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부시게 빛을 내뿜는 조명과 어우러진 회전목마는 사람들을 태우고 빙글빙글 돌고 있었다. 우림은 그 누구보다 반짝거리는 눈으로 돌아가는 회전목마를 바라보고만 있었다. 타고 싶었지만 오늘 이 곳에 주인공은 우림이 아니었다. 우림은 가득 손에 들린 가방들과 옷가지들을 다시 추스려 올리고 카메라를 들었다. 카메라 앵글에 잡히는 가족들은 너무나도 행복해보였다. 


"우림아, 잘 찍어야해!"

"네, 이모."

"엄마! 이따가 우리 범퍼카 타자!"


나도 저렇게 행복한 가족을 가지고 싶다. 중학생이었던 우림의 마음 속에 자리 잡은 조그마한, 하지만 이룰 수 없는 소원이었다. 우림은 씁쓸하게 웃은 뒤 연속해서 셔터를 눌렀다. 그리고 화면에 있는 어린아이를 자신으로 상상하고 작게 즐거워했다. 

초등학생때 부모님을 교통사고로 잃고 친척집에 맡겨졌다. 아무도 우림을 떠맡고 싶지는 않았지만, 우림의 부모님이 남긴 유산은 가지고 싶어했다. 결국 우림의 이모가 우림과 함께 유산을 차지했다. 이모는 우림을 사랑하지 않았고, 취급은 하찮았다. 때리거나 하는건 아니었지만, 없는 사람 취급하거나 이렇게 필요할 때 써먹는 유용한 하인이었다. 우림은 자신의 처지를 덤덤히 받아들였다. 먹고 자고 살아있을  수만 있으면 다행이지. 이렇게 일명 정신승리를 하며 학창시절을 지냈다. 

하지만 항상 놀이공원만 가면, 부모님과 행복했던 어린시절의 자신이 생각이나 조금은 쓸쓸했다. 사촌동생의 저 밝은 얼굴이, 웃음이 너무 부러웠다. 가질 수 없는 것을 부러워하지 말자 생각했지만, 이 곳에서는 그게 안됐다. 모두 행복한데 나만 행복하지 않은 것 같았다. 놀이공원은 그래서 항상 나에게 씁쓸한 곳이었다. 


*


"저 한번도 놀이공원에서 놀이기구 탄 적 없어요."

"어?"

"진짜?"

"놀이공원 한번도 안 가본거야?"

"아뇨. 가긴 했죠. 항상 타진 못하고 가방 들고 있거나 사진 찍고 있었으니까요."

"이런 개..."

"욕하지 말고 형호야."

"진짜 미친놈들이네!"

"민규야."

"아니! 진짜 욕나오잖아요!"

"하하하."

"넌 왜 웃고만 있어 바보야. 안되겠다. 저 착한 바보 고우림을 위해 우리 놀이공원 한번 가야겠다!"

"좋지."

"좋은 생각이네. 이번주 일요일 시간 괜찮아?"

"어... 네, 돼요. 정말 가요?"

"응. 정말 갈거야."


그렇게 갑작스러운 놀이공원행이 정해졌다. 놀이공원으로 들어가는 셔틀버스를 탈 때까지만 해도 실감이 나지 않던 우림은 놀이공원으로 들어가 놀이기구들을 보는 순간 갑자기 실감이 나기 시작했다. 내가 저걸 탈 수 있다고? 심장이 쿵쿵 뛰고 얼굴이 상기되기 시작했다. 얼굴이 발그레해진 우림을 보자 형들은 뿌듯함이 밀려왔다. 

민규는 멍하니 바라만 보는 우림의 손을 잡고 가판대로 가서 동물 귀 머리띠를 씌웠다. 귀여운 곰돌이 귀를 쓴 우림은 부끄러운듯 머리띠를 만졌지만 싫지는 않았다. 우림은 수줍게 토끼 머리띠를 골라 두훈의 머리에 씌여주었다. 두훈은 조금 놀랬지만 방긋 웃으면서 머리띠를 받아들였다. 뒤에서는 쓰기 싫어하는 형호와 씌우려는 민규의 티격태격 말다툼이 벌어졌다. 


"아, 싫다! 가오 안 살게 고양이가 뭐고?"

"그럼 형호 형 표범은 어때요?"

