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빌워 이후 사이좋은 어벤저스.  인워가 없는 세계관

※날조주의※





[토니피터] Minor Upgrade




 17





오케이, 잘 들어 봐, 친구. 내가 얼마 전에 인생의 큰 고민에 빠졌어. 이대로라면 우리 엑스콘은 문을 닫아야 해! 그렇게 평소에 즐겨 마시는 페일 에일 맥주를 뜯었지. 그 페일 에일은 내 사촌 에네스토가 동네 소프트볼 시합에 이겨서 타온 부상이었는데 걔가 "난 골든 에일만 마셔." 해서 한 박스를 나한테 갖다 준 거야. 보다시피 가게 사정이 이래서 마침 텅 비어있는 냉장고에 한 박스 있던 맥주병을 죄다 밀어 넣었는데 웬 종이가 한장 떨어져서 보니까 맥주 박람회 응모권이었어. '응모에 당첨되는 사람은 무료로 다양한 맥주를 시음할 수 있음' 얼마나 매력적인 문구야! 시에라 네바다? 그럼 캘리포니아까지 가야 하나 했더니 에네스토 말로는 "뉴욕에 있는 행사장에서 박람회를 연대." 멋진 곳이지, 미국에서 6번째로 큰 회사다워, 감탄하면서-   



"잠깐, 루이스. 지금 우리가 맥주 이야기를 하자는 게 아니잖아. 그런 디테일은 빼. 쓸데없는 정보야."


좋아, 그래서 곧바로 인터넷에 들어가서 응모를 했더니 당첨되었다고 연락이 왔어. 맥주를 들고 A 타워가 가장 잘 보이는 자리를 잡고 앉으니 "헤이, 이게 누구야, 핵주먹 대디?" 왜, 케네스 기억하지? 감옥에서 피치랑 자주 붙어있던 걔가 여자친구 소니아가 박람회에 당첨되었는데 대신 왔다더라고. 감옥을 나왔으면 송별회를 했을 텐데 "왜 눈썹에 상처가 없어?" 물으니 "그 소식은 못 들었나보군. 이제 피치의 위가 생겼어. 스콜피온, 걔는 장난이 아니야." 새로 수감된 스콜피온이란 놈이 감옥을 장악했대. "근데 웃긴 게 거미  한 마리를 못 잡아 안달이 났어, 그 전갈은." 스카티, 너도 알잖아? 그 감옥에 거미가 얼마나 많아. 거미를 겁내면 살아남을 수 없지, 곧 그 시대는 끝날 거야. 케네스가 뭐하고 지내냐 길래 내가 보안회사를 시작했다고 하니까 "큰 건수가 하나 있는데, 관심 있어? 보안 카메라를 털어야 한다던데." "보안 카메라는 내 전문이지." 그땐 이미 맥주 몇 병을 먹고 헤롱거리기 시작했거든. "사실 스콜피온이 안에서 괜찮은 건수를 물어다 주고 있어. 꾸준히 면회를 오는 사람이 있는데 그 사람이 좀 돈이 있는 모양이더라. 최첨단 무기를 쓸 기회를 준다고 한다는데 나는 내 사랑스러운 소니아와의 시간이 바빠 거절했지. 그런데 내 옆방에 있던 두 명은 일확천금을 얻을 수 있다니 딜을 봤나 봐. 걔네가 지금 어느 회사 보안 카메라를 털어야 한다고 전문가를 찾고 있더라." 그리고 여기서 그 회사가,


"스타크 인더스트리? 다시 생각해도 말도 안 되는 계획이야."
"일확천금의 기회지."
"그리고 다시 감옥에 갈 기회고."


스콧은 아직까지도 허튼 꿈을 포기하지 못한 루이스를 보며 고개를 내저었다. 어찌 되었건 그 맥주 박람회를 경로로 케네스에게 두명을 소개받게 된 루이스에게 실제로 그들이 찾아왔었다고 했다. 그렇게 은밀하지 않게 범죄를 꾸미는 사람들이 있다니 놀랍네. 스콧은 왕년에 보안 카메라를 털던 시절을 떠올리며 안일한 그들의 계획에 혀를 찼다. 그리고 본 사무실 보안 카메라엔 루이스를 포함한 발칙하게 A 타워를 털려고 했던 세명이 나란히 찍혀있었다. 


