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늘 


작가 희야


1.

애초부터 이렇게 내가 비정상적인 것은 아니었다. 처음에는 입가에 하얀 부스럼이 침 흘리다가 마른 자국처럼 생겨났다. 이때까지만 해도 나는 입가의 하얀 부스럼이 때인 줄만 알았다. 때밀이로 입가 주변을 빡빡 밀어봤지만 하얀 부스럼은 좀처럼 없어지지 않았다. 날이 갈수록 하얀 부스럼이 일어나는 부위가 점점 넓어졌다. 손과 발등에도 작은 좁쌀 같은 발진이 생겨났다. 작은 좁쌀들이 손과 발등에 퍼질수록, 그 위로 하얀 부스럼이 생겼다. 부스럼은 자기들끼리 겹겹이 뭉쳐지거나 커지면서 은백색 비늘로 돋아났다. 비늘은 촘촘하게 내 입가와 손등 그리고 발등에 돋아났다. 손톱으로 비늘을 쉽게 뜯을 수 있었다. 그러나 다시 하얀 부스럼이 피부에 생겨서 좀 더 딱딱한 비늘이 되었다. 비늘과 비늘 사이로 지우개 가루 같은 것이 끼이면 미친 듯이 간지러웠다.

책상에 엎드려 자다가 연필심이 비늘과 비늘 사이에 끼이면 문제가 더 심각해졌다. 내가 고개를 조금만 기웃거리기만 해도 뾰족한 연필심이 맨피부를 긁었다. 그러면 비늘 사이로 상처 난 곳에서 붉은 피가 뚝뚝 떨어졌다. 비늘 사이 틈은 검지 한 마디 들어가기도 어려웠다. 그래서 연필심이 끼면, 곧장 피부과로 가서 전문가용 작은 핀셋으로 뽑아냈다.

하얀 부스럼이 생기기 시작했던 것은 친할머니가 암으로 거동이 불편해지기 무렵과 시기가 비슷했다. 할머니가 다리와 팔을 제대로 사용하지 못할수록 내 비늘은 점점 딱딱해지고 휜 상태로 자라났다. 이제는 돋아난 비늘 때문에 내 입가와 손등, 발등의 맨피부를 못 본 지도 오래였다. 여러 피부과에서 검사를 받았지만, 의사들 모두가 내 증상에 대해 원인불명이라는 말만 반복할 뿐이었다.

가끔 내가 할머니를 찾아뵐 때마다 할머니는 자신의 마른 손으로 내 비늘들을 정성스레 어루만지셨다. 나나 다른 사람의 손으로 비늘을 만지면 비늘은 자신의 적이라도 만난 듯 바싹 위로 솟아올랐다. 그러나 할머니의 손에 닿을 때마다 비늘은 자신의 주인이라도 만나 순응하는 것처럼 아래로 움츠러들었다. 또 가끔씩 비늘은 할머니의 말 한마디에 파스스 떨기도 했다. 할머니는 파스스 떠는 비늘을 볼 때마다 깔깔 웃음이 터지시고는, 재롱부리는 어린 손자를 보는 것 같다고 기쁜 어조로 내게 말씀하시고는 했다.

“신기하기도 하지. 비늘이 이리 움직이니.”

할머니의 비늘을 어루만지는 습관은 할머니가 거의 혼수상태로 의식이 없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할머니는 내가 당신 손을 잡아 드리면 금세 내 손에서 벗어나 내 손등 위 비늘을 어루만졌다. 그럴 때마다 비늘은 파스스, 저 스스로 떨며 할머니의 손길에 화답했다. 비늘은 내 뜻대로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그것은 내 입가 주변, 내 손등, 발등에 기생하는 생물이었다. 제 뜻대로 기분 나쁘면 위로 솟아오르고, 기쁘면 파스스 떠는 행동만 봐도 앞의 사실을 증명하는 셈이었다. 처음에 나는 그 사실을 깨달았을 때, 비늘을 다 뽑아버리고 싶은 충동에 시달렸다. 비늘이 돋아나면서부터 나는 남들과 같은 대우를 받기 어려워졌다. 남들의 눈에 나는 자신들과 같은 인간이 아니었다. 그들에게 나는 인간 외의 것이었다. 그나마 이런 나를 받아주는 사람은 할머니 말고는 없었다. 그러나 할머니 역시 내가 아닌 비늘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비늘이, 야는 뭐를 좋아하나.”

