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능적으로 오늘 아침의 풍경은 평소와 다를 것이라는 자각이, 마치 살얼음같이 얕은 잠에서 깨어나기 시작할 무렵부터 분명하게 존재했다. 그래서 눈을 감고 의식을 치르듯이 기억을 더듬어 올라갔던 것이고, 사소한 것 하나까지 떠올리기 위해 안간힘을 쓴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무슨 이유로 행적을 더듬으며 무슨 짓을 벌였는지에 대해서 스스로 따져 묻겠는가. 옆에서 살짝 들썩거리는 이불의 바스락거리는 소음에 얹혀서 들려오는 숨소리, 코끝을 알싸하게 할퀴고 지나가는 짙은 정사의 냄새 사이에서 이 정도라도 기억하는 것은 거의 기적에 가까웠다. 아니면 저주이거나…. 이제는 무슨 거스러미처럼 입에 붙은 짤막한 욕설이 입술 근처를 맴돌다가 사라졌고. 술에 절어진 머리는 둥둥딩딩 울리기 시작했다. 애써 입술을 깨물고 혹시라도 옆에 있는 이를 깨울까 싶어서 전전긍긍하며, 눈도 뜨지 못하고 굳은 채로 침대에 반쯤 구겨진 자세를 하고 간신히 숨만 쉬고 있는 이유는 다양했다.


현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다는 부정.

눈을 뜬다고 한들 뭘 어떻게 할 수가 없겠다는 당황.

옆에 있는 존재가 인간은 아니라는 확신.


방을 가득 채운 듯한 위스키 냄새와 초콜릿 향기 속에서 맥코이는 익숙한 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 알싸한 정액이나 땀 냄새 속에 섞여 있는 마른 장작 같은 냄새. 유독 그에게는 이런 냄새가 났다. 이렇게 선명할 정도로 특색이 있는 체향이라니, 고개를 갸웃했던 옛 기억이 떠오르고 나면 맥코이는 다시 눈을 질끈 감았다. 유독 체향에 대한 기억이 남아 있는 것은 그와 보냈던 어떤 특정한 시간 때문이었다. 백일 하고도 이틀이 지나고 나서야 다시 마주한 품에서 맥코이는 그때보다 곱절은 더 당혹스러움을 느꼈다. 맨살을 쓸어 올리던 손길이 꽤 조심스러웠다는 것이 102일 전의 기억인지 아니면 바로 어젯밤의 기억인지, 구별하기가 아주 불분명했다.

마른 장작이 타오르는 겨울의 공기 속에서 맡았던 그 냄새가 온 방 안에 가득 퍼져 있었다. 맥코이는 숨을 천천히 쉬었다. 몸은 모로 눕힌 채로 멀찍이 떨어진 벽을 쳐다보는 일은 지루했지만, 별다른 수가 없었다. 등을 타고 넘어오는 냄새를 좀 더 가까이 맡아보고자 하는 충동은 아마도 술기운이 덜 빠져나갔기 때문일 것이다. 마치 온몸이 굳어버린 사람처럼 그렇게 그냥 누워서 얌전히 숨만 쉬는 맥코이는 애써 다시 잠들기 위해 눈을 감았다. 코끝으로 익숙하고도 아주 낯선 냄새가 흘러들어오는 동안 호흡이 아주 느리게 이어졌다. 들이쉬고 내쉬고, 또다시 들이쉬고 내쉬고, 다시 반복해서 들이쉬고 내쉬고, 또 다시 들이쉬었다가 내쉬고, 한 번 더 들이쉬고….

의식을 뒤로하고 몸이 밑으로 쑥 꺼지는 듯한 느낌이 들었을 때, 이제 막 잠에서 깨어난 낮은 목소리가 맥코이에게 아침 인사를 건넸다.


“좋은 아침입니다.”


불시에 날아든 짧은 인사가 맥코이의 귓속에서 어떤 식으로 굴러떨어져서 머릿속의 뇌를 후려쳤는지, 설명할 방법이 없었다. 다만 맥코이의 귓속은 마치 누군가 모래라도 처넣은 듯 한없이 껄끄러웠고, 또한 속도 약간 매슥거리기 시작했다.


“…젠장.”


맥코이는 세상의 모든, 다양한 인사 가운데 욕설부터 입에 담았고. 그 인사를 듣게 된 상대는 그게 퍽 기쁘지 않은 모양이었다. 맥코이는 등 뒤에 있던 이가 자리에서 바르작거리느라 침대 스프링이 비명을 지르는 것을 가만히 듣고만 있었다. 짧은 비명이 지난 뒤에 남은 것은 또다시 침묵이었다. 그와 단둘이 있을 때면 침묵은 더욱 몸을 부풀리고 두드러지게 자신을 뽐내곤 했다. 맥코이는 눈을 질끈 감았지만, 등 뒤에서 거의 속삭이듯이 대꾸하는 그의 목소리를 듣지 않을 수가 없었다.


“지구에서는 같이 밤을 보내고 난 뒤에 아침 인사를 그렇게 하는 겁니까?”

“아닌 거 뻔히 알면서 비꼬지 마.”