"어어, 술까지 마셨어?"
"고객 응대지."
"문 닫기 직전이라며?"
"내 사촌 에네스토가 준 페일 에일이 남았어. 물론 커트와 데이브에겐 비밀이야, 이 자금은 아껴야 해."


어차피 스콧 없이는 실행할 수 없는 큰 '건'이므로 물어보고 연락해주겠다 했더니 그 다음날 홀라당 A 타워 앞에서 폭발 사건을 일으켰단 이야기였다. 스콧은 루이스가 이번 사건에 연관되지 않았다는 점에 감사하며-그랬다간 참고인 자격으로 여기저기 불려 다녔을 게 뻔했다. 메기는 다시는 범죄와 엮이지 말라 신신당부했고 스콧은 캐시를 위해서라도 그러기 위해 노려 중이었다.-두 명과의 술자리에서 특별한 일은 없었냐 물었고 루이스는 해맑게 웃으며,


"그들도 스콜피온 이야기를 하더라. 주먹을 한번 맞대보고 싶을 정도로."
"오, 그것만은 참아줘. 한번 피치를 기절시킨 걸로 만족하자. 혹시 폭탄에 대해 아는 건 없어?"



루이스가 씨익 하얀 이를 드러냈다.



폭탄 하니까 생각난 건데, 둘 중 빡빡이는 페일 에일이 마음에 들었는지 반 이상을 비우면서 "이번 건이 성공하면 양조 공장을 하나 사야지." 그랬더니 그 옆의 콧수염이 "아무리 단단한 금고라도 한방에 날려버릴 수 있는 위력이라니까." 들어보니 스콜피온에게 일을 얻어서 받은 게 웬 돌멩이라더라. 근데 그걸 전해준 건 다른 사람이었대. 아무리 나라도 "오, 그 토니 스타크를 상대로!" 근데 반응이 "그래야만 한다더라고. 가간이 누굴 끌어내야 한다나 뭐라나." 아이언맨이 상대라니 얼마나 무서워, 그래서 보안이라도 마비시켜야 하니 힘 좀 보태달라 하길래 우정을 짠을 나누었지. 우리 보안회사도 이제 세계적인 기업으로...


"잠시, 뭐라고?"
"스카티, 너도 역시 우리 회사를 글로벌한 기업으로 만들고 싶은 거지?"
"아니, 그전 말이야. 이름이 뭐?"





"가간?"


토니는 어디선가 들어본 그 이름을 다시 되뇌었다. 프라이데이는 빠르게 정보를 띄웠다. 맥 가간. 살인 외의 전과 다수. 벌처 사건 당시 유람선에서 피터가 붙잡았던 일당 중 하나였다. 루이스에게서 들은 이야기를 전하느라 진이 빠진 스콧은 화면에 뜬 매서운 범죄자의 목 언저리의 전갈 문신을 보며 그래서 스콜피온이구나? 속으로 생각한 대로 말해버렸고 토니에게 따가운 눈총을 받았다. 


"그나저나 그 루이스란 친구의 정보력은 장난이 아니네, 보안회사가 아니라 그쪽으로 일을 해야 할 거 같아."


스콧이 알아낸 정보 소식을 듣고 본부로 온 제임스는 루이스의 놀라운 기억력에 감탄했고 브루스는 공감의 고개를 끄덕였다. 이쪽은 며칠이나 이 사건을 붙잡고 시달렸는데 설마 일반인에 의해 이렇게나 쉽게 폭탄을 퍼트리는 범인이 밝혀질 거라곤 누가 알았겠는가. 샘은 자신이 그 친구 덕에 스콧을 알게 되었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토니는 마음에 들지 않는다. 


"진심으로 하는 소리야? 못 들었나 보네. 감히 스타크 인더스트리의 보안을 마비시키겠다고 했다는데. 오늘 들은 농담 중 제일 웃겼어."


그리고 그 보안 카메라를 털기 위한 가장 중요한 '인재'가 여기 있고. 토니는 다시 스콧을 눈빛으로 찔러댔다. 다시 말하지만 나는 가담할 생각이 없었어. 억울함을 호소했지만 이미 자이언트 앤트맨에게 잡힌 시점부터 토니는 삐딱선을 타고 있었다. 


스콧이 전해준 정보에 따르자면 자세히는 몰라도 이때까지 불법 무기를 거래하려던 자들은 감옥에서 맥 가간의 제안을 듣고 움직인 셈이었다. 그럼 발신인이 M인 부분과 그가 노리는 게 다름 아닌 스파이더맨인 것도 맞아떨어지고. 그렇기에 한편으론 미심쩍기도 했다. 여긴 나타샤 같은 이 분야에 전문가가 있는데 그녀가 알아낸 정보는 알아내기 무섭게 흔적이 사라지곤 했다는 점이 영 걸린다.