“네?”

“그러니까 비늘이는 보통 뭐를 먹고 사느냐고.”

그날은 내가 거동이 불편하신 할머니를 휠체어에 앉혀서 바깥을 산책하는 날이었다. 평소처럼 둘이서 무엇을 식사로 같이 먹으면 좋을지 얘기하던 차였다. 할머니가 꺼낸 말 한마디는 예고 없는 시한폭탄으로 내 앞에 툭 떨어졌다. 나는 잠시 침묵을 지키다가 말을 이어갔다.

“할머니, 비늘이가 뭐예요. 그냥 비늘은 비늘일 뿐이에요.”

“야가 무슨 말을 그리 해! 비늘이도 듣는 귀가 있다! 말조심 해라!”

“할머니, 할머니. 갑자기 그런 말씀을 꺼내시면……”

“비늘이가 자길 쓰다듬는 내 손길에 파스스, 떠는 게…….”

“할머니…….”

“꼭 먼저 간 인혁이 생각이 나지 뭐냐. 인혁이도 어릴 때 내가 자기 볼 귀엽다고 어루만지면 고개를 도리도리하면서 ‘할머니 그만 좀!’하고 말하곤 했는데.”

“…….”

“오늘따라 입맛이 없네. 난 계속 밖에 있을 테니깐 니는 밥 좀 먹고 온나.”

“아니에요. 저도 생각이 없어요. 그럼 제가 할머니가 좋아하는 장소로 모셔다 드릴게요!”

나는 할머니가 탄 휠체어를 끌고 병원 뒤편에 자리한 작은 인공 연못으로 갔다. 아기 예수님을 안고 있는 성모 마리아상이 연못 물 위로 떠 있었다. 잉어들이 긴 꼬리지느러미로 연못 수면 위를 자유롭게 헤엄쳤다. 나는 비늘이 돋아난 손등을 연못 아래로 담갔다. 나와 좀 먼 거리에서 있던 잉어 한 마리가 비늘이 돋아난 내 손등을 보고는 자신의 동족인 줄 아는지 점점 가까이 다가왔다. 그는 자신의 꼬리지느러미를 아주 느릿하면서도 때로는 활발하게 움직이며 내 손등에 다가왔다. 내게 다가온 잉어는 원래 이 연못에서 살아가던 아이가 아닌 것 같았다. 아무래도 이번에 봄이 가까워지면서 병원에서 새로운 잉어 한 마리를 더 연못 식구로 넣었나 보다.

잉어는 원래 있던 잉어 식구들과는 생김새부터가 달랐다. 기존 잉어들은 자신들이 한 핏줄이라는 사실을 뽐내기로 하는 것처럼 하나같이 주황색 몸통에다가 흰 점박이 무늬가 서너 개씩 박혀 있었다. 반면에 새로운 비단 잉어는 하얀 몸통이었다. 그의 대가리부터 꼬리지느러미까지는 주황색, 검은색 점박이 무늬 순서대로 배열되었다. 새로운 잉어는 내 눈에 익숙하면서도 익숙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항상 그림으로만 보다가 실제 살아 있는 생물로 보게 되는 경우는 많지 않았다.

그 아이는 나와 함께 물가로 가 쉬는 것을 좋아했다. 신기하게도 그 아이가 물가 근처로 손을 내밀기만 해도 모든 물고기가 무엇인가에 홀리기라도 한 것처럼 그의 손을 쫓았다. 나는 그의 그런 모습을 볼 때마다 야생의 것들이 저렇게 사람을 따르는 것이 참 신기했다. 길들여지지 않은 것을 길들인다는 것. 그 아이가 가진 선천적 분위기는 곱고, 따뜻하고, 밝았다. 그리고 그 아이는 누구에게나 상냥했다. 물고기, 개, 고양이, 사람 등 어느 종족을 따질 것도 없이 모두 그 아이를 원했다. 완벽한 존재라는 말은 바로 그 아이를 가리키는, 참으로 멋진 단어였다.

