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대강당의 주민들 모두가 과거의 나와의 추억을 다시 회상하면서, 그리고 곧 마을을 떠날 나에게 작별 인사를 하면서 시간을 보내다 보니 어느덧 밤이 깊어져 가고 있었다. 당연히 주민들은 미래기관 요원들의 감시 하에 대강당에서 단체 합숙을 하게 되었고. 낮에 온 보급품 중에는 간단히 설치 가능한 텐트도 있어, 각 가정마다 이를 제공받아 개인별로 지급된 침낭과 함께 ‘대강당에서의 야영’을 하게 된 모양이었다. 그리고…

“미나미 군, 혹시 오늘 밤은 미나미 군네 집에서 머물 수 있을까요?”

역시 키무라 씨와 스즈키 씨는 나의 절친인 슌에게 큰 관심을 보이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어제와는 다르게 슌의 집에 키무라 씨와 스즈키 씨까지 머물게 되었고…

“안돼애애애애~ 나도 나에기 씨랑, 아니지, 미나미네 집에서 자고 싶다고~”

“…어이, 우리 집이 7명 받을 정도는 절대 안 되거든?! 게다가 너 몰래 나갈 방법은 있냐?!! 아무리 그래도 높으신 분들이 이틀 연속으로 현지 주민 집에서 잔다는 건 말이 안 되거든?!”

“아베, 나에게는 그냥 포기해…”

“………흥이다.”

…대신 아베가 빠져, 오늘 밤은 6명이서 슌의 집에서 보내게 되었다.

“나에기 씨, 키무라 씨, 그리고 스즈키 씨까지, 오늘 고생 많으셨어요!”

“하하, 내일 다시 봬요.”

“그건 그렇고 이 아이는 왜 데리고 나가려고 하시는지…”

“아, 휴가 쨩은 여러 이유로 우리가 직접 보호하기로 결정돼서요.”
…결국 설득에 성공했구나, 나에기.

“아아, 그렇군요. 그럼 나에기 씨, 내일 봬요!”

“……………”

……………

“…항상 느끼는 거지만 둘 다 엄청 신기하네요. 그렇게 ‘대놓고’ 지나가도 눈치를 못 채다니.”

“뭐, ‘아무리 나라도’ 몰래 문을 열 수까진 없었지만 말이야.”

……………………………………………………

그렇게 6명이서 슌의 집에 도착하자마자 슌 녀석은 갑자기 ‘문제의 술’을 꺼내든 것이었다…

야, 그 ‘맛없는 술’은 또 왜 꺼내든 거냐?!

“하지메 쨩, 너무하잖아… 너 일부러 그러는거지?!”

“…뭐 쨌든간에, 여기 높으신 분들이 우리 ‘대악당’님의 과거를 캐내려면 아무래도 ‘알코올’이 들어가는 편이 편하겠죠?!”

…결국 ‘술’이 아니라 ‘알코올’이냐…

“하하, 전 아직 술을 마시기엔 어려서, 제가 휴가 쨩을 돌보고 있을게요.”

“…작은 오빠는 볼 찔러도 돼?”

“무, 물론이지…”
…나나미는 정말 ‘볼 찌르기’를 좋아하는구나, 그건 그렇고 나에기 당황했어!

“…일단 다들 미리 잘 준비들 하고 계세요. 그동안 제가 안주라도 만들고 있을게요.”

“………………………”

“이야~ 이렇게 왁자지껄한 술자리라니, 나름 남자의 로망 아니겠나요~”

“…하아, 스즈키 씨는 여성분이시거든…?!”

“하지메 쨩, 혹시 방금 나 걱정해 준 거야? 이거 영광이구만?!”

“스즈키도 참. 그건 그렇고, 어째 술보다 안주에 더 손이 가는데?”

…거봐.

“…젠장.”

“…그건 그렇고 하지메 군, 술 정말 잘 마시는데?”

“이, 이야… 하지메 넌 왤케 주량이 세냐?! 너 이 자식 취하긴 하려나?”

“…‘거기’서 재능 주입 전에 꾸준히 ‘신체 강화 요법’을 받아 왔으니까 말이야. 분명 ‘체육 계열 재능’에 대한 적합성을 높이기 위해서였겠지?”

“그, 그렇구나…”

“………………………”

“하지메 오빠, 그런데 그 ‘술’이란 거 맛있어? 엄청 열심히 마시는데?!”
…아차, 괜히 심란해져서 너무 마셔댔나.

“후후, 우리 휴가 쨩 그렇게 술 맛이 궁금하니? 한 번 마셔볼래?”

“스, 스즈키 씨, 그래도 괜찮은 거에요?!”

