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은솔(@silverpinetree)님과 함께한 썰을 기반으로 한 소설입니다. 아래 링크를 참조해주세요!
  • 5편이내 완결 예정... 입니다... 아마도...
2. 노란 고양이


형호는 오늘도 험준한 산맥을 매끄럽게 내려가 사냥을 시작했다. 이제 성체가 되어 어지간한 호랑이만해진 흑표범 형호는 이 산에서 최상위 포식자가 되었다. 그가 한발자국 내딜 때마다 모든 동물들이 겁에 질렸고, 한번 포효할 때마다 산 전체가 울렸다. 그가 산에서 내려온다는 소식이 들리면 짐승이고 영물이고 할 것없이 서식지에서 그가 자신을 지나치기를 바랄 뿐이었다. 

하지만 공포의 대상인 형호를 키운건 작고 하얀 토끼라는 건 극소수만 아는 사실이었다. 이 때문일까 형호는 아무리 배가 고파도 토끼는 잡아먹지 않았다. 오히려 토끼들이 도망가는 모습을 보며 살짝 실망한 표정을 지어냈다. 오늘도 자신을 보고 화들짝 놀라 도망가는 토끼 무리들을 조용히 바라보며 동굴에서 편히 자고 있을 자신의 사랑하는 형을 생각했다. 

그 때 형호는 희미한 물소리와 함께 미약하게 나는 사슴 냄새를 맡았다. 그 즉시 바로 몸을 낮추고 아무런 소리가 나지 않게 조용히 움직였다. 예상대로 긴 뿔을 자랑하는 사슴은 연못에서 경계심 없이 목을 축이고 있었다. 형호의 눈은 사슴에게서 떨어지지 않은 채 날렵하게 몸을 날렸다. 사슴은 혼비백산 하여 도망치려고 했으나 이미 형호의 이빨이 사슴의 목에 박힌 채였다. 형호는 신나게 사슴을 먹어치웠다. 그리고 연못에서 입을 헹구고 주변 풀을 씹어 입안의 피냄새를 제거했다. 초식동물인 자신의 형이 피냄새에 놀라지 않게 하기 위함이었다. 

그루밍까지 해서 완벽하게 몸단장을 끝낸 형호는 이제 사랑하는 형이 있는 따뜻한 보금자리로 돌아가려고 했다. 그 때 저 멀리서 미약한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새인가 하고 무시하려고 했지만 무언가 알 수 없게 신경쓰였다. 계속해서 신경쓰이는 울음소리를 무시하던 형호는 결국 그 소리를 따라 수풀을 해치고 나아갔다. 그리고 그 곳에서 발견한 것은...


*


두훈은 볕 좋은 동굴의 끄트머리에서 기지개를 펴고 일어났다. 원래는 동굴 안쪽에 있던 둥지가 끄트머리에 나와있는것에 의아해 하다, 사랑스러운 동생이 자신의 둥지를 볕이 좋은 끄트머리로 끌고 온 것이라는걸 인지하고 슬며시 미소를 지었다. 그루밍으로 몸단장을 하고 동굴 안을 보니 동생은 이미 사냥을 하러 나간 모양이었다. 두훈은 느긋하게 동생을 기다리며 동굴 안에 있던 토끼풀과 건초를 오물오물 먹었다. 예전에는 동생이 사냥을 나가면 오매불망 기다렸던 적이 있었으나 이제는 최상위 포식자가 된 자랑스러운 동생을 걱정하는건 어불성설이었다. 

두훈은 운동 겸 필요한 약초와 과일을 얻기 위해 험준한 산맥을 나섰다. 주변에 살고 있는 피식자 영물들과 가볍게 인사를 했으며, 자신의 바구니에 산 곳곳에 있는 약초들을 캐는 걸 잊지 않았다. 두훈은 걷다가 자신이 형호를 발견한 '빛나는 토끼풀' 영역에 도착하고는 추억에 잠겼다. 


"이 곳에서 형호를 만났지... 그 땐 정말 작고 귀여운 고양이인 줄 알았는데..."


'빛나는 토끼풀' 사이에서 잠든 검은 고양이를 생각하던 두훈은 저 멀리서 건장한 흑표범이 걸어오는 것을 보고 기쁨의 뜀박질을 했다. 자신의 동생이 돌아온 것이다. 그런데 형호가 입에 무언갈 물고 있었다. 형호는 자신의 형을 보고 반가움의 그루밍을 하고 싶었지만 자신의 입에 있는 무언가 때문에 할 수 없다는 걸 깨닫고 망설임 없이 바닥에 내뱉었다. 