"그 친구가 면회 이야기를 했다고?"


즉, 뒤를 봐주는 사람이 있다는 거군. 토니가 천천히 턱을 쓸어내렸다. 프라이데이, 맥 가간의 출소는? 현재 가석방이 된 상태입니다. 이거 갈수록 뒤가 구리군. 그렇게 위험한 무기의 거래를 한 놈이 일 년도 채 되지 않아 석방되었다니. 그렇다면 맥 가간의 행방과 또 이미 어디론가 흘러갔을 외계물질을 닮은 에너지코어를 찾아내는 것이 급선무였다. 토니는 스콧이 가져온 이야기 속 주인공들의 사진을-그들의 신상정보를 모으느라 스콧은 꽤나 애를 먹었다. 그러나 토니가 너무나 쉽게 가간의 정보를 캐내는 모습을 보고 그냥 루이스의 말을 듣자마자 본부로 올걸, 어리석은 후회를 하며 입을 다셨다- 테이블 위로 툭 던졌다.
  


"그때 벌처 일당은 다 잡아들였는데 그럼 누가 그런 무기를 만들고 있는 거지?"
"혼자 벌인 일은 아닐 거야. "
"벌처가 돕고 있을 지도 모르지."



꼬맹이한테 잡혔다며. 샘의 말대로 정말 벌처가 돕고 있을 확률도 무시할 수 없었다. 일단 쉴드 측에도 전해야겠군. 토니가 두어 번 시계를 두드리자 녹음된 파일 하나가 곧바로 전송되었다. 이런 최첨단 기술이 나머지에겐 일상인데 반해 자주 구경할 수 없는 스콧만이 눈을 휘둥그레 뜨며 와우, 같은 평범하기 그지없는 탄복을 뱉었다.



"그런데 왜 A 타워를 노린 거지? 나타샤 말대로 노리는 게 스파이더맨이라면 그럴 필요가 있는 거야?"
"맙소사, 그가 노리는 게 피터야?"


애초에 코어에 대해서도 잘 알지 못하는 스콧은 마치 유행에 따라가지 못해 소외된 사람처럼 눈만 이리저리 굴렸다. 그래, 상황의 심각성을 알겠어? 토니가 톡톡거렸다. 단순히 스타크 인더스트리의 건물 앞에서 일어난 폭발 사고 때문에 날이 선줄 알았더니 아니었단 것을 깨달은 스콧은 개탄을 표했다. 그 어린애한테 얻을 게 뭐가있다고?! 이제야 대화가 통하네. 방금 전까지의 적개심은 버린 토니가 동감하며 의자에서 몸을 일으켰다.



"빅맥세트인지 랍스터인지 그게 누구든 상대를 잘못 골랐어."
"어쩌려고?"


슈퍼카라는 상상을 초월한 상황 대처 능력을 보여준 토니를 향해 제임스가 불안한 시선을 보내자 그는 그 짧은 사이 모은 맥 가간에 대한 정보를 온 화면에 띄우며 눈썹을 씰룩였다.


"어쩌긴, 거미와 친구들이 얼마나 무서운 건지 알려줘야지."


감히 거미집을 건드려? 확실히 복수심이 뭐라고 상대를 잘못 골랐다. 아마 맥 가간과 그 일당은 스파이더맨이 아이언맨과 생각 이상으로 가까운 사이란 것을 알지언정 그가 얼마나 새끼 거미에게 '신경'을 쓰고 있는지는 모를 것이다. 그리고 다른 사람도 아닌 토니 스타크에게 있어서 '신경 쓴다'는 의미가 일반적인 범주를 가볍게 뛰어넘는다는 것도. 


하나둘 업데이트되는 프라이데이의 정보 더미 속에서 스콧이 주변을 살피곤 피터의 부재를 언급했다. 그럼 얘 위험한 거 아니야? 피터는 괜찮은 거지? 토니는 어울리지도 않게 그 순간 스콧이 참으로 다정한 사람이라고 생각해버렸다. 본지 얼마 되지도 않는 꼬맹이를 이렇게 진심을 다해 걱정해주는 모습은 가히 클린트가 말하던 아버지의 모습이었다. 하지만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다. 토니는 여유롭게 답했다.