“어라, 하지메 쨩은 ‘초고교급 희망’인데도 그런 걱정을 하는구나? 괜찮아 괜찮아! 오히려 이 편이 ‘애들’한테는 낫다고?!”

“…켁켁켁, 맛없어!”

“후후, 거봐.”
…세상에. ‘데이터’에 추가해 둬야겠다…

“…이제 슬슬 취하는 기분인데?”

“그래서 미나미 군, 슬슬 우리의 ‘조사’에 협력해 주지 않을래?”

“걱정 마시죠! 이 ‘미나미 슌’이 저 녀석 흑역사란 흑역사는 전부 까발려 줄 테니까요!”

“…하아. 슌, 술 더 없어?”

“뭐야 하지메 쨩, 내가 만든 술 맛없다고 했으면서 이제와서 찾기냐?!”

…취하기라도 해야 너 자식이 떠들어댈 거 버틸 수 있을 것 같아서 그렇다, 왜.

“드, 드리겠습니다!”

………………

…그건 그렇고, 이게 취하는 기분이구나, 신기한ㄷ………………


“하지메, 슬슬 일어나야지?”

깊은 잠에 빠져 있던 나를 깨운 것은 바로 익숙하면서도 왠지 모르게 그리운 느낌이 드는 아버지의 목소리였다.

“많이 피곤했나 보구나. 하지만 오늘은 우리 하지메에게 아주 중요한 날이잖아? 아빠랑 엄마는 아래서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 준비되면 내려오렴.”

그렇다. 오늘은 ‘나’에게 있어서 아주 중요한 날이었다. 나는 곧바로 정신을 차린 다음 방 한 켠에 걸려 있는 코다카 고등학교 하복으로 갈아입고선 부모님께서 계신 거실로 나섰다.

“우리 하지메~ 모처럼 중요한 날인데 그렇게 늦잠을 자면 어떡해~ 심지어 이 엄마보다도 늦게 일어나고 말이야~”

“하하하, 죄송해요.”

거실로 나온 나를 보자마자 항상 그랬듯 나를 가볍게 놀리는 어머니는 줄곧 유지해 오신 단발에 출근할 때 마다 입어오신 멋드러진 정장까지 입고 계신 채였다. 아버지께서도 그런 어머니 옆에서 외출 준비를 마치신 상태로 내가 나오기를 기다리고 계신 것이었다.

“하지메, 잘 어울리는구나.”

“하하, 새삼스럽게 무슨 말씀이세요.”

부모님과 가벼운 농담을 나누며 나는 집을 나섰고, 그러자 집 앞에서 나를 반긴 인물은…

“어이 하지메 쨩, 모처럼 중요한 날에 너답지 않게 늦잠이냐?”

“하하, 기다리게 해서 미안.”

…아니나다를까 그 ‘미나미 슌’인 것이었다.

“그건 그렇고 잘 어울리는구만? 그 ‘패션’ 말이야 크크킄”

“닥쳐 좀.”

뭐, 슌 녀석 텐션도 평소대로인 듯 했다. 나도 익숙하게 슌의 장난을 받아치면서 목적지를 향해가니 어느새 내 중고등학교 동창들도 하나둘씩 나한테 합류하기 시작했다.

“크으~ 오늘이 바로 우리 히나타의 ‘멋진 모습’을 보는 날이구만?!”

“그러게, 저 자식 언제 저렇게 늠름해졌는지 말이야.”

“뭐, 그래봤자 결국에는 얼빵한 태클바보 히나타라니깐.”

“…하하하…”

모처럼 ‘멋진 모습’을 보여주려 해도 결국 동창놈들마저 나를 놀릴 생각만 가득해 보였다… 어쩔 수 없이 속으로 한숨을 쉬며 동창들의 놀림까지 받아주니 어느새 나는 목적지인 코다카 고등학교의 운동장에까지 다다른 것이었다.

“하지메 군, 왜 이렇게 늦었어?!”

“맞아, 오늘 우리 하지메 군이 ‘멋진 모습’을 보여준대서 미리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고?!”

“하하, 죄송해요. 늦잠 자 버렸어요.”

“늦잠이라니, 하지메 쨩 답지 않게 웬일이래?”

“…하하, 그러게요.”

그 곳에서는 ‘나’의 ‘멋진 모습’을 보기만을 기대하는 학교 선생님들, 단골 가게 사장님들, 그리고 다른 친숙한 이웃들이 나의 등장을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 하지메 군이 꼬맹이였던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20살이라니. 시간 정말 빠르구나.”

“맞아, 그러고보니 어린 하지메 쨩은 마을 놀이터에서 뛰어노는 걸 좋아했잖아.”