"캬앙!"

"고양이?"

"형, 오늘 뭔 일 없었지?"

"응, 근데 왠 고양이야? 노란색 고양이네."

"호숫가 근처에 있었어. 그냥 신경쓰이길래."

"아이고, 야옹아 왜 혼자 있었니?"


노랗고 꼬질한 고양이는 초롱초롱한 눈으로 두훈과 형호를 번갈아가면서 쳐다보았다. 갑자기 포식자에게 끌려온거라면 무서워 할텐데 그런 기색 없이 호기심이 가득한 눈빛이었다. 고양이는 그러다 두훈을 빤히 쳐다보았다. 동공이 커다랗게 변한 노란 고양이는 얼핏 보면 귀여운 얼굴이었다. 그러나 형호는 그게 무엇을 뜻하는지 알아 다급하게 앞발로 노란 고양이가 튀어 나가기 전에 제압하였다. 갑작스러운 고양이의 공격에 두훈은 놀라 뒤로 자빠졌다. 


"이 맹랑한 고양이! 어딜 감히!"

"으아아앙! 이거 놔! 난 그냥 놀고 싶은거였다고!"

"하하... 야옹아 길을 잃은거니?"

"아니! 엄마가 나도 이제 혼자 다닐 수 있을거라고 두고 갔어!"

"그러기엔 너무 어린데..."


꼬르륵-

노란 고양이의 배에서 큰 천둥소리가 났다. 말을 들어보니 한동안 아무것도 먹지 못했다고 했다. 아직 독립할 시기가 아님에도 어미가 키울 여력이 안되어 버리고 간 모양 같았다. 두훈은 형호를 발견한 '빛나는 토끼풀' 군락지에서 또 다시 고양이를 만난 것은 인연일거라 생각했다(형호는 반대했지만). 그렇게 두훈과 형호는 새 가족인 '민규'를 만나게 되었다.


*

두훈은 사실 이 새로운 고양이를 기르는데 자신이 있었다. 왜냐하면 형호라는 아주 모범적인 예시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단 하루만에 그 생각은 오산이었음을 깨달았다. 이 깜찍하고 발랄한 고양이는 도저히 자신의 에너지를 주체하지 못하고 있었다. 동굴의 모든 물건을 부수지 않고는 못배겼으며, 심심하다는 이유로 형호의 꼬리를 계속 물거나 두훈을 쫓아다니면서 괴롭혔다. 잠시 자리를 비우면 두훈이 모아둔 과일은 전부 으깨져 있었고, 형호가 민규를 위해 잡아온 참새 시체들이 널부러져 있었다. 

두훈은 처음엔 이 맹랑한 고양이를 따끔하게 혼내려고 했으나 그렁그렁한 눈으로 쳐다보면서 죄송하다 말하는 그 얼굴에 무너져 별 말을 못하곤 했다. 그러나 형호는 달랐다. 민규가 사고 칠 때마다 으르렁 거리며 민규의 몸을 앞발로 제압하고 잔소리를 퍼부었다. 민규의 필살기 '그렁그렁 눈빛'도 형호에겐 통하지 않았다. 민규는 형호 덕분에 점점 예절을 배워갔다.


"과일은 뭐라고?"

"두훈이 형아가 만지라 하기 전까지 만지지 않는다!"

"토끼는?"

"연약한 동물이니 물거나 강하게 때리지 않는다!"

"신남을 주체 할 수 없을 때는?"

"두훈이 형아를 건들지 말고 형호 형아를 건든다!"

"아휴... 그래... 알아들었으면 됐다..."


형호는 신신당부하며 민규에게 예절교육을 가르쳤다. 처음엔 말로 하더니 안되는 것 같아 조용히 어디론가 데려가더니 민규가 그렁그렁 눈물을 달고 얌전하게 같이 돌아왔었다. 아마 형호가 호되게 혼을 낸 모양이었다. 그 이후로 좀 얌전해진 민규는 형호를 그 이후로 무서워하면서도 존경의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자신도 곧 형호 형아처럼 커질 거라며 벽에 키를 재기 시작했다. 고양이는 이렇게 못자란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동심을 깨고 싶지 않아 조용히 원하는대로 해주었다. 

그렇게 발랄한 고양이와의 아슬아슬한 동거가 계속 되고 있었다. 조용히 평화로운 나날이 지속 되는 듯 했지만 노란 고양이는 또 한번 커다란 사고를 치고야 말았다. 

트위터: @i_am_mushro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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