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빌워 이후 사이좋은 어벤저스

인워가 없는 세계관




[토니피터] Minor Upgrade






26






"좋아, 대답을 잘 하는 게 좋을 거야. 그곳을 어슬렁거리고 있던 이유가 뭐지?"



나타샤는 가죽조끼의 어깨 부근을 위협적으로 누르며 속삭였다. 상공의 헬리캐리어 안, 닉 퓨리를 포함한 모두의 시선은 이 장소와 어울리지 않는 한 사람에게 머물러 있었다.



이른 아침부터 스태튼 아일랜드 건을 수습하고 혹시 더 숨겨진 에너지 코어는 없는지 수색하기 위해 쉴드, 클린트와 팀을 꾸려 다시 한번 부둣가를 찾은 나타샤는 발 빠른 데미지 컨트롤의 수습을 보고 놀라움을 표하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가 할 일은 거의 없겠어. 퀸즈의 사태보다 규모가 작았다 쳐도 대부분의 잔해들이 정리되어 있었고 찌그러진 컨테이너도 새것으로 교체되어 있었다. 그것을 본 클린트는 딱 한마디를 던졌다. 역시 돈이 좋군. 그녀는 동감의 표시로 어깨를 으쓱였다. 같은 팀에 속해있지만 가끔씩
이처럼 상식을 뛰어넘는 토니 스타크의 능력치는 그들이 허탈한 웃음을 짓게 했다.



"우리가 이런데 꼬맹이는 오죽하겠어."
"그러게, 역시 수퍼카 등교는 심했지."
"2초 만에 캐비닛 1000개 결제하는 건 또 어떻고."


클린트는 과장이 아니라 단 2초 만에 피터의 학교로 주문을 넣던 토니의 모습을 잊을 수 없었다. 프라이데이, 꼬맹이 학교 책상, 캐비닛 싹 바꿔주도록 해. 딱 한 문장이었다!



"저쪽 어디 있을거요."



클린트가 컨테이너 위로 가볍게 올라 에너지 코어의 흔적을 확인하는 동안 나타샤는 데미지 컨트롤의 직원이 현장을 정리하던 중 발견했다는 무기 확인에 나섰다. 나타샤는 조심스레 상자 안의 마구잡이로 섞인 무기들을 살폈다. 미묘한 시선을 감지한 것도 그때였다. 직원들이 바삐 움직이느라 그 상자에 신경을 뗀 사이 그것을 노린 간 큰 자가 있었다. 나타샤는 클린트에게 무전으로 연락하는 척을 하며-나타샤는 안색 하나 바꾸지 않고 이런 일들이 가능한 전문가였다- 상자 근처를 슬며시 벗어났고 다소 멍청한 C는 컨테이너를 한 바퀴 둘러 인기척 없이 다가온 그녀를 뒤늦게 눈치챘다. 



그는 들고 있던 손바닥만 한 크기의 권총을 겨누었는데 그 무기의 뒷부분에서 영롱하게 빛나는 돌멩이를 보는 순간 나타샤는 이 자가 어제의 테러에 일조한 맥 가간의 동료라고 확신했다. 다행히 그 총에서 강력한 에너지가 발사되기 전-애초에 나타샤가 보기엔 그 손바닥만 한 총이 에너지 코어의 힘을 견뎌내진 못할성싶었다. 적어도 어설픈 자세로 발포했다면 그의 손이나 팔 하나는 나가지 않았을까- 빠르게 날아온 화살 하나가 C의 손에 달라붙더니 전기를 흘려보내 그대로 그를 기절시켰다. 클린트는 자신의 손에 들린 탐지기를 여유롭게 흔들어 보였다.



"실패작인 줄 알았더니 제대로 작동하네."