그 아이가 죽은 이후로 나는 연못이나 강가 근처에 가는 것을 꺼렸다. 물이 할머니와 내게서 그 아이를 빼앗아가서였다. 잉어들이 나와 눈이 마주칠 때마다 아무것도 비치지 않던 그들의 눈 위로 이상한 너울이 피어올랐다. 그 순간마다 나는 발끝, 손가락 끝에서 훅훅한 한기가 내 몸을 기어오르는 것이 느껴졌다. 그 훅훅한 한기가 어디서 왔는지 그리고 무엇이라고 정의하기에는 다소 어려웠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그 아이였다면 잉어들이 내게 다가왔을까. 한기가 내 입으로 들어와 온 몸을 휘휘 차갑게 얼렸다. 따뜻한 피가 돌고 있던 혈관이 한기 때문에 딱딱하게 굳어갔다. 내 머릿속 역시 그 아이 생각만 간직한 채로 얼어붙었다.

순간 내 뺨에 한 방울, 두 방울 떨어지는 빗방울이 떨어졌다. 점점 비는 거세지면서 할머니와 내 옷을 듬뿍 적셨다. 미처 피할 틈도 없이 내린 소나기였다. 나는 서둘러 할머니의 휠체어를 밀고 병원 안으로 들어갔다. 숨을 가쁘게 쉬시던 할머니는 간호사들의 재빠른 대처로 침대에 눕혀져 응급실로 들어가 응급처치를 받으셨다. 한숨을 돌린 나는 응급실 안에 있는 의자에 앉아 얼굴을 두 손으로 감싸 쥐었다. 또 나 때문이었다. 나는 아까 갑작스러운 날씨 변화를 미리 확인해야 했다. 아니면 혹시라도 소나기가 올 경우를 대비해 우산을 들고 나왔어야 했다.


2.

추적추적 땅에 떨어지던 소나기 소리가 멈췄다. 나는 운동화를 벗어 의자 밑으로 가지런히 놓아두었다. 맨발로 차갑게 식은 시멘트 바닥을 밟았다. 시멘트의 도톨도톨한 부분들이 내 발바닥을 따끔하게 찔렀다. 계속 맨발로 시멘트 바닥을 걷다 보니 발바닥 군데군데 껍질이 벗겨졌다. 껍질이 벗겨지면서 느껴지는 작은 아픔은 그럭저럭 참을 만했다. 그러나 마음속 허전함은 무엇으로도 채우기 어려웠다.

어느새 나는 다시 병원 인공 연못으로 돌아와 있었다. 마치 귀신에 홀린 것만 같았다. 내가 연못 쪽으로 다가가자 자기들끼리 모여 있던 잉어들이 내게서 재빠르게 달아났다. 흰 몸에 주황색, 검은색 무늬가 있는 잉어의 눈이 나와 마주쳤다. 그의 눈에서 너울이 또 물씬물씬 피어올랐다. 그 너울은 연못에서 헤엄치는 인혁이의 숨결 같기도 했다. 아니면 인혁이의 긴 꽁지머리가 물속에 헤엄치는 것만 같았다.

인혁아, 벌써 네가 떠난 지도 육 년이나 지났어. 할머니는 이제 나를 너로 보지 않으셔. 대신에 비늘이, 그놈의 비늘이 뭐라고. 인혁아 네 자리를 은백색 비늘이 차지하고 있어. 할머니 말대로 네가 정말…….

소나기에 젖은 내 긴 앞머리를 뒤로 넘기자 인간을 피해 달아났던 잉어들이 하나 둘 내 주위로 모여들었다. 나는 연못 물속에 비친 나 자신을 바라보았다. 아니, 물속에서 헤엄치고 있는 인혁이와 눈을 마주쳤다. 우리는 이란성 쌍둥이였다. 그렇지만 나와 인혁이는 얼굴도 키도 모두 똑같았다.

