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관의 말에도 홍련은 곧장 단영에게 가지 않는다. 무표정으로 뭔가를 깊이 생각하는가 싶더니, 이윽고 사홍과 한랑을 바라봤다. 

 "너희, 작수전 앞에서 날 기다려."

 "왜..."

 "명령에 이유가 있어야 할까?"

 그 한마디에 곧장 입을 다물어 버리는 둘을 힐끗 보고는, 홍련은 작수전으로 달려갔다. 



 작수전에 들어가자마자, 시야에 들어오는 걱정이 가득한 단영의 얼굴.

 "연락은 왜 안 받으셨습니까."

 "그렇게 급한 일이었어요? 아까 화내느라고 여기 두고 갔네."

 홍련이 담담하게 단영의 책상 위에 놓인 자신의 핸드폰을 들어올린다. 그걸 본 단영도 이해됐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기에,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그나저나 왜 부르셨어요? 상황은 들었습니다. 어찌하려구요?"

 "제가 당신을 부른 건, 어떻게 하자는 게 아닙니다. 내일 백호시에 가기위해 잠시 자리를 비워야 할 것 같으니, 주작궁에 일이 생기게 되면 수습을 부탁드린다는 의미입니다."

 그 부탁에 홍련은 답하지 않는다. 엉뚱하게도 전혀 다른 이야기를 꺼낼 뿐.

 "백호는 우리를 왜 이렇게 싫어해요? 그냥?"

 ".... 그냥인 것 같지만, 예전에는 이유가 있었죠. 이건 지금 이야기하기엔 시간이 부족 할 것 같군요. 백호시에 다녀오고 나서..."

 "단영님. 왜 말을 안 해줬어요?"

 자신의 말을 끊고 들어오는 슬픈 목소리에 멈칫하는 단영. 그런 단영이 자신의 질문을 좀 더 이해할 수 있도록, 홍련은 말을 이었다.

 "우린 언제나 위를 향하는 불꽃이잖아. 항상 노력하고, 끝없이 타오르면 언젠가는 하늘에 닿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 근데, 우리가 타오르는 것조차 못하게 대지가 막고 있네. 오히려 아예 꺼져버리도록 흙으로 덮어버리고 있잖아."

 단영은 그저 미소 짓는다. 홍련의 말을 이해하지만, 어쩔 수 없다는 의미다.

 "이런 일이 어디 한두 번 인가요. 그래서 상황이 더 안 좋아지기 전에 적당히 마무리 지어야 할 겁니다."

 그 말을 들은 홍련도 미소를 짓는다. 아까처럼 안전을 위해서냐는 말은 하지 않는다. 이번에는 좀 다르다.

 "백호궁에 내가 갈게. 내 직속 신관들도 데리고. 주작이 직접 오라고 했다지? 나도 주작, 뭐, 수습이지만. 여하튼 내가 가도 문제는 없지. 사과를 해도 내가 해야 하고. 나랑 수습 백호 사이의 일을 뭣 하러 사방신이 해결하고 있어."

 거절당할까봐 걱정됐는지 조금 조심스러운 어투였지만, 단영은 딱히 반대하거나 막을 생각이 없는 듯 했다. 그게 아까 자신이 한 말 때문에 죄책감을 느끼는 건지는 몰라도.

 "그래. 수습 주작님께서 가는 게 좋을 것 같군요. 대신 이건 알아둬요. 우린 백호궁 안에 들어갈 수 없어요."

 동의를 얻자마자 곧바로 백호시로 가려는 자신을 멈춰 세우는 그 말에, 홍련이 의아한 표정을 짓는다.

 "그게 무슨 말이에요?"

 "백호는 주작을 백호궁에 못 들어오게 하니까요."

 이 무슨 어이없는 말인지. 홍련의 얼굴이 저절로 일그러졌다.

 "그럼 어디서 사과를 하란 말이죠?"

 "백호가 원하는 건 진심어린 사과 같은 게 아닙니다. 그저 주작과 백호 사이의 결코 가까워 질 수 없는 권력의 격차를 인지시키려는 것 뿐. 그렇기에 사과는 서신문 앞에서, 일반인도 볼 수 있는 곳에서 하란 말이죠. 물론 백호는 나오지 않을 겁니다."