"그럼.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사람이랑 같이 있거든."





.





"체리를 싫어한다니 어떻게 그럴 수가 있죠?"


피터는 두 개의 체리를 동시에 입안으로 밀어 넣고 우물거렸고 그를 보며 만족스러운 표정을 짓는 스티브를 바라보며 해피는 미간을 구긴다. 지금 세명이 앉은 둥근 테이블 위로는 30cm는 되는 깜찍한 파르페가 놓여있고 캡틴 스티브 로저스는 막 아이스크림 위의 빨간 과일을 이 중 파르페와 가장 어울리는 꼬마에게 넘긴 참이다. 그것도 '난 별로 안 좋아해서 말이지.' 란 어른의 거짓말을 해가면서, 그 와중에 피터 파커는 눈치 없이 체리가 얼마나 맛 좋은 과일인지를 설명하고 있다.



그러니까 해피 호건이 왜 퀸즈의 어느 백화점 카페테리아에서 한가롭게 과일 파르페나 먹고 있느냐, 그것은 갑자기 떨어진 상사의 불호령 때문이었다. 본부로 무사히 데려오라고 해서 차에 피터를 태운 것까진 좋았다. 그런데 갑자기 전화가 와선 이번엔 본부로 데려올 생각을 말란다. 어떻게든 시간을 때우라는데 스타크 인더스트리에서 토니와 근무한지도 오랜 세월, 그의 상사를 보호하거나 치즈버거 심부름, 또는 이처럼 운전은 할 줄 알아도 해피 호건은 어디로 튈지 모르는 고등학생, 그리고 미국의 영웅과 시간을 때우는 법 따위는 모른다.


"무슨 일이에요?"



피터가 조수석 의자의 목 부분에 매달려 해피에게 답을 요구한다. 제법 거짓말에 능숙한 해피가 그 순간 떠올린 핑계는 다시 생각하면 후회뿐인 선택이었다. 해피는 흔들림 없는 스티브의 두 눈을 백미러로 마주하며 바삭 마른 입술을 움직여 말했다.


"급한 일이 떠올라서 말이야."
"급한 일요?"



그래, 사야 할 게 있거든. 아주 중요한...그게 뭔데요? 분명 피터는 고분고분한 아이에 속했지만 그놈의 호기심, 그리고 참견하기 좋아하는 기질은 어디 가질 않는다고 끝까지 별 의미 없이 꺼낸 그 말에 매달렸다. 오늘따라 집요하다? 해피는 목적지도 없이 핸들을 돌렸고 그때 마침 눈에 들어온 게 작은 백화점이었을 뿐이다. 스티브에게 도움의 눈빛을 보내며, 


"내가 필요한 걸 살 동안 캡이랑 얌전히 있어."


대충 둘러대곤 뭔지 모를 어느 물건을 사러 가는 '척'하려던 해피는 예상 외의 적에게 기습을 당했다.


"토니의 심부름인가? 같이 가지."
"예? 아뇨, 아뇨. 그게 아니라.."


몇 번 어색한 눈빛을 보냈지만 아무래도 스티브에게 텔레파시는 통하지 않는 듯했다. 해피가 이마를 짚었고 시간을 벌어야 하는 건 변함없었으므로 결국 마지못해 고개를 떨구며, 


"아마, 그래, 선물을 사야 해."


그렇게 피터와 함께 대상도 없는 선물 고르기에 돌입한 것이 1시간 전의 일이었다. 결국 해피는 예정에도 없던 웬 스카프를 샀고 피터와 스티브는 그것이 해피의 숨겨진 애인을 위한 선물일 거라며 둘이서 웃기 바빴다. 부끄러워 말아요! 해피도 그럴 나이죠! 그런 피터의 능구렁이 같은 모습은 영락없이 토니를 닮아 있어 해피는 더 언짢았다. 이러다가 저 꼬마는 커서 제2의 토니 스타크가 될지도 모르겠군. 아주 어른을 놀리기 바쁜걸 보니 그쪽으로 타고난 재능이 있어 보였다. 스타크씨같은 사람이 될게요. 그런 의미였니?


테이블 닦는 행주로도 못 쓸 고급 스카프는 리본이 묶여 포장된 채 해피의 손에 들려있었고 한시라도 빨리 탈출하고 싶은 그의 마음과 달리 여전히 토니에게선 돌아오라는 연락이 없었다. 이제 어쩌나 고민하던 찰나, 입간판으로 세워진 파르페 사진을 발견, 말은 없었지만 아이의 시선이 0.3초 정도 머무르는 것을 바로 캐치하곤 이곳으로 들어와버리고 말았다. 



