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빌워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센티넬버스 au입니다 예민하신 분은 피해주세요.

속으로 곪아가는 캡틴이랑 기억 조각을 찾는 버키가 나옵니다 취향탈 수 있어요






그다음 대화는 이어지지 않았다. 버키는 입술이 허전한지 계속 안기기만 했다. 물론 한쪽 팔이 없는 상태론 마음대로 움직이기가 힘들었다. 조금만 균형을 잃어도 휙 넘어가곤 했다. 무거운 메탈암을 떠받치고 있던 척추는 휘어지다 못해 단단히 굳어버렸다.



“…음.”

“버키?”

“스티브…….”



길게 늘어지는 말꼬리가 입술에 걸렸다. 분명 눈앞에 있는 것은 친구인데, 자꾸 정신이 저 멀리 날아갔다. 아. 스티브는 어쩐지 눈이 무거워서 몇 번이나 감았다가 다시 떴다. 버키는 눈을 깜박이며 스티브의 품 안을 파고들었다. 이미 선을 넘은 것은 확실했다.



“스티브…내가 좀 이상한가 봐.”

“…….”

“안 그래?”

“안 그래,”

“이상한데…….”



헛숨을 들이킨 버키가 스티브의 옷을 붙잡고 매달렸다. 스티브는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하며 꾹꾹 참고 있었지만, 버키의 손이 스쳐 지나갈 때마다 온몸에 불이 붙는 것 같았다. 잠깐 긴장을 놓으면 도무지 몸을 제어할 수 없을 것 같았다. 몇 번이고 버키를 진정시키려고 토닥였지만, 오늘은 도무지 들을 생각을 하지 않았다. 오히려 스티브의 손이 닿을 때마다 바짝 긴장한 몸에서 식은땀이 흘렀다.



“…….”



그러면 스티브는 덜컥 겁이 났다. 이대로 자신의 가이드도 무시한 채 영영 사라져버리면 어쩌나 하는 생각을 했다. 이러다 버키에게 해줄 수 있는 일이 하나도 남아있지 않으면 어쩌지. 스티브는 괴로운 마음에 눈을 꾹 감았다.



“스티브.”

“…….”

“스티브…….”



버키의 입술이 자신을 몇 번이나 더 불렀을 때, 스티브는 더는 참을 수 없었다. 품에 꼭 안고 있던 버키를 놓은 채 몸을 일으켰다. 안타까운 외팔이 허공에서 친구를 찾았다. 스티브. 스티비. 스팁. 아. 헉헉 넘어가는 목소리에 쇠 냄새가 섞였다.



“버키.”

“나 좀 도와줘.”

“…….”

“응? 스티브. 우리 친구잖아.”

“…….”

“스티…브.”

“…….”



위에 올라탄 채로 가만히 친구를 내려다보았다. 잔뜩 긴장한 것이 눈물로 몰려나왔는지, 눈 밑이 촉촉하게 젖어있었다. 불규칙하게 숨을 쉬는 입술을 잔뜩 터졌지만, 예쁜 붉은색이었다. 스팁이 눈을 한번 깜박거리자, 버키의 손이 볼로 다가왔다.



“스팁.”

“…….”

“스티브.”

“…….”



마치 허락이라도 구하려는 것처럼 볼 주위에 손이 맴돈다. 살짝 닿았다가 파르르 떨려 떨어지는 손끝이 너무 아쉬웠다. 더는 참을 수 없어졌을 때, 스티브는 그런 손을 덥석 낚아챘다. 그와 동시에 친구를 향해 고정되어있는 시선이 파랗게 빛났다. 약간 놀랐는지 동그랗게 뜨는 눈에는 온갖 감정이 섞여 있었다. 버키. 스티브는 어쩐지 만족스러운 웃음을 지었다.



“우리 친구지?”

“친구지.”

“알았어. 버키.”



스티브는 대답을 듣기도 전에 버키의 입술을 탐했다. 파르르 떨면서 자연스럽게 벌어지는 입술에선 묘한 맛이 났다. 까칠하게 튼 입술을 혀로 문지르다 급하게 빨아들이면 목 안에서 우는 소리가 났다. 으응. 으. 버키는 눈을 감지도, 뜨지도 못한 어정쩡한 표정으로 뭔가를 계속 조르고 있었다.