“특히 그네를 엄청 좋아했었지? 하늘을 나는 느낌이라니, 정말 귀여웠는데 말이야.”

그렇다. 나는 이 마을에서 오랜 시간 동안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으며 자라왔다. 그리고…

…‘나’는, 이제 곧 이 마을을 영영 떠나는 것이다…

나와 소중한 추억을 쌓아 온 이들이 모두 한 자리에 모여 나와의 ‘영원한 이별’을 맞이하러 하고 있었다. 그들의 얼굴에는 ‘멋진 모습’을 보러 왔다는 목적과는 맞지 않게 슬픈 기색만이 가득할 뿐이었다. 그리고…

…역시 ‘미나모토 미츠키’는 이 자리에 안 나왔구나.

처음 만남부터 나와 줄곧 평행선만 그리며 서로를 바라보기만 했던 미나모토는, 다같이 운동장에 모여 있는 다른 주민들과는 다르게, 혼자서 ‘그녀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학생회실에 머무른 채 창가에 앉아 그 광경을 내려다보고 있는 것이었다. 문득 학생회실을 바라보다 나는 미나모토와 눈이 마주쳤고, 나는 그녀의 눈빛에서 깊은 쓸쓸함을 느낄 수 있었다…

줄곧 나를 바라보기만 했다는 미나모토는, 나와 눈이 마주치자마자 애써 웃으며 나에게 작별 인사를 보낼 뿐이었다. 이에 나는, 나와는 물론이고 다른 마을 주민들과마저 다른 길을 걸어갈 그녀를 격려하고 싶은 마음에, 그저 은은한 미소로 대답할 뿐이었다. 그러자 미나모토 주위로 검은 양복의 사내들이 나타나 그녀를 에워싸는 광경이 내 눈에 비쳤고, 분명 ‘구속’될 것임에도 불구하고 그런 미나모토의 얼굴에는 그저 ‘해방감’만이 묻어나오는 것이었다…

“어이, ‘얼빵한 대악당’님, ‘멋진 모습’ 보여준다면서 그렇게 멍때리고 있을 건가요? 크크킄”

그렇게 운동장의 마을 주민들을 아랑곳하지 않고 학교 건물만을 바라보던 나를 부른 인물은 역시나 슌 녀석이었다…

“하하, 미안미안. 미나모토 혼자서만 학생회실에 있길래.”

“크크크크킄 우리 ‘고독한 대악당’님, 미미쨩이 그렇게나 신경쓰였나요?! 크크크크킄”

“단순히 동경이라니까?! 게다가…”

…게다가, 미나모토는…

“…미나모토는 줄곧 ‘혼자’였으니까 말이야.”

그렇다. 나는 물론이고 미나모토를 좋아하던 그 누구도 줄곧 그녀의 진심을 제대로 들어주지 못 했다. 이에 나를 포함한 주민들 모두가 미나모토에게 미안한 마음을 가지는 것이었다.

“…하긴, 우리가 미나모토를 조금 더 빨리 위로해 줄 수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말이지…”

“…그러게, 미나모토가 그런 일을 겪고 있을 거라곤 상상도 못 했는데 말이야…”

“…하아, 미미쨩의 ‘시시함의 집합체’의 정체가 그랬을 줄이야…”

특히 나는 한 때 ‘키보가미네 학원’만큼이나 동경했던 미나모토의 진심을 듣고서는 더더욱 그녀가 안타까워질 뿐이었다. 그러나…

“…그렇네, 우리는 결국 줄곧 미나모토와 함께 하면서도 그녀의 상처를 보듬어줄 수 없었어. 게다가 ‘미래기관’에 구속당한 이상 나는 물론이고 다른 사람들도 앞으로 영영 미나모토를 볼 수가 없겠지. 하지만…”

“…나는 믿고 있어, ‘나에기 마코토’를 말이야. 그래, ‘그’가 있는 이상 분명 미나모토는 여태 혼자서만 외롭고 괴로워한 것 이상으로 행복해질 수 있을 거야. 그러니 다같이 새로운 ‘미래’를 향해 갈 미나모토를 응원해 주자고.”

나의 발언에 ‘나’를 떠나보내려 모인 모두는 잠깐 ‘그녀’를 위해 마음속으로 기도를 올리는 시간을 가졌다. 잠시 동안 엄숙함이 운동장을 가득 메웠고…

“하지메 쨩, 그래서 너도 슬슬 가야지? 끝까지 쑥스러운 말은 잘 하는구만?!”

…또다시 슌 녀석이 그 침묵을 깨는 것이었다.