 아, 그러니까, 사방신 주작이 백호궁 대문 앞에서 듣지도 않을 사과를 주구장창 외치고 있으란 말이다. 국민들이 그걸 보며 주작을 비웃고 씹어대는 걸 느끼며, 자신의 무력함도 깨달으라는 의미기도 하고. 

 "그렇다면 다른 방법을 찾겠습니다."

 단영의 설명에 화가 난 듯, 정색한 홍련은 그저 이 말만 남기더니, 작수전을 나가버렸다.




 그리고는 다음 날.

 덜컹이는 소리만 들리는 기차의 특실 안, 불만이 가득한 얼굴로 창밖을 보는 한랑과 꼼지락거리며 귀걸이를 만들고 있는 사홍의 건너편에는 홍련이 앉아있다.

 백호시로 향하고 있는 그 기차 안에서, 턱을 괴고 생각에 잠겨 있던 홍련이 갑자기 입을 열었다.

 "이야기 하나 들려줄까?"

 그 한 마디에 둘 다 멈칫하더니 홍련을 바라본다. 그걸 알아 챈 홍련은 담담하게 이야기를 시작했다.

 "나는 내가 차기 주작이고, 양친이 아니라 신관들에게 자라고 있다는 걸 알았을 때, 나한테 엄청난 출생의 비밀이라도 있는 줄 알았어. 특히 내 양친은 어디 있냐고 물으면 다들 입 다물기 바빴으니까."

 조용히 자신의 말을 듣고 있는 둘을 바라보며 씁쓸하게 웃더니, 홍련은 말을 계속했다.

 "그래. 숨겨진 과거가 있긴 하더라고. 자신들의 아이가 새로운 주작임을 알고 나서 그 아이를 데리고 도망쳤다는 이야기가. 하지만 그 도주는 하루도 못가고, 주작시를 벗어나지도 못하고 끝나버렸다는 슬픈 결말도."

 "왜... 도망쳤는데요?"

 조심스럽게 묻는 사홍의 질문에,

 "평범하게 살고 싶었대."

 홍련의 대답은 너무나도 차분하다. 이 이야기를 누군가에게 꺼내는 건 처음이지만, 벌써 이렇게 담담하게 말할 정도로 오래전에 알게 된 이야기였으니까. 그러니 옛날만큼 괴롭진 않다.

 다만, 그런 홍련의 태도 때문인지 사홍도, 한랑도 상당히 당황스러운 표정이었다.

 "네?"

 "말 그대로야. 외형만 봐도 너무나 사방신 주작인 아이를 품에 안고서 평범히 살겠다고 도망치다니."

 이제 홍련은 건너편에 앉아있는 자신의 직속 신관들을 곧은 눈빛으로 본다. 명령이긴 해도, 얌전히 자신을 따라 백호시로 가고 있는 둘의 모습에서 야주 약간의 가능성도 읽으면서.

 "가끔 그런 생각을 해. 도망치는데 성공했다면, 나는 양친과 함께 아무것도 모르는 채로 평범하게 살았을지 모른다고. 그런 삶도 나쁘지 않았을지도. 하지만 어쩌겠어. 주작으로 태어난 이상 의무는 다 해야지. 그게 내가 원하는 삶이 아니더라도 말이야."

 그 말을 마지막으로, 이번에는 홍련이 고개를 돌려 창밖을 바라본다. 대신 사홍과 한랑이 오랫동안 홍련을 바라보며 가만히 있을 뿐.



 단영의 말마따나 백호궁에 들어가는 걸 실패한 홍련은 대신 신관고 정문 앞에 서 있다. 한옥 형태의 신관고를 구경하고 있는 한랑의 옆에서, 사홍이 주변을 둘러보며 묻는다.

 "왜... 여기에 오셨어요? 저희 퇴학이라면서요..."

 "아직 정학이거든! 그리고 수습 백호님은 학교가 끝나면 꼭 신관이 데리러 와. 엄청난 고급차를 이끌고 말야. 그러니 여기서 기다렸다가 수습 백호를 낚아챌 거야."

 "예에??"

 "왔다! 나온다! 야!!"

 낚아챈다는 말이 농담이기를 바라는 사홍을 뒤에 남겨두고, 저 멀리의 백호를 발견한 홍련은 냉큼 학교 정문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경비가 붙잡을 새도 없었다.

