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리우스는 실신한 지 이틀만에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그의 정신을 잃고 쓰러진 시간동안, 꿈속에서 계속 그의 요정왕의 헤맑은 웃음소리와 목소리가 들려 왔다.



죽은 지 얼마 안되서 그런지 변성기를 채 거치지 못한 어린 소년의 앳된 목소리는 바로 옆에서 들리는 것처럼 생생하게 들려 왔다.




'율! 사랑해!'



율리우스는 실신해 눈을 감고 있었음에도 계속 눈물을 흘렸다.




- 사랑해...율리우스...너만을 사랑해..




5년전 들었던 제롬의 목소리가 계속  율리우스의 귓가를 맴돌았다.


소년의 목소리는 끊임없이 율리우스의 텅빈 공허한  가슴을 맴돌며 가을바람에 땅위의 낙엽들을 휘몰아치듯 작은 회오리를 일으켰다.



뜨거운 눈물이 뺨을 타고 흘러내려 누워있는 율리우스의 하얀 베게보를 얼룩 덜룩 젹시었다.


가슴이 찢겨나가는 고통에 견딜수 없어 그는 마침내 자리에서 일어났다.


충직한 수하 루이즈 캡쇼는 율리우스가 누워 있는 동안,아라곤 제국과 저 멀리 에투아니아 본국까지 수소문해서 용하다는 용한 의원들은 다 수소문해서 데려 왔다.


모든 의원들이 율리우스의 환청현상을 설명하지 못했다.


그들은 모두 율리우스가 알콜중독에 의한 후유증과 금단 현상이라고만 말했다.


하지만 율리우스는 여전히 제롬의 죽음을 믿을 수 없었다.


이미 장례식까지 끝난 공식적인 에드워드5세의 사망 공표에도 불구하고, 율리우스는 의구심을 버릴 수 없었다.


율리우스는 제롬의 임종의 순간에도 그 자리에 없었고, 심지어 그의 시체조차 직접 육안으로 확인한 적이 없었다.


비록 저질체력의 연약한 몸이었지만, 지금이라도 그 숨막히게 아름다운 작은 얼굴로 활짝 웃으며 바로 달려올것 같은 느낌에 율리우스는 수시로 사방을 둘러 보았다.



모종의 음모가 왠지 저 깊은 어둠속에 숨어 있을 것같다는 의심과 마지막 미련섞힌 '희망'이 가슴 한구석에서 서서히 고개를 디밀며 올라 왔다.



그래서 율리우스는 금방 기운을 차렸고, 타고나길 건강체질인 그는 금방 몸을 회복하고 병석에서 훌훌털고 일어났다.



그는 가장 믿는 루이즈 캡쇼를 비롯한 측근 5명만 데리고 브리태니아를 향해 떠났다.


브리태니아 해협을 건너는 상선으로 위장한 개인 요트를 타고 조용히 눈에 안뛰게  햄프셔항구에 정박했다.


18km의 거리의 수도로 가는 중소도시를 거쳐 수도  데본으로 몰래 신분을 숨기고 숨어 들어 왔다.


그는 더럽고 작은 여관은 못견뎌 하여, 숨어 들어온 주제에,수하 5명과 6성급 호화 호텔에서만 묵었다.



그덕에 애를 쓰고 신분이 위장해온 것이 다 공개되어,브리태니아 귀족들의 모임이나 사교계에 그의 데본 방문이 알려져 사교계 레이디들의 입방아에 오고 내리게 됐다.


그야말로 사교계의 2대 조각미남으로 알려진  그의 인기는 여전히 그의 전성기를 구가하였다.


하루에도 수백장의 무도회,연회, 다과회와 귀족 사내들의 중요 취미 활동인 사냥 대회 초대장들이 율리우스 대공이 머물고 있는 6성급 호텔 '스텔라니아'의 그 VVIP전용 특실 라운지 정문앞에 매일 수북히 쌓였다.




'아니. 이럴거면 왜 굳이 상선으로 위장해서 신분까지 속이고 여기까지 힘들게 숨어 들어왔지?

정말 내 주군이지만, 도무지 이해할래야 이해할 수 없네!'




루이즈 캡쇼는 기도 안차 속으로 혀를  찼다.



'참나. 이럴거면 아예 대형 현수막에 「축! 교황의 공식 대리인이자 사교계의 왕자 율리우스 돌아오다!  」이라고 써서 이 호텔 건물 꼭대기에 올려 걸어 놓지.'


루이즈 캡쇼의  왼팔 톰 존스도 역시 입이 댓발 나와 투덜거렸다.



하지만 정작 율리우스의 안중에는 아무것도 들어오지 않았다.



