수를 다시 채근했다. 

“두 번씩 물어야 하냐?” 

“…….” 

“석민이한테 무슨 일이 생겼던 날 학교에서 네가 내 멱살 잡았잖아. 어떻게 할 거냐고. 이제 대답해봐, 내 친구가 왜 그렇게 됐는지.” 

난처한 얼굴인지 귀찮은 얼굴인지 그게 아니라면 일련의 힘 싸움 때문에 지친 것인지 모를 우수가 어두운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내 친구가 죽어버릴지도 모른다고 했던 거 기억 못하기만 해 봐.” 

초조한 상연과 달리 우수는 여전히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린 채 묵묵부답이었다. 절실한 쪽은 상연이었기에 말이 많아졌다. 

“네 말대로 윤석민 병실에 찾아갔었어. 정신 차리라고 말 하러 갔는데, 이미 늦은 것 같더라. 병원에서도 이유를 모른다고 하고.” 

상연은 입을 꾹 다물고 있는 박우수의 얼굴만 보면 자꾸만 반감이 생겼다. 말을 오래도록 고르고 있는 우수를 알리 없는 상연이 먼저 인내의 끝을 맞이하려는 순간 우수가 머뭇거리며 입을 뗐다. 

“내가 그런 거 아니야.” 

괜한 화풀이를 제게 하지 말라는 소리로 들렸다. 남들이 어떻게 보든 뭐라고 하든 별로 상관치도 않는 것처럼 행동하던 놈에게서 처음으로 목격하는 의외의 모습이었다. 말라비틀어져 희게 일어난 입술을 뜯기 시작한 우수를 향해 상연이 조금의 간절함을 담아 말했다. 

“네 탓을 하려는 게 아냐. 해결책이 있다면 제시해봐.” 

상연의 머릿속에 석민과 한울의 얼굴이 스쳤다. 상연이 본 게 확실하다면 이 녀석은 자신과 마찬가지로 그저 귀문이 열려 고통받는 놈일 뿐이었다. 일상생활은커녕 사회에 제대로 적응조차 해내지 못할 불쌍한 녀석을 종용하고 몰아붙여 봐야 역효과일 것 같기는 했다. 상연은 매사 둥글게 살아온 자신이 전학생 하나 때문에 동요하는 게 싫었다. 한숨을 짧게 내쉰 뒤 답없는 공간에서 벗어나려 할 때였다. 아직 상태가 불안정한 박우수가 씹어대던 입술을 천천히 움직였다. 

“여…자아이를 흉내 내고 있는 남자아이야. 오, 오히려 남자애가 훨씬 더 저질스러운 짓을 하기도 하는데…….” 

선 자리에서 온 몸을 떨어대는 우수의 상태가 방금 전보다 훨씬 나빠 보였다. 우수는 온몸을 격렬하게 떨고 있었다. 분주히 올라왔다 내려오기를 반복하는 우수의 손이 상의를 벗으려 하다 잡아 내리기를 계속했다.

“왜 이래. 추워?” 

물으며 상연은 우수에게 본능적으로 손을 뻗었지만 자신의 교복 셔츠 끝자락을 마지막 동앗줄마냥 꽉 붙잡고 떨어대는 걸 보고는 잠시 머뭇거렸다. 바들거리는 입술로 박우수는 연신 중얼거렸다. 

“아, 아냐. 아직, 아냐. 안 돼. 안 돼, 안….” 

상연은 아직 우수의 상태가 온전치 못하단 걸 알 수 있었다. 이대로 두었다간 바로 전에 무언가에 먹혔던 상태로 돌아갈게 뻔했다. 이미 자신의 교복 셔츠 자락은 벗어 바닥에 내던지고 있었으며 그걸로도 모자라 안에 받쳐입은 티셔츠 자락 까지 뒤집어 벗으려 하고 있었다. 허여멀건 복부가 반 이상 드러나자 박우수는 땀을 비 오듯 흘려대며 말했다. 

“제…발 부탁이야. 제발 가만히 좀 있어줘….” 

눈을 질끈 감은 채 온몸이 땀범벅이 되어 자신과의 싸움으로 사투를 벌이던 우수가 갑자기 눈을 커다랗게 홉떴다. 상연이 별안간 우수의 팔을 거세게 붙잡았기 때문이다. 

거칠게 우수를 끌어당긴 상연이 그대로 우수를 품에 안았다. 단단한 어깨에 코와 입이 파묻혀 굳어버린 우수는 쉼없이 경련하는 자신의 몸 때문에 눈을 질끈 감았다. 그럴수록 상연은 우수를 안은 양팔에 거세게 힘을 주었다. 몸이 쥐어 짜일 듯이 압박되어 우수는 머리로 가는 혈류마저 압착 당한 것과 같은 착각을 느꼈다. 