 그렇게 순식간에 백호 앞에 도달한 홍련의 미간에 주름이 잡혔다.

 "너... 맞은 거 다 나았잖아?"

 어제 자신에게 맞아 부어올라있던 백호의 얼굴이 완전히 멀쩡해져있었기에.

 "....."

 상대에게 대답이 없자, 홍련은 백호의 볼을 좀 더 유심히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하루 만에 회복할 정도였는데, 주작님이 직접 와서 사과를 하네 마네, 나를 퇴학시킨다네 뭐네 하고 있던 거야? 치료비까지 요구하고?"

 "치료비는 우리가 요구한 거 아냐."

 웅얼거리는 백호의 목소리를 잘 들으려 고개를 숙이다가, 홍련이 손가락을 딱 하고 튕겼다.

 "아하! 그러면 치료비는 안 줘도 되는 거지?"

 "... 여긴 왜 온 거야? 퇴학시킨다고 들었는데. 네가 날 또 때릴지 모른다고."

 "제가 또 때릴까봐 무서우세요? 수습 백호님?"

 잔뜩 비꼬던 홍련은 퍼뜩, 자신이 뭘 하러 여기까지 왔으며, 주변에 학생들이 이 광경을 바라보고 있음을 깨닫고 급히 태도를 바꾼다. 그래. 지금은 사과하러 온 거다.

 "아니, 음. 일단 내가 때린 것에 대해서 사과하러 왔어."

 갑작스러운 태도 변화에 백호의 눈에 놀라움이 담겼다. 믿기지 않는다는 얼굴로 살짝 뒷걸음 쳤지만, 홍련은 더욱 진지한 얼굴로 사과를 건넬 뿐이다.

 "때려서 미안해. 너무 속상했거든."

 "뭐가 그렇게 속상해?"

 "공공연한 장소와 상황에서, 백호님이 주작님께 모욕을 줬잖아. 주작님은 모든 아이들을 사랑하시는 분이야. 항상 자식을 갖고 싶어 하셨지. 그렇기에 혈육을 남길 수 없어도 언젠가는 아이들을 입양해 키우고, 그 아이들이 행복하게 자라는 모습을 보며 남은 평생을 보내기로 결심하신 분이야."

 백호는 잠잠히 이야기를 듣는다. 무표정인 백호의 생각을 읽는 걸 포기한 홍련은 그저 말을 계속할 뿐.

 "하지만 백호님은 그런 주작님의 결심과 각오를 모두 무시하고, 심지어 주작님의 몸을 '하자가 있다'고 말하기까지 했잖아. 마음대로 정상의 범주를 규정내리며 모든 가능성을 차단해버리고. 하지만 우리의 몸은 어떤 문제가 있거나 병이 있는 게 아냐. 그걸 타인에게 평가받을 이유도 없고."

 '병'이라는 단어에 움찔하는 백호. 홍련은 문득, 백호가 능력 때문에 자주 잠을 자는 걸 병이라 표현하던 류호를 떠올렸다. 그게 병이 아님에도, 류호에 의해 강제로 아픈 사람이 되어야 했던 백호의 모습도.

 "그러니 이건 당연한 사실이 아냐. 하지만 너도 백호님의 말에 동의하면서, 나까지 그럴 거라고 말했잖아. 그래, 그 모든 상황과 말이 나를 속상하게 했어. 때린 건 잘못 했지만."

 홍련은 말을 끝마쳤고, 백호는 말이 없다. 그래도 홍련의 말을 곱씹으며 생각에 잠겨 있는 백호의 모습은 류호와는 사뭇 다르다.

 게다가 오랫동안 말이 없던 백호의 입이 천천히 열리고,

 "그렇구나. 미안해."

 나온 그 말에, 홍련은 또 다시 어떤 가능성을 읽는다.

 드디어 사과를 받아 나름 만족한 홍련은 다시금 활기찬 웃음을 짓는다. 주변에 서서 상황을 구경하던 학생들도 백호의 사과를 들었는지, 웅성거리고 있다.

 수습 주작과 수습 백호가 화해를 했다는 사실은 이제 학교 전체에 퍼지고도 남았겠지. 그렇게 생각하며 홍련은 저 뒤에 있는 백호를 태울 고급차를 가리켰다.