그는 오직 '요정왕'의 흔적을 찾는 데만 열을 올렸다.


오는 초대장 족족 율리우스의 방안 벽난로 불쏘시게로 던져졌고, 그의 대형 VVIP용 트윈(twin) 룸은 수하들의 수색작전 본부로 쓰여  부하들만  드글드글거렸다.


교황청 지하조직 산하 데본 지점 간자와 파견 수사들을 동원해 '15-19세 정도의 검푸른 머리칼의 남청색 눈을 가진 외모의 미소년'의 용모파기를 숙지시켜 데본 일대를 이잡듯 수색했다.


하지만 율리우스 역시 일주일동안  아무런 성과를 보지  못했다.




스텔라니아 호텔 15층 특실 발코니에서 저녁에  지는 노을을 바라보며  율리우스는 낙담하여 생각에 잠겼다.


'요정왕...살아있는거지?

제발 그렇다고 좀 해줘...

닐 용서하지 않아도 돼.제발 살아만 있어줘!!'




이때 그를 노려보는 자가 한명있었으니, 데본 시가지 뒷골목서 호텔꼭대기를 올려다 보던 줄리앙 대공이었다.



 이제리아 대륙 최고의 바람둥이의 등장에 떠들석해진 데본 시내에 떠도는 소문을 듣자마자, 줄리앙은 후드망토를 뒤집어 쓰고 찾아와 그를 몰래 감시했다.



'저놈도 제로미 찾으러 왔나보네.

거봐! 우리 제로미  살아있는거라니까!!'



가슴이 답답해진 율리우스는 결국전에 하던 대로 중앙궁전 국왕 침실로 침투하기로 했다.


그는 수하들이 코를 골고 자는 틈을 타, 옷을 평민옷으로 변복하여 갈아 입으려 했다.


허나, 천성적으로 멋장이에 바람둥이인 그는 후질그레한 평민옷이 하나도 마음에 안들었다.



'에이~~옷이 하나같이 왜 이래?

혹시라도 알아? 궁정에서  요정왕을 마주칠지?

오랜만에 만나는데 스타일 구길 순 없쟎아?'



결국 율리우스는 그가 애용하는 화려한 프릴달린 남성용 블라우스에 황금술이 달린 청색 후드 코트를 걸치고 호텔 정문을 놔두고,굳이 15층 발코니 밑으로 아래층 발코니 창들 위로 뛰어 내려 바닥까지 내려갔다.


중앙 궁정 정문 호위병들은  율리우스에 무척 호의적이었다.


워낙 유명인인데다, 사교성이 좋은 율리우스는 평소 호위병들을 돈으로 매수해왔을 뿐더러, 신앙심이 강한 젊은 청년들 사이에서 '사람좋은 대공 나리'로 인기와 신뢰도가 높았다.



중앙 궁정의 여러 정문들을 통과한 율리우스는, 이제는 습관이 되어버린 국왕 침실의 발코니 창 넘기를 제집 드나들 듯 손쉽게 올라  마침내 국왕의 침대 창가에 올라 섰다.



'그럼 그렇지!!  한밤중인데도 침대안에 조명이 훤하네.

아론 이놈! 가짜 장례식까지 하고서  뻔뻔하게 요정왕을 안고 있으렸다?'



실제로 창밖으로 본 국왕 침실안은 대낯처럼 촛불들로 훤하게 밝혀져 어둠속에 갇힌 데본 중앙궁정의 유일하게 불빛에 빛나고 있었다.



'흐흐.... 우리 요정왕은 틀림없이 살아 있어!

그런데 어쩌지? 

지금 쳐들어가면 호...혹..시   그...그 자식이 우리 푸른 요정 몸안에 좆을 꽂고 있으면?

에이씨!  어쩌긴 어째. 지금 바로 쳐들어 가야지!'





때마침 창문이 반쯤 열려 창틈으로 하얀 레이스 커텐이 밤바람에 나부끼고 있었다.



율리우스는 다짜고짜 창문을 확 열어 제끼고 당당하게 뛰어 들어갔다.



제롬이 국왕에 오르고 무려 십여년을 창가로 드나든 그는, 제롬의 침실안에 뛰어 들어갈 때마다 그는 꼭 제집 들어가듯 항상 뻔뻔했다.






평소처럼 국왕의 커다란 침대는 케노피천장아래로 연결된 겹겹의 은은한 실크 망사천으로 둘러싸여 반쯤 가려져 있었다.



정말 에드워드5세가 죽었다면, 원래대로라면 새 국왕 리차드2세가 이 침대위에 누워서 자고 있어야 했다.


하지만 반쯤 비치는 반투명 케노피 원단막 사이로 거대한 몸집의 나신이 언듯 비쳐 보였다.



