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부 부스 앞에 나타난 이 여자. 민은 이 여자를 본 적이 몇 번 있다.

“어? 알 것 같은데...”

앉아 있던 민이 그 여자를 보고 눈을 둥그렇게 뜬다.

“연희 누나라고 했나요?”

“어, 맞아. 그 현애라는 애하고... 알고 있지?”

연희는 기다렸다는 듯 말한다.

“네. 그런데 여기는 무슨... 일로?”

“아, 우리 동아리 팝업스토어 있으니까 시간 나면 보러 오라고.”

“어... 그런 거였어요? 그런데 만화에 관한 게 아니어도 팝업스토어가 가능해요?”

“어, 물론 완전히 관련이 없는 건 아니지만.”

그렇게 말하면서 연희는 포스터 하나를 보여준다. 해골과 좀비, 그리고 외계 괴물들이 등장하는 만화 <툼 오브 더 킹즈>다. 물론 여기 있는 4명은 이름만 들어 봤을 뿐 보거나 아니면 팬 활동을 했다든가 하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어쨌든 ‘만화’라는 주제에는 들어맞는다.

“아무튼, 한 번씩 와줘. 여기서 멀지 않으니까!”

그러고서 연희는 자기 부스로 돌아간다. 다들 소 보듯 닭 보듯 하다가 그냥 고개만 끄덕인 정도지만, 토마는 연희의 뒷모습을 보고는 무엇인지 모를 웃음을 짓는다. 물론, 그 오컬트 굿즈라든가 <툼 오브 더 킹즈> 만화가 마음에 들어서 그런 건 아니다.

“오, 오컬트 동아리라고? 그리고 내 능력을 아예 모르나 보네. 한번 써 볼까?”


한편 윤진은 메이링과 통화를 마치고 대전시장 안으로 들어간다. 마치 구경만 하러 온 사람처럼 여러 부스들을 스윽 둘러본다. 이런저런 작품들에 관련된 여러 가지 굿즈들이 많은데, 그 중에는 기업 홍보용 부스도 있고, 아니면 개인이 차린 부스도 보인다. 저렇게 하고서 코믹 페스타에 나가도 되는 건가 의심되는 곳도 물론 있지만, 윤진 자신도 감탄할 정도의 높은 완성도를 보이는 부스도 있다. 학교 관련 동아리만 아니라면, 영입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정도의 그런 책자와 소품들이 진열되어 있다. 그중 윤진의 시선이 멈춰선 곳은 매우 아기자기하게 꾸며진 한 부스.

“어디, 아무리 봐도 중학생 정도밖에 안 되어 보이는데, 우리 학교에 전학 오라고 해도 되나... 가능성은 크지 않겠지만.”

그렇게 중얼거리며 걷다 보니, 어느새 민과 토마, 아이란, 마린이 있는 부스 앞에 다다른다.

“어, 다들 와 있었네? 오느라 수고 많았어.”

윤진이 부스 앞에 오자, 아이란과 마린은 급히 일어서려고 하지만, 윤진이 다시 앉으라며 둘을 제지한다.

“혹시 지금까지 온 사람은 없었던 거지?”

“어... 한 명 있었는데요.”

“한 명? 그게 누군데?”

“자기가 뭐라고 하나, 도라고등학교의 도컬트라는 동아리에서 와서 팝업스토어를 하고 있다고 그러던데...”

“어? 뭐야, 벌써 온 거야?”

윤진은 바로 연희가 있는 부스 쪽으로 가 본다. 만화부 부스에서는 멀지 않은 곳에 있고, 1곳만 쓰고 있으니까 바로 나올 것이다.

그런데... 보이지 않는다. 분명히 위치는 윤진이 서 있는 통로에서 왼쪽으로 돌아보면 나온다고 했다. 분명히 위치는 이쪽이다. 그렇다면 설마...

“어? 설마, 저기 드라이아이스같이 되어 있는 부스인가?”

윤진이 그리로 가 보니, 정말 그 연기도 아니고 드라이아이스도 아닌 흰 기체 안에, 도컬트의 부스가 있다. 내부는 꽤 으스스해 보이기도 하는데, 그 흰 기체 때문에 부스 밖이 보이지 않아서 더욱 그렇다. 안으로 들어가 본다. 과연, 연희가 안에서 부스를 정리하는 중이다.

“야! 이렇게 해 놓으면 더 음산해 보이지 않냐?”

“뭐가 음산해? 더 음산할 것도 없는데.”

“아니, 연기냐, 드라이아이스냐, 뭐냐, 이거 부스 안에 막 뿌려 놓고, 이게 안 음산하다고?”