"맞아! 우림이가 이렇게 추천하는데 안쓸거야?"

"하... 치사하게..."

"우리 사진 찍을까?"


핸드폰 전면 카메라로 비친 네 남자들을 얼굴이 다 상기되어 행복해보였다. 우림은 찍은 사진을 빤히 바라보면서 지금 이 순간을 계속 기억하고 싶었다. 형들은 그런 우림을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우리 아직 시작도 안했는데 벌써부터 좋아하면 어떡해! 자, 첫 시작은 자이로드롭이야!"

"야야야, 처음부터 너무 쎈 거 타는거 아이가."

"형호 은근 겁이 많네."

"아입니다!"

"쫄? 쫄? 강형호 쫄?

"마! 타자, 타! 내가 와 쪼는데?"

"민규가 형호를 잘 놀린다. 그치? 우리도 얼른 타러 가자."


두훈은 우림의 손을 이끌고 놀이기구로 향했다. 그렇게 아침 일찍 시작한 놀이공원 투어는 해가 사라진 밤이 되어서야 끝을 보였다. 처음엔 팔팔 했던 형호는 자이로드롭과 바이킹, 그 외 무서운 놀이기구를 연속으로 탔더니 얼굴이 허옇게 질려있었다. 두훈과 민규는 조금은 지쳤는지 의자에 앉아 음료수를 들이키고 있었다. 우림만 멀쩡하게 틈틈히 찍은 사진을 보면서 눈을 반짝였다. 


"저... 형들, 뭐 하나 더 타도 돼요?"

"자이로드롭인지 뭔지만 아니면 된다. 그거 타고 속이 계속 안 좋은것 같다..."

"형호 형 귀신의 집 가면 자지러지겠는데."

"가면 뒤진다 너."

"뭐 탈까 우림아?"

"저... 회전목마 타고 싶어요."

"회전목마? 놀이공원의 꽃이지. 거기서 사진 왕창 찍자!"


*


"야, 고우림 잘 찍어야해!"

"알겠어요."

"와 우림이한테만 시키는데? 니도 좀 찍어라."

"우림이가 잘찍는단 말이야!"


눈부시게 빛을 내뿜는 조명과 어우러진 회전목마는 사람들을 태우고 빙글빙글 돌고 있었다. 우림은 그 누구보다 반짝거리는 눈으로 돌아가는 회전목마를 바라보고만 있었다. 회전목마 앞에서 포즈를 취하는 민규를 보며 우림은 행복하게 웃었다. 항상 바라보기만 하던 회전목마를 탈 주인공이 된다는 것이 이렇게 설레는 일이었는지 우림은 처음 알았다. 두훈은 행복해하는 우림의 머리를 쓰다듬고 카메라를 뺏었다. 


"민규야 나와. 이제 우림이 찍게."

"네에~"

"우림아 너도 앞에 서. 사진 찍어줄게."

"어... 고마워요."


쭈뼛쭈뼛 회전 목마 앞에 선 우림은 쑥스러운 듯 머리를 긁적였다. 민규와 형호는 두훈의 뒤에서 이것저것 포즈를 추천해주고 있었다. 우림은 민규를 따라 여러가지 포즈를 취해봤다. 사진을 찍은 두훈은 지나가는 사람에게 부탁해 카메라를 맡겼다. 그리고 3명이서 우림의 곁에 왔다.


"같이 한 장 찍자. 이거 찍고 회전 목마 타러 가자."


사진을 찍고 회전목마에 오른 우림은 너무 행복했다. 행복해서 눈물이 나기 시작했다. 형들은 어지간한 일엔 울지도 않는 우림이 갑자기 울기 시작하니 매우 당황했다가, 이 귀한 장면을 놓칠 수 없다며 카메라를 들었다. 우림은 저항했지만 형들도 지지 않았다. 그렇게 성인 남자 4명의 웃음소리가 회전 목마의  노랫소리와 섞여 어우러졌다.   

그리고 4명이서 찍은 사진은 오랫동안 우림의 핸드폰 배경화면이 되어있었다. 



<여담>

코시국으로 놀이공원 안간지 2년 넘은 것 같네요... 나도 놀이공원...

자이로드롭은 제 최애 놀이기구입니다ㅋㅋ 너무 좋아...


트위터: @i_am_mushro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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