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의 늙은 고양이는 길거리 출신이다.

원래는 언니의 남자친구가 키웠다. 언니는 남자친구보다 고양이와 더 정이 많이 들었는지 남자친구랑은 헤어졌으면서 고양이 양육권은 자기가 가져왔다.

그렇게 녀석은 언니의 고양이가 되었다.

고양이를 처음 만난 건 언니의 자취방에서였다. 처음 자취를 시작해 자유를 만끽하느라 바빴던 언니의 방은 털 난리판 그 자체였다.

나는 내게 고양이 알러지가 있음을 그날 처음 깨달았다. 들이쉬는 호흡마다 털이 날렸고, 노출된 피부가 이유 없이 근질거렸다. 팔이며 목덜미가 두드러기처럼 붉게 올라왔다.

언니의 자취방에서 고양이는 찾을 수 없었고, 그가 존재했다는 흔적만이 털뭉치로 여기저기 가득했다.

녀석은 침대 밑에 숨어있었다. 어둠 속에 몸을 웅크리고선 낯선 침입자가 제 영역에서 사라지기만을 기다리는 중이었다.

그러다 그 침입자가 제게로 손을 뻗은 순간 번개처럼 도망쳐 이번에는 부엌 하부장 밑으로 숨었다. 먼지투성이로 가득한 더러운 곳에 그는 스스럼없이 뛰어들어 몸을 숨겼다.

무엇이 그렇게 두려웠을까.

자취방에서 프리랜서로 자유롭게 사는 동안 언니는 많은 임금체불 사기를 당했다. 그러다보니 빚도 생겼다. 생명을 책임진다는 것이 이렇게나 어려운 일이다.

그렇게 한 사람과 한 마리 고양이는 긴 독립의 시간을 끝마치고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 밑바닥에서부터 다시 일어설 준비를 시작했다.

집사가 늘었다.

고양이는 5평도 되지 않은 언니의 작은 방 안에서 하루를 꼬박 보냈다. 이불 속에서, 상자 속에서, 이따금 언니의 무릎 위에서.

방 안에만 머물게 된 건 알러지 때문이 아니었다. 정작 알러지 보유자는 시도때도 없이 문을 열고 들어와 고양이가 잘 있는지 살피곤 했으므로, 감금은 자의적이었다.

고양이는 누군가 다가올라치면 몸을 굳히고 거세게 하악질을 하며 입 안을 다 보였다. 그러다가 잽싸게 도망쳐 침대 밑에 숨었다. 사람 손에 길들여진 게 10년이 넘는데도 고양이는 여전히 침대 밑의 어둠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했다. 그에게는 그곳이 안식처이자 도피처였을 거다.

몇 년이 더 흘렀다. 고양이는 가족들과 함께 더 넓은 집으로 이사했다. 가족 중 하나가 대뜸 멀리 떠나면서 영역이 넓어졌다. 그녀는 분명 고양이에게 있어 가장 껄끄러운 존재였을 거다. 자꾸만 바라지도 않은 관심을 쏟았기 때문이다. 가끔씩 머리를 내어주고 얻어먹는 츄르는 맛있었지만.

이제 고양이는 집의 최고 권력자가 되었다. 남은 집사들은 낮이고 밤이고 새벽이고 가리지않고 번갈아가며 식사와 물을 대령했으며 이민 간 츄르 노예는 다양한 간식을 보내왔다.

이제 고양이는 언니의 방에만 머무르지 않았다.

거실에 나와 TV시청도 했으며, 커튼 뒤에 숨어 창밖에 날아다니는 새를 구경하기도 했다. 소파 한 구석을 점령하여 제 전용석으로 삼았고, 새벽에는 팬트리에서 이민 간 츄르노예가 보내온 간식을 꺼내 봉지를 뜯어 멋대로 파헤치기도 했다.

그러다 목이 마르면 중년 집사의 방문앞에 앉아 울어댔다. 그러면 그녀는 알아듣지 못할 말을 다정하게 건네며, 신선한 물을 따뜻하게 끓여 제공했다.

모두 잠들어야할 새벽이 오면 고양이는 소파의 전용석에 엎드려 제 영역에 침입자는 없는지 오가는 이를 감시했다. 그러다 사위가 고요해지면 느긋하게 산책도 했다.

아들 집사놈이 한창 게임에 빠져있을 때 살짝 열린 문틈으로 고개를 빼꼼 내밀고 안을 들여다보기도 했다. 그놈의 침대까지 점령하는데는 몇 년의 시간이 걸렸다. 그놈의 반항이 심해서가 아니라 스스로의 공포와 싸우는데 걸린 시간이었다.

그러는 동안 식욕이 줄고 그루밍도 귀찮아졌다.

고양이는 이제 털 관리를 잘 하지 않았다. 윤기가 사라진 털은 멋대로 뭉치고 색이 탁해졌다.

고양이는 예전에는 털을 토해냈지만 이제는 사료를 토했다. 이민 간 간식노예가 보내온 특식이 가끔 입맛을 돋우기는 했으나 그것도 잠깐이었다.

잠 자는 시간이 크게 늘었다.

이제는 집사놈들을 감시하는 것도 귀찮아 옆에 다가와 몸을 만져도 일일이 내치지 않았다. 무기력하게 엎드려 손길을 외면하는 게 전부였다.

고양이는 병원에 입원을 했다.

의사는 신부전이라고 했다. 신장이 많이 망가졌고 췌장염도 있다고 했다. 심장병도 있었다. 오래 입원을 해야하고 퇴원을 해도 수액을 맞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제 잘 먹지 못하는 고양이는 몸을 움직일 기력도 없어 어둠 속으로 숨지 못한다.

고양이는 16년의 세월을 돌아본다.

지난 봄에 집에 잠시 돌아와 귀찮게 굴었던 츄르 노예와 눈만 마주쳐도 하악질했던 게 생각난다. 그때 못된 소리만 하는 대신 조금 더 자신을 내줘도 되지 않았을까 하는 후회를 한다.

그게 비행기를 타고 가져온 간식이 팬트리에 아직도 조금 남아있다. 엄마 집사가 얼마 전에 큰맘먹고 사준 비싼 사료도 새것과 다름없었다.

남기지 말아야 할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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