“이거 내가 한 거 아닌데.”

“뭐...? 네가 한 게 아니야?”

윤진은 잠시 그 연기를 유심히 본다. 드라이아이스도 아니고, 행사용 연기 같은 것도 아니다.

“잠깐... 이 습기, 뭐지...”

그리고 그 순간, 윤진의 머릿속에 확신이 하나 든다. 이건, 분명히 누군가 초능력으로 장난을 쳐 놓은 것이다. 그리고 범인은 바로...

“이 녀석, 또 시작이야! 물론 그것 때문에 행사에 부른 것이기는 하지만.”

윤진은 그렇게 혼자 중얼거리더니, 도컬트 부스를 빠져나온다.


한편, 부스 밖 통로에서는 방문객들이 저마다 이야기를 주고받고 있다.

“어... 여기 행사장이 뭐 이렇게 덥지?”

“그러게...”

“무슨 화산 행성 같은 데 온 거 같은데?”

“에이, 그건 아니지! 화산이라고 하면 버틸 수가 없는데.”

한편, 만화부 부스 앞을 지나는 코스프레 복장을 한 참가자가 옆에서 불평하며 걷는 다른 참가자에게 핀잔을 준다.

“그런데 원래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으면 더운 법이잖아. 이런 큰 행사가 있으면 에어컨을 빵빵하게 틀어 놔도 더운 건 마찬가지라고.”

“내가 이런 행사는 꽤 많이 참가해 봤는데 말이야...”

옆에서 걷는 다른 참가자가 그 코스프레를 한 참가자의 말을 반박한다.

“이렇게 빨리 더워진 적은 없었어. 어떤 행성에 사람이 많이 살면 기후가 바뀐다는 말이 있잖아? 그렇게 된 것 같아, 지금.”

“어... 정말? 나는 잘 못 느끼겠는데?”

“네가 둔감한 거라고!”


한편, 토마는 부스 앞을 지나가는 그 일행의 반응을 보며 꽤 만족한 듯하다. 물론 겉으로는 표현하지는 않지만, 속으로는 그 기쁨을 주체하지 못한 나머지, 자기 주위, 즉 만화부 부스 안이 꽤 습하게 되었다는 사실도 잊어버린다.

그런데, 토마의 숨이 꽉 막혀 오는 듯한 기분이 들기 시작한다. 숨도 점점 가빠지고, 기침도 시작된다. 거기에다가 점점 어지러워져 오는 머리는 덤이다. 그런데 지금의 이것, 천식 때문이 아니다. 오히려 천식 때문에 그런 거라고 한다면, 요즘은 많이 나아졌다.

“콜록... 콜록... 도대체 왜 이래?”

이건, 1년 전, 천식을 가장 심하게 앓았을 때, 호흡기를 입에 대서 겨우 살아났던 그 때의 그 기억이다. 그 기억이 다시 머릿속과 온몸에 생생히 전해지는 것이다.

“야, 야! 토마, 괜찮은 거야?”

옆에 앉아 있던 민이 토마에게 다가가서 어깨를 붙들고 일어나라고 하려고 하자, 아이란이 민의 손을 붙든다. 그리고 민의 앞에 놔둔 전화에 표시된 메시지를 가리킨다.

“어? 무슨 메시지...”


[너무 즐거워하는 것 같아서. 내가 좀 손을 썼어]


민은 바로 답장을 보낸다.


[저러다가 토마가 죽는 거 아니야?]

[걱정하지 마. 죽지는 않아. 단지 지금까지 살아온 기억 중에 가장 나쁜 기억을 재현시키는 것뿐이야]


‘이거 큰일났는데... 이대로 갔다가는 정말 죽어 버리는 거 아니야?’

토마의 머릿속에는 이런 불안감이 자리잡는다. 곧바로, 수증기를 주위에 모으기 시작한다. 물론 숨을 쉬려는 이유도 있지만, 다른 이유가 하나 더 있다. 충분히 수증기를 모으면, 토마의 능력 정도면 허상을 만들어내기는 어렵지는 않다. 그렇게 해서 다른 사람들에게 태연한 척 보이는 것이다.

곧, 사람들이 지나가는 게 토마의 눈에 보인다. 다들 빈 가방을 하나씩 들고 여러 부스들을 구경하거나, 아니면 사람들을 구경하거나 하고 있다. 그러다가 만화부의 부스도 지나친다. 그 시간, 토마는 얼굴을 매우 찡그린 채 숨을 잘 못 쉬고 있다. 하지만 그 행인들은 토마와 눈을 정면에서 마주쳤음에도, 그냥 지나쳐 간다. 지금 토마의 모습을 의심한다든가 하는 모습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하... 성공이다...’