고로 지금 이 카페테리아의 한쪽 테이블엔 고등학생 하나, 정장을 빼입은 덩치 있는 경호원 하나, 그리고 모자를 눌러써 정체를 숨기려 했으나 건장한 체격이 드러나는 캡틴 아메리카까지 놀라운 조합으로 파르페를 퍼먹고 있다. 해피는 물론 한입도 하지 않았다. 


"해피는 안 먹어요? 엄청 맛있어요."
"거참, 보기만 해도 맛이 좋구나. 아주 달아빠져 보이고 좋네."


해피가 이젠 녹아내리려는 화려한 파르페를 향해 비아냥 거리며 앞을 보니 어느새 스티브가 스푼으로 바닐라 아이스크림 부분을 한입 맛보았다. 


"가끔은 이런 당 섭취도 필요한 법이지."



오, 맙소사, 이 끔찍한 시간은 언제 끝나지. 해피는 안 그럼 피터가 한 입 퍼서 넣어줄 기세라 마지못해 피터에 의해 강제로 시켜진 파르페를 퍼먹기 시작했다. 



"캡이랑 같이 이러고 있다는 걸 알면 제 친구는 기절할 거예요."
"그 똑똑하다던 친구 말인가?"
"네. 네드라고, 어벤저스의 굉장한 팬이거든요. 절 많이 도와주고 있어요. 제 정체를 아는 몇 안 되는 사람 중 하나거든요."
"말이 나와서 그런데 나한테 가끔 문자를 잘못 보내는 걸 그만둬주길 바란다고 전해주지 않으렴?"


해피는 '네드'란 친구를 알고 있었다. 딱 한 번 피터를 대신해서 영상통화가 걸려온 적이 있었는데 그 후로 가끔 다른 이에게 가야 할 문자가 제 휴대폰에 도달하곤 했다. [너와 이런 여정을 함께 할 수 있다니 이건 너무나 환상적인 일이야.] [헐크 냄새는 어때? 좋은 향기가 날 것 같은데.] [그때 그 경호원이란 사람, 정말로 이름이 해피야?] 대체 남의 이름이 뭐가 그리 궁금한지, 떠올려보면 눈앞의 이 꼬마도 그런 질문을 했었다. 이래서 꼬마들이란. 


"어제 폭발사고도 있었고 걱정되는 모양이에요. 학교에도.. 그런 게 심어져있었잖아요."


피터는 어딘가 수상하게 머뭇거렸다. 아니, 얘가 또 무슨 폭탄 발언을 하려고 그러지. 해피는 본능적으로 미간을 구겼다. 그래서 그런데...음...제가 수트를 돌려받고 싶은데, 스타크씨한테 말하면 화내실까요? 해피는 그 질문을 듣고 입으로 넣던 파르페를 뱉어낼뻔했다. 그 말이 왜 그렇게 이어져? 그러니까 안심을 주자는 거죠!



"꼬마야, 충고하는데 수트에 'ㅅ'도 꺼내지 않는 게 좋을 거다." 


해피는 피터가 그 이야기를 토니에게 꺼내는 장면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소름이 끼쳤다. 대관절 토니의 대답은 No임이 분명하다. 안심은커녕 업스테이트의 누군가에게 불안과 스트레스만 증폭시킬 것이 뻔했다. 해피가 아는 바로 현재 피터는 웹슈터를 받아냈다. 그러나 그것 하나 손에 쥐여주기까지 토니의 고뇌가 얼마나 컸는지 아이는 알지 못할 것이다. 어제의 폭발 사고에서 피터의 웹슈터가 큰 도움이 된 건 사실이었지만 토니는 지난번처럼 몰래 아이가 거미줄을 타고 어디로 튀어갈지도 모르는 반사적인 판단 대한 불안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도 혹시 모를 상황에 목숨은 지켜야 하지 않겠냐, 그마저 없다면 더 큰일이 날지 모르지, 나머지의 의견이 그러했고 토니는 끝내, 알고 있어, 하며 그날 밤 피터에게 업그레이드된 웹슈터를 건네주었다. 