율리우스는 바로 한눈에 그가 아론이라는 것을 알아 챘다.



"아흐응...흐응...크흣!! 끄흐응..."


찔꺽.찔꺽.탁.탁.탁. 찔꺽.찔꺽.탁.탁




그가 가까이 침대쪽으로 조용히 다가서려 걸음을 옮기려 할때, 저음의 굵은 목소리의 사내 신음 소리가 들려 왔다.


울리우스의 얼굴은 대번에 얼굴이 구겨졌다.


짐승이 끙끙대는 듯한  음침하고 색정적인 소리에 속이 메스꺼울 정도였다.



'아론!! 이 새끼가! 

우리 요정왕 몸에 미쳐서 아주 정신줄을 놓고 좆을 놀리기 바쁘구나. 

고 맛난 조끄만 구멍맛에 침을 질질흘리며 가날픈 우리 푸른 요정을 못잡아 먹어서 난리겠지. '



율리우스는 케노피 천을 홱 젖히고 안을 들여다 보았다.


곧바로 율리우스의 눈앞에는 기괴한 장면이 펼쳐져 있었다.


제롬의 모습은 안보이고, 아론이 발가벗고 혼자 침대 머리맡에서  대형 쿠션을 등받이 삼아 혼자 앉아 있었다.


아론은 가발따윈 벗어던진 채, 제롬의 작은 몸이 입었던 인형옷같은 작은 셔츠와 바지, 속옷등을 잔뜩  침대위에 널부러진 상태로  펼쳐 놓은 채, 제롬의 연핑크색 팬티 하나를 집어들어 코를 박고 끙끙대고 있었다.



더욱 끔찍한 것은 아론의 거대한 한손안에 쏙 들어가는 작은 제롬의 속옷을 쥐어 들고 코를 박은 채, 나머지 한손으론 커질대로 커진 발기한 자신의 성기를 잡고 탁탁 소리를 내며 자위하고 있었다.



탁.탁.탁. 찔꺽.찔꺽.탁.



아론의 큰손으로 한손에 잡기 버거운 시뻘건 살덩어리는 아론의 손안에서도 흥분하여 껄떡대며 흔들어 대고 있었다.


평소에 왠만한 귀족 연무장만한 사이즈만한 드넓은 침대가 아론이 앉아 있으니,혼자 있음에도  비좁아 보였다.



평소에  제롬이 혼자 쓸때에는 브리태니아 국왕의 침대는 휑할 정도로 커 보여 제롬의 작은 몸이 더 부각되었다.


아론이 차지하고 있는 지금의 공간은 꽉차서 오히려 국왕의 침실이 좁게 느껴졌다.



이제서야 율리우스는 이 거대한 공간을 8살 소년시절부터 혼자 써야 했던 제롬의 고독함을 이해했다.


부왕을 어린 나이에 잃고 홀로 이 방을 지켜야 했던 소년왕은 그 작은 몸으로 이 휑한 공간을 자신의 체온만으로 덮혀야 했을 것이다.


제롬의 시각에서 바라본 동일한 공간은 그의 눈에서 바라봐 왔던 강대국의 운좋은 어린 왕의 호화스럽고 즐거운 생활과는 거리가 먼,쓸쓸하고 적막한 곳이었다.




'내가 왜 그때  그랬을까?

내가 이방에서 요정왕을 본 첫날, 난 요정왕을 호화로운 식탁을 눈앞에 두고 반찬투정이나 하는 복에 겨운 철부지로 보았지.

그리 허약해서 스프 한모금 제대로 떠먹지도 못했었는데.

어린 아이가 이 크고 호화로운 방이 무슨 소용이 있었을까?

부모품의 따뜻함도 모르고 그 무거운 왕관의 짐을 홀로 짊어져야 했을 텐데.

왜? 왜? 난 한번도 그 아이의 입장을 헤아려 보지 못했을까?

심지어 난 어른이었는 데...'



-  율리우스. 네가 없는 봄은 온 세상이 녹색으로 물들어도 내겐 회색으로 가득찬 감옥일 뿐이고,

네가 없는 여름은 작열하는 태양밑에서도 그 찬란한 빛은 어둠에 갇혀 내게 비춰지지 않을꺼야.

시원한 가을 바람이 불어와 코스모스가 흔들릴 때도 나는 가을의 청명한 하늘아래서 너의 모습을 한없이 기다리겠지.

그리고 너없는 한겨울의 밤은 미치도록 춥고 외로울꺼야.

     긴긴 밤내내 나는  너의 따뜻한 품을 그리워하겠지.



제롬의 쓸쓸한 목소리가 귓가에 맴돌았다.