이렇게, 토마는 사람들의 눈을 속여 넘기는 데 성공했다. 주위에 많이 모아 놓은 수증기 때문에 높아진 습도는 별론으로 치고서라도 말이다. 옆을 한번 돌아본다. 민은 물론이고, 마린과 아이란도 토마가 앉아 있는 곳은 돌아보지도 않은 채, 앞에 있는 굿즈와 책자만 보고 있다.

“후... 후우...”

그래도 혹시나 자신의 숨소리가 주위에 들릴까 걱정한 토마는, 숨소리를 낮춘다. 하지만 여전히 토마의 머리를 떠나지 않는 그 싫은 기억은, 계속해서 토마를 괴롭힌다. 이제는 두통까지 나고 있다. 그것도 머리를 들기 힘들 정도의 두통이다. 1년 전에도, 똑같이 이랬다. 그 천식 때문에 숨을 쉬지 못하고, 이대로 죽게 되나 하고도 생각했던 그 때의 그 통증 그대로다.

“이건 위험해... 위험하다고...”


그때, 부스 바로 앞에 누군가가 지나가려는 듯하다가, 멈춰선다. 다름아닌 윤진이다. 마치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뭔가를 사려는 사람처럼, 유심히 부스의 진열대를 보다가, 토마의 앞에 멈춰 선다.

“윤진이 형, 여기는 웬일로?”

마침 부스 한쪽에 앉아 있던 민이 자기 앞에 선 윤진을 보더니 말을 건다.

“지금 요시노 감독님 사인회 준비하고 있던 거 아니었어?”

“아, 지금은 조금 숨 돌릴 시간이 생겨서.”

윤진은 자꾸만 토마 쪽으로 시선을 두면서 말한다.

“그래서 시간이 좀 나니까, 우리 부스 어떻게 되어 가나 궁금해서.”

“그런데 왜 토마 쪽을 보는 거지?”

민은 대충 알고는 있지만, 애써 모르는 척 반응한다. 하지만 윤진도, 짐작은 한다. 민이 어느 쪽에 신경을 쓰고 있는지를.


[모르는 척하지 마]


민의 전화 대화창에 메시지가 하나 뜬다. 그리고 윤진이 토마가 앉아 있는 곳 주위를 손으로 휘휘 젓더니,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그리고 토마의 앞을 지나 아이란과 마린이 앉아 있는 판매대 앞에 선다. 아이란과 마린은 갑작스러운 윤진의 등장에 놀란 건지, 입을 다물지 못한다. 바로 그 자리에서, 윤진이 뭐라고 막 말하려던 그때.


♩♪♬♩♪♬♩♪♬


윤진의 전화 수신음이다. 소리만 듣고도 누가 전화를 거는지 아는 건지, 윤진은 바로 자리를 벗어나 어디론가 빠른 걸음으로 사라진다.

“뭐야, 어디 가는 거지?”

“그러게. 요시노 감독님 때문에 저러는 건가...”

서로 그렇게 말을 주고받던 마린과 아이란은 잠시 토마를 돌아본다. 토마는 아직도 머리를 싸매고서 얼굴을 들지 못하고 있다. 어느새 주위에 둘러 두었던 수증기도 사라졌다.

“이제 그만 할까...”

아이란이 그렇게 중얼거리자, 마린이 막 뭐라고 하려는데, 문득 돌아보니 토마는 머리를 들고 ‘후’ 하고서 안도하는 숨을 뱉어내고 있다. 아까 전에 겪었던 심한 통증은 머릿속에서 싹 없어진 듯, 표정은 원래의 소심해 보이는 표정으로 돌아왔다.

‘분명... 방금 전 그건 아이란 선배의 능력이지...’

토마의 시선이, 아이란과 마린 쪽으로 돌아가더니, 토마의 눈에서 불똥이 튀려는 듯 보인다.

‘잘도... 나를 이렇게 방해했겠다. 내 진정한 능력을 아직 겪지 못한 모양인데...’

토마가 막 그렇게 머릿속으로 되뇌이며 주먹을 꽉 쥐려는 그때.

“토마? 내가 물어 볼 게 하나 있는데...”

토마의 옆에서 들리는 마린의 목소리. 어느새, 마린이 토마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글 쓰고, 가끔 그림도 그립니다. 언젠가는 사랑받는 작가가 되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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