몇 번이나 닿았던 입술인데, 계속 처음 느끼는 기분이었다. 허겁지겁 입을 맞추던 스티브는 눈을 감은 채 한쪽 손으로 버키의 얼굴을 쓸어내렸다. 아. 도대체 뭐에 자극이 된 것인지 알 수 없었지만, 버키의 입술에서 짤막한 신음이 흘러나왔다. 잔뜩 긴장한 얼굴엔 피가 몰려 따끈따끈했다.



“버키 미안해.”

“…….”

“내가 널 힘들게 해서…….”

“그런 거 아니야.”

“…….”

“스티브. 난…….”



버키는 생각을 할 수 없었다. 갑자기 몰려온 센티넬 인자는 온몸을 갉아 내리면서 스티브를 조르고 있었다. 가이드가 주변에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온몸이 간질간질할 정도로 정신을 차리기 힘들었다. 하지만 스티브에게 폐가 되지 않으려고 꾹꾹 참았었는데, 한번 이탈한 궤도는 좀처럼 제자리로 돌아오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자연히 몸이 형질에 순응하기 시작했다. 가이드를 원한다. 어서 이 고통을 눌러 없애주면 좋겠다. 이런 생각이 들기 시작한 이후로 버키는 뇌를 움직이는 것을 그만두었다.



“아, 스티브.”

“쉬. 버키. 괜찮아.”

“아…응.”

“…….”

“으…….”



애써 입술을 깨물며 아무렇지 않은 척하지만, 몸은 그렇지 않았다. 스티브의 입술이 지나간 자리마다 붉은 꽃이 피는 것처럼 얼룩덜룩하게 달아올랐다. 이상한 일이었다. 입고 있던 상의는 이미 가슴 끝까지 말려 올라갔다. 버키가 불편한 기색을 보이자 스티브는 눈썹을 늘어뜨리며 친구의 상체를 일으켜주었다. 그리고 옷을 벗겨냈다. 갑자기 온몸에 찬 기운이 달라붙자, 버키가 가늘게 떨었다.



“추워.”

“응? 뭐라고?”

“스티브. 추워.”

“…….”

“…이상하다. 너무 추워.”

“…….”



정말 이상한 것투성이였다. 자신이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르는 친구는 내내 스티브만 찾았다. 조금이라도 살이 닿으려는 노력에 스티브는 그대로 버키 위에 푹 쓰러졌다. 이제 더는 참을 수 없었다. 이 감정이 이해할 수 없는 것이라도 상관없었다.



“버키.”

“…응.”

“어디 가지마.”

“안 가.”



버키는 늘 스티브에게 상냥했다. 뇌가 뭉개지고 나서도 간신히 찾은 기억은 오로지 스티브에 관한 것이었다. 처음은 헬리캐리어. 그다음은 다리 위. 점점 과거로 돌아가는 기억은 어느 순간 말라깽이 브루클린 소년 옆에서 멈춰버렸다. 희미하게 떠오른 기억 조각을 붙잡은 버키는 그 옆에 그대로 주저앉아 버렸다.


이 녀석은 한 살밖에 차이가 나지 않으면서 꼭 어미 새가 된 것처럼 굴었다. 그런 버키였기에 자신이 고집을 부리기 시작하면 이길 수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괜히 물었던 말을 또 묻고, 들었던 대답을 다시 듣곤 했다. 그렇게 듣고 싶은 말이 흘러나오면 그대로 만족해 버리고 말았다. 대답과 동시에 살짝 벌어진 입술에 다시 입술을 가져다 댔다.



“버키.”

“나도 그렇고, 내 이름도 어디 도망가지 않아. 스티브”

“…….”

“그렇게 불안해하지 않아도 괜찮아.”



수십 년을 넘어 다시 나타난 친구는 계속 이렇게 다독였다. 물론 스티브가 저렇게 절절매는 이유를 알긴 했다. 죽은 줄 알았어. 다시는 못 만나는 것 같았어. 이런 이야기가 차곡차곡 쌓여있었다. 하지만 이렇게 한 사람에게 집착하는 것은 좋지 않다. 버키는 그렇게 생각했다.



“…아.”



그 순간 스티브의 입술이 목덜미에 닿았다. 살짝 깨물 때마다 온몸에 전기가 통하는 것 같았다. 물론 의자에 앉는 것처럼 고통스러운 느낌은 아니었다. 저릿저릿하게 온몸을 달아오르게 하는 기분에 기분 좋은 신음이 흘러나왔다. 온몸에 파편처럼 박혀있는 형질이 바짝 살아나는 것 같았다. 수십 년 동안 억눌러진 형질이 자꾸 눈앞에 있는 가이드를 찾았다.