아. 그랬구나.


그랬었구나. 


제롬이 그 때 한 말은 단순한 일회성 고백이 아니었다.


그는 그 순간 처절할 정도로 절실하게 율리우스를 붙잡았던 것이다.


그는 사랑하는 이가 필요했고, 그도 더 이상 외롭지 않고 행복하길 원했을 것이다.


브리태니아 국왕의 책임을 가날픈 어깨에 짊어졌던 소년은 그 순간이 마지막이라 생각하여 평생 가슴속에 모아둔 용기를 힘겹게 꺼내어 생전 처음으로 사랑을 고백했었다.


' 왜 난 그때 그가 사랑을 '구걸'한다 느꼈을까?

결국 평생 사랑구걸한 것은 나인데.'


"왔군."


한참을 생각에 잠겨 침대앞에 서있던 율리우스를 이내 발견한 아론은 그새 수음을 끝내고 손에 뭍은 정액을 제롬의 속옷에 닦아내고 있었다.


"언젠가는 네가 올 줄 알았다."


아론은 별로 놀랍지도 않다는 말투로 태연히 말했다.


자신의 더러운 정액을 소중한 연인의 속옷에 닦아내는 아론을 보고, 율리우스의 두 눈알이 뒤집혀졌다.



"이 미친놈아! 뭐하는 짓이야!"


그는 정신없이 달려가 아론의 손에서 제롬의 팬티를 빼앗고, 사방에 널부러진 제롬의 옷가지를 다 주서모아 가슴에 한가득 안았다.


아론이 증오의 눈빛으로 허둥대는 율리우스를 올려다 보며 말했다.



"너야말로 뭐하는 짓이야? 이 옷들은 다 내꺼야.

이 옷들의 주인은 내 '소유'였다고!"


율리우스는 제롬의 옷가지를 소중히 품에 끌어 안으며 아론을 경멸의 눈으로 노려봤다.



"뭐? 감히! 감히 내 소중하고 순결한 요정왕의 옷을 네 그 더러운 욕정의 도구로 써?  이것들이 얼마나 소중한 것들인지 몰라서 그래?

우리 요정왕이 남긴 값으로 매길 수 없는 유일한 것이야.

넌 고인의 유품 하나 하나를 네 좆물로 다 더럽힐려 하는거냐!"


"고인.....고인이라..

그래. 그가 떠나간지 벌써 석달이나 지났군.

하아.믿기지 않는군.   모든 것이 악몽같아.

지금이라도 그 아름다운 얼굴로 웃으며 내게 다가와 안길 것 같은데..."



아론의 눈시울은 어느덧 붉게 충혈되어 있었다.


"난 너를 처음 본날부터 단 하루도 너를 증오하지 않은 날이 없었어.

아무리 제롬미를 품안에 안고 있어도 그의 영혼은 언제나 어느 먼 곳을 보고  있었지. 그의 눈은 언제나 너를 향하고 있었어.

그의 가슴속엔 언제나 너, 율리우스가 있다는 것을 알고도 남음이었어.

그래서 너를 미워하지 않을 수 없었지.

난 지난 5년간 결국 그의 빈 껍데기만 소유한 셈이야."


아론은 허무한 미소를 지으며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그건 내가 할 소리야.

결국 브리태니아 국왕을 차지한 건 너였어.

네가 이겼어. 인정하마!

네가 승리자야."


율리우스가 씁쓸히 자신의 패배를 인정했다.


"아니!! 아니야!!

네가 틀렸어."


아론이 이를 악물고 소리쳤다.


그의  두 눈동자의 은색동공이 미친듯이 흔들렸다.


"넌! 넌 몰라!

제로미와의 5년동안의 결혼생활은 지옥이었어!"


의아하게 그를 바라보는 율리우스를 향해 아론은 처절하게 울부짖었다.


"넌 알아?

품에 안고 있어도 언제 떠날지 모르는 연인을 가슴졸이며 바라보는 심정을?

매일밤 제로미를 안으며 난 그의 얼굴을 내일 아침에도 볼수 있길 간절히 빌었어!

또  매일 아침 내 옆에서 살아 숨쉬는 그를 발견하며, 나와 한께 새 하루를 시작할 수 있다는 것에, 그렇게  매일 매일을  아침마다  하늘의 신에게 찬양과 감사를 드렸어.

항상 초조하고 불안해 했어야만 했고.

매일 매분 매초가 흘러갈 때마다 나는 신에게  이 소중한 순간,  이 시간이 제발  멈추게 해달라 빌었지.

차라리 모든 것을 포기한 지금이 오히려 행복할 정도야!"

조아라 노블레스 작가. 회사원입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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