“하하, 그러게. 그 ‘두 사람’도 기다리고 있고 말이야.”

그와 동시에 미나모토를 생각하며 침묵을 유지하던 다른 모두가 하나둘씩 나에게 응원과 격려의 말을 전하기 시작했다.

“히, 히나타 군! 힘내!!!”

“하지메 군, 해줄 수 있는 게 말밖에 없지만, 그래도 하지메 군을 마음속으로 계속 응원할게.”

“히나타 너 이 자식, ‘고독한 대악당’의 활약, 기대하고 있을 거라고?!”

“하, 얼빵한 태클바보 히나타 주제에, 한번 잘 해봐.”

“우리 아들, 제법 멋진 남자로 컸잖아?! 이 엄마가 괜히 뿌듯해지는 걸? 그래서 말야 하지메, 혹시 여친은 있어? 있다면 이 엄마한테도 소개시켜 달라고?!”

“하하 유키도 참. 하지메, ‘멋진 어른’으로 자라 줘서 정말 고맙구나. 너는 항상 나와 유키의 자랑스러운 아들이니, 부디 앞으로도 스스로를 믿고 가슴을 당당히 펼 수 있기를 바란다.”

그렇다. 그들은 미나모토와는 다르게 ‘고난’이 가득할 나의 ‘미래’를 힘껏 응원해 주고 있는 것이었다. 그들은 ‘진심’으로 나를 사랑해주고 있었고, 이에 나는…

“물론이죠! 앞으로도 계속 자랑스러운 아들이도록 노력해야죠!”

‘영원한 이별을 앞뒀다는 슬픔’ 대신 ‘미래를 향해 계속 나아가려는 각오’를 드러내며 나는 웃는 얼굴로 운동장의 모두에게 작별 인사를 건넸다. 그리고선 나는 그들을 등지고선 나의 ‘송별회’가 끝나기만을 기다려 온 ‘두 사람’을 향해 달려가기 시작했다.

운동장을 나서 교문으로 나아가니 교문 양쪽에 그 ‘두 사람’이 기다리고 있었다. 오른쪽에는 ‘키보가미네 학원’ 예비학과 교복을 입은, 나의 오른쪽 눈과 똑같은 연두색 눈을 지닌 ‘히나타 하지메’가 살짝 쑥스러운 듯한 표정을 지으며 서 있었다. 그리고 왼쪽에는 ‘심연같은 칠흑의’ 정장을 입은, 나의 왼쪽 눈과 똑같은 붉은색 눈을 지닌 ‘카무쿠라 이즈루’가 무뚝뚝한 표정을 유지한 채 서 있었다. ‘동료들에게 익숙할’ 코다카 고등학교 하복을 입은 ‘나’는, 양 손에 나를 기다리고 있던 그들을 잡고선, 나의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들려오는 코다카 고등학교에서 한 걸음씩 앞으로 나아갈 뿐이었다.

“하지메 군!”

“히, 히나타 군!”

“어이, 바보 히나타!”

“하지메 쨩!”

“우리 아들!”

“하지메!”

“…하지메 형…”

그리고 ‘나’를 마지막까지 필사적으로 부르는 그들의 목소리도 아득히 멀어져갈 뿐이었다. 그렇게 소리뿐만이 아니라 모두와의 추억이 가득한 나의 고향 마을마저도 빛에 휩싸여 가자…

“…하지메 오빠.”

갑자기 내 귓가에 작고 또렷한 5글자의 단어가 들려왔다. 나는 목소리의 주인을 확인하기 위해 힘겹게 고개를 돌렸…
……………………………………………………
…‘소녀 나나미’의 손가락이 내 볼을 찌르고 있었다…


“어이 대악당님, 그래서 잘 주무셨나요? 너 자식 답지 않게 늦잠이라니 크크킄”

그렇다. 방금까지 나는 꿈을 꾸고 있던 것이었다. 그리고 방금까지 깊은 잠에 빠져있던 나를 나나미가 볼 찌르기로 깨운 것이었다…

어젯밤, 열심히 취해가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여자인 스즈키 씨와 나나미는 슌의 아버지의 방에서, 남자인 키무라 씨는 슌의 방에서, 그리고 남은 인원인 나와 슌, 거기다 나에기마저…
…결국 거실에 이부자리를 펼치고 잠을 잔 것이었다…

솔직히 멀리까지 힘들게 찾아 온 나에기를 굳이 거실 바닥에서 재우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침대가 2개뿐이라 어쩔 수 없었던 데다가…

“괜찮아, 나름 수학여행 온 기분인 걸?”

…뭐, 일단은 나에기도 나나 슌과 나이대가 비슷한 편이니 말이다.

