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니타 님의 타임라인 해석을 전제로 합니다.

#####


내가 스승님을 처음 만났던 곳은 이집트였다. 지금이야 나는 매일 스승님을 대하면서도 늘 새롭게 그분께 반하고 말지만 당시의 나는 그분을 처음 보면서 한눈에 반하지는 않았었다. 그 같은 분의 가치를 제대로 알아보지도 못할 만큼 당시의 나는 말 그대로 쓰레기였던 탓이다. 약간의 유기물이 섞인 고철. 특히 얼마남지 않은 생물 부분은 재활용 불가에 가까운 상태였다. 내 몸은 그저 가문과 형에 대한 증오를 담아낸 그릇에 불과했다.


블랙워치의 임무로써 시마다 제국의 주요 핵심 인물을 암살하는 일에 참여하게 되었을 때 나는 드디어 형에게 복수할 수 있게 되었다고 생각했다. 물론 임무 전에 받았던 정보에서 시마다의 수장 이름이 시마다 한조를 마지막으로 공석으로 표기된 것이 조금 이상하다고는 느꼈지만 그 때 나는 단순히 형을 과소평가했을 뿐이다. '흥, 그놈의 가문 때문에 동생까지 죽이더니 아직도 조직 하나 제대로 휘어잡지 못하고 다른 영감들이랑 알력 다툼 중인가보군.' 대충 이 정도로 생각했던 것 같다. 나는 가문을 떠나는 형을 전혀 떠올릴 수 조차 없었던 것이다. 그 당시 내가 생각하던 한조라는 사람은 가문을 위해서라면 하나뿐인 피붙이도 죽일 수 있는 자였다.


다른 시마다 방계의 인사들을 죽이는 과정에서 알게 되었지만 한조는 가문을 떠났었다. 놀랍게도 형이 나를 베었던 시점에서 그리 오래 지나지도 않은 시기에. 지금은 스승님의 가르침으로 형 또한 동생을 죽여야만했던 현실을 괴로워했으리라는 짐작을 할 수 있지만, 당시의 나는 정말 어처구니가 없었다. 금세 떠나버릴 가문을 위해서 그에게 이 꼴이 나버린 나는 도대체 뭐가 된단 말인가. 형의 입장이 되어 헤아린다는 것은 생각해볼 수 없을만큼 그때의 나는 비뚤어졌고 또 어렸다. 그저 3년간 완전히 헛일했다고밖에 느끼지 못했고 좌절했었다. 내 복수를 위해 블랙워치를 이용해주마고 몸을 기계로 바꿔나간 것이었는데, 일이 이렇게 되고 나니 도리어 내가 블랙워치에게 이용당했다는 배신감이 들었다. 배신이라면 치를 떨었는데.


오버워치 내에서 유일하게 내가 마음을 텄던 사람, 내게 두번째 삶을 준 앙겔라의 간곡한 만류가 있었지만 더 이상 몸 담고 있어야할 이유을 잃어버린 나는 블랙워치를 떠날 수 밖에 없었다. 조직 내에서 난동을 부려봤자 달라지는 것도 없었을 테고 그녀에게 너무 큰 폐였기 때문이다. 달리 갈 곳이 있어서 나온 것은 아니었다. 그저 더는 그 곳에 있을 수 없어서 나온 것이었지만 어딘가를 가기는 해야했다. 나는 하나무라를 떠나 어딘가에 있을 한조를 추적해 복수한다는 좋은 핑계를 만들어냈다. 나는 그렇게 방랑, 아니, 방황을 시작했다.


당시 내 남은 삶의 계획은 단순했다. 일단 한조를 찾아 복수한다. 그 다음엔 내 몸을 안 타는 쓰레기로 분리배출한다. 내게 남은 농담거리는 그 정도였다. 자조가 가득했다. 지금은 스승님 덕에 그때를 떠올리면서도 순수하게 웃을 수 있지만, 그때의 나는 지독할 정도로 분노와 냉소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래서 오버워치를 떠난 지 6년 뒤, 내가 그 분을 만나게 된 건 기적이나 다름 없는 일이었다. 단지 당시의 멍청했던 내가 기적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지 않아서 그 놀라운 기적은 스승님과의 첫 만남만에 일어나지는 못했고 그보다 다소 미뤄지긴 했다. 내가 기적을 받아들일 운명이 되기까지는 첫 만남 이후로 약 3개월이 더 걸렸다.