C가 기절하며 떨어트린 무기 근처로 탐지기를 가져다 대니 시끄럽게 경고음이 울렸다. 그 돌멩이가 코앞에 있었으나 탐지기가 바로 반응하지 않았던 것은 아마 토니가 말했던 코어의 에너지 흔적을 일시적으로 지우는 무언가 때문인 듯했다. 그런 편리한 일이 정말 가능하단 말이야? 과학 분야에 있어선 그저 평범한 일반인인 클린트는 정말로 순수한 궁금증을 드러냈고 신화 속 신이 하늘을 날아다니며 번개를 쏘고 외계인이 상공에 구멍을 뚫고 들어와 지구를 침략하려는 시대에 무엇이 불가능하겠냐며 새삼스러운 투로 나타샤는 권총을 집어 들었다. 



나타샤는 기절한 C의 옷을 뒤져 총 외엔 특별히 무언가 소지하지 않은 것을 확인 후 그를 헬리캐리어 안으로 옮겼다. 그가 도망쳤던 현장으로 되돌아온 이유가 무엇일까. 수습을 위해 부둣가엔 데미지 컨트롤은 물론이거니와 어벤저스가 깔려있을 거란 사실을 모르고 한 행동으론 보이지 않았다. 이런 무기를 대비용으로 가지고 있지 않았던가.



"위력이 어느 정도일지 궁금하군."
"그만두는 게 좋아요, 유람선을 갈라버린 걸로 충분하니까."



나타샤는 C의 총을 들어 구석구석 살피는 닉에게 경고했다. 누구보다 총을 많이 쥐어봤을 닉 퓨리라면 그 사실을 더 잘 알 테지만 치타우리 코어와 비슷한 돌멩이의 위력을 눈앞에서 겪어본 나타샤로선 닉의 호기심을 말리고 싶었다. 뭐 어때, 반으로 갈라진 헬리캐리어에서 공짜로 스카이다이빙을 할 수 있는 기회인데. 낙하산도 없이 스릴 넘치겠어. 클린트는 헬리캐이러의 창문 밖을 내려다보며 꽤나 살벌한 농담을 던졌다.



"새 휴대폰 뽑았나 봐요? 멋지네요. 벨소리 센스는 더 멋지고."
"요즘은 이런 레트로가 유행이라잖아. 그래서인지 벨소리 바꾸는 기능이 없어."



마리아는 키보드를 빠르게 두드리며 코어가 장착된 무기 탓에 계속해서 시끄러운 알람을 울려대는 탐지기를 향해 눈짓했다. 클린트는 창문에서 시선을 거두고 탐지기라는 이름에 걸맞은 네모난 기계를 마치 자신의 휴대전화처럼 만지작거리며 유감을 표했다. 확실히 8년 전, 독일 슈투트가르트의 어두운 밤하늘을 가로질러 울려 퍼지던 AC/DC의 화려한 음악을 떠올린다면 토니가 이 기계의 알람을 평범하기 그지없는 일정한 패턴의 '소음'으로 설정한 것은 의외라면 의외였다.



"스타크에게 그럴 여유도 없다는 거겠지. 여유 빼면 시체인 인간 아니던가?"
"그것도 어디 사는 꼬마 하나 때문이라죠."



닉이 호탕하게 웃자 마리아가 동조했다. 막 C를 의자 위로 속박한 나타샤가 손을 탁탁 털면서 언제나처럼 견고한 얼굴로 닉과 마리아를 바라보았다.



"때문이가 아니라 덕분이겠죠. 덕분에 조금은 인간다워졌으니까요."
"들었죠? 드디어 우린 인간이랑 일하는 거야."



클린트도 피터가 토니를 조금 사람답게 만들었단 점을 부정하지 않았다. 물론 그로 인해 토니의 심기 불편한 날이 두 배로 증가했지만 심술부리는 게 뭐 하루 이틀 일도 아니고. 이미 그의 '믿음직한' 동료들은 누구보다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는 데에는 도가 튼 전문가들이었다. 혹은 2배의 화를 4배로 늘리는 기술자라든가. 피터가 어벤저스로 들어오면서-본인은 견습이라 생각하고 있지만- 팀의 분위기는 눈에 띄게 변했다. 딱딱할 수 있을 어른들의 선을 선뜻 넘어올 수 있는 존재가 있다는 것은 누군가에겐 위안이, 또 누군가에게 활기가 되었다. 그 과정이야 어쨌든 어디로 튈지 모르는 사고뭉치 청소년의 등장은 단연 토니뿐 아니라 여럿에게 긍정적인 변화를 만들어주고 있는 셈이었다.