물론 스티브도 마찬가지였다. 자신 외에 다른 센티넬은 본 적 없었다. 그래서 스스로만 잘 다독이면 된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눈앞에 센티넬을 보고 있으니 도무지 눈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 센티넬이 친구든 동료든 그리 상관없었다. 눈을 감으면 비명을 지르는 소리가 생생하게 들렸다. 도와줘야 한다. 그 생각뿐이 들지 않았다. 처음엔 손을 잡는 정도의 가벼운 접촉이면 충분했다. 제대로 보살핌을 받지 못한 센티넬은 그런 짧은 자극에도 곧 온몸의 긴장이 풀어지곤 했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옆에 가이드가 있다는 사실을 안 녀석은 자꾸 조르고 있었다. 서로 힘든 시기가 되었다. 누가 먼저라고 할 것 없이 달려들고 싶었지만, 그렇다고 마음에도 선을 넘을 수도 없었다. 누가 뭐라 해도 둘은 서로가 소중했다. 쉽게 선을 넘고 난 뒤 나타날 미래를 두려워했었다. 다른 일은 냉정하게 사리판단을 하던 사람이었다. 하지만 버키에 관한 일은 너무 불러도 한참 무르곤 했다. 그렇게 고민이 중첩된 사이 선선히 넘쳐흐른 감정은 더는 주체할 수 없었다.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는 녀석은 자연스럽게 입을 벌려줬다. 가늘게 웃는 눈꺼풀 위에 한 겹짜리 긴장감이 내려앉았다. 스티브가 허리를 숙이면 후끈한 체온이 그대로 느껴졌다. 키스에 정신이 팔린 버키가 좀 더 입술을 조르고 있던 사이 스티브의 한쪽 손이 허리를 만지작거렸다. 처음엔 손이 닿는 것조차 민망해하더니 이젠 제법 대담하게 만져왔다. 손바닥에 차지게 달라붙는 허리를 죽 쓸어내리면 버키는 목으로 으르렁거리며 울었다. 꼭 맹수를 길들이는 것 같았다.



“하…….”

“…….”

“숨…막혀서 죽는 줄 알았네.”

“…….”

“스티브.”



길게 늘어지는 자신의 이름을 듣는 것이 좋았다. 입술을 바라보니 얼마나 물고 빨았는데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 뜨거운 불덩이는 입술에서 코로 옮겨갔다. 콧대를 지나 이마에 머무르면 꼭 낙인을 찍는 것 같았다. 스티브의 입술이 닿은 곳마다 활활 타올랐다. 그러면 온몸에 힘이 빠지고 정신이 아득해졌다. 혈청이 상처를 아물게 하였는지, 피부는 탄탄하고 깨끗했다. 다만 강철과 맞닿은 곳은 형편없이 오그라든 채 흉한 상처를 가지고 있었다. 스티브의 눈이 찌푸려졌다. 저 상처를 아직 똑바로 바라볼 수 없었다. 그런 시선을 따라가던 버키는 곁눈질로 자신의 팔을 바라보았다.



“…….”

“좀 별로지? 나도 알아.”

“아니…그런 게 아니라.”

“다른 흉터는 빨리 낫는데 이쪽은…좀처럼 없어지지 않더라고.”

“…….”

“그래서…….”

“아니야. 버키. 그런 생각하는 거 아니야.”

“난…….”



버키의 생각이 또 안쪽으로 파고들 기미가 보이자 스티브는 마음이 급해졌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고 있지만, 굳이 말을 꺼내지 않은 것은 버키가 혼란스러워하고 울적해 할까 봐 그런 것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스티브의 행동 하나하나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것을 보고 있자니 가슴이 답답하면서도 짠했다. 그러지 마. 그런 말 하지 마. 버키. 몇 번이나 그렇게 달랬다.



“아…….”



짧은 신음이 흘러나왔다. 매끈한 가슴에 입술 대면 그대로 크게 부풀어 올랐다. 수많은 전쟁의 상처는 안쪽으로 다 숨어버렸는지 매끈매끈한 피부는 잘근잘근 씹어보면 단맛이 날 것 같았다. 하지만 그럴 수 없으니 아쉬운 표정으로 혀를 댔다. 흐. 응. 비음이 섞인 느릿한 반응이 귀에 들리는 시간이 그렇게 길 수 없었다. 버키가 놀라지 않게 최대한 천천히 움직이고 싶었다.