맥코이는 거의 몸에 밴 버릇처럼 그의 말에 대꾸를 했다는 사실에 조금 절망했고, 또한 자신에게 실망했다. 이럴 때는 조금 더 뻔뻔하게 움직여서 빨리 이 방을 빠져나갔어야 했는데! 하지만 결론적으로 맥코이는 아무렇게나 움직이지 못하고 여전히 스팍을 등지고 누워서 입술만 잘근거렸다. 몸이 마치 굳어버린 것처럼 움직이질 않았다. 기억나지 않은 섹스는 신체와 정신 모두에 해롭다. 그러니 기억나지 않는 섹스를 동료와 한 것은 그것보다 곱절은 더 해로운 일이었다. 맥코이는 침묵의 시간을 견뎌내며 머리를 굴렸지만, 스팍은 맥코이가 뭔가 생각할 틈을 주지 않으려는 듯이 말을 꺼냈다.


“당신은 많은 것을 착각하는 편이지만, 나에 대해서는 그 정도가 조금 더 심한 것 같습니다.”


스팍의 목소리는 매끄러웠다. 아주 부드럽게 느껴질 정도로, 오히려 평소보다는 조금 나긋한 목소리였지만, 그 목소리는 맥코이의 귓속으로 들어와서는 속을 아주 다 긁어내 버릴 것처럼 껄끄럽게 굴었다. 맥코이는 스팍의 입에서 나온 단어 하나하나가 속으로 굴러들어와 달그락거리며 몸속을 어지럽히는 상상을 하다가 슬며시 눈을 떴다. 널브러진 옷가지들이 바닥을 채우고 있는 모습을 가만히 보는 것은 정신 건강을 위해 그다지 추천할 행동은 아니었다. 입술 안쪽에서는 또다시 ‘젠장’이라는 말이 밖으로 튀어나오려는 듯이 입술을 들썩이며 발을 구르고 있었다.


“나는 당신의 생각보다 훨씬 더 인간에 대해서 무지한 편입니다.”

“그거 다행이네. 네가 뭐든지 다 알고 있다고 했다면, 분명히 재수 없다고 생각했을 테니까 말이야.”

“만약 그런 경우에서라면, 당신은 나에 대한 평가를 바꿨을지도 모르죠. 오만함으로.”

“아니, 그건 벌써 예전부터 너를 정의하는 많은 단어 중에 하나로 자리 잡고 있었거든.”

“하지만 당신이 작성했던 제 심리 평가 보고서에 그런 단어는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그거야 당연하지, 나는 누구처럼 융통성 없는 성격이 아니니까.”

“…지금 농담을 하고 계시는군요. 당신의 화법은 언제나 절 혼란스럽게 합니다.”


맥코이는 매끄럽게 이어지는 이상한 대화에 집중하며 이불을 끌어당겼다. 조금이라도 스팍에게서 멀리 떨어지기 위해서 바르작거리는 그 몸짓에 아랑곳없이, 스팍은 맥코이 쪽으로 몸을 기울이며 침대를 짚었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살갗끼리 닿을 듯 말 듯 했던 시간은 맥코이를 금방 어지럽게 만들었다. 호흡이 가까워지는 것은 순간이었고, 맥코이는 내내 등 뒤에서 느껴지던 체온이 제게로 기울어지는 것은 거의 충격에 가까웠다. 그리고 무엇보다, 실오라기 하나도 걸치지 않은 창백한 피부는 평소와 다르게 맥코이와 아주 비슷한 체온으로 달아올라 있었다. 마치 새벽 내내 그가 맥코이를 꼭 껴안고 자기라도 했던 것처럼. 섹스만큼이나 충격적이지 않은가. 지금 스팍과 맥코이는 조난된 것도, 서로의 체온이 절실하게 필요한 상황도 아니었다. 그런데 마치…. 맥코이는 생각을 멈추고 고개를 흔들었다. 머릿속이 어지러운 만큼이나 시야도 엉망이었다. 맨몸으로 침대에서 일어난 스팍의 뒷모습에 눈을 질끈 감은 맥코이는 뭐라도 좀 걸치라며 소리를 버럭 질렀다.

옷을 입으라는 말을 그냥 들으면 좋을 텐데, 스팍은 꼭 눈썹을 치켜 올리면서 뒤를 돌아본다. 아 제발. 그러지 말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기어 올라왔다가 아래로 쭈욱 미끄러지고. 결국, 돌아선 스팍이 맥코이의 앞에서 평이하게 입을 열었다. “레너드.” 아, 젠장 부끄러움도 모르는 초록 피 홉 고블린 같으니. 맥코이는 입을 꾹 다물고 눈을 감는 것을 택했다. 보지 않으면 된다. 눈앞에는 아무것도 없는 거다. 맥코이는 최면을 걸듯이 같은 말을 속으로 반복했다. 눈앞에는 아무것도 없다. 아무것도, 아무도….


“당신도 지금 그 이불 아래로는 전라일 텐데요. 레너드.”

“그래, 그건 맞는데. 아무튼, 발리 뭐라도 입으란…….”


맥코이는 질끈 감았던 눈을 뜨고 멍청하게 입을 벌렸다.

레너드?


레너드, 듣고 있는 겁니까?”


스팍이 넌지시 불러오는 소리에도 대답하지 않고 맥코이는 입을 다문 채 고개를 돌렸다.

레너드라니. 레너드라니? 하룻밤을 같이 보냈다고 호칭이 바뀌는 게 우스웠으나, 맥코이는 웃지 못했다. 입꼬리가 기묘하게 들썩거렸다. 레너드라니. 창백한 피부의 벌칸이 저를 ‘레너드’라고 부르는 소리는 정말 낯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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