조금의 차이가 있다면 인혁이는 나보다 더 많이 똑똑했다. 그리고 똑똑했던 만큼 성격도 아주 좋았다. 항상 뒤에서 움츠려 있던 나를 같이 자신의 옆에 서 있게 해주었다. 나를 항상 구박만 하던 할머니도 내가 인혁이와 함께 있을 때만큼은 평소처럼 계집애, 몹쓸 년이라고 부르지 않는 대신에 내 이름을 불러주셨다. 부모님은 할머니의 잦은 구박에 고통 받는 나를 보호해주지 않으셨다. 그들은 나와 가끔은 눈이 마주칠 때 아주 잠시 오랫동안 나를 응시했다. 그리고 그것이 끝이었다. 그들 역시 나라는 존재를 그다지 달가워하지 않았다. 생각해보면 나는 이제껏 단 한번도 부모님에게서 내 이름을 불러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인혁이는 달랐다. 조인혁, 할머니가 귀한 5대 독자라며 용하시다는 무당집에 직접 찾아가서 받아왔다던 고귀한 이름이었다. 나라 조(趙), 어질 인(仁), 빛날 혁(焃)이라는 세 한자가 모여 인혁이를 뒤에서 단단히 받쳐주고 있었다. 모두 뭐든 잘하는 인혁이를 보고 큰사람이 될 수 있다고 입을 모아 칭찬했다. 그들은 인혁이가 어떤 행동을 하든지 칭찬을 했고, 인혁이의 장래를 의논했다. 정작 당사자인 인혁이를 배제하고서 말이었다.

그럴 때마다 인혁이는 나를 이끌고 우리가 자주 찾았던 집 근처 호수로 데려갔다. 주황빛으로 물들어 서서히 저물어가는 해를 보며 내 어깨에 기댄 인혁이는 내게 이런 식으로 내게 말을 하곤 했다. 이대로 둘이서 하나가 되어 물속으로 들어가 그곳에서 영원히 살고 싶다고. 항상 내 앞에서 크게만 느껴졌던 인혁이가 나보다 작아지는 순간이었다. 나는 대답 대신 인혁이와 맞잡은 손에 꽉 힘을 쥐었다. 그러면 인혁이는 나를 보며 웃었다.

이제 스물하나가 된 나와 여전히 열 다섯 살인 인혁이가 서로 마주 보고 있었다. 나는 인혁이에게 손을 뻗지만, 인혁이는 뒤로 물러서며 내 손길을 피했다. 나는 인혁이에게 말을 꺼냈다.

인혁아, 너는 아직 물속에 있구나. 여기로 돌아와.

인혁이는 곤란하다는 듯이 고개를 옆으로 저었다. 거절의 의미였다. 빗방울이 떨어지는 소리가 점점 사라지고 있었다. 잦아드는 빗방울 소리에 따라 인혁이가 뒤로 헤엄치기 시작했다. 인혁이는 나를 향해 입을 움직였다. 그러나 소리 대신 인혁이의 입에서는 작은 물방울들이 나와 수면 위로 올라왔다. 나는 인혁이에게 닿기 위해 물속에 손을 더 깊이 뻗었다. 인혁이는 여전히 나에게서 달아났다. 더 이상 빗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인혁이 대신 인혁이 입에서 나왔던 작은 물방울들이 수면 위로 올라와 보글거리다가 스스로 뻥 터지며 사라졌다. 나는 축 젖은 앞머리를 다시 앞으로 내렸다. 길이가 긴 앞머리가 시야를 가리는 탓에 눈이 잘 보이지 않았지만, 내 흉측한 얼굴을 가릴 수 있는 최적의 수단이었다. 앞머리로 눈을 가리자, 잉어들이 흠칫 멈췄다가 다시 내게서 달아났다. 멀리멀리.

할머니가 비늘을 생물로 인식하는 그 무렵부터 나는 ‘평범함’이라는 단어에 집착했다. 우선 내가 평범해지려면 평균적인 어투, 평균적인 인간관계, 평균적인 성격 등 상황에 따른 평범한 행동 패턴 등을 우선 알아야 했다. 하지만 평범할 수 없었던 나는 몰랐다. 어떻게 적당하게 시선을 처리할 수 있는지, 어떤 말을 꺼내야 상대방에게 무난한 답변을 들을 수 있는지, 어떤 향의 향수를 내게 뿌려야 무난한 사람이 될 수 있었는지를.

갈수록 나는 날카로워졌다. 내 시각은 온통 사람들의 눈치와 행동거지를 살폈고, 내 청각은 사람들이 내뱉는 사소한 말 한 마디, 한 마디조차 놓치지 않으려고 했다. 또한 내 후각은 사람들의 향기 그리고 온갖 것들의 냄새에 집중하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그때부터 내가 처한 현실을 알았어야 했다. 모난 돌멩이는 애초에 구석지고 모난 곳에 처박혀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3.