 "이 기세를 몰아서 백호님에게도 사과하러 가야겠다! 네 차 좀 태워줘! 내 직속 신관들도!"

 "어.... 왜?"

 미심쩍은 눈빛을 보내는 백호를 본 홍련이 씨익 웃는다.

 "난 백호궁 못 들어가니까, 백호가(家) 앞에서 네 아버지를 만나야겠거든."



 "백호야, 왜 이렇게 늦었느냐."

 백호가의 대문 앞, 걱정이 담긴 목소리와 함께, 백호의 어깨에 손을 올리려는 류호의 앞으로 홍련이 다가왔다.

 결국 류호를 만나는 데 성공한 홍련은 빙긋 웃고 있지만, 류호는 얼굴을 팍 찡그렸다. 그리고는 마치 더러운 것을 만난 것 마냥 뒷걸음치면서, 백호를 자신에게 끌어당긴다.

 "젠장. 너는 왜 여기 있어?"

 노골적으로 혐오감을 드러내는 류호의 표정과 수습 주작임에도 자신에게 예의를 차리지 않는 태도에 짜증이 솟구치면서도, 일단은 참아낸다. 내가 정식 주작이 되면 반드시 반말을 쓰겠다고 결심하면서.

 "제가 수습 백호님을 때린 일 때문에 왔습니다. 상황이 어찌되었든, 폭력을 쓴 것은 충분히 문제가 되는 행동이었고, 이에 사과드립니다."

 최대한의 공손함을 담아 말한다. 구색을 갖추기 위해 나름 차려입고, 직속 신관까지 데려와, 홍련은 모두가 보는 앞에서 고개를 살짝 숙이기까지 한다.

 "아하. 유단영 대신 왔구나? 이걸로 해결될 거라 생각하는 거냐?"

 "수습 백호님께는 먼저 사과를 드렸습니다. 주먹질을 한 건 명백한 저의 잘못이 맞으나, 주작님께 모욕적인 언질을 하신 백호님께도 사과를 받고자 합니다."

 "감히 차기 백호를 때리고는, 사과를 받고자 해? 그리고 내가 말한 건 못 들었나? 나는 모욕을 줄 의도가 아니었다니까?"

 홍련이 계속 사과를 건네는데도 류호는 도리어 입술을 비죽인다. 상황이 완화될 기미가 보이지 않자, 옆에서 조용히 지켜보고 있던 백호가 입을 열었다.

 "아버지. 저는 이제 괜찮고, 수습 주작에게도 사과를 받았..."

 "내가 언제 네 의견을 듣겠다했느냐?"

 하지만, 백호에게도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말하는 류호. 그 목소리에는 상당한 강압까지 담겨 있다.

 "네...?"

 갑작스러운 류호의 행동이 상당히 당혹스러운지, 백호의 목소리가 몹시 흔들리고 있다. 마치 아버지가 자신에게 그렇게 말하는 게 믿기지 않는다는 얼굴로.

 "내가 아니라면 아닌 거다. 네 마음대로 판단하고 결정 내릴 일이 아니야."

 "...... 하지만..."

 "당장 집에 들어가. 네가 뭐라고 내 말에 토를 달아?! 너는 내가 하라는 대로 하면 된다."

 이 상황과 류호의 모습을 받아들이지 못했는지, 너무나도 충격을 받은 표정의 백호는 멍하니 서 있다. 지금껏 본 적 없는 창백한 얼굴이다.

 그런 백호를 멀뚱히 보다가, 류호가 자신을 잊어버렸나 싶어 홍련이 불쑥 끼어들었다.

 "수습 백호님은 사과를 받아주셨습니다. 그러니 퇴학은 취소해주시죠! 수습 사방신의 작은 다툼에 일을 크게 벌일 필요가 없지 않습니까?"

 "젠장. 사과고 뭐고 집어치워. 이번 주작은 더 답이 없군. 백호, 내가 분명 행동과 언어를 조심하라 했지? 네가 사과를 받아준 바람에...."

