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열은 울부짖었다. 저기 저 무인도에서 찢긴 자신의 옷자락이 깃발이 되어 나부끼고 있었다. 밤이 되면 자갈돌로 절벽에 경수의 이름을 새기고 있을 것이다. 무엇을 남겨야 한다는 욕구는 불안정한 자신을 증명하고자 욕구와 다름 아니다. 경수는 없고, 자신은 여기에 홀로 남아 이 사랑을 증명하려고 애쓴다. 돌은 날카로워질 것이고, 자신의 미친 사랑으로 흉기가 되어버린 이 돌을 새벽의 동이 틀 때 무연히 내려다보게 될 것이다. 허나 돌은 푸르스름한 새벽이 오기 전에 깨져버린다. 그게 현실이었고, 그 감각은 이 환각에서 빠져나갈 탈출구였다. 하지만 찬열은 또다시 실현 불가능한 이 사랑을 꿈꾼다. 그의 시선은 아득히 위로 향한다. 저 달로 그의 이름으로 새기고 싶다. 찬열은 뜬 눈으로 환각을 본다. 

 그는 나를 멸시한다. 맞아, 그가 옳아. 매서운 너의 눈빛인, 까마귀 부리가 내 눈알을 찌른다. 여기는 울창해서 수상스럽게 어두운 숲이고, 흰 조약돌을 주우면서 없는 너를 따라가는 나는…… 여기가 심해인가? 곧잘 착각했다. 이상해. 어두운데, 앞을 분간할 만큼은 환해. 조약돌의 발광(發光) 인가? 주운 산더미 같은 돌을 버린 지는 오래야. 어깨에 앉은 까마귀의 부리가, 얇은 물고기의 아가미로 변해 내 귀를 약하게 씹으면서 속삭인다.
 …… 뒤돌아서면 주위가 환할 텐데.

 그러면 안 될 것 같아서. “매번 이 꼴이었지” 단내를 풍기며. …… 당신, 행복하지?라고 묻는다면 그 얼굴에 침을 뱉겠어.


 “돌아와, 날 꼭 껴안아 줘. 다가와, 입 맞춰줘.” 

…… 침이 묻은 당신의 낯을 핥겠어. 
당신은 나를 멸시한다. 맞아, 그가 옳아……. 



 찬열은 울부짖었다. 어렸을 때도 이렇게 울어본 적이 없던 남자였다. 소리 내서 울어본 적도 있었다. 소리 내서 울면 어떤 기분일까? 형편없었다. 내 서러움의 객관적인 소리가, 자신의 고통을 대변할 순 없었다. 소리 내서 울지 않으면 그 울음은 응어리가 된다. 그게 찬열은 좋았다. 울고 나면 자꾸만 눈가의 그을음이 깊어진다. 찬열은 그 시달린 초췌하고 부석부석한 자신의 얼굴이 만족스러웠다. 이 퀭한 눈. 난, 정말 경수를 사랑하고 있는 거야. 이젠 경수만 오면 돼.

 

 저 경수의 검은 눈동자. 깊은 호수. 곧 그의 넋인 익사체가 떠오를 것이다.

 그 호수에 사는 물고기인 내가, 배고파 익사체의 살점을 뜯어먹기 전에…… 제발

 “돌아와, 날 꼭 껴안아 줘. 다가와, 입 맞춰줘.”



 늦여름의 늦은 오후, 테라스의 난간에 두 팔꿈치로 대고 찬열은 울음소리를 들이키며 동시에 수만 번은 울부짖는다. 담배 한 모금을 뱉으면, 햇볕에 부유하는 담배 연기가 꼭 자신의 울음소리 같다. 찬열은 눈물 콧물 흘린다. 관자놀이 세차게 뛴다. 꼭 울음에 취한 것처럼 몸이 무겁고, 시야가 이지러진다. 접힌 안 팔꿈치가 쓰라리다. 혈관을 찾아 주삿바늘을 꽂은 대가였다.