그러니 수트는 당연히 얼토당토 안 하다. 지금처럼 힘이 없다면 수트를 입는 것만으로 들이닥칠 적들은 어찌 이겨낼 것인지, 그것은 굶주린 고양이에게 던져진 생선과 같다. 순식간에 표적이 되어선 뼈만 남을지도 모른다. 매시간마다 토니가 붙어있을 수만도 없는 노릇이니, 피터가 수트에 대해 딜을 보려 시도한 들, 협상은 무슨, 의사전달조차 되지 않은 채 대화는 막을 내릴 게 자명했다. 해피는 그 후로 이어질 상사의 히스테리를 받아줄 자신이 없었고 아이가 그런 의미 없는 계획을 실행하기 전에 말리고자 했다. 그러자 피터는 시무룩하게 학교에서의 일을 꺼냈다.


"하지만, 다들 스파이더맨이 갑자기 종적을 감춘 것에 대해 의아해하고 있어요. 누구는 제가 악당이 됐다는 거 있죠?"
"살면서 들은 이야기 중 가장 어이가 없는 가정이구나. 차라리 캡틴이 그랬다는 게 더 현실감이 있겠어."
"제 말이요!.."


음...칭찬인가? 뒤늦게 피터가 고개를 기울였지만 해피는 모른척했다. 소문이란 무서운 적이지. 어느덧 기다란 유리잔의 반을 비운 스티브가-해피가 말한 캡틴이 악당이란 게 더 현실감 있다는 말은 완전히 신경 안 쓰는 듯-진지하게 말했다. 실제로 피터의 말처럼 로스 장관은 스파이더맨의 부재 때문에 그를 의심하고 있었다. 


"사람들은 무엇이든 믿고 싶어 하지."
"그래서 수트를 입고 얼굴만 잠깐 비출 수..."


"그건 안돼."


공교롭게도 해피와 스티브의 대답이 동시에 겹쳐졌고 피터의 눈이 가늘게 접혔다. 아무리 순순한 아이라도 그렇게 완강히 부정한다면 낌새를 느끼는 것이다. 단순히 힘이 없어서 위험하단 이유치고는 어른들의 '부정'은 이상하리만큼 강했다. 토니야 대체적으로 피터에게 그러했지만 해피를 넘어 스티브까지라면 또 다른 이야기였다. 


 
"혹시, 제가 모르는...뭔가가..."



하지만 피터의 추궁은 끝까지 이어지지 못했다. 별안간 목을 삐죽 세우더니 커다란 벌레가 닿은 사람처럼 크게 팔을 휘두르며 주변을 돌아보는 피터의 행동은 어색했고 해피는 덩달아 긴장 태세를 갖추었다.


"뭐야, 왜 그래?"
"갑자기 뭔가 기분 나쁜 느낌이..."



말로 설명하기 어렵다며 난색을 표한 피터의 좋은 '촉'대로 곧 조금 떨어진 곳에서 잡음과 함께 백화점의 건물이 미약하게 흔들렸다. 카페테리아에 앉아있던 사람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유리창 너머 검은 연기가 피어올랐다. 뭐야, 또 폭발이야? A 타워에 이어 또다시 사고가 일어난 듯했고 그 소란은 치타우리 코어를 모방한 어느 위험한 돌멩이가 원인일 것이 분명했다. 어떻게 알았어? 해피가 휘둥그레 뜬 눈으로 바라보자 피터는 으으, 저도 몰라요! 외치며 다급히 창가로 달려갔다. 따끔거리는 위험경보가 끝없이 찌릿하게 온몸을 덮어왔다. 연기가 피어오르는 방향은, 분명, 제 집과는 그리 멀지 않은 장소였다. 피터의 안색이 창백하게 질렸다. 


"안돼...메이.."


해피는 토니에게 연락하기 위해 곧바로 안주머니의 휴대전화를 꺼내들었고 스티브는 당장 사고 현장으로 뛰어갈 기세로 비상계단을 돌아보았다. 


"예, 사장님. 지금 퀸즈요."
"바꿔주게."



[Gosh, 돌겠군. 쉬지도 않는 24시 폭탄 딜리버리라니. 걔네는 빨간 유니폼을 입고 있을 거야.]
"바로 앞이야. 내가 가도록 하지."
[아니, 우리가 가. 캡, 꼬맹이나 잘 간수하고 있어.]


...캡? 전화 너머로 토니의 목소리가 울렸다. 스티브는 푸른 눈동자를 굴렸고 해피의 절망감이 섞인 표정을 마주했다.


"오, 이런..."


