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ming The Cat

W. Hathor


♬ Caffeine - Lolo Zouaï 





 “Shit.”



 거지꼴이 따로 없네. 번진 립 자국, 엉망으로 헝클어진 머리, 반쯤 벗다시피 걸친 뷔스티에. 심지어 스커트엔 누군가 오바이트라도 쏟은 건지 퀴퀴한 음식물 자국이 묻어 있다. 잠에서 깨자마자 눈앞의 거울에 비친 건 어젯밤 파티를 거나하게 보낸 흔적이 덕지덕지 묻은 내 모습이었다. 분위기에 홀랑 넘어가서는 연거푸 들이켠 샷은 늘 이렇게 뒤끝이 구렸다. 입가에 토사물을 가득 묻힌 채로 잠들어 있는 조쉬로 보아 내 스커트를 망친 범인이 분명했다. 화장대에 나뒹굴고 있는 립을 하나 집어 들어 얼굴에 칠하며 킥킥대자 조쉬는 간지러운지 조금 움찔거렸다. 이거 딱 졸업앨범 감인데? 이 웃긴 얼굴을 남기고 싶지만 간밤에 취한 채로 미러볼 밑에서 흔들어 재끼다 떨군 핸드폰의 처참한 몰골이 생각나 입맛만 다셨다. 아쉽네. Well, sleep tight loser. 동이 트는 걸 보니 슬슬 가야겠다 싶었다. 조쉬의 이마에 난 키스마크를 앞머리로 덮어주곤 립스틱을 내려놓는데... 가만, 근데 이 립스틱 어디서 많이 보던 건데. 언제 봤지...?



 ‘I think that color looks good on you.’



 그 색깔 너랑 잘 어울려. 흐릿한 목소리가 머릿속을 스쳤다. 그러니까 어젯밤, 조쉬가 준 압생트 맛이 나는 보드카 샷을 계속 받아먹고 얼굴이 뜨거워져서 방으로 들어온 것까지는 기억이 나는데...



 어두운 방안으로 들어온 후, 집 주인인 크리스틴의 화장대에 꽂혀 있던 립스틱을 꺼내 덧바르던 내 모습이 떠올랐다.



 근데 잠깐, 나 분명 누구랑 같이 들어온 것 같은데...?



'Open it.'



 누군가 다가와 두 손으로 내 얼굴을 감싸 쥐고는 그렇게 말했던 것 같다. 술 때문에 나는 조금 상기된 채로 해롱댔고, 문밖의 음악 소리와 그 누군가의 목소리가 섞여 귓가에 웅웅댔다. 누군지 알아보려고 눈을 가늘게 떠보는데, 방 안으로 새어 들어오는 불빛이 점점 적어지더니 그대로 문이 닫혔다. 다시 다가오는 걸음 소리와 함께 아주 가까이에서 온기가 느껴졌다. 이내 어깨를 감싸오는 팔에 나는 그게 누군지 확인하려 눈을 몇번 깜빡였다. 상대가 한손으로 내 입을 벌리고는 엄지손가락으로 아랫입술을 쓸어내렸다. 방금 전 립스틱을 덧바른 후라 질척거리는 질감이 그대로 느껴졌다.



 'I'm going to kiss you now.'



 지금 너한테 키스할 거야. 그 말과 함께 상대의 얼굴이 가까워졌다. 금방이라도 입술이 닿을 거리에서 우리는 서로의 눈동자만 쳐다봤다. 도무지 누군지 얼굴을 가늠할 수 없었지만 어두운 방 안에서 유일하게 보였던 눈은 어딘가 낯이 익었다. 아까 방으로 들어올 때 그 근처에 있던 게 누구였더라. 제레미? 이든? 노아? 브라이스? 분명히 방안을 따라 들어오는 발자국 소리를 들었는데 대체 눈앞에 누가 있는지 시야가 캄캄해 전혀 구분할 수 없었다.



 내 입술을 매만지던 상대의 손가락에 번진 립스틱은 옅은 체리 향이 났다. 꼭 입술과 입술을 맞댄 것처럼 나른한 손짓으로 입꼬리까지 쓸더니 그대로 말캉한 혀가 들어왔다. 정신은 다소 몽롱한 상태였지만 갑작스럽게 맞부딪힌 입술에서 상대의 뜨거운 체온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그가 입술을 잔뜩 밀착한 채로 혀를 옭아오며 한 손으론 부드럽게 머리칼을 쓸었다. 머리에서부터 귀, 볼, 목선을 타고 천천히 쓰다듬는데 뜨거운 얼굴 온도와 달리, 닿은 손은 비교적 차가웠다. 차가운 손바닥의 느낌에 내가 조금 떨자 열이 잔뜩 올라있던 입술이 잠시 떨어졌다.



 문틈으로 새어 나온 불빛에 비친 상대의 입술이 타액으로 번들거렸다. 외부의 소음이 차단된 방 안에서 서로의 색색거리는 숨소리가 또렷이 들렸다. 우리는 몇 초 간 숨을 몰아쉬다가 다시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입술을 부딪혔다. 성질이 급한 나를 입술로 짓누르며 그가 고개를 조금 틀었다. 그리곤 팔 안에 나를 감아 몸을 밀착시켰다. 밖에서 나는 스피커 소리 때문인지, 만취 상태에서 빠르게 뛰는 심장박동소리 때문인 건지 온몸이 쿵쿵대는 것 같았다. 그리고 몸이 밀착되며 맞닿은 상대의 가슴팍에서도 요란하게 뛰는 소리가 느껴졌다.



 그는 꼭 케이크 위에 데코된 크림을 음미하는 것처럼 부드럽게 혀를 핥다 슬며시 빠져나와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었다. 안달 나게 하는 게 목적인 사람 마냥 느긋하게 하지만 깊게 들어오며 입안을 정신없이 헤집어 대는데 아주 미칠 지경이었다. 기분이 달아오른 내가 조금이라도 급하게 굴려 하면 품 안에 더욱 가두고는 다시 반대로 고개를 틀어 입술을 지그시 눌러왔다.



 상대에게선 어디선가 맡아본 익숙한 과일 냄새가 났다. 번쩍번쩍한 바깥의 파티룸과 달리 어둡고 조용한 방안에 단둘이 은밀하게 혀를 섞고 있다는 사실이 묘한 흥분감을 가져다줬다. 그 오묘한 냄새와 야릇한 느낌에 손을 곰지락 대며 상대의 등을 조금 쓸자 움찔 거리는 게 느껴졌다. 게다가 배 아래쪽에 닿은 그의 앞섶은 진즉 부풀어 올라 있었다. 방안의 온도는 차츰 더워졌고 나는 조금 더 진도를 빼고자 허리춤을 더듬으며 바지 버클을 찾는데 돌연 상대가 입술을 떼며 멀어졌다. 오랜 키스로 눅진해진 입술이 떨어지며 질걱거리는 마찰음을 냈다.



 그는 어딘가 불편한 듯 큼큼대며 목을 축이더니 들릴 듯 말 듯 한 목소리로 생각지도 못한 말을 뱉어냈다.



 "ㅇ...민형."


 "...What?"


 "내 이름."


 "Did you just speak in Korean?"


 "모르는 거 같길래."



 느닷없이 들어온 몇 마디 한국어에 놀란 나를 뒤로하고 그는 걸어가 방문의 손잡이를 열었다. 어두웠던 방안에 다시 빛이 들어오고, 문을 열고 나가는 손목, 어깨를 차례로 타고 올라간 시선 끝에 마침내 그 누군가의 얼굴을 확인한 나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Mark Lee...?”







바빠 죽겠는데 입덕 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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