그러니 이번 사태에 대하여 이곳의 누구라도 일종의 책임감을 느끼는 것이다. 나타샤도 토니만큼이나 이 터무니없는 폭탄 테러를 막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선 정말 작은 정보라도 필요했으므로 막 신음소리를 내며 깨어난 C에게 걸어가 그의 어깨 위로 묵직하게 힘을 실었다.



"좋아, 대답을 잘 하는 게 좋을 거야. 그곳을 어슬렁거리고 있던 이유가 뭐지?"
"난 아무것도 몰라. 그냥 그 무기들을 팔면 돈이 될 거라고 해서 한탕 해먹을 생각이었다고."
"그런 좋은 정보를 누가' 알려줬냐는 거야."
"정말 몰라."
"그래? 아깝네. 출소한지 얼마 안 되었을 텐데  당신은 다시 그곳으로 돌아가야 할 거야. 불법 무기 거래에 무장 테러까지. 스펙 한번 화려해."
"난 시키는 대로 했을 뿐이야!"



클린트는 여전히 시끄러운 탐지기의 오프 버튼을 찾으며 뻔한 악당의 레퍼토리에 혀를 찼다.



"그러게 라인을 잘 탔어야지. 장담컨대 네 가재 친구는 네가 안중에도 없을걸? 가재는 게편이라는데 넌 게도 아닌가 봐."
"스콜피온이 누구인지도 몰라, 난."
"오, 그거 스콜피온이 들으면 섭섭해하겠네. 저 ''우정의 증표'까지 나눴는데 친구가 아니라고 하니 말이야."



나타샤는 닉 퓨리 손에 들린 총 뒤로 장착된 코어를 가리키며 비꼬았다. 아, 가간이 아니라면 그 박사 쪽인가보네. 그녀는 사실 가간의 조력자에 대해 아는 것은 없었지만 C를 떠보려는 의도로 목소리를 낮췄다. C는 불안한 눈을 굴려 손에 묶인 철사를 풀려 애썼다.



"그가 네게 무기를 가져오라 시킨 거야?"
"무슨 이야기인지 모르겠군."
"우리가 있을 걸 뻔히 알면서 돈에 눈이 멀어 무기를 훔치러 오는 바보는 없을 거란 뜻이야."
"미안하지만 난 설마 당신들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어. 네 말대로 바보는 아니거든. 대체 당신들이 여기엔 왜 있는 거야? 분명 없을 거라고 했는데."
"이렇게나 새 장난감을 자랑해대는데 우리가 가만히 있을 리 없지, 우리는 꽤 욕심이 많거든. 그 장난감들을 모조리 뺐어주려 그러지."



이대로 조금 더 압박을 가하면 힌트를 흘려줄 것 같았던 C의 낯빛이 별안간 사나워지면서 웃음을 흘렸다. 그러니까 그런 당신들이 여기에 왜 있냔 말이야. 나타샤가 눈을 가늘게 뜨며 되물었다. 무슨 의미야? 그 질문이 C에게 어떠한 확신이라도 심어준 모양인지 처음에는 억울함을 호소하던 그가 당당히 소리치기 시작했다.



"이런, 그 유명한 어벤저스들이라길래 대단한 줄 알았더니 생각보다 멍청하잖아?"
"믿는 구석이라도 있는 모양이지? 갑자기 시끄럽군."



가만히 대화를 듣던 닉이 성큼 걸어와 대화를 거들었다.



"웃음이 멈추질 않아서 말이야."
"실컷 웃어두도록 해. 이 앞으론 지옥일 테니까."
"아니, 그 반대야. 지옥에 떨어지는 건 너희들이지. 박사가 맞았어. 너희는 멍청이들이야. 설마 우리가 테러를 일으키려고 이런다고 생각해?"