이게 무슨 민폐인지 알 수가 없었다. 어쩌다 이렇게 되어버린 걸까. 아무 관계도 없는 사람이 말려들어선 안 되는데. 우수는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원래도 정상인의 범주에선 거리가 먼 우수였으나 근래 정신이 끊기는 시간이 점점 더 길어지고 있었다. 정신 나간 것처럼 떨어대는 우수 때문에 우수를 꼭 끌어안은 상연의 몸마저 함께 떨리고 있었다. 

‘이 녀석은 관계없어. 빨리 집으로 보내야 해.’ 

사시나무 떨리듯 떨어대는 손을 들어 올린 우수가 생각 끝에 상연을 밀어내려 할 때였다. 갑자기 눈앞에서 번쩍, 무언가가 점화되었다. 

어릴적, 우수가 악몽이나 환영에 시달릴 때면 어머니는 늘 우수의 눈앞에서 성냥불을 켜주었다. 그러한 절차는 꼭 암흑 속에서만 이루어지곤 했는데 공포에서 기인한 딸꾹질을 멈추지 못하는 우수를 위해 쓰는 비책이었다. 마찰음을 내고 파앗 소리를 내며 타오르는 불빛은 노랗고 따뜻하게 어둠을 물들여 나갔다. 어머니의 손안에서 타오르는 성냥불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을 때면 컴컴한 사위가 서서히 원래대로 돌아오곤 했다. 외진 구석으로 도망쳐 삿된 것들을 피해 웅크리고 앉아있던 우수는 그제야 눈을 떠 바깥으로 나올 수 있게 되었다. 

보이지 않던 마당의 꽃밭도, 저 멀리 논밭도 비닐하우스도 비가 갠 쾌청한 하늘도 모두 잘 보였다. 그때만큼은 안경을 쓰고있지 않아도 되었다. 낡지만 포근함을 주는 방안의 집기들도 그제야 온전히 바라볼 수 있었다. 그렇게 불이 켜진 세상이 반가워 이것저것 만지며 딸꾹질이 멈춘 줄도 모르고 뛰어다닐 때가 있었다. 

“…….” 

우수는 벌벌 떨려대던 제 몸이 더 이상 경련을 일으키지 않는단 걸 알았다. 시야는 더이상 뿌옇거나 흔들리지 않았다. 역한 단내 대신 맡기 좋은 비누향이 콧속을 간질였다. 창밖으로 낡은 건물을 때리는 빗소리만이 질척이고 있었다. 

비에 젖어 오들오들 떨어대는 우수의 몸 위에 커다란 수건이 내려앉았다. 주경은 조만간 상연이 올 줄은 알았지만 이런 새벽에 들이닥칠 줄은 몰랐던 것이다. 

“누구야? 이 귀여운 친구는.” 

주경의 물음에 상연이 젖은 머리카락과 어깨를 대충 털어내다 말고 우수를 바라봤다. 우수는 소파의 모퉁이에 움츠려 앉아있었다. 

“그냥.” 

대답한 상연이 귓가를 긁적이자 주경이 팔짱을 끼우고 다가왔다. 

“그냥이라니? 친구한테 그냥이 뭐야.” 

“같은 반이야. 어쩌다가 오는 길에 만났고.” 

“이 시간에? 어딜가서 뭐하다 오는 길이길래?” 

비는 폭포수처럼 퍼부어댔고 새벽이라 버스도 없고 택시도 잡히지 않아 상연은 가장 가까운 지인의 집에 들이닥칠수밖엔 없었다. 주경이 운영하는 사주·타로 카페는 외진 곳에 있는 데다 간판이라곤 없어 알음알음 찾아오는 여자 손님들만 받고 있었는데 입구를 찾기 어려워 오래간만에 방문하는 상연은 문 앞에서 한참을 헤매다 겨우 들어온 참이었다. 

“코코아 좋아하니? 아님 커피?” 

주경은 대답 없이 손바닥 닦기에 열중인 우수를 향해 재차 물었다. 

“그냥 우유줄까?” 

뒤늦게 지목을 받았음을 느낀 우수가 멈칫거리며 쥐고있던 물티슈를 내려놓고는 말했다. 

“물, 주세요.”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는 뜨거운 보리차가 담긴 잔을 받아들고서도 감사하다는 말을 잊지 않았다. 주경은 우수를 흥미롭게 바라보다 물었다. 

“근데, 그 안경. 앞이 보이니?” 

“…….” 

“줘봐. 닦아줄게.” 

우수는 결국 처참한 안경을 제 품에 숨기고야 말았다. 누구에게도 넘겨줄 수 없다는 입장임이 분명했다. 

눈에 띄게 사람을 피하려는 우수의 모습 때문에 혼란스러운 것은 상연이었다. 전학 와 민머리 녀석들에게 밟힐 때, 악바리처럼 윤찬에게 달려들 때와 석민의 일로 자신의 멱살을 잡을 때, 그리고 사탕을 살벌하게 씹어 삼키며 다가올 때의 우수가 여러 겹 겹쳤다. 그러고 보니 학교에서부터 내내 괴롭던 두통이 언젠가부터 잦아들어 더 이상 머리가 아프지 않았다. 