그 많은 인파 속 어째 보여야 할 한 명이 보이지 않는다. 말 잘 듣는 꼬마라고만 생각했던 아이는 잠깐 눈을 돌린 사이 사라졌다. 인기척 하나 없이. 스티브는 피터가 카페테리아를 빠져나갔다는 사실을 눈치 채지 못한 자신을 믿을 수가 없었다. 그는 처음으로 토니의 마음을 제대로 알 것 같았다. 그렇게 여유로운 토니 스타크가 안절부절 해야 하는 이유를 말이다.


"토니, 이제 난 자네의 마음을 이해하겠어."


이건 나도 한소리 해야겠네. 거참 알아주니 고맙네, 피터 좌표 보낼게, 정말이지, 깜찍한 꼬맹이 같으니. 토니가 이럴 줄 알았다며 헛웃음을 흘렸다. 전화너머로 환장하는 그의 표정이 그려졌다. 맡겨두게. 그 대화를 마지막으로 스티브는 해피에게로 휴대전화를 가볍게 토스하며 손짓했다. 



"이 나이에 술래잡기라니, 가벼운 워밍업으로는 딱이겠군."


스티브는 백화점 지하에 주차된 해피의 차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건 현장까지 피터를 찾아 달릴 생각이었다. 그 뒤를 따라야 할 해피가 입을 떡 벌린다. 농담이라면서요?! 이젠 아니지.


해피의 전화로 피터의 위치가 전송되어 왔다. 토니가 새로 개통해 준 휴대전화로부터 잡히는 신호였다. 잽싼 녀석, 벌써 여길 빠져나갔다니. 해피는 재킷을 단단히 정리했고 발목을 풀었다. 그는 선택권 없이 스티브와 계단으로 뛰어들어야 했다. 해피의 두툼한 손에는 분홍 리본의 종이가방이 달랑거리고 있었다.




.






[연결이 불가능하오니 나중에 다시 걸어주시길 바랍니다....]


"제발요, 메이."



피터는 응답이 없는 메이의 번호를 붙들고 간절히 그녀의 이름을 쥐어짰다. 다시 통화 버튼을 누르고 휴대전화를 쥔 손바닥의 땀을 닦아내며 피터는 내달렸다. 해피와 스티브에게 말도 없이 튀어나왔다는 것을 뒤늦게 알아차렸지만 지금 가장 중요한 건 두 눈으로 메이의 안전을 확인하는 것이라 정말 급해서 어쩔 수 없었다고 나중에 제대로 사과하겠다 생각했다.


이로써 폭발 사고는 두 번째, 학교에서 만약 그 코어가 터졌다면 세 번째가 되었을 사고로 인터넷이 벌써 떠들썩했다. 소방차와 경찰차의 사이렌이 시끄럽게 울려 퍼지고 길가의 TV에선 사고 소식을 전하고 있다.


[A 타워에 이어 두 번째로, 무장 조직에 의한 폭탄 테러로 추정되는 가운데 이들의 목적은 아직 불분명....]


대체 그들이 그 코어를 이용해 무엇을 하려는 것인지 명확히 알려진 바가 없었다. 무기의 출처를 찾는 것부터 시작해 일어난 테러를 예측하고 방지하는 일은 어벤저스에게도 난관이었다. 그 테러범들의 행동에서 일련의 공통점을 찾기란 어려웠다. 그럴게 웬 고등학교 운동장에 묻어놓지를 않나, 아이언맨이 뻔히 지키고 있을 A 타워를 노리지 않나, 이젠 퀸즈의 거리까지. 도대체 무슨 꿍꿍이인지 알 수가...


'뭐? 가긴 어딜 가, 한 발짝도 나갈 생각하지 마.'

'마치면 데리러 올 거야.'

'그래서 수트를 입고 얼굴만 잠깐 비출 수...'
'그건 안돼.'


치타우리 코어, 미드타운 고등학교, 스타크 인더스트리, 퀸즈.


"...맙소사 ."


피터의 걸음이 무겁게 늘어지기 시작했다. 그동안 생각하지 않았을 뿐, 공통점은 스파이더맨이 자주 나타나는 장소들 또는 관련된 곳이었다. 어느 순간부터 제게 붙기 시작한 멤버들의 보호. 완다, 나타샤 그리고 오늘은 캡틴. 토니의 경고. 그동안 몰랐던 것이 멍청할 정도로 그의 머릿속 퍼즐이 쉽게 맞추어졌다. 