이집트, 형를 찾기 위해서라는 핑계도 무색하게 사람이 싫어 인적이 한가한 곳만 돌아다니다 뜬금없게도 수도승의 복장을 한 옴닉을 만나게 된 것이다. 스승님만한 통찰을 지닌 사람이 아니더라도, 사실 누가보더라도 알아챌 수 있을 만큼 내 눈에는 독기가 차올라 있었고 그걸 본 스승님께서는 일면식 하나 없던 내게 감사하게도 염려를 표해주셨다. 정말 대단하신 분이다. 등에 1미터가 족히 넘는 큰 칼을 차고 온정따위가 조금도 없는 눈빛을 한 낯선 남자에게 어느 누가 말을 걸 생각을 할 수 있단 말인가. 그때 나는 고철 주제에 사람 눈빛 읽는 척 하지 말라고 일축했다. 그분의 태도는 충분히 사려깊었지만 나는 그분이 어떤 존재인지도 못 알아챌만큼 어리석었던 까닭이다. 다행히 그분께서 내 몫까지 현명하셨다. "강한 이여. 내가 그대에게 힘으로 맞설 수는 없겠지. 허나 그대에게 언젠가는 내 도움이 쓸모가 있을 것 같구려. 더 이상 갈 곳이 생각나지 않을 때 나를 찾아와 주시오. 나는 먼저 가서 그대를 기다리리다." 스승님께서 찾아오라 일러주신 곳은 네팔의 샴발리 수도원이었다. 나중에야 알았지만 사실 스승님께서도 다른 고귀한 뜻이 있어 방랑 중이셨는데, 나 때문에 그 계획을 접으시고 다시 수도원으로 귀향하신 것이었다. 그분께 나는 도대체 어떻게 보인 것일까.


스승님께서 그 짧은 시간에 내 심리를 꿰뚫으셨던 건지, 그냥 내가 끼워 맞추고 있는 건지는 확실하지 않다. 하지만 그때 들었던 그분의 말씀은 지금도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기억하고 있을 정도로 내게 영향을 준 것만은 확실하다. 나는 그때 그 독특하고 낯선 옴닉에게 들었던 몇 마디 말에서 은연중에 위안을 받았던 것 같다. 처음에는 아주 유치하고 단순한 이유로 위안을 받았다. 그러니까 단지 그에게 내가 강하다는 것을 인정받은 느낌에 만족감을 얻었었다. 당시 오직 형과 싸워 쓰러뜨릴 생각에 지배당하고 있던 나는 그저 강한 힘만을 추구하고 있었고 그런 내게 제법 듣기 좋은 달콤한 말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혼자 방황하며 위안이 필요할 때마다 종종 그때 들었던 말을 곱씹었다. 그러다 스승님이 해줬던 말의 뒷 부분에 집중하게 된 것은 좀 나중이었다. 그 옴닉이 말했던 내게 줄 수 있다던 그 '도움'이란게 무엇일까. 사고체계가 편협했던 나는 내 사이보그 몸체를 좀 더 강력한 것으로 교체해줄 수 있다는 말인가 하고 착각했다. 물론 실상은 그런 방향과 전혀 달랐다.


결국 의심 반, 호기심 반으로 샴발리 수도원을 찾아갔던 날 태연자약하게 수양을 권해오는 그에게 나는 분노의 용검을 빼어 들었고 어떻게 논란의 여지도 없이 보기좋게 패했다. 처음 만났던 날 '강한 이여, 그대에게 힘으로 맞설 수는 없겠지'라며 첫 운을 뗐던 스승님의 말씀은 애초에 거짓말이었던게 판명되던 순간이었다. 나는 어마어마한 굴욕을 맛보았고 노랗게 빛나는 조화의 구슬과 함께 다시 한 번 수양을 권하는 스승님의 제안을 물리칠 수 없었다. 거절하고 떠나는 것은 싸움에서 패하고 도망치는 것으로밖에 보일 수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내게 다른 선택지는 없었다.


그 모든 과정이 혹시 스승님의 장대한 계획이었을까 하는 의구심이 아직도 있다. 하지만 냉정하게 생각해보면 그렇진 않을 것이다. 이집트에서 만난 것도, 그의 말이나 제안을 내가 어떻게 받아들이고 행동할지도, 아무리 지혜로운 스승님이라도 그걸 모두 예견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저 이 모든 것은 우연의 조화인 것이다. 하지만 우연의 결과가 이 정도라면 그분과 나는 아마 필연이지 않을까. 이것도 내겐 소중하고 그리운 추억이기에 나는 종종 그때의 필연을 이렇게 회고하곤 한다.


내가 보고 싶어서 걍 내가 쓰고 있습니다. 일단 내 취향이지만 당신 취향이기도 하다면 좋겠군요.

땜복치님의 창작활동을 응원하고 싶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