“그렇게 안 생겨선 오지랖만 넓어가지고.” 

상연이 자기 얘길 하는 줄도 모르고 우수는 그저 뜨끈하게 김이 피어오르는 찻잔을 천천히 홀짝거릴 뿐이었다. 무심한 옆모습을 빤히 바라보다 정신 차린 상연이 고개를 저으며 자신의 머리카락 사이에 손가락을 넣어 마저 털었다. 단지 저 이상하고 거슬리는 안경을 걷어 치워주고 싶을 뿐이었다. 

주경이 자리를 비켜주자 향초가 몇 개 켜진 테이블 사이엔 상연과 우수만 남았다. 먼저 입을 뗀 것은 상연이었다.

“그러니까, 네 안에 있는 그 변태 같은 남자애를 위로해서 좋은 곳으로 보내줘야 한다는 거잖아.” 

“…….” 

“무당이 하는 짓이랑 똑같은데.” 

상연이 말하자 우수가 시큰둥하게 대답했다. 

“무당에게 부탁해도 돼.” 

“그럼 정한울이랑 윤석민은?” 

“어떻게든 되겠지.” 

“뭐?” 

“…….” 

“네 친구 아니라고 말 막하기냐.” 

친구가 없는 것은 사실이었으므로 우수는 별다른 대꾸를 하지 않았다. 머릿속에서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가 의외로 투명하게 읽히는 우수를 상연은 잠시간 빤히 바라보았다. 우수는 찻잔을 만지작 거리며 느리게 입을 뗐다. 

“그냥 정신을 차려보니 거기에 가 있었어. 난 그런 적이 많으니까 또 누군가가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날 어디론가 데려왔구나 싶었지.” 

상연은 그저 조용하게 우수의 뒷말을 기다렸다. 

“그 건물에 가려고 했던 건 아냐. 꼭대기 층에 있는 게 피시방인 줄도 몰랐어. 네 멱살을 잡았던 것도 사실은 기억이 안 나.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제정신이었다면 너한테 먼저 말 걸지 않았을 텐데.” 

우수가 말을 멈추자마자 쿠쿵, 천둥소리가 들렸다. 이어 또 한 번 하늘이 쪼개지는 소리와 함께 번갯불이 번쩍 실내를 비추고 사라졌다. 격렬히 흔들리는 촛불 때문에 조금 열려있던 창문을 닫으려 일어선 상연은 흠칫 놀랄 수밖에 없었다. 

언제 일어선 건지 우수는 상연의 등 뒤를 응시하고 있었다. 동공이 풀려 넋 나간 상태로 박우수가 다시 중얼거렸다. 

“나……그만 가야겠다. 여기에 더 있다간….” 

성큼 다가가 벌벌 떨어대는 우수의 손을 본능적으로 붙들어 잡은 상연은 고개를 돌려 우수가 바라보고 있던 등 뒤의 창밖을 돌아보았다. 타로의 ‘로’자가 차지하고 있는 창문 바깥엔 그저 줄줄 흘러내리고 있는 빗줄기 뿐이었다. 우수가 또 뭘 봤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상연도 더이상의 피곤한 일은 질색이었다. 우수의 어깨를 짓눌러 앉힌 상연이 말했다. 

“못 가, 지금은. 너 지금 나가면 귀신 밥 될걸.” 

좀처럼 진정하지 못하는 녀석을 다시 끌어안아 줘야 하나 진지하게 고민하는데 자러 들어간 줄 알았던 주경이 나타나 암막 커튼을 쳐버렸다. 

“여기가 어딘 줄 알고 이 시간에 무턱대고 나가겠대? 물에 젖은 생쥐들 같은 거 애써서 다 말려놨더니, 누나 헛수고 시키지 마라.” 

자신의 양손을 붙들어 매 테이블 아래로 꾹 쥐고 있는 우수의 죄인 같은 모습이 또다시 상연의 짜증을 불러 일으켰다. 

“말 해. 또 그런 게 네 몸속에 들어오려고 하면.” 

불안정하게 구르던 우수의 눈동자가 상연의 목소리에 반응했다. 도대체 네가 무슨 상관인거냐고 우수의 눈이 묻고 있었다. 

“내가 안 보이게 해줄 테니까.” 

마치 엄청나게 놀라운 이야기를 들은 것처럼 우수가 눈을 크게 깜빡였다. 

먼저 소파에 드러누운 상연이 눈을 감고 잠을 청했다. 맞은 편 소파에 앉아 꿈지럭 대던 우수는 곁에 다가온 주경이 머리를 몇 번 쓰다듬어주자 천천히 잠에 빠져들었다. 

“불쌍해라. 너무나 지쳐있어.” 

소파에 몸을 구기고 누운 우수의 몸에 담요를 덮어준 주경은 난처한 웃음을 얼굴에 걸고서 상연을 향해 덧붙였다. 

“어쩌냐, 상연아. 너 몸조심 해야할 것 같은데?” 

잠든 척 하던 상연의 눈썹이 조금 꿈틀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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