닉은 C가 들고 왔던 총을 그의 이마로 겨누며 웃음기를 지웠다. 머리통이 아깝지 않나 보지? 보랏빛을 뽐내는 코어가 C의 눈동자 안으로 비쳤다. 그들은 최근 3번의 테러를 일으켰다. 맨해튼 A 타워, 퀸즈의 거리, 그리고 스태튼 아일랜드. 그렇다면 남은 곳은 브루클린. 그쪽은 스티브와 브루스가 맡은 구역이었다. 하지만 아직까지 그렇다 할 연락은 없었다. 정말 C의 말처럼 이들의 목적은 테러가 아니란 말인가. 나타샤는 그가 혼란을 주려 던진 말이라고 생각하면서 찝찝한 기운을 지울 수 없었다. 그녀의 옅은 푸른빛 눈동자가 흔들렸다.
 


"오, 안돼."



그동안 간과한 사실이 하나 있었다. 이들의, 가간의 목표는 처음부터 단 하나였다. 나타샤는 C에게서 돌아서 심각한 얼굴로 오른쪽 귀에 꽂힌 무전용 이어폰으로 손을 올렸다. 토니? 짧은 대화 속 나탸샤의 불안한 눈이 클린트를 향했고 편안하게 창가에 기대어있던 클린트가 바닥으로 내려와 그녀에게로 다가섰다.



"스파이더맨이."
"망할...한건 해주셨군:"



나타샤는 소리를 낮췄지만 C의 귀에는 확실하게 스파이더맨이라는 5글자가 들렸고 클린트의 분에 찬 한마디까지 더해지자 C는 참지 못하고 푸하하 꽉 눌렀던 웃음을 터트려냈다. 나타샤는 마리아에게 신경질적으로 소리쳤다.



"당장 맨해튼 아니, 퀸즈로 가야 해!"



그들은 스태튼 아이랜드와 브루클린엔 처음부터 아무런 관심도 없었던 것이다. 오로지 스파이더맨의 행동 범위, 즉 퀸즈, 더 나아가 맨해튼. 분명 그들이 노리는 것이 스파이더맨임을 잘 알고 있었을 텐데, 코어에 너무 집중해버린 탓이었다. 생각해보면 스태튼 아일래드건은 피터의 추적기를 발견하고 함정을 파기 위해 그들이 폭탄을 설치했을 뿐, 아마도 가간의 본래 계획은 아닐 것이었다. 너무나 당연한 사실을 뒤늦게 알아차린 나타샤의 얼굴이 무너졌고 마리아는 급히 도착지를 새로 설정하기 위해 화면을 띄웠다.



"늦었어, 게임은 벌써 시작됐어. 드디어 우리도 거물이 되는 거야!"



덜컹, C의 손목을 속박했던 철사가 요란하게 떨어져 나가며 그는 자유로워진 오른손을 공격적으로 내질렀다. 그의 손등에서 날카로운 칼날이 튀어나왔다. 하지만 그 뾰족한 날은 팔짱을 끼고 가만히 서있는 닉 퓨리에게 닿지 못한 채 공중에서 멈추었다. C의 시선이 천천히 움직였다.



"그 팔이 의수란 것 정도는 진작 알고 있었어."



어느덧 닉 퓨리의 앞으로 다가온 나타샤는 한 손으로 C의 가짜 팔을 붙든 채 여유로이 말했다. 불과 1분 전까진 절망으로 가득했던 나타샤의 눈이 승기로 빛났다.



"오늘 맨해튼과 퀸즈에서 큰 테러라도 일으킬 모양인가 보네. 거물이 될 수 있는 크기라 이거지? 그 '박사'라는 사람이 빼내준 범죄자들끼리 손을 잡고 말이야."