아침부터 내린 비가 하늘을 어두운 회색빛으로 점점 물들였다. 얼굴에 닿는 공기가 자꾸 텁텁했다. 내 책상 위에 놓인 액자 속 사진을 쳐다보았다. 같이 찍었을 때는 셋이었는데 이제는 나 혼자 남겨졌다. 사진 속에도, 현실 속에도. 액자 속에서 사진을 꺼냈다. 사진은 나와 인혁이가 다섯 살이었을 때, 소파에 앉은 할머니 무릎에 앉아 같이 찍었던 사진이었다. 사진 속 우리는 할머니와 함께 웃고 있었다.

그때는 아무것도 몰랐다. 인혁이가 물속으로 영영 사라졌다는 사실을, 내가 인간 외의 것이 되어버렸다는 사실을, 할머니는 인혁이를 기다리다가 지쳐서 나를 평생토록 미워했다는 사실을. 텁텁한 공기가 어느새 목구멍에 들어와 갈증을 자꾸 자극했다. 뭔가 마셔도, 마셔도 먹어도, 먹어도 채워지지 않는 공백이 자꾸 커져만 갔다.

나는 마음속으로 입가, 손등, 발등에 돋아난 비늘들에게 할머니의 소식을 전했다. ‘너희를 사랑했던 할머니가 깊이 혼수상태에 빠지셨어. 영영 돌아오지 않을 거야.’ 비늘들은 잠시 움츠러들었다. 그리고 그들은 위로 솟아올랐다가 움츠러들기를 반복했다. 비늘들의 그런 행동은 내 피부들을 마구잡이를 긁어댔다. 가장 간지럽고 아픈 부분을 손톱으로 긁으며 조금이라도 비늘을 말리려고 했다. 하지만 그들은 계속 움츠러들었다가 위로 솟아올랐다. 비늘에 의해 긁힌 피부 부위에서 피가 뚝뚝 흘렀다. 그러나 아랑곳하지 않고 비늘들은 다시 움츠러들었다가 위로 솟아올랐다. 무언가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라도 하겠다는 것처럼. 그렇다면 비늘들은 누구로부터 누구를 보호하고 있는 걸까. 피가 방바닥에 떨어졌다. 나는 방바닥에 떨어진 핏방울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이 핏방울이 과연 내 핏방울일까. 아니면 비늘들의 핏방울일까.

할머니가 계신 병원으로 가는 버스가 학교 기숙사 근처 버스정류장에 도착하기 15분 전이었다. 그래서 나는 서둘러 밖으로 나갈 채비를 했다. 머리를 한 갈래로 묶다가 오른쪽 손목으로 시선이 갔다. 오른쪽 손목에는 이틀 전에 술을 마시다가 무심결에 그은 자해의 흔적이 있었다. 과일을 깎는 작은 칼 따위로 오른쪽 손목을 그었기에 많이 아프지는 않았다. 다만 손목의 상처는 빨갛게 달아올라 진물이 조금씩 손목을 타고 흘러내렸다. 느껴지는 작은 아픔과는 달리 상처는 한눈에 보기에도 매우 심하게 부어올라 있어서 눈을 크게 껌뻑였다. 아픔에 비례하는 상처는 아니어서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만약 상처가 아픔과 비례했다면 어떤 것이 먼저 주체로 설명될 수 있었을까. 지금 상태를 주체와 객체로 설명하자면 주체가 상처의 심해 보이는 정도이고, 객체가 미미하게 느껴지는 아픔일 것 같았다. 왜냐하면 주체는 항상 겉으로 드러나는 자가 차지하고, 객체는 주체의 뒤에서 숨어 자신을 가려야 하기 때문이었다.

인혁이가 영영 사라졌을 때, 사람들은 그 아이에 대해 수군거렸다. 더러는 ‘조인혁은 행방불명됐다’고 말했고, 어떤 이들은 ‘조인혁은 죽었다’며 슬퍼했다. 그리고 극히 일부분은 ‘조인혁은 스스로 사라졌다.’고 소심하게 말했다. 그러나 이 앞의 세 문장은 인혁이의 현재 상태를 자세히 설명하지 못했다. 어쨌거나 중요한 사실은 여전히 인혁이가 물속에서 헤엄치고 있다는 것이었다. 내 존재에서 주체가 사라졌다. 단지 그림자격인 객체인 나 자신만이 존재하고 있을 뿐이었다. 나는 혼자서 이 세계를 버티기 어려웠다. 주체가 없는 객체는 단지 영혼 없는 빈껍데기에 불과했다. 나는 내 주체인 조인혁을 찾아야 했다.

