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드오브히어로즈 기반 팬 창작물입니다.

*놀랍게도 로드오브히어로즈 2주년 기념 글입니다.

*아발론 왕성의 익명의 하녀가 바네사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의 글입니다.

*바네사의 속성은 특정 속성이 아닌 현재 실장된 네 속성을 모두 포괄하기 위해 두루뭉실하게 썼으나 일부 바네사에게는 적합하지 않은 표현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바네사 테레즈 알드 룬을 위하여.




바네사 테레즈 알드 룬 경께,


안녕하세요, 저는 아발론 왕성에서 일하고 있는 하녀 중 한 명입니다. 바네사 경께서는 무척 다정하셔서, 이름을 들으면 고작 단순한 하녀 하나의 이름도 기억해주시고 알아차려주실 지도 모르겠어요. 하지만 어쩐지 그건, 너무나도 부끄럽고 두근거려서 심장이 터질 것 같은 일이기에 이름을 남기지 않으려고 해요. 하여 이름 없는 편지를 보내는 것을 양해 부탁드릴게요.


최근 바네사 경께서 왕성 정원에서 자유롭게 춤을 추는 것을 본 적이 있어요. 바이올린을 손에 들고, 펄럭이는 치맛자락과 바람에 날려가는 검은 모자, 그리고 그 어느 때보다 눈부시게 햇살을 받아 웃으시던 모습을 아직도 기억합니다. 아마 그 날은 무척 좋은 일이 있으셨던 것이겠지요. 이후 그대로 바이올린을 연주하셨는데, 비록 저는 음악에 무지하여 어떤 노래였는지는 모르겠지만 무척이나 봄을 닮은 노랫소리라고 생각했어요. 톡톡 튀는 가락과, 중간중간 허밍하듯이 들려오는 콧노래 소리, 그리고 바이올린의 현을 짚고 활을 움직이던 손가락의 움직임 하나까지, 그 모든 것이 마치 꽃이 핀 봄에 부는 바람 같았어요.


그래요, 봄이에요. 봄이 왔어요, 바네사 경. 그토록 추운 겨울과 대지를 덮는 눈이 모두 녹아서 봄이 되었고 꽃이 폈어요. 저는 단지 이 알드룬 뿐 아니라, 바네사 경의 마음속에도 봄이 왔다는 점을 무척이나 기쁘게 생각해요. 저는 그 누구보다도 바네사 경을 흠모하고, 동경하고, 사랑하니까요.


저는 2년 전에 처음으로 아발론 왕성에 발을 디뎠습니다. 조금 있으면 딱 2년이 되는 날이 오는군요. 그때는 아직 바네사 경께서도 아발론에 온 지 얼마 안 된 시점이었을 거예요. 저는 처음 바네사 경을 보았을 때도, 무척이나 아름답다고 생각했지만… 동시에 슬퍼보였습니다. 웃는 모습에서 금방이라도 눈물을 떨굴 거 같았어요. 그러나 바네사 경께서는 그리 쉬이 울지 않는 분이시라는 것도 곧 알게 되었지요. 저는 얼마 뒤 바네사 경이 아발론에 오기 전, 그러니까 알드 룬에서 어떤 분이셨는지도, 그런 당신께서 로드와 어떤 길을 걸어오셨는지, 어떤 길을 걷기로 하셨는지도 들었거든요. 물론 고작 몇몇의 정보로 바네사 경을 이해하였다는 말씀을 감히 드리려는 것은 아닙니다. 단지, 그걸 안 후에… 바네사 경께서 정말로 강인한 사람이라고 깨달았다는 이야기입니다.


허나 사람이 어찌 그리 단단하기만 할까요. 이따끔 들려오는 바이올린의 선율이 슬퍼서 저는 일하던 중에도 문득 울고는 했습니다. 바네사 경께서는 분명히 눈물을 흘리지 않기 위해 애쓴 수많은 시간이 있으셨겠지요. 당신의 슬픔보다도 당신의 의무를 위해 싸운 수많은 시간이 있으셨겠지요. 저는 그 모든 시간의 바네사 경을 생각하면 지금도 울 거 같아요. 바네사 경께서 울지 않았을 모든 나날들이 너무나도 고귀하고, 경이롭고, 그런데 애처로워서… 감히 제가 바네사 경을 대신해서 울고 싶다는 마음을 품습니다.