사실 나타샤는 기절한 C를 의자에 속박할 때부터 그의 팔이 의수란 것을 알아차렸다. 의수라기보단 개조된 기계 팔이었다. 피터의 말에 따르면 가간도 기계 팔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 아마 박사인지 뭔지에게 받은 것이겠지. 그리고 그 팔들이 무기로 변형될 수도 있다는 가능성쯤은 계산 범위 내였다. 막 C를 헬리캐리어로 데려왔을 때, 클린트와 나타샤는 본부의 토니에게서 연락을 받았다. 스콧이 본부로 와 전해줬다는 이야기는 정체 모를 조력자가 몇 번 더 범죄자들이 득시글거리는 감옥에 들렸다는 것. 이전에 루이스가 맥주박람회에서 만났다던 자도 제안을 받았다고 했으니 정확한 계획은 몰라도 출소를 앞둔 범죄자들을 꼬셔 이번 일에 끌어들일 꿍꿍이로 보였다. 그 꿍꿍이를 대충이라도 알아낼 수 있으면 성공이었다. 나타샤에게 속아주는 연기쯤은 식은 죽 먹기였다. 그녀는 그의 팔을 꺾어 바닥으로 짓누르며 유려한 미소를 흘렸다.



"귀중한 정보 고마워."
"하, 하지만 아까 분명 스파어더맨이-"
"아, 스파이던맨이..아주 재밌게 휴가를 보내고 있다는 거?"



나타샤는 어깨를 으쓱이며 클린트를 바라보았다. 그래, 기차도 없이 여행을 다니고 있다잖아, 그 거미줄로! 이거야, '한 건' 해줬고 말고. 우리 막내가 아주 대단해. 말도 안 되는 말로 능청스럽게 받아친 클린트는 C에게 이미 그가 맛본 짜릿한 전기 화살을 겨누며 비아냥거렸다. 자, 이제 그 박사님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볼까? 이대로면 기계 팔이 '거물'이 아닌 '고물'이 될 거야, 똑똑한 양반.



"..역시 우리 박사님은 위대하셔."



그는 나타샤에게 어깨를 눌린 채 중얼거렸다. 곧 그의 기계 팔이 끼긱끼긱 소름 끼치는 소리를 내며 빠르게 늘어났다. 날카로운 칼날이 닉의 옆을 스치고 날아가 단단한 벽에 꽂혔다.



"이런 상황도 대비해 주시고 말이야."



C는 반쯤 정신이 빠진 얼굴로 쇳소리를 내며 웃었고 벽에 꽂힌 그의 기계 팔의 앞부분이 달칵 열리더니 영롱한 빛을 뿜어냈다. 코어? 삐,삐-삐. 클린트는 더욱 요란한 소리를 내며 경고하는 탐지기를 들어보았다. 오, 젠장, 클린트는 C에게서 나타샤를 잡아끌어 감쌌다. 국장님! 마리아가 닉을 부르기 무섭게 코어가 먼지바람을 일으키면서 터졌다.



쾅-!





.






"이런, 마티니를 30잔 마시고 마라톤을 뛴 기분이야."



스콧은 울렁거리는 두통을 느끼며 정신을 차렸다. 온몸에 묻은 유리 파편을 털어내며 상황을 파악하려 애썼다. 그러니까 분명 업스테이트 본부에 다녀온 후 캐시가 만들어준 쿠키를 전해주기 위해 A 타워 근처의 카페테리아에서 호프를 만나 커피를 마셨는데 갑자기 탐지기가 울리더니 굉음과 함께 무언가 터졌다. 이미 캐시가 만들어준 쿠키는 어디로 날아갔는지 보이지 않았고 탐지기만이 요란한 소리를 내고 있었다. 폭발하는 충격으로 이마가 까졌는지 따끔거렸다. 뻐근한 몸이 근육통을 호소했다. 주변의 잔해를 치우며 일어난 스콧은 불과 몇 분 전까지 제 앞에 앉아 부드럽게 웃던 호프를 찾기 시작했다.



"호프?"