하지만 이런 느릿한 진도도 스티브가 초인적인 인내심으로 참고 있을 뿐이지 이미 한껏 흥분한 상태였다. 굳이 두려움을 심어주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시간을 들여 천천히 긴장을 풀어주고 있었다. 눈으로 보는 시각적인 상황은 말할 것도 없고, 술을 마신 것도 아닌데 뇌가 자꾸 느리게 움직이며 이성을 마비시키곤 했다. 차라리 술에 취했다면 더 편했을 뻔했다. 아무것도 입지 않은 상반신에 그대로 이마를 댄 채 기도를 하는 사람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약간 흐트러진 숨소리가 흘러나왔다. 스티브의 호흡이 살에 닿을 때마다 버키는 가늘게 떨면서 손끝으로 친구를 찾았다.



“버키 어쩌지.”

“응?”

“나 진짜 더는 못 참겠어.”

“…….”

“미안.”

“왜 참아?”

“…….”

“난 괜찮아. 스티브.”



왜 지금까지 고민했는지 알 수 없었다. 이미 당겨진 불씨를 끌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아쉽고 조심스러운 마음에 허리만 만지작거리던 손이 좀 더 대담하게 안쪽으로 파고들었다. 꼭 그런 스티브를 기다렸던 표정이었다. 버키가 스티브의 목에 손을 둘렀다. 이성의 끝이 툭 하고 끊어졌다. 아니 이미 끊어진 것을 간신히 붙잡고 있던 것에 불과했다.


버키는 친구를 진정시킬 생각이 없었다. 기분이 나쁜 것도 아니었고, 힘들지도 않았다. 자주 보이던 환각마저 버티지 못하고 물러갔다. 게다가 늘상 귓가에서 지겹게 울리던 핏빛 비명대신 스티브 목소리밖에 들리지 않으니 오히려 살 것 같았다. 눈을 감았다가 뜨면서 자꾸 시선을 맞췄다. 그러면 스티브는 활짝 웃으며 버키의 몸을 껴안았다. 자연스럽게 허리 뒤로 돌아간 손가락이 탄탄한 척추를 죽 훑어 내렸다. 그러나 괜히 손톱을 세워 긁기라도 하면 온몸에 전기가 흐르는 것 같았다. 척추 끝 움푹 들어간 곳을 천천히 쓰다듬던 스티브가 버키의 콧대에 가볍게 키스를 하면서 웃었다.



“버키.”

“응…왜 그래.”

“아프면 이야기해.”

“더 말하지 않아도 괜찮아.”

“…….”

“나 제법 튼튼하니까.”

“…….”

“정말이야.”



이상한 허락이었다. 그 말이 또 가슴이 아픈지 스티브는 눈을 감은 채 버키의 얼굴에 볼을 부볐다. 그러면 터질 듯 두근거리는 버키의 심장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귀를 통해 들리는 버키의 생존 신호에 어쩐지 머리가 지끈거렸다. 더 기분이 이상해지기 전에 키스 세례를 퍼부으면서 버키의 바지를 벗겼다. 마치 도와주려는 것처럼 허리를 움직이던 버키가 잠시 눈을 깜박이며 멈춰 섰다. 친구는 가끔 이렇게 버퍼링에 걸릴 때가 많았다. 그러면 꼭 끈 떨어진 인형처럼 멍한 표정으로 움직이지 않았다. 스티브는 서두르지 않고 친구의 볼을 쓰다듬었다. 천천히 돌아온 초점이 다시 푸른 눈에 닿았다.



“버키.”

“…미안.”

“왜 자꾸 미안하다 해.”

“…….”

“괜찮아.”



그렇게 위에서 내려다보면 자신의 그림자에 푹 파묻힌 버키가 눈만 빛내고 있었다. 이 얼굴을 다시 볼 수 있으리라 생각도 하지 못했다. 잔뜩 다치고 헤진 얼굴이지만, 늘 생각하던 버키가 맞았다. 이젠 어떤 버키라도 상관없다는 생각이 들자 스티브는 마음이 한결 더 편해졌다.











+)

잠시 고민하다 일단 끊었는데 다음 편은 성인 인증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뭐가 이렇게 길어지는지 많이 부족하네요.

항상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쩜오 연성 창고 트위터 : @hwanwol_v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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