 이제는 뻔뻔하게 나오는 홍련의 태도에, 류호는 기함하며 고개를 젓더니 백호의 등을 떠밀며 집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눈앞에서 거대한 백호가의 대문이 쿵 하고 닫히고, 고요함만이 남는다. 결국, 류호에게 사과를 받아내진 못했지만, 홍련의 표정은 나름 괜찮다. 이 정도면 반은 해낸 거다. 꼭 모든 걸 당장 완벽하게 해낼 필요는 없는 거다.

 홍련은 이제 뒤를 돌아 자신의 직속 신관들을 바라본다. 그런 홍련에게서 만족이 담긴 표정을 읽었는지, 한랑과 함께 상황을 보고만 있던 사홍이 입을 열었다.

 "사과 안 하실 것 같았어요."

 "백호가? 나도 그래. 근데 수습 백호는 사과 했으니까..."

 "아, 수습 백호님이 사과하신 건 놀랍긴 했지만, 사실 저는 수습 주작님도..."

 "나? 왜?"

 "음... 수습 백호님도 잘못하신 거니까요?"

 사홍이 우물쭈물 대답하기에, 홍련은 옅은 미소를 짓는다. 그래. 뭐, 나도 이렇게까지 사과하고 싶진 않았어. 하지만...

 "있잖아. 나도 최근에야 깨달은 거지만, 때로는 하기 싫은 일도 해야 할 때가 있더라고. 그게 나의 의무라면 더욱이. 때로는 바라지 않는 책임을 지거나, 원하지 않는 것을 선택할 필요가 있더라. 근데 그걸 한다고 해서 아무 의미가 없는 건 아냐."

 그리고는 다음 말을 남기고,

 "너희들이 내가 싫어도 나를 따라 이곳까지 온 것처럼. 내가 백호를 때린 이유를 알았잖니."

 홍련은 백호역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뭔가를 깨달은 듯, 입을 꾹 다물며 고개를 숙이는 사홍과 한랑을 데리고서.




 그로부터 2년 뒤. 2181년 3월 1일. 여전히 과거.


 "일어나!!"

 "으으..."

 "빨리! 아침 종이 울리고도 안 일어나는 건 너네밖에 없을 거야!"

 홍련은 결국, 베개에 얼굴을 파묻는 사홍의 등을 퍽 때렸다. 하지만 사홍은 아랑곳하지 않고 이불까지 끌어올린다.

 그런 사홍의 옆 침대에서 한랑이 부스스 몸을 일으키는 걸 보며 홍련은 말을 계속한다.

 "단영님은 벌써 가셨다고!"

 "어디...?"

 목이 완전히 쉬어버려 거의 웅얼거리는 한랑을 보며 홍련은 더욱 미간을 찌푸린다. 

 "어디?! 어디이?? 어제 설명 다 들었잖아! 오늘은 55대 현무의 정식 즉위식이라고! 예전 수습 현무 때처럼 새로운 현무님도 사고가 날까봐 청라님하고 단영님 두 분 다 현무시 가셨잖아."

 "그... 맞다."

 "그래서 오늘은 내가 주작님 대리야! 근데 이제 3월 1일은 '현무의 날'이라 공식 휴궁일이 되었으니, 딱히 일은 없고! 국궁 연습이나 하러 가자!"

 홍련이 일어나라며 자신을 계속 흔들기에, 결국 베개에 파묻고 있던 얼굴을 옆으로 돌리며 눈을 뜬 사홍이 씨익 웃었다.

 "또 주작의 활을 몰래 써보시려구요?"

 "몰래라니! 이건 예행연습이라는 거야. 내가 정식 주작이 되면 어차피 쓰게 될 활이라고!"

 "그 활은 초대 주작님의 불꽃으로 만들어진 거라면서요. 그래서 주작님만 쓸 수 있고, 그 외의 사람들은 모두 되돌릴 수 없는 극심한 화상을 입는다고..."

 잠에서 좀 깼는지, 침대에 기대앉은 한랑의 말에 사홍도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수습 주작님도 예외 없을걸요. 화상 입으실 거예요."

 "그래도 드는 건 문제 없더라! 쏘지만 않으면 되는 거잖아?"

 "아깐 활쏘기 하신다고..."

 고개를 갸웃거리는 한랑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홍련은 이미 문을 열고 나갈 준비를 끝낸지 오래다.

 "말이 많아! 가자!"


언제나 더 나은 글을 쓰고 싶어요.

두솔님의 창작활동을 응원하고 싶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