어디 있어, 호프? 카페 건물의 일부가 무너진 콘크리트와 철근 더미를 보며 그는 희게 질렸다. 호프, 들리면 대답해봐. 이런 상황이 닥치니 스콧은 행크에게 수트를 반납한 것이 뼈저리게 후회되기 시작했다. 지금 이 몸으론 저 잔해 사이로 들어갈 수도, 그것들을 들어낼 수도 없었다. 최대한 힘을 써서 움직여봐도 꼼짝 않았다. 호프만이 문제가 아니었다. 카페에 있었던 사람들 대부분이 폭발에 휘말려 부상을 입고 여기저기서 고통을 호소하고 있었다. 이번 폭발은 지난번 A타워 보다 훨씬 규모가 컸다. 카페뿐 아니라 곳곳에서 불길과 검은 연기가 솟아오르고 있었다.



"이 요란한 소리는 대체 뭐야?"



그 사이로 무장을 한 남자가 코어를 단 무기를 든 채 카페 근처를 어슬렁거리고 있었다. 스콧은 땀을 뚝뚝 흘리며 자세를 낮춰 탐지기를 집어 들었다.



"움직이지 마, 그게 뭐지?"



그 무기 속 코어 탓에 탐지기는 더 시끄럽게 울렸고 그것은 그 무장한 남자의 의심을 사기 충분했다. 허리 쪽으로 무기를 들이미는 바람에 스콧은 꼼짝할 수 없었다. 어서 호프를 찾아야 하는데. 그의 시선이 다시 콘크리트 더미로 향했다. 두 손 위로 들어! 스콧은 천천히 손을 올리며 기회를 엿보다 남자가 빈틈을 보인 사이, 힘을 넣은 주먹을 내질러 그의 턱을 강타했다.



하지만 스콧이 차마 고려하지 못한 것은 지금 테러를 일으키고 무장을 한 이들은 전부 감옥에서 막 나온 '범죄자'들이란 사실이었다. 쉽게 말해 대부분 교도소에서 저와 한판 붙었던 제왕 피치처럼 한주먹 했던 놈들이거나 맷집이 강한 놈들 뿐이란 의미였다. 스콧의 주먹은 그를 더 화나게 할 뿐 큰 타격을 주진 못했다.



"잘 됐네, 이게 어느 정도인지 테스트를 해보고 싶었어."



그는 이를 갈며 스콧을 발로 밀어내곤 한치의 망설임 없이 스콧의 머리 쪽으로 투박한 무기를 겨누었다.



"윽!"



그러나 단말마의 비명을 지른 건 스콧이 아니었다. 방아쇠를 당기기 전, 멀쩡히 들려있던 무기가 그의 손에서 떨어지더니 둔탁한 소리와 함께 그 큰 덩치가 바닥으로 엎어졌다. 스콧은 눈앞을 스친 인영을 똑똑히 보았다. 욕지기를 뱉으며 다시 일어서려던 남자는 공중에서 튀어나오는 빛을 맞고 쉽게 쓰러졌다. 곧 스콧의 앞으로 푸른색과 금빛이 번쩍였다. 두 쌍의 투명한 날개가 팔랑거렸다. 흡사 말벌을 연상시키는 수트는 익숙하면서 동시에 낯선 모습이었다. 머리를 보호하던 헬멧이 사라지며 그녀의 긴 흑발머리가 흩날렸다.



"뭘 멍하니 보고 있어?"
"맙소사, 호프?"



스콧은 휘둥그레 뜬 눈으로 그녀를 올려다보았다. 호프는 늠름한 미소를 흘렸다. 제 어머니는 입어보지 못했던 수트. 호프는 행크가 자신에게 이 수트를 소개했던 날을 잊지 못한다. 그녀가 앤트맨 수트의 주인이 되는 것을 반대하던 행크는 끝내 호프를 인정해 주며 자넷과 함께 만든 이 수트를 그녀에게 넘겨주었다. 이를 스콧 앞에서 선보이는 것은 처음이었다. 스콧은 무거운 몸을 일으켜 호프의 손목을 꼭 잡았다. 호프. 그는 그녀를 나지막이 불렀다.