 
 눈을 한번 끔벅이면 공중에 떠 있는 익사체인 경수가 햇볕에 몸을 말리며 내게 다가왔고 더 다가오라고, 눈을 끔벅이면……


 남은 건 시골의 정경뿐이었다. 집은 있는데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 풍기는 건 고추를 말리는 매캐한 냄새와, 허허로운 짚 냄새일 뿐. 


 아마 찬열은 이미 어렸을 때부터 알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소리 내도 울어도 날 안아줄 이가 없다는 것을. 남자는 팔로 눈물과 콧물을 벅벅 닦는다. 얼굴이 가려워 사정없이 할퀸다. 유려한 외모는 모든 것을 타인의 눈엔 꽤나 괜찮게, 아름답게 비칠 뿐이다. 하지만 경수는 알아봤다. 나의 생채기를. 모든 걸 알아채서 경수는 내 주위를 맴돌았다. 내가 경수가 버거웠듯이 경수도 내가 버거웠을 거다. 그렇게 

우리는 모든 걸 깨달았다. 그래서 징글 징글맞게 나는 경수를 붙잡으려고 갖은 애를 썼다. 왜, 우린 이렇게밖에 할 수 없었을까……. 남자는 허공에 경……수라는 비릿한, 한 사람을 불러본다. 




 달이 검은 구름에 가려진 날, 경수는 짐 가방도 없이 모든 것을 남겨둔 채 자신을 떠났다. 돌아올 거라고 생각했다. 모든 것을 남겨두었잖아. 춥고 배고프면 오게 될 거야. 이 모든 남겨진 먼지가 낀, 자신의 손 때 묻은 것을 버릴 수가 없을 거야. 경수는 변화의 낯섦을 못 견딜 거야. 곧 내 곁에서 안주하게 될 거야. 어디에 있든 나를 느끼고 있겠지. 발목 부근에 흰나비가 맴돈다. 이곳에서 경수만을 기다리는 나는 맴도는 저 나비를 실수로 밟지만 않으면 돼.


 한 번쯤은 …… 들르게 될 거야. 살인범은 한 번쯤은 사건 현장에 오게 된대. 하지만 자신을 멀쩡히 살아 있잖아. 찬열은 심각하게 자살을 생각한다.

 …… 왜 이렇게 경수가 안 오지? 죽었나봐……. 이렇게 안 오는 거 보면 죽었어. 더 이상 그의 죽음을 의심하지 않는다. 나는 버림 당하지 않았어. 

 왜, 우린 이렇게밖에 할 수 없었을까……. 경수의 다리에 묶여있던 쇠사슬의 소리. 문을 열면, 경수는 어제와 똑같이 침대에 누워 꿈을 꾸고 있었는데 자꾸 환청이 들렸다. 그럴 때면 찬열은 물줄기를 가장 세게 틀곤 비명을 질렀다. 죽음의 전령이 까마귀의 부리가 자신의 고막을 찔렀고 금방 흐르는 물에 묽은 피로 변했다. 나쁜 피는 곧 묽은 피야. 그는 비명을 지르는 입을 막고 빨간 응어리가 자신의 몸통에서 태동하는 걸 느꼈다. 아……. 나쁜 사랑. 사랑엔 수식어가 필요 없어. 이것도 사랑이야. 그렇지만, 그런 날이면 유령처럼 이 저택의 2층 복도를 맴돌았다. 그런데, 저 햇볕에 맺힌 그림자. “…… 배고파.” 문을 열고 경수는 말했다. 팽팽한 저 쇠사슬. 찬열은 경수의 소리에 놀라, 경수를 향해 뛰쳐나가는 자신의 발을 갑작스럽게 멈춘다. 그리곤 계단에서 굴러떨어진다. 목구멍에서 피 냄새가 나고, 아, 수많은 추락 중의 추락이었지만, 피멍엔 또 피멍이 맺힐 거다. 경수는 나를 향한 눈길을 거둔다. 드러난 눈꺼풀……. 방문이 닫힌다.