바네사 경께서는 다른 모든 일에 앞서 이성적이셨고, 또 인간적이셨습니다. 인간이기를 포기한 이의 앞에서도 바네사 경께서는 인간으로 대하기로 선택하셨고, 스스로 인간으로서 인간의 존엄성에 걸맞는 판단을 내리셨습니다. 저였다면 그리 하지 못했을 텐데, 그리 하셨어요. 간혹 그 판단을 이해하지 못하고 함부로 그것이 용서라고, 혹은 단죄라고, 떠드는 무리가 있었습니다만은 그런 건 중요하지 않겠지요. 어찌 되었건 저는 바네사 경께서 자신의 판단에 한점 후회가 없기를, 그리하여 미련 없이 그 과거를 떨쳐내고 행복하시기만을 바랄 뿐입니다. 바네사 경께서는 이미 충분히 많은 일을 해내셨어요. 그 누구도 쉬이 할 수 없는 일을 해내셨어요. 앞으로는 더 많은 행복과 바네사 경을 위한 일이 기다리고 있을 거라고 믿어요.


그런 맥락에서, 당신께서 동료분들과 잘 지내시는 모습을 보는 건 저의 즐거움 중 하나였어요. 다른 기사 분들과 웃으시며 소소하거나 대단한 일상을 보내며, 바네사 경께서도 과거의 아픔과 짐을 조금씩 내려놓는 듯이 보였으니까요. 때로는 바네사 경이 다른 이들의 아픔을 나누며 그들의 슬픔을 덜어주는 일도 이따끔 보았습니다. 아, 정말로 바네사 경께서는 얼마나 다정하신지. 그러나 그 다정함에 저는 또 한번 울었다고 말한다면, 당신은 무어라 생각할까요? 저는 바네사 경의 강인함의 이면에 흘리지 못했던 눈물이 있던 것처럼, 바네사 경의 상냥함의 이면에 무너지지 않기 위해 자신을 다잡은 수많은 손짓이 있었을 것을 생각하면 가슴이 아파요.


물론 바네사 경께서는 상냥함을 타고난 사랑스러운 사람이실 거예요. 그렇지만 저는 사람이 절망에서 빠져나오기 위해선 그 무엇보다도 본인의 의지가 가장 중요하다는 걸 압니다. 절망 속에서는 타인에게 손을 내밀긴 커녕 웃어주는 것조차 버겁다는 걸 압니다. 그러니 강인하고 상냥한 바네사 경께서는, 자신을 절망에 빠져있도록 허락하지도 않았겠지요. 그런 당신께서는 참으로 고결하여서 저는 애달프다고… 지면을 빌려서 이렇게 또 얘기하고야 마는군요. 쓸데없는 참견이라는 걸 알면서도, 저는 그래요.


하지만 앞서 말씀드렸지요, 저는 바네사 경의 마음에도 봄이 온 것 같아 기쁘다고. 지난 해에 마침내 바네사 경의 연주회가 열렸을 때는 제가 다 떨려서 밤잠을 설쳤답니다. 당일에는 한 곡이 끝날 때마다 가장 뒷자리에서 소리없이 눈물을 흘렸는데, 혹 연주에 방해가 되지는 않았는지 모르겠어요. 아직도 눈을 감으면 선합니다. 그날 바네사 경의 연주회 드레스는 정말 우아하고 아름다웠어요. 바이올린 소리는 여지껏 들었던 것 중 가장 희망이 가득했고요. 만일 그 연주가 바네사 경의 마음이라면, 정말로 바네사 경께서 행복해지시고 있다고 믿을 수 있었어요.


비록 아직은 여전히, 마음을 누르는 돌이 남아있더라도 지금까지처럼 계속해서 다른 곳으로 내려놓을 수 있겠지요. 바네사 경은, 제가 슬플 만큼 강한 사람이시니까요. 그리고 기쁠 만큼 다른 이들과 연결되어 있는 분이시니까요. 저는 바네사 경의 여러 면모를 보았어요. 때로는 진중하고, 때로는 가볍고, 때로는 엄격하지만, 때로는 장난스럽기도 했죠. 앞으로도 제 눈 앞에 새로운, 아직 아무도 알지 못한 바네사 경이 삶의 궤적을 그릴 것을 생각하면 가슴이 두근거려요. 저는 언제까지나 그 선율의 뒤를 따를 준비가 되어있어요.


아, 편지가 너무 길었죠. 사실 하고 싶은 말은 단 하나 뿐이었어요. 그 말을 하기 위해… 너무 긴 편지를 읽게 한 건 아닌가 모르겠어요.


바네사 경이 행복하기를 바라요. 진심으로, 온 마음을 다해서, 살아있어서 행복하다고 느끼고 또 계속해서 그 감정을 이어가기를 바라요. 저는 바네사 경이 단지 세상에 존재해주는 것만으로도 행복해졌으니까요. 부디 바네사 경 역시 행복하기를. 늘 당신이 원하는 모든 것을 당신의 손에 쥘 수 있기를.


사랑을 가득 담아,

익명의 누군가로부터.



추신. 2년 간 바네사 경을 볼 수 있다는 게 제 삶의 낙이었어요. 더 많은 날 동안, 당신을 계속해서 볼 수 있기를 간절히 희망해요. 부디 아발론이 망하지 말아야 할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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