"행크가 당신에겐 날개도 만들어 준 거야?!"
"...진심이야? 첫마디가 그거라고?"
"거기다 블래스터라니! 이런. 나땐 저런 기술이 없었나 봐."



호프는 황당해하며 그의 손을 탁 뿌리쳤다. 아니, 있었어, 달지 않은 거지. 짜증조로 소리친 호프는 다가온 몇명의 일당들을 블래스터로 가볍게 제압하곤 스콧의 뒷덜미를 잡아끌었다. 여전히 땅엔 미세한 진동이 느껴졌다. 근처에서 산발적으로 폭발이 일어나고 있었다. 위험한 폭발뿐 아니라 무기를 소지한 일당들이 돌아다니며 건물을 망가트리고 사람들을 몰아넣고 있었다.



"스콧. 당신이 말한 위험성을 이제 이해했어. 이게 어린아이 하나를 노린 테러라고 생각하면 끔찍한 일이야."
"내 말이 그거야."
"...당신은 영웅이라고 했지?"



호프는 조금 고민하는 듯하더니 주머니에서 꺼낸 작은 케이스를 스콧의 손에 들려주었다. 민트? 뚜껑을 열자 손톱만 한 크기로 축소된 수트가 보였다.



"허락은 받고 가져온 거야?"
"허락해 줬을 거라 생각해?"
"이거, 이번 잔소리는 토네이도 정도로 끝나지 않겠는걸."
"몸을 숨길 개미굴이라도 알아놔야겠네."



호프는 손을 뻗어 스콧 손 위의 케이스를 조준했고 짧은 섬광과 함께 민트 케이스 속 수트가 원래 크기로 커져서 스콧의 팔목을 덮었다. 그것은 한동안 사용한 미완성 수트도 아닌 '1호 수트'였다. 벌써부터 행크의 잔소리가 들려오는 기분이었지만 스콧에겐 망설일 시간도 이유도 없었기에 재빠르게 구멍으로 팔을 끼워 넣었다. 오랜만에 입으니 좀 작아진 거 같기도 하고...그러게 타코 그만 먹으라 했잖아. 호프는 혀를 찼고 스콧은 낑낑거리며 수트의 지퍼를 올렸다. 사람들의 비명소리가 울려 퍼졌다. 두 사람은 몸을 숨겼던 벽 밖으로 나와 아수라장이 된 맨해튼의 거리를 바라보았다.



"호프, 내가 영웅이라 생각해?"
"앤트맨은 늘 영웅이었어. 적어도 나한텐."



스콧은 픽 웃으며 호프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는 한 손은 그녀의 손을, 다른 한 손으론 조절기를 건드렸다.



"당신 또한 그래."



그렇게 두 사람은 순식간에 시야에서 사라졌다.




.





 "이거 끝이 없는데."


스콧은 개미를 타고 날면서 끝없이 줄지어진 테러범들의 행렬에 진절머리를 쳤다. 도대체 어디서 이 많은 사람들을 섭외한 것인지, 다들 괴상한 무기를 들고 사정없이 시민들을 공격하고 건물을 파괴하고 있었다.



"한눈팔 틈 없어, 앤트맨."
"나도 손에서 뿜어져 나오는 멋진 빔이 있다면 편할 텐데 말이야."
"그래서 불만이야?"
"아니, 행크한텐 말하지 마."



기습해온 적을 개미로 덮어버린 스콧은 자신의 크기를 원래대로 돌리고 숨을 골랐다.



"이거 정말, 손이 10개라도 모자라겠어."



[100개라면 어때?]



스콧은 치직거리는 잡음과 함께 들려오는 목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코어에 반응해서 요란한 소리를 내던 탐지기의 경고음이 멈추더니 화려한 일렉 사운드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아니, 이게 왜 이래? 절로 몸이 들썩거리는 밴드 사운드가 들리자 호프는 있는 힘껏 표정을 구기며 스콧을 돌아보았다. 장난해? 진짜 내가 한 거 아니야! 사실 이런 장난을 칠만한 사람은 한 명뿐이었다.