'내가 경고했을 텐데, 어른들의 세계에 끼어들지 말라고. 모든 건 네 탓이란다, 스파이더맨.'


얼마 전 꿈에 나온 벌처의 목소리가 환청처럼 들려왔다. 



그럼 내가 사람들을 위험하게 하고 있는 거야...?





#1 행크와 호프


"정말이지 제멋대로군, 랭 녀석. 그만큼 발을 빼라고 했는데 말을 안 들어!"
"그가 수트 없이 괜찮을까요?"
"어쩔 수 없어. 또 스타크랑 엮여 수트가 위험해지면 곤란해. 우린 계획을 위해선 이 수트가 필수적이야."


행크는 축소된 수트를 한참을 바라보았다. 그들은 스콧에게서 1호 수트를 가져올 수밖에 없었다. 감시도 붙은 상황에 또 스콧이 어벤저스와 엮이면 최악의 상황으로 수트를 국가 차원에서 회수해갈지도 모른다. 그것만은 두 눈을 뜨고 볼 수 없다. 


"..정말 다시 만날 수 있는 거겠죠?"


그들에겐 사랑하는 사람을 데려올 한 계획이 있었다.


고로 스콧이 다소 위험할지라도 수트를 넘겨줄 수 없었다. 호프는 A 타워 사고 뉴스를 근심 가득히 바라보았다. 곧 행크는 이내 TV 전원을 껐다. 


"그래야만 해."




#2 브루스의 고민



"좀 어때?"


낮은 A 타워 앞 폭발사고가 어느 정도 정리된 후, 늦은 시간 브루스의 방을 찾은 나타샤는 헐크에서 원래 몸으로 돌아올 때면 복잡한 감정에 빠지는 그의 이야기 상대가 되어줄 생각이었다. 브루스는 꽤나 고심하는 얼굴로 나타샤를 맞이했고 그녀는 조심스레 물었다.


"나타샤, 난..잘 모르겠어."
"브루스, 당신은 괜찮아요. 그와 당신은-"


나타샤는 거울 옆으로 걸린 가운을 바라본다. 브루스의 고민스러운 눈은 아까부터 하얀 가운을 향해 있다. 그 옆으로는 그가 연구할 때 쓰는 안경도 놓여있었다.


"괜찮아? 어울릴까? 그럼 어떤 포즈가 좋을지.."


난 이런 건 쥐약이란 말이야....포즈? 요컨대, 브루스의 고민은 내일 당장 피터와 찍어야 할 스타크 인턴십 증명 보고서의 사진에 관한 것으로 헐크와 브루스 배너 사이의 정체성과 공포감에 대한 것이 아니었다. 나타샤는 예상외의 고민거리를 듣고 이내 웃어버렸다.


"토니 말대로 '박사같이'면 되겠죠."
"음, 잊었을까 하는 말인데 난 진짜 박사야..."


적어도 지금의 그는 불안감과 죄책감으로부터 조금은 자유로워져 보였으므로. 당신도 성장했네요. 이것 참 피터에게 감사해야겠네.




#3 그날, 박람회에서



"근데 스콜피온은 좀 날렸던 놈인가 봐. 그 면회 온다는 사람도 좀 있는 것 같고 또 그 자랑 같이 있던 게 누구인지 알아?"


케네스는 맥주병 끝까지 털어마시며 손가락을 휘적였다. 루이스가 하하 웃으면서 그를 바라보았다. 누군데? 술에 취해 혀가 굳었는지 케네스는 그, 그..라는 말을 반복했다. 숨을 쉴 때마다 술 냄새가 풍겼다. 루이스는 무료로 맥주를 마실 수 있는 박람회에서 끝을 볼 생각으로 새로운 맥주를 챙겨와 건넸다.


그,그 왜 가끔 TV에도 나오는데...그 양반 말이야.  


어디 장관인지 뭔지 있잖아. 그 잘난 양반이 그런 쓰레기장에 행차를 다하시고 별일이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내용전개가 다소 더디지만 열심히 완결을 향해 달려가고 있답니다!

-저는 일상 속에서 눈치없는 캡이 왜이리 좋은지 몰라요^^(+피터 그리고 환장하는 해피)

-초반부의 루이스의 맛깔나는 상황설명을 살리고 싶었는데..참 어렵네요. 넓은 아량으로 읽어주세요♥

-다음화도 최대한 빨리 업로드 하도록 하겠습니다! 날이 춥네요 ㅜㅜ 감기조심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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