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 이 이야기를 할 때가 왔구나. 나의 존재의 근원. 내 공포의 원인이자 나의 인생 전체를 망쳐버린 나의 창 조주. 모든 것이 신의 피조물인 세상 아래, 나와 몇몇만이 그 반쪽짜리 어머니의 꼭두각시 인형이 되어 이 세상에 내려왔지. 그녀는 내 인생의 전부를 이용해 나를 갉아 먹었고, 내 이용가치가 없어지자 나를 깊디깊은 심연 저편에 버렸어. 내가 그 지옥보다 더한 그곳에서 기어 나와 당신의 손아귀를 탈출하자, 사탕 빼앗긴 어린 아이처럼 심술을 부렸지. 


 당신과 살게 된 그 이후에 그녀는 얼마나 억울했을까. 바스러져야 할 쓸모없는 조연이 그녀의 무대 밖으로 튀어나가 자신 만의 행복을 손에 넣었을 때, 비극의 연출자인 나의 소녀님은 그 옹졸한 마음을 이기지 못했지. 멍청한 나는 위기의식이 없었고. 심연에서 나온 뒤 그녀가 나에게 완전히 관심을 꺼버렸다고 착각하며 테즈가 있는 세계와 나의 친구들이 있는 세계를 제멋대로 넘나들었어. 

 

 그러던 어느날에. 그래 갑작스럽게 말이야. 하필 당신도 일 하러 먼먼 곳으로 가버린 참에 나는 스캐튼을 보러 성을 나섰지. 바로 그 순간에, 음, 사실 잘 기억이 안 나네. 나를 뒤에서 누가 끌어안고는 그대로 끌려서 떨어진 곳은, 내가 가장 두려워하는 장소인 암흑의 세계, 심연이었거든. 그 직후에 트라우마로 정신이 나가버렸기 때문에 드문드문 생각이 나.


신체적 고통이 가해진 기억이 없어. 당신 미치게 하려고 , 시간마다 내 살점을 차원 밖으로 던졌다고 들었지만. 아마 실컷 화풀이 하고 죽여버릴 생각이었겠지. 생쥐를 붙잡은 고양이처럼 바로 죽이지않고 잔뜩 약을 올린 거였을 거야. 용케 그 시간들을 버텨냈었네. 소녀님은 설마 벨리알이 자신의 공간에 크랙을 낼 줄 몰랐던 걸거야. 꽤 엉망으로 다친 상태로 나는 당신 품에 돌아왔고, 내가 깨어날 때까지 당신은 내 손을 잡고 멀어질 줄을 몰랐다지.


이렇게 극단적으로 치닫기 전에도 당신은 그 분을 그다지 좋 아하지 않았지. 스캐튼의 영역에 초대했을 때 잠깐 마주쳤던 것만으로 두 사람 다 불쾌감을 감추기 않아서 오히려 내가 더 불안했어. 이 사건을 기점으로 나는 내 세계로 돌아가는 일이 극단적으로 줄어들었지. 당신이 원하지 않은 게 눈에 띄니까. .  친구들을 자주 볼 수 없는 건 아쉽게 되었지만, 당신이 나를 걱정하니까 그 정도는 감수 할 수 있었어. 

 

사실 이 이야기는 안 해도 그만해도 그만인 이야기로 보일지도 모르지만, 꽤 중요해. 나는 이런 식으로 태어났고. 당신에게 처음으로 미련을 갖게 된 사건이거든. 당신의 품에 돌아와 안기면서, 나는 처음으로 살고 싶다고 생각했어. 괴로울 때 떠오르는 사람이 있다는 게 엄청 이상하고도 안심되는 경험이었어.

망사랑만 보면 사족을 못쓰는 사람. 댓글 피드백 항상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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