쾌쾌한 연기 너머로 눈이 따가운 빛들이 모여들었다. 하나, 둘 많은 이들의 시선이 하늘을 향했다. 이 순간 모두는 벙진 얼굴로 드넓은 하늘을 응시하고 있었다.



"세상에.."



스콧은 눈을 의심했다. 올려다본 그곳에는 토니 스타크와 셀 수 없는 숫자의 아머들이 하늘은 말 그대로 수놓고 있었다.



"자, 청소 시간이야. 땡땡이치는 놈은 더러운 화장실 청소 담당이 될 줄 알아."



A 타워 앞으로 착지한 아이언맨 아머를 중심으로 무인 아머들이 사방으로 펼쳐졌다.



"정신 못 차리는 걸 보니 화장실 담당이 되고 싶은가 보네, 랭."
"스타크, 당신은 정말...대단해."
"지금 이 상황에 떠오른 어휘력이 고작 그 정도 밖에 안돼?"



토니는 콧방귀를 팽 끼며 다시 날아올랐다. 스콧은 평소라면 재수 없었을 토니의 발언이 어쩐지 멋지게만 느껴졌다. 여전히 탐지기에선 세련된 음악이 배경음악처럼 흘러나오고 있었다.







# 1 스콧과 호프




"이런 말 하면 배불렀단 소리 듣겠지만 말이야."



민트 냄새가 너무 심한데.. 킁..스콧은 내내 은은하게 풍겨오는 페퍼민트 향 때문에 코끝이 찡했다. 그야, 당신에게서 압수한 후론 쭉 그 민트 케이스에 담아두셨다니까. 스콧은 표현을 하자면 온몸으로 가글을 하는 기분이었다. 소중한 수트라더니 대체 왜 그런 민트 케이스에 담아둔 거야? 그야 노리는 사람이 많으니 위장용으로. 스콧은 코를 훌쩍이며 고개를 내저었다. 날개랑 블래스터 기능이 아니라 민트효과라니. 하지만 스콧은 불평할 위치가 아니었다. 한마디라도 했다간 또다시 평생 수트를 압수당할 미래가 뻔했다.



"좋아, 페퍼민트맨. 준비됐지?"
"그 호칭은 그만둬, 호프. 무슨 어린애들 치약 광고 같잖아."




#2 토니와 해피




"꼬맹이 잘 감시해."
"그 말만 벌써 23번째인 거 아시죠?"



해피는 여전히 스파이더맨 오리지널 수트(천쪼가리)를 든 채 험악한 얼굴의 토니를 더욱 험악한 얼굴로 쳐다보았다. 프라이데이의 알림이 뜬 후 본부를 나서기 직전의 직전까지 토니는 피터를 잘 감시하란-이미 이 시점에서 그는 이 행위를 감시라고 인지하고 있는듯했다-잔소리를 늘어놓았고 때문에 해피는 귀에 딱지가 앉을 지경이었다.



"난 진지해. TV도 못 보게 해, 알았어?"
"알았다니까요."



토니는 왼쪽 손목을 두 어번 두드리며 화면을 살폈다. 곧 아머가 그의 몸을 덮기 시작했다. 나노 기술이란 거야, 토니는 묻지도 않은 말에 찡긋 윙크를 하며 날아올랐다. 해피는 연기가 피어오르는 하늘로 떠나는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프라이데이, 청소당번 프로토콜 실행해."



그리고 자신의 양옆으로 일제히 튀어나와 그를 뒤따르는 약 100개의 아머들까지. 꽤 오랜기간 토니와 일하고 있지만 해피는 또다시 그의 능력치에 놀라고 말았다. 그는 아무도 없는 그곳에서 토니가 들었다면 비이냥거렸을 가장 직설적이고 단순한 감탄사를 뱉었다.



"와우, 정말...대단해."



그 순간만은 자신이 피터가 된 기분이었다.

 





많이 늦어버렸네요 ㅜ.ㅠ현생 다음화는 더 빨리 돌아오도록 하겠습니다! 기다려주셔서 고맙습니다. (피터가 없는건 기분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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