오른쪽 손목의 상처에 연고를 발랐다. 그리고 나는 평소에 왼쪽 팔목에다가 찼던 손목시계를 흉터를 가리기 위해 오른쪽 팔목에다가 찼다. 오른쪽 손목에 시계를 채울 때, 수월하게 시계를 찼던 왼쪽 손목과는 달리 시간이 좀 더 걸렸다. 오른쪽 손목에 닿는 시계의 감촉이 어색하고 불편했다. 기숙사 방문을 열고, 엘리베이터를 탔다. 평소와 달리 엘리베이터는 좀처럼 내가 있는 층으로 올라오지 않았다. 기다림이 평소보다 길었다. 발을 동동 굴렀다. 핸드폰으로 확인해보니 버스가 정류장에 도착하기 5분 전이었다.

나는 뒤늦게 도착한 엘리베이터를 탔다. 서둘러 타려고 했던 탓에 오른쪽 손목의 상처와 손목시계의 잠그는 쇠부분이 자주 부딪혔다. 약하면서도 긴 쓰라림이 오른쪽 손목에서 뇌로 전해져왔다, 지속해서. 머리가 지끈지끈 울리기 시작했다. 모든 것이 어색하고 불편했다. 오른쪽 팔목에 찬 손목시계도, 귀걸이와 피어싱을 다 뺀 귀도, 시간이 없어 대충 머리를 묶느라 군데군데 튀어나온 잔머리도.

“오랜만이구나.”

“…….”

“밥은 먹었니?”

“일단 할머니께 인사하고 오렴. 그 다음에 같이 밥 먹자.”

“네.”

오랜만에 본 엄마의 얼굴은 낯설었다. 인혁이가 사라진 후, 엄마는 인혁이와 똑같이 생긴 내 얼굴을 보는 것을 견딜 수 없어 했다. 그녀는 아빠와는 반 별거 상태로 우리집과 외갓집을 오고 갔다. 엄마는 최대한 나와 둘이서 마주치지 않으려고 했다. 그래서 나와 엄마는 서로 일 년에 한두 번 데면데면 겨우 볼 정도였다. 아빠와 반 별거 상태로 지내기 전까지, 엄마는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나와 마주칠 때마다 온몸을 떨었다. 그녀의 눈동자는 인혁이를 향한 그리움에 눈물이 가득 고였다. 그러다가도 엄마도 인혁이와 같이 돌아오지 못한 나에 대한 적대감과 분노를 참지 못해 나를 죽일 듯이 노려보았다.

어느 날, 엄마는 직장에서 돌아오는 아빠를 위해 생선 손질을 하다가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온 나와 눈이 마주쳤다. 엄마는 다 손질하지 못한 생선을 도마 위에 내버려두었다. 그리고 그녀는 칼을 두 손으로 잡은 채로 현관문 앞에 서 있는 나를 향해 천천히, 아주 천천히 다가왔다. 우리 둘 다 서로 눈을 맞추고 있었지만, 서로를 진정으로 쳐다보지는 않았다. 엄마의 눈동자에는 내 모습이 비치지 않았다. 대신 물속에 휩쓸려가는 인혁이의 모습이 일렁거리고 있었다. 내 눈동자에도 아무것도 비치지 않았다. 다만 자식을 잃게 한 원수를 향한 복수를 이제 막 시작하려는 짐승 어미의 모습이 내 눈동자 위로 일렁거렸다.

“인혁이를 내놔.”

“…….”

“처음부터 너 같은 거 필요 없었어.”

“엄마.”

“항상 너는 나를 그렇게 무기력한 눈으로 바라봤어. 마치 너를 낳아준 나를 원망하는 것처럼.”

“엄마.”

“엄마, 라고도 부르지 마. 넌 내 자식이 아냐.”

“엄마. 나는…….”

“제발 내게 인혁이를 돌려줘. 인혁이가 있어야…….”

“…….”



※ 샘플 이후의 이야기는 페미니즘 중단편 소설집 <사바트> 단행본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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