 너무 무모해서, 사랑은…… 징글맞아. 일주일 사이에, 머리가 새하얗게 쇠어 버렸어. 머리카락이 너무 뻣뻣해. 짚 냄새가 나. 그럼 불을 질러버려. 찬열은 그 머리카락을 불 지른 대신, 레터링 문신을 했다. 그의 이름이었다. 그러자면 이미 내 몸에 새겨져 진짜 경수가 안 올까 봐. 밤새 후회했다. 그래도 도저히 지워지지 않는다.


 밤 도로를 달리면 그 고요한 차 안에서 나른한 목소리가 울렸다. “다가와, 입 맞춰줘. 돌아와, 날 꼭 껴안아 줘.” 
 차창을 열면 그리고 세찬 한 줄기의 바람이 새어 들어왔다. 찬열은 담배를 튕겨낸다. 그리하여, 저 잔해인 다급한 시든 잎은 무엇 때문에 갓길에서 저토록 휘청이 나. 시든 잎은 전단지였다. <실종자를 찾습니다.> 이젠 더 잃을 것도 없어. 매일 밤, 고백하려 붉은 장미를 들고 너의 집이 찾아가는 한 남자. 사랑의 빛은 꺼져있다. 남자는 불 꺼진 창에 꽃다발을 놓고 간다. 사랑이 없다는 걸 알고 있다. 그래도 그 남자는 매일 밤 사랑의 집을 찾아간다. 하루, 이틀, 나흘…… 한 계절이 가고, 밀레니엄을 맞이한다.



 시든 장미의 꽃잎을 쥐면 느끼지. 재가 되도 별로 아프지 않다는 것을. 그저 눈물 나게 가벼워진다는 것을. 뜨거운 상실인가 미지근한 망각인가…… 그래도 남자는, “널 보지 못해도 더는 아프지 않아.” 그렇다면 “차라리 널 보면서 아프지 않은 게 낫다고.” 그렇게 다시 울부짖는다. 어젯밤, 남자는 꿈을 꾸었고, 긴 잠을 잤으며, 이윽고 깼고, 곧 잘못 깬 것 같은 이 낯섦. 따스한 빗줄기가 

 다시 돌아가라고 인사를 건네는 오후. 그래, 다시 한 번 저 무모한 낭만으로. “다녀오세요.”  …… 남자는 꿈으로 되돌아간다. 뻐끔뻐끔대며 물방울이 피어오른다. 수면 위, 별빛이 숨 막히게 어룽댄다. 우리의 침윤인 심해. 회개해도 소용없어. 다시 돌아가도 난 널 사랑할 거야.



 손 좀 씻어. 비누거품에 네 손을 못 잡겠어. 자꾸 미끄러지잖아. 얼굴에서 비누 향이 나. 네가 그 손으로 내 얼굴을 뭉갰기 때문이지. 겨울의 찬바람이 불현듯 내 눈알에 들이찬 것처럼. 눈이 매워죽겠어. …… 조금만 울게. 혀로 내 눈알을 씻겨주지 않으니깐. 별 수 있어? 너의 흰 눈알의 핏발을 어떻게든 매듭지어 삼켜버리고 싶지만


 눈을 감으면 안 돼, 빌 게 될 거야…… 난. 사실 나, 너 만난 거 후회해. …… 죽어도 안 울 거야. 네가 이렇게 아파서 앞도 분간하지 못하는 날 끌고 다녔잖아. 내가 조금만 덜 외로웠다면. 너 같은 년을!


 …… 나쁜 짓을 하면 참 좋아. 덜 결락감을 느끼면 상상의 여지가
 …… 울 자격이 생기는 것 같아.

 

 날 위해 울면 눈물은 미지근하고 널 위해 울면 참으로 눈물이 뜨거워서,

 더는 눈이 맵지 않아. 

 그러니깐 돌아와.


 우리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





 2NE1 <컴백홈>을 들으며 썼어요. 이 곡과 함께 들으면 좋겠습니다.

됴른을 향합니다

님의 창작활동을 응원하고 싶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