쨌든 나는 지난 며칠간 피곤한 일에 계속 휩쓸려서인지 간만에 늦잠을 자 버린 것이었다! 정신을 차리고 주위를 살펴보니 내가 누워있던 자리를 제외하고서는 이부자리도 전부 정리가 되어있는 상태였다. 심지어 나를 제외한 전원이 외출 준비까지 마친 상태로 내가 일어나기를 기다리고 있었고.

“…뭐, 우리 대악당님 열심히 악당 놀이 하느라 힘드셨을 테니, 일단 너도 준비하고 오라고?!”

그 말에 나도 대충 준비를 마치고 오니 어느새 거실에는 ‘스즈키 씨가 차리신’ 아침 식사가 준비되어 있었다!

“후후, 이것이 바로 ‘엄마의 손맛’이라고, 하지메 쨩?”

“…솔직히 저한테는 ‘엄마의 손맛’보단 ‘아빠의 손맛’이란 단어가 더 익숙하지만요.”

“아 맞아요, 하지메 쨩의 아버지, 정말 요리 잘 하셨다고요?!”

“…그것도 그렇지만, 솔직히 어머니께서는 가사 일 전혀 못 하셨어서 말이죠.”

“하하, 이거 왠지 모르게 ‘카게노의 이면’을 알아버린 듯한 기분인데?”

……………………………………………………

“그건 그렇고 하지메 쨩, 숙취 같은 건 괜찮냐? 너 어제 그렇게 마셔댔는데도 왤케 멀쩡해 보이냐?”

‘숙취’, 라… 확실히 그런 개념이 있었지. 하지만…

“뭐, ‘초고교급 회복력’이 열일해 준 모양인데?

“…솔직히 그건 좀 부럽잖아? 아 그래, 혹시 너 어제 일 전부 기억은 나냐?! 크크크크킄”

슌의 장난기 넘치는 발언에 나는 갑자기 불안해져서 어제 일을 회상해 내기 시작했다. 다행히(?) ‘초고교급 살인귀’가 발동됐을 때와는 다르게 정신을 잃은 상태는 아니었기에 필름이 끊긴 건 아니었지만…

“아 맞아, 그래서 말이죠, 누가 그린 건지는 모르겠지만 저랑 저 녀석 BL 동인지까지 떠돌아 다녔다니까요?! 크크크크크킄”

“…네가 하도 나한테 장난을 쳐 대니까 그렇지.”

“어이어이 그러면서 다 받아줬잖아요, ‘초고교급 츤데레’님?”

“…하아 진짜, 왜 내 주변에는 피곤한 녀석이 끊이질 않는지…”

“쨌든간에, 그 때 저 녀석 진짜 웃겼는데 말이죠? 크크크크킄 지가 저랑 엮이는 거 알자마자 얼마나 얼굴이 벌개지던지 크크크크킄”

“…넌 솔직히 신기하다, 너야말로 그렇게 엮이고서도 아무렇지도 않았던 거냐?”

“크크킄 넌 날 잊은 거냐? 나는 무려 ‘반항아’였다고?! 재미를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지!”

“…저 친구 저렇다니까요, 정말 사람 피곤하게 하는 데엔 소질이 있다고요.”

“어이, 혼자서만 멋진 척 하는 ‘울보 중2병 대악당님’한테 나 정도면 과분하지 않냐?!”

“…쨌든, 제가 말이죠, 아직까지 ‘그 동인지’ 갖고 있거든요? 크크크크킄”

“…넌 왜 그딴 걸 지금까지 가지고 있는 거야?!!!”

“크크킄 당연히 우리 하지메 쨩의 저렇게 발끈하는 모습을 보기 위해서가 아니겠어~? 쨌든 제 방에 있으니 들고 올게요 크크크크크크킄”

“……하아.”

“자 여기 ‘그 동인지’ 대령이오! 우리의 대악당 님의 소감이 궁금해지는데 말이죠?!”

“………하아, 줘 봐.”

“…………………”

…………………

…뭐야, 그림은 왜 이래?! 인체비례 대체 어디다 팔아먹은 거야?!! 어이 미나미,

“무, 무슨 일이신가요, ‘대악당’님…?”

…종이랑 볼펜 들고 와, 저딴 그림 난 절대 용납 못 한다!!!

“크으~ 역시 ‘초고교급 희망’! 이 ‘미나미 슌’, 그 분부에 따르겠나이다!”

“쨔잔~ 이것 봐봐, 이렇게 고퀄리티의 미나미x히나타 동인지가 재탄생했다고?!”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악!!!!!”

…젠